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B2B 시장에 대해서는 내가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글을 썼는데, 나는 그동안 전형적인 B2C 강국이었던 한국에서도 앞으로 5년 안으로 여러 개의 B2B 유니콘이 – 특히 B2B SaaS 회사 –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우린 지난 몇 년 동안 꽤 많은 한국의 B2B 회사에 투자하면서 이런 우리의 믿음과 가설을 직접 테스팅해보고 있는데, 기대가 매우 크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현실은, 이 시장이 활짝 커지려면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시장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걸 우리가 투자하는 B2B 창업가들과 우리 같은 투자사들이 서서히 바꿔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우리 B2B 회사들과 올해는 꽤 많은 대화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사업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바이럴을 타면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B2C 서비스와는 달리 기업을 대상으로 영영업해야 ,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하고, 막상 구매 결정을 해도 여러 단계의 결제 과정을 거쳐야 하는 B2B 솔루션은 생각만큼 잘 안 팔린다. 아니, 생각만큼 잘 안 팔리는 게 아니라, 그래도 사용할 만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1년 동안 단 한 개의 제품도 판매하지 못한 회사들도 있다.

왜 안 팔릴까? 이 부분을 우린 집중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팔리지 않는 문제를 제품의 문제, 영업의 문제, 그리고 시장의 문제로 구분해 봤다.

일단 우리 제품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뜯어봐야 한다. 우리 잠재 기업 고객의 문제점을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해주는 솔루션을 우리가 제대로 개발하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잘 만들었더라도 다른 경쟁사보다 더 싸고, 더 좋고, 더 빠른 솔루션을 만들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만약에 어느 정도의 시장이 존재하는데 우리만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건 우리 제품이 후졌거나, 아니면 우리가 영업을 못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팔릴만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위에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데 우리 제품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이 제품을 살 수 있는 고객들도 충분히 많이 존재한다면, 영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B2B 제품은 B2C 제품과 같이 제품만 잘 만들어 놓고 메타나 구글에서 유료 광고를 하면 바로 입소문이 나서 바이럴을 타는 성격이 없다. 기업 고객 면전에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보여주고, 사용법을 알려주고, 직접 홍보를 해야지만 판매가 된다. 그것도 여러 번을. 즉, 영업을 아주 잘해야 한다. B2B 영업은 상당히 특별하고 독특한 기술이 필요하고, 한국에 스타트업의 B2B 영업을 제대로 하는 인력은 상당히 귀하다.(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출신 B2B 영업 인력은 스타트업 영업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에 내가 여기서 몇 자 적어봤다). 어느 정도의 시장이 존재하고, 우리가 아주 기깔난 제품을 만들었는데 매출이 없다면, 우리의 영업 실력을 의심하고 영업 프로세스를 전면 재검토해 봐야 한다.

제품도 잘 만들었고, 영업도 잘하는데, 판매가 안 된다면, 시장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즉, 이 시장이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가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은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더 잘 기획하고 개발해서 제품력을 개선하면 되고, 영업력이 약하면 이 또한 어느 정도 보강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을 잘 못 선택했다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시장이 생길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하는데, 스타트업은 그 전에 현금이 고갈되어서 망할 확률이 높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시장의 문제라면 그냥 피봇하는걸 나는는 권장한다. 물론, 한국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옆나라 일본이나 먼나라 미국에는 수조 원의 시장이 있다면, 글로벌 시장 진출로 전략을 바꿀 수도 있지만, 이건 또 완전히 다른 레벨의 고민거리라고 생각한다.

B2B 사업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잘 안되고 있다면, 제품, 영업, 또는 시장 중 정확히 어디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는지 잘 파악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