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악셀러레이터 프라이머는 일 년에 두 번의 데모데이를 개최한다. 10~15개 회사가 5분 발표를 하는데, 데모데이가 끝나면 항상 참석자들에게 듣는 말은 회사들이 모두 발표를 너무나 잘 한다는 것이다. 어쩜 5분 동안 본인들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 저렇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모두 다 감탄한다. 원래 발표를 잘하는 창업가들도 많지만, 실은 프라이머 회사들의 발표는 대부분 엄청난 연습과 리허설을 통해서 다듬어지고 만들어지는 훌륭한 무대 공연이다.
대표 전원이 나를 포함한 한국에 있는 프라이머의 액팅 파트너분들과 약 4주에 걸쳐 세 번의 데모데이 리허설을 한다. 나도 이제 거의 8년째 프라이머 데모데이 리허설을 같이 준비하고 있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첫 번째 리허설 이후엔 이 발표 실력으로 과연 데모데이를 할 수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자료도 못 만들었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발표를 들은 후에 오히려 이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정도로 임팩트도 없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또 희한한 건, 매우 직설적이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열심히 제공하면 두 번째 리허설에서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리허설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사업으로, 새로운 발표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두가 무대 체질로 바뀌고, 실제 데모데이에서는 대부분 완벽한 피칭을 한다. 사람의 능력엔 한계가 없고, 연습을 열심히 하면 무조건 완벽한 발표를 할 수 있다. 그 누구든.
첫 번째 리허설 이후에 내가 모든 창업가들에게 드리는 공통 피드백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업에 대해 설명을 하지 말고, 기-승-전-결이 있는 매우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하라고 한다. 두 번째는 딱딱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세 번째는 본인들이 청중이라고 생각하고, 본인들이 듣고 싶은 발표를 하라고 한다.
결국 위 세 가지 피드백 모두 사업가/창업가가 아니라 이야기꾼이 돼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청중에게 하라는 것이다. 솔직히 사업 설명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딱딱하고 심각하고 재미가 없는 내용이 더 많다. 우리도 하루에 평균 3~5개의 미팅을 하는데, 정말 재미없는 창업가 5명과 만나는 날은 집에 갈 때 매우 피곤하다. 어떤 분은 미팅 시작 5분 만에 그냥 미팅룸을 나가고 싶을 정도로 에너지도 없고, 딱딱하고, 듣는 사람과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못 한다. 보통 이런 미팅을 하면 내 이야기에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리액션도 확인하고, 상대방의 눈빛도 보면서 분위기를 조절하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런 건 전혀 없고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이런 분과 이야기하면 미팅 시간 내내 집중이 잘 안되고, 끝난 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반면에 어떤 창업가들은 타고난 이야기꾼들이다. 이런 분들은 제품이 없어도, 매출이 없어도, 아직 뭐 하나 제대로 못 만들었어도, 1시간이라는 미팅 시간이 5분 같이 느껴질 정도로 스토리텔링을 완벽하게 한다. 창업가 본인은 어떤 사람인지, 왜 이 사업을 하는지, 마치 잘 짜인 단편소설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목소리의 톤앤매너도 너무 좋고, 이런 이야기꾼들이 가장 잘하는 건, 본인의 말에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어떤 리액션을 보이는지 잘 관찰한 후에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간다. 표정, 제스처, 아이 컨택트, 이 모든 걸 자연스럽게 한다. 이런 창업가를 하루에 한 분만 만나도 그날 집에 갈 땐 기분이 좋다.
물론, 모든 이야기꾼이 좋은 창업가나 사업가는 아니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이 반대는 사실이다. 내가 아는 모든 좋은 창업가와 사업가는 괜찮은 이야기꾼이다. 이 세상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투자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확률이 높아진다.
난 원래 재미없는 사람인데 어떡하냐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 또한 연습하면 된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좋은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