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선을 긋기

이 공간을 통해서도 과거에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내가 2012년에 스트롱을 시작하고 첫 2년 동안 투자자로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건,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창업가보다 내가 그 사업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내가 그 사업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표가 항상 내 생각과 말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였다. 아마도 이걸 보면 공감하는 투자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B2C를 해야 하는데 B2B를 하고 있거나, 아주 좁고 깊게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넓고 얕게 공략하거나, 싸게 많이 팔아야 하는데 비싸게 적게 팔고 있거나, 뭐, 이런 것부터, 제품을 만드는 방법, 펀딩 전략, 채용 전략 등과 같은 중, 장기적인 회사의 방향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지금도 많지만, VC 초창기 시절에는 투자하는 회사마다 이런 갈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나는 VC가 아니라 VC 흉내를 내는 거였는데,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면, 엄청난 고민과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왜 저분은 사업을 저렇게 할까? 내가 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내 말을 안 들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참 괴로웠다.

그런데, 더 많은 회사에 투자하고, 훨씬 더 많은 창업가들을 만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점점 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VC 초창기에 스트레스받았던 이런 고민이 쓸데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완전히 틀렸다는 게 점점 더 증명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과거에 투자한 회사들의 실적과 결과가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는데, 잘되고 있는 회사들은 실은 내가 주장했던 이 회사들이 가야 하는 방향과 취해야 하는 전략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훨씬 더 많다. 즉, 내가 창업가들에게 “사업은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훈수했던 내용과 완전히 다른, 창업가들이 주장한 방식으로 사업한 회사들이 잘 되고 있다. 내가 주장했던 방식으로 사업을 했다면, 아마도 망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내가 너무 세게 주장해서, 내 말을 듣고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사업했던 창업가들은 지금은 회사가 망했거나 잘 못 하고 있다. 나 때문에 사업이 잘 안됐다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이분들이 내 말은 무시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만 사업을 했다면, 어쩌면 더 잘 할텐데라는 생각을 요새 가끔 한다.

내가 맞을 확률보단, 틀릴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걸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요새 나는 내가 창업가들보다 사업을 더 잘 한다는 틀린 믿음으로 인한 고민을 잘 안 하고, 스트레스도 거의 안 받는다. 이건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건데, 나는 VC 초반에는 정말 아마추어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같이 수백 개 회사에 투자해서 한 회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짧고 얕은 초기 VC가 어떻게 1년 365일, 하루 24시간 한가지 사업과 제품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창업가보다 그 사업을 더 잘 알거나, 잘할 수가 있겠는가? 솔직히 과거에 내가 몇몇 대표님들에게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할 것 같은데요” , “그 사업은 이렇게 해야죠” 등의 발언을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얼굴이 약간 화끈거린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선을 명확하게 긋기 시작했다. 나는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업을 운영하는 믿을만한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고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이라는 선을. 흑백논리로 따져보면 이건 네 사업이지, 내 사업이 아니라는 사고다. 그리고 이렇게 선을 명확하게 그으니까 긍정적인 일들이 생기고 있다. 일단, 내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 너무 좋다. 투자한 회사 대표가 사업을 잘 못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다고 명확하게 구분하니까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다. 그리고, 내가 창업가들보다 사업을 못하는 게 명백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이야기를 그들이 듣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없다. 이런 생각으로 창업가들을 대하다 보니, 서로 웃는 얼굴로 할 말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professional 한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걸 요새 직접 경험하고 있다.

주주총회나 이사회에 가보면, 아직도 내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보다 내가 사업을 더 잘할 수 있고, 시장을 더 잘 알고, 제품을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VC가 있는데, 이들에게 같은 조언을 드리고 싶다. 투자자와 창업가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있고, 그 선을 되도록 넘지 않길 바란다. 왜냐하면, VC가 창업가보다 사업을 더 잘 알고,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100% 착각이기 때문이다.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

우린 어쩔 땐 하루에도 열 개가 넘는 회사 자료를 검토한다. 관심이 가는 사업은 조금 더 자세히 보고, 그렇지 않은 사업의 자료는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보는 부분 – 예를 들면, 창업팀의 이력이나 매출과 같은 수치가 있는 페이지 – 외엔 빠르게 스캔하고 스크리닝하는 편이다. 모든 회사는 다르고, 모든 비즈니스는 다르므로, 자료의 내용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웬만한 자료는 공통으로 3년 또는 5년 치 매출 추정이 들어간 페이지가 한두 개 있다.

솔직히 우린 이 예상 매출 슬라이드는 잘 안 본다. 어떤 대표들은 이 슬라이드의 숫자를 만들기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예측치를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서 상당히 복잡한 엑셀을 돌리거나, 아주 무거운 number crunching을 한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땐, 초기 스타트업의 미래의 매출 수치는 거의 90% 정도 디스카운트 하거나, 아예 무시해도 된다. 솔직히 다음 달에 없어질지도 모르는 사업인데 3년 후의 매출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억지이고, 아무리 정교하게 모델링을 해도 대부분의 수치는 목표와 말도 안 되게 크게 어긋난다. 그리고 대부분 첫 2년은 큰 성장이 없고 손실이 많이 발생하다가 갑자기 3년 차부터 매출이 20배씩 뛰면서 흑자가 발생하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대표들도 이런 그림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본인들은 속으로 민망한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시간 낭비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아직 1,000만 원의 매출도 못 하는 회사가 3년 후의 매출을 예측하는 건 실용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숫자를 시뮬레이션해 봤다는 건, 대표가 회사의 전략, 비즈니스모델, 고객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는 의미라서 이 사실 자체는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주긴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계산해 본 숫자를 투자자들이 믿는가에 대해선 나는 매우 부정적이다. 나도 투자자지만, 3개년 프로젝션 등의 수치가 보이는 슬라이드를 아예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는 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미래의 목표 매출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할 때, 이 목표가 투자금이 있어야지 달성 가능한지, 아니면 투자금 없이 현재 자원만으로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펀딩을 돌 때, 그 투자금을 받았을 때 달성 가능한 목표를 자료에 기재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작년 매출이 1억이었는데, 올해는 30억을 하겠다는 약간 비현실적인 추정치를 제시하는 대표들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면, 현재 펀딩하고 있는 10억 원의 투자를 받으면 사람도 채용하고, 마케팅도 하고, 영업도 더 하고 해서 목표 30억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말이다.

이분들에게 그럼 이번에 10억 원보다 적은 5억 원만 투자받거나, 아니면 아예 투자를 못 받으면 매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생각해 봤다면 훨씬 낮은 수치를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목표 매출의 절반도 못 하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때부턴 이 창업가와 회사를 약간의 의심과 디스카운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모든 VC를 대변해서 말할 순 없지만, 회사 자료에 3년~5년 매출 추정치를 넣으려면, 기본적으로 외부 투자 없이 현재의 인력과 돈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산정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또는, 아주 명확하게, 얼마의 투자를 받으면 달성할 수 있는 공격적인 수치와 투자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확실히 구분해 주면 좋겠다. 투자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수치를 보면 너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을 것이고, 투자 없이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매출을 계산했는데, 이게 너무 초라해 보인다면, 그냥 우린 현재로서는 외부 투자에 의존하는, 형편없고 초라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VC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서, 뭘 어떻게 표시하더라도 결국엔 이런 현실을 잘 파악할 것이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번 강조했듯이, 올해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투자를 못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현재 우리가 가진 돈, 인력, 캐파를 150% 돌렸을 때 달성 가능한,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화하는 게 서로에게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투자를 받았을 때 달성할 수 있는 공격적인 목표도 솔직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돈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대규모 투자를 받은 후에 매출이 역성장하는 경우도 많고, 이미 내가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회사 상황이 안 좋아서 대규모 감원을 한 회사는 오히려 매출이 두 배 성장한 경우도 있다.

우리 투자사에 내가 항상 조언하는 건, 투자자들에게 약속하는 목표는 되도록 보수적으로 산정하고, 이 보수적인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사업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underpromise; overdeliver들의 대가들이다. 왜 이런 사람들이 잘할까? 이 세상은 허세와 뻥카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더 강해 보이고, 어려운 상황을 얼렁뚱땅 넘어가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overpromise 하는데, 결국 이들은 모두 다 underdeliver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이들의 신뢰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만 더. 책 읽고 책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기 좋아하는 대표들이 사랑하는 전사 OKR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전사 목표를 정할 땐, 최소 90%는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너무 많은 회사들이 1년 내내 60% 도 달성 못 하는 비현실적으로 빡센 목표를 설정한다. 이렇게 overpromise; underdeliver 하려면 뭐 하러 전사 워크숍을 가고, 바쁜 임원들의 시간을 낭비하는가?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 사업이든, 인생이든, 우정이든, 연애든.

등잔 밑은 항상 어둡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 다 읽을 수 있지만, 이 글은 남보단 내 스스로의 반성, 배움,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 쓴다.)

우리가 2018년도에 투자한 Norae라는 미국 스타트업이 있다. Ryan이라는, 한국 분은 아니지만,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좋아하는 창업가가 시작한 회사다. 회사 이름 Norae(노래) 자체가 이 팀이 얼마나 케이팝을 좋아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데, 첫 번째 비즈니스는 틱톡의 모태가 된 Musical.ly랑 동일했다. 립싱크하는 동영상과 커버댄스 동영상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였는데, 여기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케이팝이었다.

콘셉트는 재미있었지만, 사업 자체는 썩 잘되지 않았다. 아니, 잘 안된 게 아니라 진짜 별로였다. 똑똑한 창업가들이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워낙 작은 회사라서 돈도 없었고, 나도 뮤직쉐이크를 통해서 배웠지만,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셜 미디어가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건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작은 투자금은 다 썼고, 팀원은 대부분 떠났고,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스타트업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론, 이 창업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동 창업가와 방법을 찾아서 계속 서버비를 벌고 앱 자체는 운영이 되게 정말 열심히 허슬했다. 중간에 한 명씩 차례로 다른 회사 업무를 해주면서 외주비도 벌고, 하여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서 바퀴벌레같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틱톡이 너무 커지자, Norae의 가능성은 점점 더 없어졌고, 아마도 이 시점에 다다르면 대부분 창업가들이 그냥 회사 문을 닫을 텐데, 이 회사의 코파운더들은 피봇을 시도했고, Coverstar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전한 TikTok과 유사한 앱을 만들어서 출시했다.

미국 회사라서 한국 창업가만큼 자주 연락하거나 만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상의할 게 있으면 조언도 하면서 이 팀의 변화를 나는 계속 지켜봤다. 내가 항상 바퀴벌레같이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맘속에서는 그냥 회사 문 닫는 게 모두를 위해서 맘 편할 텐데 또 안 될 앱을 새로 만드는 게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꾸역꾸역 조금씩 진도를 나아갔고, 우리가 첫 기관 투자자이기도 하지만, 초반부터 창업가의 허슬과 노가다를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사업 관련 모든 내용을 지속적으로 투명하게 공유해줬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추가 투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개인적으로 친한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이 사업, 제품, 팀을 – 팀이라고 해봤자, 코파운더 두 명밖에 안 남았다 –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면 잘 될 가능성이 너무 낮은 사업이라고 판단해서 이 회사에 스트롱이 단독으로 추가 후속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매번 내렸다. 여러 번 검토했지만, 매번 우리 팀에서는 pass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최근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a16z에서 이 회사에 투자한 것이다. 그것도 단독으로. 이 투자자에게 피칭했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실제로 텀싯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내가 들었을 때, 즉시 내 머릿속에 “왜 우린 투자하지 않았지?” , “우리만 뭔가 못 봤던 건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게 투자받는다고 해서 사업이 잘되는 건 아니고, a16z가 잘 못 판단한 투자도 수두룩하게 많다. 그래도 이렇게 크고 경험이 많은 VC가, 우리가 수년 동안 잘 알고 있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매번 투자하지 않은 우리 포트폴리오사에 후속 투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쁘기도 했지만, 뭔가 아쉽고 허전했다. 우리가 만약에 이전에 이 회사에 추가 투자했다면, 훨씬 더 싸고 좋은 조건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배가 아프기도 했다.

전형적으로 등잔 밑이 어두웠던 케이스였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포트폴리오사를 실은 우리가 제일 잘 몰랐던 것이다. 아니, 몰랐던 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잘 알고, 너무 오랫동안 본 팀이고, 이 팀이 그동안 어떤 고생을 했는지 샅샅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어쩌면 우린 그 뒤에 숨은 장기적인 가능성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크고 유명한 VC에서 투자했다고 그 회사가 장기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난 스스로 이번 계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역발상적인 생각과 반성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지난 13년 동안 투자했던 모든 포트폴리오사를 다시 한번 검토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 전원이 좋은 창업가와 회사를 남보다 먼저 찾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면 스트롱 포트폴리오에 이런 분들이 있는데 등잔 밑이 어두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너무 친하고, 너무 잘 알고, 너무 당연한 것들의 진가를 우린 못 알아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우리 투자사의 후속 투자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 이는 투자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서 생각해서 봐야 하는 쉬워 보이지만 매우 어려운 숙제다.

채용하지 말아라

내가 만약에 투자자에서 다시 창업가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안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중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능하면 투자를 받지 않고, 둘은 웬만하면 사람을 뽑지 않고 싶다. 본인은 열심히 투자하면서, 창업하면 투자를 안 받겠다는 말은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VC가 싫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의 자본 없이 내가 스스로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어서 첫날부터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고, 아무리 좋은 VC라도 투자를 받으면 사업에 간섭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만들고, 남의 돈 안 받고, 정말로 그동안 내가 보고, 느끼고, 실수한 배움을 그 누구의 간섭 없이 모두 다 사업에 적용해 보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웬만하면 외부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채용에 대해서도, 내가 그동안 280개 넘는 회사에 투자하면서 옆에서 간접적으로 배운 점이 정말 많은데, 그 중 딱 하나의 배움을 뽑자면, 가급적이면 채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시작할 땐 소수 인원으로 모든 걸 한다. 영어의 do more with less 정신으로 서로의 계급이나 직책 따지지 않고, 그냥 그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처리한다. 개발자가 화난 고객의 전화를 받아서 고객 서비스를 할 때도 있고, 영업 사원이 포토샵을 배워가면서 웹사이트 디자인을 할 때도 있다. 이 시기에 대표이사는 회사의 모든 잡일을 한다. 그리고 전원 모두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내가 아는 잘 되는 회사의 초기 멤버들은 창업 초기엔 일주일에 거의 100시간씩 일 했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을 더 채용하는 게 오히려 회사에 부담을 안기는데, 돈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더 채용한다는 건 회사에 큰 재무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새로 채용한 사람에게 업무를 가르칠 시간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인력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 어떤 회사는 투자를 받고, 어떤 회사는 매출을 만들면서 스스로 돈을 버는데,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가장 먼저 사람을 채용한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대규모 채용을 하는데, 이때부터 회사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특히, 정말로 필요해서 사람을 채용하는 전략이 아닌, 일단 사람을 채용하고 이 사람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전략을 실행하는 회사는 생산성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일단, 현금이 상당히 빠르게 소진된다. 스타트업 운영비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인데 사람을 많이 채용할수록 비용 구조가 악화된다. 그리고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채용하다 보니까, 제대로 된 채용을 못 한다. 70% 정도만 맘에 들면, 그냥 나머지 30%는 회사에서 채워준다는 생각으로 채용한다. 결과는, 나머지 30%를 채워주기 위해서 돈은 더 많이 써야 하고, 이 30% 채우기에 동원되는 다른 사람들의 업무가 지장 받으면서, 여기서 생산성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채용하다 보면, 결국엔 회사에서 노는 사람들이 생긴다. 한국의 경우, 사람을 마음대로 해고하지도 못해서, 노는 사람들이 회사의 시스템 뒤에 숨어서 일하는 척하기 시작하면 정말 골치 아프다.

이렇게 갑자기 커진 회사들이 문제가 발생해서, 사람을 대량 해고하면, 신기하게도 매출은 오히려 더 증가하고 비용은 내려가는데, 이런 경험을 해본 창업가들은 이제 되도록 사람을 안 뽑으려 한다.

스타트업의 첫 번째 채용 전략은 “웬만하면 채용하지 말아라.”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100% 맘에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채용하면 안 된다. 조금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은 회사가 채워주면 된다는 생각은 직원의 절반 이상이 놀아도 시스템으로 잘 굴러가는 대기업에만 해당한다. 100% 맘에 드는 사람을 못 찾으면, 그냥 현재 임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힘들겠지만, 이렇게 하면 오히려 생산성이 더 올라가고, 실적이 훨씬 더 잘 나온다. 이건 내가 수년 동안 커지는 회사들을 옆에서 보고 배운 점이다.

그래서, 일단 가급적이면 채용하지 말아라. 임직원들이 모두 200% 캐파로 일해서 더 이상 더 많은 일을 못 한다면, 그리고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으면, 그때 한 명씩, 아주 천천히 채용해라. 그리고 정말 개 같이 일 할 수 있는 사람만 뽑아라.

과거는 뒤로 하고

올해부터 태어나기 시작해서 2039년까지를 베타 세대라고 한다. 출생년도로 인류를 구분하고, 이들은 어떻고, 어떤 특징이 있다고 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나는 MZ 세대보다 이후에 태어난 알파 세대(2010년 ~ 2024년생)와 베타 세대는 나 같은 X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DNA와 뇌 구조를 가진, 그래서 이렇게 출생년도로 한 번 구분해 볼 만한 신인류라고 생각한다.

일단, 베타 세대의 부모는 대부분 Z 세대와 젊은 M 세대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들은 우리의 손자 세대라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고, 이 중 꽤 많은 분들이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22세기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베타 세대는 엄청난 기술 발전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AI가 삶의 중심에 있을 것이고, 이들이 투자하는 기본 자산은 비트코인이 될 것이다. 세대를 구분할 때 그 세대를 가장 잘 반영하는 기술을 많이 인용해서 우리 같은 X 세대를 삐삐 세대, 핸드폰 세대, 뭐 이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베타 세대부터는 이런 특정 기술이나 제품으로 이들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워낙 기술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투자하는 창업가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세상을 바꿀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꿈꾸는 것들이 실현된다면, 베타 세대는 사람이 직접 차를 운전했던 시절이나 비트코인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모를 수도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런 시절이 오고 있다는 이미 왔다는 게 약간 신기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한다. 나도 최첨단 기술에 투자하는 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요새 왠지 계속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아마도 이런 큰 세대의 변화라는 매크로 테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도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강제적으로 이제 과거는 뒤로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작가 더글라스 아담스의 이 말을 항상 떠올린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정상적이고, 세상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15세에서 35사이에 개발된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혁신적이지만, 이걸 공부하고 연마하면 좋은 직업이 있다. 35이후에 개발된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에 이해할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 나에겐 웬만한 건 모두 비정상적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라서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선, “옛날엔 이랬었는데” , “나 때는 저렇지 않았는데” , “저게 가능해? 과거에 우리도 시도해 봤는데 안 되던데” 등과 같은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그냥 내 기억으론, 내 경험으론, 안 되는 거였지만, 과거는 과거로 두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아니, 이런 생각만 해야 한다.

요즘 엄청나게 빠른 기술의 변화를 보면서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두고, 과거에는 이랬다 저랬다라는 생각을 되도록 하지 말고, 미래만 봐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로 나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분야를 요즘 다시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상관없이 이제부터는 비트코인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을 모르는 세대가 비트코인과 수많은 디지털 자산에 투자할 것이다. 또한, 미국 SEC 의장도 바뀌었고, 디지털 자산에 반대하던 대부분의 정부 관련 담당자도 갈아치워지면서 미국에서 디지털 자산 관련 현실적인 제도와 규제가 완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즉,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도 빨리 모든 것들이 정상화되어 과거는 뒤로하고, 조금 더 미래 지향적인 자세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