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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을 믿어야 할 때

2010년 초반에 LA를 대표했던 B2C 회사 중 남성 면도기를 정기구독으로 배송했던 Dollar Shave Club(DSC)이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나는 이 회사의 고객이기도 했고, 이 회사의 창업가 마이클 두빈을 직접 여러 번 봤는데, 참 재미없고 평범한 제품인 남성 면도기를 창의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재미있는 사업으로 만든 인상적인 회사였다. 유니레버가 2016년도에 이 회사를 $1B에 인수했다. 그 가격표도 엄청났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이 회사의 면도기는 한국의 도루코에서 OEM 제조했고, 도루코도 이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엑싯이 마무리됐을 때 도루코가 번 돈은 재무제표에서 눈에 확 띌 정도로 도루코의 수익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회사가 그렇듯이, DSC의 사업도 예전만큼 잘 되진 않아서 유니레버도 몇 년 전에 이 사업을 다른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얼마 전에 DSC의 창업가 마이클 두빈의 인터뷰를 참 재미있게 들었는데, 15년 전에 내가 LA에서 이분에게 직접 들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와 일화들이 서로 겹치면서 “아 맞다. 그때도 이 친구가 이런 내용을 강조했었지!”라는 아하 모멘트가 있어서 여기에 몇 자 남겨본다.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마이클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같이 창의적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지루한 산업에서 창업할 생각을 했나요? 다른 더 재미있는 사업은 생각 안 해봤었나요?”

이 질문에 대한 긴 답변이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마이클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데이터보단 본인의 직감을 믿었는데,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과거에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고 심사숙고한 후에 내린 결정은 100% 잘못된 결정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일수록 직감에 의존해 심플하게 의사결정을 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섹시하지 않은 남성 면도기 구독 이커머스 사업을 이 친구는 본인의 직감을 십분 활용해서 가장 재미있고 가장 섹시한 사업으로 만들었는데, 이 회사의 마케팅이 당시 얼마나 재미있고 파격적이었나 하면, 이 유투브 광고 영상을 보면 금방 이해할 것이다. 지금 봐도 상당히 잘 만든 광고 영상인데, 창업가의 직감이 여간 좋지 않으면 이런 콘텐츠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DSC의 시작도 직감에 의한 창업 결정이었다고 한다. 본인은 wet 면도를 매일 해야 하는데, 질레트와 쉬크는 너무 비싸고,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은 사용하면 항상 상처가 나서, 가성비가 좋은 면도기와 면도날은 없을까 계속 스스로 질문했다고 한다. 또한, 남성들이 거의 매일 사용하는 제품이라서 정기구독 서비스가 시장에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찾아보니 UI/UX가 깔끔하고 사용성이 좋은 서비스가 없었고, 무엇보다 실제 제품을 받아보니 면도기의 성능이 모두 다 별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가지 고민점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분명히 매일 면도하는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다른 남성들도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경험하고 있어야 하는데, 주변에 그 누구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가성비 좋은 면도기를 정기적으로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사업은 대박이었는데, 왜 이런 간단한 아이템을 그 누구도 제대로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혹시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둘째는, 이 사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변에 물어보니, 대부분 반응이 별로였다고 한다. 하지만, 면도기 정기구독 서비스뿐만 아니라, 웬만한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는 일반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서는 큰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첫 번째 고민이 문제였다. 세상의 절반이 남성이고, 면도기는 너무 많은 남성이 사용하는 제품이고, 면도는 이들이 매일 하는 행위인데, 그 누구도 가성비 좋은 면도기가 없다는 불평을 안 하고, 그 누구도 가성비 좋은 면도기를 집으로 정기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없다는 불평을 안 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냐는 의문을 그는 계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냥 직감에 의존하기로 했다. 직감으로 그가 내린 결정은 모든 남성이 이런 문제가 있고, 이건 아주 큰 불편함이지만, 이 세상 대부분 사람은 이성적이고, 이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본인을 적응시키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에 “원래 그런 거야”라면서 그냥 불편하게 살고 있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위에서 말하는 “이성적인”에 대한 정의는 조지 버나드 쇼의 설명을 인용해보겠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킨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킨다. 고로 모든 변화와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의 직감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DSC는 당시 미국 남성 대부분이 아는 브랜드로 초고속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마이클은 사업하는 과정에서 힘든 결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데이터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존하기보단 본인의 직감을 믿었고, 이런 그의 직감에 의한 결정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회사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

할 놈은 한다

한 달 전에 미국에서 이제 첫 번째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하고 있는 신생 VC 파트너와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은 전에 꽤 큰 VC에서 심사역을 몇 년 하다가 독립해서 이제 본인의 펀드로 투자를 시작했는데, 요새 대부분의 VC와 비슷하게 “AI first, AI only”를 외치면서 열심히 AI 회사들만 검토하고 있었다.

스트롱은 왜 AI에만 올인하지 않고 큰돈 안 되는 다른 분야에도 투자하는지 물어봐서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 철학, 그리고 전략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특정 분야를 선택한 후,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업가와 회사를 찾아서 투자하는 top-down 방식의 투자가 아니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냥 좋은 창업가에게 투자하는 bottom-up 방식의 전략을 구사하는 투자자이기 때문에 AI에만 투자하진 않는다는 점을 잘 설명했다. 그리고 AI가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고, 과거 그 어떤 기술보다 더 빨리 변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AI가 아닌 사업이 나쁜 사업은 아니기 때문에 지난 14년 동안 해왔듯이 모든 분야를 보면서 좋은 창업가를 발견하는 데 시간을 대부분 보낸다고 했다.

이 분이 이전 회사에서는 소비재와 B2C에도 활발하게 투자한 걸 알기 때문에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화장품, 먹는 것과 같은 소비재 스타트업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Kihong. 소비재 회사는 이제 끝났어. 과거에는 잘 됐고, 돈을 벌었는데 이제 이런 회사들에 투자하는 건 stupid 한 전략이야.” 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시장 자체가 너무 포화돼서 이 무한 경쟁에서 이기고 크게 성장하는 회사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고, 이 때문에 몇 년 전과 같이 소비재 회사에 투입되는 벤처 투자금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설득력 제로인 의견이고, 이 분도 아마도 여기저기서 듣거나 읽은, 남의 의견을 나에게 앵무새같이 따라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논리는 AI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엔 오히려 AI 시장이 더 포화된 것 같은데?”라고 내가 반박하니 AI가 미래이고, 완전히 다르다는, 역시 설득력 제로인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실은, 이 분이 이야기한 것 중 틀린 내용은 없다. 소비재 시장은 정말로 포화됐고, 같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너무 많다. 대부분 제품을 보면 차별점도 안 보이고, 뭘 구매해야 할지 선택 장애가 오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소비재이다. 우리가 매일 바르는 화장품, 매일 먹는 음식, 매일 입는 옷과 신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10년 전만 해도 VC 자금이 넘쳐흐르던 소비재 분야에서 요새 투자금이 거의 메말랐다는 이 분의 말도 사실이다.

그럼 왜 스트롱은 병신같이 계속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내 세련되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답은 바로 아무리 시장이 작고, 아무리 시장이 포화되고, 아무리 시장에 돈이 없어도, 할 놈은 항상 하기 때문이다.

화장품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그렇게 브랜드가 많고, 매일 크고 작은 새로운 브랜드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장이 정말 포화됐고, 껍데기만 다른 대부분의 제품은 차별점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박 터지는 시장에서도 해마다 1,000억 원의 매출을 하는 여러 개의 새로운 회사들이 생기고 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먹을게 이렇게 넘치고 넘치는 세상에서 아직도 대박 터트리는 좋은 회사들이 계속 새롭게 생기고 있다. 시장과는 상관없이 좋은 창업가는 계속 좋은 회사를 만들고 있고, 이 중 극소수는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극소수의 회사만 살아남고 성공하는 논리는 소비재나 B2C 분야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할 놈은 하기 때문이다. 이건 시장과도 상관없고, 돈과도 상관없다. 할 놈은 그냥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는다. 이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고, 이 분야의 창업가를 계속 만나고, 이 분야에 계속 투자하고 있는 우리가 바로 그 산증인이다. 물론, 우리가 항상 성공하는 투자를 하고 있진 않지만.

할 놈은 항상 하고, 못 할 놈은 항상 못 하고, 안 할 놈은 항상 안 한다. 할 놈이 되자.

철면피

본인이 얼굴이 두꺼운 철면피이거나, 또는 주변에 이렇게 얼굴이 두꺼운 철면피 친구와 지인이 항상 몇 명씩 누구나 있을 것이다. 철면피는 말 그대로 얼굴이 두꺼워서 남의 비판을 신경 쓰지 않는 뻔뻔한 사람을 뜻하는데,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라는 말도 우리는 자주 사용한다. 이 말은 어떻게, 언제 쓰이냐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데, 오늘은 아주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철면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얼마 전에 미국의 슈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저당 간식 스키니딥드(SkinnyDipped)의 창업 이야기를 팟캐스트로 들었다. 초코 코팅 아몬드인데, 주로 다크초콜릿을 사용하고 코팅을 아주 얇게 해서 다른 간식보다 당과 열량이 낮은 제품인데, 모든 창업 이야기가 웬만한 TV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듯이, 이 회사의 이야기도 너무 재미있었다. 이 회사의 창업 초기에는 내가 다른 스타트업의 창업 초기에서도 항상 발견하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창업가들의 철면피와 뻔뻔스러움이다. 엄마와 딸이 창업한 회사인데 제품을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입점시키기 위해서 초반에는 두 분이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일단 Whole Foods 입점을 위해 간식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서 매일 매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린 이야기도 있고(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도 실제로 이렇게 한 적이 있는데, 이건 요새도 잘 먹히는 방법이다.), 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회사의 본사가 있던 시애틀의 구글 건물에 몰래 들어가서, 구내식당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쉐프를 찾았고, 스키니딥드 제품을 구글 직원들에게 간식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설득한 이야기다.

이런 두꺼운 낯짝으로 고객사, 투자사, 협력사에 쳐들어가는 건 내가 아는 매우 많은 창업가가 창업 초기에 했던할 수밖에 없었던 공통된 필수 코스인데, 실제로 사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다 이렇게 해야 하는 시점이 있다. 그리고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모든 창업가들이 이렇게 철면피를 깔고, 일반인들은 쪽팔려서 절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을 해야 한다.

나도 오래전에 영업하면서 철면피 영업을 했었고, 뮤직쉐이크를 하면서도 여러 번 이런 경험이 있고, 스트롱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냥 여기저기 쳐들어가서 달성하고자 하는 일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모든 쳐들어감이 성공하진 못했고, 어떤 경우에는 철면피가 찢어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정말 간절했고, 그 간절함이 당시에 이런 두꺼운 낯짝을 형성해 준 것 같다.

나도 이런 경험을 직접 해봤기 때문에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도 가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저는 그런 거 원래 못해요” ,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한다. 나는 “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다.”라고 하지만, 실제로 철면피를 깔고 행동할 수 있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이분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위에서 말한 스키니딥드 창업가나 과거의 나 같은 사람도 태어날 때부터 쪽팔림을 모르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철면피였던 건 아니다. 이들도 당연히 안 만나주려고 하는 사람들의 사무실에 불쑥 쳐들어가거나, 누가 건물의 출입구를 열어주기를 하염없이 추위에서 기다리거나, 안 사겠다고 하는 잠재 고객사 대표의 새벽 출근길 자가용의 문을 기사님 대신 매일 열어주고 인사하는 짓을 너무너무 즐겁고 기쁘게 하진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도 아주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고,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다.

모든 창업가에겐 어느 정도의 철면피가 꼭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이 회사를 처음 창업하고,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대부분 투자자들이 만나고 싶지 않거나 관심 없는 사람이고, 협력업체들이 협업하고 싶지 않거나 관심 없는 사람이고, 좋은 잠재 임직원분들이 만나고 싶지 않거나 관심 없는 사람인데, 나를 만나기 싫거나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쳐들어가는 것이다. 아주 힘들고, 아주 쪽팔리고, 아주 자존심 상하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드는, 그런 행동이지만,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무리수를 둬서 일단 만나면 그 이후에 안 될 일도 되는 것을 나는 직접 경험해봤고, 여러 번 옆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 누구도 철면피를 갖고 태어나진 않았다. 꼭 필요하고, 꼭 해야 하니까 낯짝을 두껍게 만든 것이다.

소비자 DNA

2주 전에 잠깐 동경에 갔었는데, 과거부터 친분이 있던 일본 VC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 이야기를 특히 많이 했는데, 한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나 같은 VC는 당연히 일본 시장보단 한국 스타트업 시장이 더 좋다고 믿지만, 내가 만난 일본 VC들도 대부분 한국의 벤처생태계를 부러워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떤 일본 VC는 대놓고 나에게 한국 벤처생태계를 볼 때마다 너무나 부럽고, 일본도 한국 시장과 창업가들로부터 A부터 Z까지 모든 걸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상장 시장의 크기는 한국의 3.5배 정도가 된다. 상당히 크고, 난 한국이 조만간 일본의 상장 시장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현재의 이 규모는 상당히 부럽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일본 VC들은 오히려 한국의 역동적이고 큰 IPO 시장이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무슨 말인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일본의 상장 시장은 크지만, 자세히 보면 tech IPO는 질보단 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이들의 답변이다. 한국 창업가들은 꿈과 야망이 상대적으로 커서 항상 아주 큰 IPO를 꿈꾸면서 사업을 하는데 – 물론, 그렇다고 IPO를 다 하는 것도 아니고, 해도 큰 IPO가 되는 건 아니지만 – 일본 창업가들은 사업하다가 어느 시점에 그냥 작은 IPO를 하는 게 요샌 유행같이 번지고 있다고 했다. 한 1,000억 정도의 IPO를 하면 창업가들은 그래도 잘 먹고 잘살 수 있고, 일본에서 이런 작은 IPO를 하는 게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너도나도 적당한 규모로 사업을 키우고 IPO를 한다고 들었다. 창업가들은 돈을 벌어서 좋지만, 이 회사에 투자한 VC는 큰 재미를 못 보고, 계속 창업가들의 꿈과 야망이 이렇게 줄어들면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는 큰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우려를 대화 내내 표시했다. 정확하게 “작은 IPO가 하나씩 될 때마다 일본 창업가들의 야망도 하나씩 줄어드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 같다.

그리고 일본 VC들로부터 내가 반복적으로 들었던 주제이자, 이들이 한국에 대해서 가장 부러워하는 게 한국인들의 “소비자 DNA(Consumer DNA)”였다. 한국 시장엔 소비자 DNA가 매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네이버, 쿠팡, 카카오, 토스, 당근, 배달의 민족 등과 같은 좋은 자체 B2C 유니콘을 끊임없이 만들고 제품화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좋은 소비자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면,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과 질투가 발동하면서 계속 더 좋은 기능, 더 좋은 UI/UX, 더 좋은 가격의 경쟁 제품들이 나오면서 “양이 질을 만드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일본은 이 소비자 DNA가 점점 더 사라져서 이젠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창업가들은 대부분 B2B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의 B2C 제품이 한국과 같이 많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다. 하지만, 인구도 많고 시장이 크기 때문에 일본의 소비자 시장은 외국 회사들의 놀이터가 됐다. 검색은 구글, 동영상은 유튜브, 지도는 구글맵스, 이커머스는 아마존, 택시 호출은 우버 등,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대부분의 B2C 제품은 외산 제품들이다. 그러면서 내가 들었던 말은 일본은 전 세계에서 외국 B2C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가장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이고됐고, 이들은 일본의 소비자 DNA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을 많이 표시했다.

그리고 한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우리만의 소비자 DNA를 기반으로 케이팝, 케이푸드, 케이뷰티, 케이콘텐츠와 같은 새로운 무형의 소비자 DNA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 무형의 한국의 문화가 현재 일본 시장을 완전히 쓰나미같이 덮치고 있다. 실은 일본도 한 때는 다른 나라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은 이게 다 죽었고, 오히려 한국 문화가 과거 일본 문화보다 더 커지고 있는데, 이게 모두 다 일본의 소비자 DNA의 소멸로 인한 아주 좋지 않은 결과라는 결론을 이분은 내렸다.

물론, 한두 명의 일본 VC가 일본과 한국의 시장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 현황을 일반화할 수도 없지만, 10년 넘게 일본에서 투자하고 있는 VC들에게 이날 내가 들었던 내용만을 기반으로 결론을 내려보면, B2C 분야에서는 한국 창업가들이 일본 시장을 접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 B2C로 시작하지만, 남에게 지는 걸 배 아파하는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과 질투심으로 결국엔 B2B 사업도 일본 시장에서 더 잘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정말로 더 많은 한국 창업가들이 일본 시장에 진출해서 거대한 사업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내 친구이자 VC인 일본 투자자가 한국 시장이 부럽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엔 우리의 창업가들이다. 한 골 먹으면 두 골을 넣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우리 특유의 성깔?, 절대로 죽지 않고 생존하는 바퀴벌레력, 이 모든 게 한국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에 여러 번 포스팅 했지만, 이 강점을 우린 계속 살려야 하고, 이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사용자 제작 관련

얼마 전에 읽은 기사에 의하면 전 세계 유튜브 사용자의 99%는 평생 한 번도 그 어떤 영상도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다른 유튜브 사용자 1%가 올린 콘텐츠를 소비하기만 한다. 내가 오래전에 뮤직쉐이크를 했을 때도 모든 유저의 20%만 음악을 생성했고, 나머지 80%는 한 번도 음악을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든 음악을 듣기만 해서, 콘텐츠 생성과 소비의 대략적인 기울어진 관계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유튜브의 99대 1 수치는 약간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들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을 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돈 한 푼 못 벌고 그냥 사라질 확률이 더 큰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 주변을 보면 이런 제품, 서비스, 플랫폼이 많다. 일단 뮤직쉐이크도 음악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보통 이상의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악 생성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이렇게 만든 음악을 다른 사람들이 재생해서 들을 수 있는 소비자를 위한 플랫폼도 운영했다.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사업이었다. 창작자들이 웹소설이나 웹툰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이 창작물을 다른 사람들이 언제든지 읽으면서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서비스도 우리 주변에 넘친다. 이런 서비스도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플랫폼이다.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영상을 올려서, 다양한 편집 기능을 제공하는, 창작자를 위한 소프트웨어도 제공하지만, 이를 다른 유저들이 재생해서 시청하고, 코멘트도 남기고, 반응도 남기고 공유할 수 있는 소비자를 위한 거대한 플랫폼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경험을 자세히 복기해보면, 이렇게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사업을 하는 서비스의 시작은 대부분 창작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도 어떻게 하면 악기를 못 다루는 대부분의 일반인이,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싸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몇 년 동안 끊임없이 했고, 끊임없는 기능을 추가하면서 음악 창작 소프트웨어를 개선했다. 두 번 클릭 해야 하는 기능을 한 번 클릭으로 개선하고, 당시 최고의 플래시 기술자를 영입해서 음악 제작 과정에서 0.5초의 딜레이도 발생하지 않게,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완벽하고, 가장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웹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

결과는 그렇게 좋진 않았다. 나는 이렇게 하면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음악을 창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창작자의 비율은 20%를 절대로 넘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 몇십억원과 몇 년이라는 시간을 쓴 후에 내가 깨달았던 건, 이 세상에 창작자는 극소수이며, 우리가 창작 과정을 아무리 쉽게 만들어도 일반인들은 본인들이 직접 창작하기보단 남이 만든 걸 소비하는 걸 선호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게 인간의 DNA라는 걸. 반면에, 창작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소프트웨어가 복잡하고, 그 과정이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창작 DNA를 가진 이들은 방법을 찾아서 뭔가를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겐 아주 값비싼 수업을 통한 배움이었다.

그 이후에 우리는 곧바로 창작자들보단 이들이 만드는 음악을 듣는 소비자들에게 초점을 돌렸고, 이들이 음악을 더 쉽게 발견, 재생, 그리고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하는 데 노력했지만, 너무 늦게 이걸 깨달았고, 이미 바뀐 시장의 판도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물론, 이 외에도 다른 어려운 도전이 너무 많긴 했지만.

그래서 일반인들이 뭔가를 쉽게 제작할 수 있는 툴도 만들도, 이들의 창작물을 다른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만드는 사업은 정말 어렵다. 이런 서비스는 창작자가 아니라 그 창작물을 보고, 읽고, 듣는 소비자로부터 돈을 버는 게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물론, 창작자를 위한 툴을 정말 기깔나게 만들고, 이 툴을 엄청나게 비싸게 팔아서 소수의 고객으로부터 인당 매출을 극대화하면 되는데, 모두 잘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창작자는 배고픈 아티스트들이라서, 여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유튜브 사용자의 99%는 한 번도 영상을 올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유튜브는 이들로부터 50조 원 이상의 매출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