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편리함

우린 익숙한 걸 좋아한다. 밥을 먹을 때도 자주 가는 익숙한 식당을 선호하고, 사람을 만나도 익숙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뭐든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보단, 과거에 경험해봤거나, 아니면 경험한 것과 비슷한, 그래서 뭔가를 했을 때 그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익숙함을 좋아한다. 많은 학자들이 관련된 연구를 했는데, 이는 인간의 DNA와도 연관되어 있다. 어쨌든 사람은 익숙한 걸 좋아한다.

그리고 우린 편리한 걸 좋아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편한 것보단,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편안하고 편리한걸 누구나 다 선호한다.

특히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리고 수백만 개의 앱과 서비스 중 우리가 필요한걸 매일 매일 선택해야 하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 익숙함과 편리함은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나도 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 투자사가 만든 앱 외의 다른 앱을 요샌 웬만하면 설치하지 않는데, 오래전부터 소위 말하는 app fatigue가 왔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앱을 깔고, 회원 가입하고, 사용법을 익히다 보면 어떤 날은 토가 나올 것 같은데, 이런 현상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나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새로운 앱을 만들거나 출시할 때는 이 글에서 내가 말한 익숙함과 편리함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야 한다.

어떤 창업가는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 엄청난 신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이 이걸 못 알아봐 준다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도 아니고, 그렇게 혁신적인 제품도 아니라서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데, 정말 어떤 분들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단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는 데 성공한다. 이론적으로는 기존 기술과 제품보다 훨씬 더 좋고, 편리한데 왜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미 존재하는 제품들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편리한 제품을 만들어도, 그 편리함이 기존 제품의 조금은 더 불편하지만, 훨씬 더 큰 익숙함을 뛰어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미 많은 사람이 익숙한 제품이나 프로세스를 잘 벤치마킹해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시장의 반응이 별로라면, 아마도 기존 제품보다 정말 더 편리한지, 그리고 그 편리함이 새로운 제품에 대한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편리함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실은, 요샌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는 별로 없다. 대부분 점진적인 혁신을 통해서 기존 제품보다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싸고, 조금 더 좋은 제품을 만든다. 이런 제품은 익숙함과 편리함 모두 애매모호한 경우가 있다. 즉, 기존 제품과 비슷하지만, 왠지 기존 제품이 더 익숙하고, 기존 제품보다 편리하긴 하지만, 그렇게 많이 편리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렇게 익숙함과 편리함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시장의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을 것이다.

이미 말한 대로, 우린 앱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앱들이 출시되는데, 그 와중에도 계속 성공하는 제품들이 나온다. 이 제품들을 조금 살펴보면,
1/ 완전히 신개념이라서 전혀 익숙하진 않지만, 너무 편리하다.
2/ 편리하긴 한데, 다른 제품에 비해서 약간 더 편리하다. 그런데도 너무나 익숙한 컨셉을 도입했다.
3/ 너무 편리하고, 거기에다가 너무 익숙하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급적이면 우리도 위 3가지 중 하나의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최악은, 익숙하지도 않은 컨셉의 제품을 만들었는데, 사용 방법도 너무 불편한 제품이다. 이런 건 100% 망한다. 안타깝게도 시장에 있는 대부분의 제품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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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dbgraphic / 크라우드픽

스트롱은 미국 법인이고, 우리 펀드도 미국 펀드이지만, 지금까지 한국에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했고, 앞으로 그렇게 할 계획이다. 2012년도에 존이랑 스트롱 1호 펀드를 만들었을 때, 우리가 정말 하고 싶었지만, 이게 될지 몰라서 증명해보고 싶었던 건,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들이 태평양을 건너서 LA를 발판 삼아 북미 시장에 진출, 그리고 확장해서 미국의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큰 회사가 되는 걸 도와주는 거였다. 그리고 그 반대로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한국/서울을 발판 삼아 아시아 시장에 진출, 확장해서 아시아 시장의 강자가 되게 도와주고 싶었다.

우리는 현재 9년째 이 시도를 계속하고 있고, 하면 할수록 한 나라의 회사와 창업가들이 다른 나라로 진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매일 느끼고 있다. 진출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후에 해외 시장에서 성장하는 건 또 다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항상 강조하듯이, 이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수많은 시도를 하면서 배움을 얻어야 하는 평생의 과제이기 때문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이런 도전을 하면서 우리가 최근 2년 동안 직접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 트렌드와 가능성이 있는데, 이게 꽤 재미있고,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유니콘 기업들의 비즈니스는 미국에서 이미 잘 되고 증명된 컨셉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처음에는 동일하게 카피하지만, 사업이 발전하면서 한국 시장에 맞게 현지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도 이런 비즈니스에 많이 투자했고, 이들 중 몇 개는 한국의 대표 category leader들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과 미국 양쪽 시장을 최근 몇 년 동안 보다 보니, 이와 반대의 트렌드 또한 목격할 수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시작됐고, 한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증명이 된 비즈니스 컨셉을 미국으로 가져가서 북미 시장에서 창업하고, 한국형 컨셉을 글로벌 비즈니스로 만들려는 시도와 노력을 하는 몇몇 창업가들에게 우린 그동안 꽤 많이 투자했다.

뉴욕의 D2C 스타트업 Cardon이라는 회사도 스트롱 투자사인데, 이 회사는 기능성 남성 화장품을 만들고 섭스크립션으로 판매하고 있다. 대표는 한국 분인데, P&G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남성 제품 마케팅을 오랫동안 해서 이 시장에 대한 깊은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화장품을 잘 만들고, 한국 여성들이 화장을 매우 잘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 여성 못지않게 요샌 한국 남성들도 화장과 외모에 엄청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요샌 강남의 웬만한 헬스클럽 남성 라커룸에도 화장을 할 수 있는 파우더룸이 구비되어 있고, 올리브영에 가면 이젠 남성 화장품 라인도 엄청 세분화되어 있다.

아직 미국의 남성 화장품 시장은 한국만큼 발달되어 있지 않다. 미국 남성은 주로 로레알이나 뉴트로지나와 같은 대형 브랜드의 화장품을 슈퍼에서 구매하고 있고, 많이 발라봤자 토너와 보습제, 두 개 정도의 화장품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 시장 또한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리고 –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남성들의 스킨케어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는 큰 요소 중 하나가 나는 케이팝이라고 생각한다. BTS나 EXO와 같은 보이밴드에 미국의 젊은이들도 열광하고 있는데, 이 젊은 소년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과거에는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성형수술과 세분화된 화장이다. 여기에 열광하는 미국의 MZ 남성들도 자라면서 이렇게 피부관리도 하고 화장도 하면서 시장이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Cardon이 궁극적으로는 한국(또는 아시아)에서 이미 입증이 된 아이템과 컨셉을 미국 시장으로 가져가서 큰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실은 이런 플레이를 하는 스트롱 회사들이 이젠 꽤 많이 있다. 한국의 전통주 막걸리를 현대적으로, 그리고 미국적으로 재해석해서 캔 막걸리를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Makku, 고추장을 마치 케첩과 타바스코와 같은 글로벌 소스로 만들어서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KPOP Foods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모두 다 한국에서 입증된, 가장 한국적인 컨셉을 미국에서 현지화해서 글로벌 비즈니스로 만들고 있는 대단한 창업가들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감성으로 재해석되고 재탄생 된 자동차 바디킷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는 에이드로 또한 이런 좋은 예시라고 생각된다. 자동차 튜닝이란 산업은 서양에서 먼저 만들어졌지만, 이걸 한국적인 아기자기한 감각으로 아주 깔끔하고 이쁘고 멋지게 만들어서 다시 미국에서도 판매하고 있는 스타트업인데, 역시 한국인들이 가장 잘하는걸, 가장 한국적으로 재해석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회사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진출하길 바란다. 어떤 형태로든.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3월

3월도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는 꽤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 일단 비트코인 가격이 초반에 너무 많이 상승해서, 다시 한번 가격 하향 조정이 있을 거라고 많은 분이 주장했지만, 큰 가격 조정은 없었고, 아직도 비트코인 가격은 5만 달러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2월에 내가 더 많은 기관투자자, 그리고 기업이 안전한 자산의 개념으로 비트코인을 보유할 거라고 했는데, 아주 천천히 이런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미국의 Coinbase가 곧 $70B ~ $100B에 IPO를 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데, 실제로 이 기업가치에 IPO를 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디지털자산이 주 비즈니스인 코인베이스가 전통 기업들의 무대인 나스닥에 상장되고,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코인베이스 주식거래 기회가 제공된다는 게 의미하는 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디지털자산에 대해서는 금융인들의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리고, 한국만 해도 불법과 사기의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입장이 더 대세인데, 이 시점에 이 시장의 대표회사 코인베이스의 IPO는 시사하는 점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암호화폐와 비트코인이 사기고 불법이다 등의 싸움을 하고 있지만, 이미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했고, 오히려 법을 만드는 사람들과 금융인들은 이미 자산의 한 종류로 디지털 자산을 인정했다는 점이 가장 큰 시사점인 것 같다.

또 한 가지 괄목할만한 점은, 제도권을 대표하는 투자은행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의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의 발빠른 행보이다.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내가 알기로는 모건스탠리가 고객들에게 비트코인 관련 금융상품을 제공하려고 준비하고 있고, 소문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빗썸 거래소를 직접 인수하는데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 실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 요새 발생하고 있는걸 보면, 비트코인은 확실히 디지털 골드로 변모하고 있고,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을 개인들이 아닌 기관들이 뒷받쳐주기 시작했다는 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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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jack / Twitter

그리고, 같은 블록체인/크립토 분야이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제도권 금융과는 약간 다른 색깔의 NFT 시장에서도 매우 재미있고, 가끔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상 첫 번째 트윗인, 2006년 3월 22일 자 잭 도시의 트윗 “just setting up my twttr“가 1,630.58 ETH(=약 31억 원)에 판매됐고, 이 외에 상상도 못 할 다른 디지털 자산들이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면서 블록체인 장부에 영원히 기록되고 있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디지털 디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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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지회장 / 크라우드픽

얼마 전에 페이스북 친구가 올린 이 기사를 읽고, 굉장히 많이 공감했다. 나는 요새 웬만하면 다 배달 시켜 먹지만, 기다리기 싫고 음식이 식는 게 싫으면, 가끔 집 근처 맥도날드나 버거킹에 직접 가서 음식을 사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카운터에서 주문이 안되고, 키오스크를 통해서만 주문하고 결제하는 시스템이 도입됐고, 이걸 직접 해보니까 햄버거 세트 하나 주문하는데 상당히 많은 에너지와 브레인파워를 집중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그냥 익숙지 않아서 그렇겠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번 방문해서 여러 번 주문 키오스크를 사용해보고 느낀 점은, 매번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위의 기사의 어머님은 나보다는 고령자이신 것 같고, 나같이 첨단 기술이나 서비스를 매일 접하는 업무를 하는 분도 아닌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키오스크 사용법이 어렵고, 나도 빅맥세트 하나 주문하는데 가끔 몇 분이 걸릴 정도로 어렵다고 느끼는데, 나보다 나이 드시고 이런 시스템에 전혀 익숙지 않은 분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했지만, 키오스크 앞에서 20분 동안 헤매다가 먹고 싶은 햄버거도 주문 못하고, 그냥 끙끙거리면서 고민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신 이 분의 이야기는 실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우리 부모님도 얼마 전에 세상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냐는 말씀을 하시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늙으면 그냥 다 죽어야 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게 참 나한테 슬프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의 미래를 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나도 지현이랑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활이 편해지는 건 맞다. 이건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한국같이 소득수준이 높고 땅덩어리가 작은 나라에서 모바일 기술의 발달은 삶의 질을 혁명 수준으로 올려놨다. 손가락으로 뭐든지 주문할 수 있고, 수 십 분내로 집 앞으로 누군가 이 모든 걸 배달해주는 시스템이 이젠 너무 익숙하지만, 생각해보면 10년 전만 해도 이런 편리함은 없었다. 한국 시장을 잘 모르는 미국인들도 쿠팡 주식을 구매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마존도 하지 못 하는 ‘밤 12시 전에 주문하면 그 다음날 새벽에 배송’하는 이런 매력적인 인프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말 그대로 한국은 손가락 끝에 모든 게 있는, 기술적으로 진보한 편리한 나라로 발전하고 있는 건 틀림없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한 후배 한 명이 그동안 한국은 완전히 앱의 나라가 된 것 같다고 했는데, 완전 동의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디바이드, 즉 정보격차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정보격차의 의미는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지식과 소득 자체가 증가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발전하지 못해, 원래 존재하던 격차가 더 커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의 디지털 격차는 디지털 기술 환경에 노출된 중산층 이상의 가정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 가정 사이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 환경에 충분히 노출된 사람들 간에도 계속 심화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모든 게 너무 빨리 바뀌는 사회이고, 점진적 변화보단 급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디지털 변화도 급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조금만 이런 최신 트렌드에 관심을 덜 갖거나 소홀히 하면, 격차가 너무 커져서 영영 따라잡지 못 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 부모님만 해도 고학력자이고 경제적 수준도 평균 이상이지만, 쿠팡도 힘들게 사용하시고, 인터넷 뱅킹도 못 하시고, 그리고 맥도날드에서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나도 힘들어하는데, 과연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키오스크 주문을 못 하는 건, 꼰대라서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많은 정치인이 전국의 식당에 이런 최첨단 비대면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전국의 언택트화를 통해서 효율성을 제고하고, 소상공인들의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공략을 발표하고 있다. 다 좋은데, 과연 누구를 위한 기술이고, 누구를 위한 효율성인지 다시 한번 묻고 있다. 그리고 과연 이들은 이런 키오스크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봤는지, 그래서 정말로 이게 그렇게 쉽고 편한 기술이라고 주장하는지도 궁금하다.

나도 더 나이를 먹으면, 미래에는 어떤 기술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햄버거 하나 시키는데 20분 동안 남들 눈치 보면서 끙끙거리다가 주문도 못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욕적인 경험을 하고 싶진 않다. 누구를 위한 디지털 혁신이고, 누구를 위한 인터넷 강국인지, 우리 모두 한번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창업가의 연봉

주주총회의 시즌이 왔다. 우린 투자한 회사가 워낙 많고, 형식적인 주총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회사의 재무제표 승인과 같은 비즈니스의 방향이나 전략과는 별로 상관없는 주제라서,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린 투자한 회사가 많지만, 대부분의 회사와는 평소에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는 편이라서 굳이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업데이트를 받을 필요가 없다.

주총에서 자주 결정해야 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경영진의 연봉인데, 특히 창업가들의 연봉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책정하는 게 적당할지 많은 대표님들이 나한테도 자주 물어본다. 이 또한 정답이 없는 주제이지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건, 벤처기업이라고 경영진의 연봉을 무조건 낮게 책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누가 나한테 물어본다면, 회사의 자금 상황에 따라 적당한 수준에서 연봉을 책정하라고 권장한다.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이라면, 자금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에, 너무 많이 가져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창업가가 월급을 아예 안 가져가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어떤 투자자는 이런 모습이 창업가의 굳은 의지를 반영하고, 돈을 아껴 쓴다고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국과 같이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 헝그리 정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인간답게 살지 않으면서 스타트업을 하는 건 완전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가 성장하면, 창업가도 연봉을 올려야 하고,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회사도 돈을 잘 버는 수준에 도달하면, 창업가들도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수준까지 회사를 성장시켰으면, 이들에게는 그 정도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래도 뭔가 기준같은게 필요하다고 하면, 나는 회사에서 월급을 가장 많이 받는 직원과 가장 적게 받는 직원의 중간값을 산정하고, 이 중간값과 최곳값 사이에서 창업가의 연봉을 책정하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전반적인 시장의 몸값과 우리 회사의 자금 상황이 고려되고, 회사 내 다른 직원분들과 상대적으로 차이가 안 나는 수준에서 연봉이 책정될 수 있다. 물론, 이건 굉장히 비과학적인 방법이고, 좋은 HR 부서가 있는 회사라면 연봉을 산정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방법은, 창업가들은 기회가 되면 본인의 주식을 조금씩 파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투자자들은 이걸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초기에는 최대 주주인) 대표이사나 창업팀이 회사의 구주를 판매하면 시장에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될 회사이면, 당연히 회사의 주식을 악착같이 보유해야하는데, 그 회사의 선장 격인 대표가 본인의 주식을 판매한다는건 회사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의미가 아닌가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회사의 비전이나 미래와는 전혀 상관없다. 대표이사도 가족이 있고, 본인도 먹고 살아야하는데, 그게 기본적으로 잘 안 되는 수준의 연봉을 회사에서 가져가고 있다면,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가치는 수백억 원대인데, 아직도 대표이사는 비만 오면 물이 새는 반지하 방에서 가족들과 사는 경우를 나는 과거에 본 적이 있는데, 이럴 땐 오히려 내가 주식을 조금 팔아서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가족을 혹사하면서 사업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없는 벤처기업이고, 한국에서 불필요하게 강조되는 헝그리정신, 그리고 어차피 창업가들은 회사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나중에 회사가 잘 되면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 텐데 월급을 너무 많이 받는 건 문제가 있다는 산업 전반에 확산된 인식때문에 스타트업 창업가의 연봉에 대한 말들이 많다. 그리고 대표이사가 회사의 주식을 판매하면, 굉장히 안 좋게 보는데, 기본적으로는 창업가들도 사람이고, 가족이 있는데, 일단 먹고 살아야 한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창업가들이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지만,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지만 모든 주주의 이익이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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