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 초에 나는 스탠포드 대학원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제 1차 벤처 거품이 터지기 바로 직전이었는데, 이 때는 사업계획서 만으로도 펀딩을 받는 회사들이 주위에 꽤 있었다. 워드로 만든 50장 – 100장 짜리 사업계획서를 읽다보면 이 회사가 정말 잘 될 거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자세하고 잘 만들어진 자료들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이런 소설같은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투자자들을 만나는 창업가들은 거의 없다.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말 보다는 행동이 더 효과적이라서 다들 실제 제품을 개발하고 고객을 만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고, 이렇게 하는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비즈니스를 누가 하고 있고, 어떤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어떻게 현존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할지에 대한 간략한 자료는 준비하는게 좋다. 나도 지겹도록 회사소개서들을 많이 보는데, 한정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비즈니스들을 보다보니 글씨보다는 그림이나 수치들을 선호한다. 창업을 하고 제품을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시장에서 실행을 해 본 팀이라면 누구나 다 기본적인 수치를 갖고 있을 것이다. 모바일 제품이라면 DAU, MAU, 체류시간 등과 같은 수치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웹서비스라면 UV, PV, 리텐션, 재방문율 등의 수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매출이나 ARPU와 같은 수치는 기본이다.
소개자료에 이런 수치들이 들어가 있다면,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 각 수치에 대한 정의를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수치들의 기본적인 의미는 정의되어 있지만, 운영하는 서비스와 회사의 기준들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나기 때문이다. 가령, 50%의 재방문율이라는 수치가 나한테 크게 와 닿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전체 유저의 절반이 매일 재방문을 하는건지,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방문을 하는건지, 아니면 일 년에 한 번 이상 방문을 하는건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 사용자의 절반이 매일 재방문을 하는 제품이라면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한 달에 두 번 방문을 하는 거라면…뭐,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매출도 마찬가지이다. 쿠팡이나 지마켓과 같이 다른 업체들이 입점해서 물건을 판매하는 오픈마켓의 경우, 어떤 회사들은 전체 ‘거래액’을 ‘매출’로 잡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매출이 조 단위가 나온다. 하지만, ‘판매수수료’를 ‘매출’로 잡는 회사들은 매출이 수 백억원 또는 수 천억원 단위로 잡힌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런 수치를 말할때는 정확한 정의도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또 한가지는, 회사와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서 그 비즈니스한테 중요한 수치들이 다를텐데, 이 또한 창업가들이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같은 전자상거래 회사라도 비전과 카테고리에 따라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수치들은 다를 수 있다. 모든 걸 판매하고 규모의 성장을 중요시 하는 전자상거래 업체라면 전체거래액이나 절대적인 사용자 수를 우선시 할 수 있지만, 특이하고 한정적인 제품만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업체한테는 절대적인 사용자 수 보다는 – 어차피, 비싸고 특이한 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의 수는 많지 않으니까 – 사용자 당 평균 구매액이나 재구매율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창업가들은 회사 설립을 하자마자 우리 회사한테 가장 중요한 수치들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 수치들을 종교와도 같이 열심히 측정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halogensoftware.com/ae/learn/centers-of-excellence/hr-metr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