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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와 읽기의 중요성

며칠 전에 쓴 에서 공유했듯이 우린 상당히 많은 인바운드 콜드 이메일을 받는다. 스트롱에게 뭔가를 제안하는 업체가 연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99%는 우리에게 피칭하는 스타트업 대표의 이메일이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누가 어디서 언제 어떤 엄청난 사업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스트롱 웹사이트에 언제든지 우리에게 피칭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써놨기 때문에, 우리는 소개 없이 오는 이런 콜드 이메일을 웬만하면 다 읽는다.

몇 년 전에는 이렇게 연락이 오는 창업가를 나는 되도록 30분~45분 정도 직접 만나서 어떤 분인지 파악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젠 콜드이메일이 오면 보낸 분과 두세 번 정도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한 후에 이분을 만날지 안 만날지 결정을 하고, 이렇게 했을 때 전환율은 20% 미만으로 그렇게 높진 않다.

왜 나는 10개의 콜드 이메일이 오면 왜 이 중 2명의 창업가만 대면 미팅하고, 나머지 8명은 안 만날까? 결론은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강조하는 “쓰기와 읽기”와 연관됐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써보고 싶다.

나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 이 분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IQ와 EQ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분이 쓴 글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작가는 아니라서 작품을 만들진 않지만, 일을 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다 이메일을 작성한다. 나에겐 이런 일과 관련해서 작성하는 이메일이 이들이 쓰는 글이다.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업무의 많은 부분을 아직도 이메일로 하는 처지에선 이메일 = 태도, 인격, 사고방식, 논리, IQ, EQ일 정도로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이 쓴 이메일을 자세히 읽어보면 여기에 정말 많은 게 담겨있어서, 콜드 이메일이 오면 나에겐 1/ 바로 지우기, 2/ 질문하기, 3/ 바로 만나기, 이 세 가지 옵션이 있다.

일단 나는 이메일 제목을 본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본인이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전달할지 모르는 창업가는 제목부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케이스라면 여기서 바로 삭제다. 제목을 넘어가면 본문을 읽어본다. 역시 개념이 없는 창업가의 이메일 내용은 상당히 거추장스럽고 핵심이 없다. 부사가 많고, 느낌표가 많고, 이 분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이해가 안 간다. 두 번 읽었는데 핵심 파악이 안 되면 여기서 삭제다.

그다음으론 첨부한 사업계획서를 확인해 본다. 이제 나는 pitch deck을 하도 많이 봐서 내용을 깊게 읽지 않고, 전반적인 흐름만 봐도 이 자료를 만든 사람이 생각하면서 만든 건지, 그냥 여기저기의 내용을 짜깁기 한 건지, 아니면 아예 AI로만 만든 건지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자료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다. 자료만 번지르르하게 만들고 실제 사업은 개판으로 하는 창업가를 하도 많이 알고, 사업은 손가락과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과 손발로 하는 것이라는 걸 더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투자자에게 콜드로 연락할 땐, 이 두 명을 잇는 얇은 끈은 이메일과 자료라서 여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통과하면, 그리고 창업가가 쓴 글, 흐름, 내용이 맘에 들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미팅 요청을 한다.

자료까지 읽었고, 전반적으로 괜찮지만 당장 만나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면 이메일로 추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메일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내 나름의 human intelligence를 기반으로 이 창업가가 어떤 사람인지, 시간을 투자해서 만나볼 만한 분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묻는 질문에 투명하고 간단명료하게 답을 할 수 있는 분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장황하고 논지에 어긋나게 제공하는 분이 상당히 많은데, 이메일 커뮤니케이션만 봐도 이 분이 앞으로 직원, 투자자, 고객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그림이 그려진다.
이메일에 내용은 없는데 부사, 느낌표, 볼드체, 밑줄, 다양한 컬러의 텍스트만 과하면 이 분은 프로페셔널한 소통이 힘든 분일 확률이 높다.
이메일 답변이 오는 시간도 나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 답변 오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면, 이 분은 전반적으로 빠른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는 분일 확률이 높다. 투자를 꼭 받아야 하는 이 간절한 시점에도 이렇게 느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실제 투자받은 후엔 얼마나 더 느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ply all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소양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답변을 할 때 우리 동료분들을 모두 cc 하면, 이후의 소통은 항상 같이하는 게 기본인데, 나에게만 답변이 오고, 내가 다시 답변하면서 우리 팀을 cc 하면, 또 나에게만 답변을 한다. 결국 “항상 reply all 해주세요”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를 해드리는데, 이후에도 이걸 잘 안 하는 분도 많다. 이건 지능에 약간 문제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 경험이 별로면, 몇 번 소통하다가 결국엔 pass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콜드 이메일을 스크린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노력을 한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메일을 작성하고, 내용이 있는 자료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뭐든지 많이 써보는 것이다. 일기를 매일 쓰던, 블로그를 쓰던, 하여튼 writing을 무조건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잘 쓰고 싶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책, 잡지, 신문 등 텍스트를 많이 읽으면 잘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100% 모두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도 잘 쓴다.

배움의 압축

우리는 2012년도부터 평균적으로 매달 한두 개의 신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투자하기 위해서 몇 년 전부터 해마다 1,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작년의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2025년에도 1,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검토한 것 같다. 1,500개 회사를 모두 다 대면 미팅하는 건 아니다. 어떤 회사는 그냥 자료만 보고 패스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스트롱은 대면 미팅을 국내 그 어떤 VC보다 더 많이 할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투자팀에는 6명의 심사역이 있는데 – 내 공식 직책은 대표 또는 파트너지만 회사를 만나서 검토할 땐 나도 그냥 심사역이다 – 우리는 매일 평균 5개~8개 정도의 미팅을 소화하지 않을까 싶다.

작년 12월은 이런 미팅을 하느라 참 바빴다. 하루는 내가 5개의 미팅을 했는데, 이 5개 모두 매우 복잡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사업이었다. 미팅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전에 자료는 충분히 숙지하고, 되도록 사전 질문도 다 적어서 미팅에 임해야 하는데, 솔직히 이렇게 매일 미팅이 너무 많은 시기에는 사업 자료만 대충 보고 참석한다. 실은 이날은 5개 스타트업의 자료도 꽤 깊게 보고 미팅에 참여했고, 미팅 시간에도 초집중했는데, 복잡한 사업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해도 사업 내용과 비즈니스 모델을 100% 다 이해하진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초집중해서 공부하고 미팅하느라 잘 안 돌아가는 뇌를 많이 써서 그런지, 그날 집에 오니까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한 것처럼 에너지가 방전됐다. 힘든 12월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5개의 미팅을 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전혀 모르거나,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나름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생겼는데, 이렇게 단시간 안에 배움을 압축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매우 뿌듯했다. VC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분야에 대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미팅을 통해서 5년 이상 이 분야에서 습득한 경험, 지식, 노하우, 그리고 영업비밀을 다른 창업가들을 통해서 1시간 반 만에 가만히 앉아서 배울 수 있는 이런 배움의 압축을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게 고마웠다. 그것도 이런 배움의 압축을 나는 1년 365일 매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잊고 지냈는데, 이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내가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직업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상기시킬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신기하고 모든 창업가와의 미팅이 보람찬 건 아니다. 어떤 미팅은 아주 좋고, 어떤 미팅은 아주 별로이고, 어떤 미팅은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만, 대부분의 미팅은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창업가들과의 만남 중 완전히 쓸모없는 미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모든 미팅은 배울 게 있고, 완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창업가와의 미팅도 낙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다시는 이런 분들과 대면 미팅하면 안 되겠다는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미팅이다.

VC가 아니더라도 항상 배울 수 있는 직업은 이 세상에 매우 많다. 뭐를 하든 학습하는 자세만 있다면 배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배움을 단시간 안에 압축해서 얻을 수 있는 직업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이 VC라는 직업에 대해 자주 강조하는 점은, 이 일은 끝없이 듣고, 끝없이 생각하고, 끝없이 질문하는 건데, 이건 마치 학교에서 공부하고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는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학교에서 얻는 배움보다 훨씬 더 압축됐고, 모든 지식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대부분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배움이라서 VC는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압축된 배움을 가장 빨리 습득할 수 있는, 가장 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도 하고, 질문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지만, 결국엔 시간 내서 우리를 찾아오는 창업가라는 현장의 선생님에게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꽤 편리한 직업이다.

나는 일주일에 책을 한 권 정도 읽는데, 독서도 작가의 50년 경험과 노하우를 4시간 만에 습득할 수 있는 압축적 배움의 대명사이다. 창업가와의 미팅과 독서를 병행하면, 정말 많은 걸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