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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이 일하기

Tech 쪽에 종사하고, 한국과 미국의 소셜미디어를 자주 확인하는 분이라면 얼마 전에 꽤 바이럴하게 퍼졌던 이 기사의 사진을 봤을 것이다. 한 스타트업 창업가가 본인의 결혼식 중, 다른 사람들이 다 재미있게 춤추고 있을 때, 노트북을 열어서 열심히 일하는 사진이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가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엄청나게 빠르게 확산했고, 인터넷은 이에 대해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다.

사실을 확인해 보면, 회사의 다른 동료가 어떤 코드에 대한 접근이 필요했고, 그 접근 권한은 대표이사인 이 창업가만 줄 수 있어서, 결혼식장에서 이런 광경이 연출됐는데, 실제로 노트북을 열어서 작업한 시간은 1분도 안 됐다고 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이 사진에 대해서 온갖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걸 그래도 좋게 본 사람들은 역시 회사의 주인들은 오너십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칭찬하고, 나쁘게 본 사람들은 워라밸(워크앤라이프 밸런스)이 아무리 없어도 어떻게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노트북을 열어서 일을 하냐고 엄청나게 비난했다.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진을 보면서 첫 반응은 좀 어이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래, 저렇게 안 하면 회사가 돌아갈 수가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전에 내가 스타트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이 글에서 강조한 적이 있고,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꽤 논란이 있었다. 실은 개인적으로도 나는 이 글 때문에 hate 이메일을 몇 개 받기도 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고, 내가 쓴 글이지만, 참 안타까운 내용이라고 나도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도 직장 생활할 때는 워라밸을 중요시했고, 실은 지금도 육체나 건강을 위해서 이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한다면 그냥 무조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빡세게 일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공개적으로 스타트업에서 워라밸은 없고,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다른 곳에서 일하라고 한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젊은 직원들이 워라밸 때문에 스트레스 준다고 하고, 1대1 미팅하면 노무사보다 노동법을 더 잘 알고 있어서 겁까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매번 이런 직원분들과 면담하고 달래주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한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나는 그냥 이런 분들 다 해고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초기 스타트업에 기여할 수도 없고, 돈 받은 만큼 일도 안 하고, 더 중요한 건 본인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자기 결혼식에서 이 미친 CEO같이 노트북을 켜서 일해야 하나?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작은 회사라면 정말로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분 같이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해야 한다. 더욱이 그 회사의 대표이사라면 어쨌든 이렇게 일해야 한다. 나도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work mode인 것 같다. 주말까지도. 그렇다고 나는 일하는 걸 즐기는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나도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일하기 싫다. 나도 놀고 싶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 하는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VC의 파트너는 그냥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안 그러면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우리가 이렇게 회사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우리 투자사들은 더욱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 나는 이 업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제 남들보다 더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 즉, 그냥 평타치기 위해선 –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남들이 다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성공하고 싶다면, 개 같이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남보다 앞서지 못한다.

요샌 조금 아쉬운 건, 제일 열심히, 정말 미친개같이 일해야 하는 스타트업 사람들이 실은 제일 일을 적게 하는 것 같아서 정말 슬프다. 이런 분들이 워라밸 따지면서 노동청 웹사이트에 맨날 기웃기웃하는 거 보면 가끔은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이 글 보고 엄청 많은 분들이 욕할 것이다. 증오와 혐오 이메일이 또 나한테 엄청나게 오겠지. 누군가는 나에게 너나 열심히 일하라고 할 텐데, 이 맥락에서는 나는 이런 글을 자신 있고 떳떳하게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진짜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의 VC 중 스트롱 분들같이 일 많이 하는 사람들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더욱더 개 같이 일한다.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가? 그럼 개 같이 일해라.

더 좋은 브라우저를 찾아서

나는 1995년도에 Netscape라는 브라우저를 통해서 메인스트림 인터넷에 입문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넷스케이프에 대해서 들어봤거나 읽어봤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진 않은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V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의 공동창업자이자 파트너인 마크 앤드리슨이 대학생 때 만든 그 브라우저이다.

당시에 우리 집에는 인터넷 통신만을 위한 전용 전화선이 있었는데 – 이걸 허락해 주신 우리 부모님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 천리안을 통해서 전화로 모뎀 접속을 하고, 넷스케이프를 통해서 방문했던 다양한 사이트들은 나에겐 정말 신세계였다.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내가 넷스케이프로 가장 먼저 접속했던 사이트가 루브르 박물관이었고, 두 번째로 접속했던 사이트가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였다. 한 페이지가 뜨는 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 당시엔 정말 너무너무 신기했고, 앞으로 이 World Wide Web이 어떻게 발전할지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지만, 이렇게 전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중요하고 촘촘한 거미줄(web)이 될 진 상상도 못 했다.

인터넷 브라우저는 이제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제품이 됐고,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나에겐 세상을 바꾼 가장 혁신적인 제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넷스케이프가 한동안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이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가져갔고, 구글이 크롬을 만들면서 브라우저 시장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 현재 브라우저 시장은 구글의 크롬이 65%, 애플의 사파리가 18%,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Edge가 5%를 점유하고 있다. 거대한 공룡들이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이 헤게모니를 무너뜨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이 시장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대기업들이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 파이어폭스나 Brave 같은 브라우저도 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투자사 미러도 현재 이 시장의 일부를 가져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빙글의 테크니컬 리드였고, 캐치패션의 CTO 였던 미러의 공동창업자 이상현 대표님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겠다고 우리랑 미팅했을 때,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라서 아마도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그런데 만약에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미러를 사용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니까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 수 없는 이유가 백만 가지였지만, 어쩌면 이 팀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를 우린 찾아서 투자했다.

미러는 사용자들의 정리를 도와주는 브라우저다. 셀프오거나이징(self-organizing) 기능이라고 하는데, 사용자의 웹 브라우징 활동을 자동으로 정리하고 구조화해 준다. 작업용 브라우저를 보면 열기만 하고 절대로 닫지 않아서, 끝없이 늘어나는 탭 때문에 현대 사회의 지식 근로자들은 꽤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 문제점을 미러는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 제품보다 더 안전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준다.

미러가 과연 30년 동안 변화가 없던 브라우저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수 있을까? 꼭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잘 만들면 브라우저만큼 글로벌 임팩트가 큰 소프트웨어도 없다고 생각하고, 한국 스타트업에서 만든 브라우저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현재는 맥버전만 제공된다. 이 링크를 통해서 사용하면 첫 달은 무료로 사용해 볼 수 있다.

내 잠을 설치게 하는 것들

내가 창업가들에게 가끔 물어보는 질문이 있는데, “요새 잠을 잘 자지 못하게 하거나, 잠을 설치게 하는 고민들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이다. 영어로 하면 “What keeps you up at night?”인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조금 어색하긴 하다. 내가 창업가들에게 항상 물어보는 게 아니라, 가끔 물어보는 이유는, 이 질문은 내가 첫 미팅이 아니라, 어느 정도 상대방을 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나 본 후에 물어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우리가 그동안 몇 개월 동안 대화를 하고 있던 우리의 잠재 투자자가 나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나는 이 질문을 그동안 창업가들에게 해 왔었지만, 정작 내 잠을 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몇 분 생각을 했었다. 요샌 내가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것들은 없지만, 현재 내 가장 큰 고민거리는 지금 만들고 있는 새로운 펀드를 빨리 끝내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을 보면, 펀드를 하나 새로 만드는 건 힘들고 지루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라서, 이번 펀드도 그냥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엔 다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이건 실은 일시적인 고민이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걱정과 생각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계속 초기 투자를 하면서 스트롱이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하면 처음과 끝이 항상 같게, 계속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인데,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초기 투자자로서 계속해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이다. 실은 영어로 말하는 게 제일 정확한데, “how do we continue to stay relevant?”이다. 너무 세상이 빨리 바뀌다 보니, 우리도 외부 변화에 맞춰서 빠르게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뻔한 말이지만, 결국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없는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항상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이 또한 뻔한 말이지만, ‘원칙’이라는 말에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몇 가지 변하지 않는 원칙, 그리고 그 원칙을 둘러싼, 계속 바뀌어야 하는 변수들, 이 것들을 제대로 구분해서, 원칙을 변수랑 착각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우리를 존재하게 했던 것들을 계속 유지하는 고민. 이게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첫 번째 고민이다. 시장에서 의미와 영향력이 사라지면, 우리 같은 VC는 그냥 한 방에 훅 가는 것이라서 아주 심각한 고민이다.

두 번째는, 갈수록 늘어나는 남에 대한 신경과 관심을 끄고, 어떻게 하면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모든 생각을 집중할 수 있을까이다. 한국은 장점이 너무 많은 나라인데, 단점 또한 많다. 아마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단점은 모두 다 남을 만족하기 위해서 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남의 목소리, 남의 의견,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이게 과해지면 본인의 목소리, 본인의 의견, 본인의 시선을 점점 잃어버리면서, 결국 내 인생을 불특정 다수의 남을 위해 살다가 죽게 되는데, 한국 사회가 이렇게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틀린 결정을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된다는 말도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틀린 결정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본인의 생각보단, 항상 남의 의견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틀린 결정을 하더라도, 남이 결정해서 내가 틀리기보단, 그냥 내가 결정해서 내가 틀리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남이 아닌 나에게 모든 걸 집중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투자하면서 이걸 지킨다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다.

며칠 전에도 자기 전에 이 두 가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잠을 약간 설쳤는데, 그래도 나쁜 고민이라기보단 좋은 고민이고, 뭔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계속 신경 써야 하는 좋은 점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생각의 꼬리를 잘라버리고 잠들었다.

제2의 한류

얼마 전에 컴팩트하게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3개국을 갔다 왔는데,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하루에 미팅 하나씩하고 다시 귀국했다. 우리는 한국이랑 미국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 유럽에 포트폴리오 회사가 하나 있긴 하지만 –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투자자들도 유럽에는 거의 없어서, 일 때문에 유럽 갈 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유럽 땅을 밟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유럽에 온 게 2000년도였으니까, 이번에 24년 만에 유럽에 왔다. 특히 어릴 적 살았던 스페인에는 이번에 무려 35년 만에 갔는데, 솔직히 너무 짧은 출장이라서 뭘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한 나라에 하루도 안 있었지만, 오랜만에 유럽에 와서 나흘 동안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한국과 관련된 점들이고, 대부분 너무 좋은 느낌과 발견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일부와 중학교를 유럽에서 다녔다. 이게 언제였냐면,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이었는데, 모든 걸 사진같이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정말 못 사는 나라였다. 그 못 사는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 참고로, 당시엔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이었다. 외국에 나가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고 나가야 하는 시기였다 – 유럽에 오니 어린이의 시각으로 봐도 유럽은 너무나 잘 사는 선진국이었다. 멋진 사회적 인프라, 온갖 맛있는 음식, 비싼 자동차, 옷도 잘 입는 멋쟁이들,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넘쳐흐르는 선진국 사람들,,,뭐 이런 느낌이었고, 실은 이런 유럽의 선진국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며칠 전 출장 전 까진.

그런데 이번에 출장 와서 내가 보고 느낀 점들은 당시의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가는 곳마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 유럽이 이렇게 후졌었나? 내 기억으론 정말 잘 사는 나라였는데, 별거 아니네.” 심지어는 런던 호텔에서 우연히 대학교 선배를 만났는데, 이분도 나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기홍아, 영국이 원래 이렇게 후진 나라였니? 나는 한국이 훨씬 더 좋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좋았다. 한국이 인프라도 잘 되어 있고, 솔직히 말해서 음식도 한국이 더 맛있었다.(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이탈리아에서 먹은 파스타보다 한국에서 먹는 파스타가 더 맛있었다). 좋은 자동차는 서울에 훨씬 더 많고, 심지어는 유럽의 멋쟁이들보다 강남과 성수의 한국인들의 패션이 더 시대를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실은, 내가 이렇게 느꼈던 건, 유럽이 못 살거나, 후져서가 아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주 잘 사는 선진국인데, 한국이 그동안 너무 발전을 많이 했고, 한국이 너무 좋은 나라가 됐기 때문에 내가 상대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한국은 아주 잘 사는 강한 나라가 됐고,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심지어 굉장히 똑똑하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 유럽 가는 곳마다 투자자들이 나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 진짜 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너넨 잘될 거야.”였는데, 내가 봐도 한국인들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내가 나에 대해서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지만, 솔직히 나만 봐도 진짜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앞으로 유럽 사람들이 계속 지금같이 일하고, 한국 사람들도 지금같이 일하면, 앞으로 10년 후에 한국은 유럽 그 어떤 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게 확실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린 이미 한류(Korean Wave)라는 말을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했는데, 내가 요새 느끼는 건, 이제 제2의 한류(2nd Korean Wave)가 시작되는 것 같다. 제1의 한류 기반이 제조업을 잘하고, 그냥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한국이었다면, 제2의 한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게 포함되어 있다. 이제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한국은 이미 하드웨어를 잘하는 나라인데, 소프트웨어도 잘하고, 특히나 consumer 제품을 굉장히 잘 만드는 나라가 됐다. 실은 여기서 멈춘다면, 제2의 한류는 없을 것이다. 하드웨어랑 소프트웨어는 그냥 tech인데, tech 자체로만 다른 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순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 tech를 넘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이게 시사하는 바는 정말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은 음악도 잘 만들고, 영화도 잘 만들고, 무형의 자산인 콘텐츠 강국이 됐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외국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다른 무형의 자산인 음식에서도 한국은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음식이 이젠 정말로 메인스트림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스포츠도 잘한다. 많은 한국 프로 선수들이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너무나 잘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모두 다 합쳐지면서 한국은 이제 외국인들의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 나라가 됐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고, 이는 해외 투자자들의 돈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 대비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 회사, 또는 우리 같은 한국에 투자하는 펀드에 대한 관심이 차원이 다르게 바뀌었다는 걸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

물론, 이런 내 생각과 의견에 100% 반대하는 분들도 많다. 한국의 미래는 어둡고, 더 이상 한국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한국 VC도 내 주변에 많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내 주변에는 많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한국은 선진국에서 강대국으로 다시 한번 더 점프할 수 있는 내, 외부 기회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자신감에 대해서 – part 2

이전 글 part 1에서 못 담았던 자신감 관련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우리가 시작했던 LA 시장에서도 이런 창업가와 VC들의 자신감이 크게 상승했던 큰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Snap(구 Snapchat)의 IPO였다.

스냅챗은 아주 LA스러운 창업가 Evan Spiegel에 LA의 Venice Beach에서 창업했고, 2017년 3월 2일에 IPO를 했다. 최근 시가총액은 20조 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IPO 당시 시총보단 한참 작지만, 높을 땐 40조 원이 넘는, 디즈니와 Amgen에 이어 LA 지역에서 세 번째로 시총이 높은 회사였다. 스냅의 IPO가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는데, 가장 큰 건 이전 포스팅에서 내가 강조한 ‘자신감’이다. 당시에 LA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생태계 중 하나였고, 그동안 많은 좋은 스타트업이 창업되고 엑싯도 잘했다. 그런데 이 엑싯들을 보면 대부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 대의 M&A였고, 아주 가끔은 조 단위의 엑싯도 LA 지역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스냅 IPO 이전에는 대부분의 LA 창업가들은 적당히 회사를 키운 후에 수백억 ~ 수천억 원 규모에 더 큰 회사에 파는 엑싯 전략을 기반으로 사업을 했고, 그 이유는 그 정도의 자신감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6살의 젊은 창업가 Evan이 스냅챗을 수십조 원짜리 회사로 상장시켰을 때, LA 지역의 창업가들은 이 IPO로 인해 굉장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LA에서 수천억 원 ~ 수조 원의 엑싯은 심심찮게 나왔지만, 수십조 원의 IPO도 가능하다는 걸 스냅이 입증해 줬기 때문에, 더 많은 창업가가 “나도 굳이 실리콘밸리나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따뜻한 LA에서 잘만 하면 수십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어서 상장시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스냅의 IPO 이후엔 더 많은 LA의 창업가가 더 큰 꿈과 비전을 갖고, 이왕 시작한 회사를 가능하면 대형 IPO가 가능한 규모로 키울 생각을 하게 됐는데, 나는 이게 엄청난 긍정적 자신감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스냅의 성공적인 IPO로 인해서 다양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 몇 가지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다. 일단 LA의 북동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학생들의 창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칼텍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MIT나 스탠포드 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smart이기도 하지만, 훨씬 더 geeky하고 nerdy 하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창업보다는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석사/박사 과정까지 하고, 이후에는 교수, 또는 NASA나 JPL(제트추진연구소)에 취직해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는 커리어를 선호한다. 하지만, 스냅 IPO 이후에는 칼텍 학생들도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렇게 좋은 창업가들이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LA의 창업 생태계에는 엄청난 긍정적인 변화와 자신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또한, 스냅의 IPO로 인해, 굉장히 많은 부자들이 탄생했다. 스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이 IPO로 번 돈은 엄청났고, 이들은 LA 생태계에 계속 돈을 투입하면 더 많은 성공적인 회사들이 나올 것이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이 생겼다. 또한,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LP 들도 LA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신념이 생기면서 계속 대규모 자본이 LA 스타트업에 투입되는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졌다.

스냅의 많은 직원들도 이 IPO로 인해서 백만장자가 됐다. 이들은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었고, 돈도 벌면서 새로운 레벨의 자신감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른 스타트업에 개인 투자를 하거나, 후배 양성을 위한 액셀러레이터나 VC 펀드를 설립해서 본인이 사업하면서 남들한테 받았던 도움을 다시 pay it forward 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이클이 몇 번 반복되면서 LA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두터운 창업가와 투자자의 인프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는 자신감이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스냅의 IPO로 큰돈을 못 번 직원들도 작은 회사가 초고속 성장해서 IPO까지 가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 배움, 그리고 자신감을 다른 스타트업으로 그대로 가져가서 스냅과 같은 성공 케이스를 계속 만들기 시작하면서, LA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신감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도 이제 막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 토스의 IPO가 초대박이 나길 바라고 있고 마켓컬리 같은 회사도 아주 잘 되길 바란다. 참고로, 우린 토스나 마켓컬리 투자자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