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벤처스에서 우리는 많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지만, 미국과 그 외 지역의 글로벌 회사에도 투자한다. 지금까지 우린 24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이 중 30%가 한국이 아닌 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대부분 미국이지만, 동남아나 유럽에서 사업하고 있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지역을 떠나 이 모든 회사가 가진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한국’이라는 큰 테마이다. 해외 스타트업도 한인이 창업한 회사들이고, 한국이 잘하거나,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입증된 컨셉을 기반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한국이 전통적으로 잘하고,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제조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가 투자한 꽤 많은 스타트업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D2C /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하는데, 자체 제작하기보단 대부분 한국의 공장에 OEM을 맡기고 본인들의 브랜드로 판매한다. 뒤에서 이들의 제품을 직접 만드는 제조 분야를 보다 보니,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배우고 있다.
일단, 한국은 정말로 제조 강국이 맞다. 굳이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재벌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좋은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만들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와 공장이 이 작은 나라에 정말로 많다는 걸 매번 느끼고 있는데, 어떤 제품은 중국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고, 어떤 제품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더 견고하고 우수하게 만드는 공장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고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기반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스트롱 투자사들이 꽤 많은데, 이 중 어떤 회사는 한국이 원래 잘하는 거로 유명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어떤 회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이 잘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화장품은 한국이 원래 잘 만드는 거로 유명하다. 뉴욕에 있는 Cardon은 한국에서 제조한 남성용 뷰티 제품을 북미 시장에서 잘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율립은 한국에서 제조한 클린 뷰티 립스틱을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한국이 화장품 제조 강국이라는 점은 굳이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많은 업계 관계자가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도 화장품 제조 강국으로의 포지션을 우리가 계속 잘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잘 만드는 게 또 있다. 아니, 굉장히 많다.
우리 투자사 옵틱라이프는 루킹굿이라는 콘택트렌즈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자체 렌즈 브랜드도 같이 판매하고 있다. 우린 이 회사를 검토하면서 이 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과 재미있는 점을 동시에 발견했는데, 한국이 콘택트렌즈 제조 강국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왠지 유럽이나 일본에 OEM 생산을 의뢰할 것만 같은 렌즈같이 정교한 제품도 한국의 공장에서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 다른 우리 투자사는 뉴욕에 있는 Issawrap이라는 스타트업이다. P.S. Condoms라는 브랜드를 이커머스로 판매하고 있는데, 이름에서 금방 알 수 있듯이 콘돔을 섭스크립션으로 판매하는 서비스다. 그리고 이 제품은 한국에서 만들고 있다. 이 회사를 우리가 검토하면서 비즈니스 모델 면에서도 미국의 Dollar Shave Club과 유사성을 많이 봤는데, Dollar Shave Club의 면도기도 한국의 도루코에서 생산하고 P.S. Condoms의 콘돔도 한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회사의 창업가들 말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콘돔을 가장 잘 제조하는 기술과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콘택트렌즈와 콘돔뿐만이 아니다. 제조업이 과거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던 한국이 만드는 제품 중 글로벌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제품과 시장이 이 외에도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고, 이런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딩, 마케팅, 그리고 판매할 수 있는 좋은 창업가들과 연결되면 엄청나게 큰 비즈니스가 여러 개 나올 수 있다고 난 요새 생각하고 있다.
K-제조 2.0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우린 가장 앞단에서 한국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이런 큰 흐름을 요새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다.
요샌 글을 길게 안 써서,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포스팅에서 내 생각을 더 텍스트화해 보겠다.
박윤종
신기하네요. 저도 시각이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Kihong Bae
다행입니다. 저도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