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투자할 때 창업가의 다양한 면을 관찰한 후에, 이분에게 투자하고 오랫동안 같이 한 방향을 보고 갈지 결정한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거라서, 수학같이 딱 떨어지는 공식은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다양한 우리만의 데이터와 각자에게 축적된 비정형화 된 휴먼 지능을 잘 활용해서 결정하려고 하는데, 아주 크게 보면 제품, 펀딩, 채용에 대한 창업가의 생각과 능력을 판단해 본다.

이 중요한 세 가지 중 하나인 채용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동안 나는 채용에 대해서 수많은 글을 올렸고, 스타트업 대표는 시간의 대부분을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습관처럼 하고 다닐 정도로 채용은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에 제일 중요한 기둥이다. 스타트업이 시작할 땐, 좋은 제품이 있어야 하고, 이 좋은 제품을 좋은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선 펀딩이 중요하고, 이후에 정말 큰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 제품과 돈을 제대로 사용해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즉, 스타트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기둥이 채용이다.

나도 과거에 항상 강조했던 점이 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에 도달하면, 조직이 제대로 된 회사같이 돌아갈 수 있게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어느 정도 규모”란, 내 기준으론, 제품은 이제 돈을 받고 팔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고, 이 제품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비즈니스 모델도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힌 단계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어른”은,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기보단, 큰 기업에서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제품을 직접 만든 경험은 없지만 남이 만든 제품을 잘 판매할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보고 이를 실행해 본 경험이 있는, 그리고 작은 조직이 큰 조직으로 성장하는 걸 직접 그 조직의 핵심 멤버로서 보고, 경험하고, 본인이 이 성장에 어느 정도 관여를 했던,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이 정도 경험을 했다면 나이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꼬꼬마 때 초기 투자한 스타트업이 50명 이상의 조직으로 성장하고, 수백억 원의 매출을 만들면, 주변 지인 중 큰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을 쌓은 ‘어른’을 찾았다. 그리고 이런 분을 채용해야지만, 동아리 같은 분위기의 회사가 진짜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 창업가분들도 있었지만,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 분들에게도 가능하면 외부에서 경험 있는 분들을 경영진으로 영입하라고 계속 강요했다. 이제 회사는 제대로 된 전략이 필요하고, 투자자나 외부 파트너와 이야기할 때 더 professional 하게 대응할 수 있는 분들이 필요하다는 잔소리를 계속했다. 실은, 당시엔 나도 그렇게 하는 것만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실제로 우리 투자사나 내가 아는 꽤 많은 스타트업이 이렇게 경험이 많은 어른을 회사로 영입했다. 이들이 받던 연봉이 있기 때문에 회사에 오랫동안 일 하면서 실제로 회사의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었던 다른 멤버분들보다 더 비싼 연봉을 주고 영입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능력 있는 경험자를 영입한 회사들 대부분이 다시 이분들을 해고하거나, 본인들이 알아서 회사를 나갔다. 이유는 저조한 실적과 적응 실패였다. 처음에 나는 이게 이해가 안 갔다. 외부에서 영입한 어른 중 몇 명은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었고, 과거 직장에서 그 능력도 인정받던 분들이었다. 저렇게 일을 잘하고 큰 조직을 관리하던 분들이 왜 더 작은 조직에서 실적이 안 나오고, 더 자유롭고 능력 위주로 돌아가는 스타트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할까?

이들은 남이 잘 차려 놓은 밥상에 은수저를 갖고 와서 먹을 준 알지만, 그 밥상을 직접 차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퍼포먼스의 차이가 나고, 각자 먹을 걸 직접 준비하는 스타트업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도 본인 손으로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기존 인력과 문화 충돌이 나면서, 전 직장에서 날아다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기어다니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경력자들이 이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기업 임원 하다가 작은 회사로 와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잘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내 경험에 의하면 아웃라이어다. 내가 전에 이 블로그에도 썼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이 큰 회사에서 100명 이상의 영업 조직을 관리하면서 분기마다 목표를 초과 달성 하던 ‘영업의 신’이 왜 작은 스타트업으로 오면 소프트웨어를 한 카피도 못 팔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은 영업이 필요가 없는 제품이지만, 작은 스타트업의 듣보잡 제품은 정말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이 차린 밥상에서 잘 먹을 준 알지만, 그 밥상을 본인이 직접 못 차리는 비유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제 나는 우리 투자사에서 학벌도 좋고, 경험도 많은 외부 인력을 경영진으로 영입한다고 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한다. 3억 원의 연봉을 받는 새로운 분과 이미 회사에서 잘하고 있는 3,000만 원 연봉을 받는 신입 사원의 능력이 정말로 2억 7,000만 원의 차이가 날까? 물론, 실제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데 한 표를 던져본다.

좋은 학벌, 좋은 직장 경험, 크고 풍요로운 조직에서의 눈부신 성과, 그리고 좋은 말발. 모든 스타트업이 이런 어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이런 분들을 영입하기 전에, 우리 회사 안에서 직접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을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