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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마음

스트롱을 처음 시작할 때, 주위의 선배 VC 분들이 투자는 농부가 씨를 뿌리고, 식물이 죽지 않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농부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줬다. 경험한 만큼만 알고, 아는 만큼만 안다는 말처럼, 그땐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13년 동안 VC를 해보니 이제 이 농부의 마음이 어떤 건지 조금씩 알 것 같고, 실제로 매일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투자하고, 투자사를 대하고 있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라서 가장 초기에 투자하는 걸 시드(=seed) 투자라고 하는가 보다. 우리 같은 시드 투자자는 말 그대로 씨가 잘 자라기 위한 초기 자금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이 씨를 뿌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농부와 같이 아주 넓은 농장이나 밭에 아주 랜덤하게 많은 씨를 뿌리고, 이 씨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다양한 지원을 한다. 일단 이 씨들이 잘 자라기 위한 필수 요소인 물과 토양은 VC들이 제공하는 자금이다.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려면 더욱더 많은 수분이 필요하고, 더 많은 영양소가 시기적절하게 필요한데,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물과 비료는 농부가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씨앗이 나무가 되기 위해선 이 외에도 많은 게 필요하다. 비도 와야 하고, 충분한 햇빛도 필요하고, 바람도 불어야 하는데 날씨는 농부가 컨트롤할 수 없는 시장 상황과 비슷하다. 유동성이 풍부해서 투자를 잘 받는 시장 환경이 있는가 하면, 최근 몇 년과 같이 돈이 말라서 가뭄인 환경도 있는데,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때마다 시장 상황에 따라서 적응하고 조절해야 한다. 아무리 노련한 농부도 항상 풍년만 경험하는 게 아니다. 농사하다 보면 날씨와 같은 여러 가지 외부 요소 때문에 풍년과 흉년을 번갈아 경험하는데, 노련한 농부는 이때마다 잘 적응하고 조절한다.

농부의 마음으로 뿌린 씨가 잘 자라길 간절히 바라지만, 솔직히 이 중 어떤 씨앗이 생존해서 큰 나무가 될 진 아무도 모른다. 재수 없는 흉년이면 모든 씨앗이 전멸하고, 토양이 오염되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부족하거나, 또는 햇빛이 부족하면 씨는 작은 나무에서 성장을 멈춘다. 하지만,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씨앗에도 복리의 힘이 작용하고, 작은 씨앗이 엄청나게 튼튼하고 큰 나무로 자라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회사들은 아웃라이어다. 일단 이렇게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려면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리고 그 긴 기간 동안 이 나무가 중간에 죽을 수 있는 수백만 가지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농부는 매일 일어나서 하늘을 보면서 날씨를 확인하고, 나뭇잎을 확인하고, 물을 주고, 해충을 죽이고, 정기적으로 토양을 교체해 준다. 마치 우리가 경기의 맥을 확인하고, 투자사의 현금흐름을 확인하고, KPI를 확인하고, 창업가의 정신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가끔은 오랫동안 새싹이 안 올라와서 죽은 줄 알고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물도 안 주고, 비료도 안 주는데, 어느 날 밭에 가보니까 잡초같이 잘 자라서 아주 큰 나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사업을 잘 못 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거나, 손실 처리한 회사가 갑자기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고, 아주 좋은 VC에게 후속 투자를 받는 게 이런 경우다. 솔직히 우리도 이런 잡초의 케이스를 몇 번 경험했는데, 아주 기분이 좋다. 이런 경우가 더 많으면 좋겠다.

참고로, 우리같이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모델을 미국에서는 ‘spray and pray’ 모델이라고 한다. 많이 뿌리고, 이 중 몇 개가 잘 되길 기도한다는 의미인데, 대화의 컨텍스트에 따라서 많이 투자하고 무책임하게 기도만 하는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많이 투자하고 열심히 기도한다는(=도와준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항상 농담처럼 “우린 spray and pray를 하는데, 나는 pray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라고도 한다. 그만큼 어떤 회사가 잘 될지 아무도 모르고, 워낙 초기 회사라서 VC가 아무리 이 회사들을 도와줘도 그 결과는 항상 불확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러 밭으로 향하고 있고, 기도도 많이 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

펀드레이징하는 창업가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바로 현실과 이상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당연히 창업가들을 만나는 건데, 이 중 당장 투자유치를 하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현재 펀드레이징 중이고, 스트롱에게 투자받기를 희망하는 창업가들이다. 우리도 워낙 많은 회사를 검토하고 투자 유치가 급한 회사들에 검토의 우선순위를 할당하면서 일을 쳐내기 때문에 항상 하는 질문 중 하나가 펀드레이징 타임라인이다. 즉, 이번 투자유치가 얼마나 급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회사인데, 현금이 아슬아슬해서 금방 런웨이가 끝나는 상황이면 우선순위를 높게 하고 검토한다. 또한, 다른 VC와도 이야기하고 있고, 몇몇 투자자들과의 대화가 깊게 진행되고 있다면, 이런 회사들도 우린 우선순위를 높게 하고 검토한다. 느낌이 좋은 창업가인데, 우리의 바쁜 상황 때문에 느리게 검토했다가 다른 VC에게 투자를 받고 라운드가 마무리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요새 아주 자주 느끼는 건, 상당히 많은 창업가들이 VC들의 의향에 대해서 착각하고, 현실을 똑바로 못 보고 본인들이 바라는 이상대로 생각하고 믿는다는 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몇 달 전에 한 회사를 만났는데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창업가에게 펀드레이징 타임라인에 대해서 물어보니, “최근에 XYZ 벤처스가 커밋했고, 3주 안으로 마무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라고 해서 우리도 현재 검토하고 있는 다른 딜들을 일단 보류하고 이 딜을 먼저 검토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창업가는 다른 VC들과 미팅하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위에서 말 한 커밋했다는 투자사의 담당자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커밋은 커녕, 딜 검토를 진행할지 말지 결정도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3주 안에 마무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물어보니, 상당히 황당해하면서, 그건 그 VC의 일반적인 투자 프로세스에 관해 이야기한 건데, 대표이사가 철저하게 본인이 이해하고 싶은 데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했다.

또 한가지 예는, 창업가는 그 투자 라운드에 여러 명의 VC가 커밋해서 이미 마무리 됐다고 하면서 스트롱이 들어 올 수 있는 룸이 없다고 하는데, 막상 커밋했다고 하는 VC들과 확인해 보면 몇 번 가볍게 미팅만 했지, 투자 한다고 커밋 한 적은 전혀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룸이 안 남았다고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던 창업가는 한 달 후에 다시 연락와서 펀드레이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창업가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본인들이 믿고 싶고, 보고 싶은 이상만 봐서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VC들을 잘 못 읽어서인 것 같다. VC들도 사람이라서 모두 다 성향, 인상, 태도, 어법, 표정 등이 다르고, 한 사람을 읽는 것도 어려운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읽는다는 건 정말 어렵다. 두 사람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같은 말을 해도, 이들이 의도하는 건 완전히 반대인 경우도 있다. 특히, VC는 소위 말하는 어장 관리를 해야 하는 업종이라서 가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투자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나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이 명확하게 이야기해도 창업가는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다수의 VC가 한 회사의 피칭을 듣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한 투자자가 이 회사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우리는 10억까진 할 수 있고, 리드도 할 수 있다. 당장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해 보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도 아주 명확하게 들었다. 그런데 같은 창업가가 다른 자리에서 그 투자자가 10억을 커밋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나는 봤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 창업가는 정말로 그때 들은 말이 회사에 10억을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어쩜 이렇게 현실을 제대로 못 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VC들을 잘 읽어서 현실과 이상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텀싯이다. 아무리 투자자들이 당신의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고, 투자하겠다고 하고, 내부 투심에서 무조건 통과시키겠다고 해도, 텀싯을 주지 않으면, 그 VC는 투자하지 않는 거다. 이게 현실이다. 이미 커밋한 VC가 있다고 하는 창업가들에게 내가 항상 텀싯을 받았는지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직 텀싯은 안 받았는데, 구두로 확실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 “원래 이 VC는 텀싯 없이 투자한다고 합니다.” 등의 답변인데, 이런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걸 난 보지 못했다.

간절하게 펀드레이징 하는 건 좋은 자세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상수와 변수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도 대부분 혁신과 변화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아는 주변의 많은 스타트업이 무에서 유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현상 유지가 잘 되던 현재 상황을 완전히 엎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었다. 이들은 미래를 변화시키고,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있다.

우리 같은 VC는 이런 스타트업을 계속 찾고 있다. 창업가를 만났는데, 감동이 깊었고, 이들이 그리는 혁신에 동의해서 투자하는 때도 있지만, 이런 bottom up 전략과 반대로 앞으로 10년 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지금 사는 세상에 비해 뭐가 달라질지 예측하고, 이 분야에서 재미있는 걸 하고 있는 창업가를 찾아서 투자하는 top down 전략을 추구하는 때도 있다. 특히 요샌 많은 VC들이 AI가 앞으로 바꿀 세상을 상상하고 예측하면서, 이 예측과 같은 선상에서 사업하는 스타트업을 찾아서 투자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매일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중 어떤 것들이 크게 바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고,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창업가들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AI가 메인스트림이 됐던 시점부터, 약간 다른 관점에서 시장을 보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요새 나는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지금과 똑같이 거의 안 바뀌는 제품, 서비스, 시장은 어떤 게 있을까?”이다.

실은 이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에게 힌트를 얻은 질문인데, 지금 내 주위의 모든 VC들이 바라보는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을 볼 수 있는 역발상적인 영감을 주는 질문이다. 역발상적이긴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변화만을 보고, 변화만을 상상하고, 변화 만에 투자하고 있어서, 쉽지 않은 고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변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곳에 우리만 투자해서 우리만 맞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짜릿함과 벌 수 있는 수익은 훨씬 높다. 내가 봤을 땐.

어떤 것들이 앞으로도 안 변할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기계나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대체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들이 이 분야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앞으로 변하지 않을 분야의 중심엔 결국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변화, 그리고 변화로 인한 변수에 너무 익숙한 직업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변화와 혁신을 외치기 때문에 잘 안 바뀌는 상수에 관한 생각을 우린 너무 안 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사업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아이디어, 컨셉, 시장, 제품을 기반으로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나 변수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들다 보면, 출시 시점에 그 시장이 이미 없어졌을 수도 있다. 우린 이런 걸 유행이라고 하는데, 유행을 좇다 아무것도 못 만드는 창업가들을 너무 많이 봤고, 이들을 좇다 돈을 다 날린 투자자들도 너무 많이 봤다.

어차피 사업과 투자엔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변수만 보지 말고 상수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공부 좀 합시다

우린 고등학교 때까진 전 세계 그 어떤 민족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로 따지면 2등은 어떤 나라인진 모르겠지만, 그 양과 깊이로 따져보면 1등인 한국과 2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날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교 이후엔? 책과는 담을 쌓고, 그렇게 열심히 하던 공부의 양과 질도 점점 평균 이하로 떨어지면서, 아마도 한국은 100위 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든 안 하든, 공부량은 압도적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패턴이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 한국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4권이 안 되고, 60%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데, 이건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를 통틀어 전 세계 최하위이고,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나 모두 코인 투자 같은 얕은 잡기 습득 외엔 거의 공부를 안 한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이 스타트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일들은 정말 열심히 하지만 더 extraordinary 하게 일을 하거나, 더 extraordinary 하게 성장하려면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하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창업가나 투자자나 모두 본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얕은 경험과 지식은 있지만,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거나 제대로 뭔가를 알려고 하는 분들은 갈수록 유니콘처럼 희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창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사업, 고객, 직원이지만, 경쟁사에 대한 현황 파악도 잘하고 있어야 하고,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매크로 시장은 어떻고, 어떤 글로벌 벤치마크가 존재하는지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창업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같은 분야에서 비슷한 사업을 하는 회사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특히나 해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전에는 정보의 접근성이 낮아서 외국에는 어떤 비슷한 제품이 존재하고, 이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회사의 성장 전략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접하는 게 어려웠지만, 요샌 그냥 검색하거나 AI에 물어보면 웬만한 건 다 찾을 수 있다. 얕은 지식의 대명사인 나 같은 VC도 아는 유명한 미국의 회사와 서비스에 대해서, 이 분야에서 치열하게 사업하면서 유니콘을 만들고 싶다는 창업가가 본인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난다. 공부를 전혀 안 하기 때문이다.

사업은 종합 예술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아야 하지만, 내 주변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내가 사업하는 영역에는 국내/국외에 어떤 플레이어들이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책도 봐야 하고, 잡지도 봐야 하고, 한글과 영문 기사도 열심히 읽고, 팟캐스트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벤치마킹해야 할 제품이 있다면, 대충 겉으로만 보지 말고 되도록 이 제품의 모든 기능을 다 써봐야 한다. 그러면서 관련 기사, 책, 팟캐스트, 인터뷰 등을 하나씩 복기하면서 내가 속한 분야에 대한 큰 그림을 내 지식을 기반으로 하나씩 재구성하다 보면, 사업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두 고등학교 때 치열하게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서 다시 공부 좀 해보자. 하지만, 제발 이런 콘텐츠를 NotebookLM이나 ChatGPT에 때려 넣고 요약본으로 학습하려고 하지 마라. 남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꽤 중요한) 투자자와의 소통

전에 내가 ‘투자자와 소통하기’라는 글을 썼다. 우리가 일하는 분야는 워낙 페이스가 빨라서 과거에 맞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틀릴 수도 있고, 과거에 틀렸다고 했던 내용이 현재는 완전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6년 전에 썼던 이 글은, 과거에도 맞았고 지금은 더 오지게 맞는 내용이라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한 번 더 쓴다.

우리 모두 인생과 직장에서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인생은 피드백이고 인생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가라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이 가장 중요한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에게 물어보면 사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할 것이고, 이 사람들을 끈끈하게 본딩해줄 수 있는 건 소통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입으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이걸 참 못 한다. 아니, 어떤 분들은 일부러 안 하는 것 같다. 특히, 내부 소통보단 외부 소통, 외부 소통 중에서도 투자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어떤 분들의 – 우리 포트폴리오 포함 –  커뮤니케이션 점수는 빵점이다.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은 잘 아실 텐데, 우린 워낙 많은 투자사가 있어서, 이들의 사업 현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회사를 매달 만나는 비현실적인 방법보단, 이메일로 월간 사업 업데이트를 받고, 이를 통해서 사업의 현황과 건강의 척도를 평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대표님들에게 사업 업데이트를 부탁하는데, 이걸 받는 분들은 징글맞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대부분의 스트롱 대표님들은 이렇게 투자자들에게 월간 사업 업데이트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와 몇 개 회사에 공동 투자한 다른 VC가 “스트롱 포트폴리오는 월간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잘하네요. 그리고 그 내용도 형식적인 보고가 아니라, 대표님의 고민, 생각, 그리고 투명한 회사의 실적을 공유해줘서 너무 좋습니다. 훈련이 잘된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투자자와의 이런 정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일단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들에게 사업 현황을 정기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하는 건 기본이자, 회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의무이다. 이 글을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로 생각하겠지만,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분들도 과연 본인의 투자자들과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라. 안 그런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사소한 문제가 나중에 엄청나게 커지고, 이게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소송으로 가는 것까지 나는 본 적이 있다.

소통이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이렇게 매달 투자자들과 사업 현황을 공유하다 보면, 그냥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빈도를 높이고, 정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쪽에 원할 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실제로 대부분 그렇다. 투자자는 창업가에게 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에, 창업가는 싫든 좋든 투자자가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돼야 한다. 반대로, 창업가는 본인이 선장인 배에 탄 투자자들이 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필요한 게 있으면 투자자에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자정이든 주말이든 투자자는 무조건 연락이 돼야 한다. 다른 VC는 잘 모르겠지만, 스트롱 전체 팀은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들이 연락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로 자주 연락을 안 하는 게 또 투자자와 창업가의 관계이다. 시간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이 부분을 서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나 VC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무리 서로 친해도 엄청나게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진 않을 것이다.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어쨌든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봐야지 친해지니까. 그래서 월간 업데이트를 하면 매달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매우 좋다. 우리는 이 월간 업데이트를 자세히 읽고, 우리의 피드백과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한다. 그러면 굳이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을 정기적으로 정하고, 포트폴리오의 사업 현황에 대해서 꽤 잘 숙지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 포트폴리오 대표님을 만났는데,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거의 1년 반 전이였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깜짝 놀랐다. 매달 이메일로 소통하다 보니, 거의 매달 만난 것 같았으니.

마지막으로, 투자자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한 가장 실용적인 이유는, 정기적인 소통이 됐다면 회사가 어려울 때 투자자들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개월 동안 사업 업데이트가 없던 대표가 금요일 저녁에 다급하게 연락이 와서 다음 달 나갈 월급이 없다고 하거나, 경쟁사에게 소송을 당했다고 SOS를 치면 우리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투자사이니 당연히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우리도 이 회사가 그동안 뭘 했고, 현황은 어떤지, 그리고 대표님은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했다면, 회사에 현금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아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대표는 우리도 우리와 친한 다른 VC에게 선뜻 소개해 주는 게 망설여진다. 다른 VC한테 투자받은 후에 또 이렇게 연락이 잘 안될 텐데, 이건 스트롱과 내가 욕먹을 일이기 때문이다.

뭔가 우리가 대단한 걸 매달 요구할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포트폴리오 대표들에게 요구하는 건 다음과 같다:
1/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KPI(매출, UV, MAU 등…)
2/ 영업, 마케팅, 유통, 제조 등 관련해서 특별히 나쁘거나, 좋았던 내용들
3/ 특이 사항
4/ full-time 임직원 수
5/ 지금까지 유치한 총투자 금액
6/ 현재 회사에 남은 cash 상황
7/ 스트롱에게(또는 다른 투자사들) 부탁하고 싶은 내용

이건 솔직히 제대로 된 회사, 제대로 된 대표라면 매달 결산하고 스스로 정리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그냥 이 내용이 정제되지 않은 포맷으로 편안하게 공유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이다.

이 글을 읽는 창업가들은 모두 본인들의 투자자들과 월간 업데이트를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걸 적극 권장한다. 한 일 년 이상 꾸준히 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빈도와 질에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고, 더 신뢰받는 대표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