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nology

브랜드가 되기까지

우리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인,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테크 회사에도 많이 투자하지만, 겉으로 봤을 땐 테크가 핵심이 아닌 회사에도 많이 투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구매해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소비재 브랜드 회사들인데, 화장품, 음식, 의류 등이 이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우린 이 카테고리에 상당히 많이 투자했고, 지금도 계속 좋은 창업가가 있으면 투자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 투자하면 할수록 돈도 많이 들고, 안정적인 사업으로 성장하는 길이 멀고 험하다는 걸 매일 느끼면서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다.

뭔가를 제조해서 판매한다는 건, 소프트웨어 사업의 큰 장점 중 하나인 “zero 한계 비용”의 이점이 없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는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돈이 들지만, 일단 만들어 놓으면 한 개를 판매하나 10,000개를 판매하나 생산비는 증가하지 않지만, 반려동물 사료를 만드는 사업을 하면 1개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과 10,000개 만들어서 판매하는 건, 들어가는 비용에 큰 차이가 난다.

그리고 초기 스타트업이 자체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외부 공장에 OEM 제조를 위탁하는데, 이런 제조 방식에는 회사에 여러 가지로 불리한 단점이 존재한다. 일단 미래에 만들어질 매출에 대해서 오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제조 비용은 대부분 매출이 만들어지기 전에 100% 집행되어야 한다. 또한, 제조 수량이 많지 않으면 최소 주문 수량이라는 게 있어서 최소로 반드시 나가야 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제조 비용이 3,000원이고, 실제 판매가는 10,000원인 사료를 10,000개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에 오늘 즉시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3,000만 원이다. 물론 이 3,000만 원으로 만드는 제품이 다 팔리면 우리에게 들어오는 매출은 1억 원이라서 두 개의 숫자만 비교해 보면 좋은 사업이지만, 1억 원이라는 매출이 앞으로 3개월에 걸쳐서 입금될지, 2년에 걸쳐서 입금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현금이 잠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계속 여러 가지 제품을 제조해야 하므로 나가는 돈은 항상 발생하는데, 이게 매출로 회수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항상 재정 상태는 좋지 않다. 여기에다가 시장의 인지도가 낮은 새로운 제품이기 때문에 계속 마케팅해야 하는데, 이렇게 따져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발생하고, 어느 정도 판매 물량이 항상 보장되기 전까지, 이런 사업은 절대로 돈을 벌 수가 없는 악성 사이클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업이 조금이라도 현금 걱정 없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 회사 자체가 좋은 브랜드가 돼야 한다. 단순히 좋은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이 제품이 왜 좋고, 어떤 장점들이 있는지를 한없이 홍보해야 한다. 여기엔 그만큼 마케팅 비용이 필요한데, 좋은 제품이 잘 팔리는 건 회사엔 축복이지만, 그 뒤의 현금 흐름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 제품이 계속 팔리면, 결국엔 이 제품을 계속 주문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다 돈이다. 그리고 계속 마케팅해야 하는데 이 또한 다 돈이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들은 가만히 있을까. 경쟁사들이 계속 출현해서 서로 더 좋은 제품이라고 마케팅하므로 마케팅 비용은 계속 오른다. 아마도 이런 사업을 하는 대표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이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현상이니까.

이 악성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이 좋다고 마케팅할 필요가 없는 뭔가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데, 이게 바로 좋은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좋은 브랜드는 좋은 제품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강력한 무형의 권력이다. 좋은 브랜드가 되어 소비자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그 브랜드가 각인되는 순간, 엄청난 해자가 만들어진다. 명품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난 생각한다.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명품은 워낙 강력한 브랜드가 됐기 때문에,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소비자들이 웬만하면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그냥 구매한다. 그냥 “저 브랜드가 만드는 제품은 당연히 좋지.”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뇌리에 박히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손으로 이어지면서 지갑을 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투자사 대표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가장 강력한 해자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 생각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에요. 즉, 영어에서 말하는 household brand가 되는 것만큼 강력한 진입장벽은 없습니다.”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아는 많은 명품처럼 수백 년을 기다릴 순 없다. 한정된 돈, 시간, 자원을 기반으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나만의 방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지만,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가장 좋은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은 소비자들에게 많이 노출돼야 하고, 많이 팔려야 한다. 제품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노출돼도 잘 안 팔리지만, 좋은 제품이라면 많이 노출되면 많이 팔린다. 이런 식으로 가면서 중간마다 계속 찾아오는 현금 흐름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망하지 않고 계속 링에서 버티다 보면 결국엔 누구나 다 알고 인정하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Good luck.

더 좋은 브라우저를 찾아서

나는 1995년도에 Netscape라는 브라우저를 통해서 메인스트림 인터넷에 입문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넷스케이프에 대해서 들어봤거나 읽어봤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진 않은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V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의 공동창업자이자 파트너인 마크 앤드리슨이 대학생 때 만든 그 브라우저이다.

당시에 우리 집에는 인터넷 통신만을 위한 전용 전화선이 있었는데 – 이걸 허락해 주신 우리 부모님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 천리안을 통해서 전화로 모뎀 접속을 하고, 넷스케이프를 통해서 방문했던 다양한 사이트들은 나에겐 정말 신세계였다.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내가 넷스케이프로 가장 먼저 접속했던 사이트가 루브르 박물관이었고, 두 번째로 접속했던 사이트가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였다. 한 페이지가 뜨는 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 당시엔 정말 너무너무 신기했고, 앞으로 이 World Wide Web이 어떻게 발전할지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지만, 이렇게 전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중요하고 촘촘한 거미줄(web)이 될 진 상상도 못 했다.

인터넷 브라우저는 이제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제품이 됐고,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나에겐 세상을 바꾼 가장 혁신적인 제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넷스케이프가 한동안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이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가져갔고, 구글이 크롬을 만들면서 브라우저 시장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 현재 브라우저 시장은 구글의 크롬이 65%, 애플의 사파리가 18%,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Edge가 5%를 점유하고 있다. 거대한 공룡들이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이 헤게모니를 무너뜨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이 시장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 대기업들이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 파이어폭스나 Brave 같은 브라우저도 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투자사 미러도 현재 이 시장의 일부를 가져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빙글의 테크니컬 리드였고, 캐치패션의 CTO 였던 미러의 공동창업자 이상현 대표님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겠다고 우리랑 미팅했을 때,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라서 아마도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그런데 만약에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미러를 사용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니까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 수 없는 이유가 백만 가지였지만, 어쩌면 이 팀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를 우린 찾아서 투자했다.

미러는 사용자들의 정리를 도와주는 브라우저다. 셀프오거나이징(self-organizing) 기능이라고 하는데, 사용자의 웹 브라우징 활동을 자동으로 정리하고 구조화해 준다. 작업용 브라우저를 보면 열기만 하고 절대로 닫지 않아서, 끝없이 늘어나는 탭 때문에 현대 사회의 지식 근로자들은 꽤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 문제점을 미러는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 제품보다 더 안전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준다.

미러가 과연 30년 동안 변화가 없던 브라우저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수 있을까? 꼭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잘 만들면 브라우저만큼 글로벌 임팩트가 큰 소프트웨어도 없다고 생각하고, 한국 스타트업에서 만든 브라우저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현재는 맥버전만 제공된다. 이 링크를 통해서 사용하면 첫 달은 무료로 사용해 볼 수 있다.

제2의 한류

얼마 전에 컴팩트하게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3개국을 갔다 왔는데,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하루에 미팅 하나씩하고 다시 귀국했다. 우리는 한국이랑 미국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 유럽에 포트폴리오 회사가 하나 있긴 하지만 – 우리에게 자금을 제공해 주는 투자자들도 유럽에는 거의 없어서, 일 때문에 유럽 갈 일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유럽 땅을 밟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유럽에 온 게 2000년도였으니까, 이번에 24년 만에 유럽에 왔다. 특히 어릴 적 살았던 스페인에는 이번에 무려 35년 만에 갔는데, 솔직히 너무 짧은 출장이라서 뭘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한 나라에 하루도 안 있었지만, 오랜만에 유럽에 와서 나흘 동안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는데, 한국과 관련된 점들이고, 대부분 너무 좋은 느낌과 발견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일부와 중학교를 유럽에서 다녔다. 이게 언제였냐면,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이었는데, 모든 걸 사진같이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정말 못 사는 나라였다. 그 못 사는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 참고로, 당시엔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이었다. 외국에 나가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고 나가야 하는 시기였다 – 유럽에 오니 어린이의 시각으로 봐도 유럽은 너무나 잘 사는 선진국이었다. 멋진 사회적 인프라, 온갖 맛있는 음식, 비싼 자동차, 옷도 잘 입는 멋쟁이들,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넘쳐흐르는 선진국 사람들,,,뭐 이런 느낌이었고, 실은 이런 유럽의 선진국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며칠 전 출장 전 까진.

그런데 이번에 출장 와서 내가 보고 느낀 점들은 당시의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가는 곳마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 유럽이 이렇게 후졌었나? 내 기억으론 정말 잘 사는 나라였는데, 별거 아니네.” 심지어는 런던 호텔에서 우연히 대학교 선배를 만났는데, 이분도 나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기홍아, 영국이 원래 이렇게 후진 나라였니? 나는 한국이 훨씬 더 좋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좋았다. 한국이 인프라도 잘 되어 있고, 솔직히 말해서 음식도 한국이 더 맛있었다.(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이탈리아에서 먹은 파스타보다 한국에서 먹는 파스타가 더 맛있었다). 좋은 자동차는 서울에 훨씬 더 많고, 심지어는 유럽의 멋쟁이들보다 강남과 성수의 한국인들의 패션이 더 시대를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실은, 내가 이렇게 느꼈던 건, 유럽이 못 살거나, 후져서가 아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주 잘 사는 선진국인데, 한국이 그동안 너무 발전을 많이 했고, 한국이 너무 좋은 나라가 됐기 때문에 내가 상대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한국은 아주 잘 사는 강한 나라가 됐고,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심지어 굉장히 똑똑하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 유럽 가는 곳마다 투자자들이 나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 진짜 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너넨 잘될 거야.”였는데, 내가 봐도 한국인들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내가 나에 대해서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지만, 솔직히 나만 봐도 진짜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앞으로 유럽 사람들이 계속 지금같이 일하고, 한국 사람들도 지금같이 일하면, 앞으로 10년 후에 한국은 유럽 그 어떤 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게 확실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린 이미 한류(Korean Wave)라는 말을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했는데, 내가 요새 느끼는 건, 이제 제2의 한류(2nd Korean Wave)가 시작되는 것 같다. 제1의 한류 기반이 제조업을 잘하고, 그냥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한국이었다면, 제2의 한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게 포함되어 있다. 이제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한국은 이미 하드웨어를 잘하는 나라인데, 소프트웨어도 잘하고, 특히나 consumer 제품을 굉장히 잘 만드는 나라가 됐다. 실은 여기서 멈춘다면, 제2의 한류는 없을 것이다. 하드웨어랑 소프트웨어는 그냥 tech인데, tech 자체로만 다른 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순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 tech를 넘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이게 시사하는 바는 정말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은 음악도 잘 만들고, 영화도 잘 만들고, 무형의 자산인 콘텐츠 강국이 됐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외국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다른 무형의 자산인 음식에서도 한국은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음식이 이젠 정말로 메인스트림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스포츠도 잘한다. 많은 한국 프로 선수들이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너무나 잘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모두 다 합쳐지면서 한국은 이제 외국인들의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 나라가 됐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고, 이는 해외 투자자들의 돈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 대비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 회사, 또는 우리 같은 한국에 투자하는 펀드에 대한 관심이 차원이 다르게 바뀌었다는 걸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

물론, 이런 내 생각과 의견에 100% 반대하는 분들도 많다. 한국의 미래는 어둡고, 더 이상 한국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한국 VC도 내 주변에 많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내 주변에는 많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한국은 선진국에서 강대국으로 다시 한번 더 점프할 수 있는 내, 외부 기회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다

내가 약 5개월 전에 쓴 글 ‘개발자도 회사의 조직원이다’가 최근에 여기저기서 공유가 많이 된 것 같다. 뭐, 이곳은 내 개인적인 블로그라서 남 눈치 안 보고 그냥 내 생각을 끄적거리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댓글로 남겨줬다.

댓글, 댓글의 대댓글, 그리고 여기에 대한 주인장의 댓글을 모두 합치면 50개가 넘는 코멘트가 있다. 이 중, 그래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가 가능한 분위기의 댓글에는 내가 최대한 진정성 있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그냥 개싸움이 될 것 같은 분위기의 댓글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런 코멘트에 대해서는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아주 간략하게 내 생각을 종합적으로 다시 한번 공유하고 싶다.

일단, 이 글에 이렇게 격한 반응을 해주신 걸 보니, 한국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성공에 목마른 개발자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지 스타트업도 잘 되고, 경쟁력 있는 회사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사과하고 명확하게 하고 싶은 건, 내가 개발자들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이전 글을 쓴 건 아니라는 점이다. 기획자이든 마케터이든 개발자이든, 모든 직원은 회사의 조직원인데 굳이 개발자를 꼭 집어서 글을 썼던 이유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조직에선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서 돈을 버는 핵심 업무를 하는 그룹 군에서 돈을 버는 기능에 가장 관심이 적은 조직이 개발 조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관점이다.

몇 개의 댓글을 읽어보면, 회사가 잘 돼 봤자 사장만 돈 버는데 내가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특히나 회사의 지분도 없는데. 이런 분들은 내 블로그에서 불평하지 말고, 소속된 회사의 사장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권장한다. 회사에 돈을 벌어 주는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스톡옵션 또는, 그 어떤 보상도 하지 않는 사장이라면 굳이 이런 회사에 계속 다닐 필욘 없을 것 같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만약 본인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실력이 없어서 보상받을 수준이 안되면 그냥 불평하지 말고 그 회사 계속 다니면 된다. 어쨌든 이런 불평을 하면서도 계속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본인 자신의 실력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개발자로서 기술적 모험이 제한된다면 굳이 스타트업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한 분도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한 내 생각 두 가지를 공유한다. 일단 본인이 기술적 모험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이 모험이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과 크게 상관없다면(=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면) 이걸 허락하는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돈 버는 거와 상관없는 기술적 모험을 허락하는 내가 아는 곳들은 학교 아니면 연구소다. 회사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회사는 개발자들이 기술적인 모험을 하는 놀이터가 아니다. 남의 돈으로 빨리 돈을 벌어서 압축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 조직이다. 회사는 돈 받고 그냥 하루 종일 놀다 퇴근하는 곳이 아니다.

또한, 회사라는 조직은 분명히 회사라는 집단의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해야 하지만, 어떤 분들이 주장하는 개인적인 발전도 동시에 균형 있게 가져가야 한다. 나도 이건 동의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무조건 회사의 목표가 먼저이고, 이게 어느 정도 된 후에 회사의 목표를 같이 만드는 개인의 발전에 신경 써줄 수 있다. 회사의 목표는 무조건 돈 버는 게 돼야 하고, 여기에 먼저 동참할 수 없다면 개발자든 마케터든 회사에겐 부채가 되고, 부채는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분들의 댓글을 보고 나는 정말로 이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가 어딘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 회사 동료들이 너무 불쌍해서…

이 글 밑에 분명히 멋진 댓글도 많이 달릴 거지만, 거지 같은 댓글도 많이 올라올 것이다. 그 수준과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필요하면 또 한 번 내 의견을 공유하는 포스팅을 올릴 계획이다. 그런데 키보드 뒤에서 인신공격적인 코멘트를 달거나, 너무 멍청한 코멘트를 다는 분들은 익명이 아니라 실명을 밝혀주시면 오히려 더 건설적인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제품도 없는데 수익은 어떻게?

얼마 전에 TechCrunch에서 배양육 산업 관련 기사를 읽었다. 우리도 국내 최초의 배양육 스타트업 셀미트에 투자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정독했다. 기사의 제목은 “Even after $1.6B in VC money, the lab-grown meat industry is facing ‘massive’ issues” 였고, 내용은 암울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너도나도 대체 단백질과 배양육 시장에 투자하기 바쁠 땐, 거의 묻지마 투자 수준으로 많은 돈이 이 시장에 투입됐지만, 연구개발에 생각보다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이후에 관계 정부 부서의 승인 받는 것도 어렵다는 걸 이제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현실은, 연구개발을 하고 승인을 받아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선 배양육 제품을 팔아야 하는데, 시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에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돈이 설비와 공장에 투입돼야 하므로 투자자들이 이젠 이 분야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실은, 순수 소프트웨어 사업이 아닌,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operation이 필수인 사업도 비슷한 문제에 항상 직면해 있긴 하다. 멀리 볼 필요도 없고 가까운 스트롱 포트폴리오 네트워크에만 보더라도 이런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예가 모바일 세탁소 세탁특공대인데, 앱으로 세탁을 맡길 수 있지만, 결국엔 회사에서 세탁물을 수거해서 본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세탁공장으로 운반하고, 여기서 세탁한 후에 다시 고객들에게 배송해야 한다. 분명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이지만, 사업의 절반 이상이 전통적인 물류와 공장 운영이다. 굉장히 돈이 많이 필요하고, 상상 이상의 돈이 설비와 공장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은 위에서 언급한 배양육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세탁이라는 업은 첫 매출을 만들기 위한 R&D는 필요 없다. 사업을 개선해서 더 많은 매출을 만들기 위한 R&D는 있지만, 이게 없어도 세탁업은 시작할 수 있고, 매출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매출과 다른 의미 있는 수치를 기반으로 계속 적당한 밸류에이션에 투자 받으면서 사업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배양육 사업은 오랜 기간 동안 아주 무거운 R&D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품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돈을 버는 건 시작도 못 한다.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돈을 아예 못 벌면, 투자받는 게 쉽지 않다. 경기가 아주 좋을 땐, 기술력을 평가하고 미래의 수익성을 기반으로 좋은 조건에 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꽤 있다. 실은 우리 투자사 셀미트를 비롯한 이 분야의 많은 회사들이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식으로 투자를 잘 받았다. 하지만, 요새 같은 불경기에 투자자들이 회사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매출이다. 투자자들은 매출을 선호하고, 더 나아가서 수익을 선호한다. 이 상황에서 팔 제품 자체가 없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수익을 만들고, 어떻게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상황에 놓인 창업가들이 꽤 있을 것 같고, 최근에 이런 고민을 하는 분과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이 나한테 열변을 토했다. “아니, 아직 제품도 없는데 어떻게 매출을 만드나요? 어떻게 우리 같은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매출을 기반으로 산정합니까? 그러면 우린 밸류에이션이 0인 회사인데요.”

이분은 시드 투자를 받아서 한 2년 동안 열심히 R&D를 해고, 연구 결과도 좋고 방향도 좋아서 실제 제품을 만들고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만나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매출이 없어서 거절하거나, 관심 있는 투자자는 매출이 없어서 (본인이 생각하기엔) 터무니없이 낮은 기업 가치를 제시하는 좋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있다.

솔직히 나도 이분에게 특별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경기가 좋고 시장에 돈이 넘쳐흐를 땐, 제품도 없고 매출이 없어도 기술 그 자체나 시장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VC들이 많았지만, 이젠 대부분의 VC들이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를 선호하고, 어떤 VC는 매출로도 부족하고 손익분기를 해서 이익이 발생하는 회사에만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창업가가 투자받는 건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 처한 창업가가 있다면, 그냥 최대한 많은 투자자를 만나서 제품과 매출이 없는 회사에도 투자하는 곳을 찾는 수밖에 없다. 만약에 운 좋게 이런 곳을 찾더라도, 회사의 밸류에이션과 투자 조건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투자자의 특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말을 쉽게 해석해 보면, 투자받는 것도 mission impossible이고, 운 좋게 우리 회사에 관심 갖는 투자자를 찾더라도 좋지 않은 조건에 투자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입장 바꿔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즉, 이런 회사들을 자주 만나는 VC의 입장에서,,,실은 지금 이런 상황에 부닥친 회사에 투자하면, 정말 매력적인 조건에 투자할 수 있다. 이 회사에 살아 남아서 정말로 좋은 기술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확실한 해자를 만들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잘 나올 것이다. 특히나, 이런 기술을 잘 이해하고, 이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 부서가 이런 플레이를 스마트하게 하면, 그 대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생각보다 쉽게 확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