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이 남자 – Harry J. Wilson

미국과 전세계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고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General Motors가 6월1일 부로 파산 보호 신청을 하였다. 어떻게 이 거대한 제조업체가 망했는지 나는 아직도 좀 어이가 없는데 돈도 못 벌면서 쓸데없이 Transformers 영화에 돈을 갖다 붙는거 보고 알아봤어야 했다.

오바마 정부가 GM을 살리려고 형성한 Auto Team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사실은 없다. 전 사모펀드 투자자였던 Steven Rattner가 Auto Task Force를 리드하고 있으며, 숫자에 관해서는 천재들인 industry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다. 특이한 사실은, Rattner씨 팀의 실제 업무를 총괄하는 인물은 37살의 Harry J. Wilson이라는 젊은이라는 점이다. 37살이면 (아마도 미국 나이이니까 한국나이로 치면 39살이겠지? 그래도 젊긴 젊은거다..) 나랑 4살 차이인데 어린 나이에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하는거 같다.이 아저씨의 백그라운드를 조금 조사해보면…하버드 학부와 MBA 출신이고, 그동안 줄곳 금융업계에서종사를 하다가 (Blackstone Group과 Goldman Sachs에 잠깐씩 일하다가 Silver Point Capital이라는헷지 펀드에서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번 모양이다)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와이프와 애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은퇴하였다. 그러다가 급작스러운 세계 경제의 몰락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2009년 1월 31일날 Steve Rattner한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메일의 내용은 자동차 산업이 밀집해 있는 디트로이트를 구조조정하는걸 직접 도와주고 싶으며, 그동안 걸어왔던 커리어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뛸 자신이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나도이 이메일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매우 감동적이고 스마트하게 썼을거다. Wilson 씨에 대해서 한번도 못 들어봤던 Rattner씨는이 이메일을 보고 감명을 깊게 받았으며 Auto Team 조인하는걸 승락하였다.

Rattner씨로부터 고용된 후 3월13일날 Wilson 씨는 주위 친구들과 일하면서 만났었던 지인들한테 Auto Task Force의 내용과 구인 이메일을 돌렸으며, 이후 짧지만 강도높은 인터뷰를 통해서 Rattner씨와 Wilson씨는 오바마 정부의 자동차 팀을 완성할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력들을 채용하기 시작하였다. 각 팀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Matthew Feldman과 같은 유명한 파산/구조조정 변호사를 비롯하여 아이비 리그 학부를 갖 졸업하고 디즈니사에서 2년동안 인턴을 한 Clay Calhoon과 같은 어린 친구도 있다고 한다.

정부를 위해서 일하는건 굉장히 매력이 없다고 나는 항상 생각을 해왔다. 연봉이 너무 짜다는게 가장 큰 이유이고 실제 기업의 operation을 볼 수 없다는게 또 한가지 이유인데 그래도 Auto Task Force가 담당하는 이 정도 규모의 일은 금융에 관심있는 남자로써는 누구나 한번 정도는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이 아닐까 싶다. GM과 같이 복잡하고 큰 회사의 파산 절차를 옆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파산 보호 신청을 한 회사를 다시 내 손으로 개선 시킨 후 회사를 살린다…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고, 애국심이라고 할까…어떠한 사명감이 없다면 힘든일일거 같네.

Fortune 500 미국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 탄생

테스토스테론으로 똘똘 무장한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Corporate America를 eBay의 Meg Whitman, HP의 Carly Fiorina, Pepsi의 Indra Nooyi와 같이꾿꾿하게 지키던 Xerox의 Anne Mulcahy가 몇일전에 은퇴를 발표하였단. 후임 CEO는 아직 바깥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Anne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Ursula Burns라는 흑인 여성이다. 미국 기업의 CEO 중 흑인이 거의 없는건 알고 있었지만 (남성 or 여성), Ursula Burn가 Fortune 500 기업 중 미국 기업 최초의 흑인 여성 CEO라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넘기위해서 이 흑인 여성이 얼마나 힘들게, 그리고 열심히 노력을 했을지 조금이나마 상상이 간다.

Annu Mulcahy는 33년 전 Xerox에서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0년 5월에 당시 CEO Paul Allaire가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교체되면서, 2001년 8월에 Xerox의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을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Anne Mulcahy가 누구지? Xerox 내부에 있던 사람인가?”를 물을 정도로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미국 여성이었다. 물론,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CEO가 되었겠지만…Anny Mulcahy가 새로 취임하였을 당시 Xerox는 내/외부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밖으로는 일본의 경쟁사들이 계속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훔쳐가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회계 부정으로 인해서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큰 벌금을 물었다. 그렇지만, Mulcahy 여사는 조용하고 꾸준히 회사의 전략을 잘 실행해서 취임 두번째 해부터는 부채를 줄이고 새로운 제품군들을 성공적으로 출시해서 이제는 해마다 약 1조 2천억원의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Mulcahy가 손댄게 전부 다 성공한거는 아니다. 해외 시장 진출이 예상하였던거보다는 잘 되지 않았고, 현재 Xerox의 주가도 Mulcahy가 취임하였을때보다 썩 좋아지지는 않았다.

Burns 신임 사장 또한 Mulcahy여사같이 Xerox 내부에서 실력을 닦은 내부인력이다. Columbia 대학에서 engineering degree를 받고, 엔지니어로 Xerxo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Xerox의 굵직굵직한 operation들을 담당하면서 서서히 주위 동료들로 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Paul Allaire의 특수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 engineering에서 management로 전환을 하면서 corporate ladder를 지금까지 꾸준히 올라왔다.

앞으로 할일이 많은 회사에, 할일이 더욱 더 많은 시점에 취임하게 된 이 흑인 여성 CEO의 활약이 기대가 된다.

Spain II – Las Palmas de Gran Canaria

1984년, 머리털 나고 난생 처음 해외로 나갈 기회가 생겼다. 아버지가 그 당시 수산회사에서 근무하고 계셨는데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것이다. 그 당시 해외라고 하면 무조건 “해외 = 미국” 이어서, 나도 당연히 미국으로 가는줄 알았다. 그런데 왠말…미국이 아니라 스페인이란다. 스.페.인.?? 스페인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지? 투우의 나라?

하여튼 2년 발령을 기약으로 우리 가족 4명은 (엄마,아빠,누나,나) 거의 20시간의 비행끝에 머나먼 유럽의 스페인으로 이사를 가게되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스페인 본토도 아니고 스페인령의 작은 Las Palmas라는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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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Palmas는 Las Islas Canarias (카나리아 섬들)라는 7개의 섬으로 구성된 스페인령 군도 중 하나인 Gran Canaria섬의 도시이자 수도이다. 스페인령이지만, 카나리아 섬들은 오히려 스페인 본토보다 아프리카에서 더 가깝다. 정확한 위치는 대서양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에서 약 210km 정도 떨어져 있고, 총 인구가 약 800,000명 (우연히도 스페인 전체 실직자 수와도 일치한다 ㅋ) 정도인데 요즘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 당시에는 한국인들도 꽤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와 같이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작은 섬에 deep sea fishing 한국 회사들 (동원수산, 오양수산, 사조참치 등등…)의 유라프리카 본부가 있기 때문이다. Deep sea fishing이라고 하면 주로 참치, 오징어 그리고 대하 (왕새우)를 말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곳이 바로 이 Las Palmas라는 섬인데 생각해보면 틀린말도 아니다. 처음에 우리 가족이 라스 (보통 한국사람들은 그냥 줄여서 “라스”라고들 한다)에 2년 계획으로 갔던게, 1년씩 계속 늘어나면서 5년반이 되었는데 이 5년반동안 내내 나는 수영빤쓰 하나 입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 바로 앞이 바닷가라서, 그냥 수영복 입은채로 바다에 들어갔다가 다시 집에 오고…학교 안가는 날이면 매일 이 사이클을 반복을 하곤 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기미, 반점 때문에 햇빛을 꺼려하는거와는 달리 나는 해만 나면 LA에서 항상 웃통을 벗고 썬탠을 즐기는 편이다.

이 작은 섬에서 5년반동안의 생활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순간들이었다. 현재의 생활을 제외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를 뽑자면 라스팔마스에서 살았던 5년반과 군대시절 (용산 카투사 시절)인데 스트롱 벤처스의 partner in crime인 John Nahm과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철이가 다 이때 같이 라스에서 코흘리면서 놀았던 친구들이다. 지상 최고의 날씨, 세계 최고의 음식 (스페인 음식도 맛좋지만, 섬나라 음식은 더욱 더 맛있고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훈훈한 인심 그리고 낙천적인 사람들…유럽 많은 나라를 여행하였지만, 라스팔마스같이 좋은 기억만 남는 곳은 없는거 같다.

실은 신혼여행을 라스팔마스로 가려고 했다. 지현이한테도 남편이 어렸을적 자랐던 곳을 보여주고 싶었고, 친구들도 소개시켜 주고 싶었고 (아직도 많은 스페인 친구들은 섬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동네 치과 의사, 잘나가는 주방장, 동네 양아치 등등…), 휴향지로써도 손색이 없으니 일석이조인 곳인데 한국에서 가려면 너무나 먼 비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단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는데 아마도 내년 즈음 한번 가지 않을까 싶다. 실은 운 좋게 2010년 남아공에서 개최되는 월드컵 표를 구하게 되어서 월드컵을 보러가면서 유럽을 한번 들릴까 지금 생각 중이다.

한국사람들이 잘 안가는 섬나라 휴향지에 가서 푹 쉴수 있는 휴가를 원하시는 분들한테는 강추하는 곳이다 – Las Palmas de Gran Canaria

Spain I – laid off, laid back

Wikipedia의 정의에 의하면 실업률 (unemployment rate)은 “일을 할 수 있고, 현재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percentage”이다. 2009년 3월 기준, 미국의 실업률은 9%이고 대한민국의 실업률은 3.5%인데 숫자로만 보면 한국이 훨씬 낮지만, 전통적으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 치고는 적은거는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강조하고 싶다. 실업률이 40%인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말도안되는 국가를 제외하면 과연 실업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어디일까? No.1인지는 나도 확실치는 않지만 (웹을 뒤져봐도 정확한 정보는 구하기가 힘들더라) no.1에 아주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나라가 유럽의 스페인이다.

현재 스페인의 실업률은 17%이며,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20% 선을 돌파할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나는 84년부터 90년까지 스페인에서 거주한적이 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스페인은 항상 실업률이 높았던 나라로 생각된다. 그래도 EU의 평균 실업률이 8%인거를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참 신기한게, 통계적으로 이 정도로 실업률이 높으면 국민들이 사회적으로 느끼는 불안감도 극도에 도달해서 폭동과 시위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을 하는데 스페인은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너무나 조용하다. 아직 노조 지휘하의 제대로 된 시위 한번 하지 않았고, 수틀리면 바로 길거리로 뛰쳐나가서 사회와 정부에 무모하게 맞서는 유럽 국가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게 스페인 실업자들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고 경제/사회/심리학자들은 말한다.

1. 스페인 사람들은 고향을 잘 안 떠난다 – 한국에는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있다. 좋은 학교/좋은 직장을 찾아서 너도나도 다 서울로 이사를 한다. 오죽하면 4천만 국민 중 30-40%가 서울이랑 서울 근교에 살까? 스페인은 우리와는 좀 반대이다. 많은 연구결과에 의하면 스페인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 싫어한다. 한곳에서 태어났으면, 그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 동네에서 직장을 구하고, 그 동네에서 결혼해서 가족을 형성하는걸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친가/처가 식구들이 대부분 한 지역에서 가까이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성향은 전세계가 호경기를 누리고 있을때에도 스페인만은 유독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였는데 (기동성이 떨어져서), 경기가 좋지 않으면 그 상황은 반대가 된다. 가족들과 가까이 살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의 일원이 있으면 서로 돕는 문화가 생기고, 집을 사려고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하면 가족들이 서로 서로 도와준다. 그렇기 때문에 주택 foreclosure도 상대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집이 저당 잡히더라도 다른 가족들과 같이 살면 그만이기 때문에 미국을 망하게 하고 있는 housing 위기에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고 있는것이라고 한다.
2. 실직한 대부분의 인력이 비정규직이다 – 현재 스페인 실업자들의 많은 부분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인력들이 차지하고 있다. 즉,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는 여성인력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 실직을 당한것이다. 800,000명의 비정규직 인력과 자영업자들이 직장을 잃었지만, 오히려 2009년 1사분기에 스페인의 정규직 인력의 숫자는 증가하였다고 한다.
3. 호경기/불경기 상관하지 않고 끈임없이 활성화되는 암시장 – 스페인과 이태리의 암시장은 세계 최고의 암시장 중의 하나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스페인 경제활동의 20% 이상이 암시장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4.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 이 4번째 point에 대해서는 내가 다음 블로그 post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하겠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태어날때부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다. 산부인과에서 애가 태어났는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뭐가 잘못된줄 알았는데,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애기가 siesta (스페인 사람들이 3시간 동안 자는 특유의 낮잠)를 즐겨서 그렇다고 하는 우스게 소리도 있다. 직장이 있으면 가서 일하고, 직장이 없으면 그냥 집에서 쉬고…세월아 네월아 하고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는게 스페인 사람들은 어렸을적부터 몸에 배인 천성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크게 좋아지지도 않지만, 실업률이 이렇게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동요 없이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이유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Laid-off but laid back인 인생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인생을 느리고 여유있게 사는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미친듯이 달리고 바쁘게 살아도 하고 싶은 일들의 10%를 하면 잘한게 인생인데 놀거 다 놀고, 쉴거 다 쉬고, 잘 되던 잘 안되던 그냥 동키호테같이 느긋하게 사는게 말이 되는가?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스페인 친구가 나한테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빨리 빨리 인생을 사는거야. 이제 한국도 좀 살잖아…좀 즐기면서 살지…” 라고 한적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친구한테 “Fuck you. 그러니까 니네가 그 모양이지.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매일 매일 낮잠 3시간 안자면 코가 삐뚫어 지냐.”라고 심하게 쿠사리를 준적이 있다.

자…이제 시간을 좀 fast forward 해보자. 아주 바쁘게 인생을 빨리빨리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이 한국인 청년은 그냥 average한 삶을 살고 있고, 매일 낮잠 3시간씩 자면서 편하게 인생 살았던 스페인 청년은 유럽에서 알아주는 비즈니스 맨이 되어 있다. 요새는 낮잠을 1시간 밖에 못잔다고 하더라. 인생이란!!

The Art of Selling – Part 2

뮤직쉐이크를 미국에서 처음 시작할때, 1년 안으로 내가 꼭 달성하고 싶었던 몇가지 주요 목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굴지의 YouTube와 공식적인 파트너쉽을 맺는거였다. 그 당시만해도 (지금도 거의 그렇지만 ㅎ) 아무도 모르는 뮤직쉐이크라는 한국의 작은 벤처기업이 유투브와 파트너쉽을 맺는 다는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어디서 시작을 해야할지도 조금 막막하였고…그래도 내가 꾹 믿고 있었던거는 한국이던 미국이던간에 영업은 무조건 적극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하면 된다는거였다. And here is my story:

1. YouTube – YouTube는 그 당시만해도 beta 서비스를 하던 AudioSwap이라는 기능이 있었는데 동영상에 음악이 없거나, 아니면 기존 음악을 바꾸고 싶으면 유투브가 제공하는 오디오 library의 음악으로 기존 동영상의 오디오를 바꾸는 (swap) 그런 기능이다. 워낙 저작권 때문에 고소를 많이 당하는 유투브라서 뮤직쉐이크와 같은 copyright free음악은 이 모델에 딱 맞는 그런 케이스여서 반드시 이 서비스랑 뮤직쉐이크를 한번 엮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문제는 수많은 구글의 직원 중 AudioSwap 담당자를 찾는거였고, 거의 사막에서 바늘 찾는거와 같이 어려운 과제였다. 그런데 아주 아주 재수좋게 한 음악 관련 행사에서 YouTube의 음악 저작권 담당자인 Glenn Brown이 패널에서 이야기 하는걸 보고 연락처를 받은 후 다시 연락을 취하기로 하였다. 솔직히 이런 복잡한 conference에서 누구를 만나서 인사를 하고,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한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 실제로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냥 명함첩에 명함 하나가 더 늘어나기만 하는데 내 경우는 조금 달랐던게 나는 정말로 YouTube 담당자와 아주 desperate하게 만나기를 원했었고, 내 성격상 뭘 하나 하려고 결심을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사무실로 복귀하자마자 바로 연락을 시도했다.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연락이 잘 안될거라는거는 각오하였고, 어차피 내 전략은 연결이 될때까지 무조건 연락한다였기 때문에 시간 날때마다 이메일 보내고, 전화해서 메시지 남기고, 안되면 리셉셔니스트한테 메시지 남겨달라고 부탁하고…뭐 이 짓을 한 일주일 동안 하니 (지금 보니 이메일을 15개, voice message를 6개, 비서랑 3번 통화를 했더라..) Glenn한테 결국에는 전화가 왔다.

예상했던거와 같이 “요새 많이 바쁘니까 한 2달 후에 다시 연락하자.”라는 말을 하였는데 뭐 어쩌겠냐…알았다라고 하고 다음날 부터 다시 연락을 시도했다. “바쁜거는 알겠고, 지금 해야할일들이 많은거는 당연히 이해를 한다. 그렇지만, 뮤직쉐이크라는 서비스를 너는 잘 모르고 분명히 이걸 한번 보면 생각이 바로 바뀔것이다. 나한테 30분만 시간을 주면 내가 당신의 생각을 바꿔 보겠다. 만약에 30분 후에도 생각의 변화가 없다면, 더이상 괴롭히지 않겠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동을 보면 알겠지만, 나랑 한번 만나지 않으면 아마도 만날 수 있을때까지 나는 계속 전화질이랑 이메일질을 할거니까 알아서 판단하세요.”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을 하니 Glenn도 내가 완전히 작정을 한 사람이라는걸 느꼈는지 딱 30분 시간을 줄테니까 YouTube에 와서 미팅을 하자는데 승락을 하였다. 그 다음 부터는 아주 분홍빛 이야기이다. 뮤직쉐이크라는 서비스가 전화나 글로 설명을 하면 상당히 이해하기가 힘든 서비스이다. 그렇지만, 일단 한번 보고 들어보면 상당히 impressive한 기술과 서비스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90%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미팅 장소를 떠나게 되는데 유투뷰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Glenn 뿐만이 아니라 유투브의 다른 사람들도 만났고 그 중 Kenji Arai라는 스탠포드 선배인 일본 사람이 뮤직쉐이크 담당자로 지정이 되면서 한국회사로써는 처음으로 YouTube의 audio contents의 프리미엄 파트너쉽을 맺었고, 지금은 내가 알기로는 AudioSwap 파트너 중에서 뮤직쉐이크곡이 가장 많이 AudioSwap library에 올라가 있으면 매출 또한 가장 많이 만들고 있는걸로 알고 있다. 파트너쉽 계약서를 사인하고 Kenji가 나한테 했던 말이 기억난다.

“Kihong, 뮤직쉐이크가 우리랑 이렇게 빨리 일을 할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뮤직쉐이크의 high quality music과 superior technology 덕분에 이번 파트너쉽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체결된걸 축하한다. 그리고 이제는 어찌되었던간에 첫단추는 잘 채웠으니, 나 좀 그만 괴롭혀라. 너 전화번호 뜨는거만 보면 무섭다.”

2. Habbo – Habbo는 간단하게 말해서 싸이월드메이플스토리 게임을 합친 유럽의 대표적인 social network 사이트이다. 말도안되는 유치하게 생긴 아바타를 가지고 Habbo 호텔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내 방을 꾸미면서 친구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사이트이며 자기 호텔방을 더 이쁘게 꾸미기 위해서 가상 가구를 사는데 돈을 내야하며, 이게 바로 Habbo의 주 수익원이 된다. 유투브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Habbo와 어떤 방식으로라던지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으며, 산타 모니카에 있는 하보 사무실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비서인 Katie라는 여자가 전화를 받았고 나는 내가 왜 전화를 하였는지 최대한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하였고 (비서가 뭘 이해하겠냐마는 그래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최대한 공손하게 설명을 하였다) 담당자와 연결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지금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니까 메시지를 남기면 전달해 주겠다라고 나의 요청을 공손하게 무시하였고, 나는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일단 상황 종료를 한다. 전화를 했고, 최대한 부탁을 하였으니까 어떻게 연락이 되겠지 라고들 생각을 하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입장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봐라. Habbo 같이 잘나가는 회사에 나같은 무명의 회사에서 얼마나 연락이 자주 오겠는가? 이 모든 call 내용들을 담당자한테 비서가 전달을 할까? 개소리지…내가 비서라도 절대 전달을 안해줄거다. 뮤직쉐이크에서 온 전화랑 동네 양아치한테 온 전화랑 뭐가 그리 다르겠냐? 다 똑같은 sales call이겠지…

그래서 또 나는 내가 잘하는걸 하였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기…될때까지 전화하기 ㅎㅎ. 한 3일 연속 전화를 하니까 Katie도 짜증이 났던지 그러면 자기한테 이메일을 하나 써서 보내면 그걸 담당자한테 fwd를 하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동안 미운정이 들었는지 나랑 상당히 친해져서 내가 Habbo라는 회사에 대해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또 나라는 인간이 사기꾼이 아니라 정말로 Habbo와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걸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에 Katie는 Habbo의 business development 담당자인 Jeremy Monroe와 나를 연결해 주었으며, 유투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뮤직쉐이크 데모를 보고서 Jeremy 또한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이후에 Jeremy랑 나는 상당히 친한 친구가 되었고 Habbo와는 아주 특별한 비즈니스 relationship을 만들지는 못하였지만 Jeremy가 최근에 Music Mogul이라는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Music Mogul과는 지금 partnership이 상당히 잘 진행되고 있다. 지금도 Jeremy랑 우스게 소리로 농담을 하는데, “너는 정말 끈질긴 놈이야…그때 내가 안 만나줬으면, Habbo 사무실로 그냥 찾아왔을거야.”라고 한다. 근데 정말이다. 만약에 Habbo에서 안 만나줬으면 나는 그냥 회사를 방문했을거다.

위의 두 case를 통해서 내가 항상 주위 사람들한테 주장을 하는거는 바로 ‘끈기’와 ‘독기’이다. Business는 로케트 과학이 아니다. 아주 간단한 게임이며, 끈기있는 놈이 결국에는 이기는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게임이다. 한번 찍어서 안 넘어가면, 또 찍고, 또 찍고, 다른 방향에서 찍고, 하여튼 넘어갈때까지 계속 찍으면 되는거다. 처음 시도해서 되는건 없고, 될때까지는 많게는 100번 넘게 rejection을 당할 수 있다. Rejection을 당하는게 솔직히 썩 좋은 경험은 아니지만, 이걸 남이 나를 거절했다고 생각하는거 보다는 내가 방금 시도한 방법은 맞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는게 좋다. 그래야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쪽팔릴것도 없다. 설사 내가 좀 쪽팔리면 어떠냐…이로 인해서 회사가 살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월급이 나가고, 그 직원들한테 딸린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훌륭한 체제가 마련되는데…

어려운건 아니다. 다만, 스스로한테 냉정해야하고 계속 훈련이 요구되는 작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