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

마법의 순간

얼마 전에 도산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에는 젊은 여성 두 분이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살짝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갑자기 “…축구…플랩…”이라는 말이 들려서 집중해서 두 분의 대화를 엿들어봤다. 앞뒤 내용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한 분이 축구(=풋살: 미니축구)를 좋아하고, 이번 주에 두 번이나 플랩으로 축구를 했다는 게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부분이다. 팀이 없어도, 혼자 가도 선수를 매칭해주는 우리 투자사 소셜풋살 플랫폼 플랩풋볼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는 마법의 순간을 내가 강남 한복판에서 목격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꽤 대중적이고 생활밀착형인 서비스에 많이 투자하다 보니, 나는 위에서 말 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몇 번 경험해봤다. 당근마켓이 지금은 국민 앱이 됐지만, 우리가 처음 투자할 때는 트래픽이 별로 없었고, 초반에는 성장도 상당히 더뎠다. 시간이 가면서 입소문으로 앱이 바이럴하게 퍼졌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당근마켓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 여기저기 밀리고 치여서 짜증이 살살 나고 있을 때, 뒤편에서 귀에 익은 깜찍한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당근~” 소리였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아무도 몰랐던, 그리고 그 누구도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예측 못 했던 – 물론, 당시엔 지금 당근마켓의 성장은 상상도 못 했다 – 회사에 우리가 초기 투자를 하고, 그 서비스를 만원 퇴근 버스 안의 내가 모르는 그 누군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그 순간은 정말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세탁특공대도 이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투자자라서 초반부터 열심히 세특을 애용했지만, 당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동네 세탁소 또는 클린토피아를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네 세탁소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속으로는 “빨리 모든 사람이 세탁특공대를 사용해야할텐데…언제 그렇게 될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느 날 너무나 낯익은 세탁특공대 유니폼을 입은 요원을 우리 아파트 정문에서 만났고, 혹시 몇 동 몇 호에 가시냐고 물어봤고,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을 때,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청담도서관에서 어느 날 플라이북의 키오스크를 발견한 순간도 마법과도 같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싶어 하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정말로 대중이 사랑하고 내 눈앞에서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와서 플라이북 키오스크에서 추천해주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하면서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는 건, 마법과도 같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마법의 순간을 더 자주,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느꼈으면 좋겠다.

후회, 그리고 아쉬움

나는 후회하거나 아쉬워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투자할 때도 과거에 놓친 딜에 대해서 후회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은 유니콘이 된 몇 스타트업에 스트롱이 완전 초기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에 패스한 거에 대해서 지금 와서 “그때 투자할걸. 너무 후회되네.”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투자하지 않았던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었고, 좋은 회사는 많으니까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전진하자는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후회도 하고, 아쉬워도 하는데, 최근에 이런 후회와 아쉬움을 강하게 느꼈던 적이 있어서 글로 남겨본다.

2009년도에 뮤직쉐이크를 하고 있을 때,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VC 앞에서 피칭했다(당시에 LA에는 VC 생태계가 상당히 낙후되어 있어서, 제대로 된 VC가 별로 없었다). 그중 하나가 알토스 벤처스의 한 킴 대표님이었다. 알토스의 투자는 못 받았지만, 당시 김대표님이 “우리 투자사 중에 어린이들 대상으로 사용자 제작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 대표 한 번 만나봐요. 그 게임 안에 음악을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온라인 레고랑 비슷한 회사예요.” 하면서 알토스의 투자사를 하나 소개해줬다. 그 회사가 바로 Roblox 였다.

당시의 로블록스는 지금의 로블록스와는 매우 달랐다. 창업한 지 3년 차였고, 그땐 거의 아무도 모르고, 사용자가 많지 않았던, 이제 시작하는 서비스였다. ‘메타버스’라는 말 자체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사용자 제작 레고 게임’ 이라고 했었다. 당시 로블록스 직원이 10명이 안 됐던 걸로 기억하고 David Baszucki 사장도 앞으로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고, 내가 뮤직쉐이크에서 헤매고 있는 정도로 로블록스도 헤매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이제 로블록스는 거의 20조 원짜리의 어마어마한 회사가 됐다.

당시에 내가 우리 음악을 삽입하고 싶었던 또 다른 대형 서비스는 Slide.com 이라는 스타트업이었다. 여러 가지 사진을 혼합해서 재미있는 슬라이드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였고,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서비스였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이자 CTO였던 Max Levchin인데, 나는 당시에 Max를 직접 두 번이나 만나서 협업 관련 이야기를 했었다. Slide는 한 때 정점을 찍은 후 트래픽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었고, 이 친구도 당시에 어떻게 하면 사업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역시나 헤매고 있었다. 슬라이드는 결국 구글에 인수됐고, Max는 이후에 Affirm이라는 BNPL 분야의 유니콘 회사를 다시 창업했다.

로블록스와 슬라이드와의 협업은 모두 무산됐다. 그런데 결국엔 잘 된 이 두 회사가 초반에 얼마나 헤매고 고생했는지 직접 내 눈으로 봤기 때문인지, 나도 조금 더 버티면서 뮤직쉐이크를 조금 더 잘했으면, 로블록스나 슬라이드만큼 성공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와 아쉬움이 가끔 머리와 가슴을 엄습한다.

지난주에 운동하면서 우연히 Max Levchin의 인터뷰를 팟캐스트로 들었다. 오래전에 이 친구를 만났던 기억이 나면서, “왜 난 뮤직쉐이크를 더 잘하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해볼걸”이라는 후회를 하면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런 후회와 아쉬움이 오늘, 내일, 그리고 앞으로 남은 더 많은 날을 더 열심히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원동력이 되기에 즐겁게 이 글을 쓰고 있다.

호랑이의 눈

얼마 전에 아주 오랜만에 우리 투자사 대표님을 직접 만나서 같이 식사했다. 이메일, 메신저, 그리고 전화로는 자주 이야기를 했지만, 직접 만나는 건 거의 1년 만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자주 만나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식사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총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눴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스타트업이었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라서 유독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매달 좋은 성장을 만들면서 스트롱이 처음 투자할 때 대비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이 회사의 성장 그래프를 보면 정말로 눈이 부시다). 하지만, 눈부신 성장 뒤엔 대표님의 눈물이 많았다. 코파운더의 탈퇴, 노가다에서 시스템으로의 전환의 어려움, 힘든 채용, 그리고 잘 모르는 분야라서 어려운 펀딩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히 많이 쌓인 듯 했다.

특히 펀딩 관련해서 대표님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우리가 이 회사를 처음부터 봤었고, 내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큰 시장에서 좋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걸 내부자로서 알고 있지만, 이 시장과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고, 요새 글로벌 경제도 좋지 않아서 아마도 이 사업을 처음 접하는 투자자들은 선뜻 투자하길 꺼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이렇게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나는 대표님의 눈빛에서는 희망과 자신감을 봤다. 말로는 요새 스트레스가 너무 많고,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적이 없다고는 했지만, 눈은 마치 영화 록키에서 말하는 ‘호랑이의 눈(eye of the tiger)’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성공에 굶주린, 그리고 희망과 자신감이 넘쳐서 옆 사람들에게 전염될 정도의 그런 마음에 드는 눈빛이었다.

이 분을 내가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났다. 좋은 대기업에서 일을 잘하고 계셨지만, 본인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이 험난한 창업의 세상으로 나왔고, 대부분의 창업가들과 같이 초기에는 세상으로부터 보기 좋게 거절당했었다. 당시엔 두려움과 불확실로 가득 찬 눈빛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내가 회사를 괜히 그만뒀나, 이게 정말로 안 되는 사업인가, 뭐 이런 생각이 눈빛에 반영됐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며칠 전에 내가 봤던 건 완전히 다른 눈빛이었다. 그때와 같이 아직도 사업은 너무 어렵지만, 이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의 눈빛이었고, 성공을 갈망하는 독기가 가득 찬 눈빛이었다. 록키가 승리할 때의 그 eye of the tiger였다.

그래서 너무 좋았고, 이런 분이 하는 스타트업에 우리가 투자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오늘도 모두 독기찬 호랑이의 눈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길.

B2B와 B2C 영업

나는 2000년도 초반 당시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 지금도 유일한 – SCM(Supply Chain Management)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자이오넥스라는 회사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했다. 그때는 한국에서는 B2B라는 용어도 생소했고, 스타트업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 회사가 요새 말하는 B2B SaaS 스타트업이었다. 당시에는 나도 직장 경력이 거의 없었고, 영업이나 마케팅 모두 태어나서 처음 하는 업무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회사여서 업무를 딱히 배울 사수도 없었다. 그냥 주변에 영업하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책도 많이 보면서 읽은 이론과 귀동냥한 내용을 직접 시장에서 시도해보고, 이렇게 시행착오를 하면서 일했었다.

영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데, 이게 어떤 분들에겐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어떤 분들에겐 상대적으로 어려웠고,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인력이지만, 실적을 분석해보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처음에는 전혀 감을 못 잡았고, 시도하는 것마다 실패했다. 좋은 제안서를 만들어서 발표하고, 담당자를 파악하고, 고객사 의사 결정 구조를 파악하고,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첫해에는 제대로 된 계약을 수주하지 못했다.

그때 우리 회사를 도와주던 고문이 한 분 있었다. 삼성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하셨던 분인데, 이분이 나한테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기홍아, 영업은 우리 회사 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야. 어차피 배기홍이라는 사람이, 고객사의 담당자인 다른 사람한테 물건을 판매하는 거잖아. 즉, 사람이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야. 그러니까 우리 회사 제품을 판매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은 너 자신을 판매하고, 그 이후에는 회사를 판매하고, 마지막으로 제품을 판매해야 해. 첫 단추인 배기홍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담당자에게 주지 못하면, 절대로 계약을 수주할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조언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이후에 나는 영업 전략을 완전히 바꿔서, 고객사 담당자를 만나면 우리 회사 이야기도 일절 하지 않았고, 제품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오로지 내가 믿을만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나 자신을 영업했다. 상대방이 술을 좋아하면, 술도 같이 먹었고, 수영을 좋아하면 같이 수영도 하면서 나 자신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걸 많이 셀링했다. 이렇게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내가 일하는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고, 결국엔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고, 그때 의사결정권자들을 잘 설득하면 계약이 성사되는 걸 몇 번 경험한 후에 영업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이후엔 꽤 잘하게 됐다.

흔히들 B2B 영업은 B2C에 비해서 너무 어렵다고 한다. B2C나 B2B나 결국엔 사람이 사람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B2C 서비스는 그냥 유저 개개인이 최종 의사 결정권자라서 즉시 결정하고 결제하는 성질이 있다. B2B는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한다고 하면, 건물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게 아니라 고객사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것이다. B2C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단계를 거쳐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이 단계조차도 여러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B2C에 비해서 B2B 영업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렇다고 영업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냥 여러 명의 담당자를 상대해야 하고, 결국 이들 또한 사람이다. 영업의 기본은 항상 사람을 팔고, 브랜드를 팔고, 그리고 제품을 팔아야 한다. 이 순서대로.

바닥으로의 경주

얼마 전에 프로덕트 회사에서 마케팅 회사로 전환하면 왜 위험한지에 대해서 포스팅을 했다. 뾰족한 제품력이 아닌, 남들도 만들 수 있는 제품으로 시장에서 승자가 되려면 돈을 많이 써서 마케팅하고, 사용자를 확보하고, 돈을 더 써서 이들에게 품질이 아닌 다른 혜택을 주면서 우리 경쟁사의 고객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초기에는 돈을 못 벌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의 100%를 모두 투자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VC sponsored growth 플레이를 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방법은 아니고, 상당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마케팅 싸움을 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바닥으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가 시작되는데, 이건 정말 내가 말리고 싶은 경주다. 한국이 잘 만들지만, 제품력보단 마케팅이 더 중요한 대표적인 분야가 화장품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공장에서, 거의 비슷한 재료로 만들고, 가격과 효능도 비슷한 화장품을 판매하는 두 회사를 생각해보자. 제품에서 차별화를 못 하므로, 대부분의 화장품 회사들이 마케팅 회사로 전환해서, 더 유명하고 비싼 연예인들을 모델로 섭외하고, 그리고 홍보한다. 한 회사가 김혜수 씨를 모델로 사용하면, 다른 회사는 더 핫하고 비싼 여자 연예인을 섭외해서 광고를 만든다. 그러면 다른 회사는 더 비싼 연예인을 사용한다. 그리고 계속 이런 마케팅 싸움을 한다.

마케팅과 동시에, 다른 싸움도 하는데, 바로 가격 인하 경쟁이다. 비슷한 제품을 두 회사 모두 1만 원에 판매하다가, 한 회사가 가격을 9,000원으로 낮추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비슷하지만, 더 싼 제품을 많이 산다. 그러면, 다른 회사는 가격을 8,000원으로 낮춘다. 이렇게 바닥으로의 경주가 시작되고, 최악의 경우 거의 공짜로 제품을 판매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손실은? 물론, 투자금으로 충당한다.

이런 바닥으로의 경쟁은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사용자를 확보해서 성장을 만들어야 하므로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우리 주변에는 꽤 많다. “고객을 락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수수료 싸움도 이에 해당한다. 배달 앱, 송금 앱, 또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경쟁하면서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경쟁사보다 더 저렴한 수수료 정책을 표방하다 보면, 수수료가 계속 내려가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수수료가 없어진다. 그리고 이미 낮아진 가격이나 수수료를 다시 올리는 건 소비자들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서, 거의 불가능하다.

시장이 크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이 없다면, 결국엔 모든 서비스는 공짜로 가게 되어 있다. 이런 시장에서 매출 신장을 통해 외형만을 키워서, 더 큰 투자를 받고, 이 투자금으로 또 외형만을 키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1만 원권을 8천 원에 판매하면 된다. 그럼 1만 원권을 1만 원에 판매하는 경쟁사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1만 원을 팔 때마다 발생하는 2,000원의 마이너스는 투자금으로 충당하고, 또 투자받아서 계속 성장하면 된다. 그런데, 나보다 돈이 더 많은 경쟁사가 어느 날 등장해서 1만 원을 5,000원에 판매한다면? 그리고 또 다른 경쟁사는 1,000원에 판매한다면?

이런 바닥으로의 경주를 하지 않고 이기려면, 워렌 버핏이 말하는 해자(垓字 )가 필요하다.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차별점과 진입 장벽을 만들어야 한다. 사업 초반에는 이런 해자를 못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초반에는 투자금을 기반으로 마이너스 비즈니스를 하지만, 이걸 평생 할 순 없다. 어느 순간에는 락인 한 사용자를 기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걸 못 하면, 바닥으로의 경주를 하게 되고, 결국엔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