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경쟁의 재정의

너무 많은 창업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경쟁사를 의식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검토하는 모든 자료에는 자사와 경쟁사를 비교, 분석한 슬라이드가 최소 한 장이 있고 – 물론, 결론은 우리가 경쟁사보다 더 잘 한다는 내용 – 심지어 내가 아는 어떤 대표들은 경쟁사의 동향 파악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나도 여러 번 강조했지만, 경쟁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잘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내가 아는 회사 중, 경쟁사 때문에 망한 회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본인들이 시장을 잘 못 봤거나, 고객한테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망했기 때문에, 나는 비즈니스의 핵심은 경쟁사를 의식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경쟁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는데, 요새 내가 계속 생각하는 내용 중 하나가, 우리는 누구랑 경쟁하는지를 잘 정의해야한다는 점이다. 실은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넷플릭스의 현자 리드 헤이스팅스 대표의 인터뷰 내용이었는데, 넷플릭스의 경쟁 제품 디즈니+ 출시 소식에 대해서 그는 “실은 넷플릭스의 가장 큰 경쟁사는 디즈니+나 HBO가 아니라 포트나이트랑 유튜브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냥 듣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 말 한 마디에서 헤이스팅스 대표가 이 업을 얼마나 넓고 깊게, 그리고 멀리 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데이터를 봐도, 유튜브 서버가 잠시 다운 될 때마다 넷플릭스 트래픽과 시청률이 확 튀는걸 고려하면 시장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사업을 하고 있는 창업가들도 경쟁사를 정의할 때, 지금 우리랑 같은 분야에서 같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만 국한하지 말고, 현재 우리의 고객과 앞으로 우리 제품을 사용할 고객의 시간을 가장 많이 빼았고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는 회사로 확장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헤이스팅스 대표가 말한 포트나이트는 게임이고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건 게임과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라서 이 두 회사가 경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고객의 시간은 하루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고, 24시간 동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너무 많다. 이 한정된 소중한 고객의 시간과 돈을 포트나이트라가 아닌 넷플릭에서 쓰게 만들기 위해서 두 회사는 아주 치열한 연구, 개발, 그리고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때 비로소 이 경쟁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었다. 콘텐츠 스트리밍이라는 시장보다 더 확장된,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보면 이 경쟁이 더 명확해진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회사는 쿠팡과 당근마켓이다. 쿠팡은 세상의 모든 새로운 물건을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팔아야 하는 플랫폼이고, 당근마켓은 동네 이웃 주민들이 중고거래를 하는 플랫폼이다. 이렇게 봤을 때 두 회사의 비즈니스는 완전히 다르고, 가고자 하는 방향도 아주 다르다. 하지만, 고객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기준으로 보면, 두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앱을 사용할 시간이 딱 15분만 주어졌는데, 물건을 구입해야한다면, 쿠팡을 열고 새 제품을 쇼핑할까 아니면 당근마켓을 열고 내 주변의 중고 제품을 찾아볼까? 요새 내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쿠팡보다 오히려 당근마켓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같은 분야에서 비슷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만이 우리 경쟁사가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한다. 경쟁사를 정의할 때는 조금 더 넓게, 깊게, 그리고 멀리 봐야한다.

감시당하는 삶

privacy-policy-1624400_640

이미지 출처: succo / Pixabay

얼마 전에 이런 기사를 읽었다. 어떤 커플이 한 인스타그램 광고를 봤는데, 이 광고의 사진과 배경이 너무나 낯익어서 자세히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하얀 스트라입이 들어간 노란색 침구, 베이지색과 옅은 갈색의 커튼류가 본인들의 침실과 닮아도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구글홈에 대해 찬양하는 을 내가 썼는데, 요샌 “오케이 구글” 말 하기 전에 약간 망설이긴 한다. 이렇게 기기를 깨운 후에 우리가 말하는 내용만 구글에서 프로세싱하고,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하고, 음성인식 기술을 향상하는 데 사용한다고 구글은 강조하고 있지만, 꺼져있을 때도 우리가 하는 말을 모두 다 저장하고 있지 않겠냐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온갖 음모론들이 있는데, 그래도 왠지 구글홈미니는 작동하지 않고 있어도 우리 가족의 모든 대화를 엿듣고 있을 것 같은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아마존이나 구글의 특허를 보면, 음성인식 스피커를 통해서 얻은 고객의 정보를 기반으로 더 많은 제품을 추천하고, 한 가족의 프로필과 생활 패턴을 구성해서, 더 편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기기에 관한 내용이 있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24시간 고객을 염탐해야하는데, 스피커나 카메라가 매우 적격인 기기이긴 하다.

실은 나는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조금은 관대한 편이다. 내 취향에 맞는 다양한 추천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다면, 개인 정보를 적절한 수준에서 공개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이 개인 정보를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다른 3자와 같이 공유할 때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온 가족이 여름 휴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게 녹음되고, 이게 해킹되면, 도둑이 이 가족이 집을 비운 동안 침입할 수 있고, 이보다 훨씬 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돈에 환장한 이 거대한 기업들이 제 3자에게 우리 정보를 팔지 않거나, 사고로 인해서 제 3자에게 유출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했다.

위에서 말한 기사를 읽으니, 이 걱정이 더욱더 현실화 되어 가고 있다. 실은, 기사의 주인공이 한 일주일 전에 현재 침실에 있는 같은 Kartell 캐비닛을 하나 더 구매하자는 이야기를 여자친구와 했다고 한다. 신기한 건, 온라인에서 이걸 검색했다면, 인스타그램에서 캐비닛 광고가 뜨는 게 이해 가지만, 위에서 말한 광고는 가구는 취급하지 않고 리넨만 판매하는 Bonsoirs라는 회사의 광고였다. 즉, 이 인스타그램 광고는 침대 시트 광고였지만, 사진에는 주인공의 침실에 있는 정확한 그 Kartell 캐비닛이 있는 본인의 침실과 너무나 비슷한 침실이 그대로 보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다. 워낙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서, 이 데이터를 기계적으로 조합하다 보면, 특정 사용자의 침실과 같은 침대보, 벽지, 바닥, 그리고 캐비닛으로 구성된 광고가 그 사용자에게 노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은 후 부턴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이 기사의 주인공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잘 때는 폰을 꺼놓거나, 아니면 침실이 아닌 다른 곳에 놔두나 보다.

Animoto 근황

2008년도에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할 때, 음악만큼 많은 사람이 몰입해서 보고 듣는 게 동영상이라는걸 알게 됐다 – 참고로, 요샌 숏폼 동영상이 대세라는 걸 어린 아이들도 모두 알지만, 당시만 해도 유튜브가 구글에 인수된 지 2년밖에 안 된 시점이고, 아직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전하기 전이였다. 그래서 뮤직쉐이크로 만든 음악을 가장 잘 홍보할 방법은 유튜브 동영상의 백그라운드 음악(=BGM: Background Music)으로 삽입하거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용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장에 어떤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가 사용하기 쉽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까 찾아보다가 Animoto라는 작은 스타트업을 알게 됐다. 이 서비스가 요샌 많이 진화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간단하게 사용자들의 사진을 올리고, 거기에 내가 가진 음악 또는 애니모토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추가하면, 그 음악에 맞춰서 사진을 재미있게 동영상으로 제작해주는 제품이었다. 그땐 이게 너무 참신해서, 내가 우리 개 마일로 사진으로 동영상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 이후 숏폼 동영상이 대세가 되면서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출시됐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도 비슷한 제품이 여러 개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이런 회사를 만나면 항상 애니모토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가 워낙 오래됐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창업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애니모토라는 회사가 살아있고 서비스도 계속 제공하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올 3월 애니모토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그냥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잘 살아있고, 아직도 잘 성장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직접 읽어보면 되는데, 요약하자면, 애니모토는 2007년 뉴욕에서 4명의 개발 백그라운드의 공동창업가가 그냥 재미로, 남들이 그전에 만들지 않았던 제품을 파트타임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참고로 2007년도에는 아이폰이 막 세상에 태어났고, 페이스북보다 마이스페이스라는 소셜미디어가 더 인기 있던 시대였고, 사진을 드래그앤드롭하면, 이 사진들을 클라우드에서 프레임 단위로 동영상으로 렌더링 할 수 있는 제품이 없던 시대였다. 그 누구도 이걸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모토 팀은 이걸 해보고 싶었다.

약간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변 가족과 친구들로 부터 약 7억 원 정도의 초기 펀딩을 받았다. 이 돈이면 1년 정도는 이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모든게 미지수였다. 일단 이런 동영상 렌더링 제품을 누가 사용할지도 몰랐고, 이걸 만들어서 어떻게 마케팅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이 1차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배운 점이 있었다면, 그냥 만들어 놓고 사용자만 엄청 모으면 뭔가 될 거라는 전략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이런 전략으로 제품을 만들고 돈을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본인들이 자신 있게 만든 제품을 무조건 첫날부터 유료로 제공하자는 결정을 했고, 당시 과금체계는 동영상 하나당 3달러, 또는 무제한 동영상에 연간 30달러였다. 많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애니모토를 돈 내고 사용하는 고객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까지 35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았고, 올해 예상매출이 400억 원 이상인 꽤 괜찮은 회사로 성장했다. 물론,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 기사에 다 적혀있진 않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애니모토 기사를 보면서,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사실이다:
1/ 4명의 평범한 월급을 받던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창업했다.
2/ 일단 트래픽을 모은 후에 돈을 버는 전략을 버리고, 첫날부터 과금하는 과감한 전략을 택했다.
3/ 13년 동안 펀딩을 세 차례에 걸쳐 350억 원 이상 받았지만, 모든 펀딩은 2007년~2011년 사이에 받았다. 그 이후에는 한 푼도 투자받지 않았는데, 계속 수익이 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4/ 미친 성장은 없었다. 그냥 꾸준히 매해 성장했다.
5/ 100명의 직원이 있다. 대부분 뉴욕에 있고, 3분의 2가(=66명) 개발 또는 제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6/ B2B 비즈니스가 꽤 큰데, 전통적인(=목표매출이 할당된) 영업사원이 없다. 대부분 입소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홍보/판매하고 있다
7/ 매달 155만 명이 애니모토 사이트를 방문, 이 중 15만 명이 14일 무료 체험 신청, 이 중 7%인 10,500명이 일 년에 $250 정도를 내는 유료고객으로 전환된다. 매달 $2.6M의 ARR이 발생한다. SaaS 비즈니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달 $1M 이상의 년간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8/ Jason Hsiao 대표에 의하면, 올해 예상 매출이 $40M이고, 1년 후면 $50M이 될 거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아마도 인수 오퍼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대표이사에 의하면 인수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냥 많은 돈이 필요 없고, 지금 하고 있는 게 좋아서 계속 좋은 제품 만들고 싶다고 하는데, 애니모토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자주 언급하는 메일침프가 생각났다. 그동안 펀딩 한 푼도 안 받고 연 매출 1조 원짜리 회사로 성장하면서 revenue funding을 하고 있는 메일침프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인 회사인 것 같고, 천천히 성장하지만, 언젠간 유니콘 중 유니콘인 ‘흑자 유니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수천억 원 펀딩 소식과 출혈하는 유니콘 소식이 좀 지겨워질 때, 이런 알짜배기 회사 이야기를 접하면 뭔가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배울 점이 많은 회사인 것 같다.

헤이 구글

Google Home Mini몇 년 전부터 음성인식 스피커와 같은 음성 AI 기술과 제품들이 뜨기 시작했지만, 내 반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뜨뜻미지근했다. 내가 꼰대라서 그런지, 아니면 젊은이들의 감각을 못 따라가서 인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기계랑 대화 하는 게 별로였고, 초반에만해도 기계가 음성 인식을 잘 못 해서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했다. 그래서 굳이 음성으로 가전기기를 키고, 끄기보단 그냥 리모컨으로 했고, 기계에 날씨를 물어보거나 음악을 틀어달라고 명령하지 않고, 그냥 손가락으로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나한테는 훨씬 편했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게, 음성으로 기계에 지시를 내리는 것보단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갔다. 에어비앤비로 집을 통째로 빌렸는데, 이미 전에 한 번 빌렸던 집이고, 이 집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향 시스템이 없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출발 바로 전에 그냥 그동안 집에서 놀고 있던, 개봉도 안 한 구글 홈 미니를 챙겼다. 이 외에는 다른 옵션이 없었기 때문에 숙소에서 미니를 설치하고, 폰에 있는 스포티파이 앱을 연결했다. 실은 이 연결 부분은 구글답지 않게 사용자 경험이 직관적이지 않아서 조금 애를 먹긴 했는데, 일단 세팅 이후의 경험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음향 자체도 웬만한 스피커보다 좋아서, 볼륨을 조금 키우면 집 전체, 그리고 마당까지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다 퍼졌는데,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음성 기능이 너무 훌륭했다. 기계학습의 결과인 거 같은데, 나랑 와이프가 한국어, 영어, 심지어는 사투리로 말하는 대부분의 음성이 완벽하게 인식됐고, 이걸 몇 번 하다 보니 앞으로 손가락이 아닌 음성과 시각으로 기계와 소통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볼륨 조절, 노래 검색, 재생 등을 멀리 부엌에서 음성으로 마루에 있는 미니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게 너무나 편리했다.

앞으로 우리 집에서 “헤이 구글”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 탓입니다

Quibi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창업하자마자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회사인데, 두 명의 공동창업가는 미디어 업계의 대가인 Jeffrey Katzenberg와 전 이베이와 HP의 사장이었던 Meg Whitman이다. 워낙 유명한 거물들이 창업한 회사라서 그런지 시작하자마자 디즈니, 소니, 워너와 같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스튜디오 등의 투자자들로부터 거의 2조 원의 투자를 받았다. 짤막한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이었는데, 엄청난 투자를 받고, 엄청난 관심을 받고,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소문만 무성한 후, 막상 1년 8개월 이후에 출시된 제품은 시장의 호응을 전혀 못 받는 허접 그 자체였다.

실은, Quibi같이 출시하기도 전에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무지막지한 펀딩을 받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허접한 제품을 출시한 회사는 생각보다 많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한 회사를 이기는 건 쉽지 않고, 아무리 투자를 많이 받았고, 경험많은 노련한 창업가라도, 이 바닥에서는 모두 이제 시작하는 초짜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별로인 제품을 출시했냐는 질문에 대한 대표의 답변은 정말 허접하기 짝이없다.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참 아쉬움이 많았다. 일단 모바일 앱 데이터를 분석하는 Sensor Tower의 Quibi 관련 데이터가 본인들이 회사 내부에서 관리하는 데이터랑 다르다고 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을 하고 있고(어차피 그 수치나 이 수치나 다 낮다), 맥 위트먼 대표는 출시 이후 앱 스토어 랭킹이 많이 떨어진 이유는 코비드19와 인종차별문제와 같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을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카첸버그 의장도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콘텐츠가 매우 중요한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새로운 콘텐츠를 현재 못 만들고 있고, 젊은 친구들이 밖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짤막한 동영상을 많이 봐야하는데 외출을 못 하니까 이런 사용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리하자면 본인들은 잘못 한게 하나도 없고, 퀴비가 잘 안되는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남의 탓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팬데믹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퀴비같은 서비스는 팬데믹 때문에 더 잘 돼야 하는데, 제품의 콘텐츠가 별로이고, 회사의 전략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게 맞을 거 같다. 물론, 팬데믹이나 BLM과 같은 사회적 문제도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것보단 퀴비 내부에서 문제를 찾아야한다.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지만 문제를 찾고, 변할 수 있고, 그래야지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데, 퀴비의 공동창업가들의 말에서는 이런 태도가 전혀 안 보인다.

젊은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소비하는 습관을 완전히 혁신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 똑같은 자신감과 패기로 초반에는 크게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 탓하는 그런 태도가 많이 아쉽다. 실은, 이건 잘 안되는 회사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잘되면 과하게 스스로 잘했다고 과대포장하고, 잘 안되면 무조건 코로나바이러스, 경기, 경쟁사 등과 같이 남을 탓한다.

“잘못했습니다. 내 탓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