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

마케팅 회사

며칠 전에 내가 Stripe 관련 을 쓰면서 완벽한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완벽한 제품과 관련해서 그동안 내가 계속 느끼고 생각한 점들을 조금 더 자세히 써본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되도록 새로운 앱을 깔지도 않고, 가입도 잘 안 하고 있다(우리 투자사 앱은 제외). 앱스토어가 처음 나왔을 땐 너무나 신기하고, 모든 게 새로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앱을 깔고, 지우고, 또 깔고, 사용하고, 회원 가입하는걸 반복했는데, 이제 소위 말 하는 app fatigue가 너무 심하게 왔다.

한국도 회원가입 절차가 많이 간소화됐지만, 과거에 한국 서비스 회원 가입하려면 이것저것 요청하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회원 가입하다가 지친 경험도 많았고, 이런 불편함이 쌓이다 보니, 그냥 요샌 새로운 앱 설치를 잘 안 한다. 얼마 전에 내 폰에 설치된 앱 숫자를 세어보니, 아이폰 기본 앱을 제외하고 147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분들과 비교해보면, 솔직히 이게 그렇게 많은 게 아니지만, 어쨌든 나에겐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앱이었고, 이후에 자주 사용하지 않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앱은 다 지웠다. 하나씩 지우면서 생각해보면, 처음엔 호기심에 설치했지만, 막상 사용해보니 제품의 완성도가 별로인 앱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은 이 제품들의 수준이 그렇게 떨어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 보통 이상으로 개발되긴 했지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아주 높은 수준의 완벽을 추구하는 그런 제품들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이런 보통 수준의 제품들을 만드는 회사의 공통점은, 창업 이후 몇 년 동안은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하고, 좋은 제품을 많이 벤치마킹하고, 제품 관련 인력과 개발 인력 고용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어느 수준 이상의, 제품을 깊게 사용해보지 않으면, 꽤 완벽해 보이는 껍데기까진 만든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90% 완성도의 제품은 만든다. 실은,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90% 완성도를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진짜 사업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 정도 수준의 제품을 출시하면, 입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고, 우리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유저들이 서서히 등장한다. 하지만, 입소문을 더 바이럴하게 퍼트리고, 우리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유저를 우리 제품이 없으면 안 되는 유저로 만들고, 그리고 결국엔 이들이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지갑을 열게 만들기 위해선, 90% 완성도를 95%로 올려야 하고, 그 이후엔 또 97%로 올려야 하고, 그 이후엔 또 100%까지 올리기 위한 노력을 부단하게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제품력에서 나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회사가 마케팅에서 이 노력을 한다.

회사가 커지고, 브랜드가 소문나고, 제품이 좋아질수록, 더욱더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데 스타트업은 대부분의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마케팅 회사로 변해버린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돈을 쓰기보단, 마케팅에 돈을 쓰고, 돈을 태우는 마케팅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바이럴 효과가 마치 우리 제품이 본질적으로 좋아져서 생기는 바이럴 효과로 착각한다. 이렇게 착각하는 순간, 회사는 downward spiral(하강 나선)을 시작하고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현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돈을 쓰는 것 보단, 마케팅에 돈을 쓰는 게 훨씬 더 편리하고,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누이 강조하고, 당부하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마케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스타트업 분야는 빠르게 바뀌고 있고,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변화 그 자체이지만,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편리함에 대해

우리 누님이 미국에 사시는데, 조만간 한국을 잠깐 방문할 예정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안 파는 마일로 사료를 부탁하기 위해서 아마존 앱을 열고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걸 집에서 한 게 아니라, 영동대로를 건너기 위해서 신호대기를 하는 도중에 했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결제했다. 한 3분 만에 모든 걸 처리한 셈인데, 실제로 아마존 앱을 통해서 구매하고 결제 완료한 건 1분도 안 걸렸다.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고, 항상 내가 하는 거라서 별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이후에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가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참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감사함이 들었다. 전에는 – 스마트폰 이전 시절 – 인터넷으로 뭔가를 구매하고 싶으면, 일단 저녁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쇼핑몰에 접속해서,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고, 집 주소를 입력하고,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구매 프로세스를 완료했다. 이게 당시에는 시간도 좀 걸렸지만, 무엇보다도 인터넷으로 뭔가를 구매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기술이 점점 더 좋아졌고, 세상도 좋아졌다. PC와 노트북이 작은 핸드폰으로 대체됐고, 랩탑 화면도 이미 작지만, 이보다 훨씬 더 작아진 스마트폰 화면에서 작동되는 모바일 앱은 낮은 가독성 때문에 앱 자체가 훨씬 더 심플하고 사용성이 좋아졌다. 그리고 결제 관련 기술과 API 또한 좋아져서 그냥 원클릭으로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들도 많아졌다. 이 모든 개선 사항을 종합한 결과물이 위에서 내가 언급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가 다 기술의 발전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의 많은 이커머스 서비스를 사용해봤는데, 이 중 아마존이 가장 돈을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UI와 UX를 만들었고, 아마도 아마존의 이 프로세스는 점점 더 완벽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쿠팡도 만만치 않게 편리한 모바일 제품을 만들었다. 가끔은 돈을 써서 물건을 사는 과정이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거느냐는 착각을 할 정도로 사용자에게 친숙한 UI와 UX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에 내가 제품의 비가역성(irreversibility)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기존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더 편리한 경험을 한 사용자들은 절대로 그 전의 불편한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특성인데, 바쁜 도시의 대로를 건너면서 작은 스마트폰으로 반려동물 사료를 1분 만에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의 이런 경험은 전형적인 비가역성의 성질을 갖고 있다. 구매 경험이 불편한 서비스를 나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같이 삐삐, 일반 핸드폰, 스마트폰, 그리고 PC, 노트북, 모바일을 모두 다 경험한 사람만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 기기를 접했고, 첫 인터넷 구매와 결제를 쿠팡이나 아마존을 통해서 경험한 세대에겐 이 내용이 그렇게 새롭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용자의 편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실은, 불편한 서비스가 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비가역적인 편리한 경험을 갖게 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긴 쉽지 않다. 한 번 편리한 경험을 한 고객은 절대로 불편한 경험으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고, 불편한 제품에 대한 시장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해주는 숙제

남이 내 숙제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말을 우린 어릴 적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어릴 적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잘 몰랐다. 초등학교 때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이 숙제를 대신해 주고 있는걸 내가 알고, 어떤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이 숙제를 대신해 줬는데, 선생님은 왜 남이 내 숙제를 대신 못 한다고 말하는 걸까,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게 됐고, 스타트업과 가까이 일하면서 이제 나는 내 초등학교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이 말을 우리 대표님들에게 귀가 아플 정도로 말하고, 나는 손가락이 아프고, 대표님들은 눈이 아플 정도로 이메일로 많이 이야기한다.

최근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발단이 된 건 마케팅 대행사 때문이다. 내부에 마케팅을 잘하는 인력이 없어서 외부 마케팅 에이전시 또는 여기저기 마케팅을 봐주는 어드바이저 분들에게 내가 보기엔 과할 정도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마케팅을 외주했는데, 한 번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대행사를 찾았는데, 이 과정에서 돈도 많이 낭비했지만, 가장 중요한 대표이사의 시간이 너무 많이 날아갔다. 물론, 마케팅은 잘만 활용하면 회사의 큰 무기가 될 수 있고, 회사 내부에 마케팅 능력이 없어서 처음에는 나도 좋은 대행사를 활용하는 전략에 동의했지만,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의 숙제는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회사의 대표에게 그냥 그럴 시간에 본인이 마케팅을 공부하는 게 더 좋고, 대행사에 줄 돈을 본인이 집행하면서, 날려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마케팅 수업료로 사용하면서 직접 본인이 만들고 있는 제품을, 본인이 고객들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보라고 했다. 절대로 남이 내 숙제를 대신해주지 않고, 대신해주더라도 성적의 결과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외주업체라서 제대로 안 해주기 때문이다.

개발력이 내부에 없어서 외주 개발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는 걸 나는 자주 봤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렇게 남한테 내 숙제를 맡긴다. 외주 개발사는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고 그냥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돈을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되고, 이 제품이 잘 되든, 잘 안 되든, 그 결과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냥 돈 받고 스펙에 맞춰서 개발만 해주면 된다. 이런 분들이 내 숙제를 제대로 해줄까? 오히려 그럴 돈과 시간이 있다면, 개발 인력을 직접 뽑아서 내재화하거나, 내부 인력이 개발을 배워서 내 숙제를 내가 직접 하는 게 훨씬 좋은 전략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이제 매우 유명해진 테라노스라는 회사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과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사기’라는게 너무 뻔한데, 왜 그렇게 유명한 투자자들이 이 회사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을까? 이 회사에 투자한 어떤 투자자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본인은 바이오 전문가가 아니라서 테라노스 투자 검토를 할 때 이 분야를 잘 아는 외부 전문가에게 많은 조언과 자문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투자해서 잘 안 되면 투자자인 본인이 손해를 보지, 이 외부 전문가가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서, 외부 전문가는 이 기술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하거나 연구를 분명히 안 했을 것 같다고 한다. 즉, 내 숙제를 남에게 맡겨서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시원시원하고 남의 눈치를 잘 안 보는, 내가 꽤 좋아하는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결과에 대해서 직접 책임질 필요 없고, 이 결과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사람들의 충고는 듣지 말아라”

남이 절대로 내 숙제를 해주지 않는다.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적자 면허

우리가 지금까지 투자한 250개가 넘는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은 대부분 돈을 못 벌거나, 돈을 벌어도 적자다. 하지만, 나는 비즈니스의 최종 목적은 시장이 돈을 내면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이고, 당장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회사가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더 많아서 흑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을 벌어서 흑자를 만드는 시점까지의 여정은 회사마다 다를 수 있다. 물건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D2C 회사라면, 창업하자마자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회사라면 창업 후 1년, 또는 2년 후까지 제품도 출시 못 하는 경우도 많고, B2B SaaS 회사라면 돈을 버는 시점이 상당히 나중에 올 수도 있다. 어떤 비즈니스는 당장 작은 매출을 만들기보단, 적자를 감수하면서 마케팅에 집중해서 사용자를 모으고, 많은 트래픽이 확보되면 이를 통해서 순식간에 매출을 만드는 전략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회사들의 성장 과정은 경영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상적인 기업의 성장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돈을 벌면서 기업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돈을 까먹으면서 기업이 성장하고, 그 성장 또한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판매되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투자자의 돈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흑자 구조로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게 아니라, 적자로 시작해서, 많은 경우 수년 동안 이 적자가 더 커지면서, 적자와 생존 사이에 생기는 큰 간격을 투자금으로 계속 메꿔가면서, 전통적인 비즈니스를 하던 분들이 보면 약간 기형적인 구조로 성장한다.

솔직히, 나는 이런 형태의 성장을 선호하진 않는다. 창업 첫날부터 돈을 벌어서 흑자 구조로 전환하는 건 요새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고, 계속 적자 폭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스타트업을 본다면, 이 회사들은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거대한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이 거대한 경쟁사들이 전통적으로 사업을 해왔던 방식으로 성장을 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좋은 기술, 자본과 인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성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사업을 끌어올려야지만 경쟁 자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즈니스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면서도, 당분간은 마이너스에 허덕거리는 사업에 투자하고 이들을 응원하는, 어떻게 보면 모순되는 투자를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보다 빠른 성장이 더 중요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이런 사업의 생리와 배경을 투자자와 이사회에 잘 설득시켜야 하고, 이들이 아주 오랫동안 마이너스가 나는 비즈니스에 투자하고 있다는 걸 이해시키고, 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동의를 구해야 한다. 나는 우스개 소리로 이걸 창업가의 ‘적자면허(Permission to be unprofitable)’라고 한다.

이미 말한 대로,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이 힘들고 어쩌면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달성하지 못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돈을 까먹으면서 성장을 해야 하는 구간이 있을 수가 있다. 특히, 남들보다 빨리 성장해서 고객을 락인 해야하는 – 락인 한 후에 이 고객 베이스를 기반으로 돈을 번다는 말은 플랫폼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하는데, 실제로 이걸 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 영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면, 투자자와 이사회에서 “You have the permission to be unprofitable”이라고 해주면 더 과감하게 지를 수 있을 것이다.

말의 힘

바로 전 포스팅에서 말한 How I Built This에서 펩시의 CEO를 했던 전설적인 인도 출신의 여성 Indra Nooyi의 1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나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이 내용 한 번 정도 들어보는 걸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분 정말 대단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대학교까지 인도에서 다니다가 대학원 유학을 오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는데, 지금도 미국에 인종 차별이 없진 않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많은 불이익을 받았던 것 같다. 여자이고, 유색인종이고, 영어도 심한 악센트가 있고, 실은 어떻게 보면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차별 대우받고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서 미국으로 온 것 자체가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인 펩시코의 대표를 12년 동안 연임한 건 더욱더 대단하다.

이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부분은 인드라 누이가 GE와 펩시코, 두 회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힘’이다. 당시 인드라는 잭 웰치가 이끌던 당대 최고의 회사 GE의 경영진으로 이직하기로 거의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펩시에서도 인터뷰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F&B 사업에 대해 문외한이고, 고기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라서 본인이 펩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헤드헌터와의 친분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당시 펩시의 대표이사는 Wayne Calloway라는 말수가 정말 없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인드라에게 이 사람과의 미팅은 꽤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펩시도 한 번 고려해볼까 고민했지만, 결국엔 GE를 선택하려고 했다.

그 통보를 하기 며칠 전에 펩시의 캘로웨이가 직접 인드라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주로 비서나 헤드헌터를 통해서 연락을 하는 게 관례이지만, 그는 직접 인드라에게 전화했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누이씨, 내가 GE의 이사회 멤버인데, 방금 이사회에서 당신이 GE에 합류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GE는 너무나 대단한 회사이고, GE로 간다고 해도 저는 충분히 납득하고 당신의 결정을 존중할 겁니다. 하지만, 저도 당신이 필요하니 제 말을 한 번만 들어보시고 결정했으면 합니다.” 이어서 웨인은 “펩시의 경영진에는 당신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당신 같은 사람이 다른 의견을 제공해줘야지만 펩시코에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요. 펩시로 오면 내가 당신을 100% 지지해주고 지원해주고, 여기서 성공할 수 있게 모든 걸 바쳐서 헌신하겠습니다. 한 번만 나에게 기회를 주세요.”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펩시코와 같은 회사의 대표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군들 마음이 안 움직일 수 있을까? 인드라 누이는 그 자리에서 펩시에 조인했고, 결국 펩시의 대표이사로 승진하면서 승승장구했다. 나를 이렇게까지 인정해주고, 생각해주고, 간절하게 원하는 조직에 헌신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실은 이렇게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아주 유명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Pepsi Challenge 캠페인을 만들어서 코카콜라 시장점유율을 뺏은 펩시코의 사장인 John Sculley를 애플로 데려올 때 사용한 파워풀하고 유명한 말이다. 당시 27살밖에 안 됐던 잡스가 스컬리에게 “평생 설탕물만 팔래요, 아니면 나랑 애플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고, 소문에 의하면 결정적으로 이 말 때문에 존 스컬리가 펩시를 그만두고 애플에 조인했다고 하니, 파워풀한 말과 그 말의 뒤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 그리고 모든 창업가들도 사람에 대한 이런 열정, 태도, 그리고 끈기를 갖고 채용에 임했으면 좋겠다.

*말의 힘만큼 파워풀한 건 이메일의 힘인데, 내가 전에 관련해서 쓴 이런 포스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