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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검토 체크리스트

1586734159905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핫해지고,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받는 분야는 AI다. 앞으로 더 커질 것이고, AI는 모든 비즈니스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너무 멀다. 대부분의 AI 회사가 제시하는 장밋빛 그림은 비현실적이고, 가끔 나는 AI 회사가 피칭하는걸 듣고 있다 보면 저 창업가 분들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미래에서 왔을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황당했던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라서, 나도 이 기술, 이 비즈니스, 이 회사가 약속하는 미래가 정말로 실현 가능한지가 제대로 판단되지 않을 때가 많고, 이럴 경우 주변의 다양한 분들한테 조언을 구하지만, 그래도 이런 회사를 검토하는 건 항상 어렵다.

완벽하진 않지만, Zest AI라는 회사의 CTO가 최근에 테크크런치에 기고한 을 한번 읽어보면, AI 회사나 기술을 검토할 때, 투자자, 고객, 또는 협력업체 입장에서 확인해봐야 하는 6가지 사항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AI 회사가 정말로 뭔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AI로 겉만 번드르르하게 포장되어 있는 건지를 판단할 때 꽤 유용한 거 같아서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1/ AI 훈련에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나?
Garbage in, garbage out이라는 말이 있다. AI가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데이터로 훈련을 시켜야 한다. 제대로 된 AI 회사라면 정확하게 어떤 데이터를 사용해서, 어떤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 사람이 하는 일을 AI가 어느 정도 대체하는가?
AI가 구현되면 사람이 전혀 필요 없다든지, 또는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사람을 즉시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 회사는 의심해봐야한다. 아직 AI는 그 수준까지 오지 못했다. AI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고, 아직 사람이 필요한 프로세스에 AI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3/ 실제 사례가 있는가?
이 AI 기술이 실제로 구현된 사례가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데, 어떻게 AI가 해결을 했고, 그 결과를 정량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었는지를 물어봐야한다. 연구실에서 테스팅해봤다고 현실에서도 AI가 작동하진 않는다. 한 연구에 의하면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AI 중 20%만 현실에서 돌아간다고 하듯이, 실생활에서는 실험에 사용한 가정이나 제약조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고객이 실제로 사용했고, 정확히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지 확인해봐야한다.

4/ AI를 구축하는데 얼만큼의 노력, 시간, 그리고 자원이 투입됐는가?
수십 명의 데이터과학자와 공학박사들이 AI 모델링을 하고, 수 년 동안 연구실에서 알고리즘을 개발한 건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현실에 적용했을 때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는걸 보장할 순 없다. 위 3번과 같이 확인해봐야한다.

5/ AI의 결정과 추천사항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단순히 좋아할 만한 기사나 옷을 추천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앞으로 AI가 해야 할 일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점점 더 규제를 받게 될 것이다. AI 기반의 대출 결정을 하거나, 또는 자율주행 결정을 할 때는, 왜 AI가 그런 결정을 했고, 왜 그런 추천을 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규제가 까다로운 분야라면, 더욱더 그렇다.

6/ AI의 의사결정에 공정성이 있는가? 편견은 없는가?
AI를 훈련하는 데이터에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바이어스가 들어가 있다. 가장 이슈가 많이 되는 게 인종과 성차별에 대한 바이어스인데, AI를 연구하는 인력 대부분이 백인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도하지 않게 이런 부분이 원데이터에 반영되고, 이게 AI를 통해서 처리되면, 공정성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윤리적인 부분도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나도 이 기사를 접한 후에 AI 관련 회사를 만나면, 위 6가지 질문을 기본적인 프레임으로 삼으면서 비즈니스를 검토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통제 불가능한 건, 그냥 웃자

bottle-601566_1280나는 이제 7주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말 하는 재택근무는, 사무실을 안 가는 개념도 포함하고 있지만, 아예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매주 월~금, 내가 집에서 보낸 시간을 계산해보니까, 대략 118시간이다. 불필요한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일주일에 2시간만 밖에서 보내고 있다. 우리 사무실이 있는 구글캠퍼스도 어차피 셧다운 돼서, 사무실 출근이 당분간 힘들어서 언제 재택근무를 끝낼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한국은 그나마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황이 좋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다시 크게 확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서, 상당히 조심하고 있긴 하다.

집에서 일한다고, 노는 건 아니다. 아니, 실은 사무실 출근할 때 만큼 많은 미팅을 소화해내고 있는데, 다만 물리적인 미팅은 아니고 Zoom으로 하는 화상 미팅만 열심히 하고 있다. 새로운 회사도 많이 만나고 있고, 우리 기존 투자사들과도 요샌 화상으로 미팅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듣고 관찰해보면, 참 마음이 아프지만, 시장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롭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우린 기술 그 자체로 사업을 하는 deep tech 분야보단,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소비자 서비스를 만드는 온디맨드와 이커머스와 같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에 투자를 많이 하다 보니, 거시적인 흥미로운 트렌드가 보이긴 한다. 비대면 비즈니스인 이커머스 사업은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대부분 더 잘 되는 경우가 목격되는데, 너무 잘 되는 회사는 오히려 제조와 공급이 시장의 수요를 못 맞추는 현상을 경험하기까지 한다. 실은, 이런 많은 회사가 코로나바이러스 전에는 없는 수요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이렇게 바이러스 때문에 상황이 며칠 만에 역전되는 걸 보니 참 신기했다. 이와 반대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온디맨드(O2O) 또는 마켓플레이스 사업 중 오프라인 과정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는 걸 목격하고 있다.

여행 또는 오프라인 이벤트가 사업의 핵심인 우리 투자사들은 매출과 모든 수치가 거의 100% 감소해서, 그동안 수년 동안 갈고 닦은 비즈니스 자체가 사업 초반으로 리셋되는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 이와는 극적으로 다르게, 인터넷으로 콘텐츠를 판매하고 배포하는 회사들은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나도 참 안타깝다. 작년 12월과 올해 1월 역대 최고 매출과 실적을 달성해서, 올해 정말로 크게 성장할 거로 예상되는 투자사들이 몇 있었는데, 2월부터 모든 수치가 곤두박질하면서, 이젠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어서, 옆에서 이들을 보는 나도 참 애가 탄다.

그 누구도 이런 성장 또는 감소를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고 준비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그래서 컨트롤할 수 없는 블랙스완인 셈이다. 하지만, 창업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만을 탓해서는 안 된다. 사업이 안 되고, 숫자가 좋지 않고, 모든 상황이 비즈니스에 불리하지만, “코로나 때문에”라는 생각을 하고, 우리 비즈니스가 잘 안되는 가장 크고, 어쩌면 유일한 이유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모든 창업가에게는 앞으로 더 내려갈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 맞고, 코로나바이러스를 욕하고 탓하는 게 맞다. 이게 아니라면, 1월에 10억 원 매출하던 회사가 어떻게 2월, 3월 99% 감소한 1,000만 원밖에 못 할까? 그래도 우린 무조건 코로나바이러스만을 탓하면 안 된다. 컨트롤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이 개판 와중에도, 우리가 조절해서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찾아서 계속 실험해야한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쩌면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현실은 정말 절망적으로 변한다.

실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라는 말은 VC들도 요새 많이 하는걸 들었다. 투자하기로 했고, 악수도 했고, 계약 작업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투자 철회하는 걸 이미 몇 번 봤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실은, 투자자들한테도 가장 쉬운 변명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세계 경제가 불확실하고, 돈줄을 잡고 있는 LP들이 돈을 안 풀고 등등, 뭐 이유는 그냥 만들면 된다. 하지만, 이건 정말 무책임한 태도다. 투자하겠다고 악수했으면, 무조건 투자 집행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정말 힘들면, 코로나바이러스 말고 다른 합당 하고 이해 갈만한 이유를 제공해줘야한다. 모든 걸 코로나 탓 하는 태도는 정말 아닌 거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코로나를 탓하는 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럴수록,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봐야한다. 컨트롤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다. 그냥 한번 크게 웃자.

<이미지 출처 = Pixabay>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극단적 조치

작년 말 중국의 우한이라는 곳에서 처음 발생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결국 3개월 만에 전 세계를 정지시켰다. 정말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가장 큰 블랙스완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고, 나도 처음 겪어보는 글로벌 경제 위기에 전 세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스타트업 분야는 그나마 거시경제의 영향을 가장 늦게, 그리고 적게 받는 분야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너무나 큰 스케일로 번졌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요새 부쩍 하고 있다.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들이야 항상 돈이 없지만, 대기업마저 스타트업과 같이 돈이 없어서 위태로운 이 시기에 스타트업은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가장 처음 경험했던 경제대란은 1997년 IMF 사태였다. 솔직히 이때 나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제대해도 학생이기 때문에, 막상 직접 체감하진 못 했었다. 그 이후 2000년도 초반,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거품이 터졌을 때 나는 첫 직장에서 정리해고 됐다. 이게 두 번째 경제대란 경험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뮤직쉐이크 할 때, 대마불사였던 Lehman Brothers가 파산하면서 2008년~2009년에 경험했던 경제위기는 아직도 몸으로 기억할 정도로 처참했고 우울했다.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는 2008년보다 더 파급력이 클 것 같다는 걱정이 매일매일 커지고 있다. 우리도 이런데, 경기가 좋아도 하루하루가 힘든 스타트업은 어떨까. 실은 이 와중에도 잘 하는 회사도 있고, 오히려 더 잘되는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 대표이사들은 어쩌면 겉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분명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느낌이 좋지 않다면, 지금 당장 행동을 해야 한다.

얼마 전에 내가 2009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뮤직쉐이크가 망할뻔 했을 그 시절에 썼던 포스팅 시리즈를 다시 한번 쭉 정독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점들과 우리가 취했던 행동들을 창업가 분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내용을 편집/각색해서 여기서 공유해본다. 물론, 12년 전 이야기이고, 나는 그때 정말로 경험 없는 초짜 사업가였기 때문에, 정말 많은 실수를 했다. 하지만, 경기지수와 주식시장이 거의 10년 전으로 리셋된 걸 보면서, 어쩌면 내가 당시에 느꼈던 점들과 취했던 액션들이 지금 이 불확실성을 두려움과 공황으로만 버티고 있는 창업가들한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여기서 공유한다(참고로 좀 길지만, 유용하다).

Chapter 9 스타트업이 망할것 같으면?

왜 Chapter 9인가? 2010년도에 출간 된 내 첫번째 책 스타트업바이블은 244쪽 분량의 책이다. 244쪽이 어떻게 보면 많고 어떻게 보면 적은 애매한 양이라서 출판사 분들과 한 개의 챕터를 더 추가할까 말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일단은 타이밍 문제가 있어서 챕터 8로 책을 끝냈는데, 실은 내가 이 책에 추가하고 싶었던 마지막 챕터가 하나 더 있었다. 이게 출판되지 않은 챕터 9이다. 이 내용은 편집되지 않은 내용이라서 책과 같이 문장이 매끈하지 못하고, 문체도 정제되지 않았으니 이 부분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내용 자체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상황이 지금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계속 2009년도 이야기를 하는데 2009년도는 정말로 뮤직쉐이크한테 힘든 한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2008년 12월부터 우리 회사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였다. 이미 투자를 받기로 어느 정도 결정이 되었던 상황이었는데, 세계 경제가 완전히 개판 나면서 구두로 투자 약속을 하였던 투자자들이 불과 며칠 만에 투자를 보류하더니, 결국에는 투자 자체가 없던일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황당했지만, 솔직히 황당해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미 은행잔고가 뚝뚝 떨어지는 게 내 눈앞에 보였고, 잔고가 “0″이 되는 순간에 회사는 원하든 원치 않든 공식적으로는 망하는 거니까. 아마도 이런 경험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월급쟁이가 월급을 꼬박 꼬박 받으면서 다니던 회사가 망하는거랑, 직접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은행 잔고가 뚝뚝 떨어지고 지출은 계속 발생하는데 수입은 그 지출을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을 피부로 느끼는 거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벼랑을 향해서 내리막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차의 브레이크를 젖먹던 힘을 다해서 밟아서 차를 멈추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더 더러운 거는 운전자는 이미 차가 서기전에 벼랑밑으로 차와 함께 모두가 다 떨어질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는것이다.

확실한 거는 앞으로 3-4개월 안으로 뮤직쉐이크가 신규 투자 유치를 못할 거라는 점과 – 이 3-4개월이 결국은 12개월로 연장되었다 – 그동안에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 회사를 인수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즉, 무슨 결정을 하든 간에 빨리 결정을 해야 했다. 생각해야할거는 많이 있었지만, 크게 보면 2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여기서 그만 전기코드를 뽑는 쉬운 방법이 있었고, 또 하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전기를 계속 돌려서 회사를 생존시키는 쉽지 않은 방법이 있었다.

나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왜?

솔직히 말해서 쪽팔렸다. 성공한 창업가는 아니더라도, 다만, 뭔가를 한번 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만만치 않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던 그런 사람으로 나는 기억되고 싶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나는 막말로 여러 가지 옵션이 있었다. 그냥 대기업이나 다른 IT 회사의 VP로 갈 수도 있었고, 그냥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따서 더 편안한 고액연봉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를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뭔가 한 번 해보겠다고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했는데 칼을 뺐으면 두부라도 배야지 않겠냐. 그동안 싼 똥을 누군가는 치워야했고, 나는 그 작업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 문제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였다.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그러면서 비즈니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DO I HAVE THE BALLS TO DEAL WITH THIS?

내 경험에 의하면, 밑에 나열한 9가지의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고 극복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 당장 그만두고 배를 갈아타야 한다고 본다:
1/ 전 직원의 50%를 해고
2/ 3개월 후에 다시 직원의 50%를 해고
3/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직원의 50%를 계속 해고(그때까지 해고할 직원들이 남아있다면)
4/ 12개월 동안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밤잠을 설침(첫 6개월이 가장 힘들다)
5/ 거의 모든 계약이 하루아침에 무산되는 상황을 그냥 바라만 보기
6/ 잘나갈 때는 제발 한번 만나달라고 구걸하던 사람들이 전화나 이메일을 10개 이상 보내도 무시
7/ 언제는 우리 스타트업이 마치 제 2의 Facebook인 마냥 보도하던 언론사와 연락이 아예 안됨
8/ 지인들 앞에서 “네, 뭐 그럭저럭 잘 되고 있습니다.”라면서 마치 비즈니스가 잘되는 것 같은 거짓말 하기
9/ 똥을 치우기 전까지는 회사로부터 단돈 일원의 월급도 가져가지 않기

뮤직쉐이크는 잘나갈 때는 35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2009년도 어느 시점에 우리는 아마도 12명까지 내려갔던 거 같다. 현재 우리의 headcount는(한국+미국) 15명 이다. 2009년도 언젠가부터 나는 비용절감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출장도 더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울리던 우리 사무실 전화는 언제부터인가 조용해졌다. 그러면서 우리의 똥 치우기는 계속 되었다. 뭐, 솔직히 그다지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회사 운영을 못해서 스타트업이 망할 위기까지 온 게 뭐 자랑스러운 거라고 이렇게 책에 포함할 생각까지 했냐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분명히 이런 원치 않은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을 테고, 현재 이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는 대표들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쓸 내용은 스타트업이 망해가고 있을 때 취해야 하는 행동들과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배운 중요한 교훈들에 관해서이다.

Chapter 9.1 우리의 활주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은행에 남아 있는 돈으로 회사가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일이다. 즉, 활주로 (runway)를 계산해야한다. 스타트업 바이블 116쪽에 runway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내 수익을 만들지 못하는 스타트업이 현재 가지고 있는 돈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을 활주로 (runway)라고 한다.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 다다르면 하늘로 이륙하거나 더 이상 운행을 하지 못하고 멈추거나 아니면 바다로 추락하듯이, 스타트업들도 돈을 다 소진하면 재투자를 받아 날아가거나 아니면 망하는 것이다. 벤처 캐피털들이 “활주로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How much runway do you have?”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이는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언제 떨어집니까?’라는 말이다.

솔직히 활주로를 계산하는 건 정말 쉽다.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웬만한 정규 교육을 받은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손으로 할 수 있다. 매달 회사에서 발생하는 비용을(M) 계산하고, 현재 은행에 남아있는 잔액을 M으로 나누면 된다. 그러면 현재 은행에 남아 있는 돈으로 우리 스타트업이 과연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연명할 수 있는지 정답이 나온다. 스스로 하는 게 조금 버겨우면, 회계학을 전공한 친구나 주위에 있는 회계사한테 부탁하면 조금 더 자세하고 정교하게 계산해줄 것이다. 우리의 경우 M이 4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활주로가 정의되었으면, 대표는 이 활주로를 어떻게 해서든지 연장해야 한다. 활주로를 연장한다는 말은 비용을 절감하던지, 매출을 증가시키는 건데 아마도 이 시점에서는 비용을 절감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직원들을 과감하게 잘라야 하며, 건물 주인과 네고해서 사무실 월세를 깎아야 하고, 불필요한 청구서들을 대폭 줄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현재 매출을 어떻게 하면 더블할 수 있는지를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이렇게 해서 비용 절감과 매출 신장을 단기간안에 하였다면 아마도 활주로가 2배 연장되었을 것이다.

또한, 경영진과 매일매일 머리를 맞대고 마른 수건을 짜듯이 비용구조를 더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솔직히 작은 스타트업의 비용구조가 뭐 그리 복잡하겠냐…여기서 말하는 비용구조 개선이라 함은 그냥 무조건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는 말이다. 월세를 100만원 내고 있다면, 건물 주인한테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50만 원으로 해달라고 구걸해라. 직원들 핸드폰 비용의 50%를 회사에서 내주고 있었다면,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중단하고, 한 달에 회식을 2번 했다면 이제부터는 회식을 하지 말아라. 어떻게 보면 직원들한테는 정말 치졸하고 더럽게 느껴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은 회사가 살아야한다. 회사가 망하면 모든 게 끝이니까.

Chapter 9.2 해고, 그리고 또 해고

제조업과 같이 생산시설과 설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터넷 사업의 비용 구조를 분석해보면 비용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이다. 특히 실리콘 밸리와 같이 능력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스타트업의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위기를 맞이해서 비용을 절감하려면 해고는 어쩔 수 없이 감행되어야 하는 절차이다.

해고는 글로 쓰면 너무나 쉬운 단어이지만,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부하직원을 해고했을 때인 것 같다. 당장 눈앞에서 해고를 말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개인적으로 친했던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상황도 견디기 쉽지 않았다. 아무리 친했던 사람이라도 스타트업의 자산이 되기보다는 부채가 된다고 판단이 되면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해고를 결심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그 사람과 인간적으로도 멀어지게 되고 감정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한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은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며 인생의 한때를 전부 바친 회사가 아닌가. 해고하는 사람이나 해고를 당하는 사람이나 모두 쓰디쓴 배신감을 맛볼 수밖에 없고, 이런 감정의 상처는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낫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고로 내가 같이 일하다가 해고했던 사람들과는 현재 나는 인간적으로도 완전히 멀어졌다. 이들은 아직도 나를 이 세상 어디선가에서 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도 너희 아직도 속으로 욕하고 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해고할 때 매니저들이 항상 습관처럼 말하는 게 있다.
“너는 정말 내 동생같아서 인간적으로는 내 옆에 항상 두고 싶은데,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절대로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니까 우리 밖에서 만나면 소주 한잔하면서 형, 동생같이 지내자.”
이거 완전 개소리다. 해고하는 사람이나, 해고당하는 사람이나 이런 상황까지 왔다면 그 이후로는 인간적으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매니저들은 나중에 사적인 자리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기도해야한다. 졸라게 얻어맞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일을 하다 보면 적을 만들 수도 있고 사람들과 감정의 골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니까 그냥 let’s get on with life.

자, 만약에 활주로를 계산했는데 스타트업이 앞으로 12개월 동안은 매출을 만들 확률이 전혀 없고, 현재 은행에 남은 돈으로는 6개월 정도밖에 버틸 수 없을 거 같다면 어쩔 수 없이 현재 직원의 3분의 1, 많게는 절반을 잘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추가로 남은 사람들의 연봉도 삭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결심을 했다면 다음의 절차를 한번 밟아봐라:

1/ 회사의 절대적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직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홍보, 마케팅, 경리 등이 이런 직책이다. 솔직히 이런 분들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없어도 인터넷 스타트업의 생사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보직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홍보, 마케팅, 경리 담당자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본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영업부서와 같이 회사의 매출이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이런 보직은 미안하지만 당장 없애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걸 생각해봐라.

2/ 남은 직원들의 연봉을 잘 분석해보고 현재 시장에서의 평균 연봉과 비교해봐라. 시장에서의 평균 연봉보다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직원들을 없애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현재 시장 평균 연봉에 구할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라. 이 직원이 우리랑 몇 년 같이 일한 사람이 아니라 오늘 새로 고용할 사람이라면 이 연봉에 채용할 생각이 있는지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렇다면 그냥 유지하고, 아니라면 교체해라. “와, 정말 이렇게 치사하게까지 나가야 되나?”라고 문의하는 대표들이 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6개월 후에 망할 스타트업을 어떻게든지 살려보려고 바둥거리는 위치에 있다는걸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이런 결정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회사의 수명은 일주일씩 짧아진다는 사실과 함께.

3/ 평균 시장가보다 더 많은 몸값을 받는 직원들과 1대1 면담을 해라. 그리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면서 연봉을 삭감할 것이며, 대신 그만큼 스톡 옵션을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해봐라. 어떤 직원들은 오히려 회사의 지분을 더 받게 되어서 좋아하지만, 어떤 직원들은 연봉 삭감은 죽어도 안된다고 할 것이다.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4/ 위의 1, 2, 3번 절차를 3개월 후에 다시 한번 반복해라.

5/ 위의 1, 2, 3번 절차를 필요할 때마다 계속 반복해라.

근데 참으로 신기한 건, 이렇게 직원들을 대량 감원한 후의 회사의 output과 감원하기 전의 output을 직접 비교해보면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많은 대표들이 발견하고 의아해한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100명의 직원이 있을 때보다 20명의 직원이 있을 때의 회사의 실적이 더 좋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뮤직쉐이크도 경기가 좋을 때는 30명 이상의 직원이 있었지만, 2009년 말에는 거의 절반 수준인 15명이 남았는데 회사의 매출이나 performance는 오히려 더 좋아진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는 산업공학과 조직심리학과의 교수들과 학자들이 다양한 논문까지 발행한걸로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해고는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유쾌하지 않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한가지 예외가 있다. 나같이 인정사정없고 냉혈동물 같은 놈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이 있으면 당장 해고하고도 밤에 편하게 잘 수 있지만, 모든 스타트업 대표가 이렇지는 않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상 남한테 싫은 소리는 죽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한테는 불경기와 위기는 그동안 맘에 들지 않았던 직원들을 해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가 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몇몇 직원들을 감원해야 하는 상황이 저절로 왔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있는가? 실제로 내 주위에는 2009년의 불경기를 잘 leverage해서 맘에 들지 않던 직원들을 다 자르고 2010년도에 새롭게 시작해서 요새 잘나가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더러 있다.

Chapter 9.3 전직원의 영업 – 뭐라도 팔아라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팔 수 없다면, 그건 제품도 아니고 당신들이 하는 건 비즈니스가 아니다. 단지 취미 생활일 뿐이다. Dallas Mavericks 농구팀의 억만장자 구단주 Mark Cuban은 “영업은 모든 걸 해결한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곤했다. 그만큼 스타트업이 살아남으려면 영업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활주로가 6개월도 채 남지 않았을 때만큼 영업이 중요한 시기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다면 3년 치 계획이니 회사의 장기적인 전략같은건 다 필요 없다. 곧 자금이 고갈되어 회사가 망할판에 장기적인 비전이나 전략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때는 영업사원들뿐만이 아니라 스타트업의 전 직원이 영업 전선에 뛰어들어서 자사 제품을 팔아야한다. 개발자, 마케팅, 회계, 경리 상관없다 –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원, 전방위적 공격을 해야 한다.

활주로가 6개월 남은 이 시점에서는 유감스럽게도 회사의 비전, 장기적인 전략 그리고 스타트업 창업 당시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걸 버리고 무조건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영업활동에 전 직원의 혼과 정신이 집중되어야한다. 옷을 파는 회사인데 옷이 잘 팔리지 않고 활주로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옷감을 팔던지, 옷 사진을 팔던지, 뭐라도 단기적으로 돈을 회사에 벌어줄 수 있는걸 해서 조금이라도 회사의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저들이 곡을 만들어서 돈을 내고 MP3를 구매하게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우리의 비용을 충당할 정도로 잘 돌아가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당장 돈을 벌 수 있겠냐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유저들이 만들어서 뮤직쉐이크에 올린 10만 개 가까이 되는 곡들을 CD로 구워서 파는 것이었다. 하지만 CD를 만들어서 인터넷에서 팔 수 있는 인프라가 우리한테는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초/중학교 앞에서 직접 학생들을 대상으로 CD를 팔아보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회사가 아닌 근처의 초/중학교로 출근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 등하교 시간에 큰 박스에 CD를 꽉꽉 담아서 매우 싼값에 코 묻은 돈이라도 벌어 조금이라도 회사를 연명시키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CD가 잘 팔리지도 않았지만, 한 학교에서 1시간 이상 서 있으면 항상 누군가는 신고해서 경찰한테 쫓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못 배운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그때 생각만 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지금까지 뮤직쉐이크에서 일하면서 “그냥 여기서 그만할까.”라는 생각을 딱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렇게 LA 경찰들한테 불법 이민자 취급받으면서 고생할 때였다.

여기서 전달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스타트업의 현금 보유량이 바닥나고, 그렇다고 수십억짜리 계약이 성사되거나 갑자기 비즈니스가 확 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전 직원은 영업모드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기존 전략이나 비즈니스 모델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뭐라도 팔아서 당장 현금을 계속 창출하는 게 중요하다. 마치 물이 2/3 정도 차올라서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모든 선원과 승객이 물을 배 밖으로 퍼 내는거지, 배가 목적지 쪽으로 잘 가고 있는지 아니면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크게 상관없는 상황과 비슷한 거다.

Chapter 9.4 결론. 무조건 살아남아라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장이다. 솔직히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는데 너무 길고, 그리고 나도 글로 생각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절망, 걱정, 슬픔, 기쁨(가끔), 감동 등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와도 같이 요동쳤던 2009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2009년 중반까지도 별다른 탈출구를 찾고 있지 못하였다. 오전 8시부터 밤 8시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활주로를 연장할 수 있을까?”와 “어디서 몇십억 빌릴 때가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나날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는데, 언젠가 나는 스탠포드 대학 동문 주소록을 A부터 Z까지 훑으면서 언론에서 우리가 접하고 들어본 스탠포드 출신 유명인사와 부자들의 연락처를 적어 놓은 다음에 하나씩 연락을 시도해봤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서 연락처를 적어놓거나 연락처를 아예 적어놓지 않는데 여기저기 연락을 시도하는 와중에 나는 스탠포드 MBA 출신인 나이키 창업자이자 회장인 Phil Knight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영업을 해왔던 나였지만 나이키 회장한테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몇 번이나 연습을 한 후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Phil Knight(PK): 여보세요?
배기홍(KB): 안녕하세요. 나이트 회장님이신가요?
PK: (귀찮은 어투로)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KB: 안녕하세요. 저는 스탠포드 동문인 Kihong Bae라고 합니다…
PK: 네, 안녕하세요. What can I do for you?
KB: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우리 회사가 매우 어렵습니다. 200 불만 투자하시면 5년 후에 5배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PK: (껄껄껄 웃으면서) Son, you have some balls! (얘야, 너 참 용감하구나!). 너한테 돈을 주지는 못하지만, 너 이름은 반드시 기억해 두마. 이름이 뭐라고?
KB: Kihong Bae. 그런데 저는 제 이름을 기억하는 것보다 돈이 필요합니다. 회장님도 회사를 운영하시는 마당에 제 입장과 심정을 충분히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PK: 미안하지만 지금 바쁘고, 말했듯이 돈을 줄 수는 없다. I will remember your name though. Call me some other time and let me know how you are doing.

*몇 년 뒤에 나는 필 나이트 회장한테 다시 한번 전화를 해볼 거다. 정말로 내 이름을 기억하는지.

위와 같은 전화를 나는 다양한 스탠포드 출신의 유명인사들에 해봤지만, 당연히 매번 뺀찌를 먹었다. 이런 전화를 받고 투자를 하면 오히려 그게 미친놈이지. 하지만, 하늘도 뮤직쉐이크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2009년 12월에 정말 기적과도 같이 우리는 18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투자가 성사된 거는 아니었다. 무려 9개월의 투자유치 노력과 기다림의 결과였다. 2010년 1월 실제로 돈이 통장에 입금된 거를 확인하고 나는 내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철이와 포옹을 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남자들 간의 뜨겁고 힘찬 포옹이었다. 그리고 둘 다 별말 없이 한창 그러고 있었다. 뭐라도 크게 celebrate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솔직히 그동안 돈이 없어서 우리가 해야 하지만 못한 일들이 산더미 같았기에 다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화를 붙잡고 열심히 sales call들을 시작하였다. We were back in business.

자, 여기까지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다. 2009년도는 뮤직쉐이크뿐만 아니라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한테 힘들었던 한 해였을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아서 사업이 망한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나와 같이 운 좋게 살아남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거는 우리 모두가 많은 걸 느꼈고, 배웠고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정말 맞는 거 같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며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내일이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 건 우리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Success is really a mind game.

시니어 코리아

우리 부모님은 나랑 꽤 가까운 거리에 사신다. 그렇다고 아주 자주 뵙진 못 하지만, 내가 미국 살 때 보단 훨씬 더 자주 방문할 수 있어서 좋다.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우리 아버지는 인터넷 관련 이런저런 질문을 하신다. 어떤 건 그냥 그 자리에서 고치거나, 가르쳐 드릴 수 있지만, 어떤 건 한참 설명하다가 포기하거나, “아빠, 그건 그냥 제가 해드릴게요.”라면서 아예 시도조차 안 한다. 이커머스 사이트 등록과 온라인 뱅킹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학습에 대한 의지도 있고, 학습력도 나름 좋으신 분이지만, 계정을 만들기 위해서 휴대폰 인증받고 공인 인증서 사용방법에 대해 설명할 엄두가 도저히 나한테 생기지 않았다. 마켓컬리 안심을 언제 한번 사드렸는데, 너무 맛있고 값도 착하다고, 본인 폰에도 깔아달라고 하시는데, 그냥 필요할 때마다 나한테 부탁하면 내가 주문해주겠다고 했다. 타다도 설치하고 싶으시지만, 그냥 그럴 때마다 내가 호출해드린다. 요샌, 현금을 아예 받지 않는 스타벅스 매장도 많은데, 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면, 스타벅스 앱을 설치해야하는데, 이것도 우리 부모님 폰에 설치하고 사용방법을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 아버지가 뱅킹 서비스를 사용하시려면, 직접 물리적으로 은행에 가야 하거나, 전화로 해야 한다. 요새 은행들도 지점을 없애는 추세고, 전화를 걸어도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뭔가 구매가 필요하시면, 그냥 나한테 부탁하시면, 내가 대신 쿠팡에서 구매해드린다.

이럴 때는 정말 씁쓸하다. 이런 추세로 가다 보면, 어르신들은 그 어떤 서비스도 이용하지 못하고, 모든 면에서 첨단 기술을 잘 활용하는 젊은 층보다 불리해질 것이다. 이번 마스크 대란에서도 우리 부모님은 유일하게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동네 약국이나 마트라서, 갔는데 허탕 치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세상은 편리해지고 있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더 불편해지고 있는 게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땐 또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나도 우리 부모님과 같이 될까 겁난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지금 이 추세로 가면 2045년에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니어 인구(65세 이상)를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를 탈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사회, 과학, 경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라서 자세히 들어가진 않겠다. 어쨌든, 한국은 이 상태로 가면, 앞으로 인구 역피라미드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이런 현실과 미래가 잘 보이는데, 대부분의 창업가는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서비스에 많이 투자하고 있고, 나는 밀레니얼들을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럴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나라의 더 큰 시장을 차지할 시니어 시장을 모두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 또한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마케팅, 검색엔진 최적화, 그리고 그로쓰해킹 등의 기법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최적화된 마케팅 기법인데, 어떻게 보면 더 큰 시장인 시니어한테까지는 도달하기 힘들다. 이들은 검색을 잘 안 하고, 유튜브도 못 하고, 인스타도 안 하고, 온라인 결제에 익숙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 이플루비는 이 시니어 시장에서 잘하고 있는 회사다. 회사의 창업자인 윤혜림 대표는 금속공예를 공부했는데, 어머님을 위한 패션 돋보기를 직접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창업가가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이 시니어 시장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좋은 가격에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고 있는데, 패션 돋보기와 마약 잠옷과 같은 히트 상품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판매하는 방법도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트업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온라인에 익숙지 않은 고객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올드’하다고 생각하는 종이 카탈로그로 마케팅을 하고, 구매 또한 전화로 해결하고 있고, 그나마 시니어들이 모두 사용하는 가장 익숙한 모바일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잘 활용하고 있다.

내가 윤혜림 대표를 처음 만난 게 약 1년 반 전 프라이머 인터뷰할 때였는데, 그때 굉장히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동안 많은 시니어 비즈니스가 있었는데, 모두 다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니어’를 너무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니어들도 본인들이 시니어인걸 잘 아니까, 굳이 ‘시니어’를 강조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뜻이다. 이런 좋은 인사이트를 몸으로 직접 배운 창업가라면 좋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이플루비 들어가서 우리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을 위해서 뭐라도 좀 사야겠다.

참여의 의의

1584658007999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주춤하고 있고, 스타트업 쪽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경기 자체가 너무 불안해서 일단 VC든 스타트업이든 자금을 모두 조심스럽게 집행하고 있고, 사람을 만나는 게 불안하니, 투자 미팅이나 실사 또한 보통때보단 훨씬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한국 사무실이 있는 구글캠퍼스서울도 지금 3주째 문을 닫아서, 우리 모두 집에서 근무하면서 이메일/Zoom/전화로 모든 업무를 해결하고 있다.

악셀러레이터의 대표주자 Y Combinator도 어쩌면 올해 여름 배치는 완전히 온라인/리모트로 진행한다고 발표했고,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 또한 최근 배치 데모데이를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이번에 새로 모집하는 17기 인터뷰 또한 모두 화상미팅을 통해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국이 어렵다고 창업의 열기가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번에 모집하는 프라이머 기수에 지원한 회사와 창업가의 수는 역대 최고였고, 오히려 역사적으로 힘들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진짜 좋은 회사들이 많이 창업됐다는 걸 알고 있는 듯, 더욱더 좋은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창업가들이 많다는걸 요새 느끼고 있다. 비록 Zoom을 통한 화상미팅으로 대부분 만나고 있지만, 느낌과 눈빛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도 잘 전달되고 있다.

이번에 나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프라이머에 지원한 30개 이상의 회사와 인터뷰를 했다. 요새는 한국의 창업가들도 질적으로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이미 스타트업 경험이 있거나, 현재 좋은 수치를 만들고 있는 회사를 운영하는 분들도 많이 지원한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경험없고, 스타트업이란 용어조차 생소한, 첫 번째 창업하는 first time entrepreneur들이 많다. 오히려 나는 이런 분들과 대화하는 게 더 즐겁다. 아직 경험이 없다는 명확한 단점이 있지만, 이걸 반대로 해석해보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과 태도가 완전히 오픈되어 있다는 명확한 장점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질문을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항상 하는 질문은 “왜 프라이머에 지원하셨나요? 저희한테 원하는 게 뭔가요?” 인데,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매번 다르고, 꽤 재미있다. 이번에도 다양했는데, 꽤 많이 들었던 답변이고, 투자자로서의 내 마음을 감동하게 했던 답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모든 투자자들이 제가 하는 게 어리석고,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그동안 좀 많이 우울했고, 자존감이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프라이머는 조금 달랐습니다. 서류 통과하고, 이렇게 파트너분들이 미팅을 신청해주시고, 좋은 시장이고, 좋은 팀이고, 가능성이 있다고 해주는 이런 말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자극되고, 도움이 되고, 영광입니다.”

올림픽의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의의는 참여 그 자체이다. 금메달 중요하다. 하지만, 메달보다 중요한 건 바로 올림픽에 참여하는 그 자체이다. 나는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유니콘도 좋고, 성장도 좋고, 밸류에이션도 좋고, 다 좋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참여 그 자체이다. 성공도 좋고, 실패도 좋고, 다 좋다. 하지만 참여하는 거 자체가 의미가 있다.

여기서 초기투자자들이 하는 역할이 매우 크다. 지금은 서툴고, 모자라지만, 가능성이 있는 팀이라면, 용기를 줘야 한다. 그래서 계속 이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 머무르면서, 창업가 기질을 연마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다듬고, 더 좋은 팀원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치어리딩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창업부터 성공해서 대박이 나는 사례를 우리도 가끔 목격하지만, 이렇게 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처음에는 서툴고 미숙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시도하고 다듬다 보면, 그리고 운이 좋으면, 좋은 비즈니스가 만들어질 확률이 더 높다.

창업가들도 남의 말에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고, 더 많은 사람이, “그 비즈니스 말 되네”라는 말을 한다면, 어쩌면 그렇게 커질 비즈니스가 아닐지도 모르니, 옆에서 욕하고, 밟고, 깎아내리고, 우울하게 만들어도, 참여 자체에 의의를 두고 계속 시도하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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