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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실종과 초버티칼화 현상

김난도 교수가 요새 “평균 실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단순한 개념은 아니지만, 그냥 단순하게 설명해보면 이젠 사람들의 취향이 너무 다르고 세분화 돼서 평균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점점 빛바래지고 있다는 뜻이다. 평균, 기준, 그리고 통상적인 것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고 앞으로 평균 실종은 더욱더 가속화될 것인데, 이런 현상은 우리가 만나는 창업가들과 검토하는 사업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런 것도 사업이 돼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작아 보이는 틈새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을 검토하면서, 이 시장과 제품을 조금 더 깊게 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시장이 은근히 커서 한번 놀라고, 은근히 크지만 그렇게까지 크진 않은데, 나름대로 충성 고객들이 있어서 의미 있는 규모의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데 두 번 놀란다.

실은 VC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의 규모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평균이 더욱더 빠르게 실종될 것이고, 이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시장의 규모는 덜 중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조 단위의 유니콘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선 시장의 규모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비즈니스가 유니콘이 될 필요는 없고, 모든 VC가 유니콘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다.(물론, 그렇게 하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는 VC의 투자 전략에 따라서 상이할 수도 있는데, 우리같이 초기에 투자하면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상대적으로 낮고, 이 단계에 투자하면 향 후 유니콘 엑싯이 아니고 적당한 가치에 엑싯을 하더라도 펀드가 달성하고자 하는 수익은 실현할 수 있다. 시장이 세분화되고 초버티칼화 되면서 과거에는 너무 작다고 생각했던 비즈니스들이 의미 있는 규모로 성장해서 앞으로는 1,000억 원 대의 좋은 비즈니스들이 더 많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개개인의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하나의 큰 버티칼이 여러 개의 작은 초버티칼로 쪼개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큰 버티칼이 거대한 평균인데, 이 거대한 평균이 작아지면서 실종된 부분들이 과거에는 규모가 나오지 않던 작은 버티칼로 가고 있다. 존재하는 건 알았지만, 너무 니치하고 극단적이었던 덕후 시장이 이젠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는 준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상이 이를 잘 반영해준다.

우리 투자사 중 게코 도마뱀을 키우는 유저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곳이 있는데, 내가 몰랐지만, 생각보다 큰 이 시장 또한 이런 취향의 세분화와 초버티칼화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반려동물이라고 하면 전에는 개만 생각했는데, 이게 고양이로 세분화되고, 이젠 도마뱀, 앵무새, 뱀 등으로 계속 세분화 되고 있다. 과거에는 누군가 “저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요”라고 하면 그냥 당연히 개를 키우는 거로 생각했는데, 이젠 “어떤 종류의 반려동물이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평균이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의 버티칼이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어떤 건 엄청나게 큰 시장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우린 자주 목격한다. 대부분의 컬렉티블 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투자자나 창업가는 이런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시장에 대해서 알아볼 때, 지금은 너무 니치한 시장이라서 이 서비스를 사용할 유저가 한정되어 있지만, 과연 앞으로도 작은 초버티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규모가 점점 커져서 꽤 의미 있는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더 평균이 실종되고 있는 현상을 곱씹어 보면, 어쩌면 이 니치한 시장이 그렇게 니치한 시장이 아닐 수도 있고, 이 초버티칼이 계속 성장하면 역으로 평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나오는 버티칼이라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규모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초버티칼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초버티칼이 버티칼이 될 수 있고, 이 버티칼이 수평적(=horizontal)으로 확장해서 거대한 평균의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행동

아직 한국의 테크미디어에는 어떤 회사가 투자받았다는 펀딩 소식이 제일 눈에 많이 띄지만, 요새 테크크런치 같은 해외 테크 뉴스를 보면 펀딩 소식보단 해고 소식이 더 많이 보인다. 기사 10개 중 절반은 어떤 회사가 직원의 몇 %를 해고했다는 내용인데, 그만큼 경기가 안 좋아지고 있고, 이에 대비해서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미리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는 뜻 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유니콘 기업이 직원을 대량 해고하는 기사를 읽어도 그렇게 놀랍진 않고, 한때 가장 기업가치가 높았던 유니콘 핀테크 스타트업 Stripe의 직원 14% 해고 소식도 이런 매크로 경기 트렌드에 대한 대응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다른 해고 소식과는 조금 달라서 꽤 흥미로웠다. 스트라이프 창업가 패트릭 콜리슨이 해고 관련해서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차가울 정도로 솔직해서 인상 깊었다. 다른 회사 리더들이 대량해고의 이유를 리더나 회사의 잘못이 아닌, 매크로 경기와 같은 외부 요소를 탓하지만, 스트라이프는 상황을 오판한 본인들의 잘못을 탓하면서 이번 대량 해고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팬데믹 기간 이커머스 시장은 너무나 빨리 성장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이런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잘 못 판단. 그리고 항상 호경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잘 못 판단
2/ 새로 출시한 제품들의 좋은 성과 때문에 운영 비용을 과다하게 사용. 이로 인해서 조정비용이 늘어나고, 운영면의 비효율성이 많이 발생.

또한, 앞으로 이런 잘못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에 대한 회사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다. 역시 솔직하다고 생각한 게, 요 이메일을 받은 후, 이번에 해고될 사람들은 15분 뒤에 바로 개별 통보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한국 스타트업 시장에서도 점점 더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투자사도 어려운 곳이 많고, 돈이 없어서 돈이 필요한 회사가 있고, 성장을 위해서 돈이 필요한 회사가 있다. 어쨌든, 시장은 침체되어 있지만, 회사들은 돈이 필요하다. 지금 이런 시장에서 펀딩을 구하는 건 정말 어렵기 때문에, 돈이 절실히 필요하면 경영진의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일단, 스트라이프와 같이 현재 위기의 문제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위기의 원인이 항상 불경기 또는 외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내부에서 취해야 하는 구체적인 행동강령이 안 나오고 그냥 외부 요인이 좋아지길 기다리는 수동적인 전략을 취하는데, 이러다가 자칫 망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모든 위기의 원인은 내부에 있기 때문에, 이걸 빨리 판단 한 후 경영진의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런웨이가 빠르게 고갈되는데 매출을 못 늘리고, 펀딩을 못 받으면, 그냥 가만히 있지 말고 비용을 무조건 줄여야 한다. 곧 상황이 좋아지겠지 또는 곧 펀딩이 될 거라는 근거가 약한 희망을 품고 사업을 하다가 회사가 망하면 이런 희망도 못 품는다.

그리고, 비용을 줄이는 가장 쉬운 – 하지만, 고통스러운 – 방법은 스타트업 비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력을 줄이는 것이다. 즉, 스트라이프 같이 해고를 하는 방법이다. 해고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어떤 창업가들은 나한테 이렇게 반박한다. “저도 전에 사람 내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 해고해서 비용을 줄였는데, 몇 개월 후에 펀딩받아서 다시 한번 성장해보기 위해서 채용했는데, 사람 채용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돈은 있지만 사람을 못 뽑아서 역시 성장하는데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이런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대한 현재 인원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위험한 생각이다. 이러다가 회사가 망하면, 채용을 시도할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순진한 상상보단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즉각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과감하고, 더 즉각적인 창업가의 결단과 행동이 필요한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될 것이다.

네이버의 왕관 뺏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스타트업은 어느 정도의 유료 마케팅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유료 마케팅은 광고인데, 스타트업이라면 모두 다 검색 광고와 소셜미디어 광고에 돈을 쓰고 있다. 스타트업이 검색광고와 소셜광고에 집행하는 비용이 어느 정도일까? 공식적인 연구나 조사를 한 적은 없지만, 투자자들에게 물어보면,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VC 투자금의 절반 정도를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나도 생각해보면, 우리 투자금의 절반 정도가 구글, 네이버와 페이스북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 엄청난 돈이다.

본인들의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서 이렇게 남의 플랫폼에서 돈을 과하게 사용하는 걸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를 리 없고, 이야기해보면 모두 다 아까워하지만, 현재로서는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만큼 좋은 온라인 마케팅 채널이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고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구글보단 네이버에서 광고비를 많이 쓰는데, 대부분 창업가의 마음속엔 언젠가는 네이버의 왕관을 본인들이 뺏어와서 스스로가 네이버와 같은 대형 플랫폼이 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네이버의 왕관은 엄청 무겁다. 이 왕관을 뺏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우리 서비스의 브랜딩이 확실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사용자들이 네이버가 아닌 우리 제품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 현재의 유저 시나리오는, 사용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네이버로 들어가서, 본인들이 원하는 걸 검색하고, 검색 결과를 클릭해서 운 좋으면 우리 서비스로 전송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사용자들이 네이버가 아닌 우리 서비스를 먼저 열고, 여기서 필요한 걸 검색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정말로 많은 돈, 시간, 그리고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렇게 많은 돈,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네이버의 왕관을 뺏는데 일부 성공한 내가 아는 회사들이 몇 개 있다. 일단 쇼핑 분야에서 쿠팡이 어느 성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싼 가격에 사기 위해서 네이버에서 먼저 검색하고, 이 검색 결과 중 하나를 클릭해서 쿠팡이나 다른 이커머스 서비스로 넘어가는 과정이 온라인 쇼핑의 일반적인 프로세스였다. 이젠 많은 사용자들이 그냥 쿠팡 앱을 실행하고, 여기서 물건을 검색해서 구매한다. 즉, 이커머스 분야에서는 쿠팡이 네이버와 같은 검색, 발견, 그리고 구매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쿠팡은 아직도 네이버와 다른 소셜 마케팅 플랫폼에서 마케팅 비용을 엄청나게 많이 집행하는 거로 알고 있지만, 어쨌든 이커머스 분야에서는 확실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네이버의 왕관을 뺏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당근마켓 또한 중고 거래 분야에서는 네이버의 왕관을 확실하게 뺏었다고 생각한다. 당근마켓 초기 시절에는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당근마켓의 중고 거래 물품을 발견하고, 그 이후에 당근마켓으로 트래픽이 전송되는 프로세스가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사용자가 바로 당근마켓을 열고, 여기서 본인들이 필요한 용품을 검색하고 거래한다. 유저들에겐 중고 거래 분야에서는 당근마켓이 바로 네이버가 된 셈이다.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순 없지만, 당근마켓에서 쿼리되는 검색 수가 이런 시장의 트렌드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에서 다른 분야로 계속 영역을 확장하면서 네이버의 왕관을 야금야금 뺏어 먹을 것으로 예측된다.

홈 서비스 영역의 우리 투자사 미소와 생활 솔루션 영역의 숨고 또한 궁극적으로는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면 일단 대부분의 유저는 네이버에서 ‘가사도우미’ , ‘집안 청소’ 등으로 검색한다. 그러면 미소나 청소연구소 링크가 검색 결과로 나오고, 이 중 하나를 클릭해서 운 좋으면 실제 사용으로 전환된다. 숨고 또한 비슷하다. ‘피아노 레슨’ , ‘파워포인트 작성’ 등과 같은 생활 업무를 해줄 분이 필요하면 일단은 네이버를 먼저 실행해서 검색부터 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많은 결과 중 하나가 숨고에 등록된 프로들이고, 운 좋으면 숨고를 클릭해서 전환된다.

숨고나 미소나, 이렇게 중간에 네이버를 거치는 과정을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즉, 사용자들이 청소 또는 집과 관련된 그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면 네이버로 가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미소를 먼저 실행하고 마치 홈서비스를 위한 검색 엔진처럼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미소는 홈서비스라는 버티컬에서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숨고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어떡하지?” 상황이 발생하면 네이버로 가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숨고를 마치 검색 엔진처럼 가장 처음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숨고는 국민 생활 솔루션이라는 다소 큰 버티컬에서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엄청 힘들고, 돈과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해서,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시도하다가 망할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면 10년 넘게 시장을 독점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플랫폼 스타트업은 네이버의 왕관을 뺏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답

동영상 하면 유튜브가 대세이지만, 한 때는 유튜브와 쌍벽을 이루었던 Vimeo라는 회사가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땐 나도 Vimeo를 가끔 사용했는데, 점점 그 비율이 줄어들면서 최근 몇 년 동안은 완전히 잊고 있었고, 유튜브에 밀려서 회사가 망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Vimeo 사장과 인터뷰한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회사가 망한 게 아니라, 아주 잘 살아있고, 시가 총액이 무려 3조 원인 상장 회사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잊고 있던 회사의 소식을 오랜만에 들었을 때, 그리고 그 회사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땐 항상 반갑고, 그동안 어떤 식으로 사업을 해서 이렇게 잘 됐는지가 궁금해서 팟캐스트를 끝까지 다 들었다. 실은, 내가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사실은 없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자, Vimeo가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B2C에서 B2B로 사업의 방향을 바꾼 것이었다.

비미오가 한때는 유튜브의 대항마라고도 불렸지만, 누구나 언제 어디서 동영상을 마음껏 올릴 수 있었던 유튜브에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심해졌고, 결국 유튜브와 비슷한 비즈니스를 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래도 동영상 비즈니스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다른 전략에 대해서 고민한 끝에, 넷플릭스와 비슷하게 비미오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판매하기로 했다. 실은, 이 결정은 오래 고민한 결정이라기보단, 어쩌면 사업이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절박하게 내린 전략 수정 결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꼭 오리지널 콘텐츠를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기보단, 오리지널 콘텐츠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했던 것이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출시하기 얼마 전에 비미오의 대표이사가 교체됐고, 새로운 대표는 – 내가 들은 팟캐스트의 주인공 – 그동안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본인의 회의적인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고, 엄청난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이 새로운 전략을 백지화시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리지널 콘텐츠는 비미오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본인이 비미오의 다양한 부서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보고 느꼈던 점들을 하나씩 실행으로 옮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작은 소규모 비즈니스들이 내, 외부용도로 동영상을 제작해서 비미오에 올리는 현상이었다. 특히 작은 회사들이 고객을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해서 과거에는 텍스트로 작성된 문서를 공유했는데, 이런 회사가 점점 더 동영상을 통해서 이런 업무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튜브는 온갖 동영상이 다 올라간 곳이라서, 많은 기업 고객은 그래도 유투브 보단 더 깔끔하고, 선별된 동영상이 있는, 더 professional한 비미오를 선호했고, 특히 코로나가 시작하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더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부 데이터를 실제로 분석해보니, 이런 관찰을 잘 뒷받침해줬다. 매우 많은 기업들이 비미오를 이용하고 있었고, 이 중 많은 고객이 기업용 동영상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솔루션까지 제공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미오는 그동안 해왔던 B2C 사업을 과감하게 버리고, B2B 사업으로 피보팅을 했는데, 이게 아주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됐다.

사업이 잘 안되면, 어쩌면 답은 가장 가까운 곳인 우리 회사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비미오와 같이 우리 내부 고객의 사용패턴을 잘 보고, 데이터를 잘 분석해보면, 왜 우리가 못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 보일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분들이 이 답을 멀리 찾으려고 하고, 특히 우리의 경쟁사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많은 답은 우리 내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한 배팅(batting)

내가 쓴 첫 번째 책 ‘스타트업 바이블‘이 2010년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12년이 된 고전이 됐다. 특히 모든 게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는 스타트업에 대한 책이라서 그런지, 지금 보면 틀리거나, 또는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이 꽤 있다. 아니, 정정해보면, 내용이 틀렸다기보단, 그동안 환경이 바뀌거나 아니면 내 생각이 바뀌어서, 더는 현실적이지 않고, 적절하지 않다고 하는 게 가장 맞을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좀 많아서, 여기서 하나씩 다 나열하진 않겠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이 내용을 기반으로 ‘스타트업 바이블 3’을 써보라고 제안한 적은 있다. 새로운 책 작업은 정중하게 사양했지만, 이 맥락과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한다. 즉,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굳은 생각과 신념 중 시대의 변화 때문에 바뀐 게 뭐가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다. 스트롱을 9년 넘게 운영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는데, 이 경험이 내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신념과 철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했지만, 반대로,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투자의 속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워렌 버핏의 팬이다. 이 분에 대한 글도 여러 번 쓰긴 했는데, 버핏의 투자 철학 중 이런 게 있다:

“공이 지나갈 때마다 휘두르지 마라(Don’t Swing at Every Pitch)”

투자하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으면, 굳이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버핏은 이 철학을 매우 잘 지켜서,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 기준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 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한 건의 투자를 집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개의 회사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실은 나도 이 철학을 오랫동안 존경해왔고, 나 또한 이와 비슷한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우리의 투자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건 팀이지만, 그 외에도 다른 기준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팀을 만나도 우리의 스윗 스팟에 들어오지 않으면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진화하고, 세상이 변화하면서 이 철학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들은 대부분 확률 게임을 한다. 워낙 초기에 투자하고, 어떨 땐 아무것도 만들어 놓은 게 없는 팀에 투자하기 때문에 이 회사가 어떻게 진화할지, 어디로 튈지, 어떻게 끝날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투자를 시작했을 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예측하고 상상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이게 쓸데없고 부질없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그래서 승률을 올리기 위해서 우린 요새 최대한 많은 투자를 하려고 노력한다. 야구로 따지면, 최대한 배트를 많이 휘두르는 것이다. 너무 뻔하게 벗어난 공은 그대로 지나가게 두지만,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올 만한 공이면 무조건 휘두른다. 공이 지나갈 때마다 배트를 휘두르는 건데, 이건 위에서 말 한 워렌 버핏의 철학과 반대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계속 배트를 휘둘러야지만, 뭐라도 치기 때문이다.

목표는 항상 홈런이지만, 오히려 삼진을 정말 많이 당한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가끔 안타도 치고, 정말 가끔 홈런도 친다. 이런 철학으로 우린 2020년도에 정말 많은 투자를 집행했고, 올 해는 아직 한 달이 남았지만, 2021년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초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투자하는 것이다. You have to keep swinging, and you have to keep inves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