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고객 서비스는 왜 좋아질 수 없을까?

얼마 전에 열흘 정도 미국에 다녀왔다. 나는 미국 출장을 가면 동부로 들어가서 서부로 나오거나, 반대로 서부로 들어가서 동부로 나오는데, 미국은 워낙 큰 나라라서 이동하는 게 참 어렵다. 이번에도 미국 내에서만 방문한 곳이 꽤 많고, 땅덩어리가 커서 직행 비행기 노선이 없는 곳도 많아서 미국 내에서만 비행기를 8번 탔다. 이전에는 다양한 항공사를 이용했지만, 대한항공과 제휴되기도 하고 그나마 서비스가 나은 것 같아서 요샌 미국 내에서는 델타만 이용하는데, 이번에 좀 크게 짜증 나는 경험을 했다.

동부에서 출발해서 중부 테네시주 내쉬빌에 오후 1시에 착륙했다. 나는 오후 4시에 여기서 미팅이 있었고, 저녁 8시 비행기로 다시 바로 서부 LA로 가는 일정이었다. 큰 짐이 있어서 이걸 들고 이동하는 게 좀 귀찮았지만, 저녁 8시 비행기에 짐을 체크인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델타에 물어보니 8시 비행기지만 2시에 짐을 체크인해도 된다고 해서 일단 가방은 체크인하고 내쉬빌 시내에서 미팅하고 6시쯤 다시 공항에 왔다. 이때부터 30분 단위로 출발이 계속 지연되면서 결국엔 밤 10시 정도에 LA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됐다. 뭐, 미국 국내 항공은 여러 가지 이유로 취소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이것까진 괜찮았다. 기상 문제로 인해서 취소돼서 자동으로 그다음 날 LA로 가는 항공편 예약이 됐는데,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도 미팅에 늦을 예정이라서, 일단 LA 미팅도 다 취소하고, 내쉬빌에서 예정에 없던 1박을 하게 됐다.

다시 짐을 찾기 위해서 수화물 칸에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들 짐은 모두 다 빙글빙글 돌면서 나왔는데, 유독 내 짐만 안 보여서 확인해 보니, 이미 내 가방은 LA 공항에 도착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내쉬빌 공항 델타 수화물 사무소 직원분에게 LA 공항 수화물 사무소에 연락해서 내일 이 가방을 다시 내쉬빌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맨몸으로 호텔에 체크인했다. 델타 직원분은 다음 날 오전 11시 정도에 가방이 다시 올 것이고, 도착하면 나에게 전화하라는 메모를 시스템 안에 남겨 놨다. 그런데 그다음 날 델타 앱을 통해서 확인해 보니 내 짐은 아직도 LA 공항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델타 내쉬빌 수화물 사무소에도 전화를 해봤고, 델타 고객 서비스 번호로도 전화해 봤지만, 그 누구 와도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고객 서비스 번호는 최소 대기 시간이 90분이었는데, 거의 70분을 기다렸는데 전화가 끊겼다.

너무 답답해서 다시 내쉬빌 공항 수화물 사무소로 갔다. 일단 여기서도 30분 대기 후에 어제와는 다른 직원에게 그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잘 설명한 후 – 예상은 했었지만, 내부 시스템에 내 상황에 대한 그 어떤 내용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음 – 내 가방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본인도 어깨를 쓱 하면서 “LA에 있네요. 이게 왜 내쉬빌로 오는 비행기에 안 실렸을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델타 직원들이 내부 번호로 LA 공항 수화물 사무소에도 계속 전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안 받고, 본인들도 내부적으로 소통이 안 되는 듯했다. 어쨌든, 다음 비행기에 가방을 실어서 꼭 보내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원치 않은 일박을 내쉬빌에서 더했다.

그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다시 확인해 보니, 역시나 내 가방은 LA에 그대로 있었다. 이쯤 되니 더 이상 이 병신 같은 항공사를 믿지 말고 그냥 내가 LA로 직접 날아가서 내 가방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내쉬빌 공항으로 왔고, 수화물 서비스로 가서 역시나 새 담당자에게 내 상황을 다시 설명하고 내 가방을 내쉬빌로 보내지 말고, LA에 그대로 보관하라는 내부 긴급 지시를 해 달라고 세 번이나 이야기했다. LA에 갔는데 가방은 내쉬빌로 출발했으면 정말 델타 직원 싸대기를 때려야 할 판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델타 직원한테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이 불행한 상황이 종료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LA로 가는 직항을 못 타고 미네소타를 경유해서 미네소타에서 LA로 날아가는 동안 하늘에서 와이파이 접속을 한 후에 델타 앱을 확인해 봤다. 앱을 누르면서도 왠지 불안했는데, 앱을 리프레시 하자마자 뭔가 상태가 바뀌었고, 내 가방이 LA에서 내쉬빌로 가는 비행기에 priority booking이 되어 있다는 업데이트가 떴다. 와,,,왜 이런 일이 나한테…항공법상 하늘에서 통화는 금지되어 있어서, 온갖 델타 관련 사이트를 다 뒤지다가 결국엔 델타의 페이스북 페이지 메신저와 연결됐다. 그리고 내가 가장 처음 물어봤던 질문은, “Are you a bot?” 이었다. 다행히도 사람이었고, 다시 한번 내 상황을 최대한 짧게 설명했고, 이 가방 절대로 비행기에 탑승하면 안 되니까 당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가방이 이미 비행기에 들어갔으면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두 번이나 받은 후, 나는 그냥 비행기 안에서 초조하게 아름다운 구름만 보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LA에 도착하자마자 수화물 서비스 지역으로 달려갔는데, 다행히도 꿈에 그리던 내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가방을 찾자마자 다시 델타 고객 서비스 사무실에 들어가서 다시 내 상황을 설명하면서 LA까지의 항공비, 그리고 이 상황 때문에 내가 취소했던 미팅에 대해 보상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본인들은 창구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9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고객서비스로 전화해서 시도해 보라는 아주 성의 없는 답변만 받았다. 성질 같아서는 난리를 치고 싶었지만, 여기서 지랄하면 경찰을 부를 것이라는 걸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알기 때문에 그냥 화를 꾹 참고 그다음 행선지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는 내 가방이 내가 타는 비행기에 실린다는 걸 확인한 후에.

이런 더러운 고객 경험은 항공사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너무 자주 경험하는 흔한 일상이다. 고객 서비스는 정말 좋아질 수 없을까? 힘들게 번 돈을 이렇게 날렸는데,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상식적인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게 당연한 건가?
아니,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지금보단 훨씬 개선될 수 있다. 그런데 안 좋아지는 이유는 그냥 델타의 경영진에서 고객 서비스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회사의 경영진들은 내가 항상 강조하는 자기 회사의 개밥 먹기를 안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같은 일반 고객의 비행 경험을 직접 안 하므로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고, 문제가 발생하면 본인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고객서비스 직원들이 얼마나 고객들을 무시하고 거지 같은 불친절을 제공하는지 모를 것이다. 알면 이런 고객 서비스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거지 같은 서비스에 쓰는 비용도 아깝다고 많은 미국 회사가 요새 AI를 활용해서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나는 이것도 정말 맘에 안 든다. 사람도 제대로 제공할 수 없는 고객 서비스를 과연 기계가 제공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최근에 경험했던 이 상황에서 AI 봇이 나를 얼마큼 도와줄 수 있었을까?

이런 경험을 하고 – 그리고 델타 뿐만 아니라, 미국 Chase 은행에서도 아주 거지 같은 고객 서비스 경험을 많이 했다 – 한국에 돌아오니, 대한항공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공사라는 생각을 했고, 하나은행도 너무 좋은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2 퍼센트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환경에서의 행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에스컬레이터 옆에 계단이 있을 때, 100명 중 2명만 계단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건 그 어떤 나라에서 연구해도 거의 비슷하게 2%라는 수치가 나오는데, 이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게으르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 말엔 동의한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 현상은 인류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것 같다. 우리는 불편한 것보단 편한 것을 항상 선택하는 DNA를 보유하고 있고, 인류의 모든 발전은 – 특히, 기술적인 발전은 – 우리가 더 편하게 살고 일하기 위한 방향으로 최적화 되어있다.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굳이 불편하게 살 필욘 없지 않으냐.

맞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 편하게 할 수 있는걸, 굳이 왜 불편하게 하려고 하는가?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98%를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욕할 순 없다. 오히려 계단을 선택하는 2%의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행동 연구에서 더 재미있는 건, 계단으로 올라가든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든, 100명 모두 다 계단을 이용하는 게 에스컬레이터보단 본인들에게 장기적으로 훨씬 더 좋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건강, 노화, 시력 등을 위해 장기적으론 여러 가지 면에서 몸과 정신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단기적인 편안함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선, 난 이 98%가 게으르다는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럼, 계단을 선택한 2%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편안함보다 불편함을 더 좋아하는 변태들인가? 아마도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인 혜택을 위해서 단기적인 편안함을 잠시 접은, 하기 싫은 일을 일부러 했을 때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잘 아는, 오히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의지가 강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보단 살면서 주위 사람들의 98%가 편안한 방법을 택할 때 이들은 불편함을 택했는데,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큰 보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이 경험을 계속 기억하면서 불편함을 택하는 2%로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편안하게 살려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현대 사회에서 굳이 불편하게 사는 건 좀 그렇지만, 하루에 하나 정도는 일부러 불편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건 할만하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절대로 못 하는데 이 큰 불편함을 무릅쓰고 본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택했고, 나는 이보단 약소하지만, 침대에서는 절대로 핸드폰을 보지 않는 불편함을 택했다. 장기적으론 나에게 좋다는 걸 잘 아니까.

실은 창업가들은 이미 이 2% 안에 들어왔다. 편한 길을 버리고 스스로 불편함을 택했으니까. 사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나는 이 경험이 장기적으로 아주 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오늘부터 하루에 하나씩 편안함보단 불편함을 선택하는 걸 권장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즉각적인 결정

몇 달 전에 우리 내부 미팅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우리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 충분한 데이터의 부족, 확신의 부족 등 –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그다음 주 미팅에서 결론을 내리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나는 그냥 당장 결정하고 끝내자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게 맞는 결정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뭔가 결정했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이 틀리든, 맞든.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결정의 연속 과정이고, 특히나 창업가들은 일반인보다 곱절이나 더 많은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그 결정에 의해서 직접 영향을 받는다. 결정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데 최대한 많이 고민하고,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든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한 후에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론적으론 맞지만, 현실적으론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창업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즉각적인 결정’인데, 아마도 초기 스타트업 창업가가 해야 하는 수많은 결정의 대부분이 그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5%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더 고민하고 생각을 해도, 5% 이상의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시장 조사나 공부에 시간을 더 쓰면, 그나마 없는 옵션들이 모두 다 없어진다. 그래서 창업가에겐 결정의 질보단 결정의 속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빨리 결정하고, 만약에 그 결정이 틀리면, 다시 결정하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 하지만, 줄에서 가급적이면 떨어지지 않는 – 해야 한다. 틀린 결정을 하더라도, 이 결정을 빨리했다면, 그다음 결정을 할 수 있지만, 너무 느린 결정을 했고, 이게 틀렸다면, 해야 할 그다음 결정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MBA 과정 중 Decision Analysis(DA)라는, 결정을 과학적, 통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는데 나도 이 수업을 상당히 재미있게 들었다. 하지만, 빠른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 대표에겐 비추하는 수업이다. 왜냐하면 현장에서는 의사 결정 분석을 하기 위한 인풋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또 즉각적으로 결정하고, 계속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게 한 번 더 결정할 수 있는 옵션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맞는 결정이란 어차피 이 세상에 없다. 오히려 즉각적인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맞는 결정이 되게 운과 실력을 모두 다 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게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정말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걸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즉각적인 결정을 잘 못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너무 신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정을 하는 게 불편하고 거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하고 뭉개는 경우를 나는 너무 많이 봤는데, 이렇게 결정을 미루다가 회사가 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험을 나는 몇 번 해봤기 때문에, 혹시 우리 투자사 대표님이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즉각적인 결정을 하라고 계속 압박하는 편이다. 불편함과 거북함을 무릅쓰고 지금 당장 결정해서 회사를 살리겠는가, 아니면 즉각적인 결정을 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은 조금 더 편하겠지만 회사가 망하는 걸 선택하겠냐고 말하면서. 솔직히 즉각적인 결정을 하지 않으면, 잠시나마 조금 마음은 편하지만, 이로 인해서 회사가 망하면 평생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가 할 수 있는 최악의 결정은 “일주일만 더 두고 보자”이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그렇게 오래 고민해야 하는 결정은 이 세상에 없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결정은 5분 안에 할 수 있다.

흑백요리사, 흑백창업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나는 아직 못 봤다. 아니, 안 봤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고 아마도 앞으로도 안 볼 것 같다. 전 세계적인 이목을 받았던 예능이고, 전 세계적으로 좋아하는 두 가지 감성에 집중해서 나름 성공했던 것 같다. 한국인 특유의 파생적 창의력을 기반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서바이벌 개념을 요리 쪽에 적용한 점과 요리 분야에도 흙수저와 금수저의 개념을 적용해서 이 또한 누구나 다 공감하는 계층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이 참신했다. 참고로,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모두 이런 계층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큰 글로벌 인기와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요리사가 발굴됐다. 이미 유명한 백요리사도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흑요리사들도 많이 발굴됐고, 이들의 식당은 이후에 줄 서서 먹어야 하는 곳이 됐다. 나는 그 어떤 식당도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흑백요리사에 나온 쉐프의 식당은 안 가봤지만, 많은 곳이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건 잘 안다.

근데 이들이 정말로 실력 있는 요리사일까? 정말 맛 있을까? 워낙 주관적인 판단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로 실력 있는 요리사는 이런 프로그램에 나올 필요도 없고, 나올 시간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방송을 통한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고, 요리사로서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한다. 방송 출연할 시간에 메뉴를 하나라도 더 연구하고, 지금 팔고 있는 메뉴를 어떻게 하면 더 저렴하고 더 맛있게 고객들에게 팔 수 있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고객에게 한 접시라도 더 팔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건 나도 건너 들은 이야기라서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흑백요리사 출연을 거절한 쉐프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방송을 통해 유명해지기보단,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미디어를 타기 전에 일단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리사의 기본은 음식의 맛인데, 이건 미디어에 나온다고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진짜 실력 있는 요리사는 이런 프로에 나올 필요도 없고, 나올 시간도 없다. 이들은 그 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해준 고객들을 서빙하고, 매출을 만들고, 본업인 요리를 하고 있다. 이것 만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실은 이 말은 내가 창업가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고, 소셜 미디어나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손에 지문이 닳도록 강조하고 있다. 방송을 타거나, 스타트업 경진 대회에서 입상하거나, Forbes 30 Under 30에 선정되거나, 뭐, 이런 게 중요한게 아니다. 실은, 방송을 심하게 타거나, 국내외 모든 경진대회에 참가하거나, 유명한 미디어의 20 Under 20/30 Under 30/40 Under 40등의 리스트에 올라가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모든 창업가들은 솔직히 본인의 사업은 잘 못 한다.(그리고 이건 스트롱 창업가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내가 아는 창업가들이 본인의 유명세를 자랑하면 나는 속으로 사업이나 똑바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진짜로 사업하는 분들은 이런 방송에도 안 나가고 경진대회에도 안 나간다. 왜? 그냥 그런 거 할 시간이 없다.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서, 하루 24시간도 모자라는데, 언제 딴짓할 시간이 있을까? 진짜배기 창업가들은 그럴 시간에 제품이나 제대로 만들고, 고객이나 한 명 더 만나고, 매출이나 100만 원 더 만들고 있다. 이런 패턴은 스타트업 행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거의 안 가지만, 흔하디흔한 스타트업 행사들 가보면, 항상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해야 할 일들은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 모든 게 결국엔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정말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사업을 좀 먹고,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떨어뜨리고, – “우리 대표는 대회랑 방송만 나가면서 스타트업 대표 놀이만 하네” – 투자자들에게 누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창업가라고 생각한다면, 창업가같이 행동해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우리 제품을 사랑하는 고객을 만들고, 돈을 벌어라.

(꽤 중요한) 투자자와의 소통

전에 내가 ‘투자자와 소통하기’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일하는 분야는 워낙 페이스가 빨라서 과거에 맞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틀릴 수도 있고, 과거에 틀렸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6년 전에 썼던 이 글은, 과거에도 맞았고 지금은 더 오지게 맞는 내용이라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한 번 더 쓴다.

우리 모두 인생과 직장에서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인생은 피드백이고 인생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가라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이 가장 중요한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에게 물어보면 사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이 사람들을 끈끈하게 본딩해줄 수 있는 건 소통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입으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이걸 참 못 한다. 아니, 어떤 분들은 일부러 안 하는 것 같다. 특히, 내부 소통보단 외부 소통, 외부 소통 중에서도 투자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어떤 분들의 – 우리 포트폴리오 포함 –  커뮤니케이션 점수는 빵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은 잘 아실 텐데, 우린 워낙 많은 투자사가 있어서, 이들의 사업 현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회사를 매달 만나는 비현실적인 방법보단, 이메일로 월간 사업 업데이트를 받고, 이를 통해서 사업의 현황과 건강의 척도를 평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대표님들에게 사업 업데이트를 부탁하는데, 이걸 받는 분들은 징글맞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대부분의 스트롱 대표님들은 이렇게 투자자들에게 월간 사업 업데이트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와 몇 개 회사에 공동 투자한 다른 VC가 “스트롱 포트폴리오는 월간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잘하네요. 그리고 그 내용도 형식적인 보고가 아니라, 대표님의 고민, 생각, 그리고 투명한 회사의 실적을 공유해줘서 너무 좋습니다. 훈련이 잘된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투자자와의 이런 정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일단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들에게 사업 현황을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하는 건 기본이자, 회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의무이다. 이 글을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로 생각하겠지만,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분들도 과연 본인의 투자자들과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라. 안 그런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사소한 문제가 나중에 엄청나게 커지고, 이게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소송으로 가는 것까지 나는 본 적이 있다.

소통이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이렇게 매달 투자자들과 사업 현황을 공유하다 보면, 그냥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빈도를 높이고,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에 원할 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실제로 대부분 그렇다. 투자자는 창업가에게 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에, 창업가는 싫든 좋든 투자자가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돼야 한다. 반대로, 창업가는 본인이 선장인 배에 탄 투자자들이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필요한 게 있으면 투자자에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자정이든 주말이든 투자자는 무조건 연락이 돼야 한다. 다른 VC는 잘 모르겠지만, 스트롱 전체 팀은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이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자주 연락을 안 하는 게 또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이다. 시간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이 부분을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나 VC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무리 서로 친해도 엄청나게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진 않을 것이다.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어쨌든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봐야지 친해지니까. 그래서 월간 업데이트를 하면 매달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매우 좋다. 우리는 이 월간 업데이트를 자세히 읽고, 우리의 피드백과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한다. 그러면 굳이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을 정기적으로 정하고, 포트폴리오의 사업 현황에 대해서 꽤 잘 숙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을 만났는데,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거의 1년 반 전이였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깜짝 놀랐다. 매달 이메일로 소통하다 보니, 거의 매달 만난 것 같았으니.

마지막으로, 투자자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한 가장 실용적인 이유는, 정기적인 소통이 됐다면 회사가 어려울 때 투자자들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개월 동안 사업 업데이트가 없던 대표가 금요일 저녁에 다급하게 연락이 와서 다음 달 나갈 월급이 없다고 하거나, 경쟁사에게 소송을 당했다고 SOS를 치면 우리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투자사이니 당연히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우리도 이 회사가 그동안 뭘 했고, 현황은 어떤지, 그리고 대표님은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했다면, 회사에 현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아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대표는 우리도 우리와 친한 다른 VC에게 선뜻 소개해 주는 게 망설여진다. 다른 VC한테 투자받은 후에 또 이렇게 연락이 잘 안될 텐데, 이건 스트롱과 내가 욕먹을 일이기 때문이다.

뭔가 우리가 대단한 걸 매달 요구할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포트폴리오 대표들에게 요구하는 건 다음과 같다:
1/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매출, UV, MAU 등…)
2/ 영업, 마케팅, 유통, 제조 등 관련해서 특별히 나쁘거나, 좋았던 내용들
3/ 특이 사항
4/ full-time 임직원 수
5/ 지금까지 유치한 총투자 금액
6/ 현재 회사에 남은 cash 상황
7/ 스트롱에게(또는 다른 투자사들) 부탁하고 싶은 내용

이건 솔직히 제대로 된 회사, 제대로 된 대표라면 매달 결산하고 스스로 정리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그냥 이 내용이 정제되지 않은 포맷으로 편안하게 공유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들은 모두 본인들의 투자자들과 월간 업데이트를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걸 적극 권장한다. 한 일 년 이상 꾸준히 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빈도와 질에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고, 더 신뢰받는 대표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