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1,000억 원 매출

바로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나는 요새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세상이 바뀌더라도, 바뀌지 않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그쪽을 꽤 많이 보고 있다. 이렇게 조금 다른 각도로 시장을 보면, 잘 안 바뀌는 분야가 생각보다 많은데, 먹는 것, 바르는 것, 입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터미네이터와 같은 휴머노이드가 길거리에 사람같이 돌아다녀도, 우린 계속 밥은 먹어야 하고, 얼굴과 몸에 뭔가를 발라야 하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몇 년 전에 DTC, 브랜드, 이커머스가 크게 유행하던 때가 있었고, 이때 엄청나게 많은 VC 돈이 이 분야에 투입됐는데, 돈 벌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요샌 대부분의 VC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나는 이 분야가 돈 벌기가 힘든 이유는 너무 많은 플레이어가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시장 자체가 돈을 못 버는 습성이 있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논리로 시장과 회사에 접근하면, 그 어떤 분야에도 투자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돈 벌기 쉬운 분야와 사업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요새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우린 최근에 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분야에 꽤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사업보다 성장의 기울기가 전반적으로 완만하고, 계속 뭔가를 만들어 팔아야 하므로 한계비용을 낮출 순 있어도 0으로 내릴 순 없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자본 집약적이라는 꼬리표를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점에선 아주 단순하고, 아주 훌륭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2025년 1사분기에 유니콘이 된 Top 10 글로벌 신생 유니콘 중 7개가 AI 관련 스타트업인데, AI가 주 사업이 아닌 나머지 3개 중 유독 내 눈에 띈 회사는 OLIPOP이라는 미국의 프리바이오틱 음료수 회사다. 이 회사의 2023년 매출은 약 2,500억 원이고, 2024년 매출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유니콘 기업가치는 약 2.5조 원이었다. 매출의 10배 정도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은 건데, 이 배수는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봐왔던 먹고, 마시고, 입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의 기업가치와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고, 이 분야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한 magic number는 연 매출 1,000억 원인 것 같다. 매출 1,000억 원을 하면 대부분 5,0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에 투자를 받거나, 1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에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사례를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매출 1,000억 원은 어떤 의미일까?

일단 엄청나게 큰 매출이다. 일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제품의 단가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많이 팔아야지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매출을 하면 꽤 의미 있는 규모의 소비자들이 이 제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프리바이오틱 소다에 대해 이야기하면 10명 중 4명은 위에서 말한 OLIPOP의 브랜드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매출 1,000억 원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하면, 그 분야를 수십 년 ~ 수백 년 동안 장악하고 있는 공룡인 대기업들에게 조금씩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아직까진 경쟁사는 아니지만, 대기업이 뭐만 하려고 하면 이 작은 회사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굉장히 불편하고 짜증 나는 존재로 강하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했는데, 마하트가 간디의 명언 중 하나인, “처음엔 사람들이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그다음엔 당신을 비웃을 것이고,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고, 그러고 나서 당신은 이길 것이다”에서 대기업들이 1,000억 매출 하는 스타트업을 대하는 자세는 “다음엔 당신과 싸울 것이다” 바로 그 직전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대부분 이 시점에서 그 분야 1,2등 회사가 1,000억 원 매출의 대략 10배인 1조 원 정도의 가격에 회사를 인수한다. 이 정도까지 매출을 키운 브랜드라면, 대기업이 가진 자원과 유통 채널을 활용하면 장기적으론 이보다 훨씬 더 큰 브랜드로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게 가능하고, 정말로 인수 이후 훨씬 더 큰 브랜드가 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산업에서는 유통이 가장 막강한 권력이고 큰 회사가 작은 회사보다 항상 잘하는 게 이 유통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시장이 작다. 많이 작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은 한국의 5,000만 명의 잠재 소비자보다 훨씬 더 큰 글로벌 시장이다. 이미 한국이 만드는 먹는 것, 마시는 것, 바르는 것과 입는 것들은 해외 시장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이미 많이 있지만, 조만간 한국에도 매출 1,000억 원을 찍는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은 글로벌/한국 대기업들이 이 회사들을 높은 기업가치에 인수할 수 있길 바란다. 아니면, 스스로 계속 성장해서 이들이 대기업이 되고, 다른 스타트업을 높은 기업가치에 인수하고, 이 현상이 계속 반복될 수 있길 바란다.

런치랩

*이 글은 우리 투자사의 홍보성 내용을 포함합니다. 관심 없거나, 이런 홍보성 내용이 싫으면 그냥 안 읽으면 됩니다.

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삼성역엔 식당이 엄청 많다. 점심을 항상 밖에 나가서 먹진 않지만, 나가서 먹는다면 도보로 갈 수 있는 식당이 1,500개는 충분히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다가 배달 음식까지 포함하면, 식당과 메뉴의 선택지는 정말 많아진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삼성역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을 한다. 아마도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이 공통으로 매일 같은 질문을 할 것이고, 이건 외국의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선택할 옵션이 넘쳐흐르는데도, “오늘 점심 뭐 먹지?” 고민은 한국의 직장인들이 수십 년 동안 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으로 생각해서, 우린 계속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었다. 완벽한 솔루션은 아니었지만, 플레이팅이라는 회사에 여러 번 투자하면서 이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랬지만, 플레이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고객들에게 배달하는 사업은 돈 버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보통 이런 경험을 하면, 많은 분들이 이런 사업은 어렵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망했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분야나 사업에는 다시 투자하지 않는다. 우린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는 잘 안됐지만, 아직도 오늘 뭘 먹을지라는 문제는 존재하고, 오히려 물가가 상승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고 커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방식으로 이 시장에 접근해서 성공한다면 엄청나게 큰 성공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른 창업가들을 만났지만, 항상 2% 부족한 점들이 보였고, 이미 우리가 F&B 분야에 투자를 좀 많이 하면서 돈 버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걸 많이 경험해서 그런지, 조금 더 보수적으로 검토하다 보니, 선뜻 투자하진 못했다. 그러다 런치랩을 검토하게 됐고, 비즈니스 모델도 꽤 단단하고, 창업가도 용병형 성향이 강해서 몇 달 전에 런치랩의 첫 기관투자자가 됐다.

런치랩의 사업은 간단하다. 가정식, 샐러위치(샐러드+샌드위치), 샐러드밀 중 하나만 고르면, 매일 회사로 점심을 배달해 주고, 먹은 후에는 음식쓰레기까지 포함한 남은 모든 걸 다시 수거해간다. 메뉴는 회사에서 정하기 때문에, 별로 안 좋아하는 식단이 걸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선택 장애를 없애주기 때문에 많은 바쁜 직장인들이 훨씬 더 좋아한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메뉴를 단순화하는 게 운영 효율 면에서도 훨씬 비용이 덜 든다. 참고로, 가정식 도시락은 밥과 국을 따뜻한 상태로 그대로 배달해 줘서 가정식과 비슷한 분위기의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원래 런치랩의 주 고객층은 대기업보단 사내 카페테리아나 식당이 없는 직원 50명 이하의 회사였는데, 요샌 대기업도 종종 문의가 들어오면서 런치랩의 점심 서비스를 그룹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인원수(4~5명), 이용주기(주 2회 이상만) 등 기본 요건만 맞으면 누구든 런치랩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에서 문의하거나, 바로 점심 체험하기를 신청해 보면 된다. 이 블로그를 보고 알게 됐다고 하면, 할인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 더 잘 해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