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감시당하는 삶

privacy-policy-1624400_640

이미지 출처: succo / Pixabay

얼마 전에 이런 기사를 읽었다. 어떤 커플이 한 인스타그램 광고를 봤는데, 이 광고의 사진과 배경이 너무나 낯익어서 자세히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하얀 스트라입이 들어간 노란색 침구, 베이지색과 옅은 갈색의 커튼류가 본인들의 침실과 닮아도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구글홈에 대해 찬양하는 을 내가 썼는데, 요샌 “오케이 구글” 말 하기 전에 약간 망설이긴 한다. 이렇게 기기를 깨운 후에 우리가 말하는 내용만 구글에서 프로세싱하고,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하고, 음성인식 기술을 향상하는 데 사용한다고 구글은 강조하고 있지만, 꺼져있을 때도 우리가 하는 말을 모두 다 저장하고 있지 않겠냐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온갖 음모론들이 있는데, 그래도 왠지 구글홈미니는 작동하지 않고 있어도 우리 가족의 모든 대화를 엿듣고 있을 것 같은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아마존이나 구글의 특허를 보면, 음성인식 스피커를 통해서 얻은 고객의 정보를 기반으로 더 많은 제품을 추천하고, 한 가족의 프로필과 생활 패턴을 구성해서, 더 편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기기에 관한 내용이 있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24시간 고객을 염탐해야하는데, 스피커나 카메라가 매우 적격인 기기이긴 하다.

실은 나는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조금은 관대한 편이다. 내 취향에 맞는 다양한 추천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다면, 개인 정보를 적절한 수준에서 공개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이 개인 정보를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다른 3자와 같이 공유할 때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온 가족이 여름 휴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게 녹음되고, 이게 해킹되면, 도둑이 이 가족이 집을 비운 동안 침입할 수 있고, 이보다 훨씬 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돈에 환장한 이 거대한 기업들이 제 3자에게 우리 정보를 팔지 않거나, 사고로 인해서 제 3자에게 유출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했다.

위에서 말한 기사를 읽으니, 이 걱정이 더욱더 현실화 되어 가고 있다. 실은, 기사의 주인공이 한 일주일 전에 현재 침실에 있는 같은 Kartell 캐비닛을 하나 더 구매하자는 이야기를 여자친구와 했다고 한다. 신기한 건, 온라인에서 이걸 검색했다면, 인스타그램에서 캐비닛 광고가 뜨는 게 이해 가지만, 위에서 말한 광고는 가구는 취급하지 않고 리넨만 판매하는 Bonsoirs라는 회사의 광고였다. 즉, 이 인스타그램 광고는 침대 시트 광고였지만, 사진에는 주인공의 침실에 있는 정확한 그 Kartell 캐비닛이 있는 본인의 침실과 너무나 비슷한 침실이 그대로 보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다. 워낙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서, 이 데이터를 기계적으로 조합하다 보면, 특정 사용자의 침실과 같은 침대보, 벽지, 바닥, 그리고 캐비닛으로 구성된 광고가 그 사용자에게 노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은 후 부턴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이 기사의 주인공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잘 때는 폰을 꺼놓거나, 아니면 침실이 아닌 다른 곳에 놔두나 보다.

Animoto 근황

2008년도에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할 때, 음악만큼 많은 사람이 몰입해서 보고 듣는 게 동영상이라는걸 알게 됐다 – 참고로, 요샌 숏폼 동영상이 대세라는 걸 어린 아이들도 모두 알지만, 당시만 해도 유튜브가 구글에 인수된 지 2년밖에 안 된 시점이고, 아직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전하기 전이였다. 그래서 뮤직쉐이크로 만든 음악을 가장 잘 홍보할 방법은 유튜브 동영상의 백그라운드 음악(=BGM: Background Music)으로 삽입하거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용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장에 어떤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가 사용하기 쉽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까 찾아보다가 Animoto라는 작은 스타트업을 알게 됐다. 이 서비스가 요샌 많이 진화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간단하게 사용자들의 사진을 올리고, 거기에 내가 가진 음악 또는 애니모토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추가하면, 그 음악에 맞춰서 사진을 재미있게 동영상으로 제작해주는 제품이었다. 그땐 이게 너무 참신해서, 내가 우리 개 마일로 사진으로 동영상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 이후 숏폼 동영상이 대세가 되면서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출시됐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도 비슷한 제품이 여러 개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이런 회사를 만나면 항상 애니모토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가 워낙 오래됐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창업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애니모토라는 회사가 살아있고 서비스도 계속 제공하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올 3월 애니모토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그냥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잘 살아있고, 아직도 잘 성장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직접 읽어보면 되는데, 요약하자면, 애니모토는 2007년 뉴욕에서 4명의 개발 백그라운드의 공동창업가가 그냥 재미로, 남들이 그전에 만들지 않았던 제품을 파트타임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참고로 2007년도에는 아이폰이 막 세상에 태어났고, 페이스북보다 마이스페이스라는 소셜미디어가 더 인기 있던 시대였고, 사진을 드래그앤드롭하면, 이 사진들을 클라우드에서 프레임 단위로 동영상으로 렌더링 할 수 있는 제품이 없던 시대였다. 그 누구도 이걸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모토 팀은 이걸 해보고 싶었다.

약간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변 가족과 친구들로 부터 약 7억 원 정도의 초기 펀딩을 받았다. 이 돈이면 1년 정도는 이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모든게 미지수였다. 일단 이런 동영상 렌더링 제품을 누가 사용할지도 몰랐고, 이걸 만들어서 어떻게 마케팅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이 1차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배운 점이 있었다면, 그냥 만들어 놓고 사용자만 엄청 모으면 뭔가 될 거라는 전략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이런 전략으로 제품을 만들고 돈을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본인들이 자신 있게 만든 제품을 무조건 첫날부터 유료로 제공하자는 결정을 했고, 당시 과금체계는 동영상 하나당 3달러, 또는 무제한 동영상에 연간 30달러였다. 많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애니모토를 돈 내고 사용하는 고객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까지 35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았고, 올해 예상매출이 400억 원 이상인 꽤 괜찮은 회사로 성장했다. 물론,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 기사에 다 적혀있진 않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애니모토 기사를 보면서,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사실이다:
1/ 4명의 평범한 월급을 받던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창업했다.
2/ 일단 트래픽을 모은 후에 돈을 버는 전략을 버리고, 첫날부터 과금하는 과감한 전략을 택했다.
3/ 13년 동안 펀딩을 세 차례에 걸쳐 350억 원 이상 받았지만, 모든 펀딩은 2007년~2011년 사이에 받았다. 그 이후에는 한 푼도 투자받지 않았는데, 계속 수익이 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4/ 미친 성장은 없었다. 그냥 꾸준히 매해 성장했다.
5/ 100명의 직원이 있다. 대부분 뉴욕에 있고, 3분의 2가(=66명) 개발 또는 제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6/ B2B 비즈니스가 꽤 큰데, 전통적인(=목표매출이 할당된) 영업사원이 없다. 대부분 입소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홍보/판매하고 있다
7/ 매달 155만 명이 애니모토 사이트를 방문, 이 중 15만 명이 14일 무료 체험 신청, 이 중 7%인 10,500명이 일 년에 $250 정도를 내는 유료고객으로 전환된다. 매달 $2.6M의 ARR이 발생한다. SaaS 비즈니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달 $1M 이상의 년간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8/ Jason Hsiao 대표에 의하면, 올해 예상 매출이 $40M이고, 1년 후면 $50M이 될 거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아마도 인수 오퍼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대표이사에 의하면 인수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냥 많은 돈이 필요 없고, 지금 하고 있는 게 좋아서 계속 좋은 제품 만들고 싶다고 하는데, 애니모토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자주 언급하는 메일침프가 생각났다. 그동안 펀딩 한 푼도 안 받고 연 매출 1조 원짜리 회사로 성장하면서 revenue funding을 하고 있는 메일침프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인 회사인 것 같고, 천천히 성장하지만, 언젠간 유니콘 중 유니콘인 ‘흑자 유니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수천억 원 펀딩 소식과 출혈하는 유니콘 소식이 좀 지겨워질 때, 이런 알짜배기 회사 이야기를 접하면 뭔가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배울 점이 많은 회사인 것 같다.

헤이 구글

Google Home Mini몇 년 전부터 음성인식 스피커와 같은 음성 AI 기술과 제품들이 뜨기 시작했지만, 내 반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뜨뜻미지근했다. 내가 꼰대라서 그런지, 아니면 젊은이들의 감각을 못 따라가서 인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기계랑 대화 하는 게 별로였고, 초반에만해도 기계가 음성 인식을 잘 못 해서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했다. 그래서 굳이 음성으로 가전기기를 키고, 끄기보단 그냥 리모컨으로 했고, 기계에 날씨를 물어보거나 음악을 틀어달라고 명령하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나한테는 훨씬 편했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게, 음성으로 기계에 지시를 내리는 것보단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갔다. 에어비앤비로 집을 통째로 빌렸는데, 이미 전에 한 번 빌렸던 집이고, 이 집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향 시스템이 없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출발 바로 전에 그냥 그동안 집에서 놀고 있던, 개봉도 안 한 구글 홈 미니를 챙겼다. 이 외에는 다른 옵션이 없었기 때문에 숙소에서 미니를 설치하고, 폰에 있는 스포티파이 앱을 연결했다. 실은 이 연결 부분은 구글답지 않게 사용자 경험이 직관적이지 않아서 조금 애를 먹긴 했는데, 일단 세팅 이후의 경험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음향 자체도 웬만한 스피커보다 좋아서, 볼륨을 조금 키우면 집 전체, 그리고 마당까지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다 퍼졌는데,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음성 기능이 너무 훌륭했다. 기계학습의 결과인 거 같은데, 나랑 와이프가 한국어, 영어, 심지어는 사투리로 말하는 대부분의 음성이 완벽하게 인식됐고, 이걸 몇 번 하다 보니 앞으로 손가락이 아닌 음성과 시각으로 기계와 소통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볼륨 조절, 노래 검색, 재생 등을 멀리 부엌에서 음성으로 마루에 있는 미니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게 너무나 편리했다.

앞으로 우리 집에서 “헤이 구글”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 탓입니다

Quibi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창업하자마자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회사인데, 두 명의 공동창업가는 미디어 업계의 대가인 Jeffrey Katzenberg와 전 이베이와 HP의 사장이었던 Meg Whitman이다. 워낙 유명한 거물들이 창업한 회사라서 그런지 시작하자마자 디즈니, 소니, 워너와 같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스튜디오 등의 투자자들로부터 거의 2조 원의 투자를 받았다. 짤막한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이었는데, 엄청난 투자를 받고, 엄청난 관심을 받고,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소문만 무성한 후, 막상 1년 8개월 이후에 출시된 제품은 시장의 호응을 전혀 못 받는 허접 그 자체였다.

실은, Quibi같이 출시하기도 전에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무지막지한 펀딩을 받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허접한 제품을 출시한 회사는 생각보다 많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한 회사를 이기는 건 쉽지 않고, 아무리 투자를 많이 받았고, 경험많은 노련한 창업가라도, 이 바닥에서는 모두 이제 시작하는 초짜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별로인 제품을 출시했냐는 질문에 대한 대표의 답변은 정말 허접하기 짝이없다.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참 아쉬움이 많았다. 일단 모바일 앱 데이터를 분석하는 Sensor Tower의 Quibi 관련 데이터가 본인들이 회사 내부에서 관리하는 데이터랑 다르다고 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을 하고 있고(어차피 그 수치나 이 수치나 다 낮다), 맥 위트먼 대표는 출시 이후 앱 스토어 랭킹이 많이 떨어진 이유는 코비드19와 인종차별문제와 같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을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카첸버그 의장도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콘텐츠가 매우 중요한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새로운 콘텐츠를 현재 못 만들고 있고, 젊은 친구들이 밖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짤막한 동영상을 많이 봐야하는데 외출을 못 하니까 이런 사용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리하자면 본인들은 잘못 한게 하나도 없고, 퀴비가 잘 안되는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남의 탓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팬데믹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퀴비같은 서비스는 팬데믹 때문에 더 잘 돼야 하는데, 제품의 콘텐츠가 별로이고, 회사의 전략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게 맞을 거 같다. 물론, 팬데믹이나 BLM과 같은 사회적 문제도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것보단 퀴비 내부에서 문제를 찾아야한다.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지만 문제를 찾고, 변할 수 있고, 그래야지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데, 퀴비의 공동창업가들의 말에서는 이런 태도가 전혀 안 보인다.

젊은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소비하는 습관을 완전히 혁신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 똑같은 자신감과 패기로 초반에는 크게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 탓하는 그런 태도가 많이 아쉽다. 실은, 이건 잘 안되는 회사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잘되면 과하게 스스로 잘했다고 과대포장하고, 잘 안되면 무조건 코로나바이러스, 경기, 경쟁사 등과 같이 남을 탓한다.

“잘못했습니다. 내 탓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차별화된 경험

1589795230991영화 Trolls의 후속편 Trolls World Tour가 개봉 3주 만에 1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고 한다. 3주 동안 발생한 매출이 전편인 Troll의 5개월 매출보다 많다고 하니, 이는 상당히 놀라운 실적이긴 하다. 그 이유를 자세히 보니, 주로 신작은 극장에서 먼저 개봉하고, 한 8주 후에 넷플릭스나 다른 VOD 서비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겨가는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대부분의 극장이 문을 닫은 관계로, 이번 후속편은 바로 온디맨드 스트리밍으로 출시했는데, 이 전략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실은 대부분의 영화제작사 관계자한테 물어보면, 신작을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동시에 개봉하고 싶지만, 전통적으로 이 시장에서 극장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눈치 보느라 항상 극장 먼저 개봉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온디맨드 스트리밍으로만 개봉을 먼저 했는데, 이게 아주 결과가 좋았던 것이다. Trolls World Tour의 제작사인 NBCUniversal은 이걸 계기로 앞으로 모든 영화는 극장과 스트리밍에서 동시에 개봉하겠다고 선언까지 한 상황이고, 아마도 많은 제작사가 비슷한 전략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극장 상영의 경우, 영화제작사가 수익의 50%를 가져가지만, 디지털 스트리밍의 경우 제작사가 80%를 가져가니, 수익구조면으로만 봐도 스트리밍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 내용을 내가 전에 페이스북에 올리니까, 페친들로부터 재미있는 반응이 있었고,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댓글이 달렸다.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개봉날 스트리밍 해 봤거든요. 네플릭스가 리드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으로 앞으로 극장들이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해 지더라고요. 학생들과 AMC 에 대해서 잠시 토론해본 적이 있는데, 그래도 팝콘 냄새 가득한 극장이 좋다는 밀레니얼들이 아직은 대부분인 것 같긴 합니다.”

“영화관 비즈니스모델은, 영화는 미끼 상품이고 이익의 대부분은 컨세션 즉 팝콘, 음료 등의 매출에서 나오는데… 이번 “실험”을 계기로 영화사 입장에서는 영화관이 없어도 별 상관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나도 이 분들 말에 100% 동의한다. “It’s the popcorn, not the movie, stupid.”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장의 비즈니스모델은 영화가 아니라 팝콘과 음료에서 나온다고 하고, 이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발길을 옮겨야한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에도 과연 인구밀도가 높은 극장으로 사람들이 전과 같이 갈까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있다.

실은, 영화관 산업은 이미 수 년 전부터 내림세긴 했다. 집에 아무리 큰 TV가 있어도, 대형화면과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영화관 비즈니스는 항상 잘 될 거라는 이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의 믿음과 예측과는 달리, 밀레니얼은 더는 집 밖에서 뭔가를 하는걸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거창한 것보단 실용적인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대이고, 이는 인터넷 쇼핑, 유튜브 시청, 음식배달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시청에도 적용된다. 그냥 소파에 누워서 손가락 몇 번 클릭해서 최신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더 비싼 돈을 내고 그 복잡한 극장에 가서 영화 보는걸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이며, 앞으로 이런 트렌드는 더욱더 두드러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이제 CGV나 메가박스와 같은 영화관은 망할 것인가? 큰 변화와 시도를 하지 않으면, 망하겠지만 그렇다고 극장의 장래가 어둡기만 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극장이 살아남기 위한 포인트는 바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절대로 제공해주지 못 하는 차별화 되고 고급진 경험을 제공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플레이를 잘 하고 있는 곳이 CGV 청담씨네시티라고 생각한다. 여긴 다른 극장보다 조금 더 일찌감치 고급화 전략을 구사했는데, 다른 극장에서는 한 두 관 정도만 있는 특별관과 프리미엄관을 모든 상영관에 적용했다. 극장의 좌석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간격을 극대화했고, 다른 극장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설계를 했고,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푹신한 대형 가죽 소파가 설치된 상영관도 있다. 극장에 자주 가 본 분들이라면, 이 푹신한 가죽 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영관마다 테마를 조금씩 차별화해서, 사운드에 따라서 의자가 움직이고 반응하는 음향 시스템을 적용한 관도 있고, 소규모 파티를 위한 프라이빗 극장 대관 또한 가능한 상영관도 있다. 나도 웬만하면 집에서 온디맨드로 영화를 보긴 하는데, 그래도 신작 또는 대작을 보기 위해서는 극장을 선호하고 무조건 이 곳과 같은 high end 극장을 찾게 된다. 영화도 영화지만, 영화를 최대한 편안하게, 오감을 다 살리면서 볼 수 있는 그 경험을 위해서 찾게 된다. 기아가동차나 BMW와 같은 고급 브랜드의 협찬을 받아서 상영관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이런 시도는 꽤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가격은 좀 비싸다. 일반 극장보단 한 3,000원 정도 비싸고, 4D 상영관은 2만 원이 넘긴 하지만, 관람객은 집에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기꺼이 이 돈을 낸다. 극장의 입장에서도 인당 매출이 더 높기 때문에, 오히려 수익성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이런 차별화된 경험을 고객에게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다면, 넷플릭스나 왓챠와 같은 온디맨드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계속 극장만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비즈니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프라인 상권이 무너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른 소매업들도 어떻게 하면 온라인이 제공하지 못하는 경험을 오프라인에서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고, 고급화 되고 있는 극장을 참고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