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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흙 묻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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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크리에이티브열정 / 크라우드픽

투자 받을 때 가능하면 최대한 많은 투자자를 만나보라고 나는 항상 조언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많은 VC를 만날수록 다양한 시장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투자자마다 회사와 시장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비즈니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VC를 만날수록 창업가의 피칭 실력이 향상한다. 어떤 질문을 할지, 그리고 특정 질문을 하면, 어떤식으로 답변을 해야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감이 생기고, 이걸 더 할수록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처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투자 받는 것도 결국엔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투자자를 많이 만날수록 투자받을 확률 또한 높아진다.

내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랑 궁합이 잘 맞는 VC를 만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궁합이 잘 맞는다는 말이 모호하긴 하지만, 많은 VC를 만나본 창업가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직감적으로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나자마서 뭔가 이야기가 술술 풀리고, 왠지 우리 서비스를 잘 이해하는 것 같고, 대화하면서 편한 느낌을 받는 그런 투자자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이 주로 우리랑 궁합이 잘 맞는 VC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런 VC는 사상, 철학, 가치 등이 창업가와 비슷할 가능성이 크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운영하는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해봤거나, 아니면 서비스를 사용하는 친구 또는 가족이 있을 확률이 높다. 어떤 VC는 이미 우리 서비스의 열렬한 팬인 분들도 있을 텐데, 이런 분들과는 매우 매끄럽고 질 좋은 미팅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한테는 너무나 유리한 상황이다.

영어에는 “get your hands dirty”라는 말이 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직접 팔/소매 걷어붙이고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임한다는 의미 정도가 될 듯싶다. 즉, 본인이 직접 자기 손을 더럽혀가면서 뭔가를 실제 해본다는 의미인데, 투자를 받을 때는 이런 손에 흙을 묻히면서 우리 서비스를 직접 사용해본 VC와 대화할 때, 확률이 높아진다. 나도 내가 사용하고, 애용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팀과 이야기 할 때 훨씬 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고, 투자할 확률이 높고, 우리 투자사도 후속 투자를 받을 때 이들의 제품을 알거나, 사용해봤거나, 또는 열렬한 애용자인 VC한테 투자받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모바일 세탁소 세탁특공대에 우리가 처음 투자하기 전에 이미 우리 집은 세탁특공대의 고객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제품에는 미흡한 점들이 많았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편리하고,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름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에 투자결정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레인지엑스라는 골프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 투자할 때도 내가 골프를 치고, 좋아하기 때문에 남들이 잘 보지 못 했던 부분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코너마켓이라는 유아동복 리세일 플랫폼에는 많은 여성 VC 분들이 관심을 갖는데, 본인들이 엄마로서 직접 이 서비스를 사용해봤기 때문이다. 플랩풋볼은 풋살(=미니축구)을 중개해주는 소셜 스포츠 플랫폼인데, 실제로 플랩풋볼을 통해서 현재 풋살을 하는 젊은 VC들이 투자에 관심이 훨씬 더 높다. 한 달에 1,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당근마켓도 마찬가지다. 뭐, 이런 이야기는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을것 같다.

그래서 가능하면 창업가들은 우리와 궁합이 잘 맞는 VC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우리 서비스를 잘 사용하고 있는 투자자와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분한테 투자받을 수 있는 확률이 꽤 높다는 점을 잘 기억하면 좋겠다.

전화 주문

call-center-1015274_1280거의 4개월 동안 집에서 운동하고, 아파트 계단만 오르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헬스클럽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지만, 눈으로는 여기저기 배치된 TV 스크린으로 뉴스도 보고 스포츠도 보면서 주로 운동을 하는데, 오전 시간에 케이블 TV에 자주 보이는 광고 중 하나가 배칠수 씨가 광고하는 배칠수 플라워다. 촌스러운 광고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냥 끝까지 보내되고, 다양한 꽃을 1588-39000번을 통해서 전화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다(확인해보면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전에 내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내 아이폰으로 다양한 업무와 일들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통화도 꽤 많이 한다. 그런데 요새 어린 친구들은 전화를 통화기기로 사용하기 보단, 그냥 작은 컴퓨터로 사용하는 거 같다. 친한 친구들이랑 가족과 전화 통화도 하지만, 거의 다 카톡이나 문자나 영상으로 소통하고, 실제 전화 통화 하는 건 우리 세대보단 상당히 많이 줄어든 거 같다. 과거 글에서 설명했듯이, 밀레니얼들은 잘 모르는 사람과 전화 통화하는 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더 심하게 말하면 통화 포비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꽤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거에 대해서는 큰 공포감이나 불안감은 없지만, 이런 나도 가급적이면 전화 통화는 용건만 간단하게 하고, 더 자세한 건 문자나 이메일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그냥 전화기 건너편 사람과 너무 오래 통화 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고, 왠지 에너지가 많이 고갈된다는 느낌이 항상 들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현상이 정말로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냥 누군가와 통화 하는 거 자체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스마트폰의 작은 자판으로 거의 말하는 속도만큼 빨리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대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실시간 통화를 하지 않는걸 선호하는 것 같다. 실은 어떤 경우에는 뭔가 복잡한 걸 설명하려면 그냥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빨리 해결되지만, 밀레니얼은 이걸 잘 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배칠수 1588-39000 꽃 광고를 볼 때마다 저 회사는 젊은 세대를 위한 꽃 배달 서비스보단, 우리 부모님과 같이 인터넷이나 앱으로 뭔가를 주문하는 게 힘든 분들이 주 고객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전화를 최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생각하는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뭔가를 팔려고 하는 회사가 전화 주문을 광고에서 강조한다는건 조금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서비스가 잘 안될 것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바일/인터넷 세대가 아닌 많은 시니어 분들은 오히려 이렇게 전화를 걸어서 상담원에게 제품, 주소, 결제 정보를 말로 알려주는걸 더 편하게 생각하고, 한국과 같이 노령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어쩌면 이 전략이 상당히 잘 맞아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 주문을 통해서 큰 비즈니스를 만들려면 비즈니스가 커질수록 전화를 받고 주문을 처리해야 할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냥 작게 사업을 유지하면 상관없지만, 이런 전화주문 꽃 배달 서비스로 전국에서 1등이 되려면 굉장히 잘 훈련된 고객 응대 인력과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모든 걸 내재화하면 비용이 매출과 비슷한 속도로 늘어나고, 전문 CS 업체에 외주하면 우리 인력만큼 잘하지 못 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아마도 전화 주문이 비즈니스의 메인이고, 이걸 유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고객 응대 팀과 시스템을 운영하는 분들이 한국에도 꽤 있을 텐데, 이런걸 다들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설탭

2016년 12월에 우리는 오누이라는 회사에 투자했다. 프라이머 회사라서 그 전부터 알고 있었고, 오누이 고예진 대표님이 본인이 대학생일 때 과외 수업을 하면서 느꼈던 시장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사업화 한 게 모바일 수학 질의응답 서비스 오누이라는 앱이었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사진을 찍어서 앱에 올리고, 명문대 과외선생님들이 실시간으로 이 문제를 풀어주는 서비스였다. 과거에도 비슷한 컨셉의 앱이 있었지만, 오누이 나름의 전략과 실행력으로 사업 초반에는 꾸준히 잘 성장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비즈니스는 한계에 부딪혔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심한 이 시장에서 고속 성장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나, 돈과 인력이 없는 작은 스타트업이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으로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고생했고, 꽤 긴 정체 기간이 있었다.

실은 여기까지는 특별한 내용은 없다. 좋은 시장에서 좋은 제품으로 시작해서, 초반에는 반응이 좋았고 어느 정도의 성장이 있지만, 한정된 자본과 인력 때문에 더 이상 성장을 못 하고 정체되는 과정은 전 세계 모든 스타트업이 최소 한 번 정도는 겪는다. 아마도 많은 분이 아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고, 결국엔 서서히 사라진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 사업을 접는 게 더 현실적이고 현명하다는 생각도 나는 가끔 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망하는 건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상황이 오면 기약 없이 계속 사업 초기의 믿음과 비전만 가지고 버티는 거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누이 팀은 계속 버텼다. 힘들게 버티면서도 계속 눈과 귀는 크게 열어놓고, 이런저런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 과외 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으면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테스팅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관찰과 배움이 있었고, 같은 과외 시장이지만,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소위 말하는 ‘피보팅’을 시도했고, 설탭이라는 서비스로 피보팅을 했다. 참고로, 설탭은 아이패드를 이용해 100% 서울대 선생님과 학생이 화면과 필기를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아주 조용히 피보팅했는데, 다행히도 출시 약 1년 만에 매달 120% 성장했고, 현재 10대 중고생들의 소셜미디어에 자주 거론되는 아주 인기 있는 앱이다. 실은 이렇게 서울대 선생들이 태블릿을 이용해서 과외를 하는 서비스가 시장에 꽤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설탭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오누이 팀이 그동안 이 시장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관찰한 디테일이 잘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 오누이의 투자 소식이 발표됐다. 우리도 이번 라운드에 다시 참여했는데, 회사의 성장이 더욱더 뜻깊었던 이유는 설탭의 실시간 과외 플랫폼의 기술 인프라 API를 제공하고 있는 회사가 또 다른 스트롱 투자사인 플링크이기 때문이다. 플링크도 초반에 많이 고생했는데, 역시 창업가가 한 시장에 집중하면서 한 우물만 파다 보면 이런 좋은 일이 동시에 생기기도 하는 거 같다.

웬만한 팀이라면 돈과 에너지가 떨어지면 그냥 그만둘 텐데, 지칠 줄 모르는 각오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탄성을 내 눈앞에서 직접 보여준 오누이 팀과 설탭에게 정말 감사한다.

도전받는 자, 도전하는 자

얼마 전에 내가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세탁소 사장님을 만났다. 양손 한가득 고객 세탁물을 수거해서 내려가고 있었는데 봉지나 가방도 없이 그냥 맨손, 가슴, 그리고 턱으로 빨랫감을 받치고 있었고, 빨래가 시야를 가려 1층 눌러달라고 나한테 부탁하더라.
“사장님 이러다가 빨래 길거리에 흘리면 큰일 나겠어요. 지금도 양말 떨어질려고해요”
“에이 안 흘려요. 이걸 20년 넘게 했는데요”
“…..”

세탁특공대랑 런드리고의 미래가 너무 밝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 상가 건물에 있는 세탁소를 이 자리에서 20년 넘게 하고 계신 사장님과 사모님은 정말 열심히 사신다. 아파트 모든 동호수를 매일 돌면서 세탁물을 배달하고, 또 수거하는 작업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젠 어디에 누가 살고, 그 집에는 어떤 옷을 입는지까지 다 알고 있다. 그것도 이 모든 게 어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있는 게 아니라, 두 분 머리에 그대로 입력되어 있다. 그동안 비즈니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거의 독점하다시피 이 동네의 모든 세탁을 담당했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 그리고 위의 엘리베이터 에피소드를 봤을 때, 이 동네 세탁소의 비즈니스도 앞으로 서서히 줄어들 것이고, 언젠가는 대체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꼭 세탁이 아니더라도, 이런 현상의 반복은 우리 주위에서 늘 일어나고, 비즈니스 역사를 보면, 항상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올 초에 고인이 된 클레이튼 크레스텐슨 교수의 이노베이터스 딜레마와 파괴적 혁신 책 내용도 요약해보면, 시장의 1등 강자들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항상 하던대로 비즈니스를 하다가, 아주 작고 하찮은 경쟁사의 출현을 못 보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 결국엔 이들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이 충분히 크다면, 어느 곳에서나 그 시장의 일인자가 있다. 이 일인자는 아주 오랫동안 이 시장을 지배한, 역사가 100년이 넘는 대기업일 수도 있고, 이런 대기업을 1등에서 끌어내린 혁신적인 스타트업일 수도 있다. 어쨌든, 큰 시장에는 항상 도전받는 자가(=현재 1등) 있고, 도전하는 자가(=1등 외)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순위가 계속 바뀐다는건데, 어떤 시장은 이 주기가 굉장히 길고, 어떤 시장은 짧다. 세탁소는 주기가 꽤 긴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의 세탁소는 거의 20년 동안 자기만의 비즈니스를 했다. 그동안 단골은 늘어났고, 이 분야의 혁신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하던 대로만 비즈니스를 해도 – 어쩔때는 과거보다 더 질이 떨어지는 서비스를 제공해도 – 고객은 계속 여기에 세탁물을 맡겼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 세탁시장의 규모는 3조 원~5조 원이다. 이런 큰 시장에서, 혁신과 발전이 없다는 걸 똑똑한 창업가들이 놓칠 리 없다. 1990년대 말에 세탁소의 프랜차이즈화를 통해서 세탁품질, 비용, 그리고 유통의 혁신을 추구하자는 비전하에 ‘크린토피아’라는 회사가 창업됐고, 현재 크린토피아는 대한민국 세탁 시장의 1등이 됐다. 당시에는 동네 세탁소가 도전받는 1등이었고, 크린토피아가 도전하는 자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에 크린토피아가 도전받는 1등이 됐다.

그런데 이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세탁특공대, 워시온, 리화이트, 런드리고 등의 모바일 세탁소 앱들이 몇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동네세탁소와 크린토피아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이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새로 등장한 모바일 세탁앱 중 하나가 시장의 1등을 먹을 것이고, 도전하는 자 – 도전받는 자의 구도는 또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반볼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현상을 보면 볼수록, 수많은 업체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시장 1등 자리를 지킨다는건 정말 힘든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을 보면, 비슷한 플레이를 과거에 시도했던, 그리고 지금도 이 거대한 회사들을 이기기 위해서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신생 스타트업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시장의 1등을 지킨다는 건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언제나 이 구도는 바뀔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영원한 도전자도 없고, 영원히 도전받는 자도 이 시장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재미있고, 우리 같이 ‘도전하는 자’들에 투자하는 이 업 또한 매우 재미있다.

내 탓입니다

Quibi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창업하자마자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회사인데, 두 명의 공동창업가는 미디어 업계의 대가인 Jeffrey Katzenberg와 전 이베이와 HP의 사장이었던 Meg Whitman이다. 워낙 유명한 거물들이 창업한 회사라서 그런지 시작하자마자 디즈니, 소니, 워너와 같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스튜디오 등의 투자자들로부터 거의 2조 원의 투자를 받았다. 짤막한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이었는데, 엄청난 투자를 받고, 엄청난 관심을 받고,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소문만 무성한 후, 막상 1년 8개월 이후에 출시된 제품은 시장의 호응을 전혀 못 받는 허접 그 자체였다.

실은, Quibi같이 출시하기도 전에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무지막지한 펀딩을 받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허접한 제품을 출시한 회사는 생각보다 많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한 회사를 이기는 건 쉽지 않고, 아무리 투자를 많이 받았고, 경험많은 노련한 창업가라도, 이 바닥에서는 모두 이제 시작하는 초짜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별로인 제품을 출시했냐는 질문에 대한 대표의 답변은 정말 허접하기 짝이없다.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참 아쉬움이 많았다. 일단 모바일 앱 데이터를 분석하는 Sensor Tower의 Quibi 관련 데이터가 본인들이 회사 내부에서 관리하는 데이터랑 다르다고 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을 하고 있고(어차피 그 수치나 이 수치나 다 낮다), 맥 위트먼 대표는 출시 이후 앱 스토어 랭킹이 많이 떨어진 이유는 코비드19와 인종차별문제와 같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을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카첸버그 의장도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콘텐츠가 매우 중요한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새로운 콘텐츠를 현재 못 만들고 있고, 젊은 친구들이 밖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짤막한 동영상을 많이 봐야하는데 외출을 못 하니까 이런 사용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리하자면 본인들은 잘못 한게 하나도 없고, 퀴비가 잘 안되는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남의 탓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팬데믹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퀴비같은 서비스는 팬데믹 때문에 더 잘 돼야 하는데, 제품의 콘텐츠가 별로이고, 회사의 전략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게 맞을 거 같다. 물론, 팬데믹이나 BLM과 같은 사회적 문제도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것보단 퀴비 내부에서 문제를 찾아야한다.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지만 문제를 찾고, 변할 수 있고, 그래야지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데, 퀴비의 공동창업가들의 말에서는 이런 태도가 전혀 안 보인다.

젊은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소비하는 습관을 완전히 혁신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 똑같은 자신감과 패기로 초반에는 크게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 탓하는 그런 태도가 많이 아쉽다. 실은, 이건 잘 안되는 회사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잘되면 과하게 스스로 잘했다고 과대포장하고, 잘 안되면 무조건 코로나바이러스, 경기, 경쟁사 등과 같이 남을 탓한다.

“잘못했습니다. 내 탓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