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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MT811 – Entrepreneurship through Acquisition

엄청나게 많은 reading과 프로젝트를 해야하는 마케팅 수업 MKTG621을 waive하고 (정말 다행이다) 내가 선택한 교양 과목이 2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MGMT811 – Entrepreneurship through Acquisition이라는 과목이다. 한 학기 (앞으로 학기를 quarter라고 표시하겠다. 한 semester는 2 quarter로 구성되어있다) 동안 수강하는 과목이며, 0.5 학점 과목이다. 참고로, 일주일에 3시간동안 한학기 동안 수업을 하는 과목은 0.5학점, 일주일에 3시간 동안 두학기 동안 수업을 하는 과목은 1학점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0.5학점이 3학점으로 해석될지 싶다. 앞에서 잠깐 설명하였듯이 회사를 인수한 후, restructuring과 같은 전략으로 회사의 상황을 개선한 후에 더 높은 가격에 파는 Private Equity Fund (사모펀드)에 대해서 배우는 과목이다. 교수가 아니라 시간 강사인 Robert Chalfin이라는 와튼 출신 사모펀드 사업가가 월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 동안 가르키는 과목이다.

Chalfin 교수는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다. 와튼에서 MBA 학위를 취득한 후, 다시 법대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창업을 해서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이다. The Chalfin Group이라는 M&A; / 사모펀드 전문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배울 점이 많다. 어떤 회사를 살것인가? 회사의 valuation은 어떻게 매길것인가? 산 다음에는 뭘 해야할까? 경영진을 해고할까? 어떻게 value addition을 할 것인가? 누구한테 얼마에 다시 팔것인가? 뭐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실예와 reading을 통해서 서로 토의하는 방식으로 수업은 진행된다. 좋은 점은 no bullshit이라는 점이다. 즉, 많은 교수들과 같이 교과서의 내용을 가르쳐 주는 수업이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세계에서 deal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배울 수 있는 수업이다.

Chalfin 교수가 법대 졸업할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대 졸업할 때, 나는 거의 파산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학생 대출을 너무나 많이 받았고, 직장은 없었고…그래도 나는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지 않겠다는 신조는 굳게 지키고 싶었으며, 그 누구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Chalfin Group을 창업했다. 여러분도 이걸 심각하게 생각해봐라. McKinseySamsung (진짜 삼성이라고 했다)같은 회사의 임원이 되서 인생의 절반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애들 졸업식에 참석 못하고, 인생에서 있어서 가장 소중한 가족한테 소홀히 하면서 살고 싶냐?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가? 내가 지금 버는거의 1/10도 못 벌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신념이 있었으며,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불리한 상황에 불구하고, 내 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실패도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이미 8년 전에 나는 평생 일을 안하고 살 수 있을만한 재산을 벌었다. 하지만 오늘도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 왜냐? 좋으니까. 내 나이에 이렇게 즐기면서 매일매일 일터로 가는 사람들도 드물거다. 이런 즐거움을 나만 느끼기기에는 나는 너무 착하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모든 학생들한테 창업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왜 못하냐…you guys are in the best damn business school in the world. If you made it to Wharton, you have what it takes to do it.”

멋진 말이다. 계속 내 머리에서 맴도는 말이기도 하고…WHERE DO YOU WANT TO GO?

Stanford 동지들 – Bon, Moto와 Fendi 그리고 비즈니스

Stanford 대학원에서 룸메이트였던 Bon과 Moto 그리고 같은 반 친구였던 Fendi와 conference call이 오전 8시에 있어서 오늘은 10시 수업이지만 새벽같이 일찍 일어났다. Bon은 원래는 중국/홍콩 혈통인데 어렸을 적부터 뉴질랜드, 캐나다, 스위스 등 다양한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친구이다. 뉴질랜드에서 학부를 졸업하였고, Stanford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취득한 후 실리콘 밸리 Cisco에서 일하다가 프랑스의 INSEAD에서 MBA를 취득한 후 현재 스위스의 Tag Heuer (high-performance 시계) 본사에서 brand marketing을 하고 있다. Moto 또한 일본인 이지만 유년기를 유럽에서 보내서 영어가 매우 유창한 친구이다. Moto는 한마디로 천재/수재인 친구이다. 동경대 기계공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여 Stanford에서 기계공학 박사 과정을 4년 만에 졸업한 매우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다. 현재 Kinya라는 동경대 동창과 같이 동경에서 Takram이라는 상품개발/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비즈니스가 날로 번창하고 있다. 나도 작년 11월 Wharton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동경에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이 있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Takram 사무실을 방문하여 Kinya랑 인사를 한적이 있는데 매우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왔다 (점심도 비싼 도시락을 얻어먹었다). Fendi는 인도네시아 갑부 집 아들이다. Wisconsin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Stanford에서 제조공학 (Manufacturing Systems Engineering)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실리콘 밸리의 A.T. Kearney에서 컨설턴트 생활을 오래 하다가 가업을 물려받기 위하여 자카르타로 돌아와서 나보다 한달전인 6월에 결혼을 했다. Fendi네 집안은 인도네시아에서 굉장히 유명한 대리석 비즈니스 사업을 크게 하고 있는데 나도 6월달에 Fendi 결혼식 참석 차 공장 견학을 하였는데 이게 장난이 아닌 비즈니스였다.

스탠포드에서는 워낙 다양한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는데 위 3명은 나랑 아주 각별하게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다. 6월달 Fendi 결혼식도 나와 Moto가 참석하였고, 7월달 내 결혼식에도 Moto는 왔었다. 그리고 올해 5월달에 Moto가 주말을 이용해서 서울 나들이를 왔었는데 이때 3일동안 우리집에서 자면서 서울 시내 구경도 하고 지현이랑 같이 인사도 하고 굉장히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Moto, Bon 그리고 나는 약 6개월 동안 같은 아파트에서 룸메이트로 살았는데 3명 다 학교 공부보다는 사업과 창업에 관심이 많아서 일주일에 2번은 꼭 스탠포드 앞에 있는 Starbuck’s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비즈니스 아이디어나 미국에서 아시아인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brainstorming을 하고 밤늦게 Denny’s에서 야식을 엄청나게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하다. 졸업식 날도 팔로알토의 유명한 중국 식당인 Hong Kong Flower Garden에서 부모님들과 다 같이 저녁먹은 이야기를 아직도 가끔씩 하곤 한다 🙂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그럼 오늘 conference call은 왜 한거냐? 요새 우리 친구 Fendi가 가지고 있는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대리석이라는 낙후되고 전통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Fendi네 회사 Jaya Abadi Group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존 비즈니스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 대표이사인 Fendi 아버지 및 나이드신 경영진 어르신들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안 나오는 것이다. 미국에서 선진 비즈니스를 배운 2세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하면 항상 부딪히는 벽에 Fendi도 예외없이 부딪힌 것이다. 일을 벌이려고 하면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 경영진들이 사사건건 반대를 해서 요새 잠을 거의 못자는거 같아서 우리가 좀 도와주겠다고 나서서 각각 다른 시간대 – 일본, 인도네시아, 미국, 스위스 – 에 있는 옛 동지들이 힘을 뭉치기로 했다. 일단 시간 자체를 잡는게 너무 힘들었는데 필라델피아 시간 오전 8시면 다 깨어있는 시간이라서 오늘 오전에 진행을 한것이다. 몇 달 전에 Moto가 Ryu Itadani라는 일본인 화가/디자이너 친구를 소개해 준 적이 있는데, 이 친구의 디자인을 대리석에 입혀서 high end market을 겨냥한 명품 대리석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오늘 conference call을 진행하였다. 오랜만에 4총사가 모여서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 신혼생활 이야기,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 (Skype를 통해서 conference call을 했는데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걸 느꼈다. 이런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점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꼈다)도 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였다. Moto의 수고로 인해서 Ryu Itadani도 직접 conference call에 초대를 하여서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몇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는데 confidentiality 관계로 여기에 공개적으로 쓰지는 못하겠다. 정작 궁금하신 분들은 저한테 직접 연락해 주시면 힌트를 조금 드릴게요.

내가 Fendi의 위치에 있었으면 과연 어떤 액션을 취했을까? 나 같으면 일단 현재 경영진들을 과감하게 교체하였을 것이다. 한 두번 변화의 힌트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은 막말로 “짤라야” 한다. 나이 많고 갈 곳 없는 사람들한테는 너무 잔혹하지만 회사, 직원, 직원들에 딸린 식구들 그리고 주주들을 위해서는 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대화를 통해서 이 사람들을 설득한다? 시간이 그렇게 많은가? 더 이상 옛 방법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리는 없다. 무조건 변화해야 한다. 과묵하기로 소문난 이건희 회장도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는가 “마누라와 애들을 제외하고는 다 바꿔라!” 좋은 아이디어 전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 모든 비즈니스의 시작은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나쁜 아이디어를 좋은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는 무한가능성이 있다. 일단 star team을 갖추어야 한다. 왜 좋은 경영대학원에 오려고 노력하는가? 이미 사전 스크린된 좋은 사람들의 표본 집단이기 때문이다. 5명과 이야기 하면 최소 3명은 똑똑하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나도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시 학교에 오지 않았는가.

일찍 일어나서 좀 피곤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오랜 친구들과 수다 떠니까 참 잼있었다. 어리버리한 대학원생들이 저마다 각국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걸 보면 참 대견하기고 하고…나 스스로도 대견스럽고 ㅎㅎ. Skype를 창업한 Niklas Zennstrom과 Janus Friis 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꼈으며, 이 회사에 돈을 대준 선견지명이 있던 투자자들 그리고 Skype를 26억 불이라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한 eBay의 결단력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WWW Day 2

오늘부터 본격적인 WWW의 시작이다. 어젯밤의 과음에도 불구하고 오전 8시부터 사람들이 Huntsman Hall에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커피, 베이글 그리고 간단한 빵을 먹으면서도 네트워킹은 끊기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워낙 사람들 만나는걸 좋아하고, 영어를 구사하는데 무리가 없기 때문에 즐겁게 농담하면서 이야기를 하였지만 이러한 문화에 선천적으로 익숙하지 않고, 더군다나 영어가 되지 않는 한국 학생들은 2년 동안 매우 힘들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학생들도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박에 없다. 영어는 최대한 배우고 하려고 하면 되지만,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걸어가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문화가 없는 한국에서 평생을 보낸 학생들한테는 사교성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후 내가 배정된 그룹을이 모이는 교실로 걸어갔다. Mini-Cohort 라고 부르는 이 그룹들의 이름은 와튼 학생들이 자주 가는 식당과 술집에서 따왔다고 한다. Huntsman Hall 다음으로 와튼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곳이 바로 학교 근처의 선술집들이다. 위대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고, 학생들의 웃음 소리가 떠나지 않고 와튼 의 추억들이 만들어 지는 술집들의 이름을 딴 12개의 cohort에 약 30-40명의 학생들이 배정되었다. 국적, 성별, 출신 백그라운드에 따라서 cohort 배정을 하였으며, 나는 Mad 4 Mex(멕시코 음식과 술은 싼 가격에 파는 pub)라는 cohort에 속해있었다. 원형 교실에 앉은 후에 간단하게 서로의 소개를 하였다. 미국, 인도, 베네주엘라, 멕시코, 나이지리아, 한국, 호주, 영국 등 정말 다양한 인종들이 한 교실에 있었으며 IT, 컨설팅, media, entertainment, 비영리 단체, 투자은행, 육군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거나 종사하였던 사람들로 구성된 매우 재미있는 그룹이었다. 나는 맨 뒤에 앉았는데 내 왼쪽에는명문 여대 Wellesley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컨설팅을 하던 조연주씨 (역시 바쁜 회사라서 그런지 여기까지 와서 호텔에서 밤을 새면서 일을 하더라)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워싱턴 DC에서 교육 관련된 업무를 하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을 하는 Adam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WWW 동안 Adam과 상당히 친하게 지냈고 술도 많이 먹었는데 MBA 학위를 취득하고 banking, 컨설팅, 금융이나 마케팅과 같은 분야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과는 다른게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게 목적인 매력적인 친구였다. 이렇게 즐겁게 간단하게 인사를 한 후, WWW에 참석한 약 400명의 미래 동료들이공식 환영연설이 열리는 Huntsman Hall 옆에 있는 Annenberg Center로 향했다.

**WWW는 100% 학생들의 참여로 준비되고 진행되는 행사이다. 필요한 경비는 기업 스폰서쉽을 통해서 충당하며, 이 행사에 참여한 와튼 1년차/2년차 학생들은 100% 자원 봉사로 구성되어 있다 . 우리 cohort 를 담당하고 있는 4명의 와튼 1년차 들 또한 바쁜 학업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적극적으로 이 행사에 참여를 하였다.

와튼 스쿨의 학장인 Dean Patrick Harker와 MBA Admissions 담당자인 Thomas Caleel이 각각 간단한 환영연설을 하였다. Thomas Caleel은 와튼 MBA 선배인데 인물도 좋고, 말을 잘해서 학생들한테 인기가 매우 많다. 그리고 해마다 와튼 스쿨에 지원하는 수천개의 application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 읽어 본 후 최종적으로 입학 허가 결정을 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물론 나도 합격하였을때 받은 공식 편지에서 Thomas Caleel의 사인을 본 기억이 있다. Thomas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연설 시작을 하였다. “이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서 3시간 이상 여행을 한 사람은 일어나세요.” 라고 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어났다. “5시간 이상”이라고 하자 몇 몇은 앉았다. “10시간”, “13시간” 계속 이렇게 여행한 거리가 늘어나자 하나 둘씩 앉았으며,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에서 장작 20시간 이상 비행을 한 동료가 남아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Thomas는 “2개국어 이상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2개 대륙 이상에서 거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5개 대륙에서 살다온 사람이 있었다)”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하루종일 질문을 할 수 있겠지만 그냥 몇가지만 맛보기로 해봅니다. 얼마나 다양한 학생들이 Class of 2009 (한국은 입학년도에 따라서 학번을 결정하지만 미국은 졸업 년도에 따라서 결정한다. 그러니까 2007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2009년에 졸업하니까 Class of 2009 이다)에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Harker 총장이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와튼 스쿨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 중 하나인거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모두한테 맞는 학교는 아닙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 중 와튼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결정을 못한 분들도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앞으로 3일 동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본 후 최종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 강자의 여유일까 아니면 있는자의 텃세일까…하지만 너도나도 좋은 학생을 유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의 자세에 비하면 너무나 멋있게 들리는 말이 아닐 수가 없었고, Harker총장과 Thomas의 명연설과 professionalism은 앞으로 내 가슴속에 오래동안 남아 있을거 같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WWW 행사이다. MBA 수업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은 토론식 수업이다. 원형 교실 가운데서 노트북과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가지고 강의하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30명에서 50명의 학생들이 끈임없이 질문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토론하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험을 마음껏 던질 수 있는 이 토론식 수업은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한테는 처음에는 다소 낫설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수업시간동안은 한마디도 안하는데 그렇게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본인이 느끼는 점과 생각하는것을 솔직하게 동료들과 공유한다고 생각하고 토론해보자. 짧은 영어라도 상관없다. 왠만한 영어는 다 알아듣는 사람들이니까. Mock class라는 모의 수업을 1시간 30분 정도 cohort 와 같이 진행을 하였는데, 실제 와튼에서 인터넷 마케팅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가 Search Engine Marketing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나도 이 분야에 대해서는 좀 알기때문에 많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
점심은 간단하다. 1층에서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가지고 다시 교실로 와서 프로그램 순서대로 진행을 하였다. 다음 순서는 Leadership Team Workshop이다. 우리 cohort를 6개의 소그룹으로 다시 한번 쪼갠 후 동일한 과제에 대한 각각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토론해야 한다. 오늘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신문지 몇 조각, 종이 클립 5개, 고무줄 5개 그리고 나무 조각 몇개를 가지고 길이 12인치/높이 6인치 다리 만들기. 다리는 양 끝단에서만 지탱을 받을 수 있으며, 완성 후 가장 많은 물병을 지탱할 수 있는 팀이 이기는 과제. 단, 추가적으로 필요한 재료를 더 얻을 수 있는데 그 방법은 팀원들의 공통점 하나당 추가 재료를 더 얻을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이었는데 우리팀은 약 1분 정도 서로의 공통점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다. 결혼 여부, 나이, 출신 국가, 전공 등과 관련해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많은 이야기를 하였으며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와이프와 같이 방문을 한 전형적인 미국인 John Mac, 일본계 미국인이며 한국 여자와 결혼한 엔지니어 출신의 Ryota, 스탠포드에서 Symbolic Studies라는 특이한 과목을 공부한 인도계 미국인 Partha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분야 중 하나인 Private Equity에 종사하고 있는 Brian이 우리 그룹이었으며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최대한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였던 점과 공부하였던 지식을 적용 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실제로 회사나 사회에서 일할 때 경험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엔지니어 출신들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멤버들의 충돌, 완벽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서로 다른 성향들은 마치 회사에서 일을 할때 겪는 에로사항들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하였다. 토론, 설득, 이해 및 논쟁을 통해서 우리는 물병 6병의 무게를 지탱하는 나름대로 훌륭한 다리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와튼 2년차인 시각장애인 인도인 Ashish가 모두를 위한 open discussion을 시작하였다. “다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서 어떤걸 발견하였는가?” “어떻게 하면 더 튼튼한 다리를 만들 수 있었을거 같냐?” “의견 충돌이 있을때는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너가 직접 해결하였냐 아니면 팀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멤버가 있었나?” 등등의 질문이었다.

다시한번 사소한 일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진지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였다. 생각해봐라..우리 나라 사람들이라면 과연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답하고 토론을 하겠는가. 분명히 “뭐 이렇게 유치한 거에 대해서 토론까지 하느냐”란 생각을 할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생각을 진솔하게 공유하면서 듣는 이런 토론식 수업이야 말로 MBA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큰 이점 중의 하나이다. 물론 다 아는 이야기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뻔한 말들이지만 한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 하는냐를 알고 공유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또 여기서 지속적인 creativity가 창조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다음 세션은 필라델피아 housing과 관련된 세션이었다. 필라델피아의 다른 지역에 사는 와튼 1년차와 2년차 학생들을 중심으로 현재 살고 있는 지역과 아파트에 대한 장단점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세션이다. 예상하였던것과 같이 많은 질문들이 나왔다. 학교 근처에 살때의 장단점, 도시에서의 생활, 필라델피아 외곽에서의 생활 등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WWW에 참석한 모든 학생들 대상으로 와튼 학생회에서는 2007 Wharton Housing Guide라는 책자를 배포했다. 이 책자를 보면 현재 와튼 학생들이 살고 있는 모든 주거공간에 대한 설명 및 학생들의 평가를 볼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Left Bank라는 아파트의 장단점, 주인과 네고할 때 유의할 사항, 설문 조사에 응한 학생들이 이 아파트에 준 전체 평점 및 다시 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할 확률 등 일반적인 브로셔나 카탈로그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현장에서의 생생한 정보들이 많이 개재되어 있으며 나 또한 집을 구할 때 이 가이드를 많이 참고 한 후에 직접 집들을 찾아 갔다.

학생들이 이런 워크샾과 세션에서 정보를 찾고 있을때, 학생들의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세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령, 와튼 배우자 클럽에 대한 세션과 캠퍼스 관광과 같이 필라델피아에서 살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션이었다.

오후 6시에는4월13일 행사는 공식적으로 끝났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여기서 바로 숙소로 가거나 아니면 한국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저녁행사에 참석한걸로 알고 있다. 나는 와튼에서 재학생 1명과 신입생 3-4명이 소 그룹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마련해준 small group dinner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Vladimir (Vlad) Cole이 우리를 작은 이태리 식당으로 인도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Vlad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Xbox 팀의 Product Manager 자리의 오퍼를 받아놓은 상태이며, 홍콩계 와이프는 현재 와튼 1년차 학생이다. 그리고 우리 팀에는 University of Pennsylvania 학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증권 조사역을 하고 있는 Stephen과 베네주엘라에서 경영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는 Luis가 있었다. Luis는 고향인 베네주엘라를 지금까지 한번도 떠나 본적이 없는 친구라서 여러가지 고민과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거 같았다. 특히 나와 비슷하게 운동을 좋아하며, 내가 서반아어를 구사하는 관계로 우리는 둘이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필라델피아는 먹을게 많기로 소문난 도시이다. 기독교 신자들이 세운 도시라서 그런지, 음식점에서 술을 팔 수 있는 주류 라이선스를 취득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의 대부분의 식당은 술을 안 파는대신 손님들이 마시고 싶은 술을 직접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세팅비도 없다. BYOD (Bring Your Own Drink)라고 하는 이 제도는 학생들이 저렴하게 식사와 술을 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다. 우리는 이날 배터지게 파스타와 전체를 Vlad가 가지고 온 와인 2병과 마셨는데 80불 정도 밖에 안나왔다.

자 오늘 최고의 하이라이트 시간이다. MBA Pub Crawl이라고 하는 행사이다. 필라델피아 시내의 5개의 pub을 MBA 학생들한테 오후 8시부터 새벽 3시까지 개방을 하는것이다. 각 cohort마다 시간대와 방문할 pub의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데 우리 Mad 4 Mex는 Roosevelt라는 술집에서 시작을 하였다. 아쉽게도 술이 공짜는 아니어서 아주 많이 마시지는 못했지만, 교실에서 얼굴만 보고 이야기를 못해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1시간 반 후에는 또 다른 pub으로 단체로 이동해서 여기서 음악, 술 그리고 춤과 함께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앞서 말한적이 있는 Adam, Brian , 폴란드 출신으로 뉴욕에서 은행에서 일하는 Agatha와 앞으로의 학교 생활과 career path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많이 했다. 뭐, 하여튼 이렇게 계속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즐기고 이야기하면서 WWW 둘째날이 지나갔다. 새벽 4시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