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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垓字)는 없다

요새 VC들이 소비재 쪽의 사업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검토하거나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 같은데, 우린 이런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계속 이 분야에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을 만나고,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도 생필품, 의류, 그리고 음식 분야에서 사업하고 있는 여러 창업가를 만났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직접 고객에게 자사몰, 그리고 다른 온라인 플랫폼이나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대부분 내가 이 에서 말했던 그런 어려움을 사업의 단계와는 상관없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분들과 이야기를 하면, 항상 등장하는 주재가 ‘해자(垓字)’이다. 사업의 종류에 상관없이 VC들이 창업가들에게 물어보는 게 그 사업만의 차별점, 진입장벽, 보호 장벽, 해자 관련 질문인데, “지금까지 비슷한 사업을 여러 번 검토했는데, 모두 다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 같네요. 우리가 다른 경쟁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우리만의 해자가 있나요?” , “이 사업이 잘되면 분명히 대기업도 같은 사업을 할 텐데요, 그 상황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우리만의 해자가 있을까요?”와 같은 유의 질문이다. 솔직히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투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이런 질문을 한 VC는 결국엔 이 사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비슷한 분야에서 경쟁하는 회사들이 투자자를 설득할 만한 명확하고 논리적인 해자를 갖추긴 어렵고 –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초기 스타트업은 – 대기업이 이 분야에 진출했을 때 다윗 같은 스타트업이 골리앗 같은 대기업을 이길만한 해자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이론적으로 명확하고 논리적인 상상 속의 해자가 있더라도, 아마도 투자자는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공장에서 뭔가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브랜드나 D2C 회사들은 이런 해자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도 이 분야에서 사업하는 한국과 미국 회사에 꽤 많이 투자하면서 이 힘든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나는 몇 년 전부터 이런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브랜드를 만드는 사업 분야에서 해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받아들이고 있고, 아예 이 분야에서 사업하는 창업가들에겐 본인이 하는 사업의 해자는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이런 D2C/브랜드 사업들을 보자: 제주 귤을 원료로 주스와 같은 다양한 시트러스 제품을 만드는 귤메달; 파워레이드나 게토레이드랑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 기능성 스포츠 드링크 얼티밋포텐셜을 만드는 어센트스포츠; 그리고 반려동물을 위한 영양제 페노비스를 만드는 노즈워크. 모두 다 잘하고 있는 스타트업이지만, 다른 스타트업도 충분히 이 분야로 들어올 수 있고, 돈/시간/인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대기업도 진출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규모가 나오는 시장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회사들이 우리 투자사들과 경쟁하기 시작하면 우리 창업가들은 어떤 해자를 만들면서 이길 수 있을까?

정답은, 이들이 구축할 수 있는 해자는 없다. 이 치열한 분야에서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고, 되도록 많은 소비자들의 눈에 노출되고, 그냥 무조건 많이 팔아서 매출 잘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많이 팔고, 어떻게 매출을 많이 만들 수 있을까? 이 또한 정답도 없고, 이를 위한 해자라는 것도 없다. 그냥 좋은 제품 만들고, 최대한 많은 채널을 통해서 유통하고, 동시에 마케팅도 잘 해야 한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혹시나 자체 공장을 만들거나 우리 제품을 OEM 제조하는 공장을 인수해서 생산의 전 과정을 수직통합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건 품질관리, 공정관리, 수량 조정, 가격 조정 면에서 우리에게 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체 공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단계까지 왔다면, 이미 우린 시장에서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브랜드가 됐을 것이고, 여기에서 말한 대로, 특정 분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됐다면, 이 자체가 엄청난 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그 강력한 브랜드가 되기 전까지는, 해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 자꾸 우리만의 차별점이나 해자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지 말고, 그 시간에 그냥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라. 대신,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너무 깊이 생각하기보단 get things done 전략으로 실행에 집중해라.

다시 성장모드로

2022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이 2년은 인생 최악의 지옥 같은 기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투자를 시작한 게 2012년인데, 이후 세계 경제는 나쁘지 않았고, 아주 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실적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시장에 돈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실적이 나오고 성장 가능성이 증명되면 지속적으로 후속 투자를 받는 게 가능했던, 영어로 말하면 the good old days였다. 이 기간에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수익성보단 성장에 초점을 맞췄고, 엄청난 손실을 감행하면서도 성장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그래도 계속 투자를 받아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렇게 이상하게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어느 순간 이 사업은 시장에서 일등이 될 수 있었고, 그 이후엔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하반기부터 이 분위기가 완전히 180도 바뀌면서 그동안 성장에 초점을 맞췄던 모든 창업가는 돈을 버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냥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를 줄이면서 건강하게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하면서 잠시 성장이라는 페달에서 발을 놓았다. 돈이 없는 회사는 사람을 해고하면서 그냥 런웨이를 늘리면서 생존하는 쪽으로 회사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VC들도 태도를 180도 바꾸면서 비즈니스의 성장보단 건강, 그리고 성장보단 생존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기가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어느 정도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호경기일 때도 성장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결국 사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강조했고, 지난 2년 불경기 동안에는 성장은 안 해도 된다고 하고 일단 돈 까먹지 말고 핵심 KPI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걸 강조했다. 이렇게 해도 우리의 많은 투자사들이 그동안 사라졌고, 사라지지 않은 회사들도 엄청 힘든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이 힘든 과정을 잘 견디면서 버텼던 몇몇 회사들엔 다시 한번 재도약과 성장의 기회가 오고 있다. 그동안 어떤 창업가들은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이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데 집중해서 오히려 우리가 투자했을 때보다 더 견고하고 건강한 사업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어떤 창업가들은 그냥 열심히 버티다 보니, 그동안 경쟁사들이 다 망해서 어쨌든 그 분야에서 상위권에 드는 회사가 됐다.

내년에는 시장의 상황이 어떻게 될진 잘 모르지만, 그동안 2년 넘게 숨만 고르고 내실을 다지던 창업가들은 이제 다시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창업가분들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던지는 주제가 그동안 돈을 버는 사업의 모습을 잘 만들어놨으니, 이젠 다시 한번 가속 페달을 밟아서 성장 모드로 전환해보자는 내용이다. 사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인데 이제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됐고, 스타트업은 결국 짧은 기간 안에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우리 투자사 대표님 몇 분과 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명확하게 갈리는 게 재미있었다.
한 부류는 안 그래도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제 다시 가속 페달을 밟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다시 펀딩도 알아보고, 사람도 더 채용하고, 외부 활동도 조금씩 하면서 그동안 웬만하면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았는데, 이제 일을 좀 벌여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거의 매달 조금이라도 흑자를 만들었는데, 이젠 성장에 집중할 것이라서 (제어 가능한)마이너스가 조금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다른 부류는 그동안 성장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했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뗀 지 너무 오래돼서 다시 성장 모드로 스위치 하는 게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에겐 다시 투자를 받고, 사람을 충원하고, 마케팅 비용을 쓰고,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게 이제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됐고, 성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워진 것 같다.

나는 작년 말에 2024년 경기가 조금 좋아질 거로 예측했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제 금리도 조금씩 내려가고, 상장 시장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서 내년에는 그나마 올해 보단 나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게 맞다면, 그동안 아주 조용히 내실만 다지던 많은 창업가 분들이 이제 다시 재도약과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텐데, 다시 성장모드로 전환하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준비 과정에서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안 쓰던 성장 근육을 잘 스트레칭하고 다듬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이 뭐 하는지 알고 싶다. 다른 사람 말고.

우리의 투자사, 그리고 새로운 회사들과 미팅을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주제가 경쟁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업을 하는 대표면 당연히 본인이 속한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략 알고 있어야 하고, 이 분야에 다른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즉, 경쟁사는 누가 있고 이들은 뭘 하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씩 내가 놀랄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본인의 생각과 전략, 그리고 우리 회사의 방향과 전략보다, 경쟁사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고, 나와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 고객에 집중하기 보단 우리 경쟁사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나랑 이야기 해 본 우리 투자사 대표들은 잘 알 텐데,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하는 미팅을, 이 중요한 시간을 우리 이야기가 아닌, 솔직히 우리 사업과는 전혀거의 상관없는 다른 회사 이야기로 채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언젠가 갑자기 시장에 출현한, 그래서 더 주목받고, 펀딩도 더 잘 받은 어떤 경쟁사를 우리 투자사 대표가 너무나 의식해서, 지금 자기 사업도 고쳐야 할 게 많은데 계속 경쟁사에만 집중하고, 경쟁사와의 따라잡기 게임만 하는 걸 보고 우리가 이런 줏대 없는 창업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지원하고 응원한 게 쪽팔려서, 이분에게 그냥 그 경쟁사로 가서 취직하라고 한 적도 있다. 나는 우리 투자사 대표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이분은 계속 남의 이야기, 그리고 남의 회사 이야기를 삼십 분 넘게 했고, 이분에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시간 낭비한 삼십 분이었고, 내 소중한 삼십 분 어떻게 할 거냐고 화를 엄청나게 내기도 했다.

경쟁에 대해선 나는 비교적 대놓고 이야기하는 편인데, 내가 봤을 때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경쟁사가 하는 일에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면서,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너무 많은 대표들이 자기 사업에 대해서 신경 쓰는 시간보다, 경쟁사 동향 파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어떤 창업가는 경쟁사의 재무제표는 거의 줄줄 외우고, 이들이 지금까지 뭐 했고, 앞으로 뭘 할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이 하는 사업의 unit economics도 잘 모르고, 올해 지금까지의 매출과 비용도 정확하게 외우지 못해서, 그때그때 마다 노트북에서 숫자를 확인하면서 나랑 대화했다. 당연히 이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전 세계 비즈니스의 역사를 보면, 경쟁사 때문에 망한 회사는 거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회사들이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오히려 경쟁에만 너무 집중해서 본인들이 어떤 회사인지 망각하고, 본인들의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본인들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우리도 똑같이 가격을 내리고, 경쟁사가 연예인으로 홍보하면 우린 더 유명한 연예인으로 광고하고, 경쟁사가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면, 우리도 똑같은 기능을 만들고, 이런 경쟁사에만 집중하는 사업을 하다 보면 결국 우리 비즈니스 자체가 희석된다. 그리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하는데, 이건 회사가 망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혹시 나랑 미팅이 잡혀 있는 분이 있다면, 그 미팅에서 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당신이 창업한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알고 싶다. 우리 경쟁사 대표가 어떤 사람이고, 다른 회사가 어떤 밸류에이션에 얼마를 받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회사는 이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창업가와 다른 회사에 관심 있었다면, 나는 당신이 아닌 그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가끔 이사회나 주주간담회에 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경쟁사 이야기만 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주로 본인들이 투자한 회사가 뭐 하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는 투자자들이고, 다른 투자자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미 월간 리포트에 다 있는 내용을 계속 물어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회사는 이렇게 하는데, 우린 왜 그렇게 못 하냐. 그 회사는 최근에 투자를 얼마큼 받았는데, 우리도 다시 펀딩해야하는게 아니냐. 이런 투자자들은 가능하면 빨리 주주명부에서 빼야 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그들이 그렇게 관심 두는 경쟁사에 투자하라고 해라.

창업가들은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고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팀원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제발 다른 사람, 다른 회사, 다른 경쟁사에 대해 신경 좀 끄고 본인이 하는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

경쟁에 임하는 자세

여전히 난 아침에 운동하면서 음악과 팟캐스트를 번갈아 듣고 있다. 얼마 전에 비즈니스 관련 흥미로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몇 가지 메모를 했었는데, 내가 평소 경쟁에 대해서 생각했던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포인트가 있어서,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여기서 몇 자 또 적어본다.

미국의 한적한 휴양지 동네에 있는 작은 멕시칸 타코 식당을 운영하는 한 오너쉐프가 사업 하면서 지금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서 이미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선배 창업가의 조언을 듣는 인터뷰인데, 이 자영업자/창업가가 요새 밤잠을 설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처음 들어봤지만, 쉐프들에게 주는 꽤 유명한 상을 받은 이 창업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동네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타코 가게를 몇 년째 운영 중이다. 인상적인 내용은 살사(소스)를 직접 가게에서 만들고, 또르띠야랑 칩스도 외주 주문하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직접 하나씩 다 만드는, 말 그대로 수제 타코 가게인데, 이 말만 들어도 맛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멕시칸 프랜차이즈의 헤비웨이트인 치포틀레가 이 동네로 진출한다는 발표를 했고, 공교롭게도 치포틀레 매장이 이 창업가의 가게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오픈한다는 공포스러운 소식 또한 발표됐다.

이 창업가의 질문은, 이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예상될 때, 다윗이 취할 자세와 구사할 전략에 관해서였다. 이에 대해 좋은 피드백이 많이 제공됐는데 내가 평소 경쟁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생각했던 부분과 상당히 비슷했다. 이미 대형 경쟁사와 싸워 본 경험이 있는 선배 창업가들의 피드백과 평소 내 생각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쉽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치열하게 싸워도 질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성경에서는 운 좋게 다윗이 이겼지만, 현실에서는 골리앗이 대부분 이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경쟁사의 우리 골목상권 진입을 막거나 방해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 구역으로 진출하기로 했고,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없다. 여기에 괜히 시간과 에너지는 쓰지 말자. 우리가 또 할 수 없는 건, 이들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치포틀레와 같은 대기업은 볼륨의 왕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원가는 항상 낮을 수밖에 없고, 이들이 원한다면 우리보다 항상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격을 낮추든 안 낮추든, 일단 우리 마진의 30%는 무조건 날아갈 것이라는 걸 명확하게 인지해야 하고, 명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가게도 충분히 강점이 있고, 할 수 있는 게 있다. 대기업이 잘하는 게 많지만, 작은 가게가 잘하는 것도 많다. 이 타코 가게의 경우 모든 음식을 즉석에서 요리해 주는데, 이렇게 하면 맛은 월등할 수밖에 없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제공할 수 없는 탁월한 맛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이 가게는 이미 동네 주민 커뮤니티의 일부가 됐고, 이런 소속감과 커뮤니티십을 잘 활용하면 단골 손님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나온 예시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과 밴드를 매주 초대해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수제 타코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기업이 잘 못 하는 고객과의 접점을 더욱더 강화해서 서비스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종합하자면, 우리만의 차별점을 더 뾰족하게 만들어야 하고, 식당의 경우 이건 주로 맛과 서비스를 더욱더 갈고 닦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이렇게 당연한 게 대부분 잘 안 지켜진다.

한국은 골목상권과 대기업 간의 싸움이 미국보다 더 언론화되고 큰 이슈 거리가 된다.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진입하면, 우리나라의 정서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목상권과 자영업자의 편이 돼서 대기업을 맹공한다. 나도 대기업이 모든 걸 다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력하지만, 반대로 누구나 다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제일 아쉽고 짜증 나는 건, 위에서 말 한 타코 가게 창업가같이 이 어려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이 없다는 점이다. 모두 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주장만 하는데, 막상 이들의 골목 빵집, 분식집, 슈퍼, 밥집에 가보면 거지 같은 서비스에 형편없는 제품을 팔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불평하는 자영업자들도 너무 많다.

이 치열한 세상에서 뭐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면, 작은 경쟁이든, 큰 경쟁이든, 경쟁을 피할 순 없다. 이럴 때 우리가 경쟁에 어떤 자세와 태도로 임하는지가 매우 많은 걸 결정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사업

한때는 테슬라보다 더 혁신적인 전기 자동차 회사로 추앙받던 Fisker가 얼마 전에 파산 신청을 했다. 실은, 10년 전에 이미 회사를 한 번 말아먹었고, 이번이 두 번째 파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관련 기사를 읽어보면 피스커의 파산 원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이지만, 결국엔 지속 가능한 사업 자체를 만들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인 것 같다.

TechCrunch의 기사 제목을 보면 피스커의 실패 원인이 “it wasn’t ready to be a car company” 라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 이 말의 뜻은 피스커가 멋진 컨셉의 전기자동차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회사가 되긴 했지만, 이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판매하고, 결국엔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 같다. 피스커의 창업자는 Henrik Fisker라는 걸출한 자동차 디자이너인데, 이분은 멋진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지만, 그 재능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로 변신하는 데는 실패했고, 아마도 자신의 그런 한계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우리가 투자했거나, 검토했던 꽤 많은 회사도 이런 비슷한 문제를 경험한다.

창업가가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사를 만들고, 열심히 제품을 만든다. 출시 일정을 정하고, 여기에 맞춰서 몇 개월, 또는 몇 년을 밤새워서 만들고, 운 좋으면 원래 계획했던 대로 제품이 완성돼서 시장에 출시된다. 실은, 대부분의 회사가 여기까지도 못 간다. 거창하게 세웠던 계획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게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면서 돈은 예상보다 빨리 쓰고, 제품은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계획했던 게 아닌, 아주 허접한 제품이 출시되면서 그냥 소리 소문 없이 회사는 문을 닫거나, 다른 제품으로 피봇한다.

하지만, 아주 운이 좋은 회사들은 시장에서 꽤 열광하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한다. 그리고, 초기 얼리 어댑터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어느 정도의 바이럴 요소가 감지된다.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해서 초기 반응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한 건, 이것 자체가 대단하고 스스로 자랑스러워야 하는 큰 마일스톤 달성이지만, 많은 대표들은 이게 사업의 종착점이자 성공이라고 착각한다. 실은, 제품 출시한 후부터가 진정한 사업의 시작점이고, 여기서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이 사업이 정말로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을지 결정된다.

어떤 분들은 만들어서 출시하면, 그냥 알아서 팔릴 것이고, 이렇게 팔리다 보면 곧 유니콘이 되는 걸로 착각하는데, 경험이 좀 있는 분들은 절대로 이렇게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 때까진, 장인의 정신으로 정말로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후부턴 이 제품을 어떻게 시장의 요구에 맞춰서 최적화하고, 어떻게 영업과 마케팅을 하고, 어떻게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어떻게 더 비용을 절감하면서 사업을 운영해서,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회사다운 회사를 만들지에 대한, 사업가의 마인드와 실행력이 필요하다.

어떤 분들은 이런 걸 0에서 1은 엄청나게 잘 하지만, 1에서 10까진 못 하는 딜레마라고도 한다. 결국엔 돈을 벌고 사업을 만드는 건 1에서 10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단순히 만드는 회사가 아닌 사업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선 1에서 10 사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결국엔 피스커도 멋지고 시장에서 WoW 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했지만(0->1), 회사가 돈을 벌면서 이 멋진 자동차를 대량생산해서 판매할 방법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깊지 않았고, 결국 지속 가능한 사업(1->10)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