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도에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할 때, 음악만큼 많은 사람이 몰입해서 보고 듣는 게 동영상이라는걸 알게 됐다 – 참고로, 요샌 숏폼 동영상이 대세라는 걸 어린 아이들도 모두 알지만, 당시만 해도 유튜브가 구글에 인수된 지 2년밖에 안 된 시점이고, 아직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전하기 전이였다. 그래서 뮤직쉐이크로 만든 음악을 가장 잘 홍보할 방법은 유튜브 동영상의 백그라운드 음악(=BGM: Background Music)으로 삽입하거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용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장에 어떤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가 사용하기 쉽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까 찾아보다가 Animoto라는 작은 스타트업을 알게 됐다. 이 서비스가 요샌 많이 진화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간단하게 사용자들의 사진을 올리고, 거기에 내가 가진 음악 또는 애니모토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추가하면, 그 음악에 맞춰서 사진을 재미있게 동영상으로 제작해주는 제품이었다. 그땐 이게 너무 참신해서, 내가 우리 개 마일로 사진으로 동영상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 이후 숏폼 동영상이 대세가 되면서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출시됐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도 비슷한 제품이 여러 개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이런 회사를 만나면 항상 애니모토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가 워낙 오래됐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창업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애니모토라는 회사가 살아있고 서비스도 계속 제공하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올 3월 애니모토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그냥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잘 살아있고, 아직도 잘 성장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직접 읽어보면 되는데, 요약하자면, 애니모토는 2007년 뉴욕에서 4명의 개발 백그라운드의 공동창업가가 그냥 재미로, 남들이 그전에 만들지 않았던 제품을 파트타임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참고로 2007년도에는 아이폰이 막 세상에 태어났고, 페이스북보다 마이스페이스라는 소셜미디어가 더 인기 있던 시대였고, 사진을 드래그앤드롭하면, 이 사진들을 클라우드에서 프레임 단위로 동영상으로 렌더링 할 수 있는 제품이 없던 시대였다. 그 누구도 이걸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모토 팀은 이걸 해보고 싶었다.
약간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변 가족과 친구들로 부터 약 7억 원 정도의 초기 펀딩을 받았다. 이 돈이면 1년 정도는 이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모든게 미지수였다. 일단 이런 동영상 렌더링 제품을 누가 사용할지도 몰랐고, 이걸 만들어서 어떻게 마케팅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이 1차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배운 점이 있었다면, 그냥 만들어 놓고 사용자만 엄청 모으면 뭔가 될 거라는 전략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이런 전략으로 제품을 만들고 돈을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본인들이 자신 있게 만든 제품을 무조건 첫날부터 유료로 제공하자는 결정을 했고, 당시 과금체계는 동영상 하나당 3달러, 또는 무제한 동영상에 연간 30달러였다. 많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애니모토를 돈 내고 사용하는 고객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까지 35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았고, 올해 예상매출이 400억 원 이상인 꽤 괜찮은 회사로 성장했다. 물론,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 기사에 다 적혀있진 않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애니모토 기사를 보면서,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사실이다:
1/ 4명의 평범한 월급을 받던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창업했다.
2/ 일단 트래픽을 모은 후에 돈을 버는 전략을 버리고, 첫날부터 과금하는 과감한 전략을 택했다.
3/ 13년 동안 펀딩을 세 차례에 걸쳐 350억 원 이상 받았지만, 모든 펀딩은 2007년~2011년 사이에 받았다. 그 이후에는 한 푼도 투자받지 않았는데, 계속 수익이 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4/ 미친 성장은 없었다. 그냥 꾸준히 매해 성장했다.
5/ 100명의 직원이 있다. 대부분 뉴욕에 있고, 3분의 2가(=66명) 개발 또는 제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6/ B2B 비즈니스가 꽤 큰데, 전통적인(=목표매출이 할당된) 영업사원이 없다. 대부분 입소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홍보/판매하고 있다
7/ 매달 155만 명이 애니모토 사이트를 방문, 이 중 15만 명이 14일 무료 체험 신청, 이 중 7%인 10,500명이 일 년에 $250 정도를 내는 유료고객으로 전환된다. 매달 $2.6M의 ARR이 발생한다. SaaS 비즈니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달 $1M 이상의 년간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8/ Jason Hsiao 대표에 의하면, 올해 예상 매출이 $40M이고, 1년 후면 $50M이 될 거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아마도 인수 오퍼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대표이사에 의하면 인수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냥 많은 돈이 필요 없고, 지금 하고 있는 게 좋아서 계속 좋은 제품 만들고 싶다고 하는데, 애니모토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자주 언급하는 메일침프가 생각났다. 그동안 펀딩 한 푼도 안 받고 연 매출 1조 원짜리 회사로 성장하면서 revenue funding을 하고 있는 메일침프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인 회사인 것 같고, 천천히 성장하지만, 언젠간 유니콘 중 유니콘인 ‘흑자 유니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수천억 원 펀딩 소식과 출혈하는 유니콘 소식이 좀 지겨워질 때, 이런 알짜배기 회사 이야기를 접하면 뭔가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배울 점이 많은 회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