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corn

집착이 유니콘을 만든다

나를 만난 전문직 – 교수, 의사, 변호사, 연예인 등 – 파트타임 창업가들은 잘 알 텐데, 나는 이런 분들한테 투자하지 않는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이런 회사들을 몇 개 만났는데, 아직도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좀 놀랐다.

창업이 과거에 비해 더 쉬워졌고, 더 저렴해졌고, 요샌 일부 일을 AI가 대신해 주지만, 일단 스타트업은 남들보다 더 짧은 시간에 저 많은 성장을 압축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리고 집착해야 한다. 제품에 집착해야 하고, 고객에게 집착해야 하고, 펀드레이징에 집착해야 하고, 좋은 사람을 회사에 채용하는 것에 집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집착은 기본적으로 사업에 올인하지 않으면 생길 수가 없다. 취미생활로 스타트업을 하는 분들에게 집착은 생길 수가 없다.

풀타임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스타트업을 창업했다면, 그리고 이분들이 대표이사라도, 이분들에겐 여전히 교직생활이 풀타임 업무이다. 스타트업은 그냥 투잡 중 하나의 부업이자 취미생활이다. 왜냐하면, 이분의 우선순위는 항상 학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소속되어 있고, 여기서 주 수입이 나오기 때문에, 회사 일을 하다 가도 갑자기 학교에서 부르면 그쪽으로 뛰어가야 한다.
풀타임으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스타트업을 창업했다면, 이분에게도 의사가 풀타임 업무이고 스타트업은 부업이자 취미생활이다.
풀타임으로 방송 생활을 하거나 연기를 하는 연예인이 스타트업을 창업했다면, 이분에게도 연예인이 풀타임 업무이고 스타트업은 부업이자 취미생활이다.

나의 이 발언을 보고 발끈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실제 대면 미팅에서도 내가 “그럼 사업은 누가 하나요?”라고 물어보면 흥분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대부분 돌아오는 답변은 거의 비슷하다. 교수님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이 별로 없어서 나머지 시간은 전부 다 회사에서 보낸다고 하고, 의사들은 병원이 본인 없어도 잘 돌아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스타트업하는 데 보낸다고 하고, 연예인들은 연예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회사 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사업에 언젠가는 완전히 올인 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지 않다. 계속 본인들은 파트타임이고, 대표이사 또는 공동창업가라서 회사의 큰 결정에 관여할 것이지만, 결국 실제 사업은 다른 코파운더나 다른 직원들이 할 것이라고 한다. 실은, 그렇게 말하진 않지만, 결국 말을 들어보면 이런 의미라고 나는 해석한다.

이런 분들이 운영하는 회사는 좋은 성과를 못 만드나? 꼭 그런 건 아니다. 우리 주변에 교수, 의사, 연예인, 변호사가 창업한 회사가 잘 되는 경우를 찾아보면 그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이 유니콘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유니콘을 만들기 위해선 사업에 집착해야 하고, 집착이란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사업에 대해서만 생각해야지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LA에 본사를 둔 The Honest Company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가는 배우 제시카 알바인데, 연예인들이 이분 같이 사업에 집착할 수 있다면 어쩌면 유니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우리 포트폴리오사와의 협력 때문에 알바씨를 두 번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 내가 듣기론 이분은 회사를 하기 위해서 모든 연기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고, 다른 직원분들에게 물어보니 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미팅에 참석하고, 모든 투자자 미팅에도 참석했다. 우리가 했던 미팅에도 전부 다 들어왔고, 준비를 잘하고 들어와서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가능하다.

회사에 매일 출근하지 않고, 회사의 모든 미팅에 참석하지 않고, 회사에 대해서 매일 24시간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집착이 생길 수 없고, 집착하지 않으면 유니콘은 만들 수가 없다. 현재 풀타임 직업/직책의 유명세, 지위, 네트워크가 어려운 미팅을 몇 번 성사시킬 순 있지만, 유니콘을 만드는 것은 유명세나 지위가 아니라 집착이다.

농부의 마음

스트롱을 처음 시작할 때, 주위의 선배 VC 분들이 투자는 농부가 씨를 뿌리고, 식물이 죽지 않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농부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줬다. 경험한 만큼만 알고, 아는 만큼만 안다는 말처럼, 그땐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13년 동안 VC를 해보니 이제 이 농부의 마음이 어떤 건지 조금씩 알 것 같고, 실제로 매일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투자하고, 투자사를 대하고 있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라서 가장 초기에 투자하는 걸 시드(=seed) 투자라고 하는가 보다. 우리 같은 시드 투자자는 말 그대로 씨가 잘 자라기 위한 초기 자금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이 씨를 뿌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농부와 같이 아주 넓은 농장이나 밭에 아주 랜덤하게 많은 씨를 뿌리고, 이 씨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다양한 지원을 한다. 일단 이 씨들이 잘 자라기 위한 필수 요소인 물과 토양은 VC들이 제공하는 자금이다.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려면 더욱더 많은 수분이 필요하고, 더 많은 영양소가 시기적절하게 필요한데,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물과 비료는 농부가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씨앗이 나무가 되기 위해선 이 외에도 많은 게 필요하다. 비도 와야 하고, 충분한 햇빛도 필요하고, 바람도 불어야 하는데 날씨는 농부가 컨트롤할 수 없는 시장 상황과 비슷하다. 유동성이 풍부해서 투자를 잘 받는 시장 환경이 있는가 하면, 최근 몇 년과 같이 돈이 말라서 가뭄인 환경도 있는데,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때마다 시장 상황에 따라서 적응하고 조절해야 한다. 아무리 노련한 농부도 항상 풍년만 경험하는 게 아니다. 농사하다 보면 날씨와 같은 여러 가지 외부 요소 때문에 풍년과 흉년을 번갈아 경험하는데, 노련한 농부는 이때마다 잘 적응하고 조절한다.

농부의 마음으로 뿌린 씨가 잘 자라길 간절히 바라지만, 솔직히 이 중 어떤 씨앗이 생존해서 큰 나무가 될 진 아무도 모른다. 재수 없는 흉년이면 모든 씨앗이 전멸하고, 토양이 오염되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부족하거나, 또는 햇빛이 부족하면 씨는 작은 나무에서 성장을 멈춘다. 하지만,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씨앗에도 복리의 힘이 작용하고, 작은 씨앗이 엄청나게 튼튼하고 큰 나무로 자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회사들은 아웃라이어다. 일단 이렇게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려면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리고 그 긴 기간 동안 이 나무가 중간에 죽을 수 있는 수백만 가지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농부는 매일 일어나서 하늘을 보면서 날씨를 확인하고, 나뭇잎을 확인하고, 물을 주고, 해충을 죽이고, 정기적으로 토양을 교체해 준다. 마치 우리가 경기의 맥을 확인하고, 투자사의 현금흐름을 확인하고, KPI를 확인하고, 창업가의 정신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가끔은 오랫동안 새싹이 안 올라와서 죽은 줄 알고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물도 안 주고, 비료도 안 주는데, 어느 날 밭에 가보니까 잡초같이 잘 자라서 아주 큰 나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사업을 잘 못 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거나, 손실 처리한 회사가 갑자기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고, 아주 좋은 VC에게 후속 투자를 받는 게 이런 경우다. 솔직히 우리도 이런 잡초의 케이스를 몇 번 경험했는데, 아주 기분이 좋다. 이런 경우가 더 많으면 좋겠다.

참고로, 우리같이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모델을 미국에서는 ‘spray and pray’ 모델이라고 한다. 많이 뿌리고, 이 중 몇 개가 잘 되길 기도한다는 의미인데, 대화의 컨텍스트에 따라서 많이 투자하고 무책임하게 기도만 하는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많이 투자하고 열심히 기도한다는(=도와준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항상 농담처럼 “우린 spray and pray를 하는데, 나는 pray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라고도 한다. 그만큼 어떤 회사가 잘 될지 아무도 모르고, 워낙 초기 회사라서 VC가 아무리 이 회사들을 도와줘도 그 결과는 항상 불확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러 밭으로 향하고 있고, 기도도 많이 하고 있다.

1,000억 원 매출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나는 요새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세상이 바뀌더라도, 바뀌지 않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그쪽을 꽤 많이 보고 있다. 이렇게 조금 다른 각도로 시장을 보면, 잘 안 바뀌는 분야가 생각보다 많은데, 먹는 것, 바르는 것, 입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터미네이터와 같은 휴머노이드가 길거리에 사람같이 돌아다녀도, 우린 계속 밥은 먹어야 하고, 얼굴과 몸에 뭔가를 발라야 하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몇 년 전에 DTC, 브랜드, 이커머스가 크게 유행하던 때가 있었고, 이때 엄청나게 많은 VC 돈이 이 분야에 투입됐는데, 돈 벌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요샌 대부분의 VC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이 분야가 돈 벌기가 힘든 이유는 너무 많은 플레이어가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시장 자체가 돈을 못 버는 습성이 있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논리로 시장과 회사에 접근하면, 그 어떤 분야에도 투자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돈 벌기 쉬운 분야와 사업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요새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우린 최근에 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분야에 꽤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사업보다 성장의 기울기가 전반적으로 완만하고, 계속 뭔가를 만들어 팔아야 하므로 한계비용을 낮출 순 있어도 0으로 내릴 순 없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자본 집약적이라는 꼬리표를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점에선 아주 단순하고, 아주 훌륭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2025년 1사분기에 유니콘이 된 Top 10 글로벌 신생 유니콘 중 7개가 AI 관련 스타트업인데, AI가 주 사업이 아닌 나머지 3개 중 유독 내 눈에 띈 회사는 OLIPOP이라는 미국의 프리바이오틱 음료수 회사다. 이 회사의 2023년 매출은 약 2,500억 원이고, 2024년 매출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유니콘 기업가치는 약 2.5조 원이었다. 매출의 10배 정도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은 건데, 이 배수는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봐왔던 먹고, 마시고, 입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의 기업가치와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고, 이 분야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한 magic number는 연 매출 1,000억 원인 것 같다. 매출 1,000억 원을 하면 대부분 5,0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에 투자를 받거나, 1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에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사례를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매출 1,000억 원은 어떤 의미일까?

일단 엄청나게 큰 매출이다. 일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제품의 단가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많이 팔아야지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매출을 하면 꽤 의미 있는 규모의 소비자들이 이 제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프리바이오틱 소다에 대해 이야기하면 10명 중 4명은 위에서 말한 OLIPOP의 브랜드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매출 1,000억 원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하면, 그 분야를 수십 년 ~ 수백 년 동안 장악하고 있는 공룡인 대기업들에게 조금씩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아직까진 경쟁사는 아니지만, 대기업이 뭐만 하려고 하면 이 작은 회사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굉장히 불편하고 짜증 나는 존재로 강하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했는데, 마하트가 간디의 명언 중 하나인, “처음엔 사람들이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그다음엔 당신을 비웃을 것이고,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고, 그러고 나서 당신은 이길 것이다”에서 대기업들이 1,000억 매출 하는 스타트업을 대하는 자세는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다” 바로 그 직전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대부분 이 시점에서 그 분야 1,2등 회사가 1,000억 원 매출의 대략 10배인 1조 원 정도의 가격에 회사를 인수한다. 이 정도까지 매출을 키운 브랜드라면, 대기업이 가진 자원과 유통 채널을 활용하면 장기적으론 이보다 훨씬 더 큰 브랜드로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게 가능하고, 정말로 인수 이후 훨씬 더 큰 브랜드가 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산업에서는 유통이 가장 막강한 권력이고 큰 회사가 작은 회사보다 항상 잘하는 게 이 유통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시장이 작다. 많이 작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은 한국의 5,000만 명의 잠재 소비자보다 훨씬 더 큰 글로벌 시장이다. 이미 한국이 만드는 먹는 것, 마시는 것, 바르는 것과 입는 것들은 해외 시장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이미 많이 있지만, 조만간 한국에도 매출 1,000억 원을 찍는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은 글로벌/한국 대기업들이 이 회사들을 높은 기업가치에 인수할 수 있길 바란다. 아니면, 스스로 계속 성장해서 이들이 대기업이 되고, 다른 스타트업을 높은 기업가치에 인수하고, 이 현상이 계속 반복될 수 있길 바란다.

하는 사람들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이 업을 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더 만나지 않을까 싶은데, 더 많이 만날수록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생각을 매일 해서 그런지, 얼마 전에 하는 사람들의 끝판왕 시리즈 ‘매드 유니콘’을 넷플릭스에서 너무 재미있게 봤다.

‘매드 유니콘’은 2021년에 기업가치 1조 원이 넘은, 태국의 첫 번째 유니콘 스타트업 Flash Express의 창업과 성장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나온 전 세계 그 어떤 스타트업 드라마나 영화보다 재미있게 봤다. 이 전에 나온 스포티파이 이야기 ‘플레이리스트’도 재미있게 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트업 영화는 페이스북의 이야기 ‘소셜 네트워크’ 이지만였지만, 매드 유니콘은 7부작을 보는 내내 단 1분도 빠짐없이 몰입했고, 단 1분도 빠짐없이 즐겼다.

나는 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이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지만 분명히 심하게 극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3년 동안 수많은 창업가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걸 너무 많이 봤고, 틀린 결정을 너무 많이 하는 걸 봤고, 이 틀린 결정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서 개고생하고 개지랄 떠는 걸 너무 많이 봤고, 그런 과정에서 인간의 최악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좌절하고, 반대로 인간의 최고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기뻐하는 걸 너무 많이 본 초기 투자자의 관점에서 드라마의 매 순간에 공감했다. 그만큼 실제 스타트업 자체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시리즈에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모든 요소가 다 있다. 출세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전형적인 언더독 창업가 남주인공, 함께하는 공동창업가 여주인공, 그리고 이 둘 사이에 형성되는 약간의 러브라인. 우리의 창업가를 끝까지 괴롭히는 나쁜 대기업, 그리고 드라마틱한 언더독 창업가와 그가 만든 팀의 창업기. 이들이 죽도록 허슬하면서 보여주는 최악의 모습과 최고의 모습의 반복은 스타트업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것이고, 스타트업을 아는 분들은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말에 7부작을 보면서 나도 정말 많이 공감하고 많이 배웠다. 나도 스타트업 경험이 있고, 그동안 수많은 회사를 간접적으로 봤지만, 오랜만에 옛날에 힘들었던 상황들을 생각하면서, “그래, 이런 게 진짜 스타트업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모든 인물이 특색 있었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이 회사의 CTO였다. 많이 극화된 인물이긴 하지만, 이런 CTO가 유니콘을 만든다고 확신한다.

내가 이 드라마를 입에 침이 마르게 극찬하자 와이프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었다. 아마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다. 그냥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될 때까지 죽어라 하는 그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아무리 밟아도 절대로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더 세게 반격하는 바퀴벌레의 이야기라서 내가 더 열광했던 것 같다. 우리 포트폴리오 창업가분들과 스트롱 임직원분들 모두 이런 정신으로 사업할 수 있길, 그리고 내 주변 분들도 모두 이런 정신으로 인생을 살 수 있길 바란다.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디지털 결제의 부상

10년마다 오는 큰 tech 물결을 잘 예측하고, 기회의 파도의 고점을 잘 타이밍 하면, 엄청나게 큰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과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960년대에 반도체의 미래를 보고 인텔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졌고, 이 반도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 1970년대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과 같은 회사들이 personal computer 시장을 만들면서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이후에 10년마다 아주 큰 기술의 물결이 출렁거렸는데, 1980년대 인터넷의 탄생, 1990년대 메인스트림 인터넷 서비스의 등장(구글, 아마존 등), 그리고 데스크탑에서 모바일로의 패러다임 변화 등이 이런 큰 물결이다. 중간 중간에 다양한 회사들이 등장했고, 이 중 성공한 곳들이 많지만, 정말 대박급으로 성공한 회사들은 모두 다 “앞으로 10년 동안 어떤 기술의 물결이 올까?”를 예측하고 여기에 베팅한 곳들이라고 난 생각한다.

앞으로 10년은 어떤 테마가 거대한 유니콘들을 탄생시킬까? 이미 이 테마는 AI로 정해진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돈이 짧은 시간 동안 한 테마에 투입되는 걸 우리가 과거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요새 AI 분야에 큰 투자와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분명히 AI 분야에서 엄청난 혁신이 일어날 것이고, 이 혁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회사들이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이다.

여기에 나는 디지털 결제라는 테마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과거 10년 동안 세상의 모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사람을 닮은 로봇이 등장하고, 사람 없이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하늘을 날기도 하는데, 이런 변화 속에서 유독 돈이 움직이는 방법과 기술엔 큰 발전이 없었다. 아니, 디지털 결제는 오히려 여러 가지 면에서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돈이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과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을 보면, 우린 삶의 구석구석에 internet of everything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만, 유독 internet of money는 구현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합법적으로 열심히 번 돈을 사용하거나, 투자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 우린 기술이 덜 발달했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규제를 극복해야 하고, 오히려 그때보다 더 복잡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생활에서 많은 규제가 완화되고,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중개인들이 줄었는데, 오히려 돈이 움직이는 프로세스를 보면 규제는 더 많아졌고, 아직도 불필요한 중개인들이 하는 것도 없이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돈세탁 방지와 고객확인제도는 디지털화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아날로그화되어 가고 있다.

이걸 내가 전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돈은 정말 중요하고, 이 중요한 돈이 이동하면 – 특히, 국경을 넘으면 –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한다. 통화는 나라마다 다르고, 그 통화를 지배하는 법과 규제는 가는 곳마다 다르므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구멍이 가장 많은 게 금융 쪽이다. 금융 범죄자들은 더 똑똑해지고, 악랄해지고, 대범해져서,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금융 범죄가 계속 등장하고, 이런 범죄를 막아야 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오히려 더 많은 범죄를, 더 지능적으로 만드는데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정부 당국은 새로운 범죄를 차단하고 예방하기 위해서 더욱더 빡빡하고 엄격한 법과 규제를 만들 것이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디지털 결제는 더욱더 아날로그화되면서 기술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자산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10년 동안 internet of money와 digital network of money를 만들기 위해 이 분야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노력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매번 규제에 부딪히거나, 인간의 탐욕에 스스로 굴복했다. 하지만, 10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기술은 발전했고, 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다는 걸 요샌 체감한다. 특히, 이번에 다 바뀐, 미국 SEC에서 디지털 자산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시장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법과 규제를 잘 만들면, 이게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표준이 되지 않을까,,,개인적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사기꾼들은 많고, 이 분야에서 일어나면 안 될 사기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잘 모르는 분들은 코인 생각을 할 것인데 절대로 내가 밈코인이나 잡코인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젠 변동성의 리스크가 어느 정도 제거된 스테이블코인과 이 자산의 움직임과 투명성을 더 강화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면서 좋은 디지털 결제 제품을 개발하는 창업가들이 앞으로 10년 동안 엄청난 사업을 만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