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공유경제

나는 몇 년 전부터 집에 있는 시간에는 책을 많이 읽기로 했고, 가능하면 매일 10분이라도 책을 읽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종이책이 집에 쌓이는 게 싫어서 전자책을 몇 년간 읽다가 국민도서앱 플라이북과 도서 공유/대여서비스 국민도서관에 투자한 이후로는 전자책을 끊고 종이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도부터 해마다 책을 50권 이상 읽고 있다.

이걸 아는 분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보는 건, 이 많은 책을 어디서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인데, 실은 우리 집에는 책이 거의 없다. 나는 책을 안 산지 이미 수년이 됐고, 모든 책을 빌려본다. 국민도서관을 주로 이용하고, 책을 반납한 후 며칠간의 대여불가능 기간에는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본다.

가끔은 도서관 가는 게 귀찮고, 국민도서관에도 원하는 책이 없을 때가 많지만, 내 과거 경험에 의하면 한 번 읽은 책은 웬만하면 다시 안 보기 때문에 종이책을 구매하면 결국엔 쓰레기가 된다. 대학교와 대학원 교재를 무슨 가보같이 책장에 보관했었고, 언젠가는 이 책들을 참고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고, 최신 내용은 핸드폰으로 검색하면 되기 때문에 모든 종이책은 애물단지가 됐다. 물론, 서재를 꾸민다면 아주 훌륭한 디스플레이용 보물이 되겠지만 나는 이런 거엔 별로 관심이 없다.

책을 안 사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이렇게 읽히지 않고 있는 책들이 사방에 널려있는데 굳이 같은 책을 또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사면, 종이책을 계속 출판해야 하고, 그러면 나무를 죽여서 환경을 파괴하는 ESG 차원의 이야기까진 가지도 않겠다. 나도 이런 환경을 생각하면서 책을 구매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굳이 있는걸 또 사는 건 여러모로 봤을 때 낭비이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평생 책은 사지 않고 빌려서 볼 생각이다.

책을 이렇게 대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유경제와 공유서비스에 대해서 요새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미 주변에 널려 있고, 충분히 사용되고 있지 않은 것들이 우리 주위엔 꽤 많다. 책이 대표적이고 내가 요새 매일 애용하는 킥보드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킥보드를 하나 살까 생각했는데, 우리 투자사 지바이크와 같은 공유 킥보드가 서울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냥 이런 공유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이용료도 그렇지만, 소위 말하는 Total Cost of Ownership 관점에서)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차는 무조건 소유하는 개념이었지만, 여러 통계에 의하면 자가용은 도로보단 주차장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듯이, 차는 소유보단 대중교통같이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게 여러모로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동차를 필요한 시간만큼 빌리는 공유차량 서비스가 점점 더 인기가 많고, 우버와 같은 공유 택시 서비스 또한 이젠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한지 꽤 됐다. 안타까운 건, 한국에서는 공유차량이나 공유택시 서비스가 불법이라는 점이다.)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이 세상 모든 물건은 사는 것 보단, 공유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고 환경에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심리가 많이 다르긴 하다. 위에서 말 한 자동차를 예시로 들어보면, 나같이 자동차를 단순한 교통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굳이 살 필요가 없다. 도로에 널린 게 75%~80% 텅 빈 자동차인데, 이렇게 남는 캐파를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갈 때 더 저렴하게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과시의 목적이나 본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상품으로 생각한다면 공유 보단 소유가 정답이다. 그리고 긴급하게 필요할 때 바로 사용하기 위한 편리성이 중요한 분들에게도 공유 보단 소유가 정답이다.

공유냐 소유냐. 이건 어떻게 보면 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지만,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공유 경제를 실현했으면 한다. 인간에게도 좋고, 지구에도 좋고, 모든 면에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You Only Die Once

코로나가 시작했던 202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굉장히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에서도 워낙 많이 쓰는 말이라서, 무슨 말인지는 누구나 다 알겠지만, 그 의미 자체는 살짝 왜곡된 것 같긴하다. 원래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살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잡고 최선을 다하자는 긍정적인 의미인데, 요샌 그냥 “인생 뭐 있겠냐”라는 의미의, 어쩌면 그냥 뒷감당은 생각 안 하고 대책없이 막 나가자는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걸 많이 본다.

특히나 재정적으로 부담하기 힘든 비싼 차, 명품 등의 물건을 구입하고 자신을 정당화할 때 너도나도 너무 많이 “욜로!”를 외치는 걸 봤고 – 실제로 나는 백화점 명품 가게 앞에서 욜로를 외치고 카드를 긁는 젊은 커플을 본 적이 있다 – 없는 돈을 나중에 어디서 구할지에 대한 스트레스를 일시적이나마 잊기 위해서 “욜로!”를 외치는 걸 봤다. 다행히 내 주변 친한 분 중 이런 욜로족은 없지만, 능력이 안 되는 30대 욜로족이 한국에 굉장히 많다는 소식은 미디어를 통해서 자주 듣는다.

그때 당시엔 기분이 좋고, 무리해서 구매한걸 볼 때마다 본인이 너무 잘났고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우쭐할 수 있을진 몰라도, 이걸 나중에 수습하는 과정은 지옥 같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 긴 인생을 살다 보면, 인생은 욜로가 아니라 요도(YODO=You Only Die Once)라는걸 깨달을 것이다.

인생 한 번만 사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인생은 매일, 매 순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사는 인생인데 매 순간이 괴로우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대신, 죽는 건 딱 한 번 죽는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살아야 하는 인생을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딱 한 번만 죽는 인생이니 죽을 때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정신 좀 차리면 좋겠다.

몸은 기억한다

코비드19 기간 동안 우리 사무실인 구글캠퍼스가 문을 닫았다가 올해 초에 다시 문을 열었고, 이후부터 나는 공유킥보드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집에서 사무실 거리도 가깝고, 버스나 킥보드나 가격도 비슷하고, 킥보드를 타는 게 더 상쾌하고, 나름 ESG 가치에 공헌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기 때문이다(물론, 공유킥보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나도 빨리 제대로 된 법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일인이다). 하루에 최소 한 번은 타기 때문에, 그리고 벌금도 냈기 때문에, 개인 헬멧도 구비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밤거리에 킥보드를 타고 가는 중, 인도의 울퉁불퉁한 곳에 걸려서 한 1.5M 정도 공중에서 날랐고, 헬멧을 쓴 머리로 떨어지지 않고 얼굴 쪽으로 착지하면서 얼굴, 손, 팔 부위를 다쳤다. 버스 정류장 쪽에서 넘어졌는데, 너무 순간적이라서 솔직히 나도 어떻게 날랐는진 잘 기억을 못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던 분들이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괜찮냐고 물어보는 걸 보면, 꽤 크게 넘어졌던 것 같다.

이젠 상처도 다 아물고 완전히 회복했고, 나는 다시 킥보드를 타고 출퇴근하고, 강남쪽 미팅에 참석하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정말 정말 조심스럽게 탄다는 점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무조건 내려서 손으로 끌고 가고, 무리하게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지도 않고, 땅이 고르지 않으면 서행하고, 사고 전과는 많이 다른 서행운행과 안전운행을 한다. 미팅 시간이 간당간당하면, 전에는 엄청나게 밟으면서 골목길로 갔는데, 이젠 그냥 천천히 큰길 위주로 간다.

왜냐하면, 떨어졌을 때의 고통과 이후 상처가 회복하는 기간의 고통과 불편함을 머리와 몸이 모두 다 기억하기 때문인 것 같다. 머리는 과속하고 싶어도, 몸이 고통을 기억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게 운행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업이나 일도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배운 지식도 유용하지만, 이걸 실전에 적용해 봐야지만 그 지식이 내 것이 된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든 작든 창업부터 엑싯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경험해본 분들은 일하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은 분들과는 큰 차이가 난다는 걸 나는 자주 느낀다. 옆에서 누가 성공하는 걸 보거나, 책에서 읽은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했고, 이걸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패한 창업가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성공하진 못했지만, 본인이 직접 모든걸 해봤기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사업이 흘러가면 몸이 그걸 기억하는 걸 자주 봤다.

나도 킥보드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조심해야 하는 걸 알고, 그래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헬멧을 착용하고 킥보드를 탔지만, 결국엔 넘어지고 다친 후에 몸이 기억하니까, 정말로 위험하다는 걸 알고, 조심하고 있다.

결국 모든 걸 직접 해보고, 머릿속 지식이 몸의 경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탈중앙화 vs. 중앙화

전에 내가 Web 2.5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글의 연장선상의 내용이다. 중앙화된 기술이나 조직은 말 그대로 모든 의사결정권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이 중앙에 있는 소수의 조직에는 주로 그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거나, 돈이 많거나, 또는 힘이 세거나 등, 특정 능력이나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이들이 모두를 위한 결정을 한다. 중앙 조직이 항상 모두를 위한 이성적이고 올바른 결정을 해서, 모두를 위한 최상의 결과를 항상 만들 수 있다면, 이런 중앙화된 조직이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이와 매우 다르다. 중앙화된 조직이 내린 결정은 주로 이들이 포함된 더 큰 사회의 모든 조직원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 결정이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칠 다수가 아닌, 소수가 항상 결정한다는 게 중앙화된 조직의 단점이자 결점이다.

탈중앙화된 기술이나 조직은 이와 반대로 결정권이 소수가 있는 중앙이 아닌, 다수가 있는 조직의 가장자리에 있다. 이러한 구조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조직의 결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다수가 직접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이렇게 중앙화된 조직과 탈중앙화된 조직을 비교해보면, 자연스럽게 탈중앙화된 조직이 더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누구나 다 본인이 속한 조직에 대한 오너십을 갖는 건 중요하고, 그 오너십을 가진 사람들이 조직의 다수를 위한 결정을 하는 구조이니까. 하지만, 이 개념을 현실에 적용해보면, 단점 또한 많이 보이기 때문에 아직 탈중앙화된 조직은 현실보단 이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게 된다.

적절한 예시일진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가장 민감하고 논쟁의 소지가 큰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한국은 집 소유자보다 세입자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 만약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100% 탈중앙화 되어 있다면, 다수인 세입자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칠 부동산 정책을 세입자들이 결정할 확률이 높고, 이렇게 하면 세입자들에게 유리한 법과 정책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게 맞는 정책일까? 소유자들은 소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불공평하게 피해를 볼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아마도 어떤 당이 정권을 잡냐에 따라서 이런 부동산 정책도 항상 바뀌고, 가끔은 소유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만들어지고, 가끔은 세입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전에 말했듯이, 중앙화와 탈중앙화의 양상을 모두 갖고, 극과 극에 있는 이 두 개의 개념을 최대한 잘 조화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가장 잘 보이는 게 국가가 아닐까 싶다.

오히려 가장 현실성이 있는 조직은 Web 2.5 개념의 CDO(Centralized Dependent Organization)가 아닐까 싶다.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중앙에 있는 형태의 조직인데, 이런 형태라면 조직과 다수를 위한 가장 괜찮은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꾸준함이 이긴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이사 온 지 거의 7년이 됐고, 지금 사는 아파트 지하의 헬스클럽에서 7년째 운동하고 있다. 월요일 ~ 일요일, 1주일 7일, 1년 365일, 매일 운동하고 싶지만, 이건 정말 힘들고,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4번은 헬스장에 출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무리하지 않고 매번 1시간씩, 조금 더 많이 하면 1시간 15분 정도만 운동한다.

미국에서도 Gold’s Gym을 꾸준히 다녔는데, 이렇게 한 곳에서 오랫동안 운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되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자주 보는 현상은 연초에 몰리는 엄청난 운동 인구이다. 전에 어떤 기사에서 읽었는데, 연초에 세우는 새해 결심/목표 중 운동과 다이어트는 항상 탑 3에 드는데, 이걸 증명하듯 1월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운동시설에 몰린다. 이 기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데, 길면 3월, 조금 빠르면 2월부터 이런 뉴페이스는 더 이상 안 보인다.
어떤 분들은 한 달에 2번 정도 불규칙적으로 운동하러 온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한 번 운동할 때 정말 미친 듯이 한다. 내가 봐도 저렇게 운동하면 다칠 정도로 몸에 무리를 주면서 운동하고, 한 번 오면 3시간 정도 운동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미친 듯이 운동하면, 이후 아주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다시 나타나서 또 미친 듯이 운동한다. 이렇게 운동하면 몸이 좋아지긴커녕, 다칠 확률이 훨씬 높다.
어떤 분들은 꾸준히 하다가, 사라지는데, 그러다가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헬스장에 출근한다. 나한테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는 이런 분 중에 처음에는 내가 못 알아봤던 분들이 꽤 많다. 그동안 몸이 너무 불어서, 내가 못 알아봤던 것이다. 몇 달 바짝 운동하면, 예전 몸매가 나오는데, 그러다가 다시 안 보이고, 또 몇 개월 후에 다시 보면 몸이 완전히 망가져 있고, 이걸 반복하는 분들도 많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엔 인생 모든 일의 성공은 꾸준함에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선 운동을 예로 들었지만, 공부, 어학, 일, 기술, 운동 등, 모든 건 조금씩, 아주 꾸준히 하면 누구나 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고, 여기서 말하는 수준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미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공유한 강미정이라는 동화작가의 ‘아주 작은 일’이라는 시가 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주일을 계속하면 성실한 것입니다.
한 달을 계속 한다면 신의가 있는 것입니다.
일 년을 계속 한다면 생활이 변할 것입니다.
십 년을 계속 한다면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큰 일
아주 작은 일을 계속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시작은 누구나 다 미비하고 느리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모든 일에서 이길 수 있다. ‘뚝심‘이라는 이전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달리면 얼마 못 가서 토하고 쓰러진다. 이렇게 쓰러지면, 어쩌면 다시는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 물론, 초반에 전속력으로 달리면, 남들보다 더 빨리 갈 것이고, 이땐 엄청 빠르다고 온갖 칭송을 다 받을 것이지만, 장기전에서는 절대로 승리할 수가 없다.

작은 일과 꾸준함은 모든 걸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아주 작은 일이란,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러 가는 습관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