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흑백요리사, 흑백창업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나는 아직 못 봤다. 아니, 안 봤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고 아마도 앞으로도 안 볼 것 같다. 전 세계적인 이목을 받았던 예능이고, 전 세계적으로 좋아하는 두 가지 감성에 집중해서 나름 성공했던 것 같다. 한국인 특유의 파생적 창의력을 기반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서바이벌 개념을 요리 쪽에 적용한 점과 요리 분야에도 흙수저와 금수저의 개념을 적용해서 이 또한 누구나 다 공감하는 계층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이 참신했다. 참고로,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모두 이런 계층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큰 글로벌 인기와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요리사가 발굴됐다. 이미 유명한 백요리사도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흑요리사들도 많이 발굴됐고, 이들의 식당은 이후에 줄 서서 먹어야 하는 곳이 됐다. 나는 그 어떤 식당도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흑백요리사에 나온 쉐프의 식당은 안 가봤지만, 많은 곳이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건 잘 안다.

근데 이들이 정말로 실력 있는 요리사일까? 정말 맛 있을까? 워낙 주관적인 판단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로 실력 있는 요리사는 이런 프로그램에 나올 필요도 없고, 나올 시간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방송을 통한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고, 요리사로서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한다. 방송 출연할 시간에 메뉴를 하나라도 더 연구하고, 지금 팔고 있는 메뉴를 어떻게 하면 더 저렴하고 더 맛있게 고객들에게 팔 수 있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고객에게 한 접시라도 더 팔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건 나도 건너 들은 이야기라서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흑백요리사 출연을 거절한 쉐프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방송을 통해 유명해지기보단,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미디어를 타기 전에 일단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리사의 기본은 음식의 맛인데, 이건 미디어에 나온다고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진짜 실력 있는 요리사는 이런 프로에 나올 필요도 없고, 나올 시간도 없다. 이들은 그 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해준 고객들을 서빙하고, 매출을 만들고, 본업인 요리를 하고 있다. 이것 만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실은 이 말은 내가 창업가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고, 소셜 미디어나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손에 지문이 닳도록 강조하고 있다. 방송을 타거나, 스타트업 경진 대회에서 입상하거나, Forbes 30 Under 30에 선정되거나, 뭐, 이런 게 중요한게 아니다. 실은, 방송을 심하게 타거나, 국내외 모든 경진대회에 참가하거나, 유명한 미디어의 20 Under 20/30 Under 30/40 Under 40등의 리스트에 올라가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모든 창업가들은 솔직히 본인의 사업은 잘 못 한다.(그리고 이건 스트롱 창업가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내가 아는 창업가들이 본인의 유명세를 자랑하면 나는 속으로 사업이나 똑바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진짜로 사업하는 분들은 이런 방송에도 안 나가고 경진대회에도 안 나간다. 왜? 그냥 그런 거 할 시간이 없다.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서, 하루 24시간도 모자라는데, 언제 딴짓할 시간이 있을까? 진짜배기 창업가들은 그럴 시간에 제품이나 제대로 만들고, 고객이나 한 명 더 만나고, 매출이나 100만 원 더 만들고 있다. 이런 패턴은 스타트업 행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거의 안 가지만, 흔하디흔한 스타트업 행사들 가보면, 항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해야 할 일들은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 모든 게 결국엔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정말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사업을 좀 먹고,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떨어뜨리고, – “우리 대표는 대회랑 방송만 나가면서 스타트업 대표 놀이만 하네” – 투자자들에게 누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창업가라고 생각한다면, 창업가같이 행동해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우리 제품을 사랑하는 고객을 만들고, 돈을 벌어라.

(꽤 중요한) 투자자와의 소통

전에 내가 ‘투자자와 소통하기’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일하는 분야는 워낙 페이스가 빨라서 과거에 맞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틀릴 수도 있고, 과거에 틀렸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6년 전에 썼던 이 글은, 과거에도 맞았고 지금은 더 오지게 맞는 내용이라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한 번 더 쓴다.

우리 모두 인생과 직장에서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인생은 피드백이고 인생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가라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이 가장 중요한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에게 물어보면 사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이 사람들을 끈끈하게 본딩해줄 수 있는 건 소통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입으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이걸 참 못 한다. 아니, 어떤 분들은 일부러 안 하는 것 같다. 특히, 내부 소통보단 외부 소통, 외부 소통 중에서도 투자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어떤 분들의 – 우리 포트폴리오 포함 –  커뮤니케이션 점수는 빵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은 잘 아실 텐데, 우린 워낙 많은 투자사가 있어서, 이들의 사업 현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회사를 매달 만나는 비현실적인 방법보단, 이메일로 월간 사업 업데이트를 받고, 이를 통해서 사업의 현황과 건강의 척도를 평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대표님들에게 사업 업데이트를 부탁하는데, 이걸 받는 분들은 징글맞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대부분의 스트롱 대표님들은 이렇게 투자자들에게 월간 사업 업데이트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와 몇 개 회사에 공동 투자한 다른 VC가 “스트롱 포트폴리오는 월간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잘하네요. 그리고 그 내용도 형식적인 보고가 아니라, 대표님의 고민, 생각, 그리고 투명한 회사의 실적을 공유해줘서 너무 좋습니다. 훈련이 잘된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투자자와의 이런 정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일단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들에게 사업 현황을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하는 건 기본이자, 회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의무이다. 이 글을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로 생각하겠지만,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분들도 과연 본인의 투자자들과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라. 안 그런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사소한 문제가 나중에 엄청나게 커지고, 이게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소송으로 가는 것까지 나는 본 적이 있다.

소통이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이렇게 매달 투자자들과 사업 현황을 공유하다 보면, 그냥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빈도를 높이고,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에 원할 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실제로 대부분 그렇다. 투자자는 창업가에게 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에, 창업가는 싫든 좋든 투자자가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돼야 한다. 반대로, 창업가는 본인이 선장인 배에 탄 투자자들이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필요한 게 있으면 투자자에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자정이든 주말이든 투자자는 무조건 연락이 돼야 한다. 다른 VC는 잘 모르겠지만, 스트롱 전체 팀은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이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자주 연락을 안 하는 게 또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이다. 시간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이 부분을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나 VC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무리 서로 친해도 엄청나게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진 않을 것이다.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어쨌든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봐야지 친해지니까. 그래서 월간 업데이트를 하면 매달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매우 좋다. 우리는 이 월간 업데이트를 자세히 읽고, 우리의 피드백과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한다. 그러면 굳이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을 정기적으로 정하고, 포트폴리오의 사업 현황에 대해서 꽤 잘 숙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을 만났는데,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거의 1년 반 전이였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깜짝 놀랐다. 매달 이메일로 소통하다 보니, 거의 매달 만난 것 같았으니.

마지막으로, 투자자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한 가장 실용적인 이유는, 정기적인 소통이 됐다면 회사가 어려울 때 투자자들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개월 동안 사업 업데이트가 없던 대표가 금요일 저녁에 다급하게 연락이 와서 다음 달 나갈 월급이 없다고 하거나, 경쟁사에게 소송을 당했다고 SOS를 치면 우리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투자사이니 당연히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우리도 이 회사가 그동안 뭘 했고, 현황은 어떤지, 그리고 대표님은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했다면, 회사에 현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아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대표는 우리도 우리와 친한 다른 VC에게 선뜻 소개해 주는 게 망설여진다. 다른 VC한테 투자받은 후에 또 이렇게 연락이 잘 안될 텐데, 이건 스트롱과 내가 욕먹을 일이기 때문이다.

뭔가 우리가 대단한 걸 매달 요구할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포트폴리오 대표들에게 요구하는 건 다음과 같다:
1/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매출, UV, MAU 등…)
2/ 영업, 마케팅, 유통, 제조 등 관련해서 특별히 나쁘거나, 좋았던 내용들
3/ 특이 사항
4/ full-time 임직원 수
5/ 지금까지 유치한 총투자 금액
6/ 현재 회사에 남은 cash 상황
7/ 스트롱에게(또는 다른 투자사들) 부탁하고 싶은 내용

이건 솔직히 제대로 된 회사, 제대로 된 대표라면 매달 결산하고 스스로 정리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그냥 이 내용이 정제되지 않은 포맷으로 편안하게 공유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들은 모두 본인들의 투자자들과 월간 업데이트를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걸 적극 권장한다. 한 일 년 이상 꾸준히 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빈도와 질에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고, 더 신뢰받는 대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잠수보단 거절

한국과 미국을 1대1로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문화가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고, 교육 내용과 환경이 다르므로 살아가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다. 그래서 무조건 미국은 좋고, 한국은 나쁘다고 하는 건 정말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나는 요새 무조건 한국은 좋고, 미국은 나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물론, 이 또한 유연하지 못한 사고와 발언이다.

그래도 비즈니스 문화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거절하는 문화다. 상대방이 나에게 뭔가를 간절하게 원하는데, 내가 못 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하기 싫다면, 그냥 거절하면 되는데, 이게 꽤 많은 한국 분에겐 참 어려운가 보다.

내가 못 하는 거면, 그냥 솔직히 내 능력이 안 되거나, 시간이 안 되거나, 뭐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를 – 상대방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나한테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 – 대면서 그냥 못 한다고 하면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한국의 기업에서 일을 해 본 많은 분들이 실은 이것도 힘들어한다.
더 어려운 거절은 내가 할 수 있지만, 그냥 하기 싫을 때이다. 나도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엄청 바쁘거나, 상대방의 부탁을 그냥 들어주기 싫거나, 아니면 그냥 굳이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 싫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부탁을 그냥 들어주기 싫은 경우는, 그분이 미워서라기보단 그냥 잘 모르는 분이 불쑥 연락이 와서 뭔가를 해달라고 할 때다. 나한테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은데 굳이 내가 잘 모르는 분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고, 그냥 여기에 시간을 쓸 바에야 집에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나는 거절을 꽤 잘 한다고 생각한다. 실은 과거엔 나도 남들이 부탁하면 웬만하면 다 들어줬다. 한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는 걸 좀 두려워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보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보단 어느 순간 남이 나에게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 이후론 의식적으로 모든 걸 거절하기 시작했다. 못 하는 건 그냥 못 하므로 못 한다고 하고, 하기 싫은 건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한다고 한다. 이렇게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꽤 많은 분들이 내가 인성이 나쁘고,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상관없다. 심지어 전엔 어떤 분이 뭔가를 부탁했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냥 못 한다고 했다. 그러자 이분은 일정이 안 맞는 줄 알고, 다른 여러 날짜를 제시했는데, 그냥 전부 다 못 한다고 하면서, 시간은 가능한데 내가 하기 싫다고 했다. 그 이후로 이분은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는데, 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 경험상, 오히려 이렇게 대차게 거절하는 게 상대방이나 나를 위해서 가장 좋은 관계 유지 방법이다. 거절하는 사람으로서도 처음엔 불편하고, 거절당하는 사람으로서도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 솔직히 나도 거절을 정말 많이 당하는데, 거절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분이 상할 이유는 전혀 없다 – 결국엔 서로 깔끔하게 교통정리가 되고, 각자의 인생을 살 수 있고, 각자 그냥 move on 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오히려 평생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거절하는 걸 너무 힘들게 생각해서, 아예 상대방의 연락을 피하고 잠수 타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잠수타기는 최악의 한 수이다. 이런 분들은 본인은 ‘원래’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한다고 하는데, 이건 개소리다. 그냥 본인들이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 하거나, 거절하면 상대방이 본인을 안 좋게 생각하는 게 걱정되는 이런 분들의 또 다른 특성은 남이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나도 가끔 이런 분들을 만난다. 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데, 내 성격상 이렇게 연락이 안 되면 나는 계속 연락한다. 끝까지 잠수 타는 분들도 있지만 – 참고로, 나는 이런 사람들은 인간 취급 안 한다 – 대부분 몇 달 뒤에 다시 연락된다. 그리고 왜 갑자기 잠수 탔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은 “바빴어요” , “원래 내가 싫은 소리 못 하잖아요” 또는 “내가요?” 정도이다.

하기 싫으면 그냥 하기 싫다고 해라. 못 하겠으면 그냥 못 한다고 해라. 그리고 만약 거절하는 게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이라면, 아주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해라. 특히 나 같은 사람한텐 그냥 대차게 거절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는 희망을 갖고 계속 귀찮게 하고, 계속 연락할 것이다. 어쨌든 절대로 잠수는 타지 마라.

잠수 타면서 오랫동안 마음이 불안한 것보단, 그냥 거절하고 그때 한순간만 살짝 미안함을 느끼는 게 스트레스 관리에도 훨씬 좋다.

독서와 복리

나는 2020년부터 해마다 50권 이상의 책을 읽는 걸 목표로 세우고, 실제로 5년째 그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올해도, 이 페이스로 계속 간다면 50권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 이전에도 독서를 좋아했지만, 2019년 말에 개인적인 깨달음이 몇 가지 있었고, 독서를 통한 휴식, 독서를 통한 정신 정화, 그리고 독서를 통한 힐링을 해보기로 했다.

나에겐 독서가 잘 맞는다. 이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는 생각으로, 그냥 한 권을 집으면 웬만하면 완독하고 있다. 몇 시간만 한 권을 읽는 데 할애하면, 그 책을 쓴 저자가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공부하고, 분석하고, 느낀 생각과 내용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습득해서 내 지식과 간접 경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일 년에 50권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독서를 해야 하는가? 안 그래도 바쁘고 빡빡한 세상에서 휴식과 힐링을 위한 독서에도 이렇게 50권이라는 정량적인 목표를 세우고, 한 권을 읽을 때마다 그 숫자를 기록하는, 마치 사업 KPI 관리하듯이 해야 하나? 실은 내 와이프도 나에게 비슷한 말을 하는데, 이건 그냥 내 스타일인 것 같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취미를 물어본다면, 선뜻 독서라고 하지 못한다. 취미의 정의 자체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마치 나는 50권을 목표로 설정하고 독서를 숙제 하듯 강제로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최근에 나에게 바쁜 일상에서 독서를 꾸준히, 정기적으로, 그리고 되도록 많이 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 물어봤는데, 나는 독서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첫 번째 법칙은, 독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는 게 아니라, 독서하기 위해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쁜 일상에서 일 년에 책 한 권도 못 읽는다.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는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고 1년, 5년, 10년, 이렇게 세월이 지나다 보면, 마음속의 교양 부재와 머릿속의 멍청함에도 복리가 적용돼서 정말 교양 없고 멍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실은, 독서뿐만 아니라 모든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선,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어쨌든, 나도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독서하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을 만들고 있다.

두 번째, 나는 되도록 주중에 저녁 약속을 안 잡는다. 모든 비즈니스 관련 일정은 업무 시간 중에 잡고, 식사를 해야 하면 웬만하면 점심 약속으로 한다. 저녁 약속을 가급적 안 잡는 습관은 10년 됐는데, 이렇게 하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일 끝나고, 집에 와서 밥 먹고, 이메일 조금 더 하고, 집안일해도,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세 번째, 매일 최소 15분 독서를 한다. 물론, 1시간 하는 경우도 있고, 10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본 원칙은 매일 15분 독서다. 15분은 솔직히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게 일주일, 한 달, 1년, 10년 누적되면서 복리가 적용되면 엄청난 독서량이 된다.

독서를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책을 읽는 속도도 빨라져서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책을 읽다 보니, 이제 독서는 지친 내 영혼과 육체를 힐링하는 루틴이 된 것 같다. 운동도 독서랑 비슷한 선상에 있지만, 운동은 15분이 아니라 최소 1시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녁보단 오전에 해야 하고, 어느 정도 각을 잡고 해야 한다.

복리는 우리 인생 모든 습관과 행동에 적용된다. 독서에도 적용되는 복리의 마법을 모두 느껴보시길.

요즘 아이들의 뷰티 제품 선호도

우리도 소비재에 많이 투자하고, 한국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소비재라서 나는 이 시장 관련 기사나 보고서는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중 좋아하는 리포트 중 하나가 The New Consumer에서 정기적으로 만드는 건데, 최근에 발행한 Beauty 2025 Special Report를 흥미롭게 읽었다. 화장품도 뷰티 시장에서 중요한 카테고리이고, 한국이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분야 중 하나라서 그런지, 한국 화장품도 몇 번 언급된다. 이 보고서에 요즘 아이들인 MZ 세대가 뷰티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에 대해서 조사한 내용이 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실은, 나는 MZ 세대는 X 세대와는 뭔가 매우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뷰티를 바라보는 시각과 거의 비슷하다.

1/ 대부분의 미국 MZ는 본인들의 외모에 신경을 쓴다.(“나는 남들이 내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고, 신경을 쓴다.”)
2/ 대부분의 MZ는 한 달에 한 번 뷰티 제품을 구매하는데, 특히 스킨케어와 헤어케어 제품을 가장 많이, 자주 구매한다.
3/ 미국의 경우 TikTok Shop에서 뷰티 제품이 많이 팔린다. 이미 TikTok Shop은 Sephora보다 더 많은 양의 뷰티 제품을 팔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제품을 처음 구매하는 건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한다.
4/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뷰티 제품은 향수(fragrance)와 한국 화장품이다.
5/ 202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뷰티 관련 단어 중 하나는 “glass skin(도자기 피부)”이다.
6/ 이제 미국 소비자들은 뷰티 제품 구매에서 ‘성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성분보다 더 중요한 건 브랜드이다. 아직도 샤넬이나 디올과 같은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
7/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Z 세대 고객은 뷰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은근히 높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보면, 뷰티 제품에 대해선, 요즘 아이들은 소셜미디어를 맹신하고, 한 번 구매한 제품이 마음에 들면, 계속 이 제품을 구매할 만큼 충성도가 높다. 하지만, Z 세대들에게 뷰티 제품 구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마케팅이 아니라 제품 그 자체가 좋아야 한다. 제품이 좋은 건 기본이고,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꾸준하고 일관된 목소리로 시장과 커뮤니티에 이 좋은 제품을 홍보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 뷰티 제품 영업, 마케팅, 판매가 이젠 정말 더럽게 어려워졌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