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이 남자 – Stan Van Gundy

LA LakersOrlando Magic을 4-1로 대파하면서 2009년 NBA Championship을 이겼다.도무지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밑겨지지 않았던 Kobe Bryant의 화려한 플레이, 그의 플레이를 받쳐주던 Pau Gasol 그리고 NBA 최고의 명장으로 알려진 Phil Jackson 감독에 모두가 현혹되어 있던 도중 Orlando의 Stan Van Gundy 코치가 쓸쓸하게 코트를 퇴장하는 뒷모습을 본 사람은 몇 안될거다.

Van Gundy 감독은 2009 NBA Finals 전에는 대중한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통상 야구 감독들은 팀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덕아웃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고, 풋볼 감독들은 헬멧과 팀 jersey를 여러겹 겹쳐서 입는다. 농구 감독들만이 본인들이 입고 싶은 옷을 코트에서 입을 수 있어서 많은 농구 감독들이 저만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즐기는걸 볼 수 있다. 축구감독들도 비슷하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딩크 감독 또한 명품 양복과 화려한 넥타이로 한국 팬들에게 친근하다. New York Knicks/LA Lakers/Miami Heats를 24년 동안 지휘하던 Pat Riley 감독은 마치 패션 잡지 1면에서 뛰어나온것과 같은 멋진 양복들과 기름칠한 머리로 유명하고, Lakers를 승리로 이끈 Phil Jackson 감독 또한 본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헤어스타일과 패션에 계속 변화를 주는걸로 유명하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헷갈릴 염려가 전혀 없는’ 우리의 Van Gundy 감독이 있다. 양복은 커녕 허름한 잠바때기를 입은 볼품없이 작은 키와 통통한 체격은 처음 보는 사람으로 인해 “야, 저 아저씨는 뭐야?”라는 질문을 유발시킨다. 멋이라고는 손끝만큼도 부릴 줄 모르고, 경기가 끝날 즈음에는 거의 엉켜있다시피한 머리는 한번도 손질을 하지 않는거 같다.그래도 이 아저씨의 투박하고 솔직담백한 스타일은 Lakers (Kobe Bryant)와 Cavaliers (Lebron James)의 결승을 은근히 바라던 사람들마저 NBA 결승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 하고 있고 높은 시청률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Stan Van Gundy 감독을 보고 있으면 같은 서민의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Van Gundy 아저씨는 NBA 감독이라기 보다는 마치 월마트의 상점 매니저나 중학교 교장과도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농구 실적을 보면 꽤 놀랄거다. NBA 팀 코치로써는 올해가 5번째 season인데, 349개 경기 중 223 승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실망스럽게 4-1로 Championship은 졌지만 주위 동료 코치들과 농구 전문가들은 Van Gundy 감독이 NBA에서 가장 과소평가되었지만, 성공적인 감독이라고 한다. 또한가지 재미있는건 Van Gundy 감독의 경기 종류 후 인터뷰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그냥 사전에 준비된 평범한 멘트들을 하지만, 이 아저씨는 항상 솔직담백하고 엉뚱한 말들을 한다. 본인의 코칭 방법이나 전략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주로 선수들을 칭찬하고,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올 초 인터뷰에서 그는 아내인 Kim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와이프가 항상 옆에서 잘해주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거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또한, 동부 컨퍼런스에서 필라델피아를 이긴 후 인터뷰에서는 최근에 심장 수술을 하신 삼촌한테 아주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나의 기억에 가장 남는 인터뷰 내용은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Cleveland Cavaliers와의 경기 중 하나였던거 같다. 한 기자가 “오늘 코트에서 재미있었나요?”라고 물어보니, 아주 황당하고 한심한듯한 눈치룰 주면서 “재미? 이사람아…재미는 농구 경기를 보는 당신들을 위한거지. 여기서 시합하는 사람들은 x뺑이 치고 있었지. 당연히 재미없었지…우리가 졌는데!”

뭐, 혹자는 이미지 메이킹이니 다 연출이니 라는 말들을 하는데 과연 이런 방법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거 말고도 충분히 많은 방법이 있을텐데…

잠시 기아를 바꾸고, Corporate America를 자세히 보면, 농구 감독들과 CEO들 사이에 비슷한 트렌드를 목격할 수 있다. 옷 잘입고, 미디어 노출을 즐기며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CEO들이 있는가 하면, 대중 앞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아주 완벽하게 처리하면서 내실을 추구하는 CEO들이 있다. 전자의 예를 굳이 들자면 Oracle의 망나니 CEO Larry Ellison이 그 케이스이고 (물론, 그렇다고 일을 못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후자는 HPMark Hurd를 들 수 있다. Mark Hurd는 병적으로 미디어와 언론을 피하면서 할일만 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있다. 자선 골프 행사도 참석을 안하고 (참고로, 시간이 너무 많이 허비된다고 Mark Hurd는 골프를 아예 안친다) 골프 치는 시간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매우 가정적인 CEO이기도 하다. 이런 그를 언론에서는 그다지 달갑게 보지만은 않지만 Hurd 사장은 그거 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거 같다. 남들이 뭐라하던 본인은 먹여살려야할 직원들과 직원들의 식구들이 있고 어차피 짧은 인생을 쓰잘데기 없는 부수적인 일들에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게 본인의 의견이다. 어떻게 보면 마치 Orlando Magic의 Stan Van Gundy 감독과 비슷한것도 같다.

나도 한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CEO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리고 CEO들은 PR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고, 이미지 메이킹에 투자하고 전반적으로 내가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전부 다 인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아주 최근까지도 나는 많은 인터뷰를 하고 싶어했고, 뮤직쉐이크도 되도록이면 많은 행사에서 발표하고 많은 언론을 통해서 보도를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되었다. PR과 언론 다 좋지만, 기업한테 가장 중요한거는 “매출”과 “수익”이다. 이 밑에 Softbank관련된 글에 언급된 수많은 회사들이 얼마나 많이 언론에 소개되었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는가…그렇지만 그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 갔을까? 그렇게 껍대기에 투자할 시간에 내실을 다지고 비즈니스에 집중을 했다면 결과는 약간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새 나는 왠만하면 이제 컨퍼런스나 행사에서 speaker 자리를 피하고 있고, 언론사 인터뷰도 거절하고 있다 (물론 그다지 많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ㅎㅎ). 지금 우리한테는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럴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고객한테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쓰고 business의 기초를 다지는게 중요하다.

NBA 결승전을 보면서 농구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패자인 Magic의 Van Gundy 감독을 보면서 많은걸 배웠던 소중한 1주일이었다. Stan Van Gundy – You are da MAN!

이 남자 – Harry J. Wilson

미국과 전세계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고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General Motors가 6월1일 부로 파산 보호 신청을 하였다. 어떻게 이 거대한 제조업체가 망했는지 나는 아직도 좀 어이가 없는데 돈도 못 벌면서 쓸데없이 Transformers 영화에 돈을 갖다 붙는거 보고 알아봤어야 했다.

오바마 정부가 GM을 살리려고 형성한 Auto Team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사실은 없다. 전 사모펀드 투자자였던 Steven Rattner가 Auto Task Force를 리드하고 있으며, 숫자에 관해서는 천재들인 industry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다. 특이한 사실은, Rattner씨 팀의 실제 업무를 총괄하는 인물은 37살의 Harry J. Wilson이라는 젊은이라는 점이다. 37살이면 (아마도 미국 나이이니까 한국나이로 치면 39살이겠지? 그래도 젊긴 젊은거다..) 나랑 4살 차이인데 어린 나이에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하는거 같다.이 아저씨의 백그라운드를 조금 조사해보면…하버드 학부와 MBA 출신이고, 그동안 줄곳 금융업계에서종사를 하다가 (Blackstone Group과 Goldman Sachs에 잠깐씩 일하다가 Silver Point Capital이라는헷지 펀드에서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번 모양이다)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와이프와 애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은퇴하였다.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세계 경제의 몰락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2009년 1월 31일날 Steve Rattner한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메일의 내용은 자동차 산업이 밀집해 있는 디트로이트를 구조조정하는걸 직접 도와주고 싶으며, 그동안 걸어왔던 커리어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뛸 자신이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나도이 이메일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매우 감동적이고 스마트하게 썼을거다. Wilson 씨에 대해서 한번도 못 들어봤던 Rattner씨는이 이메일을 보고 감명을 깊게 받았으며 Auto Team 조인하는걸 승락하였다.

Rattner씨로부터 고용된 후 3월13일날 Wilson 씨는 주위 친구들과 일하면서 만났었던 지인들한테 Auto Task Force의 내용과 구인 이메일을 돌렸으며, 이후 짧지만 강도높은 인터뷰를 통해서 Rattner씨와 Wilson씨는 오바마 정부의 자동차 팀을 완성할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력들을 채용하기 시작하였다. 각 팀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Matthew Feldman과 같은 유명한 파산/구조조정 변호사를 비롯하여 아이비 리그 학부를 갖 졸업하고 디즈니사에서 2년동안 인턴을 한 Clay Calhoon과 같은 어린 친구도 있다고 한다.

정부를 위해서 일하는건 굉장히 매력이 없다고 나는 항상 생각을 해왔다. 연봉이 너무 짜다는게 가장 큰 이유이고 실제 기업의 operation을 볼 수 없다는게 또 한가지 이유인데 그래도 Auto Task Force가 담당하는 이 정도 규모의 일은 금융에 관심있는 남자로써는 누구나 한번 정도는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이 아닐까 싶다. GM과 같이 복잡하고 큰 회사의 파산 절차를 옆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파산 보호 신청을 한 회사를 다시 내 손으로 개선 시킨 후 회사를 살린다…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고, 애국심이라고 할까…어떠한 사명감이 없다면 힘든일일거 같네.

Fortune 500 미국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 탄생

테스토스테론으로 똘똘 무장한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Corporate America를 eBay의 Meg Whitman, HP의 Carly Fiorina, Pepsi의 Indra Nooyi와 같이꾿꾿하게 지키던 Xerox의 Anne Mulcahy가 몇일전에 은퇴를 발표하였단. 후임 CEO는 아직 바깥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Anne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Ursula Burns라는 흑인 여성이다. 미국 기업의 CEO 중 흑인이 거의 없는건 알고 있었지만 (남성 or 여성), Ursula Burn가 Fortune 500 기업 중 미국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라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넘기위해서 이 흑인 여성이 얼마나 힘들게, 그리고 열심히 노력을 했을지 조금이나마 상상이 간다.

Annu Mulcahy는 33년 전 Xerox에서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0년 5월에 당시 CEO Paul Allaire가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교체되면서, 2001년 8월에 Xerox의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을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Anne Mulcahy가 누구지? Xerox 내부에 있던 사람인가?”를 물을 정도로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미국 여성이었다. 물론,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CEO가 되었겠지만…Anny Mulcahy가 새로 취임하였을 당시 Xerox는 내/외부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밖으로는 일본의 경쟁사들이 계속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훔쳐가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회계 부정으로 인해서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큰 벌금을 물었다. 그렇지만, Mulcahy 여사는 조용하고 꾸준히 회사의 전략을 잘 실행해서 취임 두번째 해부터는 부채를 줄이고 새로운 제품군들을 성공적으로 출시해서 이제는 해마다 약 1조 2천억원의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Mulcahy가 손댄게 전부 다 성공한거는 아니다. 해외 시장 진출이 예상하였던거보다는 잘 되지 않았고, 현재 Xerox의 주가도 Mulcahy가 취임하였을때보다 썩 좋아지지는 않았다.

Burns 신임 사장 또한 Mulcahy여사같이 Xerox 내부에서 실력을 닦은 내부인력이다. Columbia 대학에서 engineering degree를 받고, 엔지니어로 Xerxo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Xerox의 굵직굵직한 operation들을 담당하면서 서서히 주위 동료들로 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Paul Allaire의 특수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 engineering에서 management로 전환을 하면서 corporate ladder를 지금까지 꾸준히 올라왔다.

앞으로 할일이 많은 회사에, 할일이 더욱 더 많은 시점에 취임하게 된 이 흑인 여성 CEO의 활약이 기대가 된다.

Spain II – Las Palmas de Gran Canaria

1984년, 머리털 나고 난생 처음 해외로 나갈 기회가 생겼다. 아버지가 그 당시 수산회사에서 근무하고 계셨는데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것이다. 그 당시 해외라고 하면 무조건 “해외 = 미국” 이어서, 나도 당연히 미국으로 가는줄 알았다. 그런데 왠말…미국이 아니라 스페인이란다. 스.페.인.?? 스페인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지? 투우의 나라?

하여튼 2년 발령을 기약으로 우리 가족 4명은 (엄마,아빠,누나,나) 거의 20시간의 비행끝에 머나먼 유럽의 스페인으로 이사를 가게되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스페인 본토도 아니고 스페인령의 작은 Las Palmas라는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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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Palmas는 Las Islas Canarias (카나리아 섬들)라는 7개의 섬으로 구성된 스페인령 군도 중 하나인 Gran Canaria섬의 도시이자 수도이다. 스페인령이지만, 카나리아 섬들은 오히려 스페인 본토보다 아프리카에서 더 가깝다. 정확한 위치는 대서양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에서 약 210km 정도 떨어져 있고, 총 인구가 약 800,000명 (우연히도 스페인 전체 실직자 수와도 일치한다 ㅋ) 정도인데 요즘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 당시에는 한국인들도 꽤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와 같이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작은 섬에 deep sea fishing 한국 회사들 (동원수산, 오양수산, 사조참치 등등…)의 유라프리카 본부가 있기 때문이다. Deep sea fishing이라고 하면 주로 참치, 오징어 그리고 대하 (왕새우)를 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곳이 바로 이 Las Palmas라는 섬인데 생각해보면 틀린말도 아니다. 처음에 우리 가족이 라스 (보통 한국사람들은 그냥 줄여서 “라스”라고들 한다)에 2년 계획으로 갔던게, 1년씩 계속 늘어나면서 5년반이 되었는데 이 5년반동안 내내 나는 수영빤쓰 하나 입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 바로 앞이 바닷가라서, 그냥 수영복 입은채로 바다에 들어갔다가 다시 집에 오고…학교 안가는 날이면 매일 이 사이클을 반복을 하곤 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기미, 반점 때문에 햇빛을 꺼려하는거와는 달리 나는 해만 나면 LA에서 항상 웃통을 벗고 썬탠을 즐기는 편이다.

이 작은 섬에서 5년반동안의 생활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순간들이었다. 현재의 생활을 제외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를 뽑자면 라스팔마스에서 살았던 5년반과 군대시절 (용산 카투사 시절)인데 스트롱 벤처스의 partner in crime인 John Nahm과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철이가 다 이때 같이 라스에서 코흘리면서 놀았던 친구들이다. 지상 최고의 날씨, 세계 최고의 음식 (스페인 음식도 맛좋지만, 섬나라 음식은 더욱 더 맛있고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훈훈한 인심 그리고 낙천적인 사람들…유럽 많은 나라를 여행하였지만, 라스팔마스같이 좋은 기억만 남는 곳은 없는거 같다.

실은 신혼여행을 라스팔마스로 가려고 했다. 지현이한테도 남편이 어렸을적 자랐던 곳을 보여주고 싶었고, 친구들도 소개시켜 주고 싶었고 (아직도 많은 스페인 친구들은 섬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동네 치과 의사, 잘나가는 주방장, 동네 양아치 등등…), 휴향지로써도 손색이 없으니 일석이조인 곳인데 한국에서 가려면 너무나 먼 비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단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는데 아마도 내년 즈음 한번 가지 않을까 싶다. 실은 운 좋게 2010년 남아공에서 개최되는 월드컵 표를 구하게 되어서 월드컵을 보러가면서 유럽을 한번 들릴까 지금 생각 중이다.

한국사람들이 잘 안가는 섬나라 휴향지에 가서 푹 쉴수 있는 휴가를 원하시는 분들한테는 강추하는 곳이다 – Las Palmas de Gran Canaria

Spain I – laid off, laid back

Wikipedia의 정의에 의하면 실업률 (unemployment rate)은 “일을 할 수 있고, 현재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percentage”이다. 2009년 3월 기준, 미국의 실업률은 9%이고 대한민국의 실업률은 3.5%인데 숫자로만 보면 한국이 훨씬 낮지만, 전통적으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 치고는 적은거는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강조하고 싶다. 실업률이 40%인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말도안되는 국가를 제외하면 과연 실업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어디일까? No.1인지는 나도 확실치는 않지만 (웹을 뒤져봐도 정확한 정보는 구하기가 힘들더라) no.1에 아주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나라가 유럽의 스페인이다.

현재 스페인의 실업률은 17%이며,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20% 선을 돌파할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나는 84년부터 90년까지 스페인에서 거주한적이 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스페인은 항상 실업률이 높았던 나라로 생각된다. 그래도 EU의 평균 실업률이 8%인거를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참 신기한게, 통계적으로 이 정도로 실업률이 높으면 국민들이 사회적으로 느끼는 불안감도 극도에 도달해서 폭동과 시위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을 하는데 스페인은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너무나 조용하다. 아직 노조 지휘하의 제대로 된 시위 한번 하지 않았고, 수틀리면 바로 길거리로 뛰쳐나가서 사회와 정부에 무모하게 맞서는 유럽 국가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게 스페인 실업자들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고 경제/사회/심리학자들은 말한다.

1. 스페인 사람들은 고향을 잘 안 떠난다 – 한국에는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있다. 좋은 학교/좋은 직장을 찾아서 너도나도 다 서울로 이사를 한다. 오죽하면 4천만 국민 중 30-40%가 서울이랑 서울 근교에 살까? 스페인은 우리와는 좀 반대이다. 많은 연구결과에 의하면 스페인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 싫어한다. 한곳에서 태어났으면, 그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 동네에서 직장을 구하고, 그 동네에서 결혼해서 가족을 형성하는걸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친가/처가 식구들이 대부분 한 지역에서 가까이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성향은 전세계가 호경기를 누리고 있을때에도 스페인만은 유독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였는데 (기동성이 떨어져서), 경기가 좋지 않으면 그 상황은 반대가 된다. 가족들과 가까이 살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의 일원이 있으면 서로 돕는 문화가 생기고, 집을 사려고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하면 가족들이 서로 서로 도와준다. 그렇기 때문에 주택 foreclosure도 상대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집이 저당 잡히더라도 다른 가족들과 같이 살면 그만이기 때문에 미국을 망하게 하고 있는 housing 위기에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고 있는것이라고 한다.
2. 실직한 대부분의 인력이 비정규직이다 – 현재 스페인 실업자들의 많은 부분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인력들이 차지하고 있다. 즉,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는 여성인력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 실직을 당한것이다. 800,000명의 비정규직 인력과 자영업자들이 직장을 잃었지만, 오히려 2009년 1사분기에 스페인의 정규직 인력의 숫자는 증가하였다고 한다.
3. 호경기/불경기 상관하지 않고 끈임없이 활성화되는 암시장 – 스페인과 이태리의 암시장은 세계 최고의 암시장 중의 하나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스페인 경제활동의 20% 이상이 암시장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4.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 이 4번째 point에 대해서는 내가 다음 블로그 post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하겠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태어날때부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다. 산부인과에서 애가 태어났는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뭐가 잘못된줄 알았는데,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애기가 siesta (스페인 사람들이 3시간 동안 자는 특유의 낮잠)를 즐겨서 그렇다고 하는 우스게 소리도 있다. 직장이 있으면 가서 일하고, 직장이 없으면 그냥 집에서 쉬고…세월아 네월아 하고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는게 스페인 사람들은 어렸을적부터 몸에 배인 천성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크게 좋아지지도 않지만, 실업률이 이렇게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동요 없이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이유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Laid-off but laid back인 인생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인생을 느리고 여유있게 사는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미친듯이 달리고 바쁘게 살아도 하고 싶은 일들의 10%를 하면 잘한게 인생인데 놀거 다 놀고, 쉴거 다 쉬고, 잘 되던 잘 안되던 그냥 동키호테같이 느긋하게 사는게 말이 되는가?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스페인 친구가 나한테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빨리 빨리 인생을 사는거야. 이제 한국도 좀 살잖아…좀 즐기면서 살지…” 라고 한적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친구한테 “Fuck you. 그러니까 니네가 그 모양이지.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매일 매일 낮잠 3시간 안자면 코가 삐뚫어 지냐.”라고 심하게 쿠사리를 준적이 있다.

자…이제 시간을 좀 fast forward 해보자. 아주 바쁘게 인생을 빨리빨리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이 한국인 청년은 그냥 average한 삶을 살고 있고, 매일 낮잠 3시간씩 자면서 편하게 인생 살았던 스페인 청년은 유럽에서 알아주는 비즈니스 맨이 되어 있다. 요새는 낮잠을 1시간 밖에 못잔다고 하더라. 인생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