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Kihong Bae: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며칠 전에 ‘오늘회’라는 수산물 당일 배송 서비스 회사가 위기에 처해있고, 전 직원에게 사직을 권고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100억 원 넘게 펀딩받은 스타트업이고, 내 주변에도 이 서비스를 자주 애용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나도 좀 놀라긴 했다. 나는 이 서비스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지만, 여러 분야의 이커머스 회사에 투자한 경험으로 봤을 때, 맛있고 신선한 수산물을 당일 배송해주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돈이 많이 들어갈진 어느 정도 상상이 갔다.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두 가지 면에서 놀랐다. 첫째는, 전 직원 권고사직이라는 대규모 구조조정 소식이었다. 몇 개의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건, 누구나 다 시작할 순 있지만, 다양한 제품을 다양한 고객들에게 배송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사업을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사업이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가끔은 이에 따른 대규모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도 이런 사업을 하는 투자사들이 많고, 상황에 따라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서 해고하고, 또 상황이 좋아지면 큰 채용을 하고,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하지만, 순식간에 진 직원 권고사직이라는 초강수를 뒀다는 의미는 회사의 현금 상황이 매우 급박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회사의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고, 아마도 기사를 쓴 대부분의 기자들도 구체적인 사정은 모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더 놀랐던 건, 이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대부분 이 업계에 계신 분들인 것 같고, VC도 있고 창업가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너도나도 앞다퉈서 “오늘회가 망한 이유” , “오늘회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 “그럴 줄 알았다”와 같은 제목의 장문의 의견을 포스팅한 걸 여러 개 봤다. 다 읽어 보진 않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건을 팔수록 마이너스 날 수밖에 없는 처음부터 글러 먹은 사업이었고, 대표이사도 이런 대규모 손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뻔뻔한 태도를 갖고 있었고, 이런 사업의 특징이나 사업의 상황을 알면서 투자한 VC들은 멍청하고, 이런 상황을 모르고 투자했다면 그 VC들은 더 멍청하고, 뭐, 이런 비판의 톤이 매우 강한 내용들이었다. 결과를 보면 맞을 수도 있지만, 이분들 중 오늘회가 전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하게 된 배경이나 실제 현황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분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지 궁금하다.

고속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내부를 보면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부품이 동시에 돌아간다. 이런 성장을 초반에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면, 맞지 않는 부품이 부딪치면서 부러지기도 하고, 기름칠이 부족해서 마찰이 여기저기서 발생한다. 내부적으로 이런 마찰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고, 기자들이 짜깁기해서 기사를 쓰고, 블라인드에도 이런저런 글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회사에 대한 근거 없는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업계에 돌기 시작한다. 우리 투자사도 이런 경험을 한 걸 나도 몇 번 봤다. 일부 인력 이탈이 마치 회사가 사람 관리를 전혀 못 해서 발생했고, 이로 인해서 곧 망할 것이라는 소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해서 그런지, 나는 이제 “어떤 회사가 지금 어렵다고 하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특히 그 회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전혀 없다면.

Full disclosure를 하자면, 스트롱이나 나는 오늘회라는 회사와는 그 어떠한 관계도 없다. 우리 투자사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투자한 회사도 아니고, 이 회사에 투자한 VC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소셜미디어에서 이 회사에 대한 비판과 회사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도 대부분 오늘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내부 사정 또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되도록 이런 근거 없는 추측, 분석, 그리고 훈수는 안 했으면 하는 게 내 개인적인 바람이다. 완전한 사실들을 알기 전까지는.

오히려 나는 오늘회 경영진과 투자자들이 지금 느끼고 있을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해봤기 때문에, 이분들을 응원해주고 싶다. 투자를 잘 못 했고, 회사 경영을 잘 못 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잘 모르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근거 없는 훈수와 분석을 하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정도로 큰 잘못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비판, 훈수, 그리고 자기 멋대로 분석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 사업이나 똑바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타이밍의 중요성

뮤직쉐이크는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손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제품이었다.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다양한 음악 모듈을 사전에 수만 개를 만들었고, 그때그때 마다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제공해줬는데, 내가 당시에 뮤직쉐이크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비유가 “음악 블록을 레고 블록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였다. 이렇게 해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뮤직쉐이크랑 비슷한 개념의 음악 앱들이 시장에 꽤 많이 출시되고 있다. UI나 기능은 조금씩 다르지만, 제품 설명을 보면 공통 요소가 있는데 바로 “AI 기반의 음악 생성 앱”이라는 설명이다. AI라는 용어가 빠지지 않는데, 솔직히 이 제품들이 정말로 AI를 활용하는지, 그리고 활용해도 어느 정도인진 잘 모르겠다. 실은 뮤직쉐이크도 당시 기준으로는 다양한 음악 블록을 조합할 수 있는 AI 음악 생성 엔진이라고 해도 틀린 설명이 아닌데, 2010년은 아직은 AI가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다 AI와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일상 대화 속에서 하지만, 당시에는 감히 입에 담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오늘은 타이밍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제품이 있어도 시장에서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으면 크게 성장하는 건 상당히 힘들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기술이 타이밍을 못 맞추고, 시장에 너무 일찍 출시되는 바람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비슷한 제품이 출시되고, 과거와는 달리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투자받고, 많은 유저가 사용하는 제품으로 성장하는 걸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여기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타이밍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보면, 일단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이 틈새가 아닌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게 할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의 존재 여부는 꽤 중요하다. 없기 때문에 내가 기술 자체를 만들고, 인프라도 만들어야 한다면 이 사업은 지금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 우버와 같은 비즈니스가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시장에 나왔다면, 대중적인 사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망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손에 갖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를 애플이 만들었기 때문에, 모바일 기술과 인프라가 전 세계에 빠른 시간 안에 깔렸고, 이 훌륭한 기술과 인프라 위에서 우버라는 사업은 빠른 시간 안에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확장했다. 실은 대부분의 온디맨드 사업이 아이폰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는데, 아이폰 이전에 창업된 웹 기반의 온디맨드 사업은 대부분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이건 창업가의 비전이나 의지보단 타이밍의 문제이다.

VR 또한 마찬가지다. 10년 전에 오큘러스가 시장에 소개됐는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VR을 뒷받침하기엔 너무 뒤떨어졌고, 모두를 위한 VR의 세계가 구현되기엔 인프라가 너무 미비했다. 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큰 회사들이 거대한 투자를 하면서 기술은 상당히 발전했고, 인프라 또한 현재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 VR이나 메타버스가 대중화되기엔 타이밍이 이르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인프라는 타이밍에 매우 중요한데, 동시에 또 중요한 건 대중의 인식이다. 틈새 컨셉이 메인스트림 비즈니스가 되려면, 극소수가 아닌 누구나 다 이 컨셉을 알아야 한다. 대중의 인식이 “저건 나랑 상관없는 거야” 에서 “나도 저거 해야겠다”로 바뀔 때가 아주 좋은 타이밍이다. 누구나 다 VR, 비트코인, 메타버스나 NFT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 기술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도 어쩔 수 없이 공부하게 된다. 안 하면 왠지 혼자만 도태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누구나 다 이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고, 전문가까진 아니지만, 뭔지 알게 되면서 갑자기 이전엔 아무도 관심 없고, 아무도 모르던 게 메인스트림이 된다.

대중의 인식이 바뀌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팬데믹은 이 시간을 2년으로 압축했다. 전염병이라는 외부 요소가 기술, 인프라, 그리고 대중의 인식에 강한 압박을 가해서 타이밍 자체를 인위적으로 빨리 움직이게 만들었다. 코비드19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몰랐을 Zoom을 전 세계인이 사용하게 됐고, 굼벵이같이 느린 기업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압박을 통해서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2022년과 2023년이 뭔가 새로운 걸 창업하기엔 매우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간에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회사들이 많이 창업되길 바란다.

네이버의 왕관 뺏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스타트업은 어느 정도의 유료 마케팅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유료 마케팅은 광고인데, 스타트업이라면 모두 다 검색 광고와 소셜미디어 광고에 돈을 쓰고 있다. 스타트업이 검색광고와 소셜광고에 집행하는 비용이 어느 정도일까? 공식적인 연구나 조사를 한 적은 없지만, 투자자들에게 물어보면,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VC 투자금의 절반 정도를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나도 생각해보면, 우리 투자금의 절반 정도가 구글, 네이버와 페이스북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 엄청난 돈이다.

본인들의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서 이렇게 남의 플랫폼에서 돈을 과하게 사용하는 걸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를 리 없고, 이야기해보면 모두 다 아까워하지만, 현재로서는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만큼 좋은 온라인 마케팅 채널이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고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구글보단 네이버에서 광고비를 많이 쓰는데, 대부분 창업가의 마음속엔 언젠가는 네이버의 왕관을 본인들이 뺏어와서 스스로가 네이버와 같은 대형 플랫폼이 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네이버의 왕관은 엄청 무겁다. 이 왕관을 뺏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우리 서비스의 브랜딩이 확실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사용자들이 네이버가 아닌 우리 제품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 현재의 유저 시나리오는, 사용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네이버로 들어가서, 본인들이 원하는 걸 검색하고, 검색 결과를 클릭해서 운 좋으면 우리 서비스로 전송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사용자들이 네이버가 아닌 우리 서비스를 먼저 열고, 여기서 필요한 걸 검색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정말로 많은 돈, 시간, 그리고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렇게 많은 돈,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네이버의 왕관을 뺏는데 일부 성공한 내가 아는 회사들이 몇 개 있다. 일단 쇼핑 분야에서 쿠팡이 어느 성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싼 가격에 사기 위해서 네이버에서 먼저 검색하고, 이 검색 결과 중 하나를 클릭해서 쿠팡이나 다른 이커머스 서비스로 넘어가는 과정이 온라인 쇼핑의 일반적인 프로세스였다. 이젠 많은 사용자들이 그냥 쿠팡 앱을 실행하고, 여기서 물건을 검색해서 구매한다. 즉, 이커머스 분야에서는 쿠팡이 네이버와 같은 검색, 발견, 그리고 구매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쿠팡은 아직도 네이버와 다른 소셜 마케팅 플랫폼에서 마케팅 비용을 엄청나게 많이 집행하는 거로 알고 있지만, 어쨌든 이커머스 분야에서는 확실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네이버의 왕관을 뺏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당근마켓 또한 중고 거래 분야에서는 네이버의 왕관을 확실하게 뺏었다고 생각한다. 당근마켓 초기 시절에는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당근마켓의 중고 거래 물품을 발견하고, 그 이후에 당근마켓으로 트래픽이 전송되는 프로세스가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사용자가 바로 당근마켓을 열고, 여기서 본인들이 필요한 용품을 검색하고 거래한다. 유저들에겐 중고 거래 분야에서는 당근마켓이 바로 네이버가 된 셈이다.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순 없지만, 당근마켓에서 쿼리되는 검색 수가 이런 시장의 트렌드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에서 다른 분야로 계속 영역을 확장하면서 네이버의 왕관을 야금야금 뺏어 먹을 것으로 예측된다.

홈 서비스 영역의 우리 투자사 미소와 생활 솔루션 영역의 숨고 또한 궁극적으로는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면 일단 대부분의 유저는 네이버에서 ‘가사도우미’ , ‘집안 청소’ 등으로 검색한다. 그러면 미소나 청소연구소 링크가 검색 결과로 나오고, 이 중 하나를 클릭해서 운 좋으면 실제 사용으로 전환된다. 숨고 또한 비슷하다. ‘피아노 레슨’ , ‘파워포인트 작성’ 등과 같은 생활 업무를 해줄 분이 필요하면 일단은 네이버를 먼저 실행해서 검색부터 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많은 결과 중 하나가 숨고에 등록된 프로들이고, 운 좋으면 숨고를 클릭해서 전환된다.

숨고나 미소나, 이렇게 중간에 네이버를 거치는 과정을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즉, 사용자들이 청소 또는 집과 관련된 그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면 네이버로 가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미소를 먼저 실행하고 마치 홈서비스를 위한 검색 엔진처럼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미소는 홈서비스라는 버티컬에서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숨고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어떡하지?” 상황이 발생하면 네이버로 가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숨고를 마치 검색 엔진처럼 가장 처음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숨고는 국민 생활 솔루션이라는 다소 큰 버티컬에서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엄청 힘들고, 돈과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해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시도하다가 망할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면 10년 넘게 시장을 독점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플랫폼 스타트업은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메인 화면을 위한 전쟁

작은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하는 사람치곤, 내 아이폰에는 앱이 그렇게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폴더도 몇 개 있고, 여기에 여러 개의 앱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설치하고 사용하는 앱들은 화면 1.5개 정도에 다 들어간다. 투자 검토 할 때는 다양한 앱을 설치하고 사용해보지만, 투자하지 않으면 바로 지워버리고, 내 성격상, 나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앱들을 정기적으로 삭제한다. 지금 내 메인 화면을 보면, 거의 매일 사용하는 필수 앱들만 설치되어 있는데, 이 순서나 배치는 수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너무 많은 제품을 검토하고 사용하다 보니, 앱 피로도가 많이 쌓여서, 요샌 웬만하면 새로운 앱을 설치하거나 회원가입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즉, 새로운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나 같은 사용자에게 그 제품을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높은 CAC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나, 그 앱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 기존 제품과 비슷하다면 더욱더 힘들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 상황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되도록 새로운 제품을 설치하지 않고, 이미 수년 동안 같은 화면 위치에 있는 항상 사용하는 익숙한 제품만 사용할 것이다.

시장에서 인기 있고, 자주 사용하는 앱들의 특징은 모두 다 작은 스마트폰의 첫 번째 화면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지금같이 앱스토어에 앱이 많지 않았던 스마트폰 초기 시절에 설치했기 때문에 첫 화면에 깔려 있고, 첫 화면에 있기 때문에 자주 보고 자주 손가락으로 누르기 때문에 항상 사용하는 앱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나도 이런 앱들이 많다. 하지만, 내 첫 화면에 설치된 대부분의 앱은 그 영광의 자리를 그냥 얻은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다. 스스로 좋은 앱이고, 자주 사용하는 앱이라는 걸 증명했기 때문에 내가 다른 앱들을 두 번째 화면으로 밀어버리고 자리를 일부러 만들어서 첫 화면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정말로 사용자에게 편리함과 가치를 주는 앱들만 첫 번째 화면에 설치되고 배치됐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제품을 마케팅하고, 활성사용자 수를 늘리고, 리텐션을 올리는 게 요샌 정말 어렵고, 고객획득비용 등이 포함된 마케팅 비용 또한 과거 대비 훨씬 비싸졌다. 아무리 돈을 써서 마케팅해도 앱에 질린 사용자들이 거의 반응을 안 하고, 반응해서 설치해도 회원 가입을 안 한다. 이 어려운 장벽을 넘어서 회원가입까지 했지만 몇 번 해보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면 첫 번째 화면이 아닌 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특히, 5번째 화면의 어떤 폴더 안에 묻혀 있다면 영원히 사용되지 않다가 언젠가는 그냥 삭제된다.

우리에겐 모두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 중 잠자는 8시간을 빼면 16시간이 남고, 일하는 8시간을 또 빼면 다른 걸 할 수 있는 8시간이 남는다. 이 8시간 동안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운동도 하고, 책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등등. 이 시간에 우리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제품은 크게 성장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사용되려면, 첫 번째 메인 화면에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매일 봐야지만 클릭하고, 사용하고, 가끔은 돈을 쓰기 때문이다.

모바일 앱을 만드는 창업가라면 이 첫 번째 화면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현실적인 밸류에이션

요새 비도 많이 오고, 엄청 덥고 습한데, 테크 업계에서는 추운 겨울 이야기로 난리다. 어떤 분들은 스타트업과 펀딩의 종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어떤 분들은 일시적인 시장 조정 현상이라는 말을 한다. 모든 숫자와 데이터는 불경기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데, 미국 대통령은 경제는 건강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의 말도 너무 달라서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그리고 현실이 정말로 어떤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 같다.

나한테도 많은 분이 이 질문을 한다. 솔직히 경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진 나도 전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내년까진 꾸준히 안 좋아지는 전형적인 slow death 양상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많은 투자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요새의 조심스러운 분위기는 이런 우려를 잘 반영하고 있다.

상황은 좋지 않지만, 돈이 필요한 회사들은 투자 유치를 계속 해야 한다. 돈이 없어서 생존을 위해서 펀딩을 해야 하는 회사들도 있고, 돈이 있지만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회사들도 있다. 어쨌든 투자를 받아야 하고, 요새 분위기는 나름 좋았던 과거 10년 펀딩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펀딩을 해야 하는지 많이들 물어보는데, 그냥 내가 요새 보고 느낀 점 몇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일단 모든 창업가는 밸류에이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창업가는 현재 상황보단 사업의 미래 가능성을 기반으로 회사의 가치를 산정하고, 투자자는 사업의 미래가 없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에 현재 상황만을 기반으로 회사의 가치를 산정한다. 그래서 항상 창업가와 투자자의 밸류에이션에는 괴리가 존재하는데, 그 차이가 너무 큰 경우를 자주 본다. 평소 같으면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창업가는 투자자를 확신, 자신감, 그리고 논리로 설득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거나, 또는 FOMO를 형성하기 위해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텀싯을 받거나, 긴박한 분위기를 만드는 판을 짜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같이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구매자(=투자자)가 유리한 시장에서는 이런 노력이 잘 통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이미 “이 정도 선을 넘으면, 그냥 다른 회사에 투자해야지.”라는 심리 상태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처음부터 마음에 생각하는 적당한 수준의 밸류가 아니라면 협상의 여지 없이 그냥 딜 자체를 부러뜨릴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같은 시장에서는 창업가들이 회사의 가치를 산정할 때, 매우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회사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감안된 가치로 투자 유치를 하되, 그 숫자가 마치 J 커브가 만들어진 후 회사의 모습을 반영하면 그냥 그 자리에서 거절당할 확률이 높다. 밸류에이션 자체도 너무 높지만, 금액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J 커브의 기반을 만들기 위한 금액, 그리고 현재의 수치와 상황이 많이 반영된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지만, 잘하면 두 번째, 세 번째 미팅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투자받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투자를 받아도 오히려 밸류에이션은 더 깎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우리도 정말 하기 싫은 말이고, 우리 같은 기투자자에겐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전 라운드와 동일한 밸류로 투자받는 flat round가 요샌 오히려 성공적인 펀딩이고, 이전 라운드보다 더 낮은 밸류로 투자받는 down round 또한 괜찮다는 이야기를 우리 대표님들에게도 하고 있다.

겨울 나라의 현실로 온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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