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실리콘 밸리 and Asians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인종은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 그 동네에서 학교도 다니고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자신있게 Asian (중국, 한국, 인도 특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어떤 survey를 바탕으로 작성된 paper를 보니 실제로 실리콘 밸리에서는 아시아인들이 최상의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며, 실리콘 밸리 바로옆에 있는 Santa Clara County는 최근 연속 3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아시아 인구가 가장 빨리 성장하였다고 한다. BUT,이 보고서에 따르면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이름이 잘 알려진 high-tech 회사 직원 대다수가 아시아 인종이지만, 조직도 위로 올라갈수록 아시아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밑의 숫자에 비해서 너무나 차이나 나도록 작아진다고 한다. Cisco, SUN, eBayAMD의 아시아 인구 비중은 거의 23%에 육박하지만 1999년 이후로는 이 회사들의 이사회에는 아시아인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The Failure of Asian Success in the Bay Area”라는 제목의 이 페이퍼를 보면 많은 아시아인들이 실리콘 밸리의 tech 회사들과 같이 자유분방한 곳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가지 문화/경제적 요인으로 인해서 일을 잘하는 아시아인들이 실제 C-level의 경영진까지 올라가는게 힘들며, 이사회로 등륵되는건 더욱 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과연 그래서 일까?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왜 아시아인들, 특히 한국/일본/중국인들 중에서 우리가 알만한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의 CEO들이 안 나올까?
-교육 수준이 낮아서? 절대 아니다. 아시아 부모들 만큼 교육 관련해서 극성인 부모들은 없다. 자신은 굶더라도 애들 과외 시키는 부모들은 전세계에서 대한민국 부모들 밖에 없을거다.
-영어를 못해서? 그 많은 교포들은 어디갔는가?
-머리가 나빠서? 수학/과학 올림피아드는 아시아 잔치이다.

나는 인류학자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다양한 인종들과 같이 공부하고 일해본 경험에 의하면 몇가지 머리에 떠오르는 이론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100% 내 개인적인 의견들이고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한국 관련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하는거니 혹시나 틀리거나 비위가 상했다면 그냥 넘어가 주시기 바란다.

1. 교육 방식 – 교육 수준은 그냥 통계학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학/석/박사들이 얼마나 많이 있냐를 말해주는 수치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교육 수준으로 따지자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지만 교육의 quality를 제대로 보면 서양 교육과 많은 차이가 나는걸 느낄 수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살짝 공개 하면, 나는 학부때는 기계공학을 전공하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학점도 제대로 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기계공학의 기초가 되는 몇개의 이론중에 ‘열역학의 법칙 (Laws of Thermodynamics)“이라는게 있다. 여기서 깊게 들어가지는 않겠는데 (실은 나도 잘 기억 안난다 ㅋㅋ),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몇개의 지배적인 자연의 법칙이다. 학교 다닐때는 이 법칙을 달달 외우고 다녔는데, 막상 국민학생이 나한테 열역학의 법칙에 대해서 물어봤다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냥 말 그대로 이론과 공식을 알고 있었으며 교수한테 물어봐도 똑같이 틀에 박힌 숫자와 알파벳을 사용해서 설명을 해줬다.

그러다가 99년도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대학원 첫 수업 시간에 미국인 교수가 열역학의 법칙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줬는데, 이 순간이 나한테는 바로 그 “A-ha!” 순간이었던거 같다. 4년 동안 그냥 껍데기만 알고 있었던 이 법칙을 15분 동안의 노교수의 설명을 듣고 아주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지금은 우리 엄마가 물어봐도 열역학의 법칙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거 같다. 물론 이거는 그냥 일례이지만, 이 작은 사실만을 보더라도 우리 나라의 교육은 뭔가 근본적으로 비효율적인게 있다. Asian 교육은 대부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틀과 근간을 마련해주기 보다는 머리 회전을 보다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압박을 가한다고 해야하나…하여튼 사물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파악해서 하나 하나씩 해결책을 찾는게 아니라, 많은 아시아인들은 아주 빨리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좋은 해결책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뭔가 좀 엉성한 부분이 있다.

2. The Asian value – 아시아 가정에서 눈에 두드러지게 띄는 점은 부모들이 아직까지는 자녀들이 business men 보다는 professional men이 되길 원하고 있다. 이건 이민 1세던 2세던 크게 다르지는 않다. 모든 아시아 부모들은 자식들이 의사, 변호사 아니면 교수가 되길 바라고 있다. 운동선수, 비즈니스맨 또는 창업을 한다고하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미국 부모들과는 달리 일단 한두번은 이런 자녀들을 무조건 말릴것이다. 창업이나 비즈니스맨이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서 뭐가 뒤지는걸까? 우리 아버지는 어렸을적부터 나한테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너 자신을 위해서 일을 할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월급쟁이도 나쁘지는 않지만 열심히 일해서 남을 부자로 만들어주기보다는 스스로 일해서 스스로 부자가 되는게 더 좋은거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해주셨고, 아무것도 몰랐던 소시적에도 이런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나한테 적용을 하여서 자라면서 계속 비즈니스와 돈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거 같다.

전에 내가 LA에 사시는 어떤 부부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주머니랑 아저씨는 왜 애들한테 공부만 열심히 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라고 하시나요? 미국에는 그거 외에 할게 많을텐데요.” 그러니까 이 부부는 자식들이 “주류사회”에 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류사회?? 그게 몬데? 주류사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많은 한국 교포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비주류사회 구성원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주류사회에 끼고 싶어하는거 같은데, 글쎄다…나는 한번도 내가 비주류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서 백인과 아시아인들 사이에 큰 벽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많은 아시아인들은 그냥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이 아닐까 싶다. 미국같은 잡종사회에서 왠 주류/비주류 사회? 아이사인들이 돈이 없냐, 영어를 못하냐, 교육을 못 받았냐? 오히려 우리가 주류사회 인간들이 아닌가?

이런, 어떻게 보면 조금 수치스러운 Asian 가치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자신감있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3. 부모들의 과잉 보호 – 아시아 부모들의 과잉보호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유명하다.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좋은것만 먹이고, 좋은것만 보여주는건 칭찬 할만하지만 이러한 과잉보호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죽인다는건 모르는거 같다. 비즈니스는 순간적인 decision들의 연속이고, data 없이 감으로 그때그때 결단을 내리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의존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한다.

이렇게 하고 보니 내가 무슨 교육학자가 된거 같은데, 그만큼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중요하긴 한거 같다 (물론 나도 학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아시아인들을 차별한다니, 안보이는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니 등등 이러한 변명을 하기에는 이미 우리는 대가리가 너무 커졌고 세상은 너무 평평해진거 같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졌고, 이 기회를 잘 포착해서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건 개개인의 자질, 능력 그리고 태도에 달려있다. 남 탓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잘해보자.

이 남자 – Stan Van Gundy

LA LakersOrlando Magic을 4-1로 대파하면서 2009년 NBA Championship을 이겼다.도무지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밑겨지지 않았던 Kobe Bryant의 화려한 플레이, 그의 플레이를 받쳐주던 Pau Gasol 그리고 NBA 최고의 명장으로 알려진 Phil Jackson 감독에 모두가 현혹되어 있던 도중 Orlando의 Stan Van Gundy 코치가 쓸쓸하게 코트를 퇴장하는 뒷모습을 본 사람은 몇 안될거다.

Van Gundy 감독은 2009 NBA Finals 전에는 대중한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통상 야구 감독들은 팀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덕아웃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고, 풋볼 감독들은 헬멧과 팀 jersey를 여러겹 겹쳐서 입는다. 농구 감독들만이 본인들이 입고 싶은 옷을 코트에서 입을 수 있어서 많은 농구 감독들이 저만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즐기는걸 볼 수 있다. 축구감독들도 비슷하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딩크 감독 또한 명품 양복과 화려한 넥타이로 한국 팬들에게 친근하다. New York Knicks/LA Lakers/Miami Heats를 24년 동안 지휘하던 Pat Riley 감독은 마치 패션 잡지 1면에서 뛰어나온것과 같은 멋진 양복들과 기름칠한 머리로 유명하고, Lakers를 승리로 이끈 Phil Jackson 감독 또한 본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헤어스타일과 패션에 계속 변화를 주는걸로 유명하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헷갈릴 염려가 전혀 없는’ 우리의 Van Gundy 감독이 있다. 양복은 커녕 허름한 잠바때기를 입은 볼품없이 작은 키와 통통한 체격은 처음 보는 사람으로 인해 “야, 저 아저씨는 뭐야?”라는 질문을 유발시킨다. 멋이라고는 손끝만큼도 부릴 줄 모르고, 경기가 끝날 즈음에는 거의 엉켜있다시피한 머리는 한번도 손질을 하지 않는거 같다.그래도 이 아저씨의 투박하고 솔직담백한 스타일은 Lakers (Kobe Bryant)와 Cavaliers (Lebron James)의 결승을 은근히 바라던 사람들마저 NBA 결승의 재미에 푹 빠져들게 하고 있고 높은 시청률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Stan Van Gundy 감독을 보고 있으면 같은 서민의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Van Gundy 아저씨는 NBA 감독이라기 보다는 마치 월마트의 상점 매니저나 중학교 교장과도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농구 실적을 보면 꽤 놀랄거다. NBA 팀 코치로써는 올해가 5번째 season인데, 349개 경기 중 223 승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실망스럽게 4-1로 Championship은 졌지만 주위 동료 코치들과 농구 전문가들은 Van Gundy 감독이 NBA에서 가장 과소평가되었지만, 성공적인 감독이라고 한다. 또한가지 재미있는건 Van Gundy 감독의 경기 종류 후 인터뷰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그냥 사전에 준비된 평범한 멘트들을 하지만, 이 아저씨는 항상 솔직담백하고 엉뚱한 말들을 한다. 본인의 코칭 방법이나 전략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주로 선수들을 칭찬하고,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올 초 인터뷰에서 그는 아내인 Kim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와이프가 항상 옆에서 잘해주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거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또한, 동부 컨퍼런스에서 필라델피아를 이긴 후 인터뷰에서는 최근에 심장 수술을 하신 삼촌한테 아주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나의 기억에 가장 남는 인터뷰 내용은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Cleveland Cavaliers와의 경기 중 하나였던거 같다. 한 기자가 “오늘 코트에서 재미있었나요?”라고 물어보니, 아주 황당하고 한심한듯한 눈치룰 주면서 “재미? 이사람아…재미는 농구 경기를 보는 당신들을 위한거지. 여기서 시합하는 사람들은 x뺑이 치고 있었지. 당연히 재미없었지…우리가 졌는데!”

뭐, 혹자는 이미지 메이킹이니 다 연출이니 라는 말들을 하는데 과연 이런 방법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거 말고도 충분히 많은 방법이 있을텐데…

잠시 기아를 바꾸고, Corporate America를 자세히 보면, 농구 감독들과 CEO들 사이에 비슷한 트렌드를 목격할 수 있다. 옷 잘입고, 미디어 노출을 즐기며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CEO들이 있는가 하면, 대중 앞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아주 완벽하게 처리하면서 내실을 추구하는 CEO들이 있다. 전자의 예를 굳이 들자면 Oracle의 망나니 CEO Larry Ellison이 그 케이스이고 (물론, 그렇다고 일을 못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후자는 HPMark Hurd를 들 수 있다. Mark Hurd는 병적으로 미디어와 언론을 피하면서 할일만 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있다. 자선 골프 행사도 참석을 안하고 (참고로, 시간이 너무 많이 허비된다고 Mark Hurd는 골프를 아예 안친다) 골프 치는 시간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매우 가정적인 CEO이기도 하다. 이런 그를 언론에서는 그다지 달갑게 보지만은 않지만 Hurd 사장은 그거 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거 같다. 남들이 뭐라하던 본인은 먹여살려야할 직원들과 직원들의 식구들이 있고 어차피 짧은 인생을 쓰잘데기 없는 부수적인 일들에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게 본인의 의견이다. 어떻게 보면 마치 Orlando Magic의 Stan Van Gundy 감독과 비슷한것도 같다.

나도 한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CEO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리고 CEO들은 PR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고, 이미지 메이킹에 투자하고 전반적으로 내가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전부 다 인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아주 최근까지도 나는 많은 인터뷰를 하고 싶어했고, 뮤직쉐이크도 되도록이면 많은 행사에서 발표하고 많은 언론을 통해서 보도를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되었다. PR과 언론 다 좋지만, 기업한테 가장 중요한거는 “매출”과 “수익”이다. 이 밑에 Softbank관련된 글에 언급된 수많은 회사들이 얼마나 많이 언론에 소개되었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는가…그렇지만 그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 갔을까? 그렇게 껍대기에 투자할 시간에 내실을 다지고 비즈니스에 집중을 했다면 결과는 약간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새 나는 왠만하면 이제 컨퍼런스나 행사에서 speaker 자리를 피하고 있고, 언론사 인터뷰도 거절하고 있다 (물론 그다지 많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ㅎㅎ). 지금 우리한테는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럴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고객한테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쓰고 business의 기초를 다지는게 중요하다.

NBA 결승전을 보면서 농구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패자인 Magic의 Van Gundy 감독을 보면서 많은걸 배웠던 소중한 1주일이었다. Stan Van Gundy – You are da MAN!

이 남자 – Harry J. Wilson

미국과 전세계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고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General Motors가 6월1일 부로 파산 보호 신청을 하였다. 어떻게 이 거대한 제조업체가 망했는지 나는 아직도 좀 어이가 없는데 돈도 못 벌면서 쓸데없이 Transformers 영화에 돈을 갖다 붙는거 보고 알아봤어야 했다.

오바마 정부가 GM을 살리려고 형성한 Auto Team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사실은 없다. 전 사모펀드 투자자였던 Steven Rattner가 Auto Task Force를 리드하고 있으며, 숫자에 관해서는 천재들인 industry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다. 특이한 사실은, Rattner씨 팀의 실제 업무를 총괄하는 인물은 37살의 Harry J. Wilson이라는 젊은이라는 점이다. 37살이면 (아마도 미국 나이이니까 한국나이로 치면 39살이겠지? 그래도 젊긴 젊은거다..) 나랑 4살 차이인데 어린 나이에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하는거 같다.이 아저씨의 백그라운드를 조금 조사해보면…하버드 학부와 MBA 출신이고, 그동안 줄곳 금융업계에서종사를 하다가 (Blackstone Group과 Goldman Sachs에 잠깐씩 일하다가 Silver Point Capital이라는헷지 펀드에서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번 모양이다)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와이프와 애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은퇴하였다.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세계 경제의 몰락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2009년 1월 31일날 Steve Rattner한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메일의 내용은 자동차 산업이 밀집해 있는 디트로이트를 구조조정하는걸 직접 도와주고 싶으며, 그동안 걸어왔던 커리어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뛸 자신이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나도이 이메일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매우 감동적이고 스마트하게 썼을거다. Wilson 씨에 대해서 한번도 못 들어봤던 Rattner씨는이 이메일을 보고 감명을 깊게 받았으며 Auto Team 조인하는걸 승락하였다.

Rattner씨로부터 고용된 후 3월13일날 Wilson 씨는 주위 친구들과 일하면서 만났었던 지인들한테 Auto Task Force의 내용과 구인 이메일을 돌렸으며, 이후 짧지만 강도높은 인터뷰를 통해서 Rattner씨와 Wilson씨는 오바마 정부의 자동차 팀을 완성할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력들을 채용하기 시작하였다. 각 팀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Matthew Feldman과 같은 유명한 파산/구조조정 변호사를 비롯하여 아이비 리그 학부를 갖 졸업하고 디즈니사에서 2년동안 인턴을 한 Clay Calhoon과 같은 어린 친구도 있다고 한다.

정부를 위해서 일하는건 굉장히 매력이 없다고 나는 항상 생각을 해왔다. 연봉이 너무 짜다는게 가장 큰 이유이고 실제 기업의 operation을 볼 수 없다는게 또 한가지 이유인데 그래도 Auto Task Force가 담당하는 이 정도 규모의 일은 금융에 관심있는 남자로써는 누구나 한번 정도는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이 아닐까 싶다. GM과 같이 복잡하고 큰 회사의 파산 절차를 옆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파산 보호 신청을 한 회사를 다시 내 손으로 개선 시킨 후 회사를 살린다…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고, 애국심이라고 할까…어떠한 사명감이 없다면 힘든일일거 같네.

Fortune 500 미국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 탄생

테스토스테론으로 똘똘 무장한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Corporate America를 eBay의 Meg Whitman, HP의 Carly Fiorina, Pepsi의 Indra Nooyi와 같이꾿꾿하게 지키던 Xerox의 Anne Mulcahy가 몇일전에 은퇴를 발표하였단. 후임 CEO는 아직 바깥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Anne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Ursula Burns라는 흑인 여성이다. 미국 기업의 CEO 중 흑인이 거의 없는건 알고 있었지만 (남성 or 여성), Ursula Burn가 Fortune 500 기업 중 미국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라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넘기위해서 이 흑인 여성이 얼마나 힘들게, 그리고 열심히 노력을 했을지 조금이나마 상상이 간다.

Annu Mulcahy는 33년 전 Xerox에서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0년 5월에 당시 CEO Paul Allaire가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교체되면서, 2001년 8월에 Xerox의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을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Anne Mulcahy가 누구지? Xerox 내부에 있던 사람인가?”를 물을 정도로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미국 여성이었다. 물론,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CEO가 되었겠지만…Anny Mulcahy가 새로 취임하였을 당시 Xerox는 내/외부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밖으로는 일본의 경쟁사들이 계속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훔쳐가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회계 부정으로 인해서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큰 벌금을 물었다. 그렇지만, Mulcahy 여사는 조용하고 꾸준히 회사의 전략을 잘 실행해서 취임 두번째 해부터는 부채를 줄이고 새로운 제품군들을 성공적으로 출시해서 이제는 해마다 약 1조 2천억원의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Mulcahy가 손댄게 전부 다 성공한거는 아니다. 해외 시장 진출이 예상하였던거보다는 잘 되지 않았고, 현재 Xerox의 주가도 Mulcahy가 취임하였을때보다 썩 좋아지지는 않았다.

Burns 신임 사장 또한 Mulcahy여사같이 Xerox 내부에서 실력을 닦은 내부인력이다. Columbia 대학에서 engineering degree를 받고, 엔지니어로 Xerxo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Xerox의 굵직굵직한 operation들을 담당하면서 서서히 주위 동료들로 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Paul Allaire의 특수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 engineering에서 management로 전환을 하면서 corporate ladder를 지금까지 꾸준히 올라왔다.

앞으로 할일이 많은 회사에, 할일이 더욱 더 많은 시점에 취임하게 된 이 흑인 여성 CEO의 활약이 기대가 된다.

Spain II – Las Palmas de Gran Canaria

1984년, 머리털 나고 난생 처음 해외로 나갈 기회가 생겼다. 아버지가 그 당시 수산회사에서 근무하고 계셨는데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것이다. 그 당시 해외라고 하면 무조건 “해외 = 미국” 이어서, 나도 당연히 미국으로 가는줄 알았다. 그런데 왠말…미국이 아니라 스페인이란다. 스.페.인.?? 스페인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지? 투우의 나라?

하여튼 2년 발령을 기약으로 우리 가족 4명은 (엄마,아빠,누나,나) 거의 20시간의 비행끝에 머나먼 유럽의 스페인으로 이사를 가게되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스페인 본토도 아니고 스페인령의 작은 Las Palmas라는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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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Palmas는 Las Islas Canarias (카나리아 섬들)라는 7개의 섬으로 구성된 스페인령 군도 중 하나인 Gran Canaria섬의 도시이자 수도이다. 스페인령이지만, 카나리아 섬들은 오히려 스페인 본토보다 아프리카에서 더 가깝다. 정확한 위치는 대서양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에서 약 210km 정도 떨어져 있고, 총 인구가 약 800,000명 (우연히도 스페인 전체 실직자 수와도 일치한다 ㅋ) 정도인데 요즘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 당시에는 한국인들도 꽤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와 같이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작은 섬에 deep sea fishing 한국 회사들 (동원수산, 오양수산, 사조참치 등등…)의 유라프리카 본부가 있기 때문이다. Deep sea fishing이라고 하면 주로 참치, 오징어 그리고 대하 (왕새우)를 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곳이 바로 이 Las Palmas라는 섬인데 생각해보면 틀린말도 아니다. 처음에 우리 가족이 라스 (보통 한국사람들은 그냥 줄여서 “라스”라고들 한다)에 2년 계획으로 갔던게, 1년씩 계속 늘어나면서 5년반이 되었는데 이 5년반동안 내내 나는 수영빤쓰 하나 입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 바로 앞이 바닷가라서, 그냥 수영복 입은채로 바다에 들어갔다가 다시 집에 오고…학교 안가는 날이면 매일 이 사이클을 반복을 하곤 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기미, 반점 때문에 햇빛을 꺼려하는거와는 달리 나는 해만 나면 LA에서 항상 웃통을 벗고 썬탠을 즐기는 편이다.

이 작은 섬에서 5년반동안의 생활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순간들이었다. 현재의 생활을 제외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를 뽑자면 라스팔마스에서 살았던 5년반과 군대시절 (용산 카투사 시절)인데 스트롱 벤처스의 partner in crime인 John Nahm과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철이가 다 이때 같이 라스에서 코흘리면서 놀았던 친구들이다. 지상 최고의 날씨, 세계 최고의 음식 (스페인 음식도 맛좋지만, 섬나라 음식은 더욱 더 맛있고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훈훈한 인심 그리고 낙천적인 사람들…유럽 많은 나라를 여행하였지만, 라스팔마스같이 좋은 기억만 남는 곳은 없는거 같다.

실은 신혼여행을 라스팔마스로 가려고 했다. 지현이한테도 남편이 어렸을적 자랐던 곳을 보여주고 싶었고, 친구들도 소개시켜 주고 싶었고 (아직도 많은 스페인 친구들은 섬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동네 치과 의사, 잘나가는 주방장, 동네 양아치 등등…), 휴향지로써도 손색이 없으니 일석이조인 곳인데 한국에서 가려면 너무나 먼 비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단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는데 아마도 내년 즈음 한번 가지 않을까 싶다. 실은 운 좋게 2010년 남아공에서 개최되는 월드컵 표를 구하게 되어서 월드컵을 보러가면서 유럽을 한번 들릴까 지금 생각 중이다.

한국사람들이 잘 안가는 섬나라 휴향지에 가서 푹 쉴수 있는 휴가를 원하시는 분들한테는 강추하는 곳이다 – Las Palmas de Gran Cana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