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스트롱의 주주총회(AGM: Annual General Meeting)가 있었다. 글로벌 벤처 시장에 대한 슬라이드를 만들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2021년부터 지금까지 벤처기업에 투입된 글로벌 투자금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 돈이 넘쳐흘렀던 2021년에 전 세계 벤처기업에 투입된 자금은 자그마치 $646B 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큰 단위의 돈을 취급하지만, 이 금액은 나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다음 해인 2022년은 이 수치가 $421B로 35%나 감소했다. 그리고 올해는 또다시 40% 정도 감소한 $260B 정도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렇게 글로벌 경제가 아직도 반등의 시그널은 안 보이고, 금리 인상과 세상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쟁은 경기 회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있다. 내년에는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개인적으로 생각했지만, 이건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되니, 우리에게 돈을 주는 LP들도 VC들에게 시원하게 돈을 투자하지 않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우리 같은 VC들도 매우 위축되어 있다. 자금의 가뭄 상태가 당분간 계속 지속될 것이고, 결국 이 먹이사슬의 가장 끝단에 있는 스타트업들은 내년에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벤처 혹한기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수치가 좋아지면서 팀의 자신감이 많이 올라 온 우리 투자사 대표와 미팅을 했다. 이 회사는 작년에 투자 유치를 열심히 했다. 우리도 피드백을 많이 제공한 자료에도 많은 공을 들였고, 이 회사의 업을 이해할 만한 투자자들을 전략적으로 나열해서 아주 체계적으로 펀딩을 시도했는데, 결국엔 잘 안돼서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 후에 펀딩을 중단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시장에 돈이 없다는 걸 거의 기정사실로 하면서, 외부 자금의 투입 없이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다시 만들면서 회사의 제품과 방향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줬다. 예상치 못 했던 이 전략 수정의 결과는 현재로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이 회사의 대표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작년에 만약에 투자받았다면, 지금쯤 망했을 거예요. 당시의 회사 방향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로 돈을 못 버는 전략인데 만약에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투자받았으면, 계속 흥청망청 돈을 쓰고, 사람을 채용했을 테고, 지금쯤 엄청나게 헤매고 있을 거예요. 오히려 그때 투자 못 받은 게 회사엔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에 투자받지 못 한 창피함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일 수도 있지만, 현재 이 회사의 수치와 팀원의 자신감을 봤을 땐, 정말로 그때 투자를 못 받은 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이 불경기가 어떤 회사들에겐 더 좋은 회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1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돈이 없어서 너무 춥고 배고픈 벤처 혹한기다. 많은 창업가들이 어쩔 수 없이 돈을 아끼고, 그동안의 전략을 전면 재수정하고, 현실에 눈을 뜨면서 정신을 바짝 차린다. 이런 분들은 이 불경기를 잘 살아남기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사업의 질 자체가 확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오히려 이 불경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Jeff Kang
혹한기에서 살아남는 회사들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Kihong Bae
저도 그러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