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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유지하기

나는 차가 없다. 미국 서부에서는 차가 없으면 이동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서 미국 살 때는 정말 운전을 많이 했는데, 원래 운전하는 걸 싫어하고, 서울은 대중교통과 택시 인프라가 워낙 좋아서, 이제 대부분의 이동은 택시, 공유 킥보드, 그리고 대중교통으로 한다.

타다 이동 서비스가 아마 2018년도 하반기에 출시됐는데, 나는 이 서비스가 나오자마자 이용했고, 지금도 거의 매일 이용하는, 아주 오래된 고객이다. 아마도 타다 고객리스트를 뽑아보면 이용 빈도 기준으로는 내가 상위 15%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타다가 처음 출시됐을 땐 정말 획기적이었다. 당시에 내가 한국 택시와 택시 기사들에 대해 불만이 상당히 많았고, 뭔가 새로운 이동 수단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다다랐을 때인데, 초기 타다 서비스는 이런 나의 모든 불만을 잠식하면서 내가 모빌리티 수단에 대해 원하는 모든 걸 제공 했다.

더럽고 냄새나는 실내, 멀미 날 정도의 급출발과 급정차, 승차 거부, 안전벨트 미착용, 귀가 아플 정도의 아무말 대잔치 등이 당시 내가 택시를 탈 때마다 나를 짜증 나게 했던 불편함이었다. 내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보통 이상으로 좀 까칠하고 예민하긴 하지만, 운전을 업으로 하는 분들이 고객의 안전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일반인보다 운전을 못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나타난 타다는 초반에는 나에게 감동을 주기까지 했다. 일반 택시보다 비쌌지만, 이 가격 차이에 대한 지불 의향이 나에게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타다 서비스가 시장에 나온 지 7년밖에 안 되는 현시점에서 나는 이제 타다를 그만 탈지 고민 중이다. 그동안 가격은 오히려 더 올랐는데 서비스는 정말 바닥으로 떨어져서 타다 넥스트의 경우 차만 크지, 일반 택시랑 똑같은 카테고리로 하락했다고 생각한다. 승차 이후 차 문이 열린 상태로 그냥 출발하고, 급출발과 급정차는 이제 너무 흔하고, 차량 내부도 냄새나고 지저분하여졌다. 굳이 돈을 더 많이 내고 계속 이용해야 할지 요새 좀 고민 중이다. 이제 타다에서 하차하자마자 ‘이 기사님 30일 동안 안 만나기’ 박스를 체크하는 것도 지쳤고, 정말로 이런 내 후기와 피드백이 서비스에 반영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 전반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돌아와 보자. 서비스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 어떻게 하면 회사는 사용자가 많아지고 제품이 스케일 하면서 초반의 높은 품질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나도 제품을 만들어서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작게 시작했는데 이제 국민 브랜드가 된 우리 투자사의 성장 과정을 옆에서 봤던 경험을 잘 복기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포인트들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단 전사적인 개밥먹기를 매일 해야 한다. 내가 초반에 타다의 예찬론자가 됐던 이유도 아마 이 회사의 창업가분들과 초기 멤버분들이 매일 직접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관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타다뿐만이 아니라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초반에는, 이 제품을 직접 만든 분들이 매일 사용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직접 개선하기 때문에 시장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돈이 벌리기 시작하고, 고객들이 많아지고,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모두 바빠지면서, 본인들이 만드는 서비스를 직접 사용해 보는 이 개밥 먹기 문화는 점차 없어지거나, 일부 조직원들만 하게 된다. 이러면서 현장으로부터 멀어지고, 서비스는 망가지는 것이다. 전 직원들, 특히 임원들이 본인들이 만드는 서비스를 매일 사용하면 품질이 웬만하면 떨어질 수가 없다.

계속 타다 이야기만 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요샌 탈 때마다 차량의 청결 상태, 기사의 손님 응대 태도, 운전의 안전 기준 등이 너무 차이가 난다. 초반에는 모든 차가 깨끗했고, 기사의 태도도 비슷했고, 타면 항상 물어보는 표준 질문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런 게 잘 안 지켜지면서 표준 운용 절차라는 게 없어진 것 같다. 내 기억으론 서비스 시작 초반에는 모든 타다 기사가 표준 운영 매뉴얼을 숙지하고, 누가, 언제, 어디서 타더라도 항상 동일한 품질의 탑승을 경험할 수 있었다. 본인들이 운영하는 서비스의 품질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고객들에게 항상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인, 문서화된 표준 운영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 직원이 이 운영 절차를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객들의 피드백과 리뷰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실제 서비스에 거의 실시간으로 반영해야 한다. 솔직히 타다를 비롯해 내가 사용하는 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이 시장과 고객의 피드백을 제품에 반영하는지 잘 모르겠다. 카카오 택시도 이 중 하나인데, 나는 지금까지 카카오로 호출한 블랙 외의 다른 택시가 맘에 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운행이 끝나자마자 적극적인 후기를 수십 번 제출했는데, 이게 반영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타다가 요새 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를 하루 종일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서비스가 아무리 커져도, 품질이 유지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표가 이렇게 하는데도 품질 유지가 안 된다면, 정말 거지 같은 서비스를 만들고 있고, 회사에 정말 문제가 많다는 뜻이다.

카카오톡 업데이트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는 거의 대국민 재난 사태가 된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자동 업데이트가 비활성화되어 있어서 아직 이전 버전의 UI를 사용하고 있는데, 바뀐 버전을 보니 정말 불편하고 짜증 낼 만한 것 같다. 나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라서 카카오에서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이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의 업데이트를 봤고, 이 중 회사를 거의 망하게 한 최악의 업데이트/업그레이드도 봤기 때문에 그때의 생각과 경험을 기반으로 내 생각을 몇 자 적어본다.

일단 카카오톡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때 – 특히 이번과 같이 단순한 버그 픽스나 기능 업데이트가 아닌, 정말 대대적인 변화일 때 – 지켜야 하는 거의 교과서적인 원칙을 간과했던 것 같다. 제품 업데이트를 하는 이유는 고객들에게 더 빠르고, 더 이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회사의 수익성을 위한 업데이트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고객들을 위한 업데이트/업그레이드인 게 맞을 것이다. 그 어떤 회사도 업데이트나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다운그레이드(downgrade)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카카오톡을 과거에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완전 신규 사용자들에겐 업데이트된 카톡의 UI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이들은 그냥 원래 이런가보다 하고 잘 쓸 것이다.

하지만, 카톡은 너무나 오래된, 그것도 한국 국민이 모두 다 사용하는 전 국민 필수앱이다. 이 필수앱에겐 너무나 극단적인 업데이트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더 편리하고, 더 좋아진 UI일 수도 있지만, 기존 사용자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너무나 큰 변화이고, 이들에겐 이 새로운 업데이트가 더 좋은 UI가 아니라 너무나 다른 UI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전반적으로 변화나 다름을 싫어한다. 눈에 보이는 UI가 달라지면 일단은 마음속에는 긴장과 혼란이 발생하는데, 카카오는 이런 인간의 심리적인 면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제품 개발을 아주 잘하는 노련한 PM들은 이런 극단적인 업데이트 경험을 마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누군가 벽지를 새로 하고 가구를 재배치한 것에 비교한다. 이 상황에서는 집이 전보다 훨씬 더 멋지고, 밝고, 세련됐다는 생각보단, “누군가 벽지랑 가구를 완전히 바꿨는데, 좀 많이 달리 보이네…”라는 생각을 하고 이건 일단 불안과 혼란을 가져온다.

카카오는 이 업데이트를 강제적으로 일괄 적용하지 않고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UI와 피드를 점진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공개하면서 바뀐 UI에 이들이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했다. 기존 사용자들에게 앞으로 진행될 업데이트와 완전히 달라지는 UI에 대해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면서 알려주고, 업데이트가 적용되기 전에 이들이 새로운 UI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줬어야 한다.

현재 대대적인 서비스 업데이트를 계획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라면 이런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단은 기존 사용자들에게 업그레이드에 대해서 알려주고 새로운 기능과 UI를 경험할 수 있는 기간을 줘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충분히 사용해 보고 익숙해졌을 때 스스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

카카오 정도면 이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방식에 대해서 잘 알 텐데, 왜 이 교과서적인 방법을 건너뛰었는진 잘 모르겠다.

이런 업데이트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회사는 구글이다. 유튜브와 지메일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고, 아직도 이 두 서비스는 계속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를 반복하고 있다. 구글은 대대적인 UI 업데이트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60일~90일 전부터 사용자들에게 변경될 UI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동안 새로운 UI와 기능을 사용자들이 직접 사용해 보고 적응할 기간을 충분히 준다. 그 기간에 만약에 새로운 UI가 별로면, 사용자들은 이전 버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옵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는 정말 망한 것일까? 이 정신없는 피드를 UI에 적용한 게 많은 사람들이 욕하는 것처럼 역사적인 악수일까? 솔직히, 이건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나처럼 나이 먹은 분들은 기억할 텐데, 페이스북이 2006년도에 News Feed를 적용했을 때 엄청난 비난과 욕을 먹었다. 유저들이 원하지도 않는 지저분하고 말도 안 되는 UI로 업데이트를 강행했다고 마크 저커버그는 살해 협박까지 받은 거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이 UI에 사람들이 익숙해지자 이렇게 획기적이고 편한 UI가 없다는 의견들을 너도나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너무나 기발한 UI라고 모두 칭찬했고, 다른 소셜 서비스들이 이 피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같은 만행을 2011년도에 또 저질렀다. Timeline(타임라인: 탐라)을 강제 업데이트한 것이다. 나도 탐라가 정말 싫었고 화가 많이 났었는데, 이 또한 몇 주 사용해 보니 너무나 편하고 획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즉, 카톡의 UI도 충분히 익숙해지고 사용하다 보면 아주 좋은 UI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정말로 카톡 사용자들이 카톡을 떠나고 라인, 텔레그램이나 왓츠앱으로 옮겨 탈까? 절대로 그렇게 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친구들이 다 카톡에 있으니까 정말로 카톡을 탈퇴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고, 그동안 사용자들은 새로운 UI에 익숙해지거나, 카카오가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UI로 다시 수정하거나, 최악의 경우 이전 UI로 다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카카오에서는 복구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복구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게 락인 효과가 너무나 압도적인 제품이 갖는 특권이기도 하다. 어쨌든 카카오톡은 큰 타격은 받지 않을 것이다.

슈퍼앱의 허상

매우 적지만, 우리도 지금까지 몇 개의 엑싯을 경험한 적이 있다. 쿠팡 같이 IPO를 한 경우도 있지만, 더 큰 회사에 인수되거나 비슷한 규모의 회사와 합병하면서 M&A를 통해 엑싯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지 않은 M&A를 통해서 내가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좋은 엑싯을 위해서는 회사가 팔려야지,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좋은 회사는 엑싯을 굳이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업만 잘하면, 누군가 연락이 와서 인수의 관심을 표시하리라는 것이다. 안 되는 회사를 억지로 다른 회사에 인수나 합병시키려고 하면 아예 안 되거나, 아주 안 좋은 조건에 딜이 성사된다.

그래서 나는 창업가를 만날 때, 이분이 회사를 시작하자마자 엑싯에 너무 꽂혀 있으면 매력도가 확 떨어진다. 이제 시작했고, 지금 매출 100만 원도 못 하는데, 사업에 집중하지 않고 3년 후에 회사를 네이버나 카카오에 얼마에 팔겠다는 생각만 한다면 이 회사는 금방 망하거나, 헐값에 팔릴 것이다. 반면에 엑싯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아주 좋은 사업을 만들고, 매출을 만들고, 고객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창업가들은 언젠가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회사가 먼저 연락이 와서 인수 의향을 밝힐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본인이 원하는 좋은 조건에 회사가 팔릴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슈퍼앱을 만들겠다는 한 창업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M&A에 대한 내 배움이 떠올랐다. 이분의 목표는 그 분야에서 모든 걸 다 처리할 수 있고, 모든 걸 다 가능케 하는 슈퍼앱이었다. 창업 첫날부터 슈퍼앱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고, 회사의 모든 결정의 – 제품, 펀드레이징, 채용 – 기준이 되는 건 슈퍼앱이었다. 아직 제대로 기어다니지도 못하는데, 처음부터 하늘을 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여기에만 꽂혀 있는 것이다. 이분의 슈퍼앱에 대한 야망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듣자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입을 열고 이 창업가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하나 했다. “대표님, 슈퍼앱은 그렇게 처음부터 만들겠다고 해서 만들기보단, 그냥 작은 기능을 하나씩 완벽하게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슈퍼앱에 꽂혀서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동시에 만들다 보면, 결과는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C급의 저질 앱이다. 그냥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만들지만, 그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만들다 보면, 복리의 힘이 작용하면서 결국엔 이게 슈퍼앱이 되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이 제품이 슈퍼앱이 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개의 슈퍼앱인 네이버와 카카오만 보더라도, 처음부터 슈퍼 앱을 만들겠다고 만든 게 아니다. 검색과 메신저라는 기능을 그 누구보다 뾰족하게 만든 후에, 그리고 다른 분야로 확장하더라도 기반이 되는 이 검색과 메신저 기능을 다른 경쟁사가 절대로 더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후에, 그제야 다른 분야로 확장하면서 본인들도 모르게 슈퍼앱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업을 시작했는데, 너무나 슈퍼앱에 꽂혀 있는 창업가들에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슈퍼 앱 이야기를 들은 후, 내게 아직도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항상 비슷한 충고를 한다. 슈퍼앱은 만들고 싶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작은 것들을 계속 반복하면서 고객들이 좋아하는 작은 기능과 제품을 잘 만들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그리고 창업가들이 우리 제품은 슈퍼앱이라고 떠드는 게 아니라, 고객들이 우리 제품은 슈퍼앱이라고 명명하면서 왕관을 씌워주는 거라고.

스토커와 같이 집착해라

공식 라이선스 스포츠용품을 판매하는 Fanatics라는 미국 회사가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인이라면 Fanatics 사이트 또는 이 회사가 운영하는 수많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뭐라도 한 번은 사 봤을 것이다. 미국 모든 대학교의 공식 라이선스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NBA, NFL, MLB 등 프로 스포츠 공식 라이선스 제품도 다 판매하는, 기업가치 약 40조 원의 거대한 이커머스 회사이다.

나도 여기서 돈을 꽤 많이 썼는데, 운동용품과 굿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Fanatics.com에서 한 시간은 거뜬히 체류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이 있고, 사이트도 잘 만들었다. 얼마 전에 이 회사의 창업가 마이클 루빈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다른 모든 창업가들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이분의 인터뷰도 너무 재미있게 들었다.

감명 깊게 들었던 건 이 창업가의 집착이었는데, 뭐를 하던지 고객과 제품에 대한 거의 스토킹 수준의 집착으로 남보다 더 빠른 학습 커브를 만든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시장에 어떤 신발을 판매하면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이 팔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밖에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뭘 신고 다니는지, 그리고 어떤 신발을 신는지 관찰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신발만 보니 시장에 대한 감이 생기고, 어떤 발/다리 모양이 어떤 신발을 많이 착용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이 짓을 수개월 동안 해서 목디스크가 생겼다는 웃픈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일화는 내가 평생 기억할 것 같다.

몇 달 전에 ‘고객에게 미친 사람들’이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하게 고객의 목소리에 집착하는 창업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솔직히 이런 창업가들이 점점 희귀해진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한다. 요새 내가 만나는 창업가들은 과거 대비 학벌도 더 좋고, 영어도 더 잘하고, 개발도 더 잘하고, 펀딩도 더 잘해서 확실히 high quality 창업가들이긴 하지만, Fanatics 창업가와 같은 스토커 수준의 집착은 오히려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서운 상대방과 불공평한 경기를 해야 한다. 이 우승 확률이 낮은 경기에서 그나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 제품을 사업으로 키우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하고, 이 사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기기 위해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운동장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이 현재의 일등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걸렸던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압축해서 해야 한다. 결론은 매사에 열심히 해야 하고, 매사에 집착해야 한다. Fanatics 대표가 하루 종일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사람들의 신발만 봤던 그 자세로 스토커같이 집착해야 한다.

우리 회사 임직원들은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서 이렇게 하루 종일 생각하는가? 우리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집착하고 있나?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는 더 가팔라지는데, 스토커와 같은 마인드로 우리 제품, 고객, 직원, 성공에 집착하지 않으면 매번 지는 경기를 할 것이다.

슈퍼마리오 효과

얼마 전에 팟캐스트를 듣다가 ‘슈퍼마리오 효과’에 대해서 알게 됐다. 꽤 흥미로운 컨셉인데, 여기서 너무 자세히 이야기는 하지 않을 테니, 궁금한 분은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면 된다. 슈퍼마리오류의 미로 탈출 게임을 한 두 실험군이 있었는데, 한 그룹엔 실패하면 “잘 안됐네요. 다시 시도해 보세요.”라는 메시지가 보였고, 다른 그룹엔 “방금 5점을 잃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어떤 그룹이 결국엔 게임을 더 잘했을까?

심리학적으론, 인간은 보상에 대한 갈망보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점수를 잃었다는 메시지를 본 그룹이 점수에 대한 손실과 실패에 대한 공포 때문에 결국엔 게임을 더 잘했을 거라고 난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다시 시도해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본 그룹이 월등하게 더 잘했는데, 간단하게 정리하면 실패나 실수보다 목표에 집중하는 게 이기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슈퍼마리오 효과를 조금 더 파고 들어가 보면,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도대체 사람의 신체와 뇌에서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길래 성공의 확률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상승할까? 해답은 ‘반복’이라고 한다. 위의 예에서 점수를 잃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점수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진 않고, 심지어 중도 포기하기도 하지만, “다시 시도해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본 그룹은 계속 반복하고, 여러 번 반복하면 할수록 이길 확률은 올라간다고 한다. 이 현상을 조금 더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반복을 더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실수를 하고, 더 많은 실수를 할수록 몸이 알아서 그 실수의 원인을 찾게 되고, 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 뇌가 학습과 변경을 위해서 신경 회로를 변화시키고 재구성한다고 한다.(이런 뇌의 현상을 전문 용어로 neuroplasticity라고 한다).

결국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반복을 하는 것이다. 반복의 횟수가 핵심이다. 운동을 새로 배운다면,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위에서 말한 현상이 작동해서 더 빨리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잘 아는 ‘1만 시간의 법칙’도 실은 반만 맞는 법칙이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1만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1만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반복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는지가 학습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내가 왜 이 슈퍼마리오 효과에 관심을 더 갖게 됐냐 하면,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반복을 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를 하면서 학습하고 성장하는 이 과정이 마치 창업가들이 제품을 개발하고 초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으로 초기 제품을 개발하는 방법은 가설을 세우고, 지속적인 테스팅을 통해 이 가설들을 검증하면서 틀린 가설은 버리고, 맞는 가설은 계속 더 뾰족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가설과 테스팅의 핵심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product iteration과 testing을 반복하는 것인데, 위에서 말한 이런 과정 중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반복의 횟수를 늘리면, 더 많은 틀린 가설을 검증할 수 있고(=실수), 조직은 이 틀린 가설의 원인을 찾기 위해 매우 열린 자세로 학습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시장이 원하는 제품으로 진화할 수 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에 모든 걸 완벽하게 끝내기 보단 – 이렇게 할 수가 없다 – 완벽함 보단 실행에 무게를 실으면서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다양한 실수와 실패를 하고, 이를 통해서 성장하는 창업가가 정말 단단한 사업가가 된다. 이들은 실패에 집중하지 않고, 성공하겠다는 그 목표에 집중하고,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행동한다. 비록, 그 행동 중 대부분이 틀리더라도. 초기 스타트업에서 창업가의 성장은 곧 조직의 성장과 맞물려 있는데, 내가 그동안 직접 보고 경험했던 이 스타트업의 현장이 팟캐스트에서 슈퍼마리오 현상에 대해서 들으면서 계속 생각났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무시하고, 실패보단 목표에 집중하고, 지속적인 반복과 배움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를 의식적으로 계속 연습하다 보면 더 많은 성공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