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배려해주는 사람들

나는 2007년 여름에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다. 운 좋게 워튼 MBA에 합격해서 2년 MBA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처음 가는 도시여서 와이프랑 기대를 많이 했는데 당시 필라델피아는 범죄율도 너무 높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내가 전형적으로 싫어하는 그런 곳이었다. 이 brotherly love의 도시에서 우린 6개월 정도 살다가 내가 휴학자퇴하면서 따뜻한 LA로 이사했지만, 그래도 필라델피아가 좋았던 점도 몇 개 있었다. 일단 맛있고 좋은 식당이 많았는데, 같은 음식도 뉴욕과 비교했을 때 약 30% 정도 저렴했다. 그리고 맛있는 동네 커피숍도 많았는데 그 중 내가 좋아하던 곳이 La Colombe이라는 곳이었다.

필라델피아가 라콜롬의 본사인데 내 기억으론 당시에 매장이 딱 한 개였던 동네 specialty 커피숍이었다. 그리고 서부로 떠나면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에 뉴욕의 멋진 라콜롬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고, 공교롭게도 며칠 후에 이 회사의 창업 스토리 관련 인터뷰를 듣게 됐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 회사가 2023년도에 그릭 요거트 업계의 대장 쵸바니에 1조 원 이상에 인수됐다는 점이었다. 가격이 높았다는 점도 놀랐지만, 1994년도에 창업된, 오래된 회사라는 점, 두 번째 매장을 오픈하기까지 거의 13년이 걸릴 정도로 하나의 매장에서 완벽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점, 그리고 엑싯하기까지 29년이 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두 코파운더의 우정과 서로를 배려하는 – 요샌 정말 찾기 힘든 – 아름답고 따뜻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인간애였다. 코파운더 중 한 명이 어릴 적부터 심한 양극성 장애가 있어서 힘든 사업을 하는 와중 3개월에서 6개월마다 한 번씩 회사와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쉬거나 사라졌는데, 다른 창업가가 수십 년 동안 매번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줬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꽤 큰 울림을 줬다.

실은 가끔 우리 투자사 창업가분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부분이 결혼, 육아, 장애 또는 질병으로 인해서 창업 초반만큼 업무에 시간을 투입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코파운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인데, 나는 라콜롬 창업가의 행동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라는 조언을 했었다. 즉, 업무에 더 이상 올인할 수 없는 코파운더는 회사에 쓸모가 없으니까 그냥 잘 이야기해서 나가라고 하거나, 지분이 많다면 대부분 다시 매수 또는 회수하고 이 지분을 앞으로 회사에 더 전념할 수 있는 분들에게 배분하라는 식의 조언을 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좋은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었고, 이젠 조금 다른 조언을 주고 있다. 같이 회사를 만들고, 몇 년 동안 생사를 같이한 전우와도 같은 코파운더들에 대해서 최대한 배려해 주라는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육아를 위해서 전에는 하루에 20시간 일했지만 10시간밖에 일을 못 하거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인해 몇 달 휴식을 취해야 한다면, 최대한 감싸주고, 배려해 주고, 포용해 주고, 회사에 남은 다른 코파운더 분들이 일을 더 많이 하라고 한다. 지분도 당분간 그대로 놔두라고 조언한다.

실은 우리는 일인 창업팀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업은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외로운 고난의 길이기 때문이다. 코파운더가 있으면 혼자 사업하는 것보단 의사결정도 더디고, 충돌도 잦고, 사람으로 인한 다양한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단점도 있지만, 너무 힘들고 외로울 때, 이 고통을 분담하고 서로 토닥거려주고 배려해 줄 수 있는 동료는 말 그대로 ‘life-saver’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린 공동창업가가 있는 팀을 항상 선호한다. 라콜롬 스토리를 들으면서 왜 우리가 코파운더가 있는 스타트업을 선호하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상기할 수 있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업은 빨리 가는 것보단, 멀리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아니, 훨씬 더 중요하다. 코파운더가 있다면, 오늘은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서로 칭찬해 주고 더 배려해 주는 하루가 되길.

같이 성장하는 기쁨

2012년도에 스트롱을 시작했을 때, 왜 투자를 시작하냐고 나에게 물어봤다면 여러 가지 대답을 했겠지만, 그중 하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였다. 당시에는 VC는 남의 돈으로 투자하고, 운 좋으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나에게는 꽤 쉬워 보이는 그런 직업이었고, 왠지 돈을 모으는 것도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고, 당시 내가 갖고 있던 가설과 환상은 이미 박살 난 지 꽤 오래됐다.

그래도 나는 이 업을 좋아한다. 그리고 실은 지금도 이 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잘하고, 운이 좀 따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만큼 어렵고 스트레스가 많이 따르는 직업이고, 다른 모든 창업가나 직장인처럼 나도 가끔은 이 일이 너무 힘들고, 내 힘과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고, keep going 하는 이유는 너무나 큰 보람과 만족감을 꽤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 보람 중 하나는 나만 혼자 성장하는 게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즐거움이다.

주로, 우리가 투자한 분들이 초보 창업가에서 근사한 기업인/리더로 성장하는 걸 옆에서 볼 때 이런 보람을 많이 느낀다. 생각해보면, 처음 스트롱 시작할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나이만 먹은 건 아니고, 투자자로서 훨씬 더 많이 성장하고 스마트해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단편적으로 모든 걸 봤다면, 이젠 조금 더 느긋하고 여유롭게 특정 상황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경험과 인내심이 생겼는데, 이는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학생 때 창업했거나, 직장 경험 없이 졸업 후 바로 창업한 대표들은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밸류에이션이 뭔지도 몰랐을 때 우리가 투자했는데, 이젠 100명 이상의 직원이 있는 조직을 리드하고 있는 어엿한 비즈니스맨이 됐고, 회사의 문화와 리더십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걸 보면, 이렇게 초짜 VC와 초짜 창업가가 만나서 좌충우돌하면서 같이 성장한 보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우리한테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주는, LP라고 하는 펀드 출자자분들과 같이 성장하는 보람도 자주 느낄 수 있다. 모든 투자가 그렇듯이, 한 번 만나서 투자가 성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도 수년 동안 알던 창업가분들한테 투자하는 걸 선호하는데, LP들도 비슷하다. 우리 LP들을 보면, 우리한테 바로 돈을 준 분들이 거의 없다. 스트롱이라는 회사와 나랑 존이라는 파트너를 최소 1년 이상 옆에서 지켜본 후에, 믿을 만한 투자자라는 확신이 들 때, 그때 비로소 투자했고, 어떤 LP들은 우리를 5년 이상 지켜보다가 투자했다. 그중 어떤 분들은 나랑 5년 전에 대화를 시작했을 때는 그 조직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회사에서 입지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힘이 없었고, 스트롱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부장이나 팀장님한테 자신 있게 큰 소리를 내지 못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에서 승진했고, 그동안 우리랑 계속 이야기하면서 우리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고, 본인이 힘이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에 자신 있게 우리한테 투자 한 경우도 있다. 우리도 펀드레이징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이런 경험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것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큰 보람을 선사한다. 이분들이 만약 계속 회사에 남는다면, 그 조직의 리더가 되고 사장이 될 텐데, 스트롱과 같이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특별한 개인적인 사례 하나를 여기서 공유하고 싶다. 내가 2008년도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DCM Ventures라는 꽤 유명한 VC에게 피칭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우리 담당자가 Osuke Honda 라는 일본계 심사역이었다. 당시 이 분은 DCM에 조인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 심사역이었고, 본인도 회사에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면서 좋은 회사를 발굴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DCM 파트너쉽 단에서 투자는 결렬됐지만, 오스케는 우리를 엄청 많이 도와줬고, 내부에서 셀링해줬고, 이 딜을 잘 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우린 투자는 못 받았지만, 이 주니어 심사역에게 엄청 고마운 마음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가끔 소식을 전하곤 했다. 이제 1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오스케는 DCM의 메인 파트너가 됐다. 스트롱은 훨씬 규모가 작지만, 어쨌든 나도 작은 펀드를 운용하는 파트너가 됐고, 우리는 아직도 가끔 연락하면서 딜을 공유하고 웃으면서 당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가 일본에 가면 만나고, 오스케가 한국에 와도 만나는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던 초짜 창업가와 심사역이었는데, 이렇게 둘이 같이 성장한걸 보면 상당히 뿌듯하다.

혼자 잘나가도 좋고, 혼자 성장하는 것도 좋지만, 같이 성장하면 그 기쁨은 두 배 이상이 된다.

침묵은 금

얼마 전에 이발을 했다. 내가 다니는 이발소는 shop in shop 개념으로, 원래 가게는 미용실인데, 이 미용실의 3칸 중 한 칸을 젊은 친구가 개조해서 이발소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2 칸은 여자 미용사 고객들이고, 한 칸은 나 같은 이 젊은 바버의 고객들이 사용한다. 나는 원래 이발사나 이런 서비스 해주시는 분들과 크게 말을 섞지 않고 인사 정도만 하고 그냥 가만히 머리만 하는데, 많은 분들이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공간이 미용실이기도 하다.

바로 옆이다 보니 실은 귀를 닫고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옆 사람이 하는 말이 다 들리는데, 이 날 이후 나는 절대로 이런 공공장소에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 또는 내 친구들 이야기, 또는 내가 하는 일이나 회사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옆에 어떤 젊은 남자분이 머리를 하는데, 미용사분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계속 본인 개인사와 회사 이야기를 너무 세세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이 분의 얼굴도 모르지만, 이 사람이 외국 어떤 지역의 학교 출신인지 알게 됐고, 외국이 본사인데 최근에 여의도에 한국 지사를 만든 작은 투자사에서 일 하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그리고 원래 다른 미용실에서 6만 원짜리 컷을 하는데, 미용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번에 우리 동네 미용실로 바꾼 사실까지 알게 됐다. 내가 이 사람의 보스였다면, 공공장소에서,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한테 회사의 준기밀 내용까지 다 발설했다는 이유로 해고했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를 동네 미용실에서 하고 다니는 것이다.

실은, 이런 경험이 과거에도 몇 번 있긴 하다. 목욕탕 안의 마사지 샵에서 마사지 받고 있는데, 옆 칸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당시에 다니고 있던 회사와 경쟁 입찰이 붙은 경쟁사의 영업 담당자였던 적도 있고, 신사동 고깃집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내 MBA 동기에 대해서 험담하는 그룹에 한마디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다 종합해보면, 결국엔 모든 게 자기 과시와 자랑을 하기 위한 이빨까기다. 원래 이런 곳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잘 안 하지만, 이 경험 이후에는 그냥 무조건 입 닥치고 있고, 사적인 내용을 물어봐도 그냥 대답을 안 하고 있다.

웅변이 은이라면, 침묵은 금이다. 말을 많이 해서 패가망신 한 사람은 여러 명 있지만, 입 닥치고 있어서 손해 본 사람은 역사상 한 명도 없다.

일생일대의 기회

1593990736558나이가 들수록, 체력도 서서히 약해지는 걸 내가 계속 몸소 느끼고 있다. 헬스장에서 무거운걸 들때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많이 반복해도 예전같이 근육이 잘 안 붙는다는 것도 눈에 띄게 보인다. 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전에 몇 번 포스팅 했듯이, 난 요새 영화 록키 음악을 항상 들으면서 자신을 모티베이션 하면서 운동한다.

록키 1에서, 록키는 헤비웨이트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 운 좋게 대타로 시합상대가 된다. 동네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완전 무명복서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고, 이 내용을 프로모터가 록키한테 전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He picked you up. It’s a chance of a lifetime. Can’t pass it by. (아폴로가 너를 시합상대로 지명했어. 일생일대의 기회야. 절대로 놓치면 안돼).” 물론, 록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시합에서 지긴했지만, 인상적인 경기를 하면서 완전 스타가 됐고, 그 이후는 우리가 아는 그 록키 이야기다.

어떤 인생을 살든, 누구에게나 이런 일생일대의 기회가 한 번 정도는 온다. 나도 아직 살 날이 더 많지만, 내 짧은 경험에 비춰보면,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은 오는 것 같다.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두 가지가 중요하다. 일단 이 기회가 정말 일생일대의 기회인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고, 더욱 중요한 건 록키가 이 기회를 안 놓친 것처럼, 우리도 기회를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실은 누구나 다 알지만, 이게 말만큼 쉬운 건 아니다.

전에도 여러 번 내가 관련해서 글을 쓴 적이 있어서 내 이야기를 아는 분들은 잘 알 텐데, 나는 2008년 초에 MBA를 그만두고 LA로 와서 뮤직쉐이크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을 한 게 정말 잘 한 결정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며칠 동안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고민 엄청 했고, 결국 와이프한테 속마음을 털어놨고, 둘이 상의하면서 또 고민 엄청 많이 한 후에, 결국엔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실은, 13년 전 그때는 이게 내가 잘하는 결정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안 섰고, 내 기억으로는 그때도, “일단 해보자. 몇 년 후에 시간만이 이 결정이 잘 한 건지 아닌지 판단해 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는 이게 일생일대의 기회였고, 다행히도 – 정말 다행히도 –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학교를 그만두고, 위험한 사업을 했는데, 실은 그 사업의 결과는 그렇게 좋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스타트업 분야에 발을 담그고, 아주 깊게 관여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정말 운 좋게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스트롱벤처스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와튼을 그만뒀고, 뮤직쉐이크를 하기 위해서 LA로 왔고,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게 없었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지금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힘들게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도 창업을 결심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월급 꼬박 잘 나오는 편안한 직장을 그만둔 분들이 있고, 명문 대학을 그만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창업이라는 길을 선택했을 때 주위 분들이 말렸을 것이고, 심지어는 가족들한테도 욕 먹었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한 걸 지금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반대로, 나의 경우와 같이, 어쩌면 시간이 좀 흐르면 이게 일생일대의 기회였을지도 모르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여러분의 선택에 감사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럴 확률이 훨씬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 일생일대의 이 기회를 즐기시길.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Strong LA 스타트업

한 2주 전에 LA에 오랜만에 잠깐 다녀왔다. 4년 전에 LA를 떠나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분기에 한 번은 LA에 출장을 가야겠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한국의 생활이 바빠서 지난 4년 동안 거의 못 갔는데, 이번에 다녀오면서 앞으로는 자주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 이렇게 두 지역의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데, 미국에 있는 스타트업도 한인 또는 한인교포들이 창업한 회사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한 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많은 미국의 투자사는 한국에서 먼저 생긴 컨셉을 미국으로 가져와 로컬라이즈해서, LA를 발판으로 삼아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모델을 도입한 회사들이다. 여기 그 몇 개를 소개한다(알파벳순).

7TILL8: 이 스타트업은 진정한 LA스러운 회사이다. 서핑할 때 입는 웨트수트를 커스터마이즈해서 판매하는 회사인데, 기존 웨트수트가 가진 여러 가지 단점을 – 특히, 몸에 잘 맞지 않는 단점 – 보완한, 고가의 고급 웨트수트 D2C 회사이다. 회사의 이름도 재미있다. 전문 서퍼들이 가장 선호하는 파도를 탈 수 있는 시간이 저녁 7시 ~ 저녁 8시 사이인데, 여기서 7TILL8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KPOP Foods: 미국인들은 소스를 참 좋아한다. 그 어떤 식당을 가도, 그리고 그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거의 모든 음식에 다양한 소스를 뿌려서 먹는다. 대표적인 소스가 케첩, 머스터드, 타바스코, 마요네즈, 에이욜리, 스리라차 등인데 전 세계 소스 시장은 수십조 원 크기이다. KPOP Foods는 UCLA MBA를 졸업한 교포 창업가가 창업한, 한국 소스를 만들어서 D2C로 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대표 소스는 고추장을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 한 KPOP Sauce, 그리고 마요네즈와 김치를 절묘하게 혼합한 Kimchi Mayo다. 미국인 친구가 있는 한국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동의할 텐데, 미국인들이 한국의 고추장과 쌈장을 정말 좋아한다. 존이랑 나는 항상 이 생각을 했었고, 누군가 고추장과 쌈장을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제대로 마케팅하고 유통하면 타바스코보다 더 큰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회사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백인들이 햄버거에 고추장을 뿌려 먹는 모습이 벌써 상상된다.

MAKKU: 한국을 대표하는 술은 소주이지만, 소주보다 전통이 깊은 한국의 술은 막걸리다. MAKKU의 창업가는 글로벌 대형 주류회사인 AB InBev의 신사업 팀에서 일하면서, 밀레니얼들이 저알콜 음료를 선호하는 트렌드를 파악하고, 한국의 막걸리를 미국 시장에 맞게 만들어서 판매해야겠다는 아이디어로 퇴사했다. 현재 뉴욕과 LA의 다양한 도매상, 소매상, 그리고 식당을 대상으로 Korean Creamy Beer인 막걸리를 열심히 홍보하면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의 사케가 글로벌 주류가 될 수 있다면, 한국의 막걸리는 이보다 더 크게 될 수 있다고 우린 믿고 있다.

Millibatt: UCLA 박사들이 만든 회사인데, 초소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만들고 있는 high-tech 스타트업이다. Y Combinator 2017년 겨울 배치를 거쳤으며, 독보적인 기술과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아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초소형 배터리의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다. 이 배터리가 얼마나 작은지는, 이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More Labs: 이 회사와 이시선 대표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숙취해소 드링크를 미국에서 Morning Recovery라는 브랜드로 로컬라이즈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More Labs의 비전은 다양한 생산성 드링크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는 Red Bull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숙취해소를 돕는 Morning Recovery 외에, 집중력을 향상하는 Liquid Focus, 수면을 도와주는 Dream Well, 그리고 수분을 보충해주는 Aqua+ 제품이 있다.

PAIRELA: 여성용 바지를 직접 만들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여성 대표님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하는 여성들이 편안하지만, 고급스럽게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시장에 별로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PAIRE-LA를 창업했다. 여성을 위한 좋은 pair of pants를 LA에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PAIRE-LA라는 이름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이 회사에 뉴욕의 아주 유명한 VC랑 같이 투자했는데, Theory와 같은 좋은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Polydrops: 건축학을 공부하러 온 한인 유학생 부부가 창업한 회사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캠핑용 트레일러를 수작업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이들이 만들고 있는 트레일러도 상당히 쿨 한데, 이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더욱더 쿨하다. 미래에는 한 명의 고용주와 계약해서 일 하는 고용의 형태가 프리랜싱 형태의 gig 방식으로 바뀔 것이고, 집을 사서 한 곳에서 주거하는 주거문화 또한 바뀔 것이다. 이렇게 주거와 고용의 형태가 바뀌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는 노마드 생활을 하는 인구가 증가할 것인데, Polydrops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이동 주거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Rael: 한국에도 사무실이 있고, 한국 미디어에서도 워낙 많이 소개되어서 친숙한 이름이다. 한국의 다양한 여성용품을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fem-care 스타트업이며, 한국의 유기농 면 생리대를 아마존에서 판매하면서 시작했다. 현재 미국 전역의 Target에서 라엘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아마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유기농 면 생리대 중 하나이다. 이젠 다양한 여성용품을 제조해서 D2C로 판매하고 있다.

실은 LA 지역에 우리 포트폴리오 회사는 훨씬 더 많지만, 위 회사들은 우리가 비교적 최근에 투자했고,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컨셉으로 사업을 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들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결과를 내면서 미국과 전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한 단계 상승했는데, 할리우드가 있는 LA보다 이 기운을 더 잘 실감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 좋은 기운과 스트롱이 만들고 있는 한국과 북미/LA 간의 다리를 잘 활용해서, 모두 좋은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