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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버그 Instant Transfer

우리 투자사 텀블버그에는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나도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거대한 로켓‘ 을 시작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후원했는데 최근에는 ‘일러스트북 : <케찹 머스타드 와사비>‘ 와 ‘맥주 일러스트 북 <맥주도감>‘ 을 후원했다. 이 캠페인들은 솔직히 수십억원의 펀딩이 필요한 대형 규모의 프로젝트들은 아니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텀블버그가 이 분들의 작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에 텀블버그 개발팀이 굉장히 큰 성과를 이루었는데 바로 Instant Transfer 기능의 개발과 완성이다. 이를 통해서 이제는 펀딩 마감 즉시 진행자의 통장에 돈이 찍히는 경험을 구현할 수 있었는데, 현재 프로젝트 진행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Photo Oct 14, 6 43 29 PM

그동안 프로젝트 마감 후 돈이 들어오기 까지는 3주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 기간을 하루로 단축하면서 결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했다고 보면 된다.

실은 텀블버그 외에도 다른 많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존재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업체들은 영업력을 강조하고, 다른 업체들은 크라우드펀딩은 마케팅의 싸움이라고 한다. 하지만, 텀블버그는 그동안 꾸준히 기술력을 강조했었고, 이러한 회사의 철학과 비전이 Instant Transfer와 같이 겉으로 봤을때 화려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좋은 기능으로 구현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많고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온라인 결제 부분에서 큰 성과를 거둔 텀블버그 팀이 자랑스럽다.

스케일이 항상 이기는건 아니다

iguana-clip-art-RTdBe6bT9이 전 포스팅에서 트래픽과 스케일에 대해서 좀 적어봤는데 많은 분들이 다양하고 좋은 피드백을 주셨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정도의 트래픽 확보가 가능하다면 일단 스케일에 집중을 하고 그 이후에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도 괜찮다는 의견, 어정쩡하게 트래픽을 키우면 비용만 많이 발생한다는 의견, 그리고 트래픽의 크기를 떠나서 궁극적으로는 그 ‘quality’ 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질 좋은 진성 트래픽을 어느 정도의 스케일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면 아주 이상적인 비즈니스가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둘 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Scalability’ 라는 말을 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실리콘밸리나 한국이나 스타트업을 하시는 분들은 너도나도 빨리 스케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실은 스케일이 항상 좋은건 아니지만, 투자자로서 나도 항상 강조하기 때문에 이걸 뭐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사용자 베이스가 없고 확장/성장이 느리다고 해서 그 비즈니스가 투자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구아나를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에 이구아나를 키우는 인구가 어느정도 규모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수백만명 – 수천만명은 아닐것이다. 스케일이 힘들다고 무조건 나쁜 비즈니스라고 판단하기 전에 이 사용자 베이스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면 좋을것이다. 회원들의 수는 적지만 이들이 정말로 이구아나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 플랫폼에서 하루에 1시간 이상 체류하면서 정보도 확인하고, 다른 회원들과 교류하고, 또 이구아나 관련 사료나 제품들을 구매한다면, 매일 수백만명의 회원들이 사이트를 방문해서 1분도 체류하지 않고 나가는, 단순히 광고로 돈을 버는 포탈사이트 보다는 훨씬 더 안정된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 아니, 안정적일뿐만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가 있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스케일에서는 완전히 밀린다. 아무리 성장을 해도 우리나라 인구 모두가 다 이구아나를 키우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은 사용자 베이스를 위한 제품이라도 각 사용자가 많은 시간과 돈을 고정적으로 지불할 의향이 있는 하드코어 서비스라면 나는 베팅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서비스는 특정 버티컬의 플랫폼으로 진화할수 있고, 탄탄한 플랫폼으로 성장한다면 이구아나 시장과 같이 작지만 충성도가 높은 사용자들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재활용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비즈니스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면, 시장과 스케일에 대해서도 한 번 정도 고민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타겟 시장이 엄청나게 크다면, 서비스 단가를 아주 저렴하게 책정하거나 아예 무료로 제공하는것도 방법이다. 낮은 ARPU(=Average Revenue Per User)를 큰 스케일이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타겟 시장이 작다면 아주 충성도가 높고 질이 좋은 사용자들이 존재하는 시장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아주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100% 다 장악해도 스케일이 나오지 않는 시장을 대상으로 무료 또는 단가가 너무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정도의 스케일이면 적당할지는 각자가 계산해서 판단해야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clipartpanda.com/clipart_images/iguana-clipart-3374042>

당신의 스타트업이 바로 lean 스타트업이다

이 분야에서 일하면 ‘lean 스타트업’ 이나 ‘lean 방식’ 이란 말을 굉장히 자주 듣는다. 솔직히 나도 좋아하는 말이고 Eric Ries의 책 The Lean Startup을 처음 읽었을때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출간된지 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린 방식’에 대해서 강연하고 컨설팅하면서 먹고 사는 분들이 있으니 정말 대단한 방법론이다.

나는 아직도 모든 스타트업들한테 무조건 ‘lean’ 하게 회사를 운영하라고 하지만 이들한테 듣기 싫은건, “린 스타트업 방식에 위배됩니다.” 라는 말이다. 오랜 고민 후 뭔가 하려고 했는데, 책 또는 관련된 기사나 논문을 읽어보니 본인들이 생각하는 바가 린 스타트업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고 계속 남들이 린 방식에 대해서 정의해 놓은 틀에 본인의 사고와 방법을 끼워맞추려는 창업가들을 가끔씩 본다.

이들한테 나는 항상 역으로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린 스타트업이 뭔데?” 라고 묻는다. 린 스타트업 공식이란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대부분 이론과 내용이 그렇듯이 에릭 리스가 ‘린 방식’을 발명한건 아니다. 이미 수 십년 동안 창업가들이 실행하는 걸 잘 관찰한 결과를 구체적, 논리적, 분석적으로 설명한거다. 내가 생각하는 린 방식은 별거 없다. 비용을 최대한 아끼고,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십분 활용하면서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하고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는거다. 더 간단히 말하면 그냥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하기’ 다. 이는 대부분의 벤처인들이 이미 매일 고민하고 몸소 실행하는 방법이자,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이 린 한지, 린 하지 않은지 고민하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정답이 없는 스타트업 세계에서 나를 굳이 린 방식이라는 틀에 맞출 필요는 없다. 돈 아끼고, 열심히 일하고, 조금씩 발전한다면 당신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이 바로 린 스타트업이고, 그게 바로 린 방식이다.

타협하면 안 되는 4가지

no compromise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인생의 다양한 면을 경험하는 거와 비슷하다.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자, 타협의 연속이기도 하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세상이 내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스타트업도 여러 가지 상황을 봐가면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므로 가끔은 타협을 해야 한다.

하지만 –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내 경험과 생각에 의하면 제품, 채용, 숫자와 현금흐름이다.

1/제품 – 좋은 제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제품을 출시했는데 예상보다 냉담한 시장의 반응, 투자자들의 무관심, 현저하게 저조한 사용률 등, 이 흔한 문제들은 마케팅을 잘 못 해서가 아니다. 제품이 후졌기 때문이다. 제품을 제대로 만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많은 경우, 스타트업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핑계로 제품의 완성도에 대해서 타협하는 창업팀을 본다. 원래 의도했던 기능을 구현하려면 6개월이 더 걸리고, 더 많은 개발인력이 필요하므로 “일단 이 정도만 해놓고 출시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라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위안하면서 출시를 강행한다. 하지만,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실패다. 그리고 그나마 몇 안 되었던 초기 사용자들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B급 제품을 사용하면서 이미 좋지 않은 사용자 경험을 했기 때문에 회사와 제품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떠난다. 이들을 다시 부르는 건 쉽지 않다.
사진을 올리면 비율이 깨져서 매우 보기 싫은 서비스가 있었다. 창업팀에게 물어보니, 사진 올리는 기능 자체는 작동하니 – 그래서 MVP를 만들었으니 – 비율 깨지는 건 일단 사용자 피드백을 받은 후에 고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건 잘못된 접근 방법이다. 일단 이들은 MVP의 정의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 그리고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돈을 버는 제품을 만드는 건 디테일이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제품의 완성도와 타협하면 안 된다. 원래 의도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솔직히 이렇게 만들어서 출시해도 잘 안 될 확률이 90%이다. 출시가 늦어져도 상관없다. 출시가 늦어지는 게, 이상한 제품을 조기 출시했다가 다시는 이 바닥에서 명함을 못 내미는 거 보다는 낫다.

2/채용 – 항상 강조하는 거지만,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team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 솔직히 아무도 모르는 가난한 스타트업이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능력 있는 개발자들은 돈 많이 주는 회사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데 굳이 미래가 불투명하고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스타트업에 올 이유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창업가는 시간이 갈수록 인재채용의 기준을 낮추고, 결국 적당한 수준만 되면 아무나 채용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개발자를 채용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그래, 우리 형편에 이 정도가 어디냐” 하면서 스스로와 타협한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채용할 때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 가능성이 보이니 일단 같이 일하면서 모자란 20%는 우리가 채워줘야지 하는 접근도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고 즉시 회사에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동의하지 않지만, 나는 스타트업 최초 10명의 멤버들을 채용함에서는 100% 맘에 들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100% 맘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하면, 타협하지 말고 그냥 다른 기존 멤버들이 조금 더 열심히 일하는 게 맞다. 돈 없는 스타트업의 최고의 채용 전략은 100% 맘에 들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는 거다.

3/숫자 – 출시 후 지속해서 제품을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다양한 지표를 모니터링 해야 한다. 어떤 숫자가 중요한지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funnel을 체계적으로, 정량적으로, 그리고 미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나도 뮤직쉐이크 시절 여러 가지 숫자들을 관리했는데 가끔 이 수치들과 타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매주, 그리고 매달 목표 수치들이 있는데 약간 모자라지만 거의 비슷하면 목표달성이라고 자신을 격려한 적이 몇 번 있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왜냐하면, 조금씩 모자란 숫자들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그렇다고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제품과는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이다. 지표들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숫자들이 미달이라면, 왜 그런지 정확한 원인을 밝혀야 한다. 숫자와 타협을 하면 이런 원인분석 과정을 건너뛰는데 이는 서비스 개선을 방해하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4/현금흐름 – 위에서 말한 3가지 정말 중요하지만, 현금흐름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기 스타트업은 무조건 비용을 아껴야 한다. 사장들은 매일 1원 수준까지 미시적으로 비용을 관리해야 한다. 솔직히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사장이 신경 쓸 일이 매우 많다. 창업 초기에는 모든 걸 해야 하는데 일일이 영수증 관리하고 청구서 확인하는 게 은근히 귀찮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다. 그런데 귀찮다고 청구서 내역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미 처리한 걸 다시 내는 경우도 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 작은 비용들이 쌓이면 큰 비용이 되고 “내야 하는 거니까 청구되었겠지.”라는 사고방식이 머리에 굳어지기 시작하면 매출이 없는 스타트업의 죽음이 시작된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개인이나 기업이나 파산한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스타트업들은 존재하는 첫날부터 경제학의 이 기본 법칙을 위배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현금흐름 관리에 있어서 절대로 타협하면 안 된다.

한국에서도 꽤 잘 알려진 Y Combinator의 Kevin Hale이 얼마 전에 브라운대학에서 이와 비슷한 조언을 했다.

숫자에 집중해라. 비용을 최소화하고, 집을 사무실로 사용해라. 사람들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들과 대화해라.

타협은 유연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연성은 일반적으로는 좋다. 하지만 제품, 채용, 숫자, 현금흐름과는 타협하면 안 된다. 창업 초기만큼은.

<이미지 출처 = https://chicagoagentmagazine.com/what-will-homebuyers-compromise-on-in-2013/>

용기의 재정의

courage지난 몇 년 동안 책을 많이 안 읽었는데 한 6개월 전부터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말콤글래드웰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처럼 동일한 책이지만 과거에 경험이나 지식이 별로 없을 때랑 지금이랑은 읽었을 때 많은 차이가 났다. 책의 내용은 그대로지만, 내 지식이 조금 더 깊어졌고 내용을 흡수하는 능력이 질적으로 향상해서인지 더 많이 공감했다. 현재 글래드웰의 David and Goliath 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굉장히 흐뭇하게 읽고 있다. 챕터 하나하나가 주옥같고, 통찰력이 넘치는 책인 거 같다.

이 책에 ‘용기’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글래드웰은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2차 대전 직전, 영국 정부는 독일군이 맘먹고 런던에 대해 공중폭격을 시작하면 영국이 완전히 초토화될 거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윈스턴 처칠 수상은 이런 재난이 발생하면 60만 명의 사망자와 120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할 것이며, 런던 시민 약 400만 명이 도심 외곽으로 피난 갈 것으로 예측했다. 폭격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는 극에 달할 것이기 때문에 영국은 런던 외곽에 정신병원까지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1940년 가을 독일군은 실제로 런던에 엄청난 공중폭격을 하기 시작했다. 57일 연속 폭격을 시작으로 그 이후 8개월 동안 런던에 수 만개의 폭탄을 퍼 부었다. 피해는 참혹했다 – 4만 명 사망, 6만 4,000명 부상, 100만 개의 빌딩 파괴. 영국 정부가 우려하던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우려하던 런던 시민들의 반응에 대한 예측만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려했던 런던 시민들의 극심한 공포와 공황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외곽에 준비했던 정신병원들을 찾는 사람들도 없었다. 폭격이 지속되고 그 강도는 더욱 심해졌지만, 오히려 런던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고 더욱더 평온을 유지했다. 그들은 오히려 폭격에 대해 덤덤해지고 별거 아니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이고,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이런 예상과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을까? 2차 대전이 끝난 후 캐나다 정신과 의사 맥커디는 이 현상을 연구하면서, 폭탄이 떨어진 피해지역의 시민들을 세 분류로 구분해봤다.

첫 번째는 사망자들이다. 당연한 거지만 이들한테 이 폭격의 경험은 매우 참혹하다(이미 죽어서 그 참혹함을 남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두 번째는 ‘간발의 차이(=near miss)’ 라고 한다. 이들은 폭탄이 명중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상응한 피해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사람들이다. 폭탄이 떨어지는 걸 목격하고, 파괴력을 직접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죽는 걸 목격한다.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고 본 건 미래에 지울 수 없는 큰 쇼크로 남는다.

가장 중요한, 그리고 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세 번째 부류는 ‘큰 차이(=remote miss)’ 이다. 이들은 사이렌 소리를 듣고, 공중에 떠 있는 폭격기들을 목격하고,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폭탄은 멀리 떨어져서 이 ‘리모트미스’ 군은 그 어떤 피해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한테 이 무시무시한 상황은 완전 반대의 작용을 한다. 이미 폭격을 생존했기 때문에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폭격이 일어나면 폭격과 연관되는 내부 감정은 극심한 공포가 아닌 ‘불사신의 맛이 약간 가미된 흥분감’ 과도 같다고 한다.

독일군의 폭격이 시작되기 전에는 공포에 떨던 런던 시민들이었지만 폭격이 시작되고 끝나고, 다시 시작되고 끝나고를 반복하면서 near miss보다는 remote miss들이 많이 생존했다. 그리고 이들은 “야, 이거 별거 아니네. 폭탄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용기가 생긴 것이다.

글래드웰은 ‘용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재정의) 한다.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용감하게 만드는 용기는 선천적인 게 아니다. 굉장히 힘든 상황을 극복했는데, 되돌아보니 이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느낄 때, 그때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게 용기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다. 솔직히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창업해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거 자체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도 무섭지만, 그 길을 한발씩 움직일 때마다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결정이 창업가와 그의 팀원들을 어떤 힘든 상황으로 몰아갈지 항상 두렵다. 대부분의 결정은 틀리고, 초기 스타트업은 휘청거릴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죽을 각오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서 생존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결정을 더욱더 많이 할수록, 그리고 계속 죽지 않고 살아남을수록 새로운 용기가 생긴다. 왜냐하면, 망할 거 같았지만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리고 그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죽을 거 같았는데 살아남았구나.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때마다 창업가는 더욱더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이 프레임워크를 개인적인 경험에 적용해보면 공감한다. 전에 몇 번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뮤직쉐이크 시절 2009년은 나한테 – 당시에는 –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12개월 동안 수입 한 푼 없이 버텼는데 그땐 정말 죽을 거 같았지만, 막상 그 힘든 상황을 극복한 후에 내가 느낀 건 마치 내가 불사신이라도 된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 물가 높은 LA에서도 3 가족이(=사람 2명과 개 한마리) 1년 동안 수입 한 푼 없이 살았는데, 앞으로 내가 뭘 못하겠냐는 생각도 했던 거 같다. 글래드웰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 힘든 상황을 극복했기 때문에 그 상황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고, 이로 인해서 용기가 생긴 것이다. 지금도 나는 계속 남들이 보면 참 쉽지 않은 새로운 일들을 벌이고 있는데, 2009년을 버티면서 습득한 용기 때문인지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 또한 주워 담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용기를 습득하려면 힘든 상황들을 많이 극복해야 한다. 물론, 그런 상황 앞에서 무릎 꿇고 무너지면 안 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젊었을 때부터 과감한 결정을 하고 힘든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극복하는 걸 권장한다. 그래야지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더 큰 용기를 습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near miss를 경험해서 큰 충격을 받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회복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힘든 결정을 하고 힘든 상황을 경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20대 초반에 위에서 말한 뮤직쉐이크 상황을 경험했다면 지금쯤 더 큰 용기가 생겨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zkIWHh5Xh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