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Football, soccer, 축구

1,500개 – 2010 월드컵 축구 선수들을 위해서 개별 제조되는 축구화 수.
1억2천5백만명 – 월드컵 축구를 생중개로 볼 전세계 관람객 수.
125억 달러 – 2010년도 월드컵이 남아공의 경제에 기여하는 금액. 참고로 2010년도 남아공 GDP의 20%라고 한다.

영국식 영어로는 축구를 football이라고 하고 영어를 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football=축구로 통용되지만 미국만이 유독 soccer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이미 미국에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인 American Football에 footbal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보이지않는 라이벌 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가 않다. 깊게 대화하다보면 유럽 사람들한테 비춰지는 미국인들의 이미지는 무식하고 문화적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햄버거와 콜라로 포식하는 야만인들이고, 미국인들한테 비춰지는 유럽사람들의 이미지는 겉으로 고상한척하면서 일도 안하고 3시간씩 수다떠면서 점심을 먹는 한심한 인간들이다. 그런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사람들은 축구라는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축구는 주류 운동으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 LA Galaxy 구단에서 미국에 축구를 전파하기 위해서 영국의 스타 데이빗 베컴을 데려오고 (전에 홍명보 선수도 잠깐 여기서 뛴적이 있다) 많은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식축구/농구/야구에 비해서 축구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운동은 아니다. 미국사람들은 미식 축구에 비해서 축구는 충분히 거칠거나 남성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덩치가 산만한 선수들도 없고, 헬멧 착용도 하지 않을 뿐더러 미식축구에서는 경기의 일부인 거친 몸싸움을 축구에서는 법으로 금지해놓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축구가 미식축구에 비해서 거칠거나 남성적이지 못한 스포츠일까? 물론, 많은 축구선수들이 몸에 손도 닿지 않았는데 할리우드 액션 배우를 능가하는 액션 연기를 하면서 땅으로 고꾸라지고있다. 얼마전에 일본과 치룬 평가전에서 박주영 선수의 페널티 킥 또한 액션 연기였다. 이미 넘어지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일본 골키퍼 손과 박선수의 다리가 닿았고 그 기회를 놓칠새라 매우 생동감넘치는 액션으로 페널티 킥을 얻어 우리에게 귀한 2번째 골을 선물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면 바로 이렇게 땅으로 넘어지는 축구 선수 중 많은 선수들이 다시 바로 일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6월11일 드디어 4년을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월드컵이 시작한다. 실은 나는 한국의 예선 3경기 (대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표를 재수좋게 구해서 가지고 있는데 어쩌다가 사정이 생겨서 남아공에 못가게 되었다. 하지만 월드컵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나와 같은 팬들과는 달리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인해서 월드컵 자체를 불참하거나 특정 경기 불참으로 인해서 감독과 자국민들의 발을 동동구르게 만들고 있다. 유럽의 영국과 독일에서 아프리카의 가나에 걸쳐서 감독, 선수들, 국민들이 현재 부상당한 자국 선수들이 최종 선수 명단에 올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부상 통계를 종합해 보면 축구야말로 신체 접촉이 가장 많은 스포츠이며 그에 따른 부상율도 가장 높은 위험한 스포츠라는 말을 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이런 위험한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막상 경기장이나 TV로 축국 경기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축구가 이렇게 위험한 운동임을 잘 모르고 있다. 축구 선수들의 부상율이 다른 운동선수보다 높은 이유는 지속적인 신체 접촉이 발생하는 운동이기 때문이지만 그외에 몇가지 다른 이유들도 있다:

1. LONG seasons – 미식축구나 미국의 다른 팀스포츠는 정기시즌 종료 후 4개월 ~ 6개월의 비시즌을 가지고 운영된다. 즉, 선수들이 새로운 시즌에 임하기 전에 충분한 휴식과 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축구는 조금 다르다. 특히 가장 경기일수가 많기로 알려진 영국의 Premier League는 8월 중순부터 5월초까지가 정기 시즌이며 정기 시즌외에 월드컵, 유럽컵과 같은 빠질 수 없는 행사들과 “친선 경기”라고 하는 국가 대항전들이 비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선수들의 휴식을 방해하고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팀인 Chelsea는 이번 시즌에 정기 시즌 경기외에 추가적으로 18개의 경기를 하였다. “경기가 너무 많아요.” ESPN의 분석가인 Tommy Smyth의 말이다. “Fulham은 올해Europa League 결승 진출을 하기 위해서 62 경기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선수들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야겠다는 구단의 속셈이죠.” 다른 유럽 리그들은 통상 12월과 1월달에 몇 주 정도를 쉬면서 리그를 운영하지만 영국의 Premier League는 동계휴식이 없이 운영된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2. 비접촉 부상 – 이 또한 재미있는 사실인데 축구 선수들은 워낙 많은 경기를 뛰기 때문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어서 상대방과의 신체적 접촉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끈임없이 뛰어야하는 축구 경기의 생리, 슬라이딩, 태클링과 점핑 덕분에 발목이나 무릎이 성한 축구 선수는 거의 없다고 한다. FIFA의 공식 의료기록에 의하면 2006년도 월드컵 부상 중 27%가 선수들간의 직접적인 신체접촉이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스타 수비수 Oguchi Onyewu 선수는 작년 10월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코너킥을 헤딩하는 도중에 왼쪽 슬개 힘줄을 다쳤고 이제서야 다시 경기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정도로 회복을 하였다. “제가 다쳤던 상황을 녹화방송으로 다시 보기 전에는 분명히 상대방 선수가 제 다리를 발로 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니까 저 혼자 넘어져서 다쳤더라구요.” 라면서 그 당시 상황을 회상한다.

다음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전 팀 중 주목할만한 부상 선수 명단이다:

한국 – 장단지 부상으로 인해서 이동국 선수가 그리스전에 출전할 수 있을지 아직 미정이다.
영국 – 3월에 다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서 베컴 선수는 이번 월드컵 출전을 이미 포기한 상태이다. 베컴 선수는 AC Milan과의 경기에서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 스스로 발목을 접지르면서 부상을 당했다.
스페인 – 올해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는 “무적함대” 스페인의 주전 포워드 Fernando Torres는 몇달전에 무릎 수술을 하였으며, 미드필더 Cesc Fabregas는 다리 깁스를 푼지 얼마되지 않았다.
미국 – 주장 Carlos Bocanegra 또한 복근 수술을 하였지만 다행히도 주전 명단에는 올라갔다.
독일 – 독일의 주장이자 최고의 스타인 미드필더 Michael Ballack은 가나의 선수인 Kevin-Prince Boateng의 위험천만한 태클로 인해서 오른쪽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과 가나는 월드컵 D조에서 서로 경쟁하는 팀이라서 이 부상은 특히 더욱 더 큰 국제적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골키퍼 Rene Adler와 또다른 미드필더 Christian Traesch도 부상으로 인해서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가나 – 첼시의 스타 미드필더 Michael Essien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서 월드컵 출전을 포기한 상태이다.

한국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박사들의 취업 전략

phd_spelled_in_childrens_building_blocks얼마 전에 상당히 재미있는 글을 읽어서 bookmark를 해놨는데 이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도 관심을 가지실 거 같아서 여기서 공유하고자 한다. 내 주위에는 박사 (특히 공학 박사)들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는 본인들이 정말로 학문을 좋아해서 박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와는 달리 어쩔 수 없이 하다 보니 박사까지 하게 된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4년 학부만 하고 학교를 떠나서 사회로 진출하는 게 조금 두려워서 그냥 2년 석사 공부를 더 하면서 앞으로 뭐를 할지 고민을 하였고, 석사를 하다 보니 그냥 내친김에 박사까지 해야겠다 하고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그냥 학교 연구실에서 교수 시다바리하면서 5~6년을 보낸 사람들도 많다. 주로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해외 박사들도 있지만, 국내 박사들이 더 많은 거 같다(no offense guys!).

어찌 되었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문제는 이제 졸업하고 뭐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하였는데 academia로 모든 박사가 진출하기에는 교수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고, 대기업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도 엄청나게 피를 튀기는 경쟁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거보다는 다른 데 있다. 많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거의 10년 이상을 대학교 연구실에서 시간과 돈을 투자하였지만, 그들도 보고 들은 게 있는지라, 교수나 연구원이 되는 거보다 아싸리 비즈니스 세계에 진출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조금은 더 멋지고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동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나한테 이와 관련된 고민과 질문들을 하는 박사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조금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제 친구는 공학 박사를 받은 후에 맥킨지에서 컨설팅을 하는데 돈도 많이 벌고 출장도 자주 다녀서 저도 하고 싶습니다. 어떤 친구는 여의도 증권사에 취직하였는데 제가 공부한 지식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적용하는 거라서 은근히 재미있을 거 같네요.”와 비슷한 부류의 질문들이다. 문제는 – 어떻게 평생을 연구실에서 공부해온 박사들이 비즈니스 세계로 career change를 할 수 있을까?

평생 공부만 해온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작은 방을 뛰쳐 나아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조언을 Bilal Zuberi는 제공해주고 있다. 물론, 정답은 아니지만,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상당히 유용한 충고를 주고 있다. Bilal Zuberi는 MIT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의 지도교수는 1995년도 노벨 화학 수상자인 Mario Molina 교수이다. 물리학 자체도 어렵고, 화학도 어려운 분야인데 물리화학이란…. 정말 미스테리어스한 학문일거 같다. 그는 졸업 후에 학계 쪽으로 진출하지 않았고 경영 컨설턴트로써 일을 하다가 직접 창업을 하였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동부 Cambridge에 위치한 General Catalyst Partners에서 VC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독특하고 부러움 살만한 백그라운드 덕분에 Bilal은 하루에도 대학원생, 포닥, 연구원 심지어는 교수들로부터 기술적인 직업 분야에서 비즈니스 분야로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메일을 여러 통 받는다고 한다. Bilal한테 이메일을 보내는 대부분 과학자/공학자들이 계속 기술적인 분야에 남아줬으면 하는 그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지만, 평생을 연구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일보다는 즉시 결과와 피드백이 생성되는 비즈니스 세계를 동경한다거나 아니면 그냥 지금까지 공부한 거 말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거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여기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insightful 한 포인트들을 소개하겠다.:

1/공학박사 과정 학생들도 MBA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해야 한다. 시간 날 때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와 하고 싶은 분야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주위 친구들이나, 동문들과 이야기를 함으로써 과연 나한테 맞는 진로인지를 지속해서 평가해라.

2/박사학위를 받는 5년 뒤를 계획하기보다는 내년을 보고 단기적으로 계획을 지속해서 세우고 수정해라. 그리고 내년에 내가 뭐를 하고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지금 뭐를 해야 할지를 고민해라.

3/남들보다 뛰어난 공학 백그라운드가 있다면 (대부분의 공학 박사들은 일반인들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너무나 많은 박사가 비즈니스 분야로 진로를 바꿀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과는 너무나 무관하고 막막한 분야만을 찾는다. 나노기술 쪽으로 공부를 하였다면, 나노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분야를 찾는 게 당연한데 호텔 경영이나, 영화 제작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능력을 왜 자꾸 부인하고, 영업과 마케팅 분야에서 수년 동안 훈련을 받고 실력을 다듬은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서 경쟁하려고 하는가? 과학/기술/공학 백그라운드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부채가 아니라 아주 훌륭한 자산임을 숙지해라. 물론, 이러한 박사학위를 유용한 자산으로 만들려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기술이나 능력을 재적용 해야 한다. 비즈니스나 경영전략의 세계에서 기술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는 주로 analytical thinking, rigorous frameworks, hypothesis driven approach와 quantitative skill이다.

4/특정 job에 딱 맞는 사람들이 있다고 정의하는 건 너무 극단적인 발상이지만, 그런데도 특정 job을 수행하려면 도움이 되는 유리한 성격과 기술들이 있다. 내가 이런 job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내 친구들과 지인들한테 물어보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투자은행: 사교적이고 팀워크를 중시하며 무엇보다 하루에 20시간씩 일할 체력이 있어야 한다.
-경영 컨설팅: MBTI ‘A’형 성격. 사교적이며 분석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
-Entrepreneurship: 기술 백그라운드가 있으면 굳이 사장이나 경영 관련된 일을 하지 않고 technical co-founder로 시작하고, 비즈니스 co-founder를 찾으면 된다.
-대기업 임원: 기술적인 내용보다는 사람과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

5/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 경제, 금융 또는 경영 관련된 수업을 들어야 하냐고 물어본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그의 짧은 대답은 “No”이며, 긴 대답은 “Maybe. 그렇지만 매우 신중하게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경영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서 굳이 학교에서 전략, 회계학, 또는 금융 관련된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다. 이러한 기술과 지식은 어차피 일하면서 배우는 것들이다. 오히려 리더쉽, 팀웍과 조직 행동론과 관련된 수업이 경영컨설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매우 한정된 지식이기 때문에 실제 일할 때 field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훈련을 해야 하는 부분은 남이 가르쳐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면서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을 백업할 수 있는 framework를 만들 수 있는 그러한 사고방식인데 이런 기술들은 대부분 책으로 배울 수 없으며 몸으로 부딪히면서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6/네트워킹을 많이 해야 한다. 과학자나 공학도들한테 네트워킹이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할 수 있지만,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쳐 가야 하는 절차이니 이왕 하려면 기분 좋게 제대로 하는 게 좋다. 네트워킹에 대해서 한가지 유의할 점은 바로 네트워킹 자체만을 위한 네트워킹은 삼가는 게 좋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채용 관련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그 행사에서 의무적으로 아무랑 악수하고 인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최종 목적은 상대방을 감동하게 해서 직업을 구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꼭 너무 그 목적에 충실할 필요는 없다. 좋은 행사에서 친구 몇 명 더 만드는 셈 치고 진지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기술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면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라. “기술” 외에 그와 관련된 시장 동향이나 재미있는 사실이나 일화를 가지고 상대방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면 아주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한다. 가령,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태양열 전지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면 앞으로 이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어떤 업체들이 어떤 제품들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분야에 투자하려면 어떤 점들을 잘 고려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조금은 더 “재미있는” 사실들을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다면 상대방에게 이름만을 말해주는 과정을 밤새도록 반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7/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상대방과 대화를 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강의”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미 상대방은 당신이 좋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보다는 당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으므로 마치 머리에 들어있는 5년 동안 쌓인 지식을 상대방의 머리에 한방에 쏟아부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네트워킹 또한 삶의 한 부분이며, 나 못지않게 상대방도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누군지를 남들한테 알려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자기 자랑만 하지 말고, 상대방한테도 말할 기회를 좀 주는 게 중요하다. 본인 소개를 하고 상대방이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재 거리를 미끼로 던져봐라. 가족, 자녀들, 학교, 운동, 정치 등등…

8/앞서 말했듯이, 지금까지 공부한 기술은 남들과 나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을 잊지 마라. 자신의 전공과 완전히 다른 분야의 직장 인터뷰를 할 때 이러한 점을 잘 강조해야 한다. 5년 동안 학교에 투자한 돈과 시간이 절대로 시간 낭비가 아니었으며, 이 기간에 내가 뭘 배웠는지 인터뷰어한테 이해하기 쉽게 말해줘라. 박사 과정의 좋았던 경험들과(굉장히 많이 있을 것이다) 이때의 경험이 어떻게 나와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강조해라. 솔직히 말해서 MBA들의 인생 이야기는 대부분 똑같다. 은행에서 근무하거나 대기업에서 마케팅하다가 자기 계발을 위해서 학교로 왔다는…그렇지만 박사 과정의 학생들은 이와는 달리 모두 자기만의 독특한 경험과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팍팍 강조하면서 나의 독특한 경험과 지식이 어떻게 이 회사 미래의 매출과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운 데로 논리적으로 답변하면 상대방이 무쟈게 감동 받을 것이다.

Bilal의 조언은 여기까지이다. 여기에 내가 한가지의 조언을 더 추가하자면 채용/인터뷰 과정은 영업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어차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행되는 일이니만큼 끈기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항상 강조하는 “끝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회사와 채용이라는 게 분명히 언제 어디선가는 다시 만날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들 사이에 진행되는 프로세스이다. 즉, 오늘 인터뷰하였는데 별로 맘에 안 들었던 사람을 같은 회사에서 미래에 다시 인터뷰할 수 있고, 인터뷰 담당자가 다른 회사로 옮긴 후에 다시 나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채용 담당자들은 이 사람이 굳이 맘에 안 들어도 눈앞에서 바로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없다. 그냥 계속 뭉그적거리면서 일단 자기의 후보 리스트에 담아두었다가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연락을 다시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인터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애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인터뷰를 하였으면, Yes/No 확실한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 사람을 괴롭혀야 한다. 이건 나 자신의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상대방한테도 내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고 매우 진지하게 이번 기회에 임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기회이다. 만약에 대답이 No라고 한다면 왜 내가 채용이 안 되었는지 그리고 다음 기회에 이 회사에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피드백을 반드시 요청해라.

언젠가 직장을 구함에 있어서 매우 소심하고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박사 친구한테 이런 말을 하니까 “야, 아무리 그래도 좀 구차하지 않냐…박사까지 받았는데 그런 식으로 구걸하다시피 사람을 보채는 게 상대방한테 좀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솔직히 나도 좀 쪽팔린다”

그 친구는 결국 1년 넘게 직장을 구하다가 얼마 전에 정말로 가고 싶지 않았던 연구소로 “할 수 없이” 취직을 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ayjob.com/content/phd-degree-874.htm>

행동하든지. 닥치든지. – Part 2

행동의 아름다움을 몸소 실천하셔서 나한테 감동을 주신 또다른 분은 내가 지금까지 블로깅을 하던 내용들과는 완전 상반되는 상당히 low-tech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를 맨손으로 일구어내신 분이다. 이 분에 대한 소개를 하기전에 내가 과거에 하였던 비즈니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할거 같다. 뮤직쉐이크에서 일하기전에 나는 불알친구 John Nahm과 투자자문/브로커 회사인 Oceans International을 운영하고 있었다. 실은 뮤직쉐이크도 Oceans의 고객사 중 하나였는데 운이 좋아서 이렇게 엮이게 된것이다. 지금은 뮤직쉐이크때문에 잠시 나는 Oceans에서 손을 땠지만 잘나갈때 우리는 한해에 5-6개 회사의 투자 성사 및 미국 진출을 도와주고 있었다. 브로커라는 일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이걸 하면서도 나는 한국과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캘리포니아의 호두/아몬드 재배업체와 연결이 되면서 – John이 은행에서 잠시 일했었는데 그당시 고객사 였다 – 이 업체의 한국 진출을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IT라는 무형자산과 넛트라는 유형자산이라는 차이가 있을뿐 본질은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을 연결해주는 업무였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두려움은 없었다. 좌충우돌하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정말로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이 우연한 기회에 대해서 또 이야기하자면 책 한권 정도 분량이 나온다 ㅋㅋ) 한국 호두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의 사장님과 연결이 되어서 우리는 캘리포니아 호두/아몬드를 한국 시장으로 수출하는 브로커 사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Oceans International과 구분을 두기 위해서 무역업무만을 처리하는 자회사인 Oceans Exports를 설립하여 이 브랜드를 통해서 무역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조금 현실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당시만 해도 우리는 Oceans란 브랜드를 삼성과 같은 문어발식 재벌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꿈을 꾸고 있었다 ㅎㅎ (물론 그 꿈은 지금도 매일매일 꾼다. 그러다가 매일 또 깨어난다.)

Anyways, 그렇게 장난삼아 시작하였던 넛트 무역 비즈니스는 해마다 double growth를 기록하였다. 첫해 우리는 한국 시장에 호두와 아몬드를 25만 파운드 정도 수출하였고 작년에는 1백만 파운드를 돌파하였다. 참고로 1백만 파운드는 대략적으로 컨테이너 40개 정도의 분량이다. TV나 자동차와 같이 크고 무거운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즐겨 먹는 너트로 40 컨테이너이니 상당한 분량이다. 아마도 알게 모르게 독자분들이 드시는 호두, 아몬드, 빠리바게트 제품 중 호두가 들어간 빵들, 호두과자 등등에 Oceans가 브로커링을 한 포션이 꽤 될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나는 길림양행 이라는 회사의 창업자이신 윤태원 사장이라는 amazing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윤태원 – (주)길림양행 창업자 및 대표이사
내 나이 또래 분들은 아마도 이 CM 송을 기억하실거다. “블루~블루~다이아몬드~~.” 가수 조영남씨가 기타를 치면서 부르던 캘리포니아 블루 다이아몬드 아몬드 선전 CM 송이다. 블루 다이아몬드사 (Blue Diamond Growers)는 미국에서 가장 큰 농업혐동조합 중의 하나이자 세계 최대의 아몬드 공급사이다.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위치한 본부는 11만평 규모로 20개의 빌딩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일 5천500톤 이상의 아몬드를 생산하며 매년 9만톤 이상이 세계 95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주)길림양행은 블루다이아몬드의 한국독점 에이전트이며 대한민국에 아몬드라는 제품을 처음으로 소개한 무역상사이다. 국내최초로 아몬드를 수입하며 견과류 업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호두, 건포도 등의 다양한 견과류를 수입 및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는 길림양행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오늘날 호두나 아몬드와 같은 넛트를 이렇게 다양한 맛과 형태로 즐기지 못할것이다.

때는 1982년도. 길림양행 설립자 윤태원 사장은 국내 선박회사에서 젊은 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당시 그는 회사내에서도 일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직원으로 소문이 나있었는데 자신만의 사업을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고, 좋은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항상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농림수산부에서 근무하는 선배한테 오랜만에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는 전화가 왔다. 그날 저녁 그 선배는 윤사장한테 다음과 같은 귀뜸을 해주었다. “앞으로 미국과 무역관계가 개선되면서 ‘아몬드’라는 제품에 대한 수입허가가 곧 떨어질거 같다. 땅콩이랑 비슷한 넛트인데 캘리포니아에서 많이 재배되며 이미 서양에서는 고단백 저칼로리 저콜레스테롤 건강음식으로 매우 인기가 좋은 제품이다. 너 이거 한번 해볼 생각 없냐?” 재미있는 사실은 그당시 윤사장은 ‘아몬드’라는 제품을 구경한번 해본적이 없었고, 선배가 가져온 사진을 통해서 처음으로 이 요상스럽게 생긴 넛트를 봤다고 한다.

그날 밤 윤태원 사장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수년간 선박회사에서 일한 직감에 의하면 이건 하늘이 자신한테 주신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누가봐도 위험하고 미친짓임에도 틀림없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제품을 – 그것도 사람들이 먹는 식품을 – 수입해서 판다는거는 리스크 그 자체였고 한국 시장이 아직 개방된것도 아니고 아몬드를 미국 어디에서 수입을 해와야하는지도 막막한 미지수 투성이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잘만 된다면 이건 바로 일생일대의 대박기회가 아닌가?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건강 식품을 수입해서 time to market을 극적으로 줄일 수만 있다면 후발업체들보다 최소한 수개월 앞서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임을 또한 부인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미국 아몬드 업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있었던때가 아니라 그는 미국에 국제전화를 해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아몬드 재배업체가 Blue Diamond Grower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 회사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밤을 꼴딱 새고 그 다음날 윤태원 사장은 선박회사에 시골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고 일주일 긴급 휴가를 신청하였다. 같은날 몇 시간 후 그는 서울발 캘리포니아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렌트카를 운전해서 새크라멘토 블루다이아몬드 본사로 찾아간 윤사장은 본인 소개를 하고 앞으로의 한국 시장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블루다이아몬드 아몬드에 대한 한국 독점 유통권을 다짜고짜 자신한테 달라고 하였다. 솔직히 지금같으면 100% 문전박대 당해야하는 황당한 상황이지만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 당시 미국인들한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지금과 같이 눈부신 발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블루다이아몬드 사장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한국에서 단숨에 미국으로 날라온 이 젊은이한테 흔쾌히 한국 독점 유통권을 주었다. 윤사장은 이 계약서를 가지고 한국으로 귀국해서 향 후 몇개월 동안 선박회사를 다니면서 밤에 회사 설립 준비와 아몬드 시장 공부를 틈틈히 하였으며, 선배의 말대로 얼마 안있어 한국은 1982년도에 캘리포니아 아몬드에 대해서 시장을 개방하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윤사장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길림양행의 모체가 된 (주)길상사를 설립하고 블루다이아몬드로부터 아몬드를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시장이 개방되었지만 전면개방이 아닌 quota 기반의 개방이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양의 아몬드를 수입할 수 있는 환경은 아직 조성되지 않았었다. 그해 길상사는 미국으로부터 블루다이아몬드 아몬드 5 컨테이너를 대한민국 최초로 수입을 하였다.

자, 이제 28년을 앞으로 돌려보자. 2009년도 길림양행은 캘리포니아로부터 약 300 컨테이너의 아몬드를 수입하였고, 매출 400억원을 달성하였다. 아몬드가 땅콩인지 호두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던 젊은이가 28년전에 맨땅에 헤딩해서 설립한 작은 무역상사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결과가 아닌가?

Part 1의 호리 회장도 대단하시지만 길림의 윤사장님은 어떻게 보면 더욱 더 우리에게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는걸 잘 시사해주시는 분이다. 지금은 건강상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셨고 그 아드님이 길림을 경영하고 있는데 올해 매출 500억원은 무난히 달성할거라는 귀뜸을 전에 한번 해주신 적이 있다. 우리 주위에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더욱 많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배울점이 많은 분들도 간혹 만날 수 있다는게 인생의 묘미이자 축복인거 같다. 솔직히 넛트 수입해서 가져다 파는건 나나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독자분들이 involve되어 있는 최첨단 산업과는 완전히 다른 low tech industry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이런 무역업을 하시는 분들을 무식하고 못배웠다고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어릴적에는 그랬으니까. 연봉 1천만원 받아도 무역상사보다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일하는게 내 명예나 가오를 위해서는 훨씬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을때가 있었으니까…

대한민국은 Yoshito Hori나 윤태원같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요새같은 시대에는 양놈들이 말하는 소위 “walk the walk”를 할 줄 아는 진국들이 더욱 더 필요하기에 이 두분들의 개인적인 인생 스토리를 이 미약한 블로그를 통해서 살짝 소개해봤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행동으로 옮겨라. 그렇게 못할거 같으면 정말 제발 잘난 주둥이는 닥치는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행동하든지. 닥치든지. – Part 1

2008년도 초,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US를 맨땅에서 시작했다. 매출 빵원 회사를 2년만에 월매출 수천만원 회사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super team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점과 아직 그 팀원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게 오늘따라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미국에서 2년 반동안 뮤직쉐이크를 운영하는 동안 나는 인터넷 비즈니스와 엔터테인먼트 분야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만났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걸음마 단계의 비즈니스를 두발로 일어설 수 있게 하려고 이사람 저사람 닥치는 대로 연락도 해보고 소개도 해서 만났던 수천명 사람들의 명함을 얼마전에 쫙 정리를 하였다. 그 중에는 지금은 실리콘 밸리에서 상당한 슈퍼스타들이 된 Zynga의 Mark Pincus, 구글의 Marissa Mayer, TechCrunch의 Michael Arrington, imvu의 Cary Rosenzweig, Smule의 Jeff Smith, AdMob의 Omar Hamoui,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흑인 가수 MC Hammer 등이 포함되어 있다. 2년전만해도 즉석에서 연락해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연락 조차 잘 안되는 잘나가는 유명인사들이 된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나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평가를 요 몇일동안 상당히 많이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내가 미국에서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한 부류는 입으로 일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즉, 말만 많고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들과 겉으로는 show off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알짜배기 사람들이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내 주위의 99% 사람들은 주둥이만 놀리는 놈들이다. 아마도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거 같다. 인생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만 하지 직접 뭘 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들로 바글바글하니까…오늘도 나는 이런 쓰레기 2명과 미팅을 하였다 (아 씨…시간 아까워).

Mr. A: 아 그사람? 제가 잘 아는 사람이죠. 제 대학 동긴데 학교 다닐때는 별거 아니었는데 지금 엄청 잘 나가요. 우리 외삼촌이 그회사 부사장이라서 그 회사에 대해서는 제가잘 알죠.
(A씨는 주위에 잘나가는 사람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거 같다. 문제는 본인은 전혀 못나간다는 점이다. 즉, 지는 별볼일 없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잘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데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다.)
배기홍 (속으로): 씨발. 근데 어쩌라고? 너는 모하는데?

Ms. B: 지금 개네가 하는 비즈니스를 내가 5년전에 생각했던 건데. 아 진짜 아깝네…누가 그렇게 잘 될줄 알았을까. 내가 학교 다닐때 친구들이랑 생각했던 아이템이 이건데 바로 똑같은 아이템으로 지금 이 회사가 수백억월을 벌고 있다니까..
(B양은 무슨 회사 이야기만 나오면 그 회사의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자기가 전에 생각했던거라고 말을 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즉, 지는 뭐하나 제대로 해본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배기홍 (속으로): 씨발. 근데 어쩌라고? 그럼 니가 해보지?

내 주위 99%의 사람들이 A씨와 B양과 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솔직히 짜증이 좀 많이 난다. 그 잘난 주둥이를 나불나불 거릴 시간에 하나라도 한번 직접 몸으로 해봤으면 지금쯤 훌륭한 사람들이 됬을텐데…오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행동하는거란 과연 무엇인가를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나랑 각별하게 친한 두 사람에 대해서 몇마디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이 사람들 말고도 이 세상 1%의 행동가 중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entrepreneur들이 다 이 1%에 속한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내가 아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여기서 내가 소개하는 이 두분들이야말로 행동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아주 생생하게 나한테 보여준 분들이며 지금도 나는 일을 할때 항상 이 분들의 젊었을때의 용기와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inspiration을 많이 받곤 한다.

Yoshito Hori – Founder and CEO of the Globis Group
나는 요시토 호리 회장을 2000년도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스탠포드 대학 아시아 학생회에서 돌아가면서 아시아 출신의 성공적인 비즈니스맨들과 entrepreneur들을 초청해서 강연의 자리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의 스피커 중 한명이었다. 그당시에는 글로비스라는 회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이분의 몇가지 강연 내용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었다. 그 중 하나가 글로비스가 일본 회사지만 아시아의 다른 나라로 진출할 기회가 생기면 본사를 일본이 아닌 한국에 설립하겠다는 주장이었다. 그당시 대부분의 회사들은 아시아 본부를 싱가폴이나 홍콩에 설립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는 한국과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dynamics에 대한 예찬을 하였다. 한국 사람을 칭찬하는 일본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라서 나는 강연이 끝난 후 호리 회장한테 다가가서 나를 소개하고 그 이후 계속 이메일로 연락을 하면서 지냈었다. 그리고 세상이 참으로 좁다는걸 다시 한번 느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근무하였던 자이오넥스라는 한국의 벤처 기업의 최대 투자자가 요시토 호리 회장이라는 점이었다. 하여튼 호리 회장과 나는 그동안 약 10년동안 알고 지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였고 서로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직간적접으로 아는 사이고 뭐 이렇게 엮인 부분들이 많았던 분이다.

Anyways, 요시토 호리는 1992년도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서 MBA를 땄다. 그는 하버드에서 경영학 석사를 공부하면서 대부분의 수업에서 활용되는 Harvard Case Study에 상당히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 상황에서 벌어졌던 비즈니스 케이스들을 전략, 마케팅, 영업, 리더쉽 등등의 각기 다른 분야로 분류한 후에 학생들한테 케이스를 읽게 만들고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겠니?”라는 질문을 하면서 학생들을 실제 경영자 입장의 위치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방식이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그로써는 매우 신선하였으며 그는 이러한 케이스 방식을 일본의 교육에 접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하게 되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HBS 관계자들을 찾아가서 일본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 분교를 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였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하였다. 하지만 HBS는 호리에게 하버드의 case study에 대한 일본 유통권을 주었다. 물론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HBS에서 분교를 만들기 싫다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는 미국의 케이스 방식을 활용한 자신만의 일본식 경영대학원을 일본에 세우기로 결심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과는 달리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쭈욱 할 계획이면 해외유학보다는 오히려 일본에서 학교를 계속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본에서 인맥을 쌓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인이나 한국인들같이 해외 유학을 가는 일본인들은 그렇게 많지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면 나도 스탠포드나 워튼 다닐때 한국 유학생들에 비해서 일본인들의 수는 매우 적었던게 기억나는데 아마도 이러한 이유때문인가 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굳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고 유학의 길에 오르는거 보다는 일본 현지에서 full-time 또는 part-time으로 다닐 수 있는 MBA 프로그램이 일본인들의 정서와 문화에 더 맞을거라는 생각을 그는 하였다.

하지만 졸업 후 일본으로 귀국한 호리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MBA 학위와 하버드 케이스 스터디 유통권을 제외하고 그가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은 달랑 $7,000이었다. 특히 시대적으로는 일본의 경기는 망가질대로 망가졌고 젊은이들한테는 꿈조차 없던 암울한 시대에 그는 귀국을 한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일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을 하고 본인의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선배의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사용하며 Globis MBA (Globis Management School – GMS) 경영 대학원에 대한 찌라시와 브로셔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당시 일본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한테 우편으로 보내고 전화로 follow up을 하였다. 초기 반응은 당연히 매우 부정적이었다. 듣도보지도 못한 젊은이가 경영대학원을 운영한다며 일본 유수 대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니 나같아도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었을거다. 인사담당자들은 유명한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하버드 케이스 스터디를 가지고 실전경영학을 가르쳐줄거라고 예상을 하였지만 막상 강사진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면, “제가 직접 가르칩니다.”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브로셔 발송과 cold call을 한 지 몇개월이 지났다. 한명의 학생이라고 나타나기면 하면 성심성의껏 본인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모두 가르쳐 줄 준비가 되었지만 아직 그 누구한테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물론, 초기 자본금 $7,000은 거의 바닥이 났다. 그래도 호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브로셔와 커리큘럼을 잘 포장하여 대기업 인사담당자들한테 보냈고, 전화를 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열성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렇게 몇개월을 노력하니…하늘도 이 젊고 포기를 모르는 일본인을 가엽게 여기셨는지 일생일대의 기회를 주셨다. 마침 일본 최대의 통신회사인 NTT의 인사 담당자가 NTT의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미국식 MBA 야간 교육 과정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와중에 호리가 보낸 찌라시를 우연한 기회에 보게되었고 그는 Globis에 문의전화를 하였다. 호리가 믿을만한 젊은이임을 확인한 후에 흔쾌히 NTT 중역 20명을 Globis Management School의 첫 수강생으로 등록을 시켰고 호리는 동경 시부야의 작고 허름한 강의실 빌려서 2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그가 지금까지 HBS에서 배운 내용을 죽을 각오로 자신보다 20~30살이나 더 많은 일본 노인네들을 대상으로 강의하였다. 아시아 스타일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던 NTT의 일본 중역들은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케이스 방식을 접하게 되었으며 호리는 강의실 중앙에서 아주 훌륭한 orchestrator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시부야의 허름한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던 글로비스의 첫 수업은 대성공이었고 NTT의 인사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회사 간부들의 글로비스 경영대학원 장기 계약을 하였다. 글로비스 MBA 프로그램에 대한 입소문이 드디어 일본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부터는 우리가 영어로 흔히 말하는…and the rest is history 이다.

그 이후로 10년을 fast forward 해보자. 2006년도 말 Globis Management School은 한 학기에 2,000명의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대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학교를 다니지만 학생 중 10%는 full-time으로 학교를 다니는 개인 사업자들이다. GMS의 학생들은 첫 고객인 NTT를 포함한 약 250여개 일본 대기업의 직장인들이다. 나도 동경 한복판의 금싸가리같은 땅에 위치한 글로비스의 본사를 2번 방문하엿는데 빌딩 시가만해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다. 내가 갔을때는 MBA 수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미국 MBA 강의실을 본떠서 만든 계단형 원형 강의실에서 직접 강연하는 호리 회장과 그를 아주 열정적으로 청강하고 수업에 참여하였던 일본 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호리 회장은 그동안 MBA 프로그램과 더불어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였으며 그 중 하나가 벤처 캐피탌업이다. 그는 글로비스의 브랜드하에 1996년도에 50억원 규모의 Globis Capital Partners라는 VC을 launch하였고 1999년도에는 영국의 Apax Partners와 공동으로 2,000억원 규모의 fund를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Globis Capital Partners는 1999년도에 일본식 회계 소프트웨어 벤처인 Works Application에 40억원을 투자하였는데 이 회사가 2002년도에 JASDAQ에 상장하면서 투자금액을 11배수에 회수하면서 초대박이 났다. 그외에 Globis Capital Partners는 Afro Samurai 애니매를 제작한 Gonzo Digimation, 일본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인 Gree 및 Clara Online과 같은 다양한 벤처기업들에 투자를 하였다. 호리 회장은 Globis의 벤처 투자와 성공 케이스를 통하여 더 많은 학생들이 Globis MBA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MBA 학생 중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MBA 강의실 바로 위층에 있는 Globis Capital Partners를 통해서 투자를 받을 기회를 갖을 수 있게 된다. 참고로 그는 MBA와 관련된 책을 또한 몇 권 출간하였는데 이 책들이 모두 일본에서 best seller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entrepreneur 중 한명이자 VC 이기도 하며, 아시아의 경제 발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visionary로 인정받고 있다.

호리 회장의 창업 스토리는 나한테 정말로 많은걸 느끼게 하였다. 인생은, 특히 비즈니스는 이렇게 해야하는거 같다. 호리 회장은 말을 많이 아낀다. 항상 남이 말하는걸 듣는편이지 본인은 정작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우리에게 많은걸 보여준다. 1992년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불가능하다고 욕을 하였던 일본식 경영 대학원의 설립을 혼자서 맨손으로 성공시켰던거와 같이…

나도 맘먹은게 있으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이다. 전에 블로그에서 한번 mention하였지만 한국에서 나는 미수금을 받기위해서 거래처 사장의 면상에 식칼을 들이대민적도 있다. 가끔씩 와이프가 우스개소리로 (I really hope it’s 우스개소리..)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오빠가 내편인게 참 다행이다. 내 매니저나 또는 적이었다면 인생 피곤할거야…”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가끔씩 이런 말을 한다. “I am glad we are on the same boat. 너를 적으로 두고 비즈니스 해야한다면 인생 정말 우울할거야…”

이 말들이 과연 좋은 말들인가? 좋게 보면 좋은 말들이지만 어떻게 들으면 내가 인생을 참 냉정하고 병신같이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들이기도하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한다.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뭔가를 보여주고싶다면 행동으로 보여줘라. 그렇게 못할거 같다면 잘난 주둥이는 영원히 닥치고 있자.

To be continued…

New Coke의 교훈

Coca-Cola Company는 1985년도에 “New Coke”를 출시하였다. 잘 아시다시피 콜라는 굉장히 단순한 음료수이다. 물에 설탕이랑 색소를 적당히 섞어서 가스를 집어넣은 “탄산 설탕물”이다. (여담이지만 콜라 이야기만 나오면 1983년도에 그 당시 펩시 콜라의 중역이었던 John Sculley를 Apple의 사장으로 스카웃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가 “나랑 같이 애플에서 세상을 바꾸겠습니까 아니면 평생 펩시에서 설탕 물을 팔래요?”라는 질문을 하였던게 생각난다. 존 스컬리는 이 말 한마디에 혹해서 애플로 넘어왔다). 본질은 설탕물이지만 코라 콜라는 단순한 음료수가 아니라 미국을 상징하는 가장 미국적인 음료수이기도 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인의 자유정신과 개척자 정신이 이 설탕물에 내포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특히 New Coke의 출시는 단순한 신제품의 launch를 넘은 미국 사회와 정치와도 밀접한 상관이 있는 대단히 상징적인 이벤트이기도 하였다. 코카 콜라를 안마시는 인구를 포함하여 코카 콜라가 미국인들의 (그리고 미국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조차) 머리와 가슴에 이런 애국적인 이미지들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대단한거 같다.

New Coke는 출시하기 전부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이르켰었고, 코카 콜라 중역들이 New Coke에 거는 기대는 대단하였다. 그럴수밖에 없던게 출시 전 사전 시장 조사에서 New Coke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었기 때문이다. 눈을 가리고 다른 콜라와 New Coke를 비교하는 blind taste 테스트에서는 모든 소비자들이 New Coke가 펩시 콜라보다 맛이 좋았고 심지어는 Coca-Cola 보다도 맛이 좋다고 하였을 정도로 New Coke의 맛은 신선하였다. 하지만, 사전 테스트와 출시 초반의 판매호조와는 반대로 곧 New Coke에 반대하는 소비자 반대와 데모가 시작되었으며 소규모로 시작되었던 이러한 반대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New Coke의 매출은 급격하게 추락하였다. 출시 몇일만에 New Coke는 코칼 콜라 최악의 실패작이 될 운명에 처한것이었다. 솔직히 나중에 이러한 이유들을 분석해보니 New Coke가 맛이 없어서 소비자들이 반대한게 아니라 신제품을 팔기 위해서 미국인들이 사랑하던 Coca-Cola 제품을 가판대에서 치워버림으로써 손상된 미국인들의 정서가 그 주된 이유였다. 어찌되었던간에 회사 절대절명의 위기 순간에 코카콜라의 경영진들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행동을 취하였다. 수조원의 연구개발과 마케팅 비용을 투자해서 만든 신제품 New Coke 출시 77일만에 그들은 미국 전역의 New Coke를 회수하는 동시에 New Coke 브랜드를 죽였다. Yes, 말 그대로 죽여버렸고 그 이후로 다시는 New Coke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Coca-Cola Classic이라는 브랜드로 원래 콜라를 부활시켜서 다시 슈퍼마켓 가판대로 돌려놓았다. 당시 코카 콜라 대표이사였던 Donald Keough씨는 미국 전역 공중파 TV에 나와서 미국인들한테 미안하다고 사죄하였으며, 코카 콜라 경영진들이 큰 실수를 범했다고 순순히 인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좋은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하였다.

“우리는 정말 바보같이 큰 실수를 저지렀습니다. 그렇지만, 코카 콜라 경영진들은 고객의 목소리를 무시할만큼 병신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고 Coca-Cola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미국인들은 오리지날 코라콜라의 귀환을 대환영하였으며, 코카 콜라의 매출은 급등하여 그 해 기록갱신을 하였다. 그래서 몇몇 전문가들은 이 모든게 코카 콜라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을까라는 의심도 하지만 설마 그정도로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까…

25년 전에 코카 콜라의 경영진과 대표이사가 자존심과 쪽팔림을 무릅쓰고 TV에 나와서 본인들의 실수를 인정하였던거는 가오 살리기 바쁜 super-ego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한박자 쉬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살다보면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거는 그때마다 스스로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좋은 교훈을 우리는 New Coke 마케팅 실패사건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아쉬운 사실이지만 오늘날 기업인들, 그리고 특히 정치인들한테는 실수를 인정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걸 우리는 현재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트렌드는 더욱 더 확고하게 전세계 구석구석에 바이러스 처럼 번지고 있다. 실수를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려운것일까? 나도 살면서 실수를 많이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실수는 사람을 죽이거나, 인간성을 배신하는 그러한 도덕적인 실수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순간적인 miscalculation으로 인한 실수 (주로 비즈니스적인)를 뜻한다. 실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어떠한 의도로 실수를 하였던간에 실수라는건 자신의 모자람과 그릇된 판단의 증거이자 산출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실수가 수만명의 직원들과 그 직원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회사의 중요한 전략에 관한것이라면, 아니면 더 나아가서 수천만명 국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국가 운명에 대한것이라면 빨리 실수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아직도 우리는 국민학생들도 이해할법한 이런 사실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거 같다.

아직도 계속 이슈화가 되고 있는 도요타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해프닝들과 (참고로 나도 피해자 중 한명이다. 얼마전에 렉서스 brake pad 교체하라는 안내장을 받은적이 있다) 일본 자동차 산업 사상 최악의 사태를 계속 follow 하면서 나는 도요타 자동차와 대표이사 Akio Toyoda씨한테 참으로 크게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이유로 인하였던간에, 그리고 그 결함의 크기에 상관없이 도요타 자동차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한거는 기정사실이다. 특히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는 자동차에서 이런 결함이 발생하였다면 그 회사의 대표이사와 경영진들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바로 그들을 믿고 제품을 사준 – 그것도 일이백원 하는 껌이 아닌 몇천만원씩 하는 고가의 자동차이다 – 고객들한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하는 것이다. 도요타같이 세계적인 회사에서 본인들의 실수를 순수히 인정하는거는 회사의 이미지와 일본의 얼굴에 먹칠하는거와 같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자존심 한번 죽이고, 가오 한번 죽이고 잘못을 인정하는게 과연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언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사건 발생 한참 후에 공중파를 통해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스미마쎙~”하는 도요다 사장의 모습과 얼굴을 보니 그 얼굴에 토라도 해주고 싶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이런 일들이 대기업의 PR과 매출에 얼만큼의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이해 못해서 이런 발언을 한다고 욕해도 상관없다. 이건 분명히 아닌거 같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을 하는 순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나 그 잘못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는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한화의 김승연 회장과 같은 기업인이나 이명박 대통령, 유인촌 장관과 같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도 25년전 코카 콜라의 경영진이 취하였던 행동으로부터 많은것을 배울 수 있는 자세를 지금이라도 조금씩 만들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모든 잘못이 용서받을 수 있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잘못을 하고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고, 주위의 가족과 직원들과 고객을 속이는건 더더욱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면 본인들은 잠이 잘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