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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독

전에 내가 AI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비즈니스가 더 중요하다는 을 썼는데, 그 내용의 연장선상의 글이다. 요새 직업상 또는 비직업상 만나는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다 AI 이야기를 한다. 특히나 창업가들은 AI라는 이 거대한 tech 물결을 어떻게 더 잘 타서 남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갈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면서 부서와 업무와는 상관없이 전사적 AI 도입을 외치고 있다.

실은, 기술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남들보다 빨리 이런 기술을 도입하는 건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국가적으로도 한국은 AI 도입에 꽤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현상에는 양면이 있는데 AI에도 어두운 면이 있고, 최근에 만난 많은 창업가들이 AI의 독에 물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많은 창업가들이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분들을 만나 보면 사람도 채용할 필요가 없고, 코딩도 배울 필요가 없고, 콘텐츠도 깊게 고민해서 만들 필요가 없고, 고객이나 협력업체에 보낼 이메일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모든 걸 AI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와는 반대로 생각한다. 업무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마지막 5%는 – 우리가 하는 일을 완성하고, 고객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게 이 마지막 5%이다 –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초지능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은 초지능 그 이상의 지능, 창의력,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응용력을 가졌고, 결국 누구나 다 AI를 활용해서 누구나 다 비슷한 걸 만들 수 있는 이 시대에 이길 수 있는 제품, 서비스 그리고 사업을 만들 수 있는 건 이런 인간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창업가는 지금까지 외부 투자 없이 연간 수십억 원의 매출을 만들었고, 영업이익까지 발생하는 좋은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으로 펀드레이징을 하는데, 투자받으면 AI에 올인해서 고객의 데이터를 축적한 후, AI를 활용해서 초개인화된 브랜드를 판매하겠다고 한다. 물론, 이 전략은 교과서적으론 매우 이상적인 방향으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분에게 지금까지 특별하게 데이터를 활용하지도 않고 기술을 깊게 적용하지도 않고 잘했고, 지금까지 했던 그 방식으로 연 매출 천억 원 까지 할 수 있는데 굳이 지금, 이 시점에 기존의 방법을 버리고, 회사가 잘하지도 못하는 AI에 올인하는 180도 다른 전략을 도입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너도나도 다 AI 이야기를 하고 있고, 주변에 사업하는 다른 창업가분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다 AI가 미래라는 말을 하고, 본인이 봤을 때도 데이터를 활용해서 AI 에이전트를 통한 한 초개인화 된 전략이야말로 수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그 어떤 사업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너무나 말로 하기엔 쉽지만, 실행하기엔 정말 어려운 전략이다.

이미 몇 회사들은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 계속 사업을 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고, 현재 매출의 10배까지 할 수 있음에도, 갑자기 회사의 방향을 AI에 올인 했다가 후회하고 있다. 멀쩡하게 잘 되던 사업을 버리고 AI에 올인 했는데, 그사이에 다른 경쟁사들이 이 회사가 원래 잘하고 있던 분야에서 시장을 야금야금 다 뺏어갔다. 그리고 AI에 몰방하는 게 우리 사업에 맞는 전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실은, 이런 회사들이 이렇게 방향을 급하게 바꾸게 된 배경엔 투자자들도 한몫했다. 투자하는 조건으로 무조건 AI native 회사로 체질 개선하는 걸 요구했고, 계속 AI 뽐뿌질을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AI를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사업의 본질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우리 고객은 왜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명확하게 판단한 후에 과연 우리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현재 사업을 10배, 100배 이상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행동으로 옮겼으면 하는 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이다.

슈퍼앱의 허상

매우 적지만, 우리도 지금까지 몇 개의 엑싯을 경험한 적이 있다. 쿠팡 같이 IPO를 한 경우도 있지만, 더 큰 회사에 인수되거나 비슷한 규모의 회사와 합병하면서 M&A를 통해 엑싯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지 않은 M&A를 통해서 내가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좋은 엑싯을 위해서는 회사가 팔려야지,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좋은 회사는 엑싯을 굳이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업만 잘하면, 누군가 연락이 와서 인수의 관심을 표시하리라는 것이다. 안 되는 회사를 억지로 다른 회사에 인수나 합병시키려고 하면 아예 안 되거나, 아주 안 좋은 조건에 딜이 성사된다.

그래서 나는 창업가를 만날 때, 이분이 회사를 시작하자마자 엑싯에 너무 꽂혀 있으면 매력도가 확 떨어진다. 이제 시작했고, 지금 매출 100만 원도 못 하는데, 사업에 집중하지 않고 3년 후에 회사를 네이버나 카카오에 얼마에 팔겠다는 생각만 한다면 이 회사는 금방 망하거나, 헐값에 팔릴 것이다. 반면에 엑싯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아주 좋은 사업을 만들고, 매출을 만들고, 고객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창업가들은 언젠가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회사가 먼저 연락이 와서 인수 의향을 밝힐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본인이 원하는 좋은 조건에 회사가 팔릴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슈퍼앱을 만들겠다는 한 창업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M&A에 대한 내 배움이 떠올랐다. 이분의 목표는 그 분야에서 모든 걸 다 처리할 수 있고, 모든 걸 다 가능케 하는 슈퍼앱이었다. 창업 첫날부터 슈퍼앱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고, 회사의 모든 결정의 – 제품, 펀드레이징, 채용 – 기준이 되는 건 슈퍼앱이었다. 아직 제대로 기어다니지도 못하는데, 처음부터 하늘을 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여기에만 꽂혀 있는 것이다. 이분의 슈퍼앱에 대한 야망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듣자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입을 열고 이 창업가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하나 했다. “대표님, 슈퍼앱은 그렇게 처음부터 만들겠다고 해서 만들기보단, 그냥 작은 기능을 하나씩 완벽하게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슈퍼앱에 꽂혀서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동시에 만들다 보면, 결과는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C급의 저질 앱이다. 그냥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만들지만, 그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만들다 보면, 복리의 힘이 작용하면서 결국엔 이게 슈퍼앱이 되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이 제품이 슈퍼앱이 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개의 슈퍼앱인 네이버와 카카오만 보더라도, 처음부터 슈퍼 앱을 만들겠다고 만든 게 아니다. 검색과 메신저라는 기능을 그 누구보다 뾰족하게 만든 후에, 그리고 다른 분야로 확장하더라도 기반이 되는 이 검색과 메신저 기능을 다른 경쟁사가 절대로 더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후에, 그제야 다른 분야로 확장하면서 본인들도 모르게 슈퍼앱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업을 시작했는데, 너무나 슈퍼앱에 꽂혀 있는 창업가들에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슈퍼 앱 이야기를 들은 후, 내게 아직도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항상 비슷한 충고를 한다. 슈퍼앱은 만들고 싶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작은 것들을 계속 반복하면서 고객들이 좋아하는 작은 기능과 제품을 잘 만들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그리고 창업가들이 우리 제품은 슈퍼앱이라고 떠드는 게 아니라, 고객들이 우리 제품은 슈퍼앱이라고 명명하면서 왕관을 씌워주는 거라고.

농부의 마음

스트롱을 처음 시작할 때, 주위의 선배 VC 분들이 투자는 농부가 씨를 뿌리고, 식물이 죽지 않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농부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줬다. 경험한 만큼만 알고, 아는 만큼만 안다는 말처럼, 그땐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13년 동안 VC를 해보니 이제 이 농부의 마음이 어떤 건지 조금씩 알 것 같고, 실제로 매일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투자하고, 투자사를 대하고 있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라서 가장 초기에 투자하는 걸 시드(=seed) 투자라고 하는가 보다. 우리 같은 시드 투자자는 말 그대로 씨가 잘 자라기 위한 초기 자금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이 씨를 뿌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농부와 같이 아주 넓은 농장이나 밭에 아주 랜덤하게 많은 씨를 뿌리고, 이 씨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다양한 지원을 한다. 일단 이 씨들이 잘 자라기 위한 필수 요소인 물과 토양은 VC들이 제공하는 자금이다.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려면 더욱더 많은 수분이 필요하고, 더 많은 영양소가 시기적절하게 필요한데,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물과 비료는 농부가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씨앗이 나무가 되기 위해선 이 외에도 많은 게 필요하다. 비도 와야 하고, 충분한 햇빛도 필요하고, 바람도 불어야 하는데 날씨는 농부가 컨트롤할 수 없는 시장 상황과 비슷하다. 유동성이 풍부해서 투자를 잘 받는 시장 환경이 있는가 하면, 최근 몇 년과 같이 돈이 말라서 가뭄인 환경도 있는데,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때마다 시장 상황에 따라서 적응하고 조절해야 한다. 아무리 노련한 농부도 항상 풍년만 경험하는 게 아니다. 농사하다 보면 날씨와 같은 여러 가지 외부 요소 때문에 풍년과 흉년을 번갈아 경험하는데, 노련한 농부는 이때마다 잘 적응하고 조절한다.

농부의 마음으로 뿌린 씨가 잘 자라길 간절히 바라지만, 솔직히 이 중 어떤 씨앗이 생존해서 큰 나무가 될 진 아무도 모른다. 재수 없는 흉년이면 모든 씨앗이 전멸하고, 토양이 오염되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부족하거나, 또는 햇빛이 부족하면 씨는 작은 나무에서 성장을 멈춘다. 하지만,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씨앗에도 복리의 힘이 작용하고, 작은 씨앗이 엄청나게 튼튼하고 큰 나무로 자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회사들은 아웃라이어다. 일단 이렇게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려면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리고 그 긴 기간 동안 이 나무가 중간에 죽을 수 있는 수백만 가지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농부는 매일 일어나서 하늘을 보면서 날씨를 확인하고, 나뭇잎을 확인하고, 물을 주고, 해충을 죽이고, 정기적으로 토양을 교체해 준다. 마치 우리가 경기의 맥을 확인하고, 투자사의 현금흐름을 확인하고, KPI를 확인하고, 창업가의 정신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가끔은 오랫동안 새싹이 안 올라와서 죽은 줄 알고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물도 안 주고, 비료도 안 주는데, 어느 날 밭에 가보니까 잡초같이 잘 자라서 아주 큰 나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사업을 잘 못 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거나, 손실 처리한 회사가 갑자기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고, 아주 좋은 VC에게 후속 투자를 받는 게 이런 경우다. 솔직히 우리도 이런 잡초의 케이스를 몇 번 경험했는데, 아주 기분이 좋다. 이런 경우가 더 많으면 좋겠다.

참고로, 우리같이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모델을 미국에서는 ‘spray and pray’ 모델이라고 한다. 많이 뿌리고, 이 중 몇 개가 잘 되길 기도한다는 의미인데, 대화의 컨텍스트에 따라서 많이 투자하고 무책임하게 기도만 하는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많이 투자하고 열심히 기도한다는(=도와준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항상 농담처럼 “우린 spray and pray를 하는데, 나는 pray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라고도 한다. 그만큼 어떤 회사가 잘 될지 아무도 모르고, 워낙 초기 회사라서 VC가 아무리 이 회사들을 도와줘도 그 결과는 항상 불확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러 밭으로 향하고 있고, 기도도 많이 하고 있다.

느린 죽음

바로 이전 포스팅에 이어 비슷한 맥락의 글을 또 써본다.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두려움과 매너리즘 때문에 국도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못하는 많은 회사들은 언젠가는 망할 확률이 높다.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서 돈을 버는 사업 구조를 만들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는 수익성이 엄청나게 좋진 않을 것이고, 이런 사업은 너무나 다양한 내, 외부 요소의 변화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갑자기 돈이 많은 경쟁사가 시장에 나타나서 시장점유율을 뺐을 수도 있고, 직원들이 대거 퇴사하면서 막대한 퇴직금으로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비용이 증가할 수도 있고, 의존하던 유통 채널에 큰 변화가 생길 수도 있고, 그냥 너무 성장이 없어서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사업의 규모가 쪼그라들 수도 있다.

또한, 이런 비즈니스는 위에서 말한 대로 면역력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매번, 매달, 매년 흑자를 내진 못할 것이다. 어떤 달은 살짝 적자가 날 수도 있고, 어떤 달은 일회성 비용이 확 증가할 수도 있다. 또한, 현금 보유량은 계속 유지되거나, 조금씩 증가할 수도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임직원들의 연봉도 같이 올라야 하는데, 성장 없이 현 상태에서 이것저것 맞추다 보면 서서히 비즈니스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새로운 경쟁사가 출현하거나, 대기업이 이 시장으로 진입하면,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단순 감기 탓에 사망할 수 있듯이, 이 사업은 한 방에 망할 수 있다.

즉, 계속 국도로만 가다 보면, 영어로 말하는 slow death를 맞이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잘 못 느낄 뿐이지, 시간이 갈수록 이 사업은 천천히 침몰하는 배와 같이 천천히 속력이 줄어서 멈출 것이다. 우리 사업도 현재 느리게 죽고 있다면, 대표들은 아주 과감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즉, 빨리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한다.

과감한 결정을 했는데 그 방향이 잘못됐다면, 빨리 죽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게 느린 죽음보다 더 나을 수 있다. 바로 죽든, 느리게 죽든, 어차피 결론은 똑같이 망하는 것이라면, 그냥 지금 당장 망해서 대표와 임직원들이 하루라도 젊었을 때 다른 곳에 취직하거나, 다른 시도를 하는 게 모두에게 더 좋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조금 극단적이긴 하다. 어쨌든 우리 사업이 이렇게 천천히 죽어가는 건 아닌지, 대표들은 냉정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비즈니스를 하고 있나?

소크라테스가 자주 인용했다고 하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고대 그리스 격언이 있다. 짧은 격언이지만, 이 안에는 세상 모든 사상과 감정이 내포되어 있고, 상황에 따라 이 말이 의미하는 게 매우 다양하다.

나는 가끔 스타트업 대표님들에게 이 질문을 한다. 어떤 의도에서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가 하면, 본인들이 하는 사업의 본질이 뭔지 제대로 파악하라는 것이다. 사업을 꽤 오래 하다 보면 내가 하는 업의 본질이 뭔지 대부분의 대표님들이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제품을 만들면서 사업모델을 찾아가는 초기 단계에서는 – 그리고 이 과정은 수개월이 될 수도 있지만, 수년이 될 수도 있다 –  본인들이 하는 업의 본질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그냥 내가 아는 몇 가지 사업의 예를 들어보면, 쿠팡은 겉으로 보면 물건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이커머스 사업이지만, 실은 이 사업의 본질은 물류이다.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가장 싸게 집 앞까지 안전하게 배송하고, 이걸 가능케 하기 위해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을, 그 제품을 가장 많이 찾는 고객과 가장 가까운 물류창고에 가장 싸게 보관하는 게 쿠팡 사업의 본질이다.
우리 투자사 세탁특공대는 모바일 세탁 서비스다. 겉으로 보면 동네 세탁소랑 동일한 사업을 조금 더 크게 하는 회사지만, 이 회사의 본질 또한 물류사업이다. 물류를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하면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모두 잘 아는 사실이지만, 겉으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큰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 업의 본질은 F&B이기도 하지만, 실은 부동산 사업이다. 맥도날드의 부동산 자산가치가 거의 100조 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엄청난 상업용 부동산 회사인 셈이다.

위에서 말 한 회사들은 대부분 물리적인 오퍼레이션이 필요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순수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회사들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 업의 본질이 다른 경우가 많다.

전에 내가 스포티파이 관련 글을 썼는데, 이 회사는 겉으로 보면 음악 스트리밍 사업을 하고 있지만, 회사 내부에서 분석했을 때, 고객들이 돈을 내고 스포티파이를 구독하는 이유는 너무 좋은 음악을 추천해 주는 알고리즘보단,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광고 없는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는 편리함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인기 많은 언어학습 앱 듀오링고 사업의 본질은 언어학습이라기보단 고객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도파민 심리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전에 내가 이 분야에서 사업하는 분에게 들은 건데, 듀오링고로 10년 언어 학습을 해도 언어 실력은 하나도 늘지 않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사용자는 기분이 좋고 대만족해서 오히려 돈을 더 쓴다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이런 사례를 나열하다 보면 끝이 없는데,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하는 사업의 가장 핵심엔 어떤 본질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이 업의 본질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모든 자원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의 본질을 잘 못 파악하면,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어 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