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

더 쉽게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에 How I Built This에서 PayPal 마피아 중 한 명이고, 실제로 시스템을 설계하고 만든 CTO Max Levchin의 2022년도 인터뷰를 다시 들었다. 2022년도에 이 팟캐스트를 정말 재미있게 들었고, 당시 내 생각과 회고를 포스팅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들어보니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몇 가지 내용은 새롭기까지 했다. 아마도 그때의 내 지식, 경험과 3년 후 지금의 내 지식, 경험은 다르므로, 같은 팟캐스트를 들어도 내 지식과 경험의 수준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다르게 와닿았던 것 같다.

나도 오래전에 맥스와 교류했던 경험이 있는데, 정말 똑똑한 엔지니어지만, 비즈니스 감각도 아주 뛰어난 창업가로 기억한다. 이 인터뷰에서 맥스는 페이팔을 만들 때 가장 고민했던 점은 이 서비스를 더 쉽게 만들어야 했던 부분이라고 한다. 당시에 페이팔 말고도 인터넷으로 돈을 보낼 수 있는 다른 제품도 있었는데, 시장에서 도입률은 매우 낮았다. 그 이유는 뒷단의 엔지니어링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복잡한 뒷단의 엔지니어링이 그대로 앞단에도 적용돼서, 남에게 내 돈을 보내는 준비만 하다가 사용자가 지쳐서 서비스 이탈이 너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페이팔이 없어도 사람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결제를 이미 잘하고 있었다. 물론, 더 쉽게 만들 수 있었지만, 특별하게 고장 나지 않은 프로세스와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페이팔은 무조건 더 쉽게 설계되고, UI와 UX가 딱 보면 직관적이어야 했다. 오프라인에서 무언가 사기 위해선 주머니나 백 안의 지갑을 꺼내고, 이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서 지급하면 된다. 카드도 마찬가지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이걸 그냥 긁으면 된다.(요샌 긁지 않고 갖다 대기만 하면 되는데, 당시엔 NFC 기술이 약했다). 온라인 서비스로 따지면 두 번의 클릭으로 결제가 가능한 것인데, 페이팔이 엄청나게 커지기 위해선, 현재의 결제 방식보다 더 쉬워야 한다는 건 페이팔 초기 멤버 모두가 동의했던 몇 안 되는 내용 중 하나였다.

이 부분에서 맥스의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이 돋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는 많은 뛰어난 개발자들은 남들이 잘 못 하는 걸 하고 싶어 한다. 이러다 보면 더 좋은 제품엔 더 복잡한 기술이 들어가고, 더 복잡한 엔지니어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게 어쩌면 맞을 수도 있지만, 실은 가장 뛰어난 기술과 복잡한 엔지니어링으로 만든 제품이 가장 좋은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의 입장에서 가장 사용하기 쉬운 제품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UI/UX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고, 이 건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중요하다.

페이팔이 그 전형적인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데, 그 사람의 이메일만 입력하면 그에게 돈이 간다는 건 당시에 충격적인 센세이션이었다. 돈을 보내고도 정말로 내 돈이 갔는지 약간 의심할 정도로 UI/UX를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뒷단에는 그 시대 최고의 암호화 기술이 이 복잡한 돈의 움직임을 매끄럽게 만들어줬다.

그 어떤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 이건 B2C든 B2B든 상관없다 – 무조건 쉽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쉬운 서비스의 정의는 주로 고객과의 최종 접점인 UI와 UX에서 결정된다. 사용하기 쉬우면, 쉽고 좋은 서비스다. 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사용하기 쉬운 제품은 기술력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가장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은 가장 사용하기 쉬운 제품이다.

등잔 밑은 항상 어둡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 다 읽을 수 있지만, 이 글은 남보단 내 스스로의 반성, 배움,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 쓴다.)

우리가 2018년도에 투자한 Norae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있다. Ryan이라는, 한국 분은 아니지만,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는 창업가가 시작한 회사다. 회사 이름 Norae(노래) 자체가 이 팀이 얼마나 케이팝을 좋아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데, 첫 번째 비즈니스는 틱톡의 모태가 된 Musical.ly랑 동일했다. 립싱크하는 동영상과 커버댄스 동영상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였는데, 여기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케이팝이었다.

콘셉트는 재미있었지만, 사업 자체는 썩 잘되지 않았다. 아니, 잘 안된 게 아니라 진짜 별로였다. 똑똑한 창업가들이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워낙 작은 회사라서 돈도 없었고, 나도 뮤직쉐이크를 통해서 배웠지만,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셜 미디어가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건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작은 투자금은 다 썼고, 팀원은 대부분 떠났고,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스타트업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론, 이 창업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동 창업가와 방법을 찾아서 계속 서버비를 벌고 앱 자체는 운영이 되게 정말 열심히 허슬했다. 중간에 한 명씩 차례로 다른 회사 업무를 해주면서 외주비도 벌고, 하여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서 바퀴벌레같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틱톡이 너무 커지자, Norae의 가능성은 점점 더 없어졌고, 아마도 이 시점에 다다르면 대부분 창업가들이 그냥 회사 문을 닫을 텐데, 이 회사의 코파운더들은 피봇을 시도했고, Coverstar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한 TikTok과 유사한 앱을 만들어서 출시했다.

미국 회사라서 한국 창업가만큼 자주 연락하거나 만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상의할 게 있으면 조언도 하면서 이 팀의 변화를 나는 계속 지켜봤다. 내가 항상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맘속에서는 그냥 회사 문 닫는 게 모두를 위해서 맘 편할 텐데 또 안 될 앱을 새로 만드는 게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꾸역꾸역 조금씩 진도를 나아갔고, 우리가 첫 기관 투자자이기도 하지만, 초반부터 창업가의 허슬과 노가다를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사업 관련 모든 내용을 지속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해줬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추가 투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개인적으로 친한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이 사업, 제품, 팀을 – 팀이라고 해봤자, 코파운더 두 명밖에 안 남았다 –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면 잘 될 가능성이 너무 낮은 사업이라고 판단해서 이 회사에 스트롱이 단독으로 추가 후속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매번 내렸다. 여러 번 검토했지만, 매번 우리 팀에서는 pass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최근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a16z에서 이 회사에 투자한 것이다. 그것도 단독으로. 이 투자자에게 피칭했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실제로 텀싯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내가 들었을 때, 즉시 내 머릿속에 “왜 우린 투자하지 않았지?” , “우리만 뭔가 못 봤던 건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게 투자받는다고 해서 사업이 잘되는 건 아니고, a16z가 잘 못 판단한 투자도 수두룩하게 많다. 그래도 이렇게 크고 경험이 많은 VC가, 우리가 수년 동안 잘 알고 있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매번 투자하지 않은 우리 포트폴리오사에 후속 투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쁘기도 했지만, 뭔가 아쉽고 허전했다. 우리가 만약에 이전에 이 회사에 추가 투자했다면, 훨씬 더 싸고 좋은 조건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배가 아프기도 했다.

전형적으로 등잔 밑이 어두웠던 케이스였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포트폴리오사를 실은 우리가 제일 잘 몰랐던 것이다. 아니, 몰랐던 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잘 알고, 너무 오랫동안 본 팀이고, 이 팀이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샅샅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어쩌면 우린 그 뒤에 숨은 장기적인 가능성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서 투자했다고 그 회사가 장기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난 스스로 이번 계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역발상적인 생각과 반성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지난 13년 동안 투자했던 모든 포트폴리오사를 다시 한번 검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 전원이 좋은 창업가와 회사를 남보다 먼저 찾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면 스트롱 포트폴리오에 이런 분들이 있는데 등잔 밑이 어두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너무 친하고, 너무 잘 알고, 너무 당연한 것들의 진가를 우린 못 알아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우리 투자사의 후속 투자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 이는 투자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서 생각해서 봐야 하는 쉬워 보이지만 매우 어려운 숙제다.

해자(垓字)는 없다

요새 VC들이 소비재 쪽의 사업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검토하거나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 같은데, 우린 이런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계속 이 분야에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을 만나고,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도 생필품, 의류, 그리고 음식 분야에서 사업하고 있는 여러 창업가를 만났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직접 고객에게 자사몰, 그리고 다른 온라인 플랫폼이나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대부분 내가 이 에서 말했던 그런 어려움을 사업의 단계와는 상관없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분들과 이야기를 하면, 항상 등장하는 주재가 ‘해자(垓字)’이다. 사업의 종류에 상관없이 VC들이 창업가들에게 물어보는 게 그 사업만의 차별점, 진입장벽, 보호 장벽, 해자 관련 질문인데, “지금까지 비슷한 사업을 여러 번 검토했는데, 모두 다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 같네요. 우리가 다른 경쟁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우리만의 해자가 있나요?” , “이 사업이 잘되면 분명히 대기업도 같은 사업을 할 텐데요, 그 상황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우리만의 해자가 있을까요?”와 같은 유의 질문이다. 솔직히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투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이런 질문을 한 VC는 결국엔 이 사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비슷한 분야에서 경쟁하는 회사들이 투자자를 설득할 만한 명확하고 논리적인 해자를 갖추긴 어렵고 –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초기 스타트업은 – 대기업이 이 분야에 진출했을 때 다윗 같은 스타트업이 골리앗 같은 대기업을 이길만한 해자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이론적으로 명확하고 논리적인 상상 속의 해자가 있더라도, 아마도 투자자는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공장에서 뭔가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브랜드나 D2C 회사들은 이런 해자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도 이 분야에서 사업하는 한국과 미국 회사에 꽤 많이 투자하면서 이 힘든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나는 몇 년 전부터 이런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브랜드를 만드는 사업 분야에서 해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받아들이고 있고, 아예 이 분야에서 사업하는 창업가들에겐 본인이 하는 사업의 해자는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이런 D2C/브랜드 사업들을 보자: 제주 귤을 원료로 주스와 같은 다양한 시트러스 제품을 만드는 귤메달; 파워레이드나 게토레이드랑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 기능성 스포츠 드링크 얼티밋포텐셜을 만드는 어센트스포츠; 그리고 반려동물을 위한 영양제 페노비스를 만드는 노즈워크. 모두 다 잘하고 있는 스타트업이지만, 다른 스타트업도 충분히 이 분야로 들어올 수 있고, 돈/시간/인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대기업도 진출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규모가 나오는 시장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회사들이 우리 투자사들과 경쟁하기 시작하면 우리 창업가들은 어떤 해자를 만들면서 이길 수 있을까?

정답은, 이들이 구축할 수 있는 해자는 없다. 이 치열한 분야에서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고, 되도록 많은 소비자들의 눈에 노출되고, 그냥 무조건 많이 팔아서 매출 잘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많이 팔고, 어떻게 매출을 많이 만들 수 있을까? 이 또한 정답도 없고, 이를 위한 해자라는 것도 없다. 그냥 좋은 제품 만들고, 최대한 많은 채널을 통해서 유통하고, 동시에 마케팅도 잘 해야 한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혹시나 자체 공장을 만들거나 우리 제품을 OEM 제조하는 공장을 인수해서 생산의 전 과정을 수직통합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건 품질관리, 공정관리, 수량 조정, 가격 조정 면에서 우리에게 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체 공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단계까지 왔다면, 이미 우린 시장에서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브랜드가 됐을 것이고, 여기에서 말한 대로, 특정 분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됐다면, 이 자체가 엄청난 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그 강력한 브랜드가 되기 전까지는, 해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 자꾸 우리만의 차별점이나 해자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지 말고, 그 시간에 그냥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라. 대신,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너무 깊이 생각하기보단 get things done 전략으로 실행에 집중해라.

이제 안심해도 됩니다

영어에서 많이 사용하는 문장 중 “You are in good hands”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믿을만한 손이 나를 잘 잡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안심해도 된다는 의미다. 다양한 상황에서 이 말을 하는데, 비즈니스 상황 외에 내가 가장 많이 이 말을 들었던 건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적진에 침투해서 인질을 구출하면서 안심시키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나도 영어로 대화할 땐 이 말을 꽤 자주 사용하는데, 투자자로서 내가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주로 하는 말이다.

스트롱이 첫 번째 기관 투자를 했다면, 이 스타트업의 대표에게 “우리가 한국에서 투자를 제일 잘하는 VC도 아니고, 우리한테 투자를 받으면 회사가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you are in good hands 입니다. 저희는 회사들이 힘들 때 뒤에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궂은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투자자예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 투자사 중 80% 이상이 우리가 첫 번째 기관투자를 했으니, 대부분의 대표님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봐도 된다.

솔직히 한국어로 “우리랑 같이 하니까 앞으론 걱정하지 말고 안심해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거랑 영어로 “You are in good hands”라고 하는 거랑 느낌이나 어감이 많이 다르긴 하다. 영어로 하는 게 임팩트가 훨씬 더 크긴 한데, 어쨌든 이 말은 내가 투자자로서 창업가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반대의 상황을 경험했다. 우리가 여러 번 투자한 스타트업의 대표가 나한테 “You are in good hands.”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듣고 뭔가 기분이 묘하긴 했다. 기분이 묘했다는 게 나빴다는 건 전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항상 불안해하는 창업가분들에게 이 말을 하면, 이분들의 표정이 조금은 더 편해지고, 심적으로 안정감을 찾는 것 같았는데, 나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 이 말을 들으니, 이런 기분이 드네. 좋구먼.”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회사의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 여기서 말하진 않겠다. 그런데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항상 돈은 없고, 항상 사업은 불안하고, 항상 원하는 수치는 안 나오는, 그런 전형적인 초기 스타트업이 대부분 거치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우리는 사업을 직접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창업가들과 워낙 많이 교류하다 보니,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항상 우리의 걱정과 근심이 직간접적으로 반영된다. 그날도 이야기하면서 이런 나의 우려가 표출됐던 것 같은데, 이분이 나를 똑바로 보면서, “걱정하지 마세요. You are in good hands.”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정말로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아마도 그분은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해외 LP 분들이 글로벌 경기, 한국의 경기, 북한, 스트롱의 포트폴리오, 스트롱의 어려운 상황들 등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하면, “Don’t worry. You are in good hands.”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창업가분들이 우리에게 큰 안심을 제공하듯이, 내가 하는 이 말도 우리의 LP들에게 큰 안심을 줄 수 있길 바란다.

더 좋은 브라우저를 찾아서

나는 1995년도에 Netscape라는 브라우저를 통해서 메인스트림 인터넷에 입문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넷스케이프에 대해서 들어봤거나 읽어봤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진 않은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V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의 공동창업자이자 파트너인 마크 앤드리슨이 대학생 때 만든 그 브라우저이다.

당시에 우리 집에는 인터넷 통신만을 위한 전용 전화선이 있었는데 – 이걸 허락해 주신 우리 부모님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 천리안을 통해서 전화로 모뎀 접속을 하고, 넷스케이프를 통해서 방문했던 다양한 사이트들은 나에겐 정말 신세계였다.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내가 넷스케이프로 가장 먼저 접속했던 사이트가 루브르 박물관이었고, 두 번째로 접속했던 사이트가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였다. 한 페이지가 뜨는 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 당시엔 정말 너무너무 신기했고, 앞으로 이 World Wide Web이 어떻게 발전할지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지만, 이렇게 전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중요하고 촘촘한 거미줄(web)이 될 진 상상도 못 했다.

인터넷 브라우저는 이제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제품이 됐고,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나에겐 세상을 바꾼 가장 혁신적인 제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넷스케이프가 한동안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이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가져갔고, 구글이 크롬을 만들면서 브라우저 시장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 현재 브라우저 시장은 구글의 크롬이 65%, 애플의 사파리가 18%,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Edge가 5%를 점유하고 있다. 거대한 공룡들이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이 헤게모니를 무너뜨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이 시장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대기업들이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 파이어폭스나 Brave 같은 브라우저도 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투자사 미러도 현재 이 시장의 일부를 가져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빙글의 테크니컬 리드였고, 캐치패션의 CTO 였던 미러의 공동창업자 이상현 대표님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겠다고 우리랑 미팅했을 때,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라서 아마도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그런데 만약에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미러를 사용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니까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 수 없는 이유가 백만 가지였지만, 어쩌면 이 팀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를 우린 찾아서 투자했다.

미러는 사용자들의 정리를 도와주는 브라우저다. 셀프오거나이징(self-organizing) 기능이라고 하는데, 사용자의 웹 브라우징 활동을 자동으로 정리하고 구조화해 준다. 작업용 브라우저를 보면 열기만 하고 절대로 닫지 않아서, 끝없이 늘어나는 탭 때문에 현대 사회의 지식 근로자들은 꽤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 문제점을 미러는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 제품보다 더 안전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준다.

미러가 과연 30년 동안 변화가 없던 브라우저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수 있을까? 꼭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잘 만들면 브라우저만큼 글로벌 임팩트가 큰 소프트웨어도 없다고 생각하고, 한국 스타트업에서 만든 브라우저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현재는 맥버전만 제공된다. 이 링크를 통해서 사용하면 첫 달은 무료로 사용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