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년 계획 같은 건 안 세운다. 그냥 항상 하던 대로, 꾸준히 뭔가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은 세우지만, 해마다 다짐 같은 걸 하진 않는다. 그런데 연초에 계획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한 해 동안 읽을 독서량이다. 전에 내가 독서 습관 관련해서 쓴 글이 있는데, 나는 우리 투자사 플라이북과 국민도서관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올해 또 재미를 붙인 게 구립도서관 이용이다. 플라이북에서 읽고 싶은 책을 등록하고, 국민도서관에서 이 책들을 대여하는데, 국민도서관에 없는 책을 찾기 위해 동네 도서관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재미도 있고 경험도 좋다. 많은 책이 물리적으로 있는 도서관에 가서 이 책들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그리고 우연히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요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구립 도서관에 간다. 그렇게 대여한 책들을 읽은 후에 서평을 또 플라이북에 쓰면, 그 책에 대한 한 사이클이 마무리된다. 나중에 책의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 다시 내 플라이북 서평을 찾아서 읽어보면, 당시 내 생각과 느낌을 떠올릴 수 있어서 이렇게 모든 걸 기록하는 게 쓸데없진 않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2020년 초에 세웠던 올해 목표 독서량은 50권이다. 매달 4권, 즉 매주 1권씩 읽고, 어떤 달은 2권씩 읽으면 달성 가능한 숫자다. 그런데 안 그래도 바쁜데 1주일에 책 1권 읽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주중에 최대한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고, 집에 좀 일찍 와서 TV를 보거나 이메일을 하지 않고 매일 꾸준히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었다. 주말에도 코비드19 때문에 많이 못 돌아다녀서 – 그리고 우리 부부는 원래 집에 있는걸 좋아하는 편이다 – 독서를 꽤 많이 했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의도적으로 달성하려고 노력해서인지, 예상보다 더 빨리 50권을 읽었다. 월 평균 4.5권을 읽었고, 총 17,000 페이지 정도 읽었다. 이 페이스대로 계속 책을 읽다 보면 연말까지 55권 정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정 분야의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았기에, 그냥 닥치는대로 많이 읽었는데, 독서한 50권 책 리스트를 보니 비즈니스 관련 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수필, 산문, 그리고 소설이었다. 아무래도 직업과는 조금 동떨어진 독서를 의도적으로 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내년에도 나는 50권 독서를 목표로 설정할 예정이다. 올해 읽은 책이 모두 좋은 책은 아니었고, 허접한 책도 많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쌓인 다른 사람의 경험, 지식과 생각을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간접적으로 습득하는 건 여러모로 봤을 때 큰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익명
댓글쓰기 기능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매주 스타트업위클리에서 대표님의 글을 보고 많은 자극을 받아 간답니다! 저도 50권 목표로 했었는데.. 35권에서 멈췄어요 그래도 뿌듯하고 좋은데 대표님은 얼마나 기분 좋으시겠어요! ㅎㅎ 앞으로도 자주 찾아 뵙고 좋은 글은 이렇게 댓글도 자주 남기겠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Kihong Bae
고맙습니다^^ 몇 권을 읽는게 중요한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제 자랑이었습니다~)
익명
권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좋아하는 주제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천천히 읽으면서 사유하는게 저는 참 즐겁더군요.
Kihong Bae
네, 100% 동의합니다. Quantity가 아니라 quality 죠~
구독자
도서관 진짜 좋죠. 초4-중1,2까지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서 주말마다 부모님이랑 가서 책 빌려온 기억이 납니다. 도서관 책냄새 맡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책 안읽어도 가서 앉아있다 오곤 했는데 말이죠.
Richard
wow I am astounded that you managed to do this. I haven’t read a single physical book since my kids came 4 years ago, but I probably munch through 2 audio books a month while commuting. Which book left the deepest impact on you? For me, it was Enlightenment Now by Steven Pinker.
Kihong Bae
I did mention in the posting but I intentionally went for ‘softer’ books rather than business related books so not sure if you would recognize these types of books 🙂 Read a lot of essays and 소설류!
도서관장
성공을 거두고 정말 바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일수록 독서에 시간을 꼭 낸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배기홍 대표님의 블로그를 읽으면 수많은 스타트업을 가이드하시느라 무척 바쁘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독서를 하신 것이죠. 누구나 1월 1일을 같이 시작하지만, 연말에 50권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한권도 안읽은 사람 사이는 누가 생각해도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소개해주신 국민도서관 책꽂이 https://www.bookoob.co.kr 에는 17만권에 가까운 도서를 전국 어디든 택배로 (그것도 대여료 없이 왕복택배비만으로) 한 번에 15권을 60일간 빌려읽을 수 있는 온라인 도서관입니다. 배기홍 대표님의 글을 기다려 읽는 스타트업 생태계속의 여러분들도 많은 책을 읽고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기를 댓글로 응원합니다.
경제경영, 스타트업 관련 책 이외에도 정말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글에서 언급된 구립도서관의 경우, 서울은 평균 소장 장서가 5만여권이니까 국도는 3배가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독서의 신기한 점은 책을 읽어나갈 수록 더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기고 더 읽고 싶어진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조차 돈걱정 안하고 마음껏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한국인은 갖고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전통적인 오프라인 도서관이 쉬는 가운데에서도 운영되는 도서관입니다!
Richard Biggs
대표님! 오래간만입니다. 수고하고 번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