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가 수많은 창업가 중 성공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서 투자하고, 수많은 아이디어 중 성공할 만한 사업을 찾아내서 투자하는 과정을 흔히 pattern recognition이라고 한다. 본인이 지금까지 쌓았던 경험,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했던 무수히 많은 옳은 결정과 틀린 결정을 참고해서 성공하는 사업과 창업가의 패턴을 찾아서 성공과 가장 공통점이 많은 곳에 투자하고, 실패와 가장 공통점이 많은 곳은 피하는 방법이다. 이는 마치 인공지능이 수많은 데이터 포인트를 학습하고 체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패턴을 발견하고 연관 짓는 방법과 큰 개념에서는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VC들에겐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 판단, 결정, 이 모든 것들의 총체가 이들만의 거대언어모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나도 VC로서의 14년 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엄청나게 많은 data point가 머리와 가슴속에 나만의 거대 모델로 존재한다. 그리고 새로운 창업가나 비즈니스를 만나게 되면, 나만의 거대 모델에서 그 어떤 패턴을 찾으려고 휴먼지능을 열심히 돌려본다. 과거에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봤는데, 그 사업이 잘 안됐다면, 내 휴먼지능은 그냥 패스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내고, 과거에 비슷한 성향의 창업가에게 투자했는데 크게 성공했다면, 내 휴먼지능은 투자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강하게 낸다.

실은, 모든 게 이렇게 간단했으면 좋겠지만, 내 안의 데이터 포인트들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여러 개 봤고, 몇 군데 이미 투자까지 했는데,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됐다면, 과연 여기서 내 휴먼지능은 무슨 패턴을 발견하고 어떤 조언을 나에게 해줄까?
좋은 학교 나오고 어떤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서 이 회사가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데 막대한 기여를 한 창업가에겐 투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분과 비슷한 경험을 한 창업가들을 무수히 만났는데, 대부분 잘 안됐다면 내 휴먼지능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그런데 잘 안된 창업가가 그다음 사업을 했을 땐 대박 났다면, 이런 경우라면 우리는 투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절대로 할 수 없는 사업은? 물론, 이런 사업에는 투자를 안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결정이다. 하지만, 내 거대 모델 안에는 규제받는 산업에서 틈새를 잘 찾고, 이 틈새를 크게 만들었던 데이터포인트도 있는데, 그러면 투자해야 하는 것일까? 아, 그런데 휴먼지능을 조금만 더 돌려보면, 전에 이런 논리로 크게 투자했는데 대박 망한 회사들이 여러 개 있다는 데이터포인트도 있는데, 그러면 여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 패턴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우린 매일 5개 정도의 회사를 만나는데, 대부분의 미팅을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수많은 데이터포인트를 기반으로 패턴을 찾으려는 휴먼지능이 과부하 되면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참 혼란스러운 게, 인공지능이라면 데이터포인트가 더 많이 쌓일수록 결과의 정확도가 더 높아져야 하는데, 휴먼지능의 경우 – 내 휴먼 지능 – 데이터포인트가 더 많아질수록 할루시네이션의 확률 또한 높아져서 투자 결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새 이런 식으로 투자 결정을 한다. 비슷한 사업이고, 비슷한 창업가이고, 비슷한 산업이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과거에 어떤 사업은 잘됐고 어떤 사업은 잘 안됐다면, 잠시 휴먼지능은 완전히 꺼버리고 그냥 내 직감에 의존한다. 내 직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최소한 환각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