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쓰기와 읽기의 중요성

며칠 전에 쓴 글에서 공유했듯이 우린 상당히 많은 인바운드 콜드 이메일을 받는다. 스트롱에게 뭔가를 제안하는 업체가 연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99%는 우리에게 피칭하는 스타트업 대표의 이메일이다.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누가 어디서 언제 어떤 엄청난 사업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스트롱 웹사이트에 언제든지 우리에게 피칭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써놨기 때문에, 우리는 소개 없이 오는 이런 콜드 이메일을 웬만하면 다 읽는다.

몇 년 전에는 이렇게 연락이 오는 창업가를 나는 되도록 30분~45분 정도 직접 만나서 어떤 분인지 파악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젠 콜드이메일이 오면 보낸 분과 두세 번 정도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한 후에 이분을 만날지 안 만날지 결정을 하고, 이렇게 했을 때 전환율은 20% 미만으로 그렇게 높진 않다.

왜 나는 10개의 콜드 이메일이 오면 왜 이 중 2명의 창업가만 대면 미팅하고, 나머지 8명은 안 만날까? 결론은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강조하는 “쓰기와 읽기”와 연관됐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써보고 싶다.

나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 이 분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IQ와 EQ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분이 쓴 글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작가는 아니라서 작품을 만들진 않지만, 일을 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다 이메일을 작성한다. 나에겐 이런 일과 관련해서 작성하는 이메일이 이들이 쓰는 글이다.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업무의 많은 부분을 아직도 이메일로 하는 처지에선 이메일 = 태도, 인격, 사고방식, 논리, IQ, EQ일 정도로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이 쓴 이메일을 자세히 읽어보면 여기에 정말 많은 게 담겨있어서, 콜드 이메일이 오면 나에겐 1/ 바로 지우기, 2/ 질문하기, 3/ 바로 만나기, 이 세 가지 옵션이 있다.

일단 나는 이메일 제목을 본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본인이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전달할지 모르는 창업가는 제목부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케이스라면 여기서 바로 삭제다. 제목을 넘어가면 본문을 읽어본다. 역시 개념이 없는 창업가의 이메일 내용은 상당히 거추장스럽고 핵심이 없다. 부사가 많고, 느낌표가 많고, 이 분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이해가 안 간다. 두 번 읽었는데 핵심 파악이 안 되면 여기서 삭제다.

그다음으론 첨부한 사업계획서를 확인해 본다. 이제 나는 pitch deck을 하도 많이 봐서 내용을 깊게 읽지 않고, 전반적인 흐름만 봐도 이 자료를 만든 사람이 생각하면서 만든 건지, 그냥 여기저기의 내용을 짜깁기 한 건지, 아니면 아예 AI로만 만든 건지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자료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다. 자료만 번지르르하게 만들고 실제 사업은 개판으로 하는 창업가를 하도 많이 알고, 사업은 손가락과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과 손발로 하는 것이라는 걸 더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투자자에게 콜드로 연락할 땐, 이 두 명을 잇는 얇은 끈은 이메일과 자료라서 여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통과하면, 그리고 창업가가 쓴 글, 흐름, 내용이 맘에 들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미팅 요청을 한다.

자료까지 읽었고, 전반적으로 괜찮지만 당장 만나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면 이메일로 추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메일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내 나름의 human intelligence를 기반으로 이 창업가가 어떤 사람인지, 시간을 투자해서 만나볼 만한 분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묻는 질문에 투명하고 간단명료하게 답을 할 수 있는 분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장황하고 논지에 어긋나게 제공하는 분이 상당히 많은데, 이메일 커뮤니케이션만 봐도 이 분이 앞으로 직원, 투자자, 고객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그림이 그려진다.
이메일에 내용은 없는데 부사, 느낌표, 볼드체, 밑줄, 다양한 컬러의 텍스트만 과하면 이 분은 프로페셔널한 소통이 힘든 분일 확률이 높다.
이메일 답변이 오는 시간도 나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 답변 오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면, 이 분은 전반적으로 빠른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는 분일 확률이 높다. 투자를 꼭 받아야 하는 이 간절한 시점에도 이렇게 느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실제 투자받은 후엔 얼마나 더 느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ply all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소양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답변을 할 때 우리 동료분들을 모두 cc 하면, 이후의 소통은 항상 같이하는 게 기본인데, 나에게만 답변이 오고, 내가 다시 답변하면서 우리 팀을 cc 하면, 또 나에게만 답변을 한다. 결국 “항상 reply all 해주세요”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를 해드리는데, 이후에도 이걸 잘 안 하는 분도 많다. 이건 지능에 약간 문제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 경험이 별로면, 몇 번 소통하다가 결국엔 pass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콜드 이메일을 스크린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노력을 한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메일을 작성하고, 내용이 있는 자료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뭐든지 많이 써보는 것이다. 일기를 매일 쓰던, 블로그를 쓰던, 하여튼 writing을 무조건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잘 쓰고 싶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책, 잡지, 신문 등 텍스트를 많이 읽으면 잘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100% 모두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도 잘 쓴다.

책임 회피하기

오지큐 신철호 대표님과 이 회사의 투자자들 간의 갈등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요새 큰 이슈가 됐다. 나는 신철호 대표님을 과거에 뵌 적은 있지만,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이고, 오지큐 회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실은 이런 창업가와 투자자 사이의 분쟁과 갈등은 정확한 사정을 모르면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대부분 he said, she said, I said 상황으로 간다. 그래서 신대표님의 포스팅이 페이스북 피드에 떴을 땐, 내 경험으로 이 사건도 진실은 이 분의 주장과 투자자의 주장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신대표님의 이야기를 계속 읽어보니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 분이 억지 주장을 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에 진실이 이 분의 말에 더 가깝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2026년도에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이고, 전세계에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장 잘 성장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 놀랍긴 하다.

어쨌든, 나는 정확한 사실을 모르니 판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궁금해져서 오지큐 관련 내용을 조금 더 읽다 보니, 내가 몇 년 동안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라서 이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고 싶었다. 책임 회피와 전가에 대한 이야기다.

VC와 창업가 사이에 이런 갈등이 발생하면,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법적 분쟁을 시작하진 않는다. 대부분 만나서 대화로 시작하는데, 나는 매우 많은 VC가 이런 상황에서 창업가들과 진지하고 프로페셔널한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어떤 분들은 아예 처음부터 대화할 마음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창업가들이 투자자들과 어려운 대화를 할 때 자주 듣는 답변이, “저희 LP가 이건 허락하지 않습니다.” , “저희 LP와의 계약에 따르면 이건 저희가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또는, 이와 비슷한 문맥의 답변일 것이다.

GP가(GP=General Partner=VC. 문맥상 앞으로는 GP라고 하겠다.) 창업가에게 이 말을 하는 순간, 이들의 대화는 여기서 끝난다. 본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LP가 못 하게 하면, 이건 못 한다는 의미라서 창업가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우린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최후통첩이다. 나도 다른 VC들에게 들었던 말이고, 우리 투자사들도 자주 들었던 말인데 솔직히 나에겐 이런 말은 대부분 전형적인 변명, 그리고 투자자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다른 GP들과 그들의 LP의 계약서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문구들과 내용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계약서는 말 그대로 상식선에서 작성된다.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고 부당한 내용을 GP가 창업가나 투자사에 요구하는 걸 LP가 계약서로 강요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GP들이 “우리 LP가 못 하게 해서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할 땐 이건 그냥 본인들이 그렇게 하기 싫다는 걸 직접 말하기 거북하니까 LP 핑계를 대는 것일 확률이 높다. 그냥 본인은 나쁜 사람이 되기 싫고, 곤란하고 귀찮은 일 처리하기도 싫고, 그냥 창업가가 직접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그리고 알 확률이 거의 없는 애매한 LP 탓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GP와 LP의 계약서에 실제로 이런 내용이 있다고 쳐도, GP가 판단 했을 때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고 부당한 상황이라면, 내부적으로 이야기하고 LP와 다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우리도 이런 경우가 몇 번 있고, 충분히 잘 설명한다면 예외 사항이 허락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많은 GP는 이런 노력이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인이 담당하는 회사에서 이런 이슈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귀찮기도 하고 어쩌면 관리나 처신을 잘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서 본인이 욕을 먹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LP들에겐 이런 이야기를 꺼낼 의향도 없고 의지도 없다. LP 탓하는 한마디만 하면 상황을 종료할 수 있는데 굳이 왜 본인이 책임지고 어려운 일을 하드캐리 하겠는가?

GP가 처리해야 하는 일인데 LP를 탓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이런 행동은 이제 이 생태계에서 없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대로, 설사 LP와의 계약 내용이 문제라면 최소한 최대한 상식적인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길 바란다. 그냥 귀찮고 책임지기 싫으니까 남 탓하지 말고. 이런 분들에겐 나는 제발 man up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여성 GP 분들에겐 미안한데, 아직 대부분 남성이라서…)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직접 책임을 지고, 일이 잘 안 풀리면 남에게 책임 전가하지 말고 내가 직접 그 폭탄을 맞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작은 규율

“How you do anything is how you do everything.(작은 행동 하나에 그 사람의 모든 태도가 담겨 있다)”

얼마 전에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게스트로 초대한 전직 Navy SEAL이 한 말이다. 한 문장이지만,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깊다. 매우 깊다. 한 사람이 아주 작은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아주 큰 업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보이고, 결국엔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는 의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한국 속담이 있는데, 이 말의 완벽한 미국식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분은 본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로 이 문장이라고 하는데, 살면서 내렸던 보이지 않는 모든 작은 선택들이 결국엔 본인의 인격을 형성했다는 의미이다. 이런 작은 선택을 작은 규율(micro discipline)이라고 하는데,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작은 일을 제대로, 올바르게 해내는 습관을 의미한다. 이 작은 규율이 쌓이고 쌓이면 엘리트 수준의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이 인터뷰를 듣고 나는 바로 자기 점검에 들어가 봤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남들이 볼 땐 온갖 좋은 사람인 척하고, 거창한 업적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척하고 있진 않나? 규율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혹시나 이게 외부에 보여주기 용도가 아닌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아주 작은 일을 제대로, 올바로, 완벽하게 끝내는 작은 규율이 내 몸 안에 내재화되어 있나?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선뜻, 아주 자신 있게 내가 작은 규율을 지키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던 걸 보면, 내 인생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을 일부러 찾아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를 정돈하고, 식사하자마자 바로 설거지하고, 빨래가 끝나면 바로 정리정돈하는 작은 일들부터 습관화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별거 아니고,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잘 안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이런 작은 습관이 쌓이면 큰 습관이 되고, 작은 규율이 쌓이면 큰 규율이 된다. 아무도 보지 않고, 너무 작은 일이라서, 안 해도 티가 나지 않고,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당장은. 하지만, 이게 반복되고 쌓이다 보면 큰 차이를 만들고, 집에서 이불을 개지 않는 사람들은 밖에서도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작은 습관과 작은 규율은 모두 결정과 관련된 행동이다. 큰 결정이든 작은 결정이든, 결정을 할 땐 우리에겐 항상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어려운 방법과 이보다 덜 어려운 방법. 인생에서 규율을 만들고 싶다면, 일단 작은 규율을 만들어야 하고, 작은 규율을 만들 땐 덜 어려운 방법보다 어려운 방법을 더 많이 선택하는 습관을 만들면 된다. 계속 말하지만, 당장은 티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

요즘엔 소셜미디어를 보면 덜 어려운 것 보다 무조건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게 인생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강조하는데 그럼 사람들은 아침에 이불을 정돈하는지, 집 청소는 하는지,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때 하는지 묻고 싶다. 아마도 안 할 것이다.

“How you do anything is how you do everything.”

Deep work Friday

우리가 하는 일이 바쁠 땐 한없이 바쁘지만, 중간중간에 조금 덜 바쁜 시기도 있다있었다. 이 기간에 그다음 바쁜 시기를 위해 충전도 하고, 밀려드는 일을 정신없이 쳐내느라 그동안 못 했던 deep work를 했다. 말은 거창하지만, 이 deep work란 외부의 방해 없이 특정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책이나 기사를 읽는, 어쨌든 다른 미팅, 이메일, 카톡, 전화 등의 방해를 최대한 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deep work를 하는 시간이 점점 없어져서 – 실은 내가 일을 더 만들면서 스스로 없앴다고 하는 게 맞다 – 언젠가부터 내가 진짜 일을 하는 건지, 아니면 일을 그냥 쳐내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살짝 멈추고 내가 온 길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없어질수록 점점 내가 바보가 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같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야말로 누구보다도 기술, 사업 모델, 그리고 산업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미팅만 계속하고 쌓이는 이메일에만 대응하다 보니 지식이나 사업,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아니라 아주 얕은 지식만 습득하게 됐다. 더 우려되는 건, 이런 얄팍한 지식만으로도 어디 가서 아는 척을 충분히 할 수 있어서, 이게 몸에 배면 마치 내가 통찰력이 있고 유식하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왜 이게 가능하냐면, 우리는 워낙 많은 창업가와 만나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대부분 경험으로 배운 실전지식이라서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도 살아있는 지식과 경험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깊이는 없지만 아주 넓은 지식의 이야기보따리가 내재화되는데, 완전 전문가가 아닌 분들에겐 –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다 – 이 깊이가 없는 지식만으로도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VC라는 업의 좋으면서도 안 좋은 특성인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면, 나도 어느 순간, 마치 내가 모든 기술과 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안다는 착각을 하면서 겉으로만 맴돌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는데, 내가 이걸 느낄 수 있다면 남들은 이미 눈치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다시 deep work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따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냥 내가 산업, 기술, 회사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공부도 하고, 기사도 읽고, 필요하면 전문가와 만나는 6시간의 ‘thinking time’을 내 캘린더에 박아놓았다. 정말 급한 게 아니라면 그냥 사무실에서 생각하고, 공부하고, 읽는 것에 집중하고, 이메일 쓰는 건 되도록 자제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게 잘 지켜지고 있진 않다. 우리가 하는 업무의 특성이 매일 반복되거나 정해진 게 없어서 회사 미팅이 잡힐 때도 있고, 외국에서 손님이 갑자기 올 때도 있고, 내가 월 ~ 목 기간 동안 쳐내지 못한 이메일이 있으면 금요일 오후에도 생각하고 읽기보단, 뭔가 쓰는데 급급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 deep work Friday 오후 일정을 계속 지키기 위해서 매일, 매주 노력한다. AI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마치 전문가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답변을 받을 수 있고, 이걸 대충 읽으면 본인도 전문가가 된 것 같고 남들도 내가 전문가인 줄 착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럴수록 더 많은 공부와 생각이 필요한 시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분들은 deep thinking과 deep work를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나 루틴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계속 “왜?”를 질문해라

몇 달 전에 꽤 공감이 가는 내용을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최근에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 팟캐스트를 들어서 기록을 위해 블로그에 적어본다. “The Three Whys 원칙”이라는 질문에 관한 내용인데, 모든 현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최소 세 번 반복해서 던짐으로써, 일차원적이고 표면적인 답변을 넘어 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론에 대한 글과 인터뷰였다.

이 원칙은 단순히 표면적인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이 파고들어 진짜 문제의 파악 및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가 들었던 인터뷰에서는 타이타닉호에 대한 예시가 언급됐는데, 여기에 세 번의 “왜?”를 질문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타이타닉호는 왜 침몰했나요?
>> 빙산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2/ 빙산과 왜 충돌했나요?
>> 선장이 빙산을 못 피했기 때문입니다.
3/ 선장은 왜 빙산을 못 피했나요?
>> 과속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위의 타이타닉호 침몰에 대해 첫 번째 질문에서 멈춘다면,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해서 침몰했기 때문에 앞으로 거대한 배들의 침몰을 막기 위해서는 빙산이 없는 곳으로만 다니거나 빙산을 부숴서 작은 얼음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레이저 장비나 무기를 모든 배에 설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세 번 해서 알아낸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진짜 원인은 이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 바로 선장이 빙산을 발견했지만, 배의 너무 빠른 속도로 인해 방향을 못 틀어서 빙산에 박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다. 그리고 세 번의 질문으로 얻은, 거대한 배들의 침몰을 막을 수 있는 훨씬 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과속 금지와 정속 주행이다.

이후에 나도 많은 현상에 대해서 한 번만 “왜?”라고 질문하지 않고, “왜?” , “왜?” , “왜?” 이렇게 세 번씩 질문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전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방식에 꽤 큰 도움이 되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왜?”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고,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잘 찾는다. 그런데 석학들만큼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 분들이 바로 창업가들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많은 필수 제품과 앱들이 창업가의 불편함으로부터 시작됐는데, 이들은 일반인처럼 불편함을 그냥 묵인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했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으로 창업을 선택했다.

“왜?”를 계속 질문하는 습관은 결과적으로 사고를 더 깊게 만들고,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을 명확하게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원인을 계속 묻다 보면, 실제 해야 하는 행동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위의 타이나틱호의 예를 다시 사용해 보면, 빙산을 분해하는 기기를 만드는 건 어렵지만, 과속하지 않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계속 질문하고 “왜?”라고 묻는 걸 습관화해서 우리 모두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하다 보면 더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