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창업, 번아웃, 자존감, 그리고 운동에 대해서 몇 자 적어봤다. 실은, 이 글에서는 매우 단순하게 힘들고 자존감이 떨어지면,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라고 했는데, 현실은 이보단 훨씬 복잡하다.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자존감이 조금 떨어진다고 운동만 하면 다시 원상태로 100% 복귀되는 건 아니다.
나도 과거에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2010년 전후로 이런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처음으로 직접 경험했는데, 처음엔 내 몸이 이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고통이었다. 당시엔 이런 현상을 지금같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기 때문에, 내 몸과 정신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이런 일을 경험하기 전에는 나는 스스로 불도저라고 생각했고, 내 체력과 정신력은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 무한자원이라고 바보같이 믿고 있었다. 이런 어리석은 믿음 때문에 한 번 켜진 몸의 스위치를 끄지 않았고, 너무 오랫동안 스위치가 켜진 채 혹사당한 몸과 정신이 제대로 고장 났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가라는 원망을 하면서 오만 감정이 교차했고, 난생처음 내 몸과 정신을 컨트롤할 수 없어서 너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몇 달 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못 했던 때가 있었다.
이때 내가 안정을 찾고, 다시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할 수 있었던 방법이 몇 가지 있다. 너무 부끄럽고 싫었지만, 나랑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몸이 좀 망가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당분간 쉬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주워 담아야겠고, 한동안 잠수타야겠으니 내가 그동안 하던 일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가장 먼저 와이프에게 말했고, 그리고 뮤직쉐이크 동료분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 나는 남들이 나를 나약하고 실망스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 모두 다 너무 따뜻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공감했고, 나에게 아주 용감하다고 하면서 격려해 줬다.
그리고 계속 몸을 움직였다. 격렬한 운동을 시작했고, 마일로랑 매일 산책을 했다. 실은, 이때 나랑 마일로랑 많은 본딩을 했고, 나랑 많은 이야기를 했다.(나 혼자 중얼거렸지만) 마일로는 이젠 죽었지만, 내 은인이기도 하다. 너무 하기 싫어도 그냥 강제로 매일 무거운 웨이트를 들었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면서 매일 새벽에 뛰었다. 이걸 몇 달 반복하니까, 다시 정상 생활로 서서히 돌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몸 안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쭈욱 느껴온 건, 창업이든 투자든 뭐라도 너무 과하게 열심히 하면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우린 모두 번아웃과 공황장애와 함께 살아야 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몸이 그때 상황에 맞춰 스스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학습과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번아웃을 완전히 예방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몸담은 이 빠르게 변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스타트업 분야에서 이런 방법이 존재하는진 잘 모르겠다. 오히려,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완전히 예방할 순 없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내 몸에서 어떤 시그널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경고하는지 꾸준히 스스로를 학습시키는 게 효과적인 방법 같다.
운동은 합법적인 마약
[…] 부정적인 신호가 올 때마다, 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움직인다. 그냥 움직이는 게 […]
대표님, 잘 읽고 갑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링커 파이팅입니다 🙂
최근글들이 정말 큰 위로가 됩니다:) 배기홍 대표님, 감사합니다.
리얼라이저블 파이팅!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몇년 전 같은 문제를 겪은 사람으로써 글을 읽고 위안을 얻었습니다.
우리 문화는 불도저 정신/전투력을 요구하고, 이를 스타트업, 뱅킹, 컨설팅 등의 나름 엘리트 문화가 glorify 하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상사문화였겠지요.) 좋은 문화이면서도 다분히 기계적이고 인간성을 무시하는 점은 경계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공유해주신 글이 이런 부분을 짚어주시는 것 같아 깊이 공감됩니다.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맙습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이런 문화는 어디가도 존재하는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문화가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구요.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말씀하신대로 계속 논의해야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