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에 난리가 났다. 개봉하기 전에 서울 여기저기서 택시와 버스에 오징어 게임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이름도 이상했고 익숙한 내용이라 그냥 웃고 넘겼었는데, 이게 이런 글로벌 히트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드라마 딱 9편만으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콘텐츠가 될 기세이다. 실은 나는 아직 이 드라마를 못 봤지만, 관련 기사는 엄청나게 많이 읽었고, 이런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과 한국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를 전 세계인에게 선보인 넷플릭스도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여러 기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황감독이 오징어 게임 아이디어를 생각한 건 10년 전인데, 그동안 한국의 투자자와 배우들은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뻔해서, 흥행 못 할 거라고 하면서 모두 투자와 출연을 거부했는데, 이걸 넷플릭스가 픽업해서 투자하고 훌륭하게 배급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요새 워낙 OTT 전성시대라서 넷플릭스도 이제 끝났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는데, 회사의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오리지널 콘텐츠의 수준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이라고 한다. 실은, 이 사실은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의 콘텐츠를 계속 접하고 있는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한국은 너무 유치하고 진부하고 예측가능한 콘텐츠만 생성한다는 오래된 기억과 편견이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의 한국 콘텐츠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분들이 놓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트렌드를 넷플릭스는 2010년 초반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약 8,0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했는데, 이 금액은 우리보다 시장이 훨씬 더 크다고 알려진 인도시장에 투자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이라고 한다.
같은 돈을 투자해서,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어도, 넷플릭스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이었으면,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전 세계인의 디바이스와 화면을 통해서 알려졌을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선견지명,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결국 만들어진 좋은 콘텐츠, 그리고 다른 언어로 만들어졌고 다른 나라의 배우가 나오는 콘텐츠지만 글로벌 시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글로벌 유통파워가 그 누구보다 좋은 플랫폼의 힘이 합쳐져서 탄생한 아주 기발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엔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과 성공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스트롱벤처스가 한국 스타트업을 위해서 하고 싶은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도 9년 전부터 한국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보고 미국 펀드로서 투자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꽤 많은 회사에, 꽤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오징어 게임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 했지만, 몇 개는 해외로부터 큰 투자도 받으면서 상당히 큰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런 교두보 역할을 많은 분들이 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고, 외국 시장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한국 영화관에서는 이제 외국 영화의 더빙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대부분 한국 시청자는 외국 배우들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선호하고, 한국인은 어릴 적부터 글을 읽는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자막처리를 해도 불편함 없이 잘 읽으면서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조금 다르다. 미국인은 글을 읽는 교육이 잘 안 됐기 때문에 영화를 자막처리하면 내용 자체를 잘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오히려 더빙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는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넷플릭스 사용자들의 취향을 이미 데이터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서 자막과 더빙을 알아서 추천했다고 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오징어 게임의 미국 성공에는 크게 기여한, 현지 시장을 잘 모르면 하기 어려운 그런 디테일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교두보 역할을 하는 VC도 이러한 이유로 양쪽 시장을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인해서 이제 한국이 정말로 글로벌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걸 요새 많이 느끼고 있다. 어쨌든 자랑스러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