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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에 대한 상반된 견해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사람의 힘을 과소평가한다는 내용의 을 전에 썼다. 반면에 시장의 크기, 현재 사업의 수치, 기술의 난이도를 과대평가한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번 포스팅은 비슷한 내용이면서도 반대 내용의 글이다.

우리 같은 초기 VC와 시리즈 B 이후의 투자를 하는 late stage VC가 회사를 검토할 때 보는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아마도 가장 큰 차이점은 한쪽은 미래를 더 많이 보고, 한쪽은 현실을 더 많이 본다는 점일 것이다.

초기 투자자는 오늘의 창업자와 이분이 하는 사업이 5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고, 어떤 분야로 확장할 가능성이 있을지 열심히 상상해 보고, 그려보고, 그런 큰 그림을 창업팀이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투자를 집행한다. 우리가 하는 투자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예를 들면, 지금 이 회사가 하는 사업은 10대 여성만을 위한 아이템이지만, 결국엔 한국의 모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확장할 것이고, 그 이후엔 글로벌 시장으로도 진출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식의 논리로 투자한다.

반면에,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비즈니스 모델도 명확하고 매출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 이 회사를 검토하는 투자자는 너무 먼 미래를 상상하기보단, 현재 이 회사의 상황과 수치를 기반으로 투자를 집행한다. 같은 예를 들어보면, 지금 이 회사가 하는 사업이 한국의 10대, 20대 여성을 위한 아이템이라면, 그냥 현재의 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이 회사를 평가하고 투자 기준에 부합하면 투자를 진행한다. 물론, 모든 투자자들은 미래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고 투자하지만, 투자 단계에 따라서 미래의 가능성이 투자 결정의 기준에 기여하는 정도는 매우 다르다.

최근에 스트롱 내부 워크숍에서 했던 대화인데, 이렇게 초기 스타트업의 확장 가능성만을 보고 투자하는 전략의 타율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확한 과거 데이터를 깊이 있게 분석하진 못했고, 실은 이런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우리가 13년 동안 투자하면서 봤던 우리의 투자사, 그리고 우리의 투자사는 아니지만, 만났고, 계속 모니터링 했던 스타트업을 통한 간접 경험만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이렇게 작지만, 5년 후엔 훨씬 더 큰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다. 이미 미국의 글로벌 벤치마크 회사는 그렇게 크게 확장했다.”라는 생각과 기대를 갖고 투자한 회사는 대부분 충분히 확장하지 못했다.

“시장이 너무 작은데,,,그리고 아무리 그 시장을 50% 이상 먹어도 역시 큰 규모가 되긴 힘들어.”라고 판단해서 투자하지 않은 회사는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분야로 확장해서 엄청나게 큰 회사가 됐다.

왜 어떤 회사는 훨씬 더 커질 수 있는데 확장하지 못하고, 왜 어떤 회사는 이론적으론 더 커질 수 없는데 확장했을까? 결국엔, 이 글의 시작에서 언급한 ‘사람’이 핵심인 것 같다.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한 경우, 이 사람이 확장이 불가능한 시장을 확장했다. 반면에 사람을 너무 과대평가한 경우, 이 사람이 확장이 확실한 시장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앞으로 이런 실수를 아예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량적인 분석보단 정성적인 판단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겠다. 결국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과 초기 창업가들을 더욱더 깊게 파고 들어가서 연구하면 할수록 과학과 수치 보단, 느낌, 감, 그리고 강한 확신이 더 중요하다는 걸 매일 매일 느끼고 있다.

큰 팔로잉, 큰 책임

Humane이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있다. Humane AI Pin이라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올해 CES에서 꽤 주목받은 제품이다. 애플에서 아이폰 작업에 참여했던 부부 엔지니어가 공동창업했고, 꽤 유명한 투자자들에게 약 3,30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은 미래가 기대되는 스타트업이다.이었다. 나도 이 회사의 제품을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신기했고, 이들이 그리는 화면이 필요 없는 AI 시대가 어쩌면 미래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우리 팀 슬랙에서 관련 내용을 공유할 정도로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Humane AI Pin에 대한 사용 후기를 한 유튜버가 올렸다. 그냥 유튜버가 아니라 1,800만 팔로워가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자제품 리뷰어 MKBHD(Marques Brownlee)의 제품 후기였는데, 이 제품에 대한 한 줄 평은 “the worst product I’ve ever reviewed(지금까지 사용해 본 제품 중 최악)”였다.

1,800만 명이 팔로잉하는 유튜버가 이런 리뷰를 올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진 대략 짐작은 했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일단 MKBHD에게 이 제품을 리뷰해달라고 한 Humane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이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해고됐고, 3,300억 원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25분짜리 영상 때문에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고, 어쩌면 정말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관련 내용이 트위터와 레딧을 도배하고 있는데,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한 그룹은 원래 제품 리뷰라는 건 이렇게 객관적으로 하는 게 맞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지 사용해 봤던 제품 중 가장 좋으면, 그렇게 후기를 올리는 게 맞고, 최악이면 최악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반대 그룹은 아무리 그래도 전 세계에서 가장 팔로워가 많은 유튜버가 이렇게 좋지 않은 후기를 남기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뻔히 알면서도 이런 영상을 공개한 것에 대해서 너무 무책임하다는 의견이다.

양쪽의 반응을 자세히 들어보고 읽어보면, 솔직히 둘 다 일리가 있다. 만약 나한테 개인적으로 물어본다면 나는 솔직한 리뷰는 항상 진리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이런 악평의 리뷰를 당하는 회사의 대표였다면 이 친구를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을 것 같기도 하다.

실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조금 다른 내용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라는 점이다. 공중파 방송도 아니고, 권위 있는 가전제품 매체도 아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욕하는 유튜브라는 매체에서, 공학 박사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전자제품을 만드는 사람도 아닌, 취미로 방송을 시작한 한 20대 유튜버의 25분짜리 영상 하나가 한 회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세상에서 우린 살고 있다. 우리 과거 세대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세상이다.

이런 새로운 세상에서는, 큰 팔로잉은 곧 권력이고 큰 팔로잉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팔로워들이나 이들이 팔로우하는 크리에이터나 모두 이 점을 명심하길.

과소평가, 과대평가 – 사람

이전 글에서 우리가 대부분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단기적인 변화를 과대평가하고, 기술이 가져올 장기적인 변화는 과소평가한다는 내용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봤다.

우리가 너무 과대평가하고, 너무 과소평가하는 게 또 한 가지 있다. 특히 나 같은 VC들 사이에서 자주 경험하는데, 바로 기술, 제품, 숫자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 한다는 점이다.

모든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을 검토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내 경험상, 말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돈을 집행할 땐, 사람보다 기술, 제품, 그리고 수치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결국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한 후에 투자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재 이들이 만든 기술, 제품, 그리고 매출과 같은 지표를 기반으로 투자 결정을 한다.

숫자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사람을 너무 과소평가할 때 투자자로서 범할 수 있는 큰 실수는, ‘지금’이라는 순간에만 매몰되어, 회사의 미래를 이 회사 현재의 매출,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 현재의 전략, 그리고 창업가의 현재 생각만을 기반으로 투자 결정을 하는 것이다.

현재 비즈니스 모델이 별로이고, 매출 성장이 약하고, 전략도 스케일을 만들기 어렵고, 창업가와 이야기해 봤을 때 엄청난 비전도 없는 것 같다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 회사에는 분명히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투자하지 않은 회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pass한 대부분의 회사들은 잘 안되지만, 몇몇 창업가들은 투자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엄청난 회사를 만든다. 우리도 절대로 안 될 거라고 판단했던 스타트업이 불과 5년 만에 엄청난 사업을 만드는 걸 몇 번 목격했는데, 이건 정말로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어차피 회사의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고, 잘 되는 회사와 잘 안되는 회사를 흑과 백으로 구분하는 건 어렵고, 스타트업의 성공은 실력보단 운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분명히 당시의 비즈니스모델, 수치, 전략, 창업가의 비전만으로 판단하면 잘 안될 것 같았는데, 이런 회사가 왜 크게 됐는지, 그리고 왜 우린 이 회사에 투자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엔 사람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 특히 초기 스타트업은 –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시간이 가면서 모든 게 바뀌는데, 그 변화는 창업가들이 만들어 간다. 좋은 창업가라면 절대로 안 될 사업도 되게 만들고, 나쁜 창업가라면 무조건 될 사업도 안 되게 만든다. 투자자들이 회사를 만났을 때 비즈니스 모델이 아예 없거나, 또는 별로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비즈니스 모델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시의 수치가 별볼일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별볼일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략도 마찬가지고, 창업가의 비전도 마찬가지다. 창업 초기에는 대단한 비전이 없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창업가가 항상 이렇게 비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좋은 창업가라면 이 모든 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게 내가 지금까지 느꼈던 사람의 힘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경우, 우린 현재에만 집착해서 당장의 수치를 과대평가하고, 실제 사업의 핵심인 사람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글로는 이렇게 표현했지만, 솔직히 나도 수치를 과대평가하고 사람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실은, 이 포스팅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글이다. 이렇게 글로 표현하고 남기면 앞으로는 과대평가와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몇 자 적어 봤다.

롱테일 전에 왕테일

롱테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건 아마도 Wired 잡지의 편집장 Chris Anderson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모든 제품들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틈새 상품이 중요해지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뜻하는데, 이걸 그래프로 표현하면 틈새 상품들이 마치 긴 꼬리와도 같아서 long tail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테크 업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롱테일이라는 말을 상당히 자주 사용한다.

얼마 전에 우리 투자사 중 물리적인 제품을 만들어서 이걸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D2C 기업의 창업가와 만나서 이 힘든 시기를 어떻게 잘 버틸 것인지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 한때는 이커머스와 D2C 스타트업이 활활 타오를 정도로 핫 할 때가 있었지만, 요샌 이 분야에 투자하는 VC가 거의 멸종했다 – 꼬리 이야기를 많이 했다. 롱테일, 숏테일, 팻(fat)테일, 씬(thin)테일 등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뭔가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면, 롱테일 전략은 필수다. 소수의 제품만으론 큰 매출을 만들기 어렵고,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단일 제품으로 천억 원 대의 매출을 만드는 기업도 가끔 있었지만, 공급망과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누구나 다 비슷한 제품을 훨씬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이 저렴한 제품을 경쟁사보다 더 저렴하게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단일 제품으로 천억 원대의 매출을 만드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이젠 힘들어졌다.

롱테일 전략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단일 또는 소수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면, 이 제품들에 문제가 발생해서 리콜하거나, 또는 유행이 갑자기 바뀌어서 아무도 찾지 않게 된다면, 회사를 일으켰던 이 의존도 자체가 회사를 다시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품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결국엔 다양한 제품과 SKU를 만들어서 롱테일 전략을 구사해야만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성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둘이 신나게 했다.

그런데 이 대표님에 의하면 롱테일 전략이 장기적으로 먹히려면, 그 전에 짧지만 두꺼운 왕테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수천억 원 대의 매출을 만드는 단일 제품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매출을 발생시키는 단일 제품, 즉, 이 회사를 대표하는 flagship 제품이 있어야지만, 롱테일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조금 더 물어보니까, 이 의미 있는 왕테일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롱테일 전략을 구사하려면, 여러 가지 제품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중 많은 제품이 실패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회사는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 기본 매출을 깔아주는 대표적인 단일 제품이 있으면, 삽질을 연속적으로 해도 현금을 어느 정도 확보해서 회사가 운영될 수 있다. 그러면서 게임 회사 이야기를 했는데, 넥슨이 이런 플레이를 잘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게임 업계에 있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를 텐데, 절대적인 숫자로 따지면, 넥슨이 출시한 크고 작은 게임 중 망한 게 너무나 많다고 했다. 아무리 작아도 게임 하나 출시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한데, 이런 게임들이 수없이 망해도 넥슨엔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파와 같은 대표적인 왕테일 게임들이 있기 때문에 회사가 계속 이런 실험을 하면서 롱테일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롱테일 전에 왕테일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 그리고 이건 나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 임직원들의 자신감과 연관되어 있다. 한 번이라도 베스트셀링 제품을 만들어 본 회사의 임직원들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남들이 하지 못한, 업계를 대표하는 제품을 만들었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생긴 엄청난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중무장 되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신감은 이후에 출시하는 다른 롱테일 제품들이 계속 실패해도 유지된다. 어쨌든 본인들은 남들이 다 구매하는 대표적인 제품을 만들었고, 몇 번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마인드로 계속 시도하다 보면, 결국엔 또 다른 히트 상품을 만들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엔 롱테일 전략이 중요하지만, 그 전에 더 중요한 건 왕테일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 대화를 통해서 배웠다.

오래 가는 해자

얼마 전에 돈으로 해자(垓字)를 만드는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본이 해자가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사용자를 많이 모아야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는 플랫폼과 같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는 포스팅이었다. 아마도 매크로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돈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이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고, 이게 유행이 되면 무분별한 자본의 해자는 또다시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럼,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변해도 항상 경쟁사보다 한 발 또는 두 발 앞서는 기업들은 어떻게 남의 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해자를 만들어서 차별화에 성공할까?

최근에 내가 정말 오랜만에 두 개의 미국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 한 3년 만에 사용한 듯 – 이런 지속 가능한 해자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가 미국의 ‘당근마켓’인 개인 간 중고 거래 플랫폼의 원조 Craigslist였다. 1995년에 창업했으니 이제 거의 30년 된 회사인데, 이 서비스 UI와 UX를 보면 아직도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새도 이렇게 촌스럽고 낙후된 UI를 사용하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도 매우 놀라운데, 아직도 미국에서는 절대다수가 크레익스리스트를 통해서 중고 거래를 한다는 사실은 정말 쇼킹하다. 비상장 스타트업이고 투자도 안 받았기 때문에 수치를 공개하지 않지만, 이 사이트의 MAU는 2.5억으로 알려져 있다. 당근마켓의 13배 이상의 트래픽이다. 이런 후진 UI를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매우 좋아하고, 만족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랍다.

오랜만에 이용해 본 두 번째 서비스는 eBay이다. 이베이 이야기를 하면 “누가 아직도 이베이를 사용해?”라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아직도 매달 1억 명 이상이 이베이를 애용하고 있다. 크레익스리스트와는 다른 면에서 너무 정신없는 UI와 UX의 대명사가 된 이베이지만, 아직도 매달 수억 명의 사용자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사고팔고 있다.

생각해 보면, 크레익스리스트와 이베이만큼 겉으로 보면 단순하고 시장이 큰 비즈니스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무수히 많은 경쟁사들이 등장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비슷한 플랫폼과 서비스가 전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새로운 회사가 돈을 아무리 써도 이 두 회사가 만든 견고한 해자를 무너뜨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시장과 고객의 오래된 신뢰를 기반으로 해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수십 년 동안 수억 ~ 수십억 명의 고객을 상대하면서 신규 경쟁사들은 경험하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하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했고,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양한 이슈를 개선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고객 한 명 한 명의 신뢰를 얻었고, 고객 한 명 한 명의 신뢰가 시장의 신뢰로 발전하면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렇게 신뢰를 기반을 만들어진 해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으로 만드는 해자는 상당히 무섭고 위협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단단한 해자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시장의 신뢰와 고객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런 신뢰는 하루 만에 만들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product iteration과 가설 검증을 해야 하고, 아주 작은 디테일에 신경 쓰면서, 아주 작은 것들을 잘 챙겨야 한다. 이런 작은 접점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누적되면 돈의 핵폭탄을 투척해도 무너지지 않은 해자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