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큰 비전과 야망을 갖고, 잘 다니던 대기업에서 퇴사하고 창업했는데,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너무 초라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2012년도부터 투자를 시작했고, 당시에 투자한 회사는 대부분 망하거나 엑싯을 했지만, 아직도 꾸준히 사업을 영위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투자한 회사 중 이제 사업한 지 거의 10년이 되는 곳들도 생각보다 많다. 최근에 이렇게 사업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되는 투자사 대표님들을 몇 분 만났는데 이분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느낀 점들, 그리고 이들에게 내가 드렸던 조언과 생각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보고 싶다. 참고로, 모두 따로 만났는데 괴로워하는 점들이 비슷했고 대부분 자존감과 자신감에 대한 고민, 그리고 사업의 존재 이유에 대해 스스로 의문하고 있었다.
창업한 지 10년 됐는데, 사업이 잘 되는 분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성장도 좋고, 투자도 많이 받았고, 돈도 잘 버는 오래된 창업가분들은 사업을 더 키우고 싶어 하고, 제품, 매출, 사람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있지만, 이들은 그래도 사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걱정은 안 한다. 그리고 사업이 너무 안되는 분들에게도 해당 사항이 없다. 이들은 그냥 폐업하면 된다. 누가 봐도 잘 안되는 사업이라서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경우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들은 10년 사업을 했고, 수억 ~ 50억 원 정도 매출을 만들어서 회사의 손익은 어느 정도 맞췄지만, 성장의 기울기 자체는 별로 가파르지 않는, 그런 창업가들이다. 이들이 사업을 시작했을 땐, 5년 안으로 수천억 원 대의 기업, 또는 유니콘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시간이 가면서 나름 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고객이 돈을 내는 제품을 만들었고, 매출도 발생하지만, 이 속도로 가면 그냥 근근이 먹고 사는 중소기업이 될 것 같은 게 거의 확실하다는 걸 본인들도 알고 있다. 저돌적이고 경쟁심이 강한 대부분의 창업가에겐 이런 현실만큼 괴로운 건 없을 것이다.
특히 남과 비교당하고 비교하기 좋아하는 한국은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나랑 10년 전에 같이 창업한 친구는 이미 10조 원짜리 기업을 만들었거나, 나보다 훨씬 더 늦게 나랑 비슷한 사업을 시작한 다른 어린 창업가는 이미 우리보다 투자도 많이 받았고 성장도 가파르다면 자신을 계속 남들과 비교하면서 소위 말하는 현타를 매일 느낀다.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매일매일 하면서 방황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매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사업하는 대표들이 우리 포트폴리오에 꽤 많다. 이 중 어떤 분은 그동안 10년 했던 사업과는 상관없는 다른 제품을 만들면서 테스팅하고 있었다. AI와 관련된 제품이었는데, 내가 봤을 땐 경쟁력이 없고 그동안 이 회사가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서 성공 확률이 낮다고 생각했다. 굳이 왜 이 시점에 이런 제품을 만드는지 이야기해 보니, 그 고민의 근원은 위에서 말했던 오랫동안 더딘 성장으로 인한 불안감이었다.
성장이 너무 더뎌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을 쳤고, 주위를 돌아보니 1년도 안 된 AI 회사의 기업가치가 10년 사업한 본인의 회사보다 수십 배나 높다는 걸 보고 본인도 빨리 뭔가 다른 걸 해서 더 성장해야겠다는 급한 마음 때문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AI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바이브 코딩을 해보니까 껍데기는 어느 정도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이 분야를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뭔가 대박 나는 제품이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은 처음에 이걸 왜 하는지 물어봤을 때, 원래 본인이 창업했을 때의 비전이 이런 거였고, 지금 만드는 제품은 그 비전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디딤돌이고, 요샌 AI 툴이 워낙 잘 나와서 드디어 원래 하고 싶었던 그 제품을 만든다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했다. 계속 질문하고 대화를 해보니, 결국엔 너무 오랫동안 정체된 사업을 하다 보니 불안하고, 자존감 떨어지고, 답답해서 그냥 다른 돌파구를 찾다 AI가 대세이니 이 파도를 좀 타서 나도 돈 좀 벌어보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10년 동안 뚝심 있게 매출을 만들고 손익도 맞춘 분이 왜 이런 외부 노이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의아해했지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도 이렇게 더디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10년 운영하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분에게 두 가지 생각을 말씀드렸다.
일단 이 시점에서 큰 피봇을 하려면, 정말 잘 피봇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회사의 성장은 대표이사의 성에 안 차지만,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있고 현재 회사의 현금 창출 능력은 전 직원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굳이 이걸 버리고 다른 걸 하는 이유가 뭔지 잘 고민해 보라고 했다. 그냥 AI로 누구나 다 모든 걸 만들 수 있기 때문에 – 즉, 그냥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건지 – 아니면 정말로 이걸 우리가 해야 하는 거라서 하는 건지, 이 두 개를 잘 구분해 보라고 했다.
두번째는 – 그리고 나는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결국엔 누가 더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는진 결승점에 도달해서 시합이 끝난 후에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10년째 마라톤을 하고 있고, 아직 결승선은 보이지도 않지만, 달리기할 땐 순위가 계속 바뀔 것이다. 어떤 회사는 첫 10km는 혼자서 독주하다가 넘어져서 탈락할 수도 있고, 어떤 회사는 거북이 같이 느리지만 마지막 5km를 미친 듯이 달려서 1등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회사는 결승점 바로 앞에서 쥐가 나서 꼬꾸라질 수도 있다. 맘에 안 드는 성장을 하고 있지만, 어쨌든 우리 회사는 우리가 만든 제품을 1년에 10억 원 이상 팔고 있는, 솔직히 굉장히 자랑스러운 회사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 분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라 내 진심이었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기업가치가 엄청 높은 회사도 있지만, 솔직히 위에서 말한 회사처럼 흑자를 만드는 회사는 우리의 300개 포트폴리오 중 내가 머릿속으로 다 기억할 정도로 그 수가 적어서, 본인은 회사의 성장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내가 봤을 땐 대단한 창업가이다.
이런 상황에 부닥친 창업가들이 꽤 있다. 회사는 굴러가는데 엄청난 성장은 못 하고 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대단한 기업가치에 큰 투자를 받을 상황은 아니고,,,그리고 이 고민과 생각을 매일 하다 보니 공황 상태에 빠진 창업가들을 요새 많이 본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잘 뛰었으면 결승점까지 잘 뛰어서 시합을 끝내보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사업은 결국 돈을 벌어서 흑자를 만드는 것이고, 결국엔 돈 버는 놈이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 엄청난 마이너스를 만들면서 밸류에이션만 키우고 투자만 받는 사업은 결승점에 도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달려가는것이….. 저도 러닝을 즐기기에 마라톤대회를 자주나가지만, 자신의 PR을 갱신할수없어, 코스를 이탈하고/주행을 포기하는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마라톤대회인데, 자신의 PR을 갱신할 수 없어서 느끼는 실망감에 이탈하리라고 짐작합니다. 현재 스타트업에서 창업해서 나아가는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른기업들은 돈을 엄청나게 버는데, 왜 난 이렇게 밖에 못버는가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는게 어찌보면 사람이라면 충분히 느낄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늘 배대표님이 말씀하시길…오랫동안 살아남는놈이 가장 강한놈이라고.. 일희일비/조급하지말고 계속 한길 계속 파는 그런 대표가 되보려고 노력합니다.
글 속의 대표님이 마치 저와 같다고 느껴지네요…
대표님 글에 자주 공감을 하는데 댓글은 아주 가끔 남기게 되네요.. 저도 어느덧 초기 스타트업의 단계를 지나면서 많은 고민을 하는 과정이라 그런지 깊은 공감을 하는 글입니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성장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사업의 본질은 ‘지속 가능한’ 이라는 수식어를 반드시 더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몇 년 하고 빠르게 돈벌고 손터는 것이 목적인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놓고 생각을 해본다면 돈을 버는 것 그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투자자 친화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는데, 최근에는 본질을 바라봐주는 분들로부터 작지않은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건강한 성장을 만드는데 애쓰고 있습니다.
사업은 시한폭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점.. 그에 공감하는 기업가들이 보다 많아지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더욱 잘 이루어지는 생태계를 소망합니다.
사업은 시한폭탄을 돌리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가치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말에 울림이 있네요.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 부탁드릴게요!
약해지는 게 강해지는 것이다
[…] 벤처 투자 시장이 양극화되면서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던 창업가들의 현타는 더 자주, 그리고 더 크게 오고 있는데, 이게 […]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표님 같은 마인드의 투자자가 많아지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러기는 너무 어렵겠지만……
다들 이렇게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분들도 많습니다 🙂
지금 제 상황과 비슷한 대표님들도 많으시군요. 저도 계속 고민을 하는 부분인데, 대표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그리고 긍정적인 메세지도 전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결국 끝까지 가봐야지 알 수 있습니다. 계속 할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있으면, 끝까지 달려보시길 권장드려요.
와우, 지금 제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는것 같아요. 매출은 몇년째 제자리고, 그나마 흑자 전환해서 근근히 먹고 살지만, 회사의 역량이 도저히 J커브는 만들수 없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내 모습….
정도를 걷는거네요. 답은 멀리있는게 아닌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