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ption 서비스에 대해서는 전에 많은 글을 올렸고, 난 아직도 정기구독 서비스만큼 한번 해놓으면 미래의 비즈니스가 조금 수월해질 수 있는, 이런 좋은 비즈니스 모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성공하고 있는 섭스크립션 서비스가 미국같이 많지 않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설이 있지만, 솔직히 왜 그런지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뭔가 될 거 같은데 잘 안되면, 이건 계속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올해도 계속 한국에서 정기구독하는 서비스가 많이 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정기구독서비스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3개월, 6개월, 12개월 등의 플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한 방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6개월 치 섭스크립션을 구독하면 6개월 동안 한 명의 고객한테 정기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매출을 한 번에 확보할 뿐만 아니라 즉시 수금할 수 있다. 이런 고객의 수가 늘어나면 회사는 이 많은 현금을 다시 재투자해서 더 좋은 플랫폼을 만들거나 여러 가지 유용한 쪽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이렇게 한 방에 벌 수 있는 현금만큼 좋은 건 없다.
이런 꾸준한 캐시플로우가 발생하면, 꽤 정확하게 수요와 재고 예측을 할 수 있다. 12개월 섭스크립션 고객이 1,000명이 있다면 12개월 동안 회사가 배송해야 하는 제품 숫자를 예측할 수 있고, 재고 또한 상당히 정확하게 관리해서 최소화할 수 있다. 이커머스를 하고, 판매하는 제품 수(=SKU)가 많다면, 특정 제품이 얼마만큼 팔릴지 모르니 항상 재고를 가져가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B2C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신규 고객을 계속 유치하는 게 회사의 지상과제이다. 섭스크립션 모델을 잘 활용하면 신규 고객 유치에 회사의 대부분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기구독 기간에는 고객을 완전히 lock-in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다면, 그 기간에는 이 회사의 고객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취소하는 고객도 생기지만, 이 수치 또한 데이터가 쌓이면, 예측이 가능하다. 한 개의 제품을 고객에게 판매한 후에 어떻게 하면 이 고객한테 다른 제품도 판매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그 시간에 신규 고객 유치 전략에 대해서 생각하면 된다. 섭스크립션은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음악 스트리밍의 강자 스포티파이에 대한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실은 스포티파이보다 Pandora가 먼저 시작되었지만, 돈을 내고 음악을 듣는 유료구독서비스를 마스터한 건 스포티파이다. 약 8,300만 명이 유료 사용자인데, 이는 전체 사용자의 40%나 되는 엄청난 수치이다. 이와 반대로 판도라는 사용자 대부분이 광고기반의 무료 서비스를 통해서 음악을 듣고 있다(참고로 판도라는 미국에서만 들을 수 있고, 스포티파이는 전 세계에서 들을 수 있다). 실은 나도 미국에서부터 애용하던 스포티파이를 한국으로 이사 와서도 계속 매달 $9.99를 내면서 이용하는데, 실은 광고 기반의 무료 서비스로도 대부분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도 유료 서비스를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 때문이라기보단, “편리함” 때문이다. 즉, 겉으로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매달 $9.99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광고의 방해 없이, 내가 음악을 하나씩 선택하지 않고, 자동으로 계속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 “편리함”에 매달 돈을 지급 하는 것이다.
Subscription 서비스를 생각하고 있거나, 운영하는 팀은 이 개념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서 기꺼이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고객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편리함 때문에 돈을 기꺼이 지급하는 고객도 시장에는 많기 때문이다. 솔직히 음악 스트리밍에 내는 돈이 아까우면, 그냥 유튜브에서 음악을 일일이 검색하고 들어도 되지만, 대부분 소비자는 그게 귀찮고, 그렇게 하는데 들어가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투자해야 하는 시간 대신 매달 일정 금액을 내는데 큰 저항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저항이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금액을 찾아서 과금하면 된다.
이 편리함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두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생리대, 기저귀, 개밥, 물 등은 모두 정기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필수품이고, 섭스크립션 모델이 쉽게 적용될 수 있는 제품군이다. 항상 필요하기 때문에, 한 번에 돈을 내고 정기적으로 받아 보면 편하다. 여기서 섭스크립션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똑같은 제품을 매 번 주문할 필요가 없는 편리함이다.
또 다른 편리함은 위에서 말한 스포티파이류의 편리함이다. 음악, 음식, 와인과 같은 제품의 특징은 개인마다 취향이 명확하게 다르고, 그 종류가 너무 방대하고, 대부분 사람이 깊은 전문지식이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서 섭스크립션은 소비자가 돈만 내면, 그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알아서 골라준다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앞으로 음악의 종류는 더욱더 늘어날 것이고, 선택은 더욱더 복잡해질 텐데, 나는 아마도 평생 스포티파이의 유료 고객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spotify.com>
Christopher Chae
잘 읽었습니다. 한국 SaaS/구독 비즈니스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에 동의합니다. 벤처계에 구독모델이 많아지려면 물론 파운더들 자체로도 모델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겠지만, 한국 VC에서도 구독 비즈니스를 평가할 때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conventional metric으로는 언더밸류된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선 SaaS의 성공덕인지 구독비즈니스에 대한 인식이 되게 좋은 편이고 ARR을 잘 이해하고, sales & marketing을 더 이상 오버헤드로 보지 않는 것 같은데, 한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Inyong Suh (Sancho)
스포티파이 유료 고객입니다. 말씀하신 편리함 때문에 월 9.99 EUR를 내고 있습니다. (17년부터 네덜란드 Tech 업체에서 PM으로 일하고 있는데, 여기 오니 주위 동료들이 대부분 스포티파이 유저더라구요) 궁금한 점 하나가 있습니다. 40% 유료회원율이 엄청난 수치라고 말씀하셨는데, 보통 freemium 전략을 사용하는 서비스에서 어느 정도면 ‘높은’ 유료회원율일까요? 물론 offer하는 서비스의 종류나 통상의 가격 등 변수는 많겠습니다만, 본문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처음으로) 질문 드립니다.
Christopher Chae
산초님 여기서 뵙네요. 기홍님이 더욱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겠지만, 저도 chip in 하자면, SaaS/구독 비즈니스에서 통상적으로 ~70%의 고객이 무료나 Basic tier를 사용하면 red flag입니다. SaaS/구독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CLV를 어떻게 극대화하고 cross/up-selling을 통해 per account revenue (ARPA)를 어떻게 높일까를 고민하는데, 고객베이스의 대부분이 무료/베이직 티어를 쓴다면 이미 고객들은 그 수준에서 만족을 하고 있으니 CLV를 높일 방법이 제한되는 거죠. 이쯤이면, 제품을 뜯어 고쳐야할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스포티파이의 경우 free 티어에서도 일정수준의 revenue를 recoup하니 괜찮겠지만요. 통상적으로는 ~70%의 고객이 미들이나 프리미엄 티어의 packaging을 구독하는게 (if you look at Netflix – most users fall in standard/premium). 전반적인 CLV maximization의 건강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산초님은 암스테르담에 계시니 spotify penetration이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해요. 🙂
Kihong Bae
잘 설명해주신거 같네요. 그리고 현업에 대해서는 저보다는 잘 아시는거 같네요. 밑에서 제가 말한 10%는 일반적인 consumer internet service의 freemium 서비스에 대한 거구요, 말씀하신 SaaS 수치는 B2B에 해당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스포티파이나 판도라와 같은 서비스가 다른 freemium 서비스와는 또 다른건…이 서비스들은 free user들 한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거겠죠 (사용자한테는 공짜지만, 광고를 봐야하고, 스포티파이나 판도라는 광고 수익이 발생하니까 순전히 loss라고 보기에는 힘들거 같아요). 하여튼 좋은 의견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답변이 늦었네요)
Kihong Bae
실은 서비스랑 freemium 전략마다 다를거 같은데요, 저는 10%만 되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무료 버전도 있지만, 10명 중 1명한테 돈을 받는다는게 말 같이 쉽진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