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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방 보호

미국 VC들이 누구나 자주 말하지만, 행동은 이렇게 대부분 말대로 못 하는 말이 있다.

“You can only lose 1x your money on an investment, but you can lose 1,000x on an investment you miss.”

무슨 뜻이냐 하면, 투자금이 100원이든 100억 원이든, 금액과는 상관없이 그 어떤 투자라도 손실이 발생하면, 잃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투자한 원금(1x)뿐이지만, 손실이 두려워서 투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투자하지 않은 회사의 가치가 1,000배(1,000x) 오른다면, 1,000배의 잠재적인 수익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실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투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이 의미를 잘 알 것이고, 누구나 다 이 말을 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돈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투자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 결정을 할 때 하방 보호만 생각하지 말고, 나중에 놓쳐서 엄청나게 후회할 수 있는 상방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50배 이상의 수익을 만들고 싶다면, 실은 이 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원금 손실에 대해선 덜 신경 쓰고, 이 투자가 10년 후에 성공한다면 몇 배의 수익을 만들 수 있을지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정말로 모험자본을 용감하게 투자하는 벤처 투자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의 VC는 하방 보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손실이 안 나서 최소 원금은 보존할지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고, 투자자의 개인 성향일 수도 있고, 투자자가 소속된 회사의 전략일 수도 있다. 경기가 좋아도 현실적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관성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데, 지금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땐,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하방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걸 거의 매일 느끼고 있다. 이렇게 되면, 투자금을 안 까먹을진 모르지만, 정말로 큰 사업을 만들 수 있는 창업가들에게 투자되는 자금이 터무니없이 줄어들 것이고, 우리가 항상 외치는 혁신은 시장에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솔직히 올해도 굉장히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고, 어쩌면 2023년, 2024년보다 시장에 유동성은 더 없고, 투자자들은 투자를 더 안 해서, 웬만한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는 12개월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지금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서, 많은 VC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보수적인 투자를 할 것 같다. 투자해도 하방 보호와 손실 방지를 항상 최우선시할 텐데, 이런 척박한 분위기에서 어떤 한 해가 될지 매우 궁금하다.

솔직히 우린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스트롱은 지난 13년 동안 한 번도 하방 보호를 생각하고 투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철학은 항상, “투자하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그냥 투자 원금을 날리는 것이고, 이건 그 어떤 투자를 해도 항상 동반되는 리스크라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창업가들을 과감하게 밀어준다면, 7년 ~ 10년 후에 50배~100배의 수익을 벌 수 있기 때문에 – 실제로, 이런 경험을 했고 – 투자할 땐 항상 업사이만 본다.

우린 항상 그래왔듯이, 올해도, 이 전략을 그대로 구사할 것이다. 하방 보호는 신경 쓰지 않고, 큰 업사이드만 보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VC들이 시간이 지나면 winner가 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평등한 자본금

올해 나는 꽤 많은 책을 읽었다. 보통 일 년에 50권을 목표로 정하고, 지난 5년 동안 매해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올해는 60권을 돌파해서 기분이 참 좋다. 60권 이상 읽은 자랑은 다음 포스팅에서 해보려고 한다.

어제 올해 62번째 책을 완독했는데,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씨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였다.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스타트업캠퍼스에는 작은 사내 도서관이 있는데, 여기에 있는 책 중 하나였고, 그동안 이 책이 진열된 건 여러 번 봤지만, 페이지 수가 조금 많기도 하고, 너무 익숙한 한국 기업 이야기라서 그런지, 선뜻 손이 안 갔다. 드디어, 11월 말,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대여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실은, 그냥 재미있는 게 아니라, 올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장하고 싶은 책이다.

현대라는 기업은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어디를 가도 현대가 만든 제품을 우린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대단한 기업이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이 회사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주영 씨도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맨손으로 현대를 시작했다는 건 대부분 알지만, 이분이 어떤 철학과 원칙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했는지 아는 분들은 별로 없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몰랐으니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현대그룹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다. 현대에 대한 건지, 아니면 정주영 씨에 대한 건진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스타트업 창업가와 그 회사를 동일시 하는 것과 같이, 나에겐 둘 다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 한국인들은 존경하거나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기업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한국보단 항상 외국인 CEO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내가 일하는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들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알고 있고, 누구한테 얼마의 투자를 받아서 얼마나 단기간에 유니콘 기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소셜 미디어에 자주 포스팅을 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의 CEO나 한국의 창업가들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덜 보이는 것 같다. 한국에도 대단한 기업과 이 기업을 만든 창업가들이 많은데, 우린 너무 밖에서만 좋은 role model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지 반성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내 등잔 밑이 참 어두웠다는 것이다. 정주영 씨의 자서전이긴 하지만, 이분의 인생 자체가 현대였기 때문에 이 책은 현대의 창업 이야기이고, 그 어떤 창업 이야기보다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이런 면에서는 나는 현대도 엄청난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세세한 서평을 쓰진 않겠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꼭 권장하고 싶다. 아마도 정주영 씨의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조각조각 많이 들었겠지만, 이 분이 어떻게 현대를 창업했고, 현대가 어떤 역경과 난관을 극복하면서 한국 최고의 회사가 됐는지, 이 자서전을 통해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하지만 가장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말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자본금”이다. 그리고, 본인은 이 평등한 자본금을 열심히 활용한 사람 중의 한 명이라는 말을 하면서 이게 현대의 성공 비결이라고 했다. 이 자본금을 그냥 잘 활용한 게 아니라, 정주영 씨는 정말 오지게 잘 활용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시간이라는 평등한 자본금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부터 더 잘 활용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한국 제품

우리가 투자를 시작한 게 2012년인데, 이때부터 ‘한류’라는 말이 있었고, 한국인과 한국 제품이 드디어 한국을 벗어나서 세계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이야기했었다. “Taking Korea global”이라는 말을 지난 10년 동안 너도나도 했지만, 솔직히 지금까진 말만큼 멋지게 실현되진 않았다. “지금까진.”

작년, 그리고 올해 내내 미국, 유럽, 동남아, 일본을 여러 번 다니면서 내가 확실히 느낀 건, 이제 정말로 한국이 세계 시장으로 아주 자신 있게 나갈 수 있는 시점이 됐다는 점이다. 전에 ‘제2의 한류’라는 말을 내가 했는데, 이제 한국은 전 세계의 문화에 영향을 주는 global cultural force가 됐다. 인류 역사상 전 세계의 문화에 영향을 주는 cultural force가 된 국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했고, 그 기간 더 발전해서 더 강대국이 된 사례가 매우 많다. 나는 한국이 이런 기운과 기회를 잘 활용해서 비록 땅덩어리는 작고 인구도 작지만, 엄청나게 잘 살고, 다른 나라의 존경을 받는 초강대국이 되길 바란다.

한국이 global cultural force가 되면서 한국의 창업가들에겐 좋은 기회가 생기고 있고, 이들을 지원하는 우리 같은 VC에게도 큰 기회가 생기고 있다. 최근에 미국을 2주 정도 돌아다녔는데, 어디 가나 한국 브랜드와 제품이 인기가 많다는 걸 직접 실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작은 시골 도시에 가도 한국 음악, 드라마, 화장품, 음식, 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인기와 관심이 너무 많았는데, 이게 참 놀라웠다.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인기 있는 나라가 됐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할 정도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도 참 신기한 게, 전 세계 8,000만 명만 하는 비주류 언어인 한국어로 평생 책을 쓴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건, 한국과 한국어가 대단한 global cultural force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왜 이렇게 한국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브랜드를 이렇게 잘 만들까? 나는 이게 한국의 DNA에 깊게 박혀 있는 경쟁과 생존본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주 작은 나라다. 이 작은 나라에서 5,000만 명이 다닥다닥 붙어 살면서 남들보다 더 성공하기 위해 정말 빡세게 경쟁한다. 가끔 이 과한 경쟁의식이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지만, 어쨌든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치열하게 살고, 가장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이다. 좋든 싫든, 이건 우리의 타고난 기질이자 환경이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만들어졌고, 이 치열한 시장에서 팔리고 있고,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 좋은 제품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잘 되는 제품이 미국과 같은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면, 기본적으로 잘 될 가능성이 높다. 엄청 까다롭고, 엄청 치열하고, 엄청나게 경쟁하고, 동시에 엄청나게 잘 사는 소비자들이 많은 한국 시장에서 팔린다면, 제품 자체는 이미 입증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지갑으로 투표하는데, 지갑으로 투표하기 위한 기본 조건은 품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모든 한국의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대박 나지 않나? 왜 일부만 잘 되고, 대부분 실패하는가?
어떤 제품과 회사는 한국에서 증명되기도 전에 너무 일찍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데, 제품도 준비가 덜 됐고, 이 덜 준비된 제품을 마케팅하고 판매할 사람들도 준비가 덜 된 경우가 많다. 이런 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백전백패한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품질이 증명된 제품도 미국 시장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globalization의 어려움이 작용하는 것이다. 제품은 좋지만, 이걸 다른 시장의 다른 소비자들에게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해서는 미세 조정을 많이 해야 하는데, 미국 시장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이 미세 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잘 못 잡는다. 이 미세조정에 수백억 원 또는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 결국엔 미국 시장에서 철수한 한국 회사들도 너무 많은 걸 보면, 이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 미국 시장에서 봤던 가능성은, 위에서 말했듯이 Korea라는 나라의 이미지 자체가 너무 좋아지고, 동시에 global cultural force가 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제품과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서 거쳐야 하는 미세조정의 폭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어떤 제품은 포장지에 한글이 그대로 적혔는데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말만 많고 결과는 별로였던 “Taking Korea global”. 이제 정말 그 타이밍이 온 것 같다. 제2의 한류를 타고 더 많은 한국 회사와 제품이 해외 시장을 – 특히 북미 시장 – 쓰나미같이 강타해서 글로벌 무대를 찢어버리는 이 움직임에 스트롱도 큰 기여를 할 수 있길 바란다.

월급쟁이 VC

얼마 전에 내가 이런 페이스북 포스팅을 했다.

사실의 100%를 내가 모르면, 이렇게 내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내용은 꼭 공유하고 싶었고, 나는 이 창업가를 지지한다는 점을 밝히고 싶었다. 많은 분들이 이 포스팅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공유해줬고, 당연히 여러 가지 내용과 의견이 있었다. 이 사태를 어반베이스의 입장에서 보는 분들에겐 신한캐피탈은 악마이지만, 또 그 반대로 신한캐피탈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보는 분들에겐 어반베이스가 멍청한 것이고, 신한캐피탈은 그냥 계약서에 충실한 대기업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위의 두 가지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나는 뭐라 하지 않겠다. 이 세상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고, 보는 관점에 따라서 악마가 천사가 되고, 천사가 악마가 되는 걸 우린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이 다양하고 컬러풀 한 의견 중 내가 내 생각을 다시 한번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투자 담당자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그냥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서 회사가 이상한 거지 그 담당자를 욕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전 그냥 월급쟁이예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라는 말을 우린 너무 많이 듣고, 실은 너무 많이 하는데, 난 이 말을 남발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무슨 이야기만 하면 매번 이 월급쟁이 변명을 하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분들은 이 사회를 좀먹는 사람들이다. 참고로, 여기서 내가 강조하는 부분은, 본인의 의지나 힘으로 그 어떠한 노력도 해보지 않고, 매번 이 월급쟁이 변명을 하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내 의지로 최선을 다해봐도 내 직책과 지위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경우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건 아니다.

물론, 난 어반베이스 대표의 주장만을 기반으로 이 상황을 내 시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전체 그림의 일부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내가 반박할 수 있는 건,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을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이게 어떤 상황인지 꽤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투자사의 대표이사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같은 배를 탔다고 생각했던 – 하지만, 이건 내 착각이었다 – 공동 투자사의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이분이 회사 또는 본인이 주장하는 일련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들에 대해서 회사 내부에서는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월급쟁이입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정말 정이 떨어졌다. 본인이 귀찮고, 틀렸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걸 조금이라도 고치려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을 때, 한 배를 같이 탄 창업가의 인생이 망가지고, 개인 파산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가족이 파탄 나고, 최악의 경우 한 생명이 사라지는 최악의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무책임한 생각과 말을 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사람은 VC로서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같은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계약서대로 했으니까.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완전 실패다. 계약서의 문구 하나하나가 당연히 중요하고, 우린 회사 대 회사가 계약으로 묶여 있고,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아주 serious 한 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 이 거래의 본질엔 사람이 있다. 한 명의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를 믿고, 존중하고, 지지하는 그런 업을 하고 있는데,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단순히 계약과 돈을 쫓는 매정한 VC이길 선택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고 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회사는 그 회사의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직원이 몇 년 후에 임원이 되고, 그 임원이 회사의 대표가 되는데, 담당자를 욕하지 말고 회사를 욕하라는 의견은 좀 그렇다. 이런 담당자들로 구성된 회사, 그리고 이런 행위를 허용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구성원들 그 자체가 회사라서 나는 더욱더 이런 사람들이 싫어진다. 내가 이런 투자자들과 같이 집합적으로, 그냥 싸잡아서 같은 VC로 분류된다는 게 창피하고 싫어지는 순간이다.

개 같이 일하기

Tech 쪽에 종사하고, 한국과 미국의 소셜미디어를 자주 확인하는 분이라면 얼마 전에 꽤 바이럴하게 퍼졌던 이 기사의 사진을 봤을 것이다. 한 스타트업 창업가가 본인의 결혼식 중, 다른 사람들이 다 재미있게 춤추고 있을 때, 노트북을 열어서 열심히 일하는 사진이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가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엄청나게 빠르게 확산했고, 인터넷은 이에 대해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다.

사실을 확인해 보면, 회사의 다른 동료가 어떤 코드에 대한 접근이 필요했고, 그 접근 권한은 대표이사인 이 창업가만 줄 수 있어서, 결혼식장에서 이런 광경이 연출됐는데, 실제로 노트북을 열어서 작업한 시간은 1분도 안 됐다고 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이 사진에 대해서 온갖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걸 그래도 좋게 본 사람들은 역시 회사의 주인들은 오너십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칭찬하고, 나쁘게 본 사람들은 워라밸(워크앤라이프 밸런스)이 아무리 없어도 어떻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노트북을 열어서 일을 하냐고 엄청나게 비난했다.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진을 보면서 첫 반응은 좀 어이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래, 저렇게 안 하면 회사가 돌아갈 수가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전에 내가 스타트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이 글에서 강조한 적이 있고,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꽤 논란이 있었다. 실은 개인적으로도 나는 이 글 때문에 hate 이메일을 몇 개 받기도 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고, 내가 쓴 글이지만, 참 안타까운 내용이라고 나도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도 직장 생활할 때는 워라밸을 중요시했고, 실은 지금도 육체나 건강을 위해서 이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한다면 그냥 무조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빡세게 일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공개적으로 스타트업에서 워라밸은 없고,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다른 곳에서 일하라고 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젊은 직원들이 워라밸 때문에 스트레스 준다고 하고, 1대1 미팅하면 노무사보다 노동법을 더 잘 알고 있어서 겁까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매번 이런 직원분들과 면담하고 달래주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한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나는 그냥 이런 분들 다 해고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초기 스타트업에 기여할 수도 없고, 돈 받은 만큼 일도 안 하고, 더 중요한 건 본인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자기 결혼식에서 이 미친 CEO같이 노트북을 켜서 일해야 하나?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작은 회사라면 정말로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분 같이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해야 한다. 더욱이 그 회사의 대표이사라면 어쨌든 이렇게 일해야 한다. 나도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work mode인 것 같다. 주말까지도. 그렇다고 나는 일하는 걸 즐기는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나도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일하기 싫다. 나도 놀고 싶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 하는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VC의 파트너는 그냥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안 그러면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우리가 이렇게 회사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우리 투자사들은 더욱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 나는 이 업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제 남들보다 더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 즉, 그냥 평타치기 위해선 –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남들이 다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성공하고 싶다면, 개 같이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남보다 앞서지 못한다.

요샌 조금 아쉬운 건, 제일 열심히, 정말 미친개같이 일해야 하는 스타트업 사람들이 실은 제일 일을 적게 하는 것 같아서 정말 슬프다. 이런 분들이 워라밸 따지면서 노동청 웹사이트에 맨날 기웃기웃하는 거 보면 가끔은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이 글 보고 엄청 많은 분들이 욕할 것이다. 증오와 혐오 이메일이 또 나한테 엄청나게 오겠지. 누군가는 나에게 너나 열심히 일하라고 할 텐데, 이 맥락에서는 나는 이런 글을 자신 있고 떳떳하게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의 VC 중 스트롱 분들같이 일 많이 하는 사람들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더욱더 개 같이 일한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가? 그럼 개 같이 일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