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분야의 소식을 계속 관심 있게 보는 분이면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있는 Bending Spoons라는 회사에 대해서 잘 알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또는 이 회사의 이상한 사명은 잘 모르더라도 최근 몇 년 동안 이 회사가 인수한 브랜드는 들어봤거나 오랫동안 돈을 내고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Vimeo, Eventbrite, Evernote, Brightcove, meetup, AOL 등이 그런 브랜드다. 벤딩스푼즈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비스지만 이젠 추억의 이름이 된 회사들을 상당히 싼 가격에 인수, 통합, 재정비해서 매출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회사이다. 얼마 전에 상장한 이 회사는 어떻게 보면 과거에 야후나 한국의 옐로모바일과 유사한 점이 많고, 또 다른 각도로 보면 회사를 인수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PE와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벤딩스푼즈에 대해 여러 기사를 읽었고, 읽을 때마다 이 회사의 기업 문화, 채용 방식, 운영 방법이 특이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중 대표이사의 운과 실력에 대한 철학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땐 운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하면서 시장과 고객이 열광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건 – 즉, 이 바닥에서 말하는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건 – 실력보단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운 좋게 product market fit을 찾은 사업을 운영하는 건 실력이라고 한다. 벤딩스푼즈의 논리에 의하면 이들이 인수한 우리가 잘 아는 한물간 브랜드들은 모두 창업가들이 초반에 운 좋게 product market fit을 찾았지만, 운영 실력이 부족해서 더 크게 성장시키는 데엔 실패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전략은 본인들이 제어할 수 없는 운은 – 즉, 사업을 시작하고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 그냥 철저히 다른 창업가들에게 외주화하고, 본인들이 100% 제어할 수 있는 실력에만 – 운 좋게 product market fit을 찾은 사업을 성장시키는 – 집중하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이걸 실행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쨌든 현재까지 벤딩스푼즈의 성적표를 보면 이들의 방식이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회사의 이런 독특한 전략에 대해서 업계의 다른 분들과 이야기해보면, 이 방식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게 아니고 이미 많은 PE 회사의 철학과 전략과 흡사한 것 같은데 그냥 이들이 실행을 더 잘하는 것 같다 – 현재까지는. 장기적으로도 계속 이 방식이 작동할진 더 지켜봐야할 것 같지만, 어쨌든 이런 흥미로운 회사가 실리콘밸리나 뉴욕이 아니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고, 가끔씩 관련해서 글도 쓰는데,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는 운이 너무 크게 작용해서 실력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거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벤딩스푼즈에 대해서 더 많은 자료와 기사를 읽을수록 혹시 우리도 운을 외주화하고 실력에만 의존할 방법이 있을지 조금씩 고민했었다.

며칠 뒤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건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사업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벤딩스푼즈처럼 확실한 운영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고, 우리가 만약에 실력이라는 게 있고, 실력이 우리가 하는 초기 투자에 적용된다면, 이건 오히려 벤딩스푼즈가 말하는 운의 영역에서 작용해야 하는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product market fit을 찾아야 하는 운의 영역에서 열심히 구르는 창업가와 우리는 한배를 탔기 때문에 우리가 운을 외주화하는 처지가 아니라 오히려 그 운을 외주 받는 처지다.

그래서 다시 고민의 방향을 바꿔봤다. 우리가 남에게 운을 외주화할 순 없고 오히려 그 외주를 받는 처지니, 운의 영역에서조차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실력을 키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결론은 매번 크게 다르지 않다. 운의 영역에서 실력을 발휘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된 표현이자 답이 없는 질문인데, 그나마 이걸 하고 싶다면 결국엔 이 운의 열쇠를 잡고 있는 창업가를 더 잘 선택하고, 더 좋은 분에게 더 잘 베팅해야 한다는 게 단순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