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이 2년은 인생 최악의 지옥 같은 기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투자를 시작한 게 2012년인데, 이후 세계 경제는 나쁘지 않았고, 아주 큰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대부분의 투자자는 실적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시장에 돈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실적이 나오고 성장 가능성이 증명되면 지속적으로 후속 투자를 받는 게 가능했던, 영어로 말하면 the good old days였다. 이 기간에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수익성보단 성장에 초점을 맞췄고, 엄청난 손실을 감행하면서도 성장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그래도 계속 투자를 받아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렇게 이상하게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어느 순간 이 사업은 시장에서 일등이 될 수 있었고, 그 이후엔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하반기부터 이 분위기가 완전히 180도 바뀌면서 그동안 성장에 초점을 맞췄던 모든 창업가는 돈을 버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냥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를 줄이면서 건강하게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하면서 잠시 성장이라는 페달에서 발을 놓았다. 돈이 없는 회사는 사람을 해고하면서 그냥 런웨이를 늘리면서 생존하는 쪽으로 회사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VC들도 태도를 180도 바꾸면서 비즈니스의 성장보단 건강, 그리고 성장보단 생존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기가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어느 정도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호경기일 때도 성장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결국 사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강조했고, 지난 2년 불경기 동안에는 성장은 안 해도 된다고 하고 일단 돈 까먹지 말고 핵심 KPI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걸 강조했다. 이렇게 해도 우리의 많은 투자사들이 그동안 사라졌고, 사라지지 않은 회사들도 엄청 힘든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이 힘든 과정을 잘 견디면서 버텼던 몇몇 회사들엔 다시 한번 재도약과 성장의 기회가 오고 있다. 그동안 어떤 창업가들은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이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데 집중해서 오히려 우리가 투자했을 때보다 더 견고하고 건강한 사업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어떤 창업가들은 그냥 열심히 버티다 보니, 그동안 경쟁사들이 다 망해서 어쨌든 그 분야에서 상위권에 드는 회사가 됐다.
내년에는 시장의 상황이 어떻게 될진 잘 모르지만, 그동안 2년 넘게 숨만 고르고 내실을 다지던 창업가들은 이제 다시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창업가분들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던지는 주제가 그동안 돈을 버는 사업의 모습을 잘 만들어놨으니, 이젠 다시 한번 가속 페달을 밟아서 성장 모드로 전환해보자는 내용이다. 사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인데 이제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됐고, 스타트업은 결국 짧은 기간 안에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우리 투자사 대표님 몇 분과 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명확하게 갈리는 게 재미있었다.
한 부류는 안 그래도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제 다시 가속 페달을 밟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다시 펀딩도 알아보고, 사람도 더 채용하고, 외부 활동도 조금씩 하면서 그동안 웬만하면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았는데, 이제 일을 좀 벌여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거의 매달 조금이라도 흑자를 만들었는데, 이젠 성장에 집중할 것이라서 (제어 가능한)마이너스가 조금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
다른 부류는 그동안 성장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했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뗀 지 너무 오래돼서 다시 성장 모드로 스위치 하는 게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에겐 다시 투자를 받고, 사람을 충원하고, 마케팅 비용을 쓰고,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게 이제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됐고, 성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워진 것 같다.
나는 작년 말에 2024년 경기가 조금 좋아질 거로 예측했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제 금리도 조금씩 내려가고, 상장 시장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서 내년에는 그나마 올해 보단 나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게 맞다면, 그동안 아주 조용히 내실만 다지던 많은 창업가 분들이 이제 다시 재도약과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텐데, 다시 성장모드로 전환하려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준비 과정에서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안 쓰던 성장 근육을 잘 스트레칭하고 다듬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