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대량 해고와 저렴한 인수

내가 작년부터 창업가, 우리 펀드에 투자하는 LP, 그리고 다른 VC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하지만 가장 대답하기에 자신도 없고 무지했던 질문이 바로 경기에 대한 질문이다. 올해 경기는 어떻게 될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그리고 언제쯤 좋아질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냥 별생각 없이 던지는 질문인데, 이렇게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건 바로 현재 경기가 안 좋고, 미래에도 안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고, 경제 관련 뉴스를 많이 보고 스스로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성향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굳이 내 개인적인 생각을 알고 싶다면, 나는 작년에도 경기는 안 좋았고, 올해도 안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공유한다. 미국의 벤처 시장 숫자를 보면 작년 3사분기부터 약간의 반등이 보이는 것 같지만, 조금 더 자세히 이 수치를 보면 대부분 AI 회사의 거품 펀딩 때문이고, 그 외의 다른 시장은 아직도 크게 좋아지고 있진 않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트렌드를 따라가지만, 그 타이밍은 한 6개월 정도 뒤처지는데, 여기에 자본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금리의 불확실성까지 감안하면 올해도 경기가 크게 좋아질 것 같진 않다. 실은, 나도 한국은행이 금리를 어떻게 할지 매우 궁금하긴 하다. 금리를 낮춰야지 돈이 시장에서 더 원활하게 돌 텐데, 한국은 기업/가계부채가 이미 너무 많아서 이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금리를 낮추면 더 많은 기업과 개인들이 돈을 빌릴 것인데, 이건 장기적으로 또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크로 경기는 남의 돈으로 투자하는 우리 같은 투자자들에겐 중요하지만,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는 그래도 계속 신규 투자를 집행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들은 어차피 5년~7년 후에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고, 우린 7년 후에 제대로 된 가치가 만들어지는 자산에 오늘 할인된 가격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조금 더 큰 관점에서 시장을 보면 매크로 경기와 상관없이 우린 계속 투자해야 하고, 실제로 스트롱은 우리 페이스대로 매달 신규 투자를 1~2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전혀 신경을 안 쓸 순 없다. 아주 조심스럽게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아직 우린 불경기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대표적인 시그널은 (저렴한)M&A와 (대량)해고 소식들이다.

경기가 좋으면 기업들이 돈이 많기 때문에 M&A가 꽤 활발하게 일어나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도 M&A 활동은 활발하게 일어난다. 펀딩을 못 받는 돈 떨어진 스타트업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면 할 수 있는 건 그냥 회사 문 닫거나 아니면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것이다. 이미 투자자들이 있고, 직원들이 있다면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게 그냥 폐업하는 것보단 그나마 좋은 선택이지만, 인수 가격을 네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대부분 그냥 인수기업이 부르는 헐값에 팔린다. 우리도 경험해 봤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헐값에 인수되는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반대로 불경기 때 현금이 많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인재, 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아주 싼값에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경기가 안 좋아질수록 오히려 저렴한 M&A의 빈도와 건수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의 해고 소식은 작년 내내 들려왔는데, 경기가 악화할수록 해고되는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전체 인력의 10% 해고도 많게 느껴졌는데, 올해는 많은 스타트업이 기본 50%의 인력을 해고하고 있다. 우리 투자사를 통해서, 그리고 해외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는 소식에 의하면 이런 대량 해고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더욱더 많아지고 있는데, 이건 확실히 더 큰 불경기에 대비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실은, 이런 내가 틀려서 올해부턴 경기가 좋아지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로 경제 상황이 호전되면 그냥 좋은 거고, 일단 경기는 무조건 안 좋다고 가정하고 사업하는 게 2024년에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상호존중

나는 2000년도 중반에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중소기업 영업/마케팅 부서에서 3년 동안 일했다. 내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뭔가 체계가 잡힌 대기업에서 일 한 경험이었는데, 일은 매우 재미있었고, 이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와 이 회사를 만든 빌게이츠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사심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 팀의 상무님과 이사님이 나에게 항상 잔소리같이 했던 말이 있는데, “너는 왜 맨날 혼자 샌드위치 같은 걸로 밥을 때우냐? 부서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매일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어야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일도 많았고, 아주 바빠서 밥은 그냥 혼자 조용히 먹고 싶었다. 굳이 부서 사람들이랑 우르르 나가서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굳이 밥까지 같이 먹는 것도 싫었다. 또한, 당시에만 해도 한국 기업에는 회식 문화가 뿌리를 깊게 박고 있어서 일주일에 거의 매일 회식하는 걸 보고 팀워크라는 명분으로 술 먹는걸 아주 아주 증오하게 됐다. 하지만,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 매니저들과 1대1 미팅하면 항상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일은 잘하지만, 우리 부서와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야 하고, 당시 내 매니저분들의 머릿속에는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그들과 밥과 술을 같이 먹고,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나는 당시에 과장 나부랭이였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강하게 반박했다. 직장 동료분들이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회사의 이익이라는 공통 목적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인데, 매일 밥을 같이 먹고, 술을 같이 먹는 거랑 일을 잘하는 거랑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항상 매니저들에게 지적받았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내 인사고과에 이런 게 영향을 미쳤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름 일은 잘했고, 실적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팀워크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술 먹는 회식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스트롱은 이 흔한 회식이 아예 없다. 그리고 우린 팀워크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저녁 자리도 없다. 모든 식사는 점심이고, 모든 팀원이 같이 밥 먹는 건 일 년에 두 번 정도밖에 없다. 물론, 이것도 점심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안 친하고, 팀워크가 안 좋은가? 그 반대다. 스트롱의 팀워크는 매우 스트롱한데, 이 스트롱 한 관계는 같이 일하면서 쌓인 신뢰와 존중 때문이지, 서로 형.누나.언니.동생 하면서 술 먹고 밥 먹어서 생긴 팀워크가 아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좋은 팀워크는 정말 중요하다. 팀워크가 없으면 개인적이나 단체로나 일의 능률이 잘 안 오르고, 회사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매우 저하된다. 하지만, 이 팀워크는 같이 술 먹고 밥 먹으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의 존중과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존중과 신뢰는 “우리가 남이가” 하는 그런 쓸데없는 친함과는 전혀 상관없다.(참고로, 회사 사람들은 당연히 남이다). 오히려 너무 개인적으로 친해지면, 한국의 수직적 기업 문화와 나이 처먹은 게 그 어떤 것 보다 중요시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존중이라는 게 만들어질 수가 없다. 직장 상사가 후배.동생이라는 명목하에 “야” , “너”라고 하는 팀원과 어떻게 존중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좋은 팀워크는 상호존중에서 만들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존중하려면 나이, 직급, 성별 등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서로 존댓말을 해야 한다. 아무리 가족이 회사를 같이 만들거나, 친한 친구들이 공동 창업을 해도, 회사와 일과 관련된 곳에서는 무조건 서로 존댓말을 해야 한다. 이 기본적인 게 직장에서 거의 안 지켜지고 있다는 게 놀랍다.

가끔 내가 놀라는 게, 효율과 생산성이 중요하고, 격식이 상대적으로 없는 이 스타트업 현장에서도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서 너무 자주 술 먹고 밥 먹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남들이 본인들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든, 이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 과연 팀워크가 만들어질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팀워크가 오래 갈 수 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이런 분들은 팀원 간에 갈등이 생기면 딱 하나의 지침이 있다. “같이 소주 한잔하면서 으쌰으쌰 해야죠.”가 해결책인데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변명 없는 한 해

나는 신년 계획이나 연간 계획 같은 걸 안 세운다. 내가 하는 모든 건 12개월 동안 고치거나, 완성해야 하는 단기 과제들이 아니고, 평생 노력해서 고치거나 개선해야 하는 일들이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연초에 이런저런 연간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이런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움직이지만, 그래도 다른 개인적인 목표보단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것들이 해마다 조금씩 바뀌는데 올해 내가 많이 집중했던 게 하나 있다. 바로 “이거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되도록 안 하는 거였다.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내가 지금도 가장 많이 듣는 말, 그리고 나도 너무 자주 했던 말이다. “운동 해야 하는데…” , “담배 끊어야 하는데…” , “술 그만 먹어야 하는데…” 등 우린 이런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데, 결국 “뭐 해야 하는데…”라는 말은 변명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후회까지 더해진 말이다. 누구나 다 변명도 싫어하고, 후회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 두 가지 감정이 혼합된 말이라면,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과 말이 아닐까 싶다.

올해 나는 의식적으로 이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새벽에 “오늘도 후회하거나 변명하는 말을 하지 말자. “뭐 해야 하는데…”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지 말자.”를 스스로 되새기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대신, 정말로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거나, 지금 하고 있지 않았다면, 당장 행동으로 옮겨서 시작하거나 또는 아예 하지 않았다.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어릴 적 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정말 오랫동안 못 만났고 카톡이나 전화로만 수년 동안 연락을 하고 있다면, “우리 언제 한 번 만나야 하는데….”라는 말만 수년 동안 하면서 실제로는 안 만나고 있는 경우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도 항상 “언제 한번 봐야 하는데…”라는 말만 하고 안 만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올해는 이런 변명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신, 정말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면, 그 말을 하는 대신, 바로 약속을 잡아서 만났다. 모두 다 가능한 시간을 잡기가 힘들면, 그냥 시간 되는 친구들만 만났고, 이후에 계속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지인들이라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만나고 싶지 않고, 안 만날 사람들이라면 굳이 “아, 우리 언제 한번 봐야지…”라는 실없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내년에도 변명도 안 하고, 후회도 안 하는, 그런 편안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영어 공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블로그에 영어 관련 포스팅을 많이 했는데, 당시에 “영어 좀 한다고 영어 못하는 사람들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니냐?”라는 비판과 이메일을 많이 받아서 몇 년 동안 영어 관련 잔소리를 중단했는데, 오늘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 한다.

어떤 자리에서 회사가 성장할수록 가장 중요한 대표의 자질에 대해 대화했는데, 나는 이 자리에서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스타트업 대표가 영어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규모 펀딩 때문이다. 초기 투자와 시리즈 A 정도까지는 국내 VC들로부터 받을 수 있고, 우리 같이 해외 VC이지만 한국 인력들이 풍부한 곳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어느 정도 규모의 자금까진 대화가 가능한 국내 VC들이 충분히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가 계속 성장을 해서 수백억 원~수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이 자금을 수십 개의 VC가 쪼개서 투자하는 구조가 아니고, 전체 라운드의 50% 이상을 부담할 수 있는 큰 투자자가 필요하다면, 한국 보단 해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계가 아닌 해외 투자자들과 비즈니스에 대해서 자세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유창한 영어가 필수다.

실은 나는 이런 이야기를 11년 전부터 창업가 분들에게 했는데, 당시의 버전은 지금의 버전과 약간 달랐다. 대규모의 투자를 받아야 하고, 이 투자를 여러 개의 VC로부터 나눠서 받는 것 보다 소수의 VC에게 받고 싶다면 아무래도 펀드가 더 크고, 미래의 가능성에 더 용감하게 대규모 자금을 커밋할 수 있고, 한 번 들어간 이후에 계속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는 해외 VC로부터 투자를 받는 게 좋다는 버전은 동일하다. 그런데 당시에는, 혹시 대표이사가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회사의 역사와 비즈니스에 대해서 A부터 Z까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다른 직원을 동반해서 해외 투자자와 미팅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대표가 영어를 못 하면, 영어를 잘 하는 경영진을 채용하라고 했는데, 이제 이 버전을 좀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회사를 책임지고, 사업을 하고, 재무를 책임지고,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대표이사가 직접 영어를 잘해야 한다. 창업자/대표이사만큼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와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회사에 없고, 투자자는 본인들의 돈이 투입될 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미래를 보는지, 어떻게 전략을 만들고 있는지, 어떻게 사람을 채용하고 있는지, 뭐 이런 걸 아주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특히나, 해외 VC에 투자받아야 하는 단계까지 온 회사라면, 수백 원 원 ~ 수천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텐데, 이렇게 큰돈을 투자하면서 내가 누구에게 투자하는지 안 궁금해할 수 없지 않은가.

투자자가 궁금해하는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는 회사의 다른 사람이 전달할 수 없다. 회사를 직접 만들어서 처음부터 경영하고, 지금의 회사를 만든 창업가와 대표만이 제대로 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를 대표가 아닌 영어를 잘하는 다른 임원, 다른 직원, 또는 통역사가 할 수도 없고, 설령 하더라도 그 임팩트는 크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대표가 한글만큼 영어를 잘해야 한다.

우리도 큰 해외 VC와의 관계가 좋기 때문에, 스트롱 투자사들이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오면 해외 VC와 연결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해외 VC를 소개해달라고 하는 스트롱 창업가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항상 두려움과 망설임이 앞서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영어 실력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대표님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영어 잘하세요?” 그러면 대부분 “Writing은 괜찮은데 speaking은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답을 한다. 이 말은 그냥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못하는 대표지만, 수치가 너무 좋다면, 내가 가끔 미팅에 동행해서 통역을 해주는데, 나도 바쁜 사람이라서 항상 이렇게 할 수도 없고, 투자자라면 기존 투자자를 통해서 듣기보단, 창업자와 대표이사로부터 직접 사업에 대해서 자세히 듣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같이 참석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뜻 외국 투자자들 소개를 못 해주고 있다. 아니, 안 해주고 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대표가 성장을 같이 해야 하고, 결국엔 대표가 회사보다 더 많이 성장해서 회사를 품든, 회사가 대표보다 더 성장해서 회사가 대표를 품는다. 회사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대표이사의 영어 공부와 실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모든 스타트업 대표는 열심히 영어 공부하는 걸 적극 권장한다.

재택근무, 사이드잡, 그리고 떨

최근에 미국에 2주 넘게 출장을 갔었다. 한국은 이제 대부분의 직장이 재택근무를 끝냈거나, 그 빈도를 줄이고 있는데 미국은 아직도 많은/대부분 회사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WFH(Work From Home)가 이젠 복지가 아니라 아예 하나의 문화와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고 채용 공고를 보면 “3-2” , “4-1”과 같은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는데, 3일 출근-2일 재택, 4일 출근-하루 재택, 뭐 대략 이런 의미이다.

스트롱도 팬데믹 기간에는 재택근무를 했고, 이땐 어쩔 수 없이 WFH의 기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재택근무를 옵션으로 하고 출근을 기본으로 바꿨다. 이젠 기본적으로 모두 다 출근하고, 상황에 따라서 재택근무 하는 체제로 돌아왔는데, 생산성이나 집중력 면에서 훨씬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건 그 어떠한 데이터를 참고한 적도 없는, 100%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재택근무를 회사의 기본방침으로 바꾸면서 미국 회사들의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엔 미국 전체의 생산성 문제로 확산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미국 출장에서 나는 6개의 도시를 방문하면서 많은 회사를 만났고, 서부/중부/동부 직장인들의 업무 패턴을 살짝 볼 수 있는 경험을 했는데, 지역, 나이, 직군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발견한 요소는 ‘사이드잡’이다.

모든 미국의 직장인들이 본인들이 월급을 받는 풀타임 직업 외에 사이드잡 한두 개는 기본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이건 고액연봉자들도 마찬가지다. 돈은 풀타임 직장에서 벌고, 평소에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한두 개씩 몰래 하고 있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게 재택근무이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서, 꼭 해야 해서 사이드잡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태도는 많은 걸 말해주고, 이런 직원들이 있는 회사의 장래는 그렇게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일하므로 언제든지 그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없이 사이드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은, 이 분야에서도 좋은 스타트업들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직장인들을 위한 사이드잡/긱플랫폼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쉬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회사에 나오면 전반적인 분위기와 peer pressure가 있어서 적당한 선에서 휴식을 취하지만, 집에서 혼자 일하면 마음대로 놀고, 쉴 수가 있다. 여기에 이번에 내가 또 목격했던 건, 빠르게 합법화되는 마리화나인데, 상당히 많은 직장인들이 집에서 마리화나를 피는 걸 봤다. 중독성이 담배보단 약하다곤 하지만, 마리화나를 핀 후에, 이 정신으로 다시 바로 업무로 돌아가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너무 많은 직장인들의 농땡이, 사이드잡, 그리고 레크리에이셔널 마리화나는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인고, 내가 이야기했던 어떤 CEO들은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재택근무 옵션이 없으면 요새 젊은 친구들 채용하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옵션을 제공해야 하고, 이제 재택근무는 옵션이 아니라 영구적인 고용 형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미국 대표들이 매우 많았다. 이분들 중 일부는 오히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와 같이 tech를 이끄는 대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완전히 없애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 말이 anti-근로자 발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한국같이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없앤 국가들이 생산성의 경주에서 이번 기회에 미국을 뛰어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