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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DNA

2주 전에 잠깐 동경에 갔었는데, 과거부터 친분이 있던 일본 VC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 이야기를 특히 많이 했는데, 한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나 같은 VC는 당연히 일본 시장보단 한국 스타트업 시장이 더 좋다고 믿지만, 내가 만난 일본 VC들도 대부분 한국의 벤처생태계를 부러워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떤 일본 VC는 대놓고 나에게 한국 벤처생태계를 볼 때마다 너무나 부럽고, 일본도 한국 시장과 창업가들로부터 A부터 Z까지 모든 걸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상장 시장의 크기는 한국의 3.5배 정도가 된다. 상당히 크고, 난 한국이 조만간 일본의 상장 시장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현재의 이 규모는 상당히 부럽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일본 VC들은 오히려 한국의 역동적이고 큰 IPO 시장이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무슨 말인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일본의 상장 시장은 크지만, 자세히 보면 tech IPO는 질보단 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답변이다. 한국 창업가들은 꿈과 야망이 상대적으로 커서 항상 아주 큰 IPO를 꿈꾸면서 사업을 하는데 – 물론, 그렇다고 IPO를 다 하는 것도 아니고, 해도 큰 IPO가 되는 건 아니지만 – 일본 창업가들은 사업하다가 어느 시점에 그냥 작은 IPO를 하는 게 요샌 유행같이 번지고 있다고 했다. 한 1,000억 정도의 IPO를 하면 창업가들은 그래도 잘 먹고 잘살 수 있고, 일본에서 이런 작은 IPO를 하는 게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너도나도 적당한 규모로 사업을 키우고 IPO를 한다고 들었다. 창업가들은 돈을 벌어서 좋지만, 이 회사에 투자한 VC는 큰 재미를 못 보고, 계속 창업가들의 꿈과 야망이 이렇게 줄어들면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는 큰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우려를 대화 내내 표시했다. 정확하게 “작은 IPO가 하나씩 될 때마다 일본 창업가들의 야망도 하나씩 줄어드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 같다.

그리고 일본 VC들로부터 내가 반복적으로 들었던 주제이자, 이들이 한국에 대해서 가장 부러워하는 게 한국인들의 “소비자 DNA(Consumer DNA)”였다. 한국 시장엔 소비자 DNA가 매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네이버, 쿠팡, 카카오, 토스, 당근, 배달의 민족 등과 같은 좋은 자체 B2C 유니콘을 끊임없이 만들고 제품화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좋은 소비자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면,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과 질투가 발동하면서 계속 더 좋은 기능, 더 좋은 UI/UX, 더 좋은 가격의 경쟁 제품들이 나오면서 “양이 질을 만드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일본은 이 소비자 DNA가 점점 더 사라져서 이젠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창업가들은 대부분 B2B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의 B2C 제품이 한국과 같이 많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다. 하지만, 인구도 많고 시장이 크기 때문에 일본의 소비자 시장은 외국 회사들의 놀이터가 됐다. 검색은 구글, 동영상은 유튜브, 지도는 구글맵스, 이커머스는 아마존, 택시 호출은 우버 등,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대부분의 B2C 제품은 외산 제품들이다. 그러면서 내가 들었던 말은 일본은 전 세계에서 외국 B2C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가장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이고됐고, 이들은 일본의 소비자 DNA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을 많이 표시했다.

그리고 한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우리만의 소비자 DNA를 기반으로 케이팝, 케이푸드, 케이뷰티, 케이콘텐츠와 같은 새로운 무형의 소비자 DNA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 무형의 한국의 문화가 현재 일본 시장을 완전히 쓰나미같이 덮치고 있다. 실은 일본도 한 때는 다른 나라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은 이게 다 죽었고, 오히려 한국 문화가 과거 일본 문화보다 더 커지고 있는데, 이게 모두 다 일본의 소비자 DNA의 소멸로 인한 아주 좋지 않은 결과라는 결론을 이분은 내렸다.

물론, 한두 명의 일본 VC가 일본과 한국의 시장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 현황을 일반화할 수도 없지만, 10년 넘게 일본에서 투자하고 있는 VC들에게 이날 내가 들었던 내용만을 기반으로 결론을 내려보면, B2C 분야에서는 한국 창업가들이 일본 시장을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 B2C로 시작하지만, 남에게 지는 걸 배 아파하는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과 질투심으로 결국엔 B2B 사업도 일본 시장에서 더 잘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정말로 더 많은 한국 창업가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해서 거대한 사업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내 친구이자 VC인 일본 투자자가 한국 시장이 부럽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엔 우리의 창업가들이다. 한 골 먹으면 두 골을 넣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우리 특유의 성깔?, 절대로 죽지 않고 생존하는 바퀴벌레력, 이 모든 게 한국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에 여러 번 포스팅 했지만, 이 강점을 우린 계속 살려야 하고, 이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안티들의 말은 무시해라

얼마 전에 요새 큰 고민이 있는 우리 투자사 대표와 이야기를 했다. 사업은 그냥 나쁘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 회사의 제품에 대한 악플과 형편없는 리뷰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고민을 하거나, 한 번 정도는 해 본 대표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일반 고객과 실물 시장과의 접점이 훨씬 많은 B2C 서비스 또는 먹고, 입고, 바르는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브랜드/D2C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분이라면 엄청난 악플과 제품 리뷰를 쏟아내는 안티들에게 시달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우리 회사와 제품에 대한 안 좋은 피드백이 단순 증오성 내용이 아니라, 실제 우리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고객의 애정이 어린 피드백이라면, 그리고 정말로 이분들이 우리 회사와 제품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런 충고, 리뷰, 피드백은 아주 적극적으로 듣고, 수용하고, 반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분들이 우리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하고, 결국엔 우리 회사가 계속 존재하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찐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분들이 남기는 글이나 영상은 그냥 봐도 회사와 제품에 대한 애정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특별한 논리와 내용도 없이 주구장창 우리 제품과 회사를 욕하는 증오성 피드백이라면 – 그리고 이런 건 그냥 보면 알 수 있다 – 그냥 무시하면 된다. 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우리의 팬도 아니고 고객도 아니고 그냥 우리의 안티다. 아마도 우리 제품을 한 번 정도 써봤거나, 아니면 아예 써보지도 않고 그냥 악감정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이런 증오성 악플과 혹평을 하는 것일 텐데 이런 사람들은 우리 회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간들이다.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건 우리의 팬이지, 우리의 안티들이 아니다.

1,000억 원 매출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나는 요새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세상이 바뀌더라도, 바뀌지 않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그쪽을 꽤 많이 보고 있다. 이렇게 조금 다른 각도로 시장을 보면, 잘 안 바뀌는 분야가 생각보다 많은데, 먹는 것, 바르는 것, 입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터미네이터와 같은 휴머노이드가 길거리에 사람같이 돌아다녀도, 우린 계속 밥은 먹어야 하고, 얼굴과 몸에 뭔가를 발라야 하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몇 년 전에 DTC, 브랜드, 이커머스가 크게 유행하던 때가 있었고, 이때 엄청나게 많은 VC 돈이 이 분야에 투입됐는데, 돈 벌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요샌 대부분의 VC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이 분야가 돈 벌기가 힘든 이유는 너무 많은 플레이어가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시장 자체가 돈을 못 버는 습성이 있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논리로 시장과 회사에 접근하면, 그 어떤 분야에도 투자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돈 벌기 쉬운 분야와 사업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요새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우린 최근에 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분야에 꽤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사업보다 성장의 기울기가 전반적으로 완만하고, 계속 뭔가를 만들어 팔아야 하므로 한계비용을 낮출 순 있어도 0으로 내릴 순 없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자본 집약적이라는 꼬리표를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점에선 아주 단순하고, 아주 훌륭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2025년 1사분기에 유니콘이 된 Top 10 글로벌 신생 유니콘 중 7개가 AI 관련 스타트업인데, AI가 주 사업이 아닌 나머지 3개 중 유독 내 눈에 띈 회사는 OLIPOP이라는 미국의 프리바이오틱 음료수 회사다. 이 회사의 2023년 매출은 약 2,500억 원이고, 2024년 매출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유니콘 기업가치는 약 2.5조 원이었다. 매출의 10배 정도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은 건데, 이 배수는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봐왔던 먹고, 마시고, 입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의 기업가치와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고, 이 분야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한 magic number는 연 매출 1,000억 원인 것 같다. 매출 1,000억 원을 하면 대부분 5,0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에 투자를 받거나, 1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에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사례를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매출 1,000억 원은 어떤 의미일까?

일단 엄청나게 큰 매출이다. 일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제품의 단가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많이 팔아야지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매출을 하면 꽤 의미 있는 규모의 소비자들이 이 제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프리바이오틱 소다에 대해 이야기하면 10명 중 4명은 위에서 말한 OLIPOP의 브랜드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매출 1,000억 원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하면, 그 분야를 수십 년 ~ 수백 년 동안 장악하고 있는 공룡인 대기업들에게 조금씩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아직까진 경쟁사는 아니지만, 대기업이 뭐만 하려고 하면 이 작은 회사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굉장히 불편하고 짜증 나는 존재로 강하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했는데, 마하트가 간디의 명언 중 하나인, “처음엔 사람들이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그다음엔 당신을 비웃을 것이고,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고, 그러고 나서 당신은 이길 것이다”에서 대기업들이 1,000억 매출 하는 스타트업을 대하는 자세는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다” 바로 그 직전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대부분 이 시점에서 그 분야 1,2등 회사가 1,000억 원 매출의 대략 10배인 1조 원 정도의 가격에 회사를 인수한다. 이 정도까지 매출을 키운 브랜드라면, 대기업이 가진 자원과 유통 채널을 활용하면 장기적으론 이보다 훨씬 더 큰 브랜드로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게 가능하고, 정말로 인수 이후 훨씬 더 큰 브랜드가 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산업에서는 유통이 가장 막강한 권력이고 큰 회사가 작은 회사보다 항상 잘하는 게 이 유통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시장이 작다. 많이 작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은 한국의 5,000만 명의 잠재 소비자보다 훨씬 더 큰 글로벌 시장이다. 이미 한국이 만드는 먹는 것, 마시는 것, 바르는 것과 입는 것들은 해외 시장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이미 많이 있지만, 조만간 한국에도 매출 1,000억 원을 찍는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은 글로벌/한국 대기업들이 이 회사들을 높은 기업가치에 인수할 수 있길 바란다. 아니면, 스스로 계속 성장해서 이들이 대기업이 되고, 다른 스타트업을 높은 기업가치에 인수하고, 이 현상이 계속 반복될 수 있길 바란다.

요즘 아이들의 뷰티 제품 선호도

우리도 소비재에 많이 투자하고, 한국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소비재라서 나는 이 시장 관련 기사나 보고서는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중 좋아하는 리포트 중 하나가 The New Consumer에서 정기적으로 만드는 건데, 최근에 발행한 Beauty 2025 Special Report를 흥미롭게 읽었다. 화장품도 뷰티 시장에서 중요한 카테고리이고, 한국이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분야 중 하나라서 그런지, 한국 화장품도 몇 번 언급된다. 이 보고서에 요즘 아이들인 MZ 세대가 뷰티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에 대해서 조사한 내용이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실은, 나는 MZ 세대는 X 세대와는 뭔가 매우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뷰티를 바라보는 시각과 거의 비슷하다.

1/ 대부분의 미국 MZ는 본인들의 외모에 신경을 쓴다.(“나는 남들이 내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고, 신경을 쓴다.”)
2/ 대부분의 MZ는 한 달에 한 번 뷰티 제품을 구매하는데, 특히 스킨케어와 헤어케어 제품을 가장 많이, 자주 구매한다.
3/ 미국의 경우 TikTok Shop에서 뷰티 제품이 많이 팔린다. 이미 TikTok Shop은 Sephora보다 더 많은 양의 뷰티 제품을 팔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제품을 처음 구매하는 건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한다.
4/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뷰티 제품은 향수(fragrance)와 한국 화장품이다.
5/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뷰티 관련 단어 중 하나는 “glass skin(도자기 피부)”이다.
6/ 이제 미국 소비자들은 뷰티 제품 구매에서 ‘성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성분보다 더 중요한 건 브랜드이다. 아직도 샤넬이나 디올과 같은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
7/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Z 세대 고객은 뷰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은근히 높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보면, 뷰티 제품에 대해선, 요즘 아이들은 소셜미디어를 맹신하고, 한 번 구매한 제품이 마음에 들면, 계속 이 제품을 구매할 만큼 충성도가 높다. 하지만, Z 세대들에게 뷰티 제품 구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마케팅이 아니라 제품 그 자체가 좋아야 한다. 제품이 좋은 건 기본이고,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꾸준하고 일관된 목소리로 시장과 커뮤니티에 이 좋은 제품을 홍보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 뷰티 제품 영업, 마케팅, 판매가 이젠 정말 더럽게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해자(垓字)는 없다

요새 VC들이 소비재 쪽의 사업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검토하거나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 같은데, 우린 이런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계속 이 분야에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을 만나고,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도 생필품, 의류, 그리고 음식 분야에서 사업하고 있는 여러 창업가를 만났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직접 고객에게 자사몰, 그리고 다른 온라인 플랫폼이나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대부분 내가 이 에서 말했던 그런 어려움을 사업의 단계와는 상관없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분들과 이야기를 하면, 항상 등장하는 주재가 ‘해자(垓字)’이다. 사업의 종류에 상관없이 VC들이 창업가들에게 물어보는 게 그 사업만의 차별점, 진입장벽, 보호 장벽, 해자 관련 질문인데, “지금까지 비슷한 사업을 여러 번 검토했는데, 모두 다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 같네요. 우리가 다른 경쟁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우리만의 해자가 있나요?” , “이 사업이 잘되면 분명히 대기업도 같은 사업을 할 텐데요, 그 상황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우리만의 해자가 있을까요?”와 같은 유의 질문이다. 솔직히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투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이런 질문을 한 VC는 결국엔 이 사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비슷한 분야에서 경쟁하는 회사들이 투자자를 설득할 만한 명확하고 논리적인 해자를 갖추긴 어렵고 –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초기 스타트업은 – 대기업이 이 분야에 진출했을 때 다윗 같은 스타트업이 골리앗 같은 대기업을 이길만한 해자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이론적으로 명확하고 논리적인 상상 속의 해자가 있더라도, 아마도 투자자는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공장에서 뭔가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브랜드나 D2C 회사들은 이런 해자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도 이 분야에서 사업하는 한국과 미국 회사에 꽤 많이 투자하면서 이 힘든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나는 몇 년 전부터 이런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브랜드를 만드는 사업 분야에서 해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받아들이고 있고, 아예 이 분야에서 사업하는 창업가들에겐 본인이 하는 사업의 해자는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이런 D2C/브랜드 사업들을 보자: 제주 귤을 원료로 주스와 같은 다양한 시트러스 제품을 만드는 귤메달; 파워레이드나 게토레이드랑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 기능성 스포츠 드링크 얼티밋포텐셜을 만드는 어센트스포츠; 그리고 반려동물을 위한 영양제 페노비스를 만드는 노즈워크. 모두 다 잘하고 있는 스타트업이지만, 다른 스타트업도 충분히 이 분야로 들어올 수 있고, 돈/시간/인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대기업도 진출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규모가 나오는 시장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회사들이 우리 투자사들과 경쟁하기 시작하면 우리 창업가들은 어떤 해자를 만들면서 이길 수 있을까?

정답은, 이들이 구축할 수 있는 해자는 없다. 이 치열한 분야에서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고, 되도록 많은 소비자들의 눈에 노출되고, 그냥 무조건 많이 팔아서 매출 잘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많이 팔고, 어떻게 매출을 많이 만들 수 있을까? 이 또한 정답도 없고, 이를 위한 해자라는 것도 없다. 그냥 좋은 제품 만들고, 최대한 많은 채널을 통해서 유통하고, 동시에 마케팅도 잘 해야 한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혹시나 자체 공장을 만들거나 우리 제품을 OEM 제조하는 공장을 인수해서 생산의 전 과정을 수직통합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건 품질관리, 공정관리, 수량 조정, 가격 조정 면에서 우리에게 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체 공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단계까지 왔다면, 이미 우린 시장에서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브랜드가 됐을 것이고, 여기에서 말한 대로, 특정 분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됐다면, 이 자체가 엄청난 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그 강력한 브랜드가 되기 전까지는, 해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 자꾸 우리만의 차별점이나 해자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지 말고, 그 시간에 그냥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라. 대신,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너무 깊이 생각하기보단 get things done 전략으로 실행에 집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