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많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미국이나 해외에 이미 존재하는 제품의 한국 버전일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스타트업도 이런 플레이를 하는 곳들이 엄청 많다.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이고, 토스는 한국의 Venmo이고, 실은 많은 한국의 유니콘이 이미 미국에서 잘되고 있는 회사들의 제품을 카피해서 시작했고, 시작은 이렇게 했지만, 사업을 뾰족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원래 버전과는 상당히 다르게 성장한다. 어떤 차이가 나는지 조금 더 자세히 보면, 한국 시장에서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 모델임이 밝혀지면서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있고, 한국 시장에서는 작동하지만, 원제품과는 상당히 다른 현지화(=localization) 작업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실은, 자세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투자한 많은 스타트업이 “한국의 xyz”라고 간략하게 설명할 수가 있는데, 껍데기를 보면 해외 제품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현지화가 상당히 많이 됐기 때문에 “한국의 xyz”라고 하기보단 그냥 별개의 제품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현지화라는 단어는 애매모호한 단어이다. 어떤 회사는 외국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카피하고, 인터페이스만 한글로 제공하는 걸 현지화한 국산 소프트웨어라고 하고, 어떤 회사는 위에서 말한 대로 별개의 제품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이걸 현지화한 국산 소프트웨어라고 한다. 나는 외국 소프트웨어를 번역만 해도, 번역을 잘하면, 이 또한 훌륭한 현지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제품을 보더라도 거의 동일한 기능을 제공하는 국산과 외산 제품이 있다. 요새 우리가 관심을 두고 보는 분야가 ERP와 CRM인데, “국산” , “현지화”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B2B 소프트웨어 제품들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글로벌 제품인 SAP와 Oracle과 같은 외산 소프트웨어도 한국 시장에 많이 깔려 있는데, 이 제품들을 벤치마킹한 매우 유사한 인터페이스와 기능을 제공하는 국산 ERP와 CRM 솔루션도 꽤 많다. 내가 전에 일했던 자이오넥스라는 회사에서는 국산 SCM 솔루션을 개발하고 판매하는데, 이미 이 분야에는 엄청나게 큰 글로벌 기업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한국에서 제품을 잘 판매하고 있다.

역사도 오래됐고, 회사의 규모도 훨씬 크고, 브랜딩이 더 잘 된 글로벌 기업의 제품을 도입하지 않고 국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한국 기업 또는 소비자들은 왜 메이드인코리아 제품을 사용할까? 몇 가지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이고, 너무 당연하지만, 일단 국산 제품은 기본 언어가 한글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솔직히 소프트웨어가 영어로 되어봤자, 어려운 영어도 아니고, 그냥 기본적인 영어 단어 위주라서 웬만한 한국 분들은 다 읽을 줄 알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한글 UI보단 어렵고, 머릿속에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 자체가 번거롭다. 혹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영문버전으로 사용해 본 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다 쉬운 영어지만, 한글 버전보단 사용하기가 불편하고 어렵다.

UI와 UX에서도 꽤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를 나는 봤다. 위에서 말한 ERP나 CRM은 기업용 소프트웨어인데, 같은 사업을 하는 회사라도 한국 회사와 미국 회사의 사내 프로세스는 상당히 다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그 나라의 독특한 업무 문화가 반영됐기 때문인데, 이런 미묘한 특성을 잘 살린 국산 소프트웨어가 한국 회사엔 훨씬 더 편리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국산 제품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점이 바로 고객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언어로, 언제든지 고객지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리 작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개발하는 제품이라도 엄청난 글로벌 제품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난 생각한다. 우리가 투자한 상당히 많은 한국 스타트업의 제품은 이미 이들보다 훨씬 더 잘하는 글로벌 벤치마크 제품이 존재하고, 이런 글로벌 제품들이 이미 한국에서 판매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투자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가끔 물어보면, CS가 잘 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 투자사의 열혈 고객이 된 경우가 많다.

한국어로 된 인터페이스, 한국 문화와 프로세스에 특화된 UI/UX, 그리고 현지화된 고객지원 서비스, 이게 바로 국산 소프트웨어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이 분야를 계속 더 파고 들어가면 한국에서 꽤 규모가 나올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