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련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다 너무 과하게 접하는 용어가 바로 ‘제이커브’와 ‘하키스틱커브’다. 머릿속에서 시각화해 보면 두 단어 모두 다 비슷한 그림이 연상되는데, 기울기가 아주 가파르게 증가하는 성장 커브가 떠오를 것이다. 아마도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들은 모두 다 한 번씩 꿈꾸는 그런 커브이고, 솔직히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제이커브라는 단어를 – 요샌 하키스틱커브라는 말은 아예 안 쓰는 듯 – 남발해서 듣는 투자자로서는 좀 짜증이 많이 나긴 한다.
나는 공개적으로 자주 말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커브가 ‘제이커브’다. 하지만, 또 공개적으로 자주 말하는 게, 제이커브는 너무 싫지만, ‘하키스틱커브’는 좋아한다는 말이다.
두 커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단 제이커브는( J ) 앞부분이 매우 짧고 몸통 부분이 갑자기 수직으로 상승한다. 회사로 말하자면,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미친듯이 성장한다는 의미다. 실은 모든 창업가들이 이런 커브를 만들고 싶어 하고, 이렇게 회사를 키운 다음에 단시간 내에 엑싯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제이커브는 실은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커브다. 그 어떤 사업도 시작하자마자 단기간 내에 수직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제이커브가 제이커브인 이유는 그런 회사의 성장에 대해서 대중이 알게 된 시점이 바로 이 가파른 성장이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그렇지, 실제로 이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사업을 했고, 앞부분이 짧은 게 아니라 매우 길고 평평한, 기울기가 0인 회사들이다.
설령, 제이 커브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이런 성장이 그렇게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단시간 안에 사업이 고속 성장하면, 예상치 못한 성장에 의해서 회사가 견인되고,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각 성장의 단계에서 배움을 얻기보단 급한 불 끄는 데 급급해지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성장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이 성장을 가속하거나, 필요하면 늦출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외형만 커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좋은 회사들은 대부분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지만, 성장의 페이스에 맞춰서 회사가 조절되기보다는, 회사의 페이스에 맞춰서 의도적으로 성장을 조절한다. 시작하자마자 사업이 너무 빨리 성장하면 이게 잘 안된다.
하지만, 하키스틱커브는 제이커브와는 다르다. 하키스틱은( _____/ ) 앞부분이 매우 길고 기울기가 0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몸통이 수직으로 상승한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진 잘 알 것이다. 사업의 본질을 익히고, 비즈니스 모델을 견고하게 다지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엔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기다림과 노가다의 세월이고, 이 기간은 10년이 넘을 수도 있다. 우리도 이런 투자사들이 있기 때문에 매우 잘 알고 있다. 이런 성장을 하면 어떤 시점에 회사에서 어떤 결정을 했을 때, 어떤 성장이 있는지 잘 관찰할 수 있고, 배울 수가 있기 때문에 창업가들이 이 성장의 공식을 미래에 반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성장이 회사를 조정하기보단, 회사가 성장을 조정해서 훨씬 더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사업을 만들 수 있다.
우리 투자사 당근도 하키스틱커브로 성장했다. 많은 분이 당근이 단기간 내에 J 커브로 수직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창업 초반에는 기울기 0의 시간이 몇 년 있었다. ChatGPT를 만드는 OpenAI도 대중이 알게 된 시점, 즉 제이커브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시점인 2023년에 이미 8년 된 회사였다. 첫 8년은 기울기 0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라콜롬 커피도 13년 동안 단 하나의 매장을 운영하고, 그 이후에 고속 성장하면서 거의 유니콘이 됐다. 라콜롬브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회사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제이커브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키스틱 중에서도 가장 긴 하키스틱커브로 성장한 회사다.
3년 만에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서 엑싯하겠다는 어떤 창업가에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자,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입니다. 빨리 유니콘 엑싯하고 또다른 사업을 유니콘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10년 이상을 어떻게 기다리나요?”라고 반박했다.
이 분은 그 이후에 다시는 안 만났고, 앞으로도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하키스틱커브가 누워서 시작하는거라는걸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제이커브처럼 세워진 스틱인 줄 알았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어떻게 보냐의 차이이긴 한데요,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
스타트업이 제이커브, 즉 빠른 성장을 추구하게 되는 배경에는 창업자의 의지(혹은 욕심)도 있겠지만, 펀드의 만기 구조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벤처펀드가 약 8년 내외의 만기를 가지고 있고, 투자사 역시 그 기간 안에 수익을 실현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에게 빠른 성장을 요구하게 되는 구조가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 년 내 IPO나 M&A와 같은 엑싯을 전제로 한 조건이 투자 계약에 포함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투자를 받는 순간 시간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투자자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는 특정 투자사의 문제라기보다, 자본의 구조적인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선생님께서는 투자하신 회사들이 기울기가 거의 없는 기간을 비교적 오래 겪더라도 기다려주실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이해하고 있는 부분 중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소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