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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한 변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피트니스 클럽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고, 많은 헬스클럽이 문을 닫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피트니스 체인 중 하나인 24 Hour Fitness도 파산신청을 고려하고 있고, 아직 망하지 않은 헬스클럽은 PT 수업을 온라인으로 스트리밍하거나,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서 비대면 PT 수업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어떤 헬스클럽은 아예 운동기구를 대여하거나 판매해서 계속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Peloton이나 SoulCycle과 같은 사이클/스피닝 클래스가 인기가 많기 때문에, 사이클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피트니스 클럽은 자전거를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참 살벌한 세상이다. 살기 위한 이런 처절한 몸부림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다. 하지만, 살기 위한 이 투쟁의 다른 면을 보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회사의 경영진이 그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고, 마지막 한 방울 창의력까지 머리에서 쥐어짜내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많이 돌아다녀서 이걸 본 분들이 많을 텐데, 그렇게 digital transformation을 오랫동안 주장했지만, 수 십년 동안 그 누구도 이걸 못 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한 방에 digital transformation이 시작된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digital transformation

Digital Transformation Quiz (SUSANNE WOLK TWITTER)

특히 한국의 학교가 온라인 개학을 하고, 온라인 수업하는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동의하겠지만, 학교야말로 첨단 기술을 도입해서 학생들에게 미래를 보여줘야 하는데, 실은 내가 아는 한국의 학교는 기술적으로 가장 낙후됐고, 신기술 도입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대표적인 기관이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면 온라인 수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보수적인 학교의 교무진과선생님들이 온라인 수업하는 걸 보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우리도 비슷한걸 느끼고 있다. 팀이 한국과 미국에 있고, 두 지역에 투자를 하니, 화상 미팅은 항상 자주 해왔었고, 나도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직접 만나서 미팅하는걸 선호하진 않지만,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면 직접 얼굴 보고 만나는 미팅을 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강제적으로 모든 미팅을 화상으로 진행했는데,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이젠 오히려 이게 더 익숙해졌고, 왜 그동안 굳이 직접 만나서 미팅을 했을까 하는 의문까지 하는걸 보면, 나도 어떻게 보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변화했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변화가 만들어진 거 같다.

이런 살아남기 위한 변화는 규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국은 원격의료가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는데,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강제적으로 합법화되거나, 아니면 합법화되어가는 과정이 더 빨리 진행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희망을 품어 본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연구개발, 그리고 임상시험 과정 또한 기존 신약 연구개발 및 임상 과정보단 더 빨리 진행되는 걸 보면, 이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이해하기 힘든 법과 규제 때문에 불법이었던, 집으로 찾아오는 이발/미용 서비스도 합법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의 진화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사용자들이 특정 제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특정 장소를 직접 찾아갔다. 그 이후에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 주로 집 – 찾아왔다. 아마도 이 다음 단계는 사용자들이 비접촉 방식으로, 원격으로 이런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미래가 한 5년~10년 뒤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는 한 방에 이런 미래를 더 우리에게 가깝게 오게 했다.

물론, 이 사태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코로나바이러스 이전 세상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안전하게 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살기 위한 변화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명함

Business man giving business card나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과 미국, 또는 동양과 서양의 비즈니스 문화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고, 요새도 그동안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예전에 이에 관해서 쓴 이 있는데, 당시엔 잘 몰랐는데 요새 또 한 가지 느끼는 점이 바로 명함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 또는, 일을 안 하는 사람도 – 대부분 명함이 있다. 이 명함을 바라보는 한국과 서양의 태도와 시선은 너무 다르다. 일단 영어로 명함은 ‘business card’라고 한다.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비즈니스 할 때 사용하는 카드이고, 특정 회사 또는 개인의 ‘비즈니스’ 정보가 담긴 종이쪼가리다. 반면에 ‘명함(名銜)’의 한자는 이름과 직함을 품은, 또는 간직한 카드로 해석될 수 있다. 개인마다 느끼는 점이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서양에서는 ‘비즈니스’가 강조되고, 동양에서는 ‘이름’과 ‘직함’이 더 강조되는 것 같다.

이러다 보니, 명함을 사용하는 방식과 용도 자체가 아주 다르다. 미국은 – 특히 벤처비즈니스가 발달한 곳 – 몇 년 전부터 명함을 잘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그냥 사람 만나면 악수하고 인사만 하지, 한국같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바로 명함을 주는 건 요새 잘 못 본다. 굳이 명함을 달라고 하면 주긴 하지만, 많은 미국 명함에는 한국같이 깨알같이 자세한 정보가 없다. 그냥 이름이랑 이메일 주소만 적혀있고, 전화번호가 안 적힌 명함도 상당히 많다. 그냥 비즈니스 하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거고,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이메일로 하므로, 별로 신경을 많이 안 쓰는 것 같다.

한국은 조금 다르다. 명함을 보면 아주 깨알 같은 정보가 들어가 있고, 처음 만나자마자 아주 공손하게 명함을 전달한다. 그러면, 이걸 또 받는 사람은 갑자기 정자세를 취하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명함을 받는다. 여러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 명함들을 아주 가지런하게 정렬해서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이 명함을 관리하는걸 자주 본다. 전에 내가 아는 한국의 사장님이 미국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는데, 이분이 준 명함을 앞뒤로 계속 보면서, “뭐 이런 명함이 다 있지. 전화번호도 없고.”라면서 불평한 적이 있는데, 그냥 그 미국인한테 “넌 왜 명함에 전화번호가 없니?”라고는 물어보지 않았다.

위에서 말했듯이 business card는 그냥 일 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인데, 한국은 내 소중한 이름이 적힌 명함이기 때문에, 명함은 그냥 비즈니스 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넘어, 내 아이덴티티와 동일한, 즉,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상당히 중요한 무기라고 인식되는 것 같다. 여기에 또 한 몫 더해주는 건, 많은 한국인이 직장과 직함이 내 인격과 사람됨됨이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전에 “내 명함이 없어도 사람들이 나를 찾을까”글에서도 한번 짜증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은 명함을 너무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해외에서 골프 칠 때 모르는 한국 분들과 한팀이 된 적이 있다. 나는 원래 모르는 분들과 말 섞는걸 매우 싫어해서 입 닥치고 있었지만, 결국 인사를 하게 됐는데, 역시나 나는 그냥 이름만 말했는데, 이 분은 바로 자기 명함을 나한테 줬다. 누가 봐도 알만한 좋은 회사의 부장급인 분이었다. 비즈니스 하는 것도 아니고, 두 번 다시 볼 사이도 아닐 텐데, 굳이 외국 골프장에서 만난 사람한테 자기 명함을 주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걸 상대방에서 보여주고, 본인이 믿을만한 사람임을 강조하고싶었던거 같다. 다 좋은데, 굳이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아빠 학부모가 애들 학교 선생님과 인사할 때도 명함을 주는 걸 나는 전에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냥 누구 아빠라고 하면 될 걸, 다니고 있는 회사, 그리고 그 회사에서의 위치가 적힌 명함을 학교 선생님에게 굳이 줄 필요가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나 좋은 회사 다니는 높은 사람이니, 우리 애한테 잘해주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인 거 같다. 회사와 직함을 나의 인격과 사람됨됨이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생긴 습관인 것 같다.

솔직히,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냥 문화의 차이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냥 명함은 비즈니스할때 사용하는 게 더 좋다. Strong Ventures의 배기홍 대표랑 내 개인 삶에서의 배기홍이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게 훨씬 더 좋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통제 불가능한 건, 그냥 웃자

bottle-601566_1280나는 이제 7주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말 하는 재택근무는, 사무실을 안 가는 개념도 포함하고 있지만, 아예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매주 월~금, 내가 집에서 보낸 시간을 계산해보니까, 대략 118시간이다. 불필요한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일주일에 2시간만 밖에서 보내고 있다.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캠퍼스도 어차피 셧다운 돼서, 사무실 출근이 당분간 힘들어서 언제 재택근무를 끝낼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한국은 그나마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황이 좋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다시 크게 확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서, 상당히 조심하고 있긴 하다.

집에서 일한다고, 노는 건 아니다. 아니, 실은 사무실 출근할 때 만큼 많은 미팅을 소화해내고 있는데, 다만 물리적인 미팅은 아니고 Zoom으로 하는 화상 미팅만 열심히 하고 있다. 새로운 회사도 많이 만나고 있고, 우리 기존 투자사들과도 요샌 화상으로 미팅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듣고 관찰해보면, 참 마음이 아프지만, 시장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롭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우린 기술 그 자체로 사업을 하는 deep tech 분야보단,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소비자 서비스를 만드는 온디맨드와 이커머스와 같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에 투자를 많이 하다 보니, 거시적인 흥미로운 트렌드가 보이긴 한다. 비대면 비즈니스인 이커머스 사업은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대부분 더 잘 되는 경우가 목격되는데, 너무 잘 되는 회사는 오히려 제조와 공급이 시장의 수요를 못 맞추는 현상을 경험하기까지 한다. 실은, 이런 많은 회사가 코로나바이러스 전에는 없는 수요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이렇게 바이러스 때문에 상황이 며칠 만에 역전되는 걸 보니 참 신기했다. 이와 반대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온디맨드(O2O) 또는 마켓플레이스 사업 중 오프라인 과정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는 걸 목격하고 있다.

여행 또는 오프라인 이벤트가 사업의 핵심인 우리 투자사들은 매출과 모든 수치가 거의 100% 감소해서, 그동안 수년 동안 갈고 닦은 비즈니스 자체가 사업 초반으로 리셋되는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 이와는 극적으로 다르게, 인터넷으로 콘텐츠를 판매하고 배포하는 회사들은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나도 참 안타깝다. 작년 12월과 올해 1월 역대 최고 매출과 실적을 달성해서, 올해 정말로 크게 성장할 거로 예상되는 투자사들이 몇 있었는데, 2월부터 모든 수치가 곤두박질하면서, 이젠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어서, 옆에서 이들을 보는 나도 참 애가 탄다.

그 누구도 이런 성장 또는 감소를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고 준비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그래서 컨트롤할 수 없는 블랙스완인 셈이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만을 탓해서는 안 된다. 사업이 안 되고, 숫자가 좋지 않고, 모든 상황이 비즈니스에 불리하지만, “코로나 때문에”라는 생각을 하고, 우리 비즈니스가 잘 안되는 가장 크고, 어쩌면 유일한 이유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모든 창업가에게는 앞으로 더 내려갈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 맞고, 코로나바이러스를 욕하고 탓하는 게 맞다. 이게 아니라면, 1월에 10억 원 매출하던 회사가 어떻게 2월, 3월 99% 감소한 1,000만 원밖에 못 할까? 그래도 우린 무조건 코로나바이러스만을 탓하면 안 된다. 컨트롤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이 개판 와중에도, 우리가 조절해서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찾아서 계속 실험해야한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쩌면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현실은 정말 절망적으로 변한다.

실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라는 말은 VC들도 요새 많이 하는걸 들었다. 투자하기로 했고, 악수도 했고, 계약 작업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투자 철회하는 걸 이미 몇 번 봤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실은, 투자자들한테도 가장 쉬운 변명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세계 경제가 불확실하고, 돈줄을 잡고 있는 LP들이 돈을 안 풀고 등등, 뭐 이유는 그냥 만들면 된다. 하지만, 이건 정말 무책임한 태도다. 투자하겠다고 악수했으면, 무조건 투자 집행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정말 힘들면, 코로나바이러스 말고 다른 합당 하고 이해 갈만한 이유를 제공해줘야한다. 모든 걸 코로나 탓 하는 태도는 정말 아닌 거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코로나를 탓하는 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럴수록,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봐야한다. 컨트롤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다. 그냥 한번 크게 웃자.

<이미지 출처 = Pixabay>

시니어 코리아

우리 부모님은 나랑 꽤 가까운 거리에 사신다. 그렇다고 아주 자주 뵙진 못 하지만, 내가 미국 살 때 보단 훨씬 더 자주 방문할 수 있어서 좋다.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우리 아버지는 인터넷 관련 이런저런 질문을 하신다. 어떤 건 그냥 그 자리에서 고치거나, 가르쳐 드릴 수 있지만, 어떤 건 한참 설명하다가 포기하거나, “아빠, 그건 그냥 제가 해드릴게요.”라면서 아예 시도조차 안 한다. 이커머스 사이트 등록과 온라인 뱅킹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학습에 대한 의지도 있고, 학습력도 나름 좋으신 분이지만, 계정을 만들기 위해서 휴대폰 인증받고 공인 인증서 사용방법에 대해 설명할 엄두가 도저히 나한테 생기지 않았다. 마켓컬리 안심을 언제 한번 사드렸는데, 너무 맛있고 값도 착하다고, 본인 폰에도 깔아달라고 하시는데, 그냥 필요할 때마다 나한테 부탁하면 내가 주문해주겠다고 했다. 타다도 설치하고 싶으시지만, 그냥 그럴 때마다 내가 호출해드린다. 요샌, 현금을 아예 받지 않는 스타벅스 매장도 많은데, 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면, 스타벅스 앱을 설치해야하는데, 이것도 우리 부모님 폰에 설치하고 사용방법을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 아버지가 뱅킹 서비스를 사용하시려면, 직접 물리적으로 은행에 가야 하거나, 전화로 해야 한다. 요새 은행들도 지점을 없애는 추세고, 전화를 걸어도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뭔가 구매가 필요하시면, 그냥 나한테 부탁하시면, 내가 대신 쿠팡에서 구매해드린다.

이럴 때는 정말 씁쓸하다. 이런 추세로 가다 보면, 어르신들은 그 어떤 서비스도 이용하지 못하고, 모든 면에서 첨단 기술을 잘 활용하는 젊은 층보다 불리해질 것이다. 이번 마스크 대란에서도 우리 부모님은 유일하게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동네 약국이나 마트라서, 갔는데 허탕 치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세상은 편리해지고 있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더 불편해지고 있는 게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땐 또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나도 우리 부모님과 같이 될까 겁난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지금 이 추세로 가면 2045년에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니어 인구(65세 이상)를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를 탈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사회, 과학, 경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라서 자세히 들어가진 않겠다. 어쨌든, 한국은 이 상태로 가면, 앞으로 인구 역피라미드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이런 현실과 미래가 잘 보이는데, 대부분의 창업가는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서비스에 많이 투자하고 있고, 나는 밀레니얼들을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럴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나라의 더 큰 시장을 차지할 시니어 시장을 모두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 또한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마케팅, 검색엔진 최적화, 그리고 그로쓰해킹 등의 기법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최적화된 마케팅 기법인데, 어떻게 보면 더 큰 시장인 시니어한테까지는 도달하기 힘들다. 이들은 검색을 잘 안 하고, 유튜브도 못 하고, 인스타도 안 하고, 온라인 결제에 익숙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 이플루비는 이 시니어 시장에서 잘하고 있는 회사다. 회사의 창업자인 윤혜림 대표는 금속공예를 공부했는데, 어머님을 위한 패션 돋보기를 직접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창업가가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이 시니어 시장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좋은 가격에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고 있는데, 패션 돋보기와 마약 잠옷과 같은 히트 상품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판매하는 방법도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트업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온라인에 익숙지 않은 고객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올드’하다고 생각하는 종이 카탈로그로 마케팅을 하고, 구매 또한 전화로 해결하고 있고, 그나마 시니어들이 모두 사용하는 가장 익숙한 모바일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잘 활용하고 있다.

내가 윤혜림 대표를 처음 만난 게 약 1년 반 전 프라이머 인터뷰할 때였는데, 그때 굉장히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동안 많은 시니어 비즈니스가 있었는데, 모두 다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니어’를 너무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니어들도 본인들이 시니어인걸 잘 아니까, 굳이 ‘시니어’를 강조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뜻이다. 이런 좋은 인사이트를 몸으로 직접 배운 창업가라면 좋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이플루비 들어가서 우리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을 위해서 뭐라도 좀 사야겠다.

참여의 의의

1584658007999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주춤하고 있고, 스타트업 쪽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경기 자체가 너무 불안해서 일단 VC든 스타트업이든 자금을 모두 조심스럽게 집행하고 있고, 사람을 만나는 게 불안하니, 투자 미팅이나 실사 또한 보통때보단 훨씬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한국 사무실이 있는 구글캠퍼스서울도 지금 3주째 문을 닫아서, 우리 모두 집에서 근무하면서 이메일/Zoom/전화로 모든 업무를 해결하고 있다.

악셀러레이터의 대표주자 Y Combinator도 어쩌면 올해 여름 배치는 완전히 온라인/리모트로 진행한다고 발표했고,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 또한 최근 배치 데모데이를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이번에 새로 모집하는 17기 인터뷰 또한 모두 화상미팅을 통해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국이 어렵다고 창업의 열기가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번에 모집하는 프라이머 기수에 지원한 회사와 창업가의 수는 역대 최고였고, 오히려 역사적으로 힘들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진짜 좋은 회사들이 많이 창업됐다는 걸 알고 있는 듯, 더욱더 좋은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창업가들이 많다는걸 요새 느끼고 있다. 비록 Zoom을 통한 화상미팅으로 대부분 만나고 있지만, 느낌과 눈빛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도 잘 전달되고 있다.

이번에 나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프라이머에 지원한 30개 이상의 회사와 인터뷰를 했다. 요새는 한국의 창업가들도 질적으로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이미 스타트업 경험이 있거나, 현재 좋은 수치를 만들고 있는 회사를 운영하는 분들도 많이 지원한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경험없고, 스타트업이란 용어조차 생소한, 첫 번째 창업하는 first time entrepreneur들이 많다. 오히려 나는 이런 분들과 대화하는 게 더 즐겁다. 아직 경험이 없다는 명확한 단점이 있지만, 이걸 반대로 해석해보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과 태도가 완전히 오픈되어 있다는 명확한 장점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질문을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항상 하는 질문은 “왜 프라이머에 지원하셨나요? 저희한테 원하는 게 뭔가요?” 인데,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매번 다르고, 꽤 재미있다. 이번에도 다양했는데, 꽤 많이 들었던 답변이고, 투자자로서의 내 마음을 감동하게 했던 답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모든 투자자들이 제가 하는 게 어리석고,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그동안 좀 많이 우울했고, 자존감이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프라이머는 조금 달랐습니다. 서류 통과하고, 이렇게 파트너분들이 미팅을 신청해주시고, 좋은 시장이고, 좋은 팀이고, 가능성이 있다고 해주는 이런 말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자극되고, 도움이 되고, 영광입니다.”

올림픽의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의의는 참여 그 자체이다. 금메달 중요하다. 하지만, 메달보다 중요한 건 바로 올림픽에 참여하는 그 자체이다. 나는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유니콘도 좋고, 성장도 좋고, 밸류에이션도 좋고, 다 좋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참여 그 자체이다. 성공도 좋고, 실패도 좋고, 다 좋다. 하지만 참여하는 거 자체가 의미가 있다.

여기서 초기투자자들이 하는 역할이 매우 크다. 지금은 서툴고, 모자라지만, 가능성이 있는 팀이라면, 용기를 줘야 한다. 그래서 계속 이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 머무르면서, 창업가 기질을 연마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다듬고, 더 좋은 팀원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치어리딩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창업부터 성공해서 대박이 나는 사례를 우리도 가끔 목격하지만, 이렇게 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처음에는 서툴고 미숙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시도하고 다듬다 보면, 그리고 운이 좋으면, 좋은 비즈니스가 만들어질 확률이 더 높다.

창업가들도 남의 말에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고, 더 많은 사람이, “그 비즈니스 말 되네”라는 말을 한다면, 어쩌면 그렇게 커질 비즈니스가 아닐지도 모르니, 옆에서 욕하고, 밟고, 깎아내리고, 우울하게 만들어도, 참여 자체에 의의를 두고 계속 시도하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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