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상당히 많은 회사에 투자한다. 그리고 많은 회사에 투자하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회사를 만나야 한다. 이 많은 회사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deal sourcing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동안 이미 260개가 넘는 포트폴리오에 투자했기 때문에,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들이 주변에 있는 다른 창업가들을 많이 소개해 주고, 다른 투자자들이 소개해 주고, 데모데이 같은 곳에서도 만나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그리고 인바운드로 다양한 창업가들이 콜드 이메일로 회사 소개자료를 보낸다.
이런 콜드 이메일로 오는 회사들은 매력도가 그렇게 높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모든 인바운드 이메일을 읽고, 이 중 재미있는 사업이나 창업가 같으면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한다. 얼마 전에 이런 미팅을 했는데, 만나서 한 20분이 지났나,,,이 분한테 나는 미안하지만 우린 검토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직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안 됐다고 느꼈고, 더 이상 미팅을 하면 서로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아서 조금 더 준비되면, 그때 VC 미팅을 하라고 솔직한 피드백을 줬다.
이분이 나한테 그러면 도대체 투자자는 언제 만나면 되는지 물어봤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내가 말했는데, 그럼, 언제 준비가 되는 건지,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됐다는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지 물어봤다.
투자자를 만날 준비가 됐다는 객관적인 지표는 없지만, 최소한 본인이 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투자자를 만나야 한다. 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실은 그 누구도 창업가를 믿어주지 않는다. 주위 친구들도 말릴 것이고, 가족들도 말릴 것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지인들 10명에게 내 사업 아이디어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10명 모두 망할 거라고 하면서 말릴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사업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스스로는 설득되어야 하고, 본인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이 가짜 창업가는 본인도 자신의 사업에 대해 확신이 없다는 게 온몸을 통해서 느껴졌다.
내 아이디어나 사업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어느 정도의 감과 적당한 데이터를 통한 확신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창업가는 본인이 하려고 하는 게 가능하다는 어느 정도의 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단순한 감과 느낌만으론 본인도 확신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 느낌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적당한 시장 조사와 데이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일한 경험이 기반이 되는 감과 이를 보강할 수 있는 시장 조사와 데이터가 있으면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냥 자기 최면이다. 잘될 거라는 느낌도 확실치 않고, 조사를 좀 해보니까 데이터도 신통치 않으면 자신감이 확 떨어질 것이다. 이럴 땐 그냥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해야 한다. 마치, 어떤 펜싱 선수가 경기 중 계속 “할 수 있다.”라면서 스스로에게 긍정의 최면을 걸었던 것처럼.
이렇게 해서 스스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만약에 본인도 확신이 안 서는 상황에서 투자자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웬만한 VC는 이런 불확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창업가와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보고, 이분의 눈빛, 동작, 그리고 태도를 자세히 보면 정말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판단할 수 있다.
100% 확신이 있어도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실패하는데, 이 기본적인 확신마저 없다면 투자자와 안 만나는 게 좋다. 서로의 시간만 낭비할 것이고, 더 중요한 건, 절대로 투자를 못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