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y

제품, 영업, 그리고 시장

한국의 B2B 시장에 대해서는 내가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글을 썼는데, 나는 그동안 전형적인 B2C 강국이었던 한국에서도 앞으로 5년 안으로 여러 개의 B2B 유니콘이 – 특히 B2B SaaS 회사 –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우린 지난 몇 년 동안 꽤 많은 한국의 B2B 회사에 투자하면서 이런 우리의 믿음과 가설을 직접 테스팅해보고 있는데, 기대가 매우 크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현실은, 이 시장이 활짝 커지려면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시장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걸 우리가 투자하는 B2B 창업가들과 우리 같은 투자사들이 서서히 바꿔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우리 B2B 회사들과 올해는 꽤 많은 대화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사업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바이럴을 타면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B2C 서비스와는 달리 기업을 대상으로 영영업해야 ,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하고, 막상 구매 결정을 해도 여러 단계의 결제 과정을 거쳐야 하는 B2B 솔루션은 생각만큼 잘 안 팔린다. 아니, 생각만큼 잘 안 팔리는 게 아니라, 그래도 사용할 만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1년 동안 단 한 개의 제품도 판매하지 못한 회사들도 있다.

왜 안 팔릴까? 이 부분을 우린 집중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팔리지 않는 문제를 제품의 문제, 영업의 문제, 그리고 시장의 문제로 구분해 봤다.

일단 우리 제품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뜯어봐야 한다. 우리 잠재 기업 고객의 문제점을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해주는 솔루션을 우리가 제대로 개발하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잘 만들었더라도 다른 경쟁사보다 더 싸고, 더 좋고, 더 빠른 솔루션을 만들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만약에 어느 정도의 시장이 존재하는데 우리만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건 우리 제품이 후졌거나, 아니면 우리가 영업을 못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팔릴만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위에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데 우리 제품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이 제품을 살 수 있는 고객들도 충분히 많이 존재한다면, 영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B2B 제품은 B2C 제품과 같이 제품만 잘 만들어 놓고 메타나 구글에서 유료 광고를 하면 바로 입소문이 나서 바이럴을 타는 성격이 없다. 기업 고객 면전에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보여주고, 사용법을 알려주고, 직접 홍보를 해야지만 판매가 된다. 그것도 여러 번을. 즉, 영업을 아주 잘해야 한다. B2B 영업은 상당히 특별하고 독특한 기술이 필요하고, 한국에 스타트업의 B2B 영업을 제대로 하는 인력은 상당히 귀하다.(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출신 B2B 영업 인력은 스타트업 영업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에 내가 여기서 몇 자 적어봤다). 어느 정도의 시장이 존재하고, 우리가 아주 기깔난 제품을 만들었는데 매출이 없다면, 우리의 영업 실력을 의심하고 영업 프로세스를 전면 재검토해 봐야 한다.

제품도 잘 만들었고, 영업도 잘하는데, 판매가 안 된다면, 시장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즉, 이 시장이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가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은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더 잘 기획하고 개발해서 제품력을 개선하면 되고, 영업력이 약하면 이 또한 어느 정도 보강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을 잘 못 선택했다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시장이 생길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하는데, 스타트업은 그 전에 현금이 고갈되어서 망할 확률이 높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시장의 문제라면 그냥 피봇하는걸 나는는 권장한다. 물론, 한국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옆나라 일본이나 먼나라 미국에는 수조 원의 시장이 있다면, 글로벌 시장 진출로 전략을 바꿀 수도 있지만, 이건 또 완전히 다른 레벨의 고민거리라고 생각한다.

B2B 사업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잘 안되고 있다면, 제품, 영업, 또는 시장 중 정확히 어디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는지 잘 파악해 봐야 한다.

자본의 해자(垓字)

영화 ‘저스티스 리그’에서 플래쉬가 배트맨에게 당신의 슈퍼 파워는 뭔지 물어보자 “돈이 많다”라고 답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브루스 웨인의 차별점, 즉 비즈니스 세계에서 강조하는 해자(垓字)는, 바로 돈이었다. 시장에 돈이 넘쳐흘렀을 때, 자본 자체를 가장 큰 차별화 전략으로 만들면서 자본의 해자화를 추구했던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았다. 일단 돈을 써서 고객을 획득하고, 이들을 락인(lock-in)한 후에 돈을 벌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회사들은 특별한 기술적 또는 비즈니스적인 차별점 보단, 돈 자체를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우리 포트폴리오에도 플랫폼 스타트업이 상당히 많은데 당근이나 숨고와 같은 회사들이 좋은 조건에 펀딩을 잘 받고 초기에는 자본을 무기로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창업 후 몇 년 동안은 매출이나 수익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온보딩시키는데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돈은 나중에 벌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고, 이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은 사용자들이 확보되어야 했고, 단기간 내에 수많은 경쟁사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용자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다. 퍼포먼스 마케팅, 그로쓰 마케팅과 같은 방법을 기반으로 마케팅을 했는데, 실은 그냥 돈을 엄청나게 많이 써서 사용자들을 구매한 것이다.

잠재고객이 수천 만명 존재하는 소비자 플랫폼엔 이런 자본을 앞세운 대량 고객 획득 전략은 잘만 실행하면 단기간에 많은 유저를 온보딩 시켜서 수요와 공급의 바퀴를 돌릴 수 있고, 바퀴의 마찰을 제거하기 위해서 계속 효율적으로 돈을 쓰면, 결국 모든 경쟁사를 따돌리고, 가만히 놔둬도 마찰 없이 영구적으로 돌아가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플랫폼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되면 웬만하면 다른 경쟁사가 넘볼 수도 없는 거대한 매출을 만드는 사업이 완성된다. 나는 이 단계까지 온 대표적인 기업이 쿠팡이라고 생각한다. 토스도 이 단계에 꽤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은 시장에서 돈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유효하지 못 한 전략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전략으로 전락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돈으로 플랫폼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계속 투자받아야 하는데, 과거와 같은 유동성도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돈을 벌기도 전에 이렇게 돈을 써서 몸집을 키우는 기형적인 전략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정말로 플랫폼 경험이 많은 창업팀이 정말로 매력적인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게 아니라면, 투자를 받는 게 매우 힘들어졌다.

대신, 많은 창업가들이 이젠 몸집을 키우기 전에 돈부터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일단 사용자들을 모으면, 그다음에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서, 일단 돈부터 벌고, 남는 돈으로 사용자를 더 모으자는 관점에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이 요샌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바뀐 생각과 관점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떤 방법이나 전략을 사용하든 궁극적으로 기업은 돈을 벌고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경기가 너무 좋고 필요하면 돈이 항상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에 많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성장에 눈이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자본으로 해자를 만드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자본을 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을 아주 적절하고 조심스럽게 구사하는 스타트업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과거와같이 묻지마 마케팅 전략은 지양하는게 맞지만, 결국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바퀴를 돌아가게 만드는 기름은 사용자이기 때문에 다른 경쟁사보다 더 빠르게 사용자를 확보해서 이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지 못하게 락인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이 기본적인 작업이 안 되면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해도 규모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을 읽으면 역시 또 혼란스러울 것이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동시에 돈도 태워서 사용자를 계속 확보하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나한테 조언을 구한다면, 지금같이 돈이 메마른 시장에서는 돈을 버는 데 집중하는 게 맞지만, 플랫폼을 운영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 마케팅을 해야 할 것이고, 불경기 동안 큰 자본이 없어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건 바람직하지만, 결국 다시 크게 성장하기 위해선 자본이 무기가 되는 전략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다.

한 가지 이유

나에겐 강연 요청이 꽤 들어온다. 다양한 행사와 대기업에서 정기적으로 발표나 강연에 대한 문의가 계속 들어오는데, 99% 다 거절한다. 이런 대중 앞에서 발표와 강연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에 우리 집안 살림(=스트롱)에 신경 써야 하고, 내가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꼭 하고, 간혹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참여하는 행사나 강연이 있는데, 미래 창업가인 학생들이 청중일 때, 그리고 내가 정말로 공감하는 주제의 행사일 때이다.

얼마 전에 내가 정말로 공감하는 주제의 소규모 행사에 참여했다.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난 행사였는데, 피곤했지만 집에 올 때 매우 뿌듯했다. 이 행사에서 스타트업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미팅할 때 좋은 창업가들을 구분할 수 있는, 이들만이 가진 시그널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상당히 좋은 질문이고, 좋은 것만큼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나는 바로 이분에게 답을 했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내가 최근에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깊게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내용과 일치했기 때문에 바로 공유할 수 있는 나만의 생각과 답이 있었던 것이다.

우린 엄청나게 많은 창업가들을 만난다. 스트롱에선 일 년에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만나는데, 이 중 20~30개에 투자하니까, 우린 웬만하면 잘 투자하지 않는 VC이고, 대부분의 VC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많은 투자자들이 특정 회사에 왜 투자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선 모두 도사가 된다. 그 시장은 작아서 안 된다. 그 사업은 이미 과거에 많은 창업가들이 시도해 봤는데 안 됐다. 그 분야에는 이미 경쟁사가 많다. 내가 듣기론 네이버가 똑같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 창업가는 학벌이 안 좋다. 그 창업가는 과거에 실패의 경험이 너무 크다. 특정 회사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러한 이유는 백만 가지 정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의견들은 모두 논리적이고 똑똑해 보인다.

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들인 쿠팡, 배민, 토스, 당근마켓도 위에서 말한 이유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초기에 투자하지 않았다. 나도 여러 가지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면서 투자하지 않은 회사들이 엄청나게 큰 기업이 되는 걸 자주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안 될 만한 백만 가지 이유를 찾지 말고, 될만한 이유 한 가지만 찾아서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받은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좋은 창업가들을 찾고 싶으면, 여러 가지 잡음을 무시하고, 딱 한 가지의 확실한 시그널을 찾으면 됩니다. 이 사람이 좋은 창업가가 아니라는 백만 가지의 시그널(=잡음)이 보일 텐데요,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좋은 창업가라는 딱 한 개의 시그널입니다. 이게 있다면, 여기에 베팅하는 게 우리 전략인 것 같아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투자하지 않기 위한 이유는 백만 가지가 있다. 그리고 백만 가지 모든 이유가 굉장히 합리적이고 똑똑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투자를 꼭 해야 하는 딱 한 가지의 이유가 있다면, 우린 여기에 베팅한다.

작은 가게에서 초심을 배우다

웬만하면 이 공간에서는 책에 대한 서평을 쓰지 않는데, 가끔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을 때마다 서평을 쓰고 있다. 오늘도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다. 2주 전에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라는 책을 읽었다. 들기름 막국수의 원조이자, 이젠 전국적으로 유명한 식당이 된 용인 고기리막국수의 김윤정 대표가 쓴 책이다.

나는 대단한 미식가가 아니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가는 적은 거의 없고, 새로운 식당도 거의 안 간다. 아무리 맛있어도 굳이 멀리 가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 먹을 음식은 이 세상에 없다는 인생철학이 있고, 새로운 곳을 가는 대신 그냥 가던 식당을 더 가서 단골이 되자는 전략으로 산다. 하지만, 사업의 관점에서는 식당과 이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스트롱에서도 우린 먹고 마시는 사업에 투자를 꽤 했는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다 해도, 우린 계속 먹고 마셔야 하므로 투자 관점에서도 좋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단순 재미를 넘어, 감명 깊게 읽었다. 실은 그동안 내가 수많은 식당을 다니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나는 혹시 나중에 식당을 창업하면 절대로 여기같이 하지 말고, 꼭 이렇게 해야지”라고 느꼈던 모든 좋은 점들을 고기리막국수는 이미 12년째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랐다. 손님뿐만 아니라, 식당 종업원들까지 모두 생각하는 작은 디테일에 대한 두 부부 창업가의 – 남편분이 쉐프 – 집착이 12년 동안 변하지 않고 전국의 손님을 단골로 만드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은 내가 아는 좋은 스타트업 창업가분들이 사업을 하는 비슷한 태도와 생각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고기리막국수 식당 자체를 하나의 중견 비즈니스로 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책에 대한 모든 내용을 쓰진 않겠다.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길 권장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좋은 책, 좋은 식당, 진심으로 가득 찬 경영인을 직접 만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지만, 더 뿌듯했던 건 투자자로서의 내 초심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과연 몇 개의 막국수 식당이 있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정확한 수치를 찾을 순 없지만, 수백 개는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중 이미 유명한 곳도 많고, 돈을 잘 버는 곳도 많은데, 또 새로운 막국수 식당이 생겼을 때 과연 이 식당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 연 매출 30억 원 이상 하는 대형 플레이어로 성장할지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대부분 이미 막국수를 잘하는 식당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기리막국수는 이걸 너무나 잘하고 있다. 아무리 경쟁이 심한 레드오션이라도 남들보다 더 잘하면 충분히 성공하는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결국엔 어떤 걸 하냐 보단, 누가 이걸 하냐가 제일 중요하다.

누구나 다 뭔가를 시작할 땐 초심이라는 게 매우 강하게 작용하지만, 같은 업무를 반복적으로 하면서 경험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이게 점점 없어진다. 나도 꾸준함과 반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투자를 계속하고 그동안 수천 명의 창업가들을 만나보니 초기 투자자의 초심이 많이 닳아 없어졌다. 그래서 요새 창업가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과거에 안 된 사업과 비슷한 사업을 검토하면 이것도 안 될 거라는 편견을 갖게 되고, 이 창업가가 5년 후에 어떤 사업을 할 사람이 될지 시각화하지 않고, 현재 하는 사업을 기반으로 이 창업가를 판단하고, 이미 잘하는 경쟁사가 많은 분야에 뛰어든 창업가를 보면 후발주자이고, 이미 존재하는 시장의 대형 플레이어를 못 이길 거라는 편견이 어느새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고기리막국수라는 작은 가게에서 나는 초심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절대로 안 됐던 비즈니스라도 누군가 잘하면 유니콘을 만들 수 있고, 아무리 대형 기업들이 이미 진출한 분야라도 누군가 여기서 잘하면 유니콘을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안 될 이유 백만 가지 보단, 될 이유 하나로 소신 있게 투자하던 내 초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래도 나는 고기리막국수 식당에 직접 가진 않을 것 같다. 멀리까지 가서 웨이팅을 감수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는 내 철학 또한 지킬 것이다. 🙂

성장과 수익의 저글링

지난주에 불경기가 왜 어떤 스타트업에겐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인지에 대해서 몇 마디 썼다. 내 블로그를 계속 읽는 분들에겐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오늘은 왜 이게 어쩌면 기회가 아니고 자멸로 가는 길일 수도 있는지에 대한 약간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땐 – 이건 팬데믹 기간뿐만 아니라 실은 지난 12년 동안이었다 – 모든 스타트업의 전략은 수익성보단 성장성에 기울어졌었다. 기형적으로 많은 돈과 자원이 돈을 벌어서 흑자 나는 회사를 만드는 방향보단, 손실이 발생해도 무조건 외형을 성장시키는 방향에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조건 성장하는 전략을 나도 좋아하진 않지만, 이게 맞냐 틀리냐를 따지기 전에, 경기가 좋을 때 당시 시장의 분위기도 감안을 해봐야 한다.

경기가 좋을 땐 정말로 유동성이 풍부했다. 정규 교육을 받았고, 누구나 알만한 회사에서 2년 이상의 직장 경험이 있는 창업팀이라면 웬만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던 시절이다. 워낙 비슷한 서비스가 많이 생겼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수많은 VC들로부터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익성 보단 성장이 중요했다. 그래서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다 적자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고효율의 그로쓰 마케팅에만 집중했다. 돈을 못 벌어도 일단은 고객을 획득해서 락인하면, 나중에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 지금은 이 사상을 모두 다 정말 싫어하지만 – 전략을 모두 다 진심으로 믿었었다. 우리를 포함해서.

마케팅에 돈을 너무 많이 썼고,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을 뽑으면서, 투자금은 금방 사라졌지만, 상관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또 나가서 펀딩하면 됐고, 나쁘지 않은 조건에 후속 투자를 상당히 많은 스타트업들이 제품도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는 상태에서 잘 받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돈을 쓰면서 외형만 성장시키는 게 진짜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해서 그 분야에서 일단 1등을 먹으면, 그 이후에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해도 된다는 것도 모두 굳게 믿고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냥 돈이 워낙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그냥 앞뒤 생각하지 않고 돈을 막 쓰고, 투자를 막 해도 크게 이상한 시절이 아니었다.

불경기가 찾아오고 유동성이 떨어지자 갑자기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성장하자는 분위기가 수단과 방법을 잘 가려서 돈을 벌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거래액이나 매출과 같은 외형을 키우기보단, 크게 성장하지 못해도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게 요새 대부분 스타트업의 전략일 것이다. 우리 또한 스트롱 창업가분들에게 마이너스 나는 성장은 멈추고, 손익분기를 맞추고, 수익성에 집중하라고 한다. 성장 못 하는 걸 은근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수치가 줄어들어도 일단은 수익성을 맞추라고 강력하게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수익성만 개선하고 성장을 못 하는 비즈니스는 크게 되기 힘들다. 성장이 없는 손익분기는 스타트업의 주 전략일 순 없고, 결국 작은 스타트업이 큰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성장이라는 페달을 다시 밟아야 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실 것이다. “언제는 무조건 성장하라고 하고, 언제는 성장 하지 않아도 되니 돈을 벌라고 하고, 이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라고 하네. 어쩌라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좀 미안하지만, 이게 변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환경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들이 감수해야 하는 숙명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시장에 유동성이 없을 땐,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그렇다고 성장에 대해서 아예 신경을 꺼버리면 안 된다. 상황이 다시 좋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성장에 초점을 맞출 준비는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성장과 수익성이라는 두 가지의 공을 항상 저글링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서 하나의 공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다시 주워서 다시 저글링 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