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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스타트업이 초기에 개발팀이 필요한가?

나는 개발팀을 항상 강조해왔다. 우리가 주로 투자하는 분야가 소위 말하는 consumer internet 분야이다 보니, 남의 제품을 소싱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직접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그리고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온디맨드(=O2O) 비즈니스에 상당히 많이 투자한다. 쉽게 말하면, 생활밀착형 서비스들에 스트롱의 돈을 대부분 투자한다. 실은 이런 기업들이 겉으로는 기술이 없고, 그냥 인터넷으로 물건 팔고, 인터넷으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단순한 서비스를 만드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잘 되는 서비스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들 뒤에, 보이지 않는 곳에 상당한 기술이 구현되어 있다. 특히, 이런 생활밀착형 서비스들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하고, 많은 정보가 왔다 갔다 하므로, 확장성과 자동화 관련 첨단 기술이 도입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개발팀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고, 과거에는 그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 개발력이 없는 팀은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실은 지금도 기본적인 방향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방법은 조금은 바뀌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말하는 이커머스나 온디맨드와 같은 컨슈머 인터넷 비즈니스에 해당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돈도 없고 자원도 없는 스타트업이 소위 말하는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전에는 가능하면 돈을 쓰지 않고 lean 하게 가야 한다. 이에 대한 중요성은 과거에도 항상 강조됐지만,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투자금으로 기업가치를 올려놓고 그 기업가치를 정당화하지 못하는 유니콘들 때문에, 요새 와서 이 “린”이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개발을 모르는 창업자가 물건이 시장에서 판매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팀을 꾸리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 돈 낭비다. 그건, 나중에 어느 정도 컨셉이 증명되면 해도 된다. 이럴 경우, 발 빠른 창업가들은 간단하게 구글폼으로 설문조사를 하거나, 간략하게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선주문을 받아본다. 돈도 안 들고, 시간도 별로 안 드는 방법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인다면 – 그리고 이 방법도 돈은 거의 안 든다 – 와디즈나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활용해서 과연 본인이 생각하는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반응이 있을지 테스팅을 해본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마켓플레이스를 만들고자 하면, 어떤 창업가들은 수요와 공급을 수작업으로 연결하는 거로 시작한다. 내가 아는 많은 대표들은 본인들이 직접 발품 팔면서, 전화로 시작했다.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마치 규모가 꽤 있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이건 우선순위와도 겹치는 내용인데, 뭔가를 판매하는 이커머스 회사라면, 세련된 이커머스 플랫폼 보단, 판매하는 제품이 이 회사의 핵심 상품이다. 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입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바로 고객이 이 회사의 핵심 상품인 제품을 좋아하고, 돈을 내고 구매하냐이기 때문에, 일단 모든 자원을 좋은 제품을 만들고 소싱하는데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게 어느 정도 증명이 된 후에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어도 늦지 않다. 어떤 분들은 이 반대의 전략으로 움직이는데, 이건 lean 한 방법은 아니고, 시작하기도 힘들다.

또 다른 이유는, 요새는 헤비한 개발력이 없어도, 스스로 공부를 좀 하면 간단한 플랫폼을 직접 만들 수 있는 DIY 제품들이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분야에서 이런 툴들이 가장 많이 제공되고 있는데, 카페24, 고도몰, 그리고 미국이라면 Shopify와 같은 이커머스 사이트를 쉽게 만들 수 있는 템플릿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계속 생기고 있고, 네이버 스토어팜이나 카카오톡 스토어를 활용하면 웬만한 규모의 비즈니스까지는 처리가 가능하다. 본인이 다 만들지 않아도 제품 판매, 결제, 그리고 배송까지 처리해주는 제품이 요샌 많이 있고, 과거와는 달리 이런 개별 모듈과 기능 자체가 큰 비즈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창업가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어서, 제품 완성도도 상당히 높다.

우리 스트롱 대표들을 포함,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요샌 이런 방법으로 창업해서 꽤 괜찮은 규모의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은 개발력이 있어도,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컨셉을 테스트하고, 이게 어느 정도 시장에서 통할 것 같은 확신을 얻으면, 이미 시장에서 제공되고 있는 제품을 lean하게 구현해서 빨리 성장하는 회사들이 오히려 더 잘 하는 것 같다. 물론, 쿠팡과 같은 큰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제품과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좋은 개발력이 필수이다. 고도몰이나 카페 24와 같은 플랫폼으로 시작했다가, 짧은 시간에 규모가 너무 커져 버린 비즈니스들의 플랫폼 성장통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뭔가 빨리 만들어서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각각의 필요에 따라서 세밀하게 커스터마이징을 하거나, 원하는 세련된 기능을 구현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완전히 자체 플랫폼으로 마이그레이션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이런 결정 자체를 하기 위해서는 개발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새 나한테 모든 스타트업이 개발력이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소프트웨어가 회사의 업이라면 당연히 필요하지만, 위에서 말 한 이커머스/D2C/온디맨드 비즈니스라면 개발력이 있으면 훨씬 좋지만, 그렇다고 개발력이 없다고 시작하지 못하거나, 또는 우리가 절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이 오면 개발력은 필수다. 우리가 필요한걸 그때그때 직접 in-house에서 만들 수 있는 건 회사가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는 능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 있어서 돈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이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개발력은 매우 중요하다.

에어비앤비 스토리

얼마 전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리 갤러거의 “에어비앤비 스토리(The Airbnb Story)”를 읽었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는 일부러 창업이나 비즈니스 관련 책 보단 일반 소설을 읽는데 시간을 할애해서 인제야 읽게 됐는데, 비행 내내 밥 먹는 시간 빼곤 한 번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 단숨에 다 읽었다. 실은, 우리가 아는 현재 거대한 비즈니스가 된 스타트업들의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는데, 에어비앤비의 창업과 성장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전에 포스팅했던 넥슨 창업 이야기 플레이만큼 흥미진진했고, 영감과 감동으로 가득 찼던, 마치 한 편의 대하소설과 같았다.

에어비앤비 관련 단편 일화들은 이 분야에서 일하면 누구나 다 한두 번은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가난한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디자인 관련 행사 참석자들에게 자신들의 침대를 돈 받고 빌려주면서 시작한 일화, 한때는 회사 서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당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두 대통령 후보를 주제로 한 시리얼을 판매했던 일화, Y 컴비네이터에 거의 떨어질 뻔했다가 턱걸이로 들어갔던 일화, USV의 Fred Wilson이 에어비앤비 투자하지 않았던 걸 후회한 일화 등은 아마도 누구나 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이런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듣고 읽어서 대략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 조금 더 깊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니, 모두가 비웃던 아이디어를 가진 세 명의 젊은 창업가들이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직면해야 했던 도전들, 이들이 구축한 제품과 문화, 그리고 세계 최고기업으로 단시간 만에 성장시킨 이야기는 실리콘밸리 다른 회사의 성장 스토리랑 비교해봐도 매우 인상 깊고 이단적이기까지 하다.

세 명의 창업가가 단기간에 수십조 원의 가치를 가진 에어비앤비라는 회사를 만든 과정을 책으로 보면서, 이 바쁘고, 정신없고, 잡음 많은 세상을 살면서, 쉽게 잊어버리지만, 투자자한테는 생명과도 같은 다음 세 가지를 계속 스스로 상기시켰다:
1/ 황당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실행했을 때, 뭔가 항상 나오고, 그게 나오면 대박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
2/ 지적인 강인함을 가진 창업가가 어려운 시기에도 성공할 수 있다.
3/ 학벌, 능력보단 의지. 특히, 배움에 대한 의지는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4/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고 계속 황당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실행하는 바퀴벌레 근성은 정말 중요하다.

에어비앤비 공동창업가이자, 현재 대표이사인 브라이언 체스키는 1년 365일 배움의 의지를 가진 사람인데, 독서광이기도 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두 개의 명언이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킨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환경을 자신에게 적응시킨다. 고로 모든 변화와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달려있다.”
-조지 버나드 쇼

“처음에 그들은 당신을 무시하다가 당신을 비웃고, 그다음에는 당신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그러면 결국 당신이 이긴다.”
-마하트마 간디

에어비앤비의 탄생과 성장 자체를 바로 이 두 명언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작은 남한테 인정받지 못하고, 욕먹고, 비웃음당했다.

“낯선 사람을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재운다.”

그 누가 봐도 정말 미친 아이디어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에어비앤비는 절대로 생겨날 수 없는 회사였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기업가치가 높은 회사가 됐다.

대담한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매번 무시당하고 조롱받았던 사람들. 하지만 결국 승리한 사람들.

이 책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이다.

집 밖은 위험해

bkk얼마 전에 이런 기사를 읽었다. 주로 밀레니얼이라고 하면, 구세대보단 훨씬 더 활동적이고, 뭔가 외부 활동을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기사에 의하면 오히려 밀레니얼들이 가장 ‘방콕’을 선호한다고 한다. 여기에 의하면 18세~24세 미국 젊은이들이 평균 미국인 대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70% 더 많다고 한다. 그리고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동안 오프라인에서 하던 많은 활동이 온라인으로 옮겨서 갔고, 넷플릭스, 배달 등과 같이 집을 떠나지 않고, 더 저렴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트렌드가 부상했고, 또는 외출해봤자 인생 별로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 등이 있다.

나도 이런 트렌드를 요새는 직접 체감하고 있는데, 강남 일대의 늘어나고 있는 빈 빌딩과 “임대” 사인을 보고 특히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와이프랑 이런 현상에 대해서 종종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일단 압구정동과 청담동 쪽으로 다니다 보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하는 대로변에 있는 건물 중 1층이 빈 곳이 상당히 많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걸 보면 요새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하는데, 나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한다. 경기가 정말로 좋은지, 안 좋은지는 내가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젠 사람들이 과거와 같이 오프라인 매장이나 식당에 물리적으로 잘 안 오기 때문에, 오프라인에 들어올 만한 가게나 매장이 없는 게 조금 더 정확하다고 본다.

대로변 1층 매장에 옷가게가 들어와도 금방 망해서 빠지고, 식당이 들어와도 금방 망해서 또 빠지는데, 이 현상을 보고 경기가 좋지 않아서 사람들이 외식을 안 하고, 옷을 안 산다고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요샌 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사람이 쇼핑을 하고,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본다. 내가 보기엔, 그 이유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 특히, 밀레니얼들 – 집에서 배달 시켜 먹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옷을 구매하고, 집에서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기 때문이다. 이 글 처음에서 언급한 대로 과거에는 집 밖으로 나가서 물리적으로 어딘가를 가야 했지만, 이젠 집 안에서 손가락 몇 번 클릭해서 많은걸 할 수 있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면서, 먹고 싶은걸 집에서 시켜 먹을 수 있고, 해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제품까지 집에서 주문할 수 있고, 극장에 가지 않고도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더 저렴하게 집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대세는 배달과 쇼핑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실은 은행/뱅킹 또한 이런 트렌드를 타고 있는 대표적인 서비스다. 나도 요새 웬만하면 은행에 직접 안 가는데, 꼭 가야 할 때만 간다. 꼭 가야 할 때만 가면, 은행에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직접 은행 안가도 모바일 또는 인터넷으로 필요한 대부분의 업무를 볼 수 있는데, 굳이 은행에 가서, 번호표 뽑고, 모르는 은행 직원과 말을 섞는 게 싫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다. 역시 엄청나게 많은 오프라인 은행지점들이 폐업하고 있다.

기존의 많은 오프라인 서비스가 점점 더 모바일화, 온디맨드화(=O2O화), 그리고 개인화되고 있고, 우리가 이런 트렌드를 미리 파악하고 이 분야에 투자를 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이런 분야에 꽤 많이 투자하게 됐다. 대표적인 회사가 온디맨드 세탁 서비스 세탁특공대와 최근에 투자한 온디맨드 피트니스 서비스 홈핏이다. 세탁특공대는 우리가 한 3년 전에 첫 투자를 했고, 당시에 내가 느꼈던 건, 이젠 가족의 규모와 의미가 바뀌면서 많은 집에서 세탁기를 구매하지 않고, 세탁기가 집에 있어도 바쁘고 귀찮아서 오히려 이런 쉽고 간단한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서 세탁을 외주하는 변화였다. 여기에다가 젊은 세대는 집 밖의 세탁소에 가서 세탁물을 맡기는걸 귀찮아 하고, 요샌 동네 세탁소 사장님이 집에 와서 세탁물을 수거하지만, 다른 사람과 대면하고 말을 섞는 것 조차 이들은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비대면 모바일 서비스는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홈핏은 온디맨드로 트레이너를 내가 있는 곳으로 – 주로 집 – 불러서, 헬스장에 안 가고 집에서 PT를 받을 수 있는 모바일 서비스다. 나도 운동을 즐기고, 일주일에 3~4번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헬스장에서 점점 더 여성분이나 젊은 분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나 같은 아저씨, 또는 나이 많은 시니어 분들이 주로 헬스장에 보이는데,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이런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서 익숙하지 않은 기구로 운동하는 거 자체를 밀레니얼들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몸매에 관심이 없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면, 이들은 분명히 집으로 헬스장을 옮기고싶어할텐데, 이에 대한 해답을 홈핏이 어느 정도 제공해준다고 생각했다.

이런 트렌드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돈 보다 시간, 그리고 편리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들의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집에서 뭔가를 하고, 누군가를 부르는 건, 내가 직접 가는 것 보다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더 편하고, 시간을 조금 아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게 요새 젊은 친구들의 생활방식인 거 같다. 앞으로 많은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이런 트렌드를 타면서, 파괴되고 변화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책 읽는 한 해

내 가족이나 친구들은 잘 알 텐데, 나는 신년 계획이나 결심같은걸 아주 오래전부터 아예 세우지 않고 있다. 한 해, 두 해라는 시간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의 순리대로 그냥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계획에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시간에 본인의 계획을 억지로 맞춘다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1년 동안 뭔가를 완성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냥 나는 신년 계획을 아예 안 세우고, 항상 하던 것을, 항상 하던대로 하는 편이다.

그래도 새 해가 되면, “올 해에는 이걸 조금 더 잘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운동이랑 독서다. 작년 초에도 이 생각을 했고, 실은 2019년에 운동이나 독서나 어느 정도 잘 실천하긴 했지만, 년초에 목표했던 독서량 50권에 많이 못 미친 39권으로 작년을 마감했다. 매주 1권을 읽으면, 대략 1년에 50권을 읽을 수 있는데, 작년에 나는 월평균 3.3권, 총 39권의 12,116 페이지를 읽었다. 이건 플라이북 앱의 2019년 내 독서량 페이지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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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독서에 대해서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이 프로세스가 이젠 습관화가 됐다.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 앱에서 “읽고싶은책”으로 등록해놓고, 또 다른 우리 투자사 국민도서관에서 이 책들을 빌려 본 후에, 다시 책에 대한 서평과 내가 기록해놓고 싶은 내용을 플라이북에 남긴다. 한가지 바뀐 습관이 있다면, 과거에는 국민도서관에 없는 책이라면, 입고될 때까지 기다렸는데, 이젠 동네 도서관에도 가끔 가서 책을 빌리고 있다. 실은, 귀찮아서 물리적인 도서관에는 이젠 안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직접 가서 책장에 차곡차곡 쌓인 책들을 보고, 책들을 냄새 맡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재미를 다시 발견하게 된 후로는, 오히려 시간을 내서 도서관을 찾아가고 있다. 글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종이책이 삶에 주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

작년에 읽은 39권의 책은 특정 장르나 작가와는 상관없이 그냥 잡식성으로 읽었다. 어느 순간 부터 비즈니스 관련 책들 보단, 소설이나 에세이와 같은 말랑말랑한 내용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여러 가지 면에서 나한테 도움이 된다는 경험을 해서 이젠 가능하면 5권 중 1권 만 비즈니스 관련 책을 읽고 나머지는 조금 더 다양한 내용의 책을 읽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올 해도 나는 독서 목표량을 50권으로 설정했다. 한국이 망한다면, 인구절벽이 오기 훨씬 전에, 국민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나라가 무식해져서 망할 거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하는데, 이게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매일 들고 있다. 모두 책을 읽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배달의 민족

2019년 스타트업계의 가장 큰 뉴스는 아마 배달의 민족 엑싯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에 본사를 둔,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Delivery Hero가 4.7조 원에 배달의 민족을 인수했는데, 국내, 그리고 해외에서도 깜짝 놀랐던 빅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달의 민족에 대해서 처음 들었던 건 아마도 2011년도였던 거 같다. 알토스의 한킴 선배님이 중국집 찌라시를 스캔해서, 이걸 모바일로 제공하는 앱이 있는데, 이름이 배달의 민족이라고 했을 때, 그냥 뭐 이름 정말 웃긴다고 하면서 막 웃었던 게 기억나는데, 이 회사가 10년 만에 엄청난 기업이 됐다. 참고로, 그땐 스트롱벤처스가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우린 투자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이 딜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는 거 같다.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는 점, 이젠 한국의 배달 시장이 외국인 소유가 됐다는 원망, 배달의 민족이 게르만 민족이 됐다는 말장난, 뭐, 이런 부분이 못 마땅 하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히 많은 거로 알고 있는데, 나는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배달의 민족은 한국 정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 산업이 아니다. 철저하게 시장과 자본의 논리로 만들어졌고, 운영되는 기업이다. 자본의 싸움이고, 시장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외국기업은 한국기업을 인수하면서 한국과 아시아에 진출한 것이고, 좋은 회사를 확실하게 인수하기 위해서 시장 가격을 지불한 것이다. 이게 비싸니, 말도 안 되는 기업가치니, 하는 건 다 부질없는 논쟁이다. 돈을 내는 사람이 지불의사가 있는 가격이 시장 가격이 되는 것이고, 누군가 딜리버리히어로보다 더 간절하게 배달의 민족을 원했다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했어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도 해외기업을 인수하면서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고, 이미 이렇게 하고 있는 마당에 독일 회사가 한국 스타트업을 조 단위 가격에 인수한 게 뭐가 그렇게 이상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이미 말했듯이, 이건 자본의 싸움이고, 돈에는 국적이라는 게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배달의 민족의 초기 투자자인 본엔젤스와 알토스가 부럽다. 그리고 너무 축하한다. 실은, 알토스보단 우리랑 비슷한 단계에 투자하는 본엔젤스가 더 부럽고, 강석흔 대표님과 본엔젤스 팀원분들에게 respect를 표한다. 본엔젤스는 이번 엑싯으로 인해서 8년 전에 3억 원 투자한 게 1,000배가 됐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우리 같은 초기 VC한테는 정말 꿈같은 수익률이다. 이 정도면, 투자 인생에서 평생 한 번 정도 칠만한 그런 만루홈런이다.

올 한 해도 한국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이런 좋은 소식이 많이 생겼으면 하고, 우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한다. 그리고 김봉진 대표님과 우아한 형제들 모두 축하한다. 아시아인 모두가 다 배달의 민족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