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I am back. Live from LA

그동안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에 힘입어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했다. ㅎㅎ 농담이고, 이제 약간 새로운 생활에 적응되고, 학생은 아니지만 다시 블로깅을 시작할만한 환경이 되어서 다시 한번 밤마다 키보드를 두드리기로 했다.
어디서 시작해야할지..악의 도시 필라델피아를 떠나서 천사의 도시 LA로 온지 벌써 3개월이 되었다. 학교를 떠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학생이었다는게 어찌나 어색한지…2월20일 부로 LA로 이사와서 학생이 아닌 직장인으로써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새 집 구하고, 새로운 사무실 set up 하고..나나 와이프한테는 큰 변화가 아니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가 코리아 타운이라서 근처에 집을 구할까 했는데 여기저기 찾다보니 결국에는 LA와 Burbank 경계점에 있는 (그래도 주소는 LA) Toluca 언덕에 방 2개짜리 아파트
를 구했다. 회사까지 차가 막히면 30분, 교통이 원활하면 15분 정도 거리니까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다.

하여튼 굉장히 update할 내용이 많은데 어디서 시작할지…앞으로 차근차근 쓰도록 하겠다. 기대하시라 짠짠짠~~

Tough Choices


어제 오후에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왔다. 추웠지만 객지에서 집으로 와서 그런지 기분은 좋다. 내일이면 와튼에서의 2학기가 시작된다. 2번째 학기 (semester)의 첫째 quarter에는 재미있고 다양한 과목을 많이 들을 예정인데 앞으로 차차 한과목 한과목씩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말에 잠깐 시간이 남았을때 스탠포드 대학 앞에 있는 Borders 책방에서 오래간만에 책을 한권 샀다. 그러고보니, 미국에 와서 학교 공부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너무 안 읽은거 같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한달에 2권 정도는 읽었는데 생각해 보니 미국에 와서는 제대로 된 책을 한권도 보지 않았다. 하여튼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블로그를 통해서 잠시 소개를 하고 싶다.

불가능하다고 하였던 HP-Compaq deal을 가능케 하였으며, 인수 후 모든 작업을 매끄럽게 처리한 전설적인 여성 CEO Carly Fiorina가 쓴 자서전 “Tough Chioces – A Memoir“라는 책이다. Carly Fiorina는 이 거대한 인수작업 후 얼마 안되어서 HP의 이사회로부터 갑작스래 해고 당하였으며, 지금은 사회봉사 관련된 활동 및 강의를 하면서 인생을 보내고 있는걸로 알고 있다. 난 Carly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매스컴을 통해서 좋은 쪽 보다는 나쁜 쪽으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Carly Fiorina와의 유일한 interaction은 2001년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때 감명깊은 졸업연사를 하였는데, 이 때 본 기억밖에 없다 (몇 년 뒤인 2006년도에 Steve Jobs가 10배 더 감동깊은 졸업 연사를 하는 바람에 Fiorina 여사의 졸업 연사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거다…Jobs의 “Stay hungry, stay foolish” 기억나나?). 책에 있는 내용이 100% 맞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50% 이상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Fiorina 여사의 팬이 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여성으로써 남성 호르몬으로 중무장한 type A 남성들이 득실거리는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최고의 IT 회사 중 하나인 HP의 CEO가 되기까지의 처절한 노력에 존경을 표시하며, 그 이후의 성과에 경외심마저 표시를 하고 싶다.
Fiorina는 하느님이 자신에게 주신 보잘것없는 능력보다는 후천성 노력을 항상 강조 하는데, 나는 여기에 많이 공감 하였으며,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특히 내 눈을 catch하였던 문구가 있는데,
“If we cannot choose our circumstances, we can always choose our responses to them. If we cannot choose who we are, we can always choose to become something more.”

많이 와 닿는 말이었다…인생을 살면서 내 앞에 닥친 장애물이나 시련을 내가 고를 수는 없지만, 그 장애물이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스스로 고를 수 있다. To stop choosing is to start dying. 우리는 주위에 이런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볼 수 있다. 구두닦이 소년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는 이야기, 소녀 가장이 열심히 일해서 일가족을 먹여 살리면서 재벌이 되는 이야기….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지만 아직도 나약한 젊은이 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다. 공포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자. 나약해지지 말자. 강해 지자.

My fond memories of Stanford University

2008년 첫 아침을 조깅으로 시작하였다.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 학교 뒤에 있는 작은 산을 따라서 걷다 보니 눈앞에 펼쳐진 캠퍼스의 전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 컷 찍은 사진을 여기에 공개한다. 이 동네는 정말 하나도 바뀌지 않은거같다. 99년에 조깅하던 코스를 그대로 돌았는데, 당시 있었던 건물, 기숙사 등 모든게 그대로인게 8년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다른 사진은 내가 여기와서 처음으로 살았던 학교 아파트 Escondido Village 143A 사진이다. 아직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성원이형, UC San Diego에서 잘나가는 교수님 영환이형, Takram의 창업자 Moto, Tag Heuer의 Shanghai 담당 브랜드 매니저 Bon 모두 여기서 같이 살았으며 참으로 fond memory들이 많은 집이다. 지금은 또 다른 학생들이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 누구나 다 그런다. 미국에 처음 와서 정착한 곳에 가장 정이 많이 간다고….그래서 그런지, 하여튼 나는 이 동네가 참 좋다.

스탠포드 대학의 정식 명칭은 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이다. 철도사업으로 인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캘리포니아의 governor를 역임한 Leland Stanford와 그의 와이프 Jane Stanford가 16살 때 장티푸스로 사망한 외동 아들 Leland Stanford Jr.를 기리기 위해서 새운 대학교 이며,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지고 있지는 않지만 학교 설립의 배경 뒤에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있다.

서부에서 온 허름한 복장을 한 스탠포드 부부가 하루는 하버드 대학 총장을 찾아가서, 거금의 돈을 기부할테니 본인들 이름으로 건물을 하나 지어달라고 부탁을 하자 하버드측에서는, “우리는 돈도 중요하지만, 기부하는 분들의 사회적 지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신과 같이 부적절한 방법 (당시 철도 사업은 부패와 비리가 난무하였다)으로 벌은 돈을 하버드 대학 교정에 투자할 수 없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러자 기분이 몹시 상한 스탠포드씨는 “내가 서부에다가 동부 아이비리그 그 어떤 대학보다 거대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는 대학교를 만들고야 말겠다.” 라는 다짐을 하였으며, 그 산출물이 오늘날의 스탠포드 대학이다.

하버드에서 이 기부금을 거절한게 참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전세계의 innovation을 주도하는 인물들과 회사들, 그리고 실리콘 밸리가 탄생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평방 32km의 대지 위에 설립된 스탠포드 대학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는 대학이다. Moscow State University와 한때는 1,2등을 다투었지만, Jane Stanford 여사가 죽으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모든 땅을 대학교에 기부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최고의 대학교이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Google, Yahoo, SUN Microsystems, Cisco, Macromedia 등 세계 최고의 IT 기업들을 스탠포드 동문들이 설립하였으며, 후버 전 미대통령, Condoleezza Rice 현 미 국무장관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벨 수상자들을 스탠포드 대학은 배출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스탠포드 대학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학부인 중앙대학교,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와튼 스쿨 공히 모두 좋은 학교이지만 스탠포드는 내 가치관과 오늘날의 인간 배기홍 형성에지대한 영향을 준 학교이다. 99년 도 미국 유학 당시 top 10 engineering school에 지원하였으며 MIT 빼고는 다 붙었다. 특히, Purdue 공대Michigan 대학으로부터는 전액 장학금까지 받아서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그때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스탠포드를 선택한게 지금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된것이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퍼듀나 미시간 모두 굉장히 좋은 학교이다. 하지만, 내가 이 두 학교 중 하나에 갔으면 분명히 지금쯤 기계공학 박사가 되어서 자동차나 전자제품 회사에서 engineer로써의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을거 같다. 실리콘 밸리에 오기 전에는 나는 벤처기업이니 venture capital에 대해서 전혀 몰랐으며, 이 세상에 대기업이 아닌 다른 professional life가 있다는 거 조차 몰랐던 촌놈이었다. 이런 촌놈이 이 동네에 와서 많은 걸 보고 배우고, 지금은 그래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된거 같다.
후배 한 명이 요새 business school에 지원하고 있다. Stanford Business School이 당연 내 첫 번째 recommendation이다. I have great confidence in Stanford and Silicon Valley.

-Writing from Peet’s Coffee & Tea at the intersection of El Camino Real and San Antonio Road, using free Wi-Fi powered by Google

Adios 2007!

이제 9시간만 지나면 다사다난 (한국 뉴스에서 항상 쓰는 말이다) 하였던 2007년이 가고 2008년 새해가 밝아온다. 누구나 이때가 되면 한 해를 겸허한 자세로 뒤돌아 보게 되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돌아보면 “더 잘할걸”이라는 후회도 많지만, “그래도 이건 잘했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많은 변화와 시행착오를 겪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였고 실패도 하였지만 나름대로 성공한 한 해인거 같아서 약간은 뿌듯하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원하는 business school에 합격하였으며,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앞으로 내 미래의 기반이 될 비즈니스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던 보람찬 한 해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하여 변화하는 인간 배기홍임을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prove 한 거 같다. 또한, 현 generation에 약간이나마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힘차게 달리는 horse가 될 수 있도록 다짐한다. 나아가서,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좋은 사위, 좋은 학생,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스스로를 연마할 계획이다. 이명박씨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되셨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5-10년은 한국인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한테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거 같으며,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한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God bless Korea!

오전에 Altos VC의 파트너 Han Kim을 만나서 전문 VC가 보는 한국 벤처기업의 미래 및 Altos VC의 투자 방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굉장히 좋은 시간이었다. 많은 돈을 투자받는거 보다는, 필요한 만큼의 돈만 받고, 쓸데없이 인력을 늘리지 말고 적은 비용과 적은 인력으로 최대한 빨리 비즈니스를 흑자전환 시키는 것이 모든 벤처기업의 지상과제이어야 하는데, 너무나 많은 벤처 기업들이 대기업의 마인드를 가지고 쓸데없이 일을 벌리고 돈을 쓰다보니 돈만 날리고 망한다는게 Han Kim의 의견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기본 상식인데 일을 하다보면 항상 욕심이 생기는거 같다.

My 1st Christmas as a married man

최근 들어 이 블로그를 보시는 독자분들이 부쩍 증가한거 같아서 매우 기분이 좋다 🙂


Merry Christmas to everyone!!


이번 크리스마스는 나한테는 상당히 특별한 날이었다. 일단 유부남으로써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였으며, 한국이 아닌 머나먼 미국 땅에서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다. 와이프한테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다가 보통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하는 옷, 신발, 향수 같은 물건들 보다는 실용적으로 지현이가 정말 매일매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사주기로 하였다. 바로 새로나온 Adobe Photoshop CS3!! (지금까지 샀던 그 어떤 선물보다 비쌌다 ㅜㅜ) 디자인에 소질이 많고, 전부터 포토샾과 일러스트레이터를 가지고 싶어하던걸 알기 때문에 선물하였는데 지금 열심히 온라인 강의 들으면서 열공 (=심히 부) 하고 있다. 나는 속옷, 남방 등이 포함된 폴로 4종 선물 세트를 받았다.

한국에 있으면 크리스마스를 보통 친구들과 같이 즐기는데, 올해는 동부에 계신 우리 누님과 처형 그리고 우리 식구 2명이 오붓하게 family dinner를 하기로 하고 통상 모이는 뉴욕이나 필라델피아가 아닌, 필라델피아에서 약 1시간 15분 정도 떨어진 동부의 카지노 리조트인 Atlantic City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운 좋게도 우리 누나가 아시는 분이 Atlantic City Caesar’s Palace의 VIP 고객인 관계로 큰 suite room을 무료로 예약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4명이서 모이니까 참 재미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머나먼 미국 땅에서 extended family가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걸 매우 감사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 새벽 2시까지 slot machine을 열심히 하였는데 (참고로 나는 도박을 전혀 못해서 Poker나 Blackjack과 같은 table game은 안하기 때문에 큰 돈을 잃지는 않는다) 막판에 그래도 “777”이 여러번 나와서 최종 전적은 괜찮은 편이었다. 지현이는 남편보다는 통크게 Blackjack을 $100 어치 하였는데, 경제학/통계학 교수님들이 가르쳐준 이론과 같이 모든게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게 현실인거 같다.

가끔씩 답답할때 대서양도 보고 갬블링도 하기에는 딱 좋은 동네가 Atlantic City인거 같다. 내일 지현이는 새벽 6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나는 8일간 실리콘 밸리로 가서 네트워킹을 할 계획이다. 추운 필라델피아를 탈출해서 따뜻한 서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